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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풀베개

나쓰메 소세키(지음), 오석윤(옮김), 책세상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풀베개>>의 놀랍고 아름다운 시작은, 어쩌면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소설은 독자가 읽게 되는 첫 문장들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어쩌면 '하이쿠 소설'이라는 후대의 평가도 우호적인 것일지도.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 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가 어렵다면, 살기 어려운 곳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서 짧은 생명을, 한 동안만이라도 살기 좋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시인이라는 천직이 생기고, 화가라는 사명이 내려진다.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 세상을 느긋하게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까닭에 소중하다.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기 어렵게 하는 번뇌를 뽑아내고, 고마운 세계를 직접 묘사해내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혹은 음악이고 조각이다. 자세히 말한다면 묘사해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직접 보기만 하면 거기에서 시도 생기고, 노래도 샘솟는다. 착상을 종이에 옮기지 않아도 보옥이나 금속이 부딪쳐서 나는 소리는 가슴속에 일어난다. 

- 7쪽~ 8쪽



하지만 소세키는 우리를,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나는 소설 속의 '나미 氏'와 같은 이를 그리워하고 있는 지도 모르고, 작중화자처럼 그런 여행을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에게 이 소설은 부러움의 대상인 셈이다. 


그래서 소설은 전쟁 중인 현실과 멀리 떨어져, 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아주 자주 딴 세상을 꿈꾼다. 그건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저 지금 여기를 벗어나 잠시 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남 몰래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고, 경제적 불안이나 세상사의 갈등이나 불협화음에서 벗어나, 어떤 사색의 풍요로움 속에 빠지고 싶은 게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사색의 풍요로움으로 넘쳐나며, 나미 氏의 가느다란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소세키의 소설들 대부분이 현실 속에서 갈등하며 흔들리는 자아의 심리를 보여준다면, 이 <<풀베개>>는 그 갈등과 흔들림에서 한 발짝 옆으로 벗어나 꿈 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 끝에서 나미 氏의 이혼한 남편이 등장하고 전쟁터로 나가는 규이치를 배웅해주는 장면에서, 주인공 화자가 그림 한 장면을 포착해내는 순간, 결국 예술의 창작은 꿈에서 벗어나 현실의 슬픔 속에서 나온다는 걸 이야기할 땐, 여행의 끝은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것임을 비극적으로 깨닫게 된다. 



나미 씨는 우두커니 떠나가는 기차를 보내고 있다. 그녀가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에,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애련이 얼굴 가득히 떠 있다. 

"그거야! 그거야! 그게 나오면 그림이 됩니다."

나는 나미 씨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속삭였다. 내 가슴 속의 화면은, 뜻하지 않았던 바로 이 순간에 이루어졌다. 

-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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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 가운데 호텔 입구의 새벽 3시는 고요하기만 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호텔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이 연상되는 것은, 호텔이라고 하면, 놀러오는 곳이라는 인상이 깔려있어서다. 


떠.나.고.싶.다.

모.든.것.을.버.리.고.

저.끝.없.는.우.주.여.행.을. 


호텔은 해마다 한 두 번씩 돌아오는 낯선 우주다. 호텔의 하룻밤은 아늑하고 감미로우며 여유롭지만, 그와 비례해 시간은 쉽게 사라진다. 



새벽 3시. 여의도 콘래드 호텔 바로 옆 빌딩에서 며칠 째 새벽까지 일을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원하지도 않았으며 끌려다녔다. 이런 식이라면 그만 두는 게 상책이나, 관계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를 일이다. 


관계는 우리는 견디게 하고 지치게 하며 상처 입히고 미소짓게 만든다. 관계의 해석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저 지금/여기에서만 유효한 어떤 정의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실재론자들에겐 시간은 무의미하고 운동이란 없는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고 그녀/그는 언제나 내 옆에 있다,고 말한다. 경험 상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입지 않기 위해, 상처입었음에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마음 깊숙한 곳으로 사랑을 끌어당겨 마음의 문을 닫는다. 


