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6

코로나 19의 봄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그럴 나이가 되었고 그럴 위치에 올라왔으며 그럴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디테일에 강해야 된다고 말하는 시대이니, 나도 사소한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확실히 17세기 유럽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근대성Modernity이란 기본적으로 바로크Baroque적인데, 어떤 목적(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을 극복해내려고 한다. 상당히 전투적이다. 과감하다. 푸생도 그렇고 루벤스도 그렇고 렘브란트도 그렇다. 다만 표현하는 방식(양식)에서의 작은 차이들이 있을 뿐, 기본적인 태도는 근대적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목표를 향해 가면서 겪는 고통마저도 고귀하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은 ..

당신의 자리 - 나무로 자라는 방법, 유희경

당신의 자리 - 나무로 자라는 방법유희경(지음), 아침달 어쩌면 진짜 나무에 대한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진짜 나무가 사람 되기를 꿈꾸는 이야기, 그래서 흔들, 흔들거리는 시집일 지도. 아니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사람 이야기일지도. 하지만 그 나무는 외롭지 않아야 한다. 시인은 '나무로 자라는 방법'을 찾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혹은 찾았지만, 행동하지 않는다. 나무로 자라지 않고 나무로 자라는 꿈만 이야기한다. 문장은 한결같이 하나로 끝나지 않고 두 세 문장으로 이어지다가 마침표 없이, 시는 끝난다. 그것은 당신이기도 하고당신이 아닐 수 없기도 하다당신이 남자와 나무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러하다- 중에서 한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을 부정하는 몸짓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건 생각 뿐이다. 행동이나 실천이 ..

근황, 그리고 내일

계단을 올라갈 때 오래된 나무 조각들과 내 낡은 근육들의 사소한 움직임으로 얇게 삐걱이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이젠 이런 종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도 없다. 나무 계단은 이제 없다. 만들지도 않는다. 나무 바닥이나 나무 계단을 뛰어가다가 발바닥에 나무 가시가 박히는 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어제는 사라졌다. 한 땐 당연한 일이, 익숙했던 사물이 지금은 낯선 것이 되거나 아련한 것이 된다. 그렇게 나도 요즘, 종종, 가끔 그렇게, 그냥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가장한 어떤 부재.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스스로에게 공포와 두려움, 끝없는 연민을 느끼곤 한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실제로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이렇게 사는 ..

I'M NOT A PINE TREE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윤석남 개인전, 학고재

I'M NOT A PINE TREE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YUN SUKNAM 윤석남10.16 - 11.24, 2013, 학고재 Hakgojae 너와 11-초록으로 물들고 싶어, 113.5x57.5cm, 2013. 제공 | 학고재갤러리출처: http://news.sportsseoul.com/read/life/1254774.htm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품이 있다. 윤석남의 작품들이 그렇다. 몇 주 전 오랜만에 나간 주말 나들이에서 만난 윤석남의 작품은 어수선하던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다. 그녀의 작품은 어머니 지구(가이아)로부터 뻗어져 나와 모든 존재에 깃든 모성의 흔적, 혹은 그리움을 담고 있었다. '나무'라는 소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에는 그녀의 작품은 나무의 느낌은 뒤로 밀리고 그 위에 그려진..

시간, 유한함, 혹은 너의 존재 - Eric Poitevin

대학에 입학했던 게 벌써 16년이 지났다. 대학 때에도 잘 모이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한동안 모이지 않다가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해마다 한 번 정도 모이게 되었다. 그것도 동기의 삼분의 일이나 사분의 일 정도만 모일 뿐, 다들 소문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런데 문학을 전공하였지만, 문학에 속한 친구들은 몇 명 없었고 직장생활을 하거나 영화나 TV 쪽에 가있었다. 나의 경우에만 미술 쪽에 있었다. 어제 일 년에 한 번 있는 송년 동기모임이었다. 보통은 시간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도 연말만 되면 '세월 참 빠르네'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시간은 참 빨리 흘러가고, 나이를 먹고 슬슬 지쳐가고 자조적인 웃음만을 가지게 된다. 시간에 대한 이런 생각은 언제서 부터 시작..

조숙진 전, 아르코미술관

Sook Jin Jo A 20 Year Encounter with Abandoned Wood: