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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고전주의 +22


미술사 책을 읽기는 하나, 그건 일 년에 한 권 될까 말까이다. 한때 책을 내기도 했고 강의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십 수년 전 일이고, 마지막 잡지 기고를 한 것도 꽤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우연히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요즘 아내의 일로 커뮤니티 자치 활동을 잠시 도와주고 있는데, 그 곳에 계신 분의 제안으로 한 차례 강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래는 간단한 강의 개요다. 막상 적기는 쉽게 적었으나, ... 도판 찾는 게 일일 듯 싶다. 요즘은 워낙 온라인 아카이브가 잘 되어 있어 쉽게 도판을 찾을 수 있으나, 정확하고 적절한 도판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지라, 꽤 시간이 걸릴 듯 싶다. 동네에서의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 공개적인 장소, 가령 북까페 같은 곳에서 한 번 더 하면 좋을 것같기도 하다. 이런 강의도 자주 해야 까먹지 않는데, ... 머리가 굳어져서 큰 일이다. 


*** 

 

미술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현대미술감상법 


우리의 마음과 예술의 경향 

‘예술은 없고 예술가만 있을 뿐이다’라고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의 첫 문장으로 적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 뒤에 놓여진 예술가의 삶과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때의 예술작품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중세 말의 고딕 성당을 알기 위해선 그 당시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13세기의 유럽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바라볼 때 비로소 예술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가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현대의 어떤 사람은 조용히 교회당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아침저녁으로 묵상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교회당 대신 거리로 나가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 성당의 차이는 이와 비슷합니다. 신의 존재와 신앙의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각기 다른 마음과 태도도 그 시대의, 그 나라의 예술작품을 만듭니다. 





생-드니 성당. (1135 - 1144)



매너리즘과 현대 

예술사에서 매너리즘(마니에리즘)은 16세기 중후반의 지배적인 양식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퇴보로 이해되었던 탓에, 이 양식의 명칭은 경멸적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시대의 예술은 가장 현대적인 예술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예술 양식이 어떻게 경멸당하고 다시 받아들여지게 되는가 흥미로운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 당시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게 됩니다.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예술은 크게 고전주의(고전적 예술)과 낭만주의(낭만적 예술)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식에서의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시대와 예술가들, 그들의 작품에 대해 이해하며 현대 미술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도 함께 탐구합니다. 


라파엘로, <초원의 성모>, 1505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 

서로 대립되는 양식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대립되는 양식이 아니라 우리가 외부 세계와 마주할 때 취하게 되는 양식적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가 함께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 자연주의 작품과 기하학주의 작품을 함께 비교해가며 예술가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이해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봅니다. 


이집트, <사자의 서> 일부, BC.1275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으로 보는 현대미술과 우리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은 현대 미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 미술 작품 안에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살피고, 현대 미술 작품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론 뮤익, <침대에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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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th of Young Bara, Joseph Bara or The Death of Bara is an incomplete 1794 painting by the French artist Jacques-Louis David, now in the musee Calvet.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he_Death_of_Young_Bara




1793년 12월 7일 대서양 연안의 Vendee에서 왕당파 당원들에 의해 살해당한 13살의 소년 'Bara'. 


고전주의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서정적이며 슬프고 애처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어쩌면 자끄 루이 다비드만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일 지도. 신고전주의는 의도된 고전주의다. 자끄 루이 다비드는 '혁명 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작품을 그렸으며 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혁명의 적들인 '왕당파'들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을 가지게 만들게 한다. 정치적 예술의 대가로서의 다비드는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이러한 작품을 그린 것이다. 


어린 소년 바라는, 죽은 후 영웅이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의 순교자로 여겨졌다.  작품 속 Bara는 모래 해변에 알몸으로 쓰러져 있다.  Vendee이라는 곳이 해변 지방으로, 해변에 쓰러져 있는 것으로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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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night, Death and Devil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Albrecht Dürer 알브레히트 뒤러 

1513, Copperplate 동판화

 

 

기사 옆으로 죽음과 악마가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한다. 이 명료한 동판화는 르네상스 시기의 신념을 보여준다고 할까. 인간이 가는 길을 과거의 유물들 - 죽음, 악마 - 이 훼방 놓으며 가지 못하게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종종 후기 고딕적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 만큼은 근대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기사는 도상학적으로 진리를 수호하는 자로 해석된다. 과거 종교인이 가졌던 역할을 이제 기사가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극적인 변화는 르네상스 시기를 문예부흥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시기가 아니라, 급속하게 변화하는 혼돈기였음을 짐작케한다. 결국 고딕적 신앙이 뒤로 물러나고 기하학적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본격적으로 서구의 근대(modern)이 시작되고, 그 이후 거친 풍랑 속에서도 이성을 버리지 않는다. 


거의 1세기 후에야 철학에서 근대적 이성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예술에서의 이러한 선취(先取)는 놀랍기만 하다. 이는 예술의 역사를 통해 자주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예술사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대 예술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앞으로 펼쳐질 세계를 짐작하고 예견할 수 있다. 


까뮈의 <이방인>이 나왔을 때, 그 충격은 대단했다. 심지어 프랑스에선 이 소설을 도덕 교과서로 읽히곤 한다. 이유없는 살인은 용서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유없는 살인을 너무 자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 까뮈도 자신의 '뫼르소'가 그토록 많이, 현실 속에 등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만. 


양식(style) 상, 뒤러의 모든 작품들이 근대적이진 않다. 그는 양식적으로는 후기 고딕과 하이 르네상스(르네상스 고전주의)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그가 외부 세계와 마주했던 태도는 르네상스 시기 그 어느 예술가들보다도 근대적이고 이성적이었다. 뒤러가 끊임없이 연구되며 후대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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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을 보기 시작한 뒤 한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지닌 일반적 인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일반적 인상이란 색조와 부분,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좌우된다. 일반적 인상이 주는 충격은 즉각적이다. (...) 그러므로 최초의 충격 다음에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세부를 살펴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8쪽 




하지만 즐기기 위해 배운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낯선 건, 그만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탓일 게다. 의외로 미술에 대한 책은 잘 읽히지 않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갤러리가 많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방문은 뜸하고, 전시를 열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으니, 작품 가격은 비싸진다. 거기다 위작 논란까지. 그만큼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그리고 현대 미술이든 고전 미술이든 다 어렵다고 여긴다. 심지어 현대 미술은 '난해한'이라는 수식어가 그냥 자연스럽게 붙어다닌다.


실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서구에선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선 대학생들도 어렵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의 책 읽기 수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밖에.


이런 면에서 이 책도 어려울 지 모르겠다. 하지만 케네스 클라크는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것의 의미를 새삼 물으며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알아두어야만 할 예술가들과 대표작품을 다룬다. 초심자에겐 그림 보는 재미를, 이미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이해를 갖진 사람들에겐 케네스 클라크만이 알려줄 수 있는 통찰이 흥미로울 것이다. 


책에선 더 많은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는 3명의 작가들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의 생각을 옮겨본다. 



엘 그레코El Greco 



16세기 후반 최고의 작가는 단연코 엘 그레코다. 하지만 그는 수 백년 동안 잊혀져 있던 작가였다. 근대 시대의 매너리즘(마니에리스모) 양식에 대한 경멸은 16세기 후반 작가들의 무시와 천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 초 엘 그레코는 극적으로 부활한다. 


그럼에도 엘 그레코를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간주했던 1920년대의 비평가들은 옳았다. 첫번째는 엘 그레코가 비사실적인 두 양식, 곧 비잔틴과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거치며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사고 방식을 타고난 덕분에 고전주의적 전통의 주된 전제를 거부한 최초의 유럽화가였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는 화면의 깊이보다 표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151쪽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The Disrobing of Christ)

Oil on canvas, Height: 285 cm (112.2 in). Width: 173 cm (68.1 in). 

1577 ~ 1579, 톨레도 대성당 



표면을 중시했다는 표현과 함께 엘 그레코가 "미켈란젤로는 훌륭하지만 그림 그리는 법을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건 참 흥미롭다. 깊이 대신 표면을 중시할 때, 고전적 원근법적 세계는 흔들린다. 중심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균등해진다. 확고한 질서 대신 흔들리는 마음이 전면에 부상한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성상화들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엘 그레코는 알고 있었다.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제르생의 간판(The Shop Sign of Gersaint)

Oil on canvas, 163 cm × 308 cm (64 in × 121 in)

1720-1, Charlottenburg Palace, Berlin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27Enseigne_de_Gersaint 



신고전주의가 자크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만든 양식이라고 한다면, 회화에서의 로코코 양식은 장 앙트완 와토의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와토의 이미저리는 그가 처음으로 전시했던 그림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향후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심지어 와토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에 태어난 후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 - 1806)는 여전히 와토의 정원, 말하자면 그의 이미저리를 활용했다. - 127쪽 



와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절반은 포기하고, 절반은 포기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노는 것같다고 할까. 그 애상은 로코코 시대 전반을 물들였다. 한 시대(토지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부르조아지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계몽주의와 로코코는 같은 시대의 양식이다. '제르생의 간판'은 와토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위키피디아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작품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Eugène Delacroix, The Entry of the Crusaders into Constantinople 

oil on canvas, 81 × 99 cm (31.9 × 39 in)

루브르 박물관 

이미지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Entr%C3%A9e_des_Crois%C3%A9s_%C3%A0_Constantinople 




오히려 그는 예술은 상상력을 비추어 사건을 재창조하므로 시의 특질을 띤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들라크루아는 아마도 매우 많은 이류화가들을 미혹했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BC 65 ~ BC 8)의 조언, '시 같은 그림 ut pictura poesis'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마지막 유럽 화가였을 것이다. - 93쪽 



H.W. 잰슨(서양미술사가)이었던가, 낭만적 고전주의와 고전적 낭만주의라고. 다비드가 낭만적이고 들라크루아가 고전적이라고. 어쩌면 케네스 클라크의 견해에 힘입어,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마지막 고전주의자일 지도 모르겠다. 낭만주의였으나, 그의 마음은 확고하게 고전적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였으며, 의미를 담아냈다. 그런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위대한 예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그 이후 나온 아카데미 화가들,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이들은 무식하게(성실하게) 그림만 그린 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몰랐으며, 그 변화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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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페리온의 노래 

J. Ch. F. 횔덜린(지음), 송용구(옮김), 고려대 출판부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삶이란, 제가 확신하건대 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시는 낯설지 않으며, 앞으로 우리가 보겠지만 구석에 숨어있습니다. 시는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튀어나올 것입니다." 

