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6

호르몬과 꼰대

오전 늦게 도서관에 갔다. 아무래도 집보단 도서관이 이런저런 일을 하긴 더 좋으니까, 주말이면 곧잘 집 근처 도서관에 간다. 그런데 옆에 앉은 아저씨. 책과 노트들로 너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금 자격증 공부를 하는가 싶더니, 자세를 제대로 하고 잠을 청하기 시작한다. 주위 환경에 이렇게 영향을 많이 받던 나였나 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공공 예절을 따졌나. 이렇게 공공예절 따지는 사람이 술에 취해 집에 비틀거리면서 들어갔나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오가 지난 시간, 졸음이 밀려들 시간이다. 실은 내가 책을 놓을 공간이 너무 좁은 것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 나는 이렇게 속 좁은 인간이었나. 결국 도서관에서 나왔다. 스트레스는 ..

1월 7일 일요일

구립 도서관을 가려다 집 근처 스터디카페로 향했다. 커피 두 세잔 가격으로 6시간을 있었다.읽고 노트할 거리를 잔뜩 들고 갔지만, 언제나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영어 단어와 한글 단어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깨닫게 되자, 더욱더 영어로 책을 읽고 싶어졌다. 황당할 정도로 뒤늦게 이것저것 깨우치게 된다. 거참. 살짝 늦은 감이 있지만, AI와 빅데이터에 대한 여러 자료들을 찾아 읽고 정리하고 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내가, 혹은 인류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속도를 추월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하게 말해, 살기 피곤해졌음을 뜻한다. 배우는 것을 즐기는 이들에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어려운 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수학..

김미경의 리부트, 김미경

김미경의 리부트 - 코로나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 김미경(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을 내가 샀다고 오해하지 말기를. 하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자 김미경이라는 저자가 궁금해졌고 책 내용대로라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이 책은 ‘능력주의’라든가 한병철의 에서 이야기했듯이 현대인들 스스로 능력이나 성과라는 틀에 자신을 스스로 몰아넣는 것이 옳다고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책이 될테니, 건강한 책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대부분의 자기개발서는 여기에 속한다). 또한 저자 스스로도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으며, 그 채찍질의 성과를 이 한 권의 책으로 냈으니, 비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저자도 요즘 비판적 인문학이 이야기하는 어떤 시스템의 피해자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라틴어수업, 한동일

라틴어수업한동일(지음), 흐름출판 집에 있던 '라틴어-영어 사전'을 최근 버렸다. 이십여년 전 구한 사전이었다. 그 때만 해도 한글로 된 라틴어 교재는 거의 없었고 라틴-한국어 사전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책을 읽으며 라틴어를 확인하는 용도로라도 필요하겠다 싶어 영국 옥스포드대학 출판사에 나온 작은 사전을 교보문고 외서 코너에서 구했다. 원서 강독을 하면서 자주 그 사전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지 십 수년이 지났고 더 이상 집 서가에 책을 꽂을 공간이 없어, 읽은 책들, 그래서 앞으로 더 이상 읽지 않을 책들을 버리는 중, 빛 바래고 낡은 그 사전도 함께 버렸다. 그리고 몇 달 후, 이라는, 이 책을 읽었다. ,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딱 그 정도인 수필..

언어 공부, 롬브 커토

언어 공부 How I Learn Languages 롬브 커토(지음), 신견식(옮김), 바다출판사, 2017 아무도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 내가 여기서 야만인이다(Barbaus hic ego sum, quia non intellegor ulli). - 오비디우스 설마 이 책을 통해 외국어를 잘하게 되는 숨겨진 비결, 혹은 공부하는 방식이나 자료를 얻으려고 한다면 오산이다. 도리어 저자는 정공법을 이야기한다. 가령 '반복은 공부의 어머니다Repetitio est mater studiorum'같은 라틴 격언을 인용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언어 공부에 유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도리어 어떤 이들에겐 이 책은 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열정적 권유가 될 수도 있다. 왜냐면 언어에는 천재가 없다고 ..

계절과 계절 사이

01. 가을이 오면 그대 울게 되리, 가을이 오면 그대 옷자락 끝을 붙잡고 바람 속에 둥지를 틀리, 가을이 오면 그대 눈물 얼어 심장이 되고 그대 눈동자 갈색으로 늙어 빛바랜 훈장이 되리, 그대 향한 이 마음 주춤거리는 사이, 아, 가을은 무섭게 내 가슴 도려내리니, 손가락 자르고, 발가락 자르고, 그대 위해 글을 쓰지도, 그대 향해 걸어가지도 못하게 하여, 그대 향한 이 마음 식히리라. 02. 오랫만에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순간들이 모여있는 곳이 계절과 계절 사이이다. 이틀 전엔 밤을 세워 공부를 했고, 어젠 새벽 한 시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보통 일어나는 시간이 오전 11시쯤이니,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