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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안경을 바꿔야 할 시기가 지났다. 나를,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신경쓰이게 한다. 글자가 흐릿해지는 만큼 새 책이 쌓이고 잠이 줄어드는 만큼 빨리 지치고 상처입는다. 변화는 예고 없이 방문하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곤 사라지며 흔적을 남긴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빠르게 늘어나 거의 매일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노트북이 가벼워진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가벼워질수록 이 녀석이 자주 나타난다. 사무실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까페에서, 심지어 집 거실에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메일이 오고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온다. 


미팅을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근처 카페에 들어와 메일을 확인하고 일을 한다. 그렇게 오후에서 저녁이 되었다. 또 야근이었다.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합정역 인근의 커피숍. 높은 천정. 단순한 인테리어. 직사각형의 공간. 낮은 테이블 맞은 편으로는 높은 선반 위에 그 모습을 뽐내는 커피머신들. 그리고 혼자 샵을 지키는 소녀. 커피를 내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커피 향이 퍼지고. 





무심코 시킨 아메리카노.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움. 커피는 매우 근사했다. 견고한 아로마. 고소하면서도 깊이 있는 풍미. 끝 여운 속에서, 일부는 부드럽게, 일부는 거칠게 입 안을 휘감아 돌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여기저기 전화를 받았고 전화를 했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잠시 내 삶을 생각했고 길게 그동안 내렸던 내 의사결정들을 후회했다.






스트라다 로스터스의 커피에 매료된 나머지, 드립용으로 분쇄한 커피를 사가지고 왔다. 오래된 칼리타 서버, 드리퍼도 작은 것으로 새로 장만하고 드리핑을 했다. 물줄기는 얇게, 속도는 천천히, 그렇게 빙빙, 빙빙, 돌렸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도 빙빙 돌아 여기로 온 걸까. 물줄기는 빙빙 돌아 커피와 섞여 근사한 드립 커피가 되는데, 나는 빙빙 돌아, 돌아, 왜 뒤쳐진다는 생각만 드는 걸까.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다시 읽으며 문학과 연극, 예술과 삶에 대해 중얼거렸다. 중얼거림에 대한 결론은 없고 오직 죽음만이 우릴 기다린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칼 야스퍼스였던가. 오직 죽어가는 나만 있을 뿐...이라고. 어쩌면 실존이란 바로 저것이다.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것. 나와 너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 



햄릿: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마음 속으로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워 그것을 물리쳐야 하는냐.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일일까. 남은 것이 오로지 잠자는 일뿐이라면 죽는다는 것은 잠드는 것. 잠들면서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잠들면서 수만 가지 인간의 숙명적인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최상의 것이로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 아마도 꿈을 꾸겠지. 아, 그것이 괴롭다. 이 세상 온갖 번민으로부터 벗어나 잠 속에서 어떤 꿈을 꿀 것인가 망설여진다. 

- 셰익스피어, <햄릿>, 제 3막 1장 



하지만 다행이다. 작은 것들은 지친 우리를 위로해주고 있으니. 저 커피처럼. 


혹시라도 합정역에 가게 된다면 저 커피숍에 가길 바란다. 최근 몇 해 동안 마신 커피 중 최고였다.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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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많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다. 마흔이 지난 후, 일만 한 듯 싶다. 한 때 미술계에 발 담근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전시를 보러 가는 횟수도 줄었고 미술계 사람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돌이켜보니, 내 잘못도 많은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지난 1년 간 대형 SI프로젝트 내 단위시스템 PM 역할을 수행하면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전체 프로젝트 관점에서의 단위 시스템에의 접근, 협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PM으로서 인력 채용과 관리 등 많은 부분에서 그동안 내 장점으로 부각되었던 것들이 단점으로 드러나 더욱 힘들었다. 