거의 2주 가까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일에 쫓겨 살았다. 미술 평론 하나 써서 내기로 한 약속도 깨졌고 지금 하는 일에 대한 금전적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꿈꾸는 중년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표현이다. 하지만 미성년적 자아를 가졌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중년들은 죄다 미성년이다. 꿈을 꾼다. 도망가거나 회피하거나 쫓기거나.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뿐. 사회가, 시스템이 강제하는 어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리곤 어느 순간 깨달을 것이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이 여름이 가고 또 다른 가을이 오면, 이브 몽땅의 고엽을 들으며 술을 마셔야지. 에디뜨 피아프와 자끄 브렐까지. 술을 마시면서 떠나간 옛사랑과 우리 아이의 미래와 내 절망과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 술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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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할 때면, 혼자 나가 햄버거를 먹고 프로젝트 사무실로 돌아온다. 재미없는 일상이다. 근사하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많고 긴장을 풀 수 없다. 잘못 끼워진 나사 하나가 전체 프로젝트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퇴근길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요즘은 ... 조용한 단골 술집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하지만 조용하면 장사가 되지 않는 것이니, 다소 시끄러워도 혼자 가서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가끔 바Bar같은 곳을 들리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샐러리맨이 가서 맥주 한 두 병 마시기엔 눈치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퇴근길. 나에게도 다시 해가 뜨길 꿈꾸어 본다. 뭔가 다시 시작해야 겠다. 다시 준비하고 다시 노력해야지. 결국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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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작은 글 하나 써서 올릴 틈도 없는, 하루하루가 지난다. 낮엔 잠시 비가 왔고 우산을 챙겨나온 걸 다행스러워 했으며, 저녁엔 비가 그쳤고 손에 든 우산이 거추장스러웠다. 내 과거는 다행스러웠고 내 현재는 거추장스럽다. 


집에 와서 페이스북에 한 줄 메모를 남겼다. 


*   *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꿈을 현실로 만든다는 건 ... ... 반대로 현실을 꿈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현실을 꿈으로 만들겠다. ... ... 거참, 힘든 일이다.


*   * 


십수 년전부터 선배들을 따라 간 호텔 바를 얼마 전에도 갔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와인을 마셨다. 한창 와인 마실 때가 그립다. 그 땐 미래가 있다고 여겼다. 

갑작스러울 정도로 세상이 엉망이 되었다.


이젠 술을 마시기도 힘든 시절이 되었다. 내 몸도, 내 마음도, 이 시절도, 이 도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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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내 마음에, 그대 가슴에, 온 우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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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만 해도, 소설가가 되리라는 꿈을 꾸곤 했는데, 지금은 놓은 지 오래다. 얼마 전 아는 형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 나가는 소설가들의 인세 이야기를 듣고선(뭐, 한국에서 몇 명 되지도 않지만), 약간 부러웠던 건 사실이다. 아니, 매우 부러웠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소설가가 되지 않은 것이. 적어도 이제서야 인생의, 아주 작은 일부를 안 것 같으니 말이다. 아마 그 땐 다 거짓말이거나, 짐작, 혹은 추정이거나 과도한 감정 과잉 상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문득 습작을 하던 글이 눈에 띄어 옮긴다. 이것도 거의 십오년 전 글이군. 그 사이 한 두 편 더 스케치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술만 마셨다. 어떤 소설이 아래와 같이, 이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역시 글은 마감이 힘이다. 마감이 있어야 하고 마감을 지켜야 하고 마감을 이겨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마감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끝나지 않는 마감이 있을 뿐. 