- 보르헤스, <시라는 수수께기> 중에서(<<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11쪽) 



시는 아무래도 원문 그대로 읽어야 제 맛이다. 번역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동일한 단어라고 언어마다 그 어감이나 뉘앙스, 풍기는 멋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글로 옮겨서 밋밋한 시라도 원문으로 읽으면 풍성한 느낌을 주는 시일 수 있다. 몇 해 동안 영시를 읽으면서 배운 바라고 할까. 


횔덜린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으나, 그의 시를 제대로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백 여년 전 독일 튀빙겐, 헤겔과 셀링이 있었고, 루소의 사상과 나폴레옹의 혁명 공화정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신고전주의자들과 낭만주의자들이 뒤섞여, 서서히 싹트던 민족주의적 이상을 노래하던 그 때, 그 당시 가장 위대한 시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모든 이들이 프리드리히 횔덜린이라고 말할 것임에 분명하다. 


만약 내가 독일인이라면, 그의 <독일인의 노래Gesang des Deutschen>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호소력 짙은 시가 될 것이다. 지금도 그러한데, 그 당시에는 어땠으랴. 하지만 한글로 읽는 이 시집은 횔덜린을 앍고 그 시절의 분위기, 그리고 강렬한 이상과 염원으로, 그리스 고전주의적 미학을 성취하고자 할 때의 시학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겠지만, 시 특유의 감미로움이나 위안, 서정적인 표현이나 비유를 즐기기에는 너무 관념적이라고 할까. 


그래도 시 읽기란, 잠시 내 몸과 마음을 놓고 쉬어갈 수 있는 휴식일 것이다. 


이 시집만 읽는 건 재미있을 듯하지 않고 그 당시 독일의 분위기라든가, 독일 문학 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더 흥미로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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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비즘에 대한 세잔의 영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바가 없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세잔의 영향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큐비즘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현대 미술가들은 세잔의 후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아마 내가 현대 미술에 대한 긴 글을 쓴다면, 뒤샹과 세잔만으로 글의 초반을 장식할 것이다. 뒤샹은 현대 미술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라면, 세잔은 현대 미술을 견고하게 만든 이다. 과거와 단절하고 현대 미술이 끊임없는 혁신을 감행하게 된 계기는 뒤샹이고, 현대 미술이 과거의 역사와 단절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현대 미술 또한 서양 미술사의 한 챕터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키에 한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세잔이 될 것이다. 


그는 현대 문화의 내향성을 최초로 들어내 보이며, 우리 마음 속의 기하학에 주목했다. 고전적 현대, 혹은 모더니즘을 새로운 고전주의라고 불리게 만든 예술가이다. 그리스 고전주의,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외부에 존재하는 기하학을 찾았다면, 세잔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기하학적임을 드러냈다. 


큐비즘은 세잔의 직접적 영향 속에서 기하학주의를 전면에 드러낸다. 세잔 이후 모더니즘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기하학주의로 예술을 지배한다. 아마 연구자들은 프랑스의 누보 로망이라든가, 전후 실존주의 문학이라 이후의 문학들 속에서도 기하학주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래 피카소와 세잔의 작품을 한 번 비교해보라. 얼마나 닮아 있는지. 

(나에게 여유가 된다면, 이와 비슷한 음악과 문학 작품을 찾아 나열해볼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럴 여유가 없구나.) 



Pablo Picasso, Bread and dish with fruits on the table, 1909, oil on canvas, 164 x 132.5cm, Kunstmuseum, Basel 





Paul Cezanne, Still Life, oil on canvas, 60*73cm,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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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 E. 흄(Hulme) 지음, 박상규 옮김, 현대미학사 





위대한 화가란 모든 사람들의 비젼이 되었고, 

또 장차 비젼이 될 어떤 사물의 비젼을 처음으로 가졌던 사람들이다. 

- 133쪽 


 


토마스 어네스트 흄(Thomas Ernest Hulme, 1883 - 1917)이라는 영국의 예술 비평가가 쓴 <<Speculation>>을 번역한 이 책은 다소 의외의 번역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1980년대 초반 박상규 교수(홍익대)가 번역한 문고판 책을 현대미학사에서 관심을 가져 새로 낸 듯하지만,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책은 아니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면 꺼내보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2000년대 초반에 구입하였으니,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간 읽지 않고 서가에 꽂아두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비평가의 문장이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예술론을 이야기하는 흄의 문장은 사색적이면서도 모호하기만 했다. 꼼꼼한 독서가 필요하지만, 그렇게 하여 얻는 건 이미 다 논의되었던 내용들이거나,  흄이 기대고 인용하는 저자들의 책을 직접 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분명 1900년대 초반에는 최신의 시각이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장점이 있다면, 보링거(Wilhelm Worringer)과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예술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추상과 감정이입>>이라는 저서로 미술사의 해석에 탁월한 관점을 제시한 보링거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흄은 이 책 전반에서 보링거의 태도 -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예술과 자연주의적이고 감정이입적인 예술의 대비 - 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더욱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베르그송의 충실한 번역자였으며, 베르그송의 추천을 받기도 한 흄은 이 책에서 베르그송 철학에 대한 탁월한 요약을 제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예술론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보링거의 이론에 기대어 흄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예술에는,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종류가 있다. 첫째로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예술, 즉 희랍의 예술과 르네상스 이래의 근대 예술이 있다. 이러한 예술에 있어서는 선은 부드럽고 생명력이 있다. 그리고 이집트와 인도와 비잔티움의 예술과 같은 예술이 또 하나 있다. 이러한 예술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각을 형성한 경향이 있고, 곡선은 날카롭고 기하학적으로 되어 있고, 그리고 예컨대, 인체의 표현은 때로는 아주 비생명적이고 비틀어져서 여러 종류의 딱딱한 선과 입체적인 형태에 알맞게 되어 있다. (79쪽) 



그들은 실존의 여러 가지 혼란과 변덕에도 불구하고 보링거가 말한느 일종의 정신적 '공간 기피'에 좌우되어 있다. 예술에 있어서는 이러한 정신상태는 어떤 추상적인 기하학적 형태를 창조하려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는 인내력이 강하고 영속성이 있으므로 외부 자연의 유동성과 비영속성의 비난처가 될 것이다. (82쪽) 



세잔, <목욕하는 여자들>, 208 × 249 cm, 1906 (출처: 위키피디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세잔느의 최근의 그림의 하나인 <목욕하는 여자들>을 보라. 이 그림에서는 모든 선이 피라미드형으로 나란히 그려져 있고, 여자들은 이 모양에 알맞게 그려져 있다. 만일 하나의 그림에서 만족할 율동적인 구도를 항상 찾아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피라미드형의 구도에는 매력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싫증을 느낄 것이다. 그 형태가 아주 강렬하게 강조되어 있고, 기하학적인 특색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 그림은 '생명적인' 예술의 영역으로부터 추상적인 예술의 영역에로 끌어올려진 것이 된다. 그 형태는 르네상스의 예술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라벤나에 있는 (테오도라 황후) 비잔티움의 모자이크에서 보는 구도에 훨씬 더 흡사하다. (94쪽)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화 - 테오도라 황후와 시녀들.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베르그송의 철학과 예술론에 대한 논문들도 책에 실려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 


지성은 모든 물체란 완전히 분석되어서 개개로 분리될 수 있는 요소로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 그래서 지성은 결과로서 모든 변화를 이러한 분자의 단순한 위치의 변화에 귀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지성은 변화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변화를 설명한다. (168쪽) 



즉 그것들은 진정한 시간 속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모든 것은 '주어져' 있다. 진정한 창조는 없다. 그는, 생명의 모든 형태의 특징은 생명의 모든 형태가 뚜렷하게 지속성 속에 존재하여 있고, '시간'이 그것에 대하여 차이를 일으키게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그것을 '깨물고', 그리고 이빨의 흔적을 거기에 남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늙어간다. 그런데 물질은 결코 늙어 가지 않는다. 물질은 항상 '불변하는' 것이고, 항상 '동일한' 것이다. (178쪽) 



보링거와 베르그송의 예술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그 소개 정도로 읽을 만하다. 다만 깊이 있는 연구 논문이라기 보다는 스케치에 가깝기 때문에 연구자들이라면,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맨 뒤에 실린 <잿더미>라는 글은 단상을 엮어놓은 짧은 노트이나, 두고 읽을만큼 좋다.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E.흡저 | 현대미학사 | 2002.09.14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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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의 소생'(The Raising of Lazarus)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Selbastiano del Piombo, 1485 - 1547)

Oil on canvas, 1517-1519

381cm * 299cm, National Gallery, London




시기적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매너리즘에 속하는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는 그의 고향 베네치아의 색채와 그가 화가로의 삶을 살았던 로마의 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나사로의 소생'은 저명한 미술사가인 케네스 클라크로 하여금 '로마적인 형태와 베니치아적인 색채의 조합을 보면, 피옴보가 17세기 고전적 풍경의 진정한 창시자였음을 알 수 있다'는 언급을 하게 하였다. 특히 인물들 뒤로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니콜라스 푸생의 바로크적 풍경을 보는 듯하다. 


후일 친구가 되는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이 이 작품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아래가 바로 그 드로잉이다. 부활한 나자로와 그를 부축하는 이들을 그린 작품이다. 



