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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최초의 모험

헤르만 헤세(지음), 이인웅(옮김), 올재클래식스, 2018년 




"나는 작가의 역할이란 무엇보다도 회상시켜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를 통해 무상하게 사라져 갈 일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며, 말을 걸어 불러내고 사랑에 찬 서술을 함으로써 지난 과거의 일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옛날의 관념론적 전통에 따라 작가의 임무에는 어느 정도 선생님이나 경고해주는 사람이나 설교자로서의 기능이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교훈을 준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언제나 우리 인생에 혼을 불어넣기 위한 독려의 의미로 생각하고 있다." 



"사물을 관조하는 일이란 연구하거나 비평하는 것이 아니다. 관조란 바로 사랑이다. 관조한다는 것은 우리 영혼의 가장 고귀하고 가장 소망할 만한 상태로서, 아무런 욕구가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권두에 실린 역자의 헤르만 헤세 소개글에 인용된 위 두 문장은, 어쩌면 헤르만 헤세의 문학세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듯 싶다. 10대 중반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 - 1962)를, 40대 중반이 되어 읽었다. 다시 읽었다. 아, 이 얼마나 아찔한 일인가. 





매일 아침 9호선을 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저녁이나 한밤 중에는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정해진 동선을 따라 왼손에 최초의 모험을 들고 이동했다. 내가 맞이하는 매 순간은, 나에게 있어 익숙한 일상이지만, 최초의 순간이며, 어쩌면 모험과 같은 것이다, 수백년 전의 일상과 비교한다면. 


그러나 모든 것들은 식상해졌으니, ... ... 



루드비히는 연주를 계속했고, 그녀는 넓고도 검은 수면이 커다란 박자로 물결치는 것을 보았다. 거대하고 강력한 새 떼가 태고 시대처럼 침울하게 쏴쏴 날개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폭풍이 둔탁하게 울리며, 때로는 거품이 이는 물보라를 공중으로 뿜어올렸는데, 물보라는 수많은 작은 진주가 되어 흐트러졌다. 파도와 바람과 거대한 새 날개의 쏴쏴 하는 소리 속에 무엇인가 비밀스러운 소리가 함께 울렸다. 때로는 소리 높은 격정으로, 때로는 갸날픈 어린 아이 목소리로, 하나의 노래가, 은밀하고 사랑스러운 멜로디가 울려나왔다. - 어느 소나타Eine Sonata 중에서



헤르만 헤세는 그대로였고, 전엔 읽히지 않던 부분까지 읽혔다. 실은 이렇게 로맨틱했나 하고 생각했다. 다소 낯선 문장 스타일로, 그가 겪었던 시대와 달리 애정어린 시선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양이 마치 19세기 초 유럽을 떠올리게 하였다. 굳이 따지지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벨 에포크와 연관지을 수 있겠지만, 카프카(1883 - 1924)의 세계와 헤세의 세계를 같은 동시대를 이야기했다고 보기 어려우니, 비평적으로 헤세는 소외당하고 무시당한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마치 스트라빈스키 같다고 할까. 복고풍의 세계로, 우리를 아련한 과거로, 혼란스럽지만 언젠간 정리되고 해결되고, 다시 그와, 그녀와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될 어떤 일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점에서 헤세의 이 산문집은 약간의 위로가 되었고 약간의 휴식이 되었으며 살짝 쓸쓸하기도 했다. 


수십 년 전엔 심야 라디오를 듣다 보면, 헤세의 여러 소설들에 대한 광고가 나오기도 했다. 자주. 다들 헤세를 읽는 거의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졌고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헤세의 책 옆으로 짝사랑하던 여고생을 향해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쓸쓸하긴 매 한 가지지만, 강도로 따지지만 지금이 더한 것같으니,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한 자리에 서서 언제나 '날 좀 바라봐줘'라고만 하는 듯 싶구나. 


활자가 작진 않지만, 빽빽했다. 독서의 속도는 느렸고 세상은 빠르게 흘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달이 지나버렸다. 아마 그렇게 이 세상과 작별했던 헤세의 나이가 되겠지. 그 전까지 나는 얼마나 더 쓸쓸해야만 하는 걸까. 그러게 말이다. 



* * 



내가 알기로 올재클래식스는 예전에 번역되어져 나온 고전들 중, 시중에서 해당 번역서를 구할 수 없고 원 저작권도 사라진 책들을 역자들과 협의하여 기본 비용만으로 정가를 책정하고 유통하는 전집이다. 주로 사회 복지시설이나 도서관 등 우선 공급하고 일부만을 교보문고에서 판매한다. 어떤 책들은 시장성이 낮아 구할 수 없는 책들도 나오기도 하는데, 워낙 가격이 저렴하여 출판되고 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품절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아, 검색되지도 않는다(얌체같은 이들은 버젓이 올재 클래식스 책을 고가로 중고로 판매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점 한 가운데 쌓여있던 이 책을 바로 구입했다. 일종의 횡재였던 셈. (가격은 2,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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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Living with Complexity 

도널드 노먼(지음), 이지현, 이춘희(옮김), 교보문고 





단순함에 대한 맹목적인 요구는 핵심을 빗겨간다. (125쪽)




최근 읽게 되는 책들의 일부는 디자인 관련 서적들이다. 업무 때문에 읽기도 하지만, 디자인 관련 서적들을 읽은 탓인지는 몰라, 실제 생활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자주 느끼고 있다. 이제 디자인은 디자이너만 관심 기울여야 하는 영역이 아니라 사업을 전반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들, 그리고 기획안에 맞추어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모든 이들이 고민해야 하는 영역이 되었다. 


서비스 디자인, 사회적 디자인, 인간 중심적 디자인, 인터랙션 디자인 등 다양한 디자인 영역들이 등장하고 간단한 생활 도구에서부터 버스 정류장, 역, 사무실 환경, 웹사이트,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등 일상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 디자인이 활용되고, 이러한 디자인의 변화, 그리고 폭넓은 적용, 일상 문제 해결을 위한 디자인적 문제 의식이 깊어지고 있지만, 정작 이러한 변화에 대한 관심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다고 느끼는 건 왜일까. 


이 책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의 저자, 도널드 노먼은 UX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디자이너이자 학자이다. 카이스트에서도 강의한 바 있는 그는 ‘단순함에 대한 맹목적인 요구는 핵심을 빗겨’나간다고 지적한다. 그는 세상은 복잡하고 복잡함을 무조건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디자인은 아니라고.


책은 복잡하지만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반대로 단순하지만 우리가 사용하기 어려운 것들도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는 이해를 통해 복잡한 시스템을 간단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용이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디자이너만 읽을 책이 아니라 다른 업무를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하는 책에 가깝다. 2011년에 나온 책이며, 최근의 디자인 이슈를 파악할 수 있다. 결국 복잡함이나 단순함을 떠나 ‘인간 중심적 디자인’(Human-Centered Design)이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도널드 노먼저 | 이지현, 이춘희역 | 교보문고 | 2012.04.16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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