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주의 28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자화상(Self-portrait)

우연히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의 자화상들을 보았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과의 그 결이 다르다. 예술의 역사를 공부할 때, 지역적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이런 점에서 뒤러는 참 특별한 화가다. 그의 작품들에는 르네상스 세속주의도 드러나지만, 그와 함께 그 당시까지 남아있던 후기 고딕적 요소에서 자유롭지 못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The Arnolfini Portrait (or The Arnolfini Wedding, The Arnolfini Marriage, the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or other titles) Jan van Eyck,..

앙리 마티스, 앉아있는 분홍빛 누드 Pink Nude Seated

늘 그렇지만, 앙리 마티스는 언제나 옳다. 가끔 모더니즘을 낭만주의로 오해하곤 하는데, 절정기의 모더니즘은 확실히 고전주의적이다. 앙리 마티스의 부드러운 선과 감미로운 색채는 우리로 하여금 심리적 안정과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준다. 마치 그가 마지막으로 공을 드렸던 로자리오 성당을 떠올리게 만드는 평안함이다. 현대적이며 고전적인 감성은 이전 고전주의가 사용했던 환영주의가 아니라 기하학적 추상을 불러들이며 현대 문명을 반영한다. 기하학적 진보를, 상대성 이론을, 양자역학을. 과거와의 단절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꿈과 미래를 노래한다. 이런 점에서 20세기 후반의 팝아트와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현대 과학은 급격하게 낭만주의로 기운다. 토마스 쿤의 도 확실한 낭만주의적 텍스트인 셈이다. 여기에서 딱딱하..

아직 나는 만나지 못했다

아직 나는 만나지 못했다 Edgar Degas A Woman Seated beside a Vase of Flowers Oil on Canvas, 73.7 x 92.7cm, 1865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은 저 사각의 캔버스 안 뿐이다. 저 사각형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할 것이다.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Esse est Percepi(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주의자들은 저 사각형 안에 모든 것들을 담아내려 했다. 캔버스, 혹은 작품의 공간 안에 시작과 끝이 있어야 했다.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 속에 그리스 철학 전체를 담아내려고 했다면, 젊은 미켈란젤로는 하느님이 아담을 창조할 ..

살아 있는 누군가 마음 속에서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데미안 허스트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살아있는 누군가 마음 속에서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뭔가 심오한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글쎄다. 얼마나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을 지는 현대미술 전문가들의 손길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히 어려운 단어들로 포장해서 설명할 것이다. 가령 아래와 같이.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은 신체에 대한 폭력성과 자기 분열을 보이는 일종의 '신경증적 리얼리즘neurotic realism'을 나타냈다고 말한다. 허스트의 개념미술은 그러한 증상을 표현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 전영백, , 106쪽 '신체에 대한 폭력성'이 다소 낯설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대로 풀어보자면..

슬퍼하는 아테나Mourning Athena와 나이가 든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하나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밀스러운 속살이라기 보다는 굳이 알 필요 없는 구차함에 가깝다. 인과율의 노예라서 '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나 배경으로 끼워 맞출 수 있다는 것 이외에 쓸모없는 것들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쌓이면 이 세상이나 우리 삶은 참 슬픈 것이라는 생각에 휩싸인다. 아마 하우저가 그리스 고전주의 정점을 'The Contemplating Athena'로 여기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게다. 부연하자면, 알기 때문에 피하게 되고 알기 때문에 멀리하게 되며 알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게 된다. 알기 때문에, 결국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회한과 눈물의 밤을 보내고 젊음을 부러워하고 되돌릴 수 없는 추억에 자신의 마음을 맡기게 된다..

미술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현대미술감상법

미술사 책을 읽기는 하나, 그건 일 년에 한 권 될까 말까이다. 한때 책을 내기도 했고 강의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십 수년 전 일이고, 마지막 잡지 기고를 한 것도 꽤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우연히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요즘 아내의 일로 커뮤니티 자치 활동을 잠시 도와주고 있는데, 그 곳에 계신 분의 제안으로 한 차례 강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래는 간단한 강의 개요다. 막상 적기는 쉽게 적었으나, ... 도판 찾는 게 일일 듯 싶다. 요즘은 워낙 온라인 아카이브가 잘 되어 있어 쉽게 도판을 찾을 수 있으나, 정확하고 적절한 도판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지라, 꽤 시간이 걸릴 듯 싶다. 동네에서의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 공개적인 장소, 가령 북까페 같은 곳에서 한 번 더 하면 좋..

The Death of Bara, 1794. - 자끄 루이 다비드

The Death of Young Bara, Joseph Bara or The Death of Bara is an incomplete 1794 painting by the French artist Jacques-Louis David, now in the musee Calvet.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he_Death_of_Young_Bara 1793년 12월 7일 대서양 연안의 Vendee에서 왕당파 당원들에 의해 살해당한 13살의 소년 'Bara'. 고전주의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서정적이며 슬프고 애처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어쩌면 자끄 루이 다비드만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일 지도. 신고전주의는 의도된 고전주의다. 자끄 루이 다비드는 '혁명 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

뒤러Durer, The Knight, Death and Devil(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The Knight, Death and Devil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Albrecht Dürer 알브레히트 뒤러 1513, Copperplate 동판화 기사 옆으로 죽음과 악마가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한다. 이 명료한 동판화는 르네상스 시기의 신념을 보여준다고 할까. 인간이 가는 길을 과거의 유물들 - 죽음, 악마 - 이 훼방 놓으며 가지 못하게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종종 후기 고딕적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 만큼은 근대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기사는 도상학적으로 진리를 수호하는 자로 해석된다. 과거 종교인이 가졌던 역할을 이제 기사가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극적인 변화는 르네상스 시기를 문예부흥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시기가 아니라, 급속하게 변화하는 혼돈기였음을 짐작케한다. 결국 고딕적..

그림을 본다는 것, 케네스 클라크

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

히페리온의 노래, J.Ch.F.횔덜린

히페리온의 노래 J. Ch. F. 횔덜린(지음), 송용구(옮김), 고려대 출판부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삶이란, 제가 확신하건대 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시는 낯설지 않으며, 앞으로 우리가 보겠지만 구석에 숨어있습니다. 시는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튀어나올 것입니다." - 보르헤스, 중에서(,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11쪽) 시는 아무래도 원문 그대로 읽어야 제 맛이다. 번역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동일한 단어라고 언어마다 그 어감이나 뉘앙스, 풍기는 멋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글로 옮겨서 밋밋한 시라도 원문으로 읽으면 풍성한 느낌을 주는 시일 수 있다. 몇 해 동안 영시를 읽으면서 배운 바라고 할까. 횔덜린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으나, 그의 시를 제대로 읽은 건 이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