Lazarus and attendant

Michelangelo, 1516 



나자로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치유들과 달리 이미 죽어 육체가 부패하기 시작하는, 죽은 후 나흘이 되던 때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작품화되었고 쉽게 작품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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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고전주의



플라톤이 인간 존재를 완전한 세계(존재의 세계)에서 불완전한 세계(생성의 세계)로 추방된 존재라고 말했을 때, 그 속에는 존재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와 생성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하는 플라톤 철학의 의도가 담겨져 있으며 동시에 불완전한 세계에서 완전한 세계로 향해 가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고전주의의 절정기가 막 끝나가는 무렵을 살았던 플라톤 철학은 종종 그리스 고전주의의 철학적 반영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것은 그가 이데아를 상정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그보다 ‘완전으로부터 불완전이 나왔으며 이 불완전은 영원히 완전을 향하여 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플라톤 철학이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에서 기인된 것이다. 


플라톤 철학이 그러했듯이 그리스 고전주의 양식은 완전함을 향해간 양식이었다. 즉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여, 완전하지 못한 어떤 대상을 영원히 정지해있으며 완전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양식인 셈이다. 그리고 뮈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은 이러한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뮈론, ‘원반 던지는 사람’ 

 



후기 고전주의 



기원전 431년 그리스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죽은 아테네 시민을 기리며 아크로폴리스에 모인 아테네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도시가 평범하기만 한 도시는 결코 아닙니다. 어떠한 다른 도시도 우리만큼 많은 정신적 즐거움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일년 내내 경기와 제사가 있고 우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또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공공 건물이 나날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 … 우리는 지나침이 없이 미를 사랑하고 비굴함이 없이 지혜를 사랑합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부는 단지 허영을 위한 재료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성취를 위한 한 기회입니다. 우리는 가난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을 진정한 불명예로 여길 따름입니다. … … 단적으로 말씀드려서 우리들의 도시는 하나의 전체로서 그리스에 대한 한 본보기입니다. 모든 구성원의 평등, 정신적 독립성, 다방면의 업적, 육체와 두뇌의 완전한 자립 등올 인해서 우리들의 도시가 산 교육의 장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리스 고전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아테네와 그 주변에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현대와 비교할 것은 못 되지만, 기원후 1600년 경의 아테네가 폐허더미 속에 오두막 몇 채들이 있었던 것에 비한다면, 이 당시 그리스 아테네가 누렸던 물질적 풍요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물질적 풍요가 예술적 만족이나 성취를 가지고 오는가 이다. 예술사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게 되는 이 문제에 대한 정해진 답은 없다. 즉 물질적 풍요와 예술적 성취와의 정해진 상관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각 시대마다 어떤 측면에서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지만 때로 전적으로 다른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당시, 기원전 5세기와 4세기 경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는 물질적 풍요가 문화예술적 성취와 학문의 융성을 동시에 수반하였음을 분명한 사실이었다. 저 페리클레스의 연설 속에서 우리는 당시 그리스의 언어가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었음을, 그리고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에 대해서까지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오랜 전쟁 속에서 한때 지중해를 호령했던 자신감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며 리십포스와 프락시텔레스의 양식도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대체로 딱딱한 느낌을 주던 폴리크레이토스의 조각상에서 리십포스와 프락시스텔레스의 부드럽고 상대적으로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조각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즉 개인과 사회(국가)의 균형과 조화가 무너지면서 개인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예술 작품들은 어떤 이상이나 당위로서의 세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느낌이나 취향을 반영하기 시작하며, 극단적으로는 사사로운 장식으로까지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 고전주의가 개인주의의 발달에 일정 부분 기반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개인주의는 그 고전주의가 뒤로 후퇴하게 하는 기반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 철학과 서사양식에서는 냉소주의가 물들기 시작한다)




리시포스의 조각



프락시텔레스의 조각, ‘헤르메스’




헬레니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패권을 쥐게 되지만, 스파르타에게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끌고 갈 힘이 없었다. 이 때부터 지중해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지중해의 패권을 쟁탈하기 위한 몇 세기의 혼란기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헬레니즘이라는, 후대 학자들에 의해 쇠퇴기의 양식이며 바람직하지 못하고 천박한 양식으로 평가 받았던 예술 양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어떤 남자의 머리’, 델로스에서 출토, 기원전 80년경, 청동, 기원전 80년경, 높이 32.4 cm, 국립 고고학 박물관, 아테네



‘죽어가는 병사’



이제 세계는 분열되기 시작한다. 하나의, 정치경제적이며 학문적, 정신적 중심은 사라졌으며 사람들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새로운 것들 뿐이다. 이미 위대한 과거는 사라졌고 눈 앞에 보이는 건 혼란스러운 모습들 뿐이다. 걸핏하면 전쟁이 나고 어제까지 만났던 이가 전투에서 죽어버리는 시절이 온 것이다.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지탱하기도 힘든 시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다양한 민족들이 뒤섞이게 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시작한다. 


헬레니즘 양식은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이면서 동시에 극단화된 자연주의적 경향을 띄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나의 체계가 무너졌지만, 그 체계의 유산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체계의 유산 속에서 이질적인 것들은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적 세계 속에서 용납되지 못했던 그 어떤 것들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의 그리스 문화 속으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경우에는, 어떤 원리에 의한, 그리고 그것으로 수렴 가능한 자연주의적 양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눈 보이는 대로 나타낼 수 밖에 없는 자연주의적 양식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헬레니즘 조각들은 표현적이고 동적이며 애절하고 자극적이며 흥분을 자아내게 된다. 




라오콘 군상 




‘사모트라케의 니케’, 기원전 200년경, 대리석, 높이 244 cm, 루브르 박물관




하지만 사람들은 위대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우리가 예술 작품에 ‘실험적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예술가가 새로운 현상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양식적인 변화나 전적으로 다른 표현을 하는 경우이다. 그런 점에서 헬레니즘 예술가들은 실험적이었으며, 그 시도는 라오콘 군상이나 니케 상에는 성공적이었다. 


변해가는 것, 움직이는 것을 어떤 고전적 원리를 통해, 바람직한 어떤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처절하지만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감의 소산이 아니라 자신감을 잃어가는 와중에 그 자신감을 되찾기 위한, 하지만 끝내 그것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의 산물이었다. (* 바로크 양식과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를 향해가고 있었던 양식이었다.)



로마의 예술


기원전 700년경의 에트루리아 문명으로부터 로마는 시작된다. 기원전 50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석상에서는 당시 그리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표현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원전 1세기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통일하였을 때에는 이러한 에트루리아 문명보다는 헬레니즘 문명에 속해있었다. 


헬레니즘 양식이 소아시아와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하였다면 이제 로마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여 북유럽, 북아프리카까지 포함하는 제국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로마의 예술 양식에는 ‘~주의’ 같은 단어가 붙지 못하게 된다. 즉 로마는 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가 아니라 여러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민족들과 지역들로 이루어진 제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단일한 양식이 지배했다고 보기에는 어렵게 되었으며 또한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몇몇 특징적인 양식들이 나타나지만 그리스 고전주의나 헬레니즘 시대와 비교해서 그 예술성이나 감동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들은 그리스나 헬레니즘 시대에 가지고 있었던 예술만의 자율성을 상실하였고 감동보다는 즐거움이나 유희의 대상이거나 또는 국가나 가문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공공 미술적 양식으로 전락해버렸다. 초상조각의 무덤덤한 표정은 지도자의 권위, 가부장의 권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의 건축은 로마 사회가 외양적으로는 얼마나 굳건하고 체계적이었던가를 보여주는 양식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아치들로 이루어진 긴 복도와 계단, 몇 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에서 그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큰 건물이었으며 건축공학적으로도 놀라운 걸작이었다.



콜로세움, 72-82년, 로마



판테온



하지만 콜로세움의 건축공학적 기술은 판테온에서는 또다른 기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판테온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투박하고 무거워 보이는 외양과 달리 내부의 모습은 화려하고 신비적이며 종교적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외부와 내부의 분리는, 어쩌면 로마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기 전까지 로마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범람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들은 대체로 내세적이었고 신비주의적 경향을 띄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플로티누스의 철학 사상은 이러한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로마인들은 국가의 의무에 충실히 복무했고 가문의 전통에 누가 되지 않으려 행동했으며 물질적인 풍요와 로마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풍요와 자부심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이나 전통을 기반으로 할 때에만 빛날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로마는 그렇지 못했다. 그만큼 현실적이었던 것일까. 즉 현실적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개인의 희생을 요구했던 것은 아닐까.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드>는 이러한 로마 건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개인의 열정과 노력, 희생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 개인을 바라보는 연민까지 담겨있다. 한 쪽으로는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나아가는 개인을 닮고자 하는 시선이 있으며 한 쪽으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고통과 희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공적 세계 속에서는 전자를 취했지만 사적 세계 속에서는 후자를 택했다. 이러한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분리는 로마의 사회가 초기 신분 기반의 사회였다가 후기에는 계약 기반 사회로 넘어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과도한 개인주의는 개인중심주의로 나아가며 그리고 아예 공적 세계는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로마의 회화 양식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기원전 20년경, 대리석, 높이 203 cm, 바티칸 박물관(로마)



아라비아인 필리푸스 황제, 244-249년, 대리석, 실물크기, 바티칸 박물관. 




아마 폼페이의 유적이 발굴되지 않았다면 로마 시대의 회화 양식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면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회화 양식은 이전 시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식으로, 또한 로마의 건축이나 초상조각과도 극히 다른 양식으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치밀하게 사실적인 표현으로 만들어진, 그래서 딱딱하고 무덤덤해 보이는 조각상과 달리 회화 양식은 몽환적이며 화사하게 꾸며져 있다. 


