계단 2

근황, 그리고 내일

계단을 올라갈 때 오래된 나무 조각들과 내 낡은 근육들의 사소한 움직임으로 얇게 삐걱이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이젠 이런 종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도 없다. 나무 계단은 이제 없다. 만들지도 않는다. 나무 바닥이나 나무 계단을 뛰어가다가 발바닥에 나무 가시가 박히는 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어제는 사라졌다. 한 땐 당연한 일이, 익숙했던 사물이 지금은 낯선 것이 되거나 아련한 것이 된다. 그렇게 나도 요즘, 종종, 가끔 그렇게, 그냥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가장한 어떤 부재.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스스로에게 공포와 두려움, 끝없는 연민을 느끼곤 한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실제로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이렇게 사는 ..

계단 위의 봄

계단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어딘가 올라간다는 것은 언젠간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람이 불었다. 궁궐 건물 아치형 입구 옆으로 살짝 비켜 불어들어온 바람은 실내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따가운 햇살에 푸석푸석해진 머리칼을 스다듬어 올렸다. 이마 살갗이 거친 손바닥에 밀렸다. 따끔거렸다. 환상은 쓸쓸함 사이에 깃들고 공상은 한 잔 술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은 잡을 수 없는 파도였고 내 곁에 머무는 모든 것들의 존재는 느낄 순 있었으나, 소유할 순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먼 미래를 회상해본다. 앞으로 다가올 것이지만, 이미 경험했던 어떤 것들의 변형이거나 알레고리에 가까울 것이다. 어느 새 봄은 왔고 내 육체는 봄 향기에 지쳐 쉽게 피로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