잠시 쉬면서 지난 1년을 되새기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배워야한다는 건 늘 힘들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끊임없이 변화할 수 밖에 없고, 과거의 나를 부정해야 한다. 미래라고 해봤자 불과 몇 십년인데, 계속 변화시켜야만 한다. 현대란 유동적인 것이라고 했던가. 하긴 지그문트 바우만은 아예 '액체근대'라고 했으니. 


1년 만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 과연 나를 채용하기 위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만한 이력서인가 돌이켜보았다. 늘 채용이 결정되고 난 다음 이력서를 냈다. 단 한 번도 이력서를 먼저 제출하고 입사한 적이 없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인데, 그러기엔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다. 


이래저래 고민 많은 3월이다. 잠시 쉬고 있던 영어 공부를 하는 중인데, 언어는 참 부단히 배워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여유가 된다면 몇 달 영어 연수나 갔다 오면 좋겠다. 



거의 반 년만에 교외로 나들이를 했다. 아직 서해 바다 바람은 차기만 했다. 중고차라도 하나 구입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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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진 못했지만, 가을과 겨울 사이 몇 권의 소설들을 읽었다. 루이지 피란델로의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 조나선 사프란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김연수의 <<7번 국도>>.  이 밖에도 몇 권의 책을 읽었고 짧게나마 리뷰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글은 형편 없고 독서의 질은 끝 모를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책을 읽긴 했다. 의미과 무의미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독서였다. 왜 나는 갑자기 이렇게 소설책들을 많이 읽게 된 것일까. 


원하지 않는 일들이 연거푸 초가을부터 초겨울 사이 일어났다. 주말 없이 사무실에 나가고, 밤 늦게 퇴근하는 생활이 반복되었고 욕 먹으면서 일을 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급여가 밀렸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나는, 그들의 불성실함 대신 출근하지 않는 불상사를 염려했다. 실은 이때 반대로 움직여야만 했는데, 그러질 못했고 그럴 형편도 되지 않았다.


내가, 우리 팀이 맡은 부분은 종속적 시스템인지라 타 시스템이 끝나야만 처리되는 일이었지만, 다른 시스템들은 우리와 무관하게 미궁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께서 입원하셨다. 고향에서 서울로, 다소 생소한 병명으로 송파구에 있는 큰 병원으로 와서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여의도 사무실과 서울 동쪽 끄트머리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몇 주간 했다. 그 사이 회사에선 나를 대신할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지 못했고 대신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수술은 잘 끝나, 아버지께선 다소 고통스러우나, 약간의 희망을 얻을 수 있는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다. 미궁으로 빨려들어가던 주 시스템 개발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프로젝트는 내가 맡은 부분만 남는 상황이 되었다. 스트레스와 부담감은 끝없이 치솟았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들마저 그만 두겠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었)다. 그냥, 계속 해왔던 것처럼 욕 먹으면서 일 하는 것. 


이전 회사들을 다니면서 WLB(Work-Life Balance)를 이야기하곤 했는데, IT 프로젝트들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알려진 금융권 차세대 프로젝트에선 '일과 일상 사이의 조화'란 불가능하다, 불가능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이상한 상황 속에서 '다들 원래 이래', 그러면서 그걸 묵묵히 견디며 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다들 SM인 걸까. 얼마나 험난한 일을 거쳐왔는가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날을 기대하는 걸까. 그런 고난 거쳐 성공했다고. 뭔가 이상하지만, 나 또한 그러고 있(었)다. 


우리들의 목표, 우리들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스무살 때는 뭔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만 든다. 대단하다고 여겼으나, 다들 평범했고 똑똑하고 영특하다고 여겼으나, 현실적 영향력은 없었다. 그저 다들 별 볼 일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늦었지만, 지금 사무실로 나가 저녁에 돌아올 듯 싶다. 26일도, 27일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1월 안에 내가 맡은 이 일들이 끝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뭘 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술을 마시면 폭음을 하게 되고 내 일상을 망가뜨렸다. 내년 2월, 편안한 마음으로 술을 마실 수 있기를 기대해보기로 하자. 전시도 좀 보고 여행도 다니고 ... 그게 가능할련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계절 사이에서 내가 읽었던 소설들의 짧은 느낌을 덧붙인다. 