이러한 조각 양식과 회화 양식의 단절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바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분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각 양식은 공공적인 성격이 강했다면 회화 양식은 집 안에, 개인의 즐거움과 향락을 위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단절에서 우리는 국가의 이상이나 가치, 혹은 가문의 전통(* 로마 시대에는 전적으로 가문적이며 가부장적인 사회였다)과 개인의 이상과 가치가 분리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분리와 단절은 사회 속에서의 개인을 고립시켰고 공적 영역의 가치와 의무는 사적 영역 속의 개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 무엇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사회는 신분적이고 황제를 중심으로 한 일원화되고 체계적인 것에서 계약적이며 황제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무관한 다른 체계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즉 개인은 공적 사회와 격리되고 공허해지면서 일회적인 재미나 저 세상에나 있을 법한 환상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되는 회화 양식은 이러한 로마 시민들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폼페이 유적의 벽화 1. 




폼페이 유적의 벽화 2. 




폼페이 유적의 벽화 3, 플로라.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북방의 이민족들은 끊임없이 침입해 들어왔으며 로마 사회 내부에서는 동방의 여러 신비스러운 종교들이 급속도로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이 때 기독교는 이러한 종교들 중에서, 로마 황제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위험한 종교였다. 그리고 그만큼 강력하고 혁명적인 종교였다. 공적 영역에서 이탈해가는 로마 시민들은 한 쪽으로는 환상을 쫓으면서 공허를 달래고 있었으며 한 쪽으로는 종교에 대한 심취로 정신이 나가 있었던 셈이다. 





- 위 글은 2004년 초에 쓴 노트입니다. 이 때 서양미술사를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였고, 그 해 말에 작은 서양미술사 책을 공저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내고 난 다음, 미술 관련 책은 거의 팔리지 않고(인문학책보다도 더), 진지한 책은 아예 전공자들조차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ㅡ_ㅡ;; 미술사는 참 흥미롭고도 진지하며 그 어떤 인문학 분야보다도 통찰력을 전해줄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깊이있는 공부를 하기에는 여러모로 힘에 부치긴 하네요.책을내고 난 뒤 미술사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여 노트를 계속 업데이트했는데, 언제 다시 책으로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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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문고판 책을 꺼내 읽는다. 한창 공부를 할 때다. 1990년대 후반, 이 책은 지방의 작은 서점에서 - 지금은 없어졌을 - 구했다. 짧지만, 내용은 탄탄하고 전문적이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에 대해 짧지만, 매우 정확한 언급이 담겨있다.

'오뒷세이아'는 같은 10년이란 긴 세월동안의 표류와 귀국을 41일 속에 압축한다. 사건은 극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진행된다. 호메로스의 말은 유창하면서 단순하고 기교적이면서도 그 기교를 느끼게 하지 않고, 자유로이, 미끄러히, 장대히 흘러간다. 장려한, 인간을 초월한 광휘 속에 절절한 애조를 띠며 말해진다. 어떠한 용사라 할지라도 인간의 아들로서 태어난 자의 힘의 한계와 세상의 덧없음을 알고 있다. 이것이 다만 강하기만 한 영웅을 만들지 않고 강함과 애처로움이 상접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결코 체념이나 미신의 세계가 아니다. 지극히 밝은 것이다. 이윽고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한 인간은 신들의 행운을 얻지 못할지라도 절망에는 빠지지 않는다. 아니, 반대로 그러하기에 노력을 쌓아 영원불멸의 이름을 얻으려 한다. 이것이 그리이스 문학, 아니 그리이스인 전체의 하나의 특징이다. 그들은 인간의 아들인 것의 한계를 뼛 속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중요한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 중에 인간만큼 덧없는 것은 없다. 그리이스 문학에서 되풀이 강조되는 이러한 생각과, 이것을 어떻게 해서든 밀쳐 버리려는 분투와 노력, 거기에 그리이스 인간성의 하나의 유래가 있다.
- 코우즈 하게시루 & 사이토 닌즈이 지음, '그리이스 로마의 고전문학', 이재호 옮김, 43쪽, 탐구당, 1982년



그리스의 고전 문학이 아직도 호소력이 있고 가슴 절절한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가질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질문-우리는 누구이고, 왜 살아가는가?-에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세의 작가들은 여기에서 배워, 인간이기에 자신의 영혼과 생의 고결함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적 비극 상황 속에서 살아내는 어떤 생명력 - 베르그송이 찬탄했던 엘랑 비탈과 같은 - 을 그려내게 된 것이다.

위대한 고전주의는 그리스 문학에서 그려졌던 바의, 그런 인간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조형적 대응물은 '슬픔에 잠긴 아테나(Mourning Athena)'가 될 것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등장했던 아테나. 이 여신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 도시의 운명에 대한 아테나의 숙고를 만나게 된다.




'슬픔에 잠긴 아테나'는 파르테논의 조각에 비하면 거의 소품에 지나지 않으나 완전한 의기소침 상태를 완벽하게 통어된 형식으로써 표현하고 있는 점이라든가, 일체의 무리하고 경련적이고 무절제한 느낌을 말끔히 극복하고 있다는 점, 그 자유롭고 경쾌하면서도 침착하고 의젓한 점 등에서 그리스 고전주의의 예술 이외에서는 이에 비견할 작품이 없을 정도이다. - 아놀드 하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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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포스팅한 글이다.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린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미학이나 미술사를 공부하게 되면, 거의 매시간 듣게 되는 단어이지만,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는 극명한 지적 차이를 드러내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고전주의에 대해서 젊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첫 머리를 떠올리면 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와 자아, 천공의 불빛과 내면의 불꽃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지만, 서로에 대해 결코 낯설어지는 법이 없다.


외부-내부가 동일한 원칙와 질서로 움직이는 것. 새로운 방향의 운동이지만, 그 운동의 귀결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이 세상이 정해진 규칙(수학적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문학과 예술의 기본 원리로 삼고, 자신의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발현되는 것. 그것이 고전주의다.
 
젊은 날의 루카치는 이상적인 고전주의를 꿈꾸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신기루같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상주의는 무너지지 않았고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무언가 이 세상에 기여하고 싶었을 테지만, ... 고전주의 시대란 실제론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저 문학과 예술의 어떤 작품들 속에서만 간절히 구현되는 어떤 것일지도.

1800년, 자끄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그린 초상화이다. 본질적으로 낭만주의 시대였던 18세기, 19세기의 일부를 고전주의 열풍으로 몰고 간 것은 자끄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끄 루이 다비드의 작품들 대부분은 바로크 시대의 고전적 작품들과 비교해 더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낭만적 고전주의'라는 평가를 한다. (들라크루와가 '고전적 낭만주의'라면)

Madame Recamier
Oil on canvas, 244 x 75 cm
Musee du Louvre, Paris


안정적인 구도. 세밀한 표현. 모든 것들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듯한 세트를 연상시킨다. 배경은 무시되며, 오직 인물을 향해서만 집중한다. 모든 것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의 법칙이나 원리가 아니라 한 인물에 의해서 평정되는 어떤 고전적 세계이다. 인물의 표정을 볼수록 삶과 그 삶이 놓인 세계를 능히 자신의 의지대로 펼쳐나갈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세계. 그것이 신고전주의다. 외부 세계를 지배하는 낭만주의는 절대로 내가 있는 이 세계 속으로는 한 발짝도 들어올 수 없다는 신념. 스스로 그 시대의 낭만성을 부정하면서 고전주의를 향하는 양식. 그것이 자끄 루이 다비드의 고전적 양식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고전주의 작품은 자끄 루이 다비드와는 전혀 다른 양식을 취한다. 

RAFFAELLO
The Granduca Madonna
1504, Oil on wood, 84 x 55 cm
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고전주의 작품들은 안정된 구도 속에서 이미 정해진 질서의 편안함, 아늑함을 표현한다. 마치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품 안처럼. 모든 것은 조화롭고 행복해보인다. 세속의 번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한들, 이 세계 속에서는 금세 사라질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앞서 보았던 자끄 루이 다비드의 작품 속에서의 인물을 둘러싼 텅빈 배경은 인물의 고전적 태도를 드러내기 위한 극적 대비의 역할을 하지만, 산드로 라파엘로의 작품에서는 배경은 부차적인 문제다. 실은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감히 성모 마리아라는 존재를 배경과의 대비를 통해 드러내는 그런 불경한 짓은 하지 않았으며, 그럴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원래 세상은 정해져 있는, 원만하고 편안한 고전적 질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다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High Renaissance라고도 불리는 Renaissance Classicism 시기는 정말로 의문스러운 시기다. 이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 국가들로 조각난 상태이며, 교황청의 힘이 무력해진 틈을 타, 작은 도시 국가들이 상업을 기반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나갔던 시기이며, 그 독자적인 도시 국가의 세력이, 북유럽의 절대 왕정 초기 국가들에 의해 공격받게 될 시기의 바로 전이었기 때문이다. 종교 혁명이 시작될 것이고, 이제 기존 종교는 급격하게 그 세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작품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공교롭게도 르네상스 고전주의 시대는 라파엘로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1500년 경부터 그가 죽은 1520년 무렵으로만 국한된다. 그리고 이 때 다 빈치, 미켈란젤로, 티치아노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고전주의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미술사에서는 그 이전 시기는 그냥 초기 르네상스이고 이 이후는 후기 르네상스 또는 매너리즘이라고 부르며,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추켜세운다. 

과연 우리는 산드로 라파엘로가 그렸듯, 저런 심적 태도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앞에 놓여진 모든 문제들은 해결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키면서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삶의 아늑함을 맛볼 수 있을까? 실은 고전주의 시대라면 문제해결의 과정도 아늑한 삶의 일부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고전주의가 우리에게 말하는 저 목소리는 가능한 것일까?

