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5

추석 연휴, 코로나 확진

지난 주 목요일에 걸렸으니, 이제 나흘이 흘렀다. 심하게 아프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무기력했고 밤에 잠을 잘 수 없었으며, 두통과 인후통은 종종 견디기 어려워 약을 먹어야만 했다. 코로나 탓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니 책이나 실컷 읽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약을 먹으면 졸렸고 졸리지 않을 때는 머리가 아프거나 힘이 없었다. 뭔가 집중할 수 있는 체력이 되지 않았다. 남은 격리기간 이틀은 평일 재택 근무다. 아마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려댈 것이다. 좀 쉬고 싶긴 한데 말이다. 세상이 혼란스럽게 돌아간다. 이럴 때 기회가 생기는 법인데, ... 나에겐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뭔가 저질러야 되는 건가. 고향집 뒷산에 가서 아버지 계신 곳을 둘러보고 내려왔다. 잡..

통영 출장, 그리고

눈바람이 부는 바다 앞에 서서 수면에 닿자마자 사라지는 눈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 도시의 거리에나 그 도시 앞 바다에나 눈을 쌓이는 법이 없었다. 자주 만나면 사랑이 싹틀 것이라는 바람 대신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 떠나는 것처럼, 몇 시간 동안 내린 눈은 내린 시간 보다도 더 빨리 녹아 사라졌다. 바다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통영은 그 도시 근처에 있지만, 자주 가지 않았다. 자주 갈 일도 없었다. 거래처와 미팅을 하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었다. 윤이상 음악당이 통영국제음악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고 윤이상 선생의 세계를 알려고 해도 알지도 못할 이들이 나서서 명칭을 바꾸었다는 사실에 속으로 분개했다. '내 고향 남쪽바다'라고 일컫어지던 고향 앞바다를 떠..

어느 설날의 풍경

겨울비가 내리는 마산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도로 옆 수백억 짜리 골리앗 크레인은 어느 신문기사에서처럼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 텅 빈 자리엔 무엇이 들어올까.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따뜻한 평화를 뜻하는 걸까, 아니면 또다른 아픔을 알리는 신호일까.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마음 한 켠의 불편함과 불안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봄 속의 여름, 창원

여름을 특정짓는 것이 짙은 녹음과 뜨거운 열기라면, 이미 여름은 왔다. 그렇다면 사랑을 특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혹은 이별?, 아니면, 나는? 세월은 너무 흘렀다. 나만 제외하고 모든 이들이 다 아는 사실 하나, 내가 나이 들었다,는 것. 평일 창원엘 갔다. 연휴나 명절이 아닌 날 내려간 건, 거의 이십년 만인가. 지방 중소 도시에선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풍경도 서울에선 참 낯선 풍경임을 새삼 느꼈다. 그만큼 서울 생활이 익숙해진 건가, 아니면 지친 건가. 올해 초 새로 생긴 경상대학교 병원 앞에 이런 하천이 있었다. 조금만 가꾸면 사람들이 다닐 수 있을 것같은데, 여기 사람들은 별 관심 없을 것이다. 여기저기 공원이다 보니.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몇 장의 창원 풍경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지난 ..

낮은 하늘 아래서

해마다 가는 창원이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건 내 나이 탓일까, 아니면 내가 처하게 되는 환경 탓일까. 집 밖을 나오면 멀리 뒷 산들이 보이는 풍경이 다소 낯설게 여겨지는 건, 너무 오래 서울 생활을 했다는 뜻일 게다. 하긴 지금 살고 있는 노량진 인근 아파트 창으론 여의도가 한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연휴 때 나온 사무실은 조용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