* *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황폐하게 부서지는 가을 햇살 속을 걸어가는 한 여자의 모습을 본 후, 익숙함이라든가, 낯섦이라든가 하는 생의 사소함 따위들이 내려앉는 소리가 찻집 구석진 곳에서부터 울려나왔다. 하지만 그때도 늦진 않았다. 만약 그때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난 매일 이 자리에 와서 유리창 바깥만 바라보는 일 따위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밤이면 누군가를 품에 안고 잠을 잘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매일 이 자리에 와서 창 밖을 바라본 것도 벌써 십칠 년이 흘렀다. 그 십칠 년 동안 내가 바라는 유일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어제 밤, 술에 취한 한 여자가 이 테이블을 작은 두 손으로 내리쳤을 때, 그 일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되었음을, 골목길을 쓸쓸하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게 전해 들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자신의 쓸쓸함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라, 중년의 주름진 볼 위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했다. 십칠 년 동안 눈동자 뒤편에서 깊은 희망의 수면(睡眠) 속에 있던 눈물들이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동안 난 차마 그 이름을 혓바닥 위에 올리지 못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된 이유는 나처럼 희망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희망을 이루고 난 이후, 그 희망이 자신이 바라던 그 희망과는 달랐기 때문일까. 그건 손바닥만한 무쇠덩어리에서 나간 손톱만한 고철덩어리가 한 영혼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여하튼, 이미 모든 것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그건 한 여자를 집요하게 쫓아다닌 한 남자에게 한 여자가 ‘지금 당신은 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순간보다 더 늦은 순간이다. 그 순간에 느닷없이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저 어두운 우주 저편으로 사라진다. 난 그 이름을 부르는 대신 ‘인생무상’이라는 단어를 혓바닥 위로 올렸고 얼마 뒤 그 소리는 어두운 우주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 찬란한, 그러면서 너무 슬픈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따라가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지기엔 내 인생이 불쌍했는지 난 이렇게 오래된 빈 노트 한 권을 꺼내 넋 나간 듯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흔적을 남기기 위하여.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존재하고 있을까.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과연 있을까.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빗물에 지워지고 바람에 묻어 날아가지만, 그래도 흔적은 끝내 남아있기 마련이다. 내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었던 흔적부터 처음 자위행위를 하고 난 다음 부드러운 표면의 성기에서 나온 정액의 흔적까지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 글도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다음 몇 년,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이 지난 후 그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힐지도 모르며 이 속에 담긴 내 눈물 자국을 보면서 나처럼 ‘인생무상’이라는 단어를 혓바닥 위에 올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런 이유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글을 쓰고자 했다면, 난 이런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아픔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 분명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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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운동을 한다. 이마저도 힘들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 저녁을 먹고 아이와 놀다 보면 9시, 10시, ... 이러면 운동하러 가지 못한다. 그리고 잔다. 꿈을 꾼다. 꿈 속에서도 나는 쫓기고. 그러다보면 아침이 오고 곱게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힘을 내자고 다짐을 한다. 


이렇게 아빠,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된다. 종종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놀란다. 이렇게 늙었다니. 그러고 보면 늙는다는 걸 인식하며 세월을 보내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 늙었구나 하고 인식한다. 그리고 그 때 뿐이다. 


나는 아직 클럽에 갈 수 있다고 여기고(간 적도 없지만), 아직 옆을 지나는 여대생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말을 건 적도 없지만). 




회사 워크샵을 다녀왔지만, 뾰족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가자는 자리였다. 그 목적이 달성되었는지는 시간이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지만. 그러기엔 산적해 있는 문제가 너무 많고 비즈니스 세계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제서야 나는 조직이라든가 인적 시스템라는 것에 대해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참 잘하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관련 책 읽고 사람들 신경 쓰고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앞으로 나가려고 노력한다. 솔직히, 정말 쉽지 않다.




요즘 지나가는 말로, 대체로 무슨 일을 하려고 내가 이러는 걸까 하곤 중얼거리곤 한다. 회사를 옮기고 참 많은 일들을 겪고 있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고 나는 나이를 먹겠지. 결혼을 하고 보니, 참, 아빠들 어렵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아빠들 중 돈 많고 힘 있는 이들은 떼지어 이 사회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거참. 그나저나 글은 언제 쓰나. 전시는 언제 보고 벗들과 술은 언제나 마시나. 할 이야기가 많아지니, 글을 쓸 시간이 없구나.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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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옮긴다. 어차피 조금 지나면 잊혀질 듯한 단상이지만, 고민 많은 요즘 조금의 정리를 위해서 블로그에 저장해둔다. 