젊은 날의 미켈란젤로는 첫 번째 피에타를 만들고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왜 예수 그리스도보다 그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더 젊게 표현했는가, 마치 젊은 처녀의 모습으로, ... 미켈란제로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신의 세계에 속한 성모 마리아에게 나이가 무슨 소용이냐고. 즉 보이지 않는 질서는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르네상스 고전주의 작품들은 현대의 우리로선 꿈꾸어선 안 될 어떤 신념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언제나 열망하지만, 끝내 가질 수 없는 어떤 신념과 태도를. 그리고 신고전주의의 천재 예술가 자끄 루이 다비드는 그 신념과 태도를 인간의 의지라면 능히 가질 수 있고 그것을 세상에 내 보일 수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고전적 질서를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전주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감동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질서에 대한 염원. 필연적 세계, 꽉찬 세계에 대한 파르메니데스적 열망을 그대로 작품으로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를 가지지 못했던, 다비드가 그렇게 아꼈다는 제자 그로는 낭만주의 양식로밖에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고 신고전주의를 열었던 세대보다 한 세대가 어린 앵그르의 작품들 대부분은 어색하기 짝이 없으며 앵그르가 실권을 잡았던 아카데미에서 인정을 받았던 부게로 같은 화가들은 신념이나 태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저 예쁘기만 한, 그래서 역겨운 작품들만 만들어냈다. 키치 화가라고 이야기할 때 불행하게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게로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성실한 화가였지만, 그 성실함이 현실 세계를 인식함에 대한 태만함을 가려주지 못하는 셈이다.

안트완 장 그로가 그린 나폴레옹이다. 약간 신경질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닮은 것같지 않은가.  아마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의 초상과 비교해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같다.

안트완 장 그로의 Napleon Bonaparte on Arcole Bridge




프랑스 낭만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인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이다. 그로가 그린 작품에서 나폴레옹의 얼굴 부분만 따로 떼서 들라크루아의 쇼팽 옆에 두면, 형제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아래 그림은 부게로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이다. 부게로라든가 제롬과 같은 19세기 아카데미 화가들의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 1층 구석에서 만날 수 있다. 그 거대한 작품들을 보고 이 큰 걸 어떻게 그렸나 하는 의문을 안고 미술관 꼭대기의, 아카데미 화가들의 작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인상주의 작품들을 본다면, 19세기 아카데미 화가들의 작품이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부게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마치 대단한 미술 작품인 양 소개하고 전파하는 이들을 보면, 제발 그런 짓 좀 안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지만, 우리 시대의 순수 미술은 마치 저 딴 세상처럼 여기는 일반 대중에게 그런 짓도 약간의 도움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주저주저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게로의 작품은 고전주의 양식처럼 그렸지만, 고전주의 작품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작품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고전적 신념이나 태도, 흔들리지 않는 고전적 질서를 발견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주의를 가슴으로 느끼기 어려운 것일까. 그래서 부게로나 제롬같은 화가들을 고전주의 화가로 오인하게 되는 것일까. 하긴 잘 알려진 필자들 중에서도 그런 표현을 버젓이 쓰고 있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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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lling Players
1793
Oil on tinplate, 43 x 32 cm
Museo del Prado, Madrid


고야의 작품은 언제나 흥미롭고 격조있지만, 비극적이고 끔찍한 우울과 절망을 가리고 있다. 몇 년 전(2004년 6월), 어딘가에 올렸던 글을 다시 여기에 옮긴다.
 

낭만주의 시대(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최고의 예술가는 "프란시스코 고야"다. 그는 계몽주의가 남긴 혁명의 그림자 속에서 삶의 허무와 거짓된 역사를 뚜렷하게 목격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보통의 낭만주의자들이 이야기하곤 하는 사랑이라든가 환상, 또는 매혹의 도피 따윈 다 허위이거나 기만이고, 도리어 그 세계 속에서조차 우리는 삶의 허무나 죽음,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래서 자끄 루이 다비드와 동시대인이면서 다비드가 계몽주의 신념 속에서 자만과 오만의 성을 쌓았다면 고야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계몽주의 세계가 만들어놓은 거짓, 그리고 우리가 끝내는 굴복하고 말 어떤 허무와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고야의 세계를 느끼게 될 때 그 이후의 모든 낭만주의자들이 시시해지고 19세기 초반의 낭만주의자들을 다시 보게 된다. (2004년 6월)


내가 스페인 마드리드를 가게 된다면, 아마 그것은 프라도 미술관 때문일 것이다. 여튼 이 짤막한 글을 올리고 난 다음, 아는 분의 긴 리플이 이어졌다. 여기에도 옮긴다. 미뇽님께선 어떻게 사시는지 무척 궁금하다. 건강하게 잘 계신지. 


미뇽 (2004/06/28 13:53)

프랑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비하여 서정성이 부각되고 주제에 있어서 다양화되면서 어떤 것도 주제가 될 수 있었지만 대부분 사랑으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자기 목소리로 시를 쓸 수 있었겠죠.
그러나 위고를 비롯해서 역사성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독특하죠.
그래서 서사시에 대하여 높은 가치를 두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미술에서는 계몽주의와 대비가 되어 낭만주의가 상관관계 속에 놓임으로써 그 특징이 비교되는 것이 일반적인가 봐요. 문학에서 낭만주의는 보통 고전주의와의 대비 속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지하련 (
2004/06/28 13:54)

빅토르 위고는 '후기 낭만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진보에 대한 열정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이 때부터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논의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좀더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한 계급갈등. 도시의 급성장과 농촌의 피폐화. 자본주의 시스템 속으로 편입된 예술가의 지위에 대한 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19세기 초의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은 18세기 계몽주의의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는 곧바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특히 칸트에게서 두드러지는데, 칸트의 철학은 계몽주의이며 그의 미학은 낭만주의 미학입니다. 다른 관점으로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예술사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도 마찬가지이구요.


미뇽 (2004/06/29 18:16)

초기 낭만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이라는 말은 개인의 해방과 자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혁명의 이념과 낭만주의의 모토가 같은 뿌리라는 말로 이해되며 그 점은 저도 동감을 해요. 그러나 초기 낭만주의의 경우 이상한 점은 혁명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적어도 프랑스 낭만주의의 경우에는요.
왜냐하면 혁명기의 격동은 도리어 18세기의 낭만주의 예고자인 루소가 대표적으로 보여 준 새로운 감수성의 맥을 끊어 놓았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복고주의가 대두하고 문학의 모든 쟝르에 있어서 옛 형식이 그대로 지배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나폴레옹의 정권은 신 고전주의의 틀 속에 문학을 가두어 두려고 했으니까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새로운 감수성의 작가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차라리 고립적, 예외적 존재들이었다할 수 있었어요. 이들(샤토브리앙, 스탈부인, 콩스탕, 세낭쿠르)을 소위 전기 낭만주의자들로 명명합니다.

지하련님이 위에서 지적하신 대로 고야에게서 초기 낭만주의 자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이들 모두가 18세기 이성이 약속해준 듯이 보였던 새로운 사회는 환상에 불과함을 인지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낭만주의는 크게 보수적, 진보적 낭만주의로 나누어지나, 이들의 고통된 점은 현실에 대한 혐오와 고전주의에 해단 반감으로 합결된다는 점에서 볼때, 외적으로는 대혁명의 연장선으로 이해되지만 내적으로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하련 (
2004/06/29 18:43)

흠. 제 리플에 오해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있군요.
19세기 낭만주의가 프랑스 혁명의 결과물이라고 한 것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 속에서 낭만주의가 생겼다는 뜻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미뇽의 생각과 별 차이가 없는..)

프랑스 혁명의 귀결은 이성주의가 아니라 감정주의였으며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의 등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계몽주의가 내세웠던 이성의 결과라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낭만주의는 반합리주의, 비이성주의라는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의 반발이라고 볼 수 있죠. 즉 혁명 실패에 대한 결과인 셈이죠.

제가 프랑스 대혁명이나 계몽주의를 이야기한 것은 19세기 낭만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두 계기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나 연구자들이 낭만주의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그 당시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혁명의 열기, 그리고 그 혁명이 가져다 준 절망감, 공포, 독재에 대해선 별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 속에 자신의 성을 쌓고 안주하기 시작합니다. 독일의 경우 사태가 좀더 심각하여 독일이라는 나라에는 아예 혁명이 가능하지도 않는 곳이라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의 이러한 고립감은 더욱 심각했으며 이것이 독일 이상주의를 만들게 됩니다.
루소의 경우 18세기, 19세기 초반을 지배했던 인물입니다. 이는 루소라는 인물 자체가 서로 모순되는 점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루소에게서는 이성주의적 성격과 비이성주의적 성격을 동시에 파악해낼 수 있습니다. 전자는 프랑스 혁명으로 연결되지만, 후자의 경우 로코코 양식이나 낭만주의 양식으로 연결됩니다. 미뇽님이 생각하시는 바가 맞습니다.

고야의 경우에는 보통의 낭만주의자들이 도피한 곳을 보여주면서 그 곳마저도 현실의 절망이나 비극, 삶의 허무가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야는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제대로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만큼 현대는 절망적인 인식을 하기 시작하는 시대이니깐요.

