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6

정치신학 - 주권론에 관한 네 개의 장, 칼 슈미트

정치신학 - 주권론에 관한 네 개의 장칼 슈미트(지음), 김항(옮김), 그린비 1.서양철학사를 여러 권 읽었고 철학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다소 어려웠다. 읽으면서 직장인인 내가 지금 왜 이 책을 읽고 있나 하는 질문을 수시로 하면서, 동시에 조르조 아감벤의 가 왜 그렇게 재미없었는가까지 떠올렸다. 실은 아감벤의 책을 읽기 전에 칼 슈미트를 먼저 읽어야 했다. 그래야 아감벤의 논의를 이해할 수 있다. 조르조 아감벤 뿐만 아니라 칼 슈미트는 현대의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학자였다. 발터 벤야민, 하이에크, 루카치, 레오 슈트라우스, 하버마스, 데리다까지. 그만큼 중요한 질문을 던졌고, 정작 칼 슈미트는 (극단적인) 우파적 경향을 가지고 있으나, 도리어 좌파 진영에 더 많은..

10월 30일 단상

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이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모한 용기에 뒤이어 오는 경제적 고초와 무참한 절망, 패배감이 아니라 빠르고 현명한 포기였다. 그리고 그 포기 대신 내 포기는 종북들과 빨갱이들 때문으로 몰아가면 되었다. 지난 잃어버린 10년 정권으로 인한 것이면 되었다. 헬조선도 경제에 뛰어나지 못한 진보 정권으로 인한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엎지르진 물이고 뒤짚기엔 너무 강력하다. 그러니 왜 나에게 꿈과 희망을 밀어넣는가! 나에게 필요한 건 한 끼 밥과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와 종편 TV에서 틀어대는, 나보다 불쌍하고 처참한 북한 사람들의 실상이다. ..

종이신문, 그리고 한국 청년 잔혹사

종이신문을 구독한 지 몇 달이 되었다. 그 전에는 모바일 포털사이트나 Social Media, 특히 페이스북을 통한 소비가 대부분이었다. 이럴 경우 미디어 편식이 발생한다. 또한 예전이라면 스포츠신문을 읽어야만 볼 수 있는 기사만 읽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처럼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나는 스포츠신문을 읽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디지털을 통해선 그냥 스포츠신문만 읽는 느낌이다. 그만큼 엉망이 되었다. 더구나 제대로 된 기사문을 읽을 일이 줄어든 셈이다. 다시 종이신문을 읽기 시작하자 여러 모로 장점들이 많아졌다. 다소 느리지만, 깊이있는 칼럼들을 읽게 되었다고 할까. 하지만 디지털 세대의 여론과는 다소 무관해 보인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을 지나 대..

비현실적인

점심을 간단하게 햄버거로 처리하고 도로를 걸었다. 작은 분수와 가로등에 달라붙은 채 갓 핀 꽃을 보여주고 있는 화분들을 보면서 참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 길가로 쏟아져 나왔다가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사람들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 웃음도 참 비현실적이었다. 모두, 우리들의 비극적 상황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모른 척할 것이고, 모른 척 하던 사람들이 다 죽고 도시는 폐허가 될 것이다.이런 도시는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를 따라가다 보면 많이 만날 수 있다. 이젠 성채만 남아 부서지는...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과거는 과거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변화를 거부한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정지해있다. 그들은 마치 파르메니데스의 후예들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지음, 후마니타스 주로 읽는 책이 문학, 철학, 예술 중심이라, 이 책은 무척 생소한 종류다. 가끔 읽는 비즈니스 실용서들도 있지만 주로 맥킨지나 부즈앨런해밀턴에서 나오는 리포트들이 많다. 어차피 비즈니스야, 실제 기업의 적용 사례가 중요한 것이니, 원론적인 책 두 세권 읽고 난 다음부터는 case study가 핵심이다. 하지만 정치 서적은 생소하다. 그만큼 정치는 꼴도 보기 싫은 종류의 것이고 술자리에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싸움의 발단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일독을 권한다. 꼴 보기 싫다고 해서 투표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나라를 떠나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계획도 세우지 않은 바에는 이 책을 읽어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