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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7/05 고전과 감동 (2)
  2. 2007/12/09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 (3)
  3. 2004/01/06 그리스 후기 고전주의
  4. 2003/12/23 그리스 조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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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a Vinci
Mona Lisa
1503 - 1505, Oil on cottonwood, 76.8 x 53 cm, Musee du Lou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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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a Vinci
Mona Lisa (De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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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 Munch
Puberty
1895; Oil on canvas, 150 x 110 cm (59 5/8 x 43 1/4 in); Nasjonalgalleriet (National Gallery), Os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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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zio Raffaello
The School of Athens
1509, Fresco, width at the base 770 cm, Stanza della Segnatura, Palazzi Pontifici, Vatican


A.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리고 실제 작품을 보고 놀라워한다. 하지만 이런 가정을 해보자. 미술사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하는 어느 현대인이 난생 처음 <모나리자>나 <아테네학당>을 보았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이 두 작품과 함께 뭉크의 <사춘기>를 보여준다면. 한 번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1. ‘현대인’은 누구인가? 남편과 아이를 회사로, 학교로 보내고 아파트에 홀로 남은 중년의 여성. 또는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가 상사의 눈치를 피해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회사원. 혹은 매번 입사원서에서 떨어지는 20대. 우리에게 ‘현대인’이라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에게 ‘현대’란 과연 어떤 시대인가? 그것은 좋은 시대인가, 나쁜 시대인가?

2. 현대인은 <모나리자>를 보고, <아테네학당>을 보면서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의 이유로 <사춘기>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사춘기>를 싫어할 지도.

3.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 있다. 대부분의 뛰어난 현(근)대 작품들은 보는 이를 부담스럽고 고통스럽게 한다. 하지만 위대한 고전 작품은 아니다. 그래서 고전 작품을 위대한 것이고 아프게 하는 현(근)대 작품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4. 그렇다면 어느 작품이 우리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일까? 마음이 흔들리게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감동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B.
‘고전Classic’이라는 단어는 로마 시민 5계급 중 가장 높은 계급을 의미하는 ‘Classis’에서 유래하였다. 이 단어의 형용사형인 ‘Classicus’는 높은 수준의 작가나 그의 작품을 뜻하였으며 이것이 굳혀져 ‘고전Classic’이 되었다. 그리고 13세기, 14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들이 잃어버렸던, 잊고 지냈던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기 시작한다.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단어가 뜻하는 ‘재탄생’은 바로 그리스, 로마의 재탄생을 의미했다. ‘고전’이라는 단어가 요즘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래서 그리스적이거나 로마적인 양식을 그 당시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전적’이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의 역사에서 ‘고전주의’라고 하였을 때, 그리스 고전 시대, 기원전 4세기 - 5세기의 작품들은 포함되나, 그리스, 로마의 다른 시대의 작품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였을 때의 ‘고전’이라는 단어가 미술사에서는 그 쓰임을 다르다. 높은 작품성을 가지고 있는 오래된 과거의 작품들을 모두 ‘고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술사에서 ‘고전주의’는 구성이나 색채 측면에서의 양식이면서 동시에 정신적 양식(태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르네상스 고전주의’나 ‘신고전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며, 일부 모더니즘 양식의 작품을 두고 ‘고전적 현대’라고 하는 것이다.

고전주의의 양식적 특징은 낭만주의와의 대비 속에서 선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C.
모든 고전 작품들은 감동적인가? <모나리자>나 <아테네학당>이 보는 이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가? 예술에 대한 지식을 쌓기 전에 예술 작품을 보고 감동받을 수 있는 태도를 먼저 가져야 한다. 가장 좋은 태도는 <모나리자>를 보고 손을 떨면서 감동 받았을 그 당시의 이탈리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이탈리아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이 작품들이 현대인에게 현대의 다른 작품들이 주는 바의 그런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전혀 다른 시대의, 전혀 다른 영혼이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전 작품에 대한 지식, 모나리자 부인이 누구이며, 아테네 학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안다고 해서 이 두 작품이 숨기고 있는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정신적 태도를 알지 못할 것이며, 왜 이 두 작품이 위대한 고전 작품으로 남아있는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도리어 뭉크의 <사춘기>를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왜, 어떻게 뭉크의 작품이 다 빈치나 라파엘로의 작품과 다른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술 작품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교과서’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작품이나 법칙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될 것이다.