***
요즘 포스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실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 집중할 시간이 없다.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다. 꽤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예전에 올렸던 글을 새로 올리면서 사소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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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운동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데아에 공허나 부정적인 것을 덧붙여야 한다. 플라톤의 "비존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는 이런 것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마치 산수의 한 단위에 영이 합쳐지듯이 이데아와 합쳐져서 이데아를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다수화시키는 형이상학적 공허인 것이다. 불변적이고 단일한 이데아는 이에 의하여 무한히 퍼져가는 운동으로 분산된다. 권리상으로는 오직 불변적인 이데아들만이 있어서 상호간에 움직일 수 없이 꽉 들어차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질료가 나타나서 공백을 거기에 덧붙여주고, 동시에 우주적인 생성을 분리해 낸다. 질료는 파악할 수 없는 무가치한 것이면서 이데아들 사이에 잠입하여 마치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스며든 의심처럼 끝없는 동요와 영원한 불안을 자아낸다. 불변의 이데아의 지위를 하락시켜 보자. 그러면 그에 의하여 우리는 사물의 영구적인 변화를 획득하게 된다. 이데아 내지 형상은 의심할 것없이 예지적인 전 실재, 즉 전부 모여 [파르메니데스적] 존재의 이론적 평형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진리의 전부라고 하겠다. 감각적 실재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이 평형점의 양쪽으로 끝없이 일어나는 동요인 것이다.
-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315~316쪽.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서광사, 183쪽)


고전주의자, 혹은 플라톤주의자가 되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낭만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저 하늘의 별빛과 내 마음의 별빛이 일치하던 시대의 아름다움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플라톤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사상을 접하면서 나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마음이라든가, 이상적인 아름다움, 영원한 가치 따위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퇴근길에 베르그송의 저 문단을 읽으면서 약간 울컥했다. 모험으로 가득찬 그리스 시대를 살았던 사상가들은 마음 속으로 모험이지만 모험이 아닌 어떤 세계, 움직이지만 실은 정지해 있는, 그래서 꽉찬 어떤 세계를 염원했고 그것을 남겨놓았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 달기라고 하지만, 플라톤 철학도 알고 보면 파르메니데스와 피타고라스에 나왔고 이 둘의 사상은 고대 이집트의 세계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고대 이집트가 어떤 곳인가. 이 곳에선 죽음은 또다른 탄생이고 영원이며, 운동은 일종의 반복이고 시간을 끊임없이 도는 것이며 직선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란 없다. 세상은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며, 여기에 예외란 없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몇 천 년 후에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지적한다. 그의 철학은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곡선을 그리는 듯 하다. 그의 문장은 대단히 아름답고 비유적이다. 그리고 설득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마 10년 전의 나라면 베르그송을 인정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 이래저래 실패의 흔적들만 얼굴에 남긴 채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베르그송은 아주 슬픈 위안이다. 그는 나에게 정지해있는 모든 것들은 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그것의 신비나 가치,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한다. 하지만 난 아직 그것의 신비나 가치, 아름다움에는 관심없고 플라톤이 잡고자 했던 어떤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실은 나도 그런 것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추구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 옆의 사랑이 변치 않았으면 바랬고 내 언어가 영원하길 염원했으며 변하지 않는 어떤 것, 그것이 이데아이든 형상이든 물자체든, 반드시 있다고 믿었다.  

'영원의 움직이는 이미지인 시간',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언급한 표현이다. 그는 시간마저도 붙잡아버렸던 것이다. 그는 시간을 부정했다. 그러니 시간이 지배하는 이 현실 세계는 도대체 평가할 만한 가치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세계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현실 세계를 한 발짝 벗어나지 못하지 않는가. 칼 포퍼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경향 때문은 아니었을까. 

베르그송이 그간 읽히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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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플라톤 주석 달기라는 애기를 많이들었는데요..
    플라톤의 필레보스를 읽고 있노라면 뭐랄까..
    정제되고 순환되지 않는 이데아라는 개념이
    무한이 반복하고 진화되고 있는 이상의 개념으로 바꼈었는데요...
    전 철학과라 관심이 많네요 ㅋㅋㅋ

    • 화이트 헤드의 표현입니다. 너무 깊이 생각하시지 마시고, 그냥 플라톤 철학이 서양 철학사 내에서 가지는 위상에 대한 표현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울'을 창조적인 사람들의 특징으로 보았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꼴리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맞닿아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우울'은 병든 자의 몫이다. 사회적 질병이 되어버린 '우울증'은 약물 치료와 정기적인 정신과 방문을 요구한다.

요 며칠 우울하다. 내부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외부적인 영향도 크다. 도로 한 복판에서 길을 잃어버린 어린 강아지와 그 강아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강아지 바로 앞에서 멈추는 마을버스며, 소형 트럭이며, 자동차들이 낸 키익키익 소리가 내 귀에서 점점 멀어지는 풍경이며, 6호선 공덕역에서 역 안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로 몸을 던지는 젊은 사내며, 다리 하나가 없는 슈나우저가 인사동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며, ... 나를 어둡게 했다.

하나의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 싸움의 원칙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 싸움에서 이겨, 그 싸움의 규칙을 정해야만 되는 것이다.

플라톤이 이데아 세계와 현실 세계로 나누는 것은 그가 현실에서 희망과 비전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화는 이 세계관 속에서 깊어지고 성숙해지고, 결국 우울해진다. 위대한 고전 희극 작품이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 자신을 추스리고 신념과 각오를 다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고전주의의 위대한 비극 작품이 가지는 힘이고 매혹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힘을 가지는 것은 희곡의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신탁을 끝까지 거부하며 싸웠던 오이디푸스의 신념과 각오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운명(moira)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끝까지 저항하고 지켜내기 때문이다. 

오늘, 종일 바쁘다. 적당하게 우울하고 쿨한 음악은 힘이 되기도 한다.


George Benson, Golden Slumbers/You Never Give Me Your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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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a Vinci
Mona Lisa
1503 - 1505, Oil on cottonwood, 76.8 x 53 cm, Musee du Lou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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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a Vinci
Mona Lisa (De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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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 Munch
Puberty
1895; Oil on canvas, 150 x 110 cm (59 5/8 x 43 1/4 in); Nasjonalgalleriet (National Gallery), Os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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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zio Raffaello
The School of Athens
1509, Fresco, width at the base 770 cm, Stanza della Segnatura, Palazzi Pontifici, Vatican


A.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리고 실제 작품을 보고 놀라워한다. 하지만 이런 가정을 해보자. 미술사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하는 어느 현대인이 난생 처음 <모나리자>나 <아테네학당>을 보았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이 두 작품과 함께 뭉크의 <사춘기>를 보여준다면. 한 번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1. ‘현대인’은 누구인가? 남편과 아이를 회사로, 학교로 보내고 아파트에 홀로 남은 중년의 여성. 또는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가 상사의 눈치를 피해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회사원. 혹은 매번 입사원서에서 떨어지는 20대. 우리에게 ‘현대인’이라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에게 ‘현대’란 과연 어떤 시대인가? 그것은 좋은 시대인가, 나쁜 시대인가?

2. 현대인은 <모나리자>를 보고, <아테네학당>을 보면서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의 이유로 <사춘기>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사춘기>를 싫어할 지도.

3.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이 있다. 대부분의 뛰어난 현(근)대 작품들은 보는 이를 부담스럽고 고통스럽게 한다. 하지만 위대한 고전 작품은 아니다. 그래서 고전 작품을 위대한 것이고 아프게 하는 현(근)대 작품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4. 그렇다면 어느 작품이 우리를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일까? 마음이 흔들리게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감동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B.
‘고전Classic’이라는 단어는 로마 시민 5계급 중 가장 높은 계급을 의미하는 ‘Classis’에서 유래하였다. 이 단어의 형용사형인 ‘Classicus’는 높은 수준의 작가나 그의 작품을 뜻하였으며 이것이 굳혀져 ‘고전Classic’이 되었다. 그리고 13세기, 14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들이 잃어버렸던, 잊고 지냈던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기 시작한다.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단어가 뜻하는 ‘재탄생’은 바로 그리스, 로마의 재탄생을 의미했다. ‘고전’이라는 단어가 요즘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래서 그리스적이거나 로마적인 양식을 그 당시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전적’이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예술의 역사에서 ‘고전주의’라고 하였을 때, 그리스 고전 시대, 기원전 4세기 - 5세기의 작품들은 포함되나, 그리스, 로마의 다른 시대의 작품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였을 때의 ‘고전’이라는 단어가 미술사에서는 그 쓰임을 다르다. 높은 작품성을 가지고 있는 오래된 과거의 작품들을 모두 ‘고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술사에서 ‘고전주의’는 구성이나 색채 측면에서의 양식이면서 동시에 정신적 양식(태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르네상스 고전주의’나 ‘신고전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며, 일부 모더니즘 양식의 작품을 두고 ‘고전적 현대’라고 하는 것이다.

고전주의의 양식적 특징은 낭만주의와의 대비 속에서 선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C.
모든 고전 작품들은 감동적인가? <모나리자>나 <아테네학당>이 보는 이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가? 예술에 대한 지식을 쌓기 전에 예술 작품을 보고 감동받을 수 있는 태도를 먼저 가져야 한다. 가장 좋은 태도는 <모나리자>를 보고 손을 떨면서 감동 받았을 그 당시의 이탈리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이탈리아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이 작품들이 현대인에게 현대의 다른 작품들이 주는 바의 그런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전혀 다른 시대의, 전혀 다른 영혼이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전 작품에 대한 지식, 모나리자 부인이 누구이며, 아테네 학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안다고 해서 이 두 작품이 숨기고 있는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정신적 태도를 알지 못할 것이며, 왜 이 두 작품이 위대한 고전 작품으로 남아있는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도리어 뭉크의 <사춘기>를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왜, 어떻게 뭉크의 작품이 다 빈치나 라파엘로의 작품과 다른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술 작품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교과서’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작품이나 법칙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될 것이다.

예술의 역사를 공부하기 전에 먼저 익혀야 할 것은 현대의 무수한 작품들을 보고 흔들거리는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하우저의 말대로 ‘감동을 주는 한, 그것이 바로 현대 작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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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지음), 안규철(옮김), 한길사


하인리히 고흐의 전기는 미켈란젤로의 일부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이 책 서두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라는 챕터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전기의 일부는 이 논란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책 속에서 미켈란젤로는 예술가이면서도 피렌체 장사꾼처럼, 자기 스스로는 검소하게 살았지만 은행과 부동산 투자로 대단한 부를 가진 이로,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했던 이로 묘사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예술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매우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그려질 뿐이다.

예술(조각)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뜨거운 열정과 끊임없는 번뇌와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다른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자의 독특한 관점이 반영되었다거나 미켈란젤로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얻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이 책의 장점으로는 예술가 미켈란젤로보다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고수하면서 절도 있고 절제된 삶, 그러면서도 자신과 가족의 경제적인 기반까지도 걱정했던 미켈란젤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을 옮겨놓는다.
 