피란델로의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에선 주인공 파스칼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사랑은 잃어버렸지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던 과거의 인생과는 결별할 수 있었다. 하나의 상처는 또 다른 상처로 해소된다.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는 현대 예술에 대한 코메디이고, 사프란포어는 특유의 형식 속에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마지막 부분에 가서 울컥하기도 했다.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저널의 찬사와 달리 약간 맥이 풀리는 느낌이랄까. 그만큼 이슬람의 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김연수의 <<7번 국도>>는, ... 아직도 출판되고 있다느 것이 의아스러웠다. 이십대 중반 김연수가 쓴 소설이고 형편없었다. 실은 내가 이 소설을 잘못 구입한 것이다. 


좋은 일이 뜸하다. 기쁜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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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작은 글 하나 써서 올릴 틈도 없는, 하루하루가 지난다. 낮엔 잠시 비가 왔고 우산을 챙겨나온 걸 다행스러워 했으며, 저녁엔 비가 그쳤고 손에 든 우산이 거추장스러웠다. 내 과거는 다행스러웠고 내 현재는 거추장스럽다. 


집에 와서 페이스북에 한 줄 메모를 남겼다. 


*   *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꿈을 현실로 만든다는 건 ... ... 반대로 현실을 꿈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현실을 꿈으로 만들겠다. ... ... 거참, 힘든 일이다.


*   * 


십수 년전부터 선배들을 따라 간 호텔 바를 얼마 전에도 갔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와인을 마셨다. 한창 와인 마실 때가 그립다. 그 땐 미래가 있다고 여겼다. 

갑작스러울 정도로 세상이 엉망이 되었다.


이젠 술을 마시기도 힘든 시절이 되었다. 내 몸도, 내 마음도, 이 시절도, 이 도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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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엑달을 듣는다. 최근 블로그에 개인적인 근황을 적을 틈도 없다. 왜 그럴까. 바쁘기도 엄청 바쁘다. 이렇게 늙어간다는 생각에 약간(혹은 매우) 서글프기도 하다. 밤 10시를 향해 가는 시각, 나는 퇴근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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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 PC로 옮기니,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요즘 내 신세같다고 할까. 일은 밀려드는데, 바로 실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한 제안은 긍정적인 담당자 손을 떠나 위에서 보기 좋게 떨어진다.


또다시 나는 경영을 배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딱 맞다. 아직 배운다는 건 좋지 않은데, ... 이 말은 죽을 때까지 할 것같으니 걱정이다. 


올해 독서 계획 중에 '정치철학' 책을 읽자는 것이 있었는데, 바쁜 일상 속에 흐지부지 되었다. 블로그에서 정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대선을 앞두고 한 번 올릴 예정이다. 설마 선거법 위반으로 걸려들어가는 건 아니겠지. 




요즘 주로 활동하는 곳은 구로디지털단지다. 이 곳은 좀 삭막한 느낌이다. 





사무실이 있는 빌딩 맞은 편 건물이다. 폰으로 볼 땐 봐줄만 했는데, PC로 옮겨서 보니 아니었고 보정도 하고 수정해도 별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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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21세기의 새로운 목표를 40도로 잡은 듯, 서울 8월 기온은 연일 40도까지 올라가는 듯하다. 이런 더위, 낯설다. 아침에 일어나, 아파트 현관을 나가면, 밖에 절정에 이른 아열대성 더위 속에 야자수들이 길게 뻗어 있고 빽빽한 녹색으로 우거진 숲이 펼쳐질 것같다고 이야기하자, 아내가 너무 낙천적이라며 웃었다. (진짜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에 온 기분이 든다.)