예술의 역사를 공부하기 전에 먼저 익혀야 할 것은 현대의 무수한 작품들을 보고 흔들거리는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하우저의 말대로 ‘감동을 주는 한, 그것이 바로 현대 작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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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지음), 안규철(옮김), 한길사


하인리히 고흐의 전기는 미켈란젤로의 일부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이 책 서두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라는 챕터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전기의 일부는 이 논란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책 속에서 미켈란젤로는 예술가이면서도 피렌체 장사꾼처럼, 자기 스스로는 검소하게 살았지만 은행과 부동산 투자로 대단한 부를 가진 이로,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했던 이로 묘사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예술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매우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그려질 뿐이다.

예술(조각)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뜨거운 열정과 끊임없는 번뇌와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다른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자의 독특한 관점이 반영되었다거나 미켈란젤로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얻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이 책의 장점으로는 예술가 미켈란젤로보다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고수하면서 절도 있고 절제된 삶, 그러면서도 자신과 가족의 경제적인 기반까지도 걱정했던 미켈란젤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을 옮겨놓는다.

“나의 예술이 나의 여자다.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것이 나를 평생 동안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자식들은 내가 남기는 작품들이다. 비록 그들이 별로 신통치 않을지라도, 한동안 그것들은 살아갈 것이다. 로렌초 디 바르톨루치오 기베르티(Lorenzo Ghiberti)가 산조바니의 문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가련했을까! 자손들이 그가 물려준 모든 것을 팔아치우거나 쇠락하도록 방치해두었지만 그 문들만은 아직 거기 남아있다.”

미켈란젤로가 독신으로 살았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독신으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종종 동성애자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가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는 언제나 예술 창작에만 몰두해 있었고 그것으로 고통스러워했다. 그에게 이성과의 사랑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 연애시를 적기도 하였으며, 후일 한 여성과의 우정을 쌓기도 하였지만, 그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예술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결혼한 여성들보다 훨씬 더 신선하게 자신을 유지한다는 것을 자네는 모르는가? 더구나 음란한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해본 적이 없는 동정녀라면 말할 것도 없지. 음란한 생각은 그 육체를 왜곡시킬 수 있었을 것이네. 그렇지, 나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자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네. 만약 이러한 신선함과 젊음이, 이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신체에서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신의 힘에 의해서 유지된다면, 그것은 성모의 동정과 영원한 순결을 세상에 증언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일세.
반면에 그녀의 아들, 예수에게는 이런 것이 불필요했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드러나야 할 것은 신의 아들이 실제로도 그러했듯이 정말로 인간의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네. 그가 보통 사람이 굴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죄업에 대해서조차도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연약했으므로, 신성(神性)은 예수 속의 인간성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환과 질서를 인간적인 것에 맡겨야 했네. 그 때문에 예수가 그가 가졌던 바로 그 나이를 그대로 보여주었던 것이네. 그러므로 나로서는 성스런 동정녀이자 신의 어머니를 그 아들과 비교할 때 나이보다 훨씬 젊게 만들고, 아들이 자기 나이에 맞도록 만든 것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네.”

젊은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너무 젊은 동정녀 마리아와 자신의 어머니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예수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그리고 위 인용문은 이 의문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설명이다.

나는 죄를 살고 나는 죽음을 살아,
더 이상 삶으로 살지 않고, 오직 해악으로만 사노라.
하늘은 선(善)을, 그 은총을 내어놓는데,
나는 악을 취하네. 탐욕은 나의 빵이 되었고,
자유는 나의 하녀가, 덧없음은 나의 신이 되었네.
저주받은 나! 격정의 오솔길에서
이제 나는 어떤 인생 속으로 흘러들었는가!

우울한 미켈란젤로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대부분의 책에서 언급되는 주제이다. 음침하고 음울하며 사람들과의 교제보다는 혼자 있기를 즐기며, 화를 잘 내고 자기중심적인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의 전기에서는 이러한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코흐의 생각이다. 하지만 예술에 몰입했을 때의 미켈란젤로는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위의 시구처럼. 그러나 그러한 성격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치명적인 지장을 준 것은 아니었다.
 

미켈란젤로 - 10점
하인리히 코흐 지음, 안규철 옮김/한길사
- 절판이라니.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성 미켈란젤로 - 10점
제임스 H. 벡 지음, 박혜수 옮김/이룸
-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힌다. 또한 예술가로서의 미켈란젤로와 일상인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균형있게 담아내고 있다.