지치면 꿈 꾸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번의 잠, 한 번의 꿈꾸기만 허용될 뿐이다. 
꿈 꾸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죽음과 가까워져 있음을, 마치 햄릿의 대사처럼. To die, to sleep - to sleep, perchance to dream.. 결국 죽음, 잠, 꿈이 뒤엉킨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지치는 건 다반사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단거리 주자가 성공하는 법은 없다. 성공적인 단거리 주자에서 성공적인 장거리 주자가 되던지, 속도를 내지 못하는 단거리 주자라고 해서 성공적인 장거리 주자가 되지 못하는 법도 없다. 어떻게 성공적으로 장거리 완주를 하고, 또 할 것인가가 요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장거리를 채 완주하기도 전에 지치고, 지치면 꿈 꾸기 마련이다. 그것은 장거리를 완주하는 꿈. 그러나 그 꿈은 현실과는 너무 멀리 있고,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행운. 비현실적인 행운. 또는 기적적인 행운으로 성공에 이른 스토리의 위안 등으로 꿈은 채워지고 현실적인 가능성은 뒤로 밀려난다. 

지금 지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런 꿈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달릴 수 있는 체력, 그것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 그리고 최적의 달리기를 위한 호흡법, 주법(走法), 주위의 격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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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완벽해지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일까. 자정이 되기 한 시간 전에 잠에 들었으나, 새벽 2시에 잠을 한 번 깨고 결국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고 말았다. 턱없이 이른 일요일에 일어나 할 것이라곤 커피를 마시거나 음악을 듣거나 밀린 신문을 읽는 것이 전부다.

어젠 무리할 정도로 운동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쓰지 않던 근육들이 아프다. 가령 뒤어깨 근육이나 앞장단지 근육.

오늘 아무런 일정도 없다. 이런 날 뭔가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해보지만, 늘 그렇듯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밀린 일들이 많은 만큼, 나는 턱없이 많은 계획을 마음 속에 쌓아두고 있다. 그 계획들을 다 꺼내 처리하다 보면 지구 온난화 문제까지 해결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마음 한 켠의 슬픈 마음이 채 가시지 않는다. 난 그 슬픈 마음의 정체를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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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섭 2008.12.08 00:22 신고

    뭉텅 잠을 베어낸
    명료함의 질료 한덩이

    하루, 나의 조각품은
    질료 자체로 놓여져 있고

    나는 조악함이나 잡다함이나 불순함 따위의
    끌질조차 전혀 하지 않고

    그저 무아의 감상속으로
    익숙한 아침 산책을 한다


잠시 그친 비가 다시 내린다. 자기 전에 잠시 가위에 눌렸고 일어나기 전에 잠시 꿈을 꾸었다. 꿈을 꾸면서 울었다. 일요일 낮잠에서도 나는 꿈을 꾸었고, 그 속에서 울고 말았다. 눈물 많은 남자라고 비난할 지 모르겠지만, 꿈을 꾸면서 우는 건 매우 특이하고 낯선 경우다.

당황스러운 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피지 않던 담배를 피우고 진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다. 오늘은 여기저기 갈 곳이 많은데, 비가 온다. 좋은 일인가, 아니면 나쁜 일인가.

반젤리스의 73년도 앨범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음악을 듣던 시절이 그립다. 하긴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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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바다 2008.06.17 23:06 신고

    저도 가끔가다 꿈속에서 많이 우는데요.. 울다가 깨노라면 기분 이상합니다. 심란하죠.

    • 꿈에서 운 기억이 한참 가는 듯합니다. 그날 종일 우울한 기분을 어쩌지 못하죠. 심란한 일임에 분명해요.