낙천적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난 주말에는 올해 처음으로, 한 페이지의 글도 읽지 않았다. 실은 서재가 너무 더운 탓이다. 무거워져 있는 머리 탓이기도 하다. 한 페이지라도 읽지 않으면 불안했는데, 책을 읽으려고 하면 8개월 된 아들 녀석의 소리가 들리는 탓에 읽지 못하고 거실에서 빈둥빈둥 거렸다. 


최근 힘들게, 두 개의 글을 연기된 마감 기한을 끝까지 채우고 보냈다. 최근 들어 원고 마감을 심하게 어기는 법이 없었는데, 이번엔 너무 심했다. 


이번에 쓴 두 개의 글 주제는 '상대의 마음을 얻는 협상법', '부하에게 효율적으로 화내는 방법'이었다. 솔직히 글의 방향 잡기가 어려웠다. 글이란 자기가 알고, 자신이 확신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실용적인 내용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고민이 많았고 예상 밖으로 내가 참조할 수 있는 자료도 많지 않았다. 책 몇 권 읽은 것이 다였으니.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나이가 들수록 반성하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한때 '나이 들어 반성하는 나'를 무척이나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젊을 때의 반성은 종종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희석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이 들었을 때의 반성은 이제 세상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가족과 조직에 대한 책임감으로 반성한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강한 실행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까. (실은 나이 들어 반성하면서, 그걸 되풀이하는 부끄러움을 아는 탓일테지만) 


나에게 제법 큰 변화가 생겼는데, 8월 하순부터 다른 곳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출근하기 전, 먼저 명함을 요청했다. 그 사이 뵙지 못한 분들께 연락하고 안부라도 전할 생각에.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선 업무 인수 인계를 진행 중이다. 사장도 아니면서, 지금 있는 회사 걱정 하는 내 자신이 우습긴 하지만, 여하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두꺼운 업무 인수 인계 문서를 작성하고 파일은 업무 폴더별로 정리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얻게 된 연락처 목록, 이메일 기록 등을 전달할 예정이다. 현재 몸 담고 있는 프로젝트 협업사 담당자는 '나가시는 분이 너무 열심히 하시네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잠시 웃었다.


요즘 부쩍 책이 읽히지 않고 글이 씌여지지 않는다. 머리는 무겁고 마음은 걱정스럽고 몸은 더위에 지쳐 현기증까지 돈다. 나이 들어 이직하는 것이 엄청 부담스럽고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이직의 시대다. 박지성이 자리를 옮겼고, 마리사 마이어가 구글에서 야후로 자리를 옮겼다(ㅡ_ㅡ;;). 


여름 휴가 기간 동안, 미술 비즈니스를 끝내고 들어간 IT 기업에서 최선을 다해 부딪힌 4년의 고민들을 정리하고(여기에는 의외로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령, 성과중심주의, 효율적인 조직 구성과 Team제, 주간회의 운영법, 조직 갈등과 CEO의 역할, 벤처 기업(중소기업)에서 중간 관리자의 역할, 작은 기업을 위한 인력 충원 전략 등), 예전부터 정리해보려고 했던 경영 주제들 - 전략적 아웃소싱, 기업 전략과 혼다 효과(Honda Effect), 자원기반 관점에서의 기업 경영 등에 대해 읽고 메모하기, 최근에 알게 된(너무 늦게 알게 된 주제인) Lean Startup에 대한 스터디 등을 해볼 생각이다. 그러면서 새롭게 맡게 될 업무들에 대해서 준비할 것이다(너무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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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잘 다니는 친구가 나이 마흔에 젊은 헤드헌터에게 이직을 이야기해놓았는데, 연락이 없다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서른 넷에 어느 헤드헌팅 회사에서, 지금은 코스닥 상장 기업으로 나가는 벤처 기업의 마케팅팀장으로 제안이 들어왔는데, 보기 좋게 거절했다. 그것도 미술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그리고 아주 오래 동안 서서히 가라앉았다. 뭐, 좋은 경험을 쌓긴 했지만)


다시 이직을 고려 중인데, 쉽지 않다. 쉽지 않다는 건 '옳긴다는 사실'이 아니라 '옮기고 난 다음의 여러 권한과 책임' 탓이다.