“나의 예술이 나의 여자다.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것이 나를 평생 동안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자식들은 내가 남기는 작품들이다. 비록 그들이 별로 신통치 않을지라도, 한동안 그것들은 살아갈 것이다. 로렌초 디 바르톨루치오 기베르티(Lorenzo Ghiberti)가 산조바니의 문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가련했을까! 자손들이 그가 물려준 모든 것을 팔아치우거나 쇠락하도록 방치해두었지만 그 문들만은 아직 거기 남아있다.”


미켈란젤로가 독신으로 살았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독신으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종종 동성애자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가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는 언제나 예술 창작에만 몰두해 있었고 그것으로 고통스러워했다. 그에게 이성과의 사랑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 연애시를 적기도 하였으며, 후일 한 여성과의 우정을 쌓기도 하였지만, 그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예술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결혼한 여성들보다 훨씬 더 신선하게 자신을 유지한다는 것을 자네는 모르는가? 더구나 음란한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해본 적이 없는 동정녀라면 말할 것도 없지. 음란한 생각은 그 육체를 왜곡시킬 수 있었을 것이네. 그렇지, 나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자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네. 만약 이러한 신선함과 젊음이, 이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신체에서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신의 힘에 의해서 유지된다면, 그것은 성모의 동정과 영원한 순결을 세상에 증언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일세.
반면에 그녀의 아들, 예수에게는 이런 것이 불필요했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드러나야 할 것은 신의 아들이 실제로도 그러했듯이 정말로 인간의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네. 그가 보통 사람이 굴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죄업에 대해서조차도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연약했으므로, 신성(神性)은 예수 속의 인간성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환과 질서를 인간적인 것에 맡겨야 했네. 그 때문에 예수가 그가 가졌던 바로 그 나이를 그대로 보여주었던 것이네. 그러므로 나로서는 성스런 동정녀이자 신의 어머니를 그 아들과 비교할 때 나이보다 훨씬 젊게 만들고, 아들이 자기 나이에 맞도록 만든 것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네.”


젊은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너무 젊은 동정녀 마리아와 자신의 어머니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예수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그리고 위 인용문은 이 의문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설명이다.



나는 죄를 살고 나는 죽음을 살아,
더 이상 삶으로 살지 않고, 오직 해악으로만 사노라.
하늘은 선(善)을, 그 은총을 내어놓는데,
나는 악을 취하네. 탐욕은 나의 빵이 되었고,
자유는 나의 하녀가, 덧없음은 나의 신이 되었네.
저주받은 나! 격정의 오솔길에서
이제 나는 어떤 인생 속으로 흘러들었는가!


우울한 미켈란젤로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대부분의 책에서 언급되는 주제이다. 음침하고 음울하며 사람들과의 교제보다는 혼자 있기를 즐기며, 화를 잘 내고 자기중심적인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의 전기에서는 이러한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코흐의 생각이다. 하지만 예술에 몰입했을 때의 미켈란젤로는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위의 시구처럼. 그러나 그러한 성격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치명적인 지장을 준 것은 아니었다.

 

미켈란젤로 - 10점
하인리히 코흐 지음, 안규철 옮김/한길사
- 절판이라니.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성 미켈란젤로 - 10점
제임스 H. 벡 지음, 박혜수 옮김/이룸
-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힌다. 또한 예술가로서의 미켈란젤로와 일상인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균형있게 담아내고 있다.

르네상스 - 10점
폴 존슨 지음, 한은경 옮김/을유문화사
- 르네상스 예술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 이 책은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당시 미켈란젤로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를 알기에도 충분하다(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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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i 2007.12.12 21:17 신고

    말씀하신 책들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로스 킹이 지은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은 몇년 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로마에 여행가기전에 열심히 읽고 갔는데 정작 시스티나는 못봤다는..ㅠㅠ 국내에는 다다북스에서 올해 낸 모양이던데 번역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못 보셨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미켈란젤로가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는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미켈란젤로라는 인간의 수완과 성격이 잘 드러나는 책입니다. 후진양성 내지 가르치는 걸 그렇게 싫어했다는군요..자기일만 좋아하고. 여자도 싫고 제자도 싫고 오직 일만 좋아하는 일벌레였나봐요. 지하련님도...?^^

    참, 잘 다녀오셨냐는 인사를 깜빡할뻔 했네요^^

    •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재미있을 것같네요. 로스 킹이 쓴 <브루넬네스키의 돔>을 읽었습니다. 르네상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몇 권의 책들 중 한 권이죠. 약간의(?) 에고이스트적 경향이 있죠. 좀 심하다고 해야 하나. 흐.

      이스탄불에 갔다온 건 무척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내년에는 독일 칼스루헤에 갈 예정입니다. art Karlsruhe에 참가하러. ^^

    • noi 2007.12.15 21:58 신고

      예 저도 <브루넬레스키의 돔> 읽었어요. 저자가 읽기 어렵지 않게 잘 쓰는 사람인거 같아요. 책을 읽고 나니깐 브루넬레스키가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 돔이 완전 달라보이더라구요.. 그게 책을 읽는 즐거움일까요^^

      칼스루헤라.. 일로 다니시는 건줄은 알지만 부럽네요^^



슬퍼하는 아테나를 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 고전주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걸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 사람들이 생각했던 그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 운명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젊은 미켈란젤로를 매혹시켰고 자끄 루이 다비드로 하여금 그 대단한 천재성으로 고전주의 양식을 꽃피우게 했던 것이리라.

라신느를 읽은 지도 오래 되었다. 라신느를 읽을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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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e of Eirene (personification of peace), ca. 14–68 A.D.; Julio-Claudian
Roman copy of a Greek bronze statue by Kephisodotos, ca. 375/374–360/359 B.C.
Marble; H. without plinth 69 3/4 in. (177.17 cm)
Rogers Fund, 1906 (06.311)


그리스 후기 고전주의 시대(4세기 중후반무렵)의 조각상이다. 하지만 실제 그 때 제작된 것은 아니고 로마 시대 때 복제된 것이라고 한다. 남아있는 그리스 시대 조각들의 대부분은 로마 시대 때에 복제된 것이다. 빙켈만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로마 시대에 초상 조각 이 외에 이렇다할 뛰어난 걸작이 나오지 않은 이유도 그리스 고전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복제만 해도 충분한 명성과 보상을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양식이 굳이 만들 만한 혁명적인 사상이나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일어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중세의 시작이었다.  

여하튼 우리는 옷 주름 처리에서 얼마나 세련되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좀더 가벼워보이고 동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경박스러움까지 풍기게 된다면 그 양식은 헬레니즘 양식이 된다. 고전적 양식은 그 양식 속에서 고결함을 잃어버리는 법이 없다. 하지만 낭만적 양식에서는 그 고결함을 잃어버린다. 진솔하다는 단어는 고전적 양식에 어울리기 보다는 낭만적 양식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그리고 이 진솔함이 도를 지나쳐버리면 추해지고 참혹해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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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시텔레스, <<헤르메스>> (기원전 4세기 경)

 

 

 

그리스의 남겨진 유적들을 보면 사람, 특히 벗은 육체를 표현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 그리스 고전주의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지도 서술의 힘이 퇴색되지 않고 있는 요한 요하임 빈켈만의 설명을 들어보세요. 그러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아마 우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인의 육체와 비교해보면 아마도 이피클레스가 그의 이복형 헤라클레스를 닮은 것만큼도 닮지 않았을 것이다. 온화하고 청명한 기후는 그리스인의 최초의 인간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유년 시절부터 행하는 육체적 단련이 형성에 기품 있는 형태를 가져다 주었다. 여기에 젊은 스파르타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영웅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갓난아이 때문부터 번도 강보에 싸인 적이 없었고 7 때부터는 땅바닥에 잠을 잤고 투기(鬪技) 수영으로 어린 시절부터 육체를 단련시켰다. 스파르타 청소년을 오늘날 우리 시대의 나약하고 나태한 청소년과 비교해 보라. 그리고 예술가가 젊은 테세우스나 아킬레우스 심지어 디오니소스의 모델로서 앞의 사람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를 생각해보라. 어느 그리스 화가가 테세우스를 두고 가지 상이한 자태를 특징적으로 묘사한 있는데, 그와 같은 의미에 따르면 후자의 경우에는 호사스럽고 나약하게 장미처럼 키워진 테세우스가, 전자의 경우에는 육체로 단련된 테세우스가 표현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 청소년들에게 ()경기는 육체를 단련시키는 강력한 자극원이었다. 가령 올림피아 제전은 경기가 열리는 바로 지역인 엘리스에서 10개월의 연습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최고상은 성인만 차지한 것이 아니라 핀다로스의 송가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이따금 청소년들의 몫이 되기도 했다. ‘신과 같은 디아고라스 닮는 , 이것이 모든 청소년의 최고의 소망이었다.

사슴을 추월하는 날쌘 발을 가진 인디언을 보라. 얼마나 원기왕성하고 신경과 근육은 얼마나 유연하고 민첩하며, 몸매가 얼마나 날렵한지를 보라. 호메로스는 이와 같이 신들을 묘사하였는데, 특히 아킬레우스를 날쌘 발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의 육체는 체조를 통해서, 그리스 거장들의 조상에서 있듯이 애매모호한 것도 군더더기도 없는 당당하고 남성적인 윤곽을 얻었던 것이다. 스파르타의 청소년은 열흘에 번씩 행정 감독관 앞에서 나체로 검사를 받았다. 그때 조금이라도 군살이 붙을 징후가 보이면 감독관은 한층 엄격한 절식(節食) 명령했다. 조금이라도 군살이 붙어서는 된다는 것이 피타고라스 계율의 하나였던 것이다. 오랜 옛적 그리스인들 가운데 투기에 지원한 청소년들에게 훈련 기간 유제(乳製) 식품 이외에는 먹지 못하게 것도 아마 동일한 이유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육체가 손상되는 것을 아주 세심하게 피하였다. 알키비아테스는 젊었을 얼굴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피리를 배우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테네의 모든 청소년들이 그의 전례를 따랐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리스의 의복은 모두 자연적인 발육에 조금도 압박을 가하지 않게 만들어졌다. 그들의 의복에는 오늘날 우리들이 입는 옷처럼 특히 목이나 허리 혹은 허벅지 여기저기를 압박하여 아름다운 형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스에서는 여성들조차 아름답게 보이려고 몸을 조이는 옷은 입지 않았다. 스파르타의 소녀들은 대개 가볍고 짧은 옷을 즐겨 입어, 사람들은 그녀들을 엉덩이를 드러내 보이는 처녀들이라고 불렀다.