  • 대학교 4학년때 잠깐 좋아했던 여자가 반겔리스 팬이였습니다. 저도 반겔리스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내에 수입되어 있던 반겔리스의 모든 음반을 구입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턴테이블이 없어 십년넘게 잠자고 있는 그 음반을 깨우고 싶어지네요... 쓰신 글의 주제와는 상관없는 주절거림이였습니다 ^^

    • ebay.com에서 턴테이블 하나 장만하심이 어떠신지? ^^.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제법 괜찮을 거예요. ebay.com에 나오는 중고 턴테이블 중에서 싸고 쓸만한 것들이 많거든요. 단 집에 있는 앰프에 phono 단자가 있는지 확인하시고.. 없으면 phono앰프를 따로 사야하는 번거러움이 있습니다. : )

  • 2008.07.06 01:10

    비밀댓글입니다


어떤 꿈은 너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그것은 실제 기억과 융합되면서 자연스럽게 현실의 기억이 된다. 아마 다수의 사람들에게 일어났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일은 사소하지만, 사람들에겐 견딜 수 없는 정도로 깊이 패인 정신의 상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눈을 뜨고 살아가지만, 우리가 가지게 되는 기억의 일부는 아주 오래전 선명하게 남겨진 꿈에게서 연유한 것. 종종 우리가 눈 앞의 현실에게서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특히 젊은 날의 열정과 꿈이 흐린 눈가나 입가의 주름 사이로 숨어버리는 삼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의 남자에게 더욱더 위험한 이 사건. 이 무렵의 남자들이란 대개 길거리에서, 직장에서 마주 하게 되는 젊음들에 대한 공포, 사랑하지만 사랑한다고 힘주어 고백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아내, 번번히 대화의 미끄러짐을 경험하게 해주는 냉담한 그의 아이들, 하루하루 정해진 일과로 짜여진 그의 모던 타임즈, 정기적으로 바뀌는 계절의 수상한 향기 속에서 그들의 영혼은 천천히 주눅 들고 지쳐가고, 그러다가 소리없이, 혹은 과감하게 오래 전 꿈을 군데군데 조각난 과거 현실의 기억 사이에 집어넣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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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정원이 된 숲
내 몸 어디에서도 고된 노동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틈 날 때마다 그 흔적을 지우고, 또 지우고, 지우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탓이다. 자줏빛 뿔테 안경을 끼고 한 손에는 낡은 수필집을 든 채, 매일매일 전투 같은 일상을 보내는 직장인으로써가 아니라 책 읽기와 산책으로 소일하는 한가로운 룸펜처럼 보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 이 세상과는 무관하게 살아간다고 웅변하고 싶은 것이다. 현실을 떠나 꿈 속 세계로. 내가 원했지만, 절대로 실현되지 않았던 어떤 것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세계로.

Fete Galante. 우아한 축제. 그 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알 턱이 없지만, 아름다운 무희가 춤을 추고 한순간도 술잔은 비는 법이 없으며, 새가 사랑을 노래하고, 얇은 바람이 시샘하듯 내 머리칼 위를 머무르며 즐거움을 훼방 놓으려 할 때, 어김없이 사랑하는 이의 입술이 내 입술로 와 닿는 그런 세계. 18세기 로코코의 귀족들은 거칠고 힘든 현실을 떠나 솜사탕 같은 가벼운 달콤함으로, 봄바람 같은 부드러움으로 가득 찬 꿈결 같은 세계로 향한다. 이 때 숲 속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사랑의 공간이 되고, 그 곳에서 우리는 영원한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잠시 고된 현실의 삶은 잠시 잊고 눈앞에 펼쳐진 꿈결 같은 즐거움에 빠지자. 그녀의 사랑스러운 고백을 들으며, 나는 그녀의 허리로 손을 가져가며 살짝 그녀를 끌어당긴다. 달빛이 투명한 호수의 물결 위로 미끄러지듯 그녀의 몸이 내게로 향해오고 숲 속은 현실 속에서 빠져나와 정신적, 육체적 즐거움을 수놓으며 깊어만 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Fetes Venitiennes>
Antoine Watteau, 1718-19년
캔버스에 오일, 56 x 46 cm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Edinburgh