나이가 마흔이 되고 보니, 일을 한다는 건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이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뢰를 얻으면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신뢰를 얻은 만큼 정성과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모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은 올해 초부터 헤드헌팅 회사에 이력서 등록을 해볼까 했는데, 의외로 고리타분한 나는 '나를 인력 시장에 내놓다는 행위'를 심정적으로 싫어했다. 마치 19세기부터 생긴 '가난하고 불행한 예술가'라는 전형은 귀족 패트런이 사라지고(토지 귀족의 몰락과 신흥 부르조아지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 한다), 자신, 혹은 자신의 작품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만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듯, ‘나를 마켓에 내놓다는 것’에 대한 심정적 거부는 의외로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것부터 ‘가난하고 불행한 예술가의 탄생’까지, ‘나를 마켓에 내놓는 행위’가 가지는 중층적인 의미는 매우 복잡하고, 한편으로는 아주 불행한 현대 자본주의 문화의 단면인 셈이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몇 주가 흐르는 사이, 술자리가 많았고, 현재 맡은 프로젝트는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 지났고, 그 결과 원고 마감을 놓쳤다. 오늘, 내일 원고를 마무리하고 보낼 것이다. (그 전에 사과 메일을 보내야겠다.)


옮기게 된다면 강남에서 구로로 옮기게 될 것이고, 하는 일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좀더 속도를 내어 회사를 성장시켜야 할 것이니. 하긴 지금 있는 회사도 내가 있는 3년 동안 사업 부문 매출이 2배로 뛰었고 인원도 2배로 늘었다. 내 혼자 한 건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나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한 듯 싶어 기쁘고, 운도 좋았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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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주로 클래식 음악만 듣는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너무 좋다. 요즘은
보라매 공원에 있는, 낡은 건물의 도서관에 간다. 요즘은 저금통에서 동전들을 잔뜩 꺼내어 소비한다. 도서관 출입비 삼백원. 자판기 커피값 이백오십원. 동전으로 인생을 가리고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면도를 한다. 면도할 때마다 인생 모양으로 턱 수염이 난 것에 경악한다. 요즘은 책만 읽는다. 허먼 멀빌의 모비딕을 읽고 뽈 발레리의 산문을 읽는다. 요즘은 그림책을 많이 본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영어로 된 글을 읽는다. 요즘은 핸드폰을 잘 받지 않을 뿐더러 아예 꺼놓기까지 한다. 요즘은 하늘 볼 일도 땅 볼 일도 없이 뿌옇게 변해가는 거리만 본다. 거리 속에서 추악한 모습들을 한 영혼들을 피해다닌다. 요즘은 가슴이 텅 비었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텅 빈 가슴에 대한 비유를 자주 한다.

그건 속이 텅 빈 나무.
계절 따라 색을 바꾸지만 언제나 두드리면 '터엉''터엉' 슬픈 소리만 들리지.

그건 햇빛 뚫지 못하는 투명한 유리창.
그래서 누군가 찬란한 빛으로 된 창으로 뚫어주길 기다리는 것.
그건 들리지 않는 소리.
유쾌한 리듬으로 울리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소리. 그래서 외로운 소리.
그건... ...

요즘은 주로 말줄임표로 산다. 그건 말을 잃어버린 탓.
요즘은 너무 많은 생각은 한다. 그건 무언가 잊기 위한 몸짓.
요즘은 어제 생각을 한다. 그건 내일이 두려운 탓.
요즘은 내 몸을 자주 어루만진다. 그건 너무 외로운 탓.

요즘은 ...
요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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