- 요한 요하임 빈켈만, <<그리스 미술 모방론>> 중에서 (민주식 , 이론과 실천)

 

 

그리고 부언하자면, 때는 기원전이었고 도시 국가를 지키기 위해선 군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시민이라면 군인의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육체에 관심은 당연히 높았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가벼운 권총이나 개인용 화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칼이나 창과 그리고 갑옷과 방패를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시대의 아름다움이란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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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산문선
폴 발레리 지음, 박은수 옮김, 인폴리오.



솔직히 이 책에 대해 소개하라며 한 시간의 시간을 준다면, 혹은 원고지 30매를 채우라고 요구한다면, 아마 나는 한 시간 내내 책의 일부분을 읽어가거나, 책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을 것이다.

아마 몇몇 이들에게 이 책은 수다스럽고 장황하며 뜻모를 말만 나열하는 책이겠지만, 몇몇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고 아름다우며 읽어가는 도중, 아! 아!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책들 중의 한 권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르시스 칸타타>의 한 구절을 옮긴다. 나르시스를 사모하는 한 님프의 대사다.


가엾게도 ... 내 자매들아, 죽다니? ... 우리는 죽지 않는 여신들,
부질없게도, 부질없게도 죽지도 않고 아름답기만 하니;
우리에게는 사랑도 없고 죽음도 없구나
욕망도 괴로움도 우리를 위해 이루어지지도 않으니;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운명으로만 되돌아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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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templating Athena>
BC 455∼450 아테네 출토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미술관
(Acropolis Museum, Athens)
Grand Collection of World Art


고전주의,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 모든 것을 해명할 수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원리, 원칙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믿었던 삶과 예술에 대한 태도는 결국에는 우울함을 띄게 되는 것같다. 

그리스 고전기의 작품이지만, 다른 고전주의적 작품들과 달리 이 부조에서는 어떤 우울함이 묻어나온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냄, 전투에서 벗의 죽음, 시간의 덧없음, 그러니깐 본질적으로 모든 것은 변하고 흔적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실은 그리스 문화의 이면에는 이런 것이 내재해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관이 주류였으며 연극 양식 속에서는 끊임없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요구했던 것이다.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그리스 연극에서 볼 수 있는 '기계적 신', 스토리가 어떤 문제(갈등)을 향해 가다가 그 문제를 등장인물들에 의해선 해결 불가능한 지점에 이르면 나타나는 문제 해결의 신. 유사하게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에서의 '아테나'여신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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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춤, 데생>>, 폴 발레리(지음), 김현(옮김), 열화당



1.
"나는 그림보다 더 지성적인 예술을 알지 못한다."
- 90쪽

이 한 문장으로 발레리-그의 '드가'와 함께-는 '고전주의'를 그의 독자들에게 알린다. 그래서 자신의 지성을 연마한 이들에게만 (발레리의) 드가는 보이게 될 것이다. 이 '참혹스러운' 진실은 '현대 예술가들이 왜 자신의 지성을 버리고 감각에 의존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지름길이다.

"우리들의 사고는 순수하게 논리적인 형태를 취할 때, 생명의 참된 본성을, 진화 운동의 깊은 의미를 표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 이것을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부분은 전체와 비등하다든가, 결과는 원인을 자기 속에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든가, 해변에 버려진 자갈은 그것을 밀어올린 파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든가 하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실은, 우리들의 사고 범주 속에 일(一), 다(多), 기계적 인과, 지적 합목적성 등 어느 하나도 생명이란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것이 없다는 것은 우리들도 곰곰히 느끼고 있다."
-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서문에서.

베르그송의 이 문장들은 인상주의 미술이 인간 지성사에서 어떤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선 자신의 지성이 어떤 것인가를 먼저 알 필요가 있는 법이다. 발레리가 낭만주의를 이해하면서도 고전주의적 이상을 피력하는 이유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2.
플라톤이었던가. 우리들의 이 언어, 바로 지금 그대가 읽고 있는 이 글자마저도 (실재의) 그림자임으로 우리들이 말하고 싶었던 그 무언가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고. 플라톤에게 있어서 의도는 '이데아'를 향해 있지만, 여기에서 현대가 마주하고 있는 '기표와 기의의 문제'까지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소쉬르가 이 '기표와 기의의 임의성'을 분명한 어조로 정의 내렸을 때,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언어의 불신'은 그저 동어반복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예술의 언어는?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그렇다고 철학적 엄밀함의 언어도 아닌, 모호하고 때때로 이해하기 힘든 그 언어는? 현대의 심미주의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3.
화가에 대해 가장 진실한 어조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는 시인일 것이다. 보들레르가 들라크루아를 이야기하듯이 발레리는 드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연적인 포착'에 불과한 것이다.

"묘사란 일반적으로, 위치를 바꿔 놓아도 좋은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방을 그 순서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일련의 문장으로 묘사할 수 있다. 시선은 원하는 대로 방황한다. 이런 방황보다 더 자연스럽고 더 진실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진실은 우연이기 때문이다."
- 116쪽


4.
"바로 그거군! 전화란! 종이 울리면 자네가 가는군."라는 말로 발레리의 드가는 우리들의 눈에 뚜렷한 자국을 남긴다.

"드가는 언제나 혼자 있다고 느꼈고, 모든 형태의 고독 속에서 혼자 있었다. 성격 때문에 혼자였고, 특출난 그리고 특이한 본성 때문에 혼자였고, 성실성 때문에 혼자였고, 오만한 엄격성 때문에, 굽히지 않는 원칙과 판단 때문에 혼자였고, 자기 예술, 다시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 그가 요구한 것 때문에 혼자였다."
- 136쪽


5.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누군가의 몸짓이나 손짓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정신을 대신 말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발레리의 '드가'는 드가 자신이면서 동시에 발레리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진짜 모습은 자신에게 있지 않고 타인들 틈 속에 있는 것처럼 발레리도 드가도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라캉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드가가 무희를 그리면서 무희보다도 바닥을 더 넓게 그리는 이유와 같다. 바로크가 우리를 사로잡았던 '빛 나는 중심'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풍경화로 변한다. 푸생과 클로드, 콘스터블과 터너에 이어 우리는 이 흐름을 드가에서 만난다. 풍경화가 끝내 '기하학주의'로 가 닿는 것은 원근법주의에서 시작한 근대 회화가 반원근법주의로 가는 필연적 귀결인 셈이다.

원근법주의에는 그 속에 시선의 중심인 인간(이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회화에서의 '풍경'도 실은 풍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아주 장식적이며 연극적인 자유를 가지고, 나무, 작은 숲, 시내, 산, 교회 건물을 이용한다.' 하지만 인상주의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몸을 맞댄다. 그들은 점점 아틀리에서 일하지 않는다. 차츰 들판에서 일한다. 그들은 사물의 견실함 혹은 유동성과 싸운다. 어떤 사람들은 빛을 공격하고, 시간을, 순간을 잡으려 한다. 이미 끝난 형태를 그것을 덮는 반사광, 섬세하게 조합된 스펙트럼의 요소들로 대치시키려 한다. 어떤 자들은 반대로 그들이 보는 것을 아무렇게나 만든다. 이렇게 해서 풍경에 대한 관심은 점차로 방향을 바꾼다. 행동에 의해 지배되는 행동의 종속물로서, 풍경은 멋있는 것이 있는 장소, 몽상의 거주지, 방심한 눈의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는 인상(印象)이 승리한다. 질료와 빛이 지배한다.'(112쪽에서 113쪽)


6.
'진실은 우연임으로' 몇 천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헤라클레이토스는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겨우 우리는 지금 발을 담그고 있는 이 강물은 이 순간, 이 찰라를 지나고 나면 영원히 다시 담그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발레리는 헤라클레이토스 대신 제논을 택한다. 이 놀라운 역설이야말로 내가 발레리를 찬미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이다. 제논이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나는 화살은 정지해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화살이 아니라 '화살을 분석하는 인간'을 말하기 위해서 였다. 화살을 실제로 날고 있지만, 그것을 날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고 날지 않고 정지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드가, 춤, 데생』이라는 제목의 비밀은 여기에 숨어있다.

드가의 말: "데생은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형태를 보는 방법이다."

이 문장에서 '보는'이라는 동사의 주체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지성은 아닌 '감각'이다. 우리는 헤라클레이토스가 강물을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제논은 그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인간을 이야기하고 싶어함을 눈치채어야만 한다. 현대의 반인간주의는 보다 진실한 형태의 인간주의이다. 풍경 속에서 인간의 모습이 그 뚜렷함을 상실하고 풍경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은 다윈의 말대로 우리가 원숭이들의 후예임을 인정하는 과정일 뿐이다. 발레리의, 그리고 현대의 고전주의는 이 이후의 일이다. 우리의 지성이 무력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진실로 위대한 예술가들은 밀려닥치는 거친 물결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유일한 것을 찾는 '데카르트적 모험'을 새롭게 진행시킨 것이다.





드가.춤.데생 - 10점
폴 발레리 지음, 김현 옮김/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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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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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샘 쉐퍼드Sam Shepard
황산, 아멜리 노통브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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