로코코 양식의 위대한 예술가 장 안트완 와토의 세계이자, 상승하는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서서히 몰락해가는 귀족의 세계다. 그리고 달콤하고 화려한 색채로 충만한 이 세계는 부드럽고 느린 걸음으로 1789년의 불타는 파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그래서 Fete Galante는 겉으로는 우아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현실 속에서 자리 잡지 못한, 인정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채, 자신의 시대와는 멀어지는 토지 귀족들의 불편함이, 비겁함이, 그리고 끝내 몰락해버릴 한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 숨어있다. 물질적 풍요로움과 대비되어 나타나는 정신의 박약함은 숲 속을 현실과 멀리 떨어진 꿈 속 세계로 변화시키고 절대 버림받는 일 따위는 없는 사랑의 정원으로 만든다. 하지만 꿈은 현실 앞에서 언제나 부서지고 사랑은 끝내 산산조각 나고 만다. 그 때 숲은 쓸쓸한 도시가 되고 떠나가는 연인의 뒷모습이 되고 지금은 되돌릴 수 없는, 감미로운 과거의 순간이 된다. Fete Galante를 지배하는 것은 이런 애상이다. 그것이 거짓인줄 알면서도 현실의 아픔에 고개 돌리고 금방 꺼져버리고 말 꿈 속 사랑을 향해가는 감미로운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와토의 작품 대부분이 우리에게 가라앉은 우울함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때론 꿈속으로

사방엔 산들이 벽처럼 늘어섰고 구름과 안개는 가렸다가는 피어오르는데 멀고 가까운 곳이 모두 복숭아나무로 햇살에 얼비치어 노을인 양 자욱했다. 또 대나무 숲 속에 띠풀집이 있는데 사립문은 반쯤 닫혀 있고 흙섬돌은 이미 무너졌으며 닭이며 개, 소와 말 따위도 없었다. 앞 냇가에는 조각배가 있었지만 물결을 따라 흔들거릴 뿐이어서 그 정경의 쓸쓸함이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 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夢遊桃源記)’ 중에서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57쪽에서 재인용)


끝내 유배지에서 그 생을 다하는 안평대군(安平大君). 수상한 세상을 보며 자신을 아끼던 안평대군과의 사이를 끊어 그 생을 유지했던 안견(安堅). 이 둘을 떠올릴 때면, 그림과 무관한 세상살이를 되새기게 된다. 하지만 꿈 속, 복사꽃 흩날리는 꿈 속 세상에 걸어 들어간 안평대군은 수상한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하고 향기로운 꿈 속 풍경에 넋을 잃은 채,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사라진 그 곳에 서서 ‘그 정경의 쓸쓸함이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고 읊조린다. 그는 무슨 이유로 쓸쓸함에서 신선(神仙)을 떠올린 것일까. 그리고 <몽유도원도>가 그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형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당대 제일의 서예가요, 시, 문, 서, 화, 악에 능했던 동생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 보낸다. 서른여섯의 나이로 안평대군은 유배지 강화에서 쓸쓸히 죽고 ‘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피를 뿌린 듯 골짜기의 봄꽃만 붉다’던 어린 단종도 강원도 영월에서 끝내 죽임을 당하고 만다.

하루하루 힘들게 견디는 현대의 직장인이 밥벌이의 흔적을 끝내 지우지 못하는 것처럼, 안평대군은 현실에서의 쓸쓸함을 꿈 속 세상에까지 가지고 들어간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꿈 속 쓸쓸함을 보며, 그 쓸쓸함을 받아들였을 때, 신선이 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은 아닐까. 하지만 쓸쓸한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우리는 너무 연약하고, 세상은 거칠기만 하다. 그럴 때, 18세기 프랑스의 귀족들이 꿈꾸고 와토가 그렸던, 안평대군이 꿈꾸고 안견이 그렸던, 숲 속에 숨겨져 있는 이상향을 떠올려보자. 그러면 잠시나마 삶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아니 가벼워질 거라고 믿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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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안견, 1447년, 비단에 수묵 담채, 38.6 x 106.2cm, 일본 천리대학교 도서관 소장



글. 김용섭
(현재 직장인으로,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미토)라는 예술사 책의 공저자이다.)

(* 월간 <숲> 7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오랜만에 미술과 관련된 원고 청탁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필력은 예전만 못한 듯하네요. ㅡㅡ; 저자 약력은 편집진에 의해 수정되었습니다. 현재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문장이라 생각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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