르네상스 - 10점
폴 존슨 지음, 한은경 옮김/을유문화사
- 르네상스 예술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 이 책은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당시 미켈란젤로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를 알기에도 충분하다(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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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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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e of Eirene (personification of peace), ca. 14–68 A.D.; Julio-Claudian
Roman copy of a Greek bronze statue by Kephisodotos, ca. 375/374–360/359 B.C.
Marble; H. without plinth 69 3/4 in. (177.17 cm)
Rogers Fund, 1906 (06.311)


그리스 후기 고전주의 시대(4세기 중후반무렵)의 조각상이다. 하지만 실제 그 때 제작된 것은 아니고 로마 시대 때 복제된 것이라고 한다. 남아있는 그리스 시대 조각들의 대부분은 로마 시대 때에 복제된 것이다. 빙켈만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로마 시대에 초상 조각 이 외에 이렇다할 뛰어난 걸작이 나오지 않은 이유도 그리스 고전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복제만 해도 충분한 명성과 보상을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양식이 굳이 만들 만한 혁명적인 사상이나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일어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중세의 시작이었다.  

여하튼 우리는 옷 주름 처리에서 얼마나 세련되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좀더 가벼워보이고 동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경박스러움까지 풍기게 된다면 그 양식은 헬레니즘 양식이 된다. 고전적 양식은 그 양식 속에서 고결함을 잃어버리는 법이 없다. 하지만 낭만적 양식에서는 그 고결함을 잃어버린다. 진솔하다는 단어는 고전적 양식에 어울리기 보다는 낭만적 양식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그리고 이 진솔함이 도를 지나쳐버리면 추해지고 참혹해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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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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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시텔레스, <<헤르메스>> (기원전 4세기 경)

 

 

 

그리스의 남겨진 유적들을 보면 사람, 특히 벗은 육체를 표현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 그리스 고전주의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지도 서술의 힘이 퇴색되지 않고 있는 요한 요하임 빈켈만의 설명을 들어보세요. 그러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아마 우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인의 육체와 비교해보면 아마도 이피클레스가 그의 이복형 헤라클레스를 닮은 것만큼도 닮지 않았을 것이다. 온화하고 청명한 기후는 그리스인의 최초의 인간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유년 시절부터 행하는 육체적 단련이 형성에 기품 있는 형태를 가져다 주었다. 여기에 젊은 스파르타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영웅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갓난아이 때문부터 번도 강보에 싸인 적이 없었고 7 때부터는 땅바닥에 잠을 잤고 투기(鬪技) 수영으로 어린 시절부터 육체를 단련시켰다. 스파르타 청소년을 오늘날 우리 시대의 나약하고 나태한 청소년과 비교해 보라. 그리고 예술가가 젊은 테세우스나 아킬레우스 심지어 디오니소스의 모델로서 앞의 사람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를 생각해보라. 어느 그리스 화가가 테세우스를 두고 가지 상이한 자태를 특징적으로 묘사한 있는데, 그와 같은 의미에 따르면 후자의 경우에는 호사스럽고 나약하게 장미처럼 키워진 테세우스가, 전자의 경우에는 육체로 단련된 테세우스가 표현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 청소년들에게 ()경기는 육체를 단련시키는 강력한 자극원이었다. 가령 올림피아 제전은 경기가 열리는 바로 지역인 엘리스에서 10개월의 연습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최고상은 성인만 차지한 것이 아니라 핀다로스의 송가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이따금 청소년들의 몫이 되기도 했다. ‘신과 같은 디아고라스 닮는 , 이것이 모든 청소년의 최고의 소망이었다.

사슴을 추월하는 날쌘 발을 가진 인디언을 보라. 얼마나 원기왕성하고 신경과 근육은 얼마나 유연하고 민첩하며, 몸매가 얼마나 날렵한지를 보라. 호메로스는 이와 같이 신들을 묘사하였는데, 특히 아킬레우스를 날쌘 발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의 육체는 체조를 통해서, 그리스 거장들의 조상에서 있듯이 애매모호한 것도 군더더기도 없는 당당하고 남성적인 윤곽을 얻었던 것이다. 스파르타의 청소년은 열흘에 번씩 행정 감독관 앞에서 나체로 검사를 받았다. 그때 조금이라도 군살이 붙을 징후가 보이면 감독관은 한층 엄격한 절식(節食) 명령했다. 조금이라도 군살이 붙어서는 된다는 것이 피타고라스 계율의 하나였던 것이다. 오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