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28

만프레드 프랑크, <<현대의 조건>> 읽기 1

1. 2002년에 한글로 번역 출간된 만프레드 프랑크(Manfred Frank, 1945 ~ )의 (최신한 옮김, 책세상)을 읽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이 책을 구해 몇 번 읽으려고 도전했지만,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다시 시도했는데, 어, 읽을 수 있다. 더구나 이해가 된다. 너무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대로 다시 현대/근대에 대한 정리를 할 겸, 책을 읽어 가면서 블로그에 요약, 또는 정리를 해서 공유하려고 한다. 2. 튀빙겐 대학 교수로 소개되는 만프레드 프랑크는 문예 이론과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초기 낭만주의에 대한 연구서인 (무한한 접근)은 전후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서적으로 인정 받을 정도다(이건 영어로도 번역되지 않았다). 2000년대 전후..

자본가의 탄생, 그레그 스타인메츠

자본가의 탄생 The Life and Times of Jacob Fugger 그레그 스타인메츠(지음), 노승영(옮김), 부키 푸거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서문에 나온 아래 문단만 읽어도 된다. 책은 이 요약문의 자세한 설명이며 역사적 근거와 시대적 배경을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카를이 황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푸거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푸거는 카를이 황제가 될 수 있도록 거액의 뇌물을 빌려주었을 뿐 아니라 카를의 할아버지에게 자금을 투자해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정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중앙 무대로 진출할 수 있게 도왔다. 푸거는 다른 분야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그는 고리대금업 금지 조치를 해제하도록 교황을 설득해 상업을 중세의 미몽에서 흔들어 깨웠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자화상(Self-portrait)

우연히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의 자화상들을 보았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과의 그 결이 다르다. 예술의 역사를 공부할 때, 지역적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이런 점에서 뒤러는 참 특별한 화가다. 그의 작품들에는 르네상스 세속주의도 드러나지만, 그와 함께 그 당시까지 남아있던 후기 고딕적 요소에서 자유롭지 못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The Arnolfini Portrait (or The Arnolfini Wedding, The Arnolfini Marriage, the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or other titles) Jan van Eyck,..

근대 조선과 일본, 조경달

근대 조선과 일본 조경달(지음), 최덕수(옮김), 열린책들 은 전설이 되었다. (149쪽) 정조 이후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배우지 못한 듯 싶다. 이후는 세도정치 시기였는데, 이 부분을 이야기해봤자 가슴 아픈 이야기 밖에 나오지 않으니(그야말로 조선 왕조가 가장 무능했던 시기, 어쩌면 임진왜란 시기보다 더 심했을 지도), 그냥 역사 교과서에서도 자세히 다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수십 년 전 버전이니, 지금 역사 교과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가끔 한국도 일본처럼 서구 문물을 빨리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해서도 상황은 동일했을 듯 싶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경우 그것은 유교적 민본주의, 즉 일군만민(一君萬民)의 정치문화였다. (16쪽) 조선의 성과이면서 한계..

근대의 서사시, 프랑코 모레티

근대의 서사시 Modern Epic프랑코 모레티(지음), 조형준(옮김), 새물결 프랑코 모레티의 이 책, 읽기 쉽지 않다. 그의 말대로 너무 유명하지만, 거의 읽히지 않는(읽기 어려운) 서사 작품들을 두고, '서사시'라는 테마를 통해, 근대가 어떻게 이들 작품 - 세계적 텍스트 속에서 드러나는지, 말 그대로 어떤 특징들을 가지며, 어떤 방식으로 근대사회, 혹은 근대성을 담아내고 있는가를 상당히 방대한 인용과 참고 문헌들, 문학 뿐만 아니라 음악까지 언급하는 탓에 까다로운 독서를 요구한다. , , , , , , , . 이것들은 그저 오래된 책들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역사적 기념물이다. 근대 서구가 자신의 비밀을 찾아 오랫동안 자세히 파고들어온 성스러운 텍스트이다. (18쪽) 하지만 모레티의 의도..

신기관, 프랜시스 베이컨

신기관 Novum Organum 프랜시스 베이컨(지음), 진석용(옮김), 한길사 근대(Modern)를 여는 대표적인 고전이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평이했다. 도리어 아리스토텔레스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베이컨의 문장들이 더 흥미로웠다. 지금 해석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당시(1620)에 받아들여졌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르든가, 아니면 스콜라철학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본 아리스토텔레스였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은 전체적으로 연역법적 태도를 공격하고 귀납법적 태도를 옹호한다. 어쩌면 전체주의 시대를 겪었던 칼 포퍼가 시대를 거듭하며 다른 모습을 재현되는 플라톤주의를 공격하듯(), 베이컨은 17세기 초반 서구 문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중세주의(연역법, 스콜라철학,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이 책,..

리퀴드 러브, 지그문트 바우만

리퀴드 러브 Liquid Love 지그문트 바우만(지음), 권태우, 조형준(옮김), 새물결 예전같지 않다(그런데 이 문장은 식상하면서도 낯설다. 여기서 '예전'이란 언제를 뜻하는 것인가, 정작 나 자신도 그 때를 지정할 수 없는). 나도, 이 세계도. 세상이 바우만이 바라보는 바대로 변한 것일까, 아니면 변한 세상을 정확하게 바우만은 읽어내는 것일까. 이 책을 읽기 전에 이토록 절망적인 해석을 담고 있으리라곤 생각치 않았다. 적당하게 우울할 것이라곤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곤. 우리 시대에 아이는 무엇보다 정서적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부모가 되는 기쁨은 자기 희생의 슬픔 그리고 예견할 수 없는 위험들에 대한 두려움과의 일괄 거래 속에서 온다. - 113쪽 그는 모든 것을 소비 사회라는 필터를 통해 ..

유감이다, 조지수

유감이다조지수(지음), 지혜정원 어쩌면 나도, 이 책도, 이 세상도 유감일지도 모르겠구나. 다행스럽게도 책읽기는, 늘 그렇듯이 지루하지 않고 정신없이 이리저리 밀리는 일상을 견디게 하는 약이 되었다. 하지만 책 읽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나는 이제 책 읽는 사람들을 만날 일 조차 없이 사무실과 집만 오간다. 주말이면 의무적으로 가족나들이를 하고 온전하게 나를 위한 시간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이젠 그런 고민마저 사치스럽다고 여기게 되는 건 그만큼 미래가 불안하고 현재가 아픈 탓이다. 근대는 "주체적 인간"이라는 이념으로 중세를 벗어났다. 현대는 "가면의 인간"에 의해 근대를 극복한다. 우리의 새로운 삶은 가면에 의해 운명의 노예라는 비극을 극복한다. 가면이 새..

뒤러Durer, The Knight, Death and Devil(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The Knight, Death and Devil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Albrecht Dürer 알브레히트 뒤러 1513, Copperplate 동판화 기사 옆으로 죽음과 악마가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한다. 이 명료한 동판화는 르네상스 시기의 신념을 보여준다고 할까. 인간이 가는 길을 과거의 유물들 - 죽음, 악마 - 이 훼방 놓으며 가지 못하게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종종 후기 고딕적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 만큼은 근대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기사는 도상학적으로 진리를 수호하는 자로 해석된다. 과거 종교인이 가졌던 역할을 이제 기사가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극적인 변화는 르네상스 시기를 문예부흥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시기가 아니라, 급속하게 변화하는 혼돈기였음을 짐작케한다. 결국 고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