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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6/06 Atta Kim: On-Air, 로댕갤러리 (2)
  2. 2008/05/24 시간이 싫어요. (2)
  3. 2004/05/14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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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a Kim: On-Air
로댕갤러리


사진이 무엇일까. 그렇다면 사진에 대한 글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내가 예술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 순간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예술에 대한 사랑, 또는 호기심을 데리고 찾아간 로댕갤러리 안에서 나는 (현대)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바의 어느 극점을 발견하였다. 김아타의 이전 작업들, 뮤지엄 프로젝트나 해체 시리즈, 그 외 인물 사진 시리즈를 보았지만 내 시선을 끌지 못했다. 분명 그 때도 그의 작업들은 비평적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사진 속에서 그의 카메라가 가진 즉물적이며 파괴적인 속성이 싫었다. 나는 좀더 우아한 방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사진들은 피사체를 즉물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아픈 사진들이었고 필름에 옮겨진 피사체나 그 피사체를 바라보는 관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오직 사진만 존재했고 사진 속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박제된 동물처럼, 혹은 어떤 인위적 목적에 의해 조장되어진 사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카메라가 가지는 폭력적 속성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로댕갤러리에서 본 그의 최근 작업들은 놀라웠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의 이전 작업들과 온-에어 시리즈와의 연관관계를 선명하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의 작품들에 대한 내 반감과 온-에어 시리즈에 대한 감탄은 선명한 금을 그으며 내 안에서 서로 대비되었다.

그리고 로댕갤러리의 전시는 끝났고 이 글은 어떻게든 정리해야만 하는 내 습성에 의해 씌어지는 것이지, 김아타 사진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나 예리한 비평적 접근은 아니다. 도리어 찬사에 가깝다. 정말 온에어 시리즈는 대단했다. 시간과 운동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나 조망이 카메라라는 매체를 통해 아주 탁월하고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에 찬탄을 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철학이 운동을 부정하고 정지만을 추구했던 것은 운동은 시간의 축에 따라 이루어지며, 그것은 끝내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어떤 종말, 어떤 불안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서 우리의 삶도 그렇다. 플라톤이 영원한 세계를 이야기하였을 때, 그것은 우리 삶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어떤 불안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불안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추동시키는 원동력이었다. (그리스 예술과 철학이 우울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아타의 온-에어 속에서 시간과 운동은 매력적인 소재이면서 우리의 삶,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본질적 구성에 대한 어떤 통찰을 전해주는 듯하다. 그것은 바로 시간과 운동을 넘어서 있는 어떤 공간에 대한 것이다. 그것인 일종의 멸망이고 어떤 폐허이며, 보는 이들에게 무한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낸다.

회화가 추구하는 평면성이 시간을 무시하고 공간성만을 추구하는 어떤 것이라면, 김아타의 카메라는 시간을 받아들이면서도 변하지 않는 어떤 공간성을 추구하고 그것일 발견해낸다는 점에서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올해 상반기 보았던 여러 전시들 중에서 최고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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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인생은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롤러코스트. 무시할 수 없는 공포와 처절한 쓸쓸함과 슬픈 느낌으로 자욱한 길거리. 무수한 사람들로 빼곡하지만, 정작 손 잡을 사람은 한 명도 없는 모호함 속. 결국 나 혼자 걸어가는 공포의 계곡길. (http://me2day.net/intempus)

*    *  

토요일 아침, 흐릿하게 시작한다. 흐릿하게 시간을 흘러보낸다. 며칠 너무 정신 없었다. 며칠 너무 슬펐다. 며칠. 며칠. 며칠. 하긴 세상을 결정하는 건 단 1초다. 1초에 모든 것이 송두리째 날라갈 수도, 복원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싫다. 공간만 존재하는 곳. 그 곳이 있다면 이데아의 세계일 것이다. 그리스 고전철학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시간성을 잃어버리고 공간을 향한다. 왜냐면 그 곳엔 어떠한 감정의 흔들림도, 슬픔도, 쓸쓸함도, 고독도, 오해도, 아픔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아픔은 시간이 만들어내는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때 베르그송은 엘랑 비딸을 이야기하면서 시간이 가져다주는 약동하는 생의 모습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도 아픔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가끔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멍해지거나 도리어 정신이 맑아지는 때가 있다. 결국은 내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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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
TAG 공간, 시간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 4점
이진경 지음/푸른숲


오래 전부터 관심이 가던 책이었다. 그러나 사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실망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강서도서관에 가서 이 책을 빌려서 저녁에 읽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실망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책에 언급된 미술에 대한 설명은 미술과는 관련없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틀린 단어도 있으며 틀린 설명도 있다.

가령 늑골 궁륭(ribbed vault)를 flying buttress(공중부벽)로 표기하였지만, 이 둘은 틀린 것이다. 그리고 고딕 성당의 수직성(verticality)에 대해선 들은 바가 있어 언급하였지만, 자세한 설명은 없다. 왜 고딕 성당이 수직성을 강조하는가에 대해선. 그런데 이 수직성과 근대적 시.공간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시간을 나눌 수 있다는 개념은 시계의 발명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깐 42쪽부터 설명되는 부분은 도리어 근대 과학에 대한 설명이 있는 89쪽 이후 부분을 먼저 설명하고 난 다음 그 다음에 나와야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근대 과학을 포함한 근대의 지식 체계가 고대 희랍이나 중세의 그것과 어떻게 틀린가를 서술하는 것이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을 설명하는 것보다 독자에게나 저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설명 방식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근대인들이 시간,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떤 의미에서 새롭고 혁신적인가를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고흐와 세잔의 세계는 반 근대적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세계이며 이는 원근법의 측면에서도 동일하다. 서로 반대되는 것을 추구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잔의 입체감은 근대 회화의 입체감과는 전혀 틀린 종류의 것이다. 이를 이해하고 사용했는지 잘 모르겠다.

저자는 폴 세잔과 반 고흐의 그림을 두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설명도 엉성할 뿐더러 이것이 저자가 설명하는 근대적 시.공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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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 부분은 정독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건성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 공간에 대한 연구 방법들이라고 언급해놓은 걸 보면선 한숨이 나왔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한 나머지, 나는 이 정도로 공부했어요라고 자랑하고픈 마음에 채 정리되지 않은 노트를 대중에게 공개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노트만이라도 확실하게 하면 좋겠는데, 이를 엉성하게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이라는 제목까지 붙여놓고 군데군데 틀린 설명과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선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좀 야박한 서평일 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양미술사에 관심 많은 이로서 이 책은 너무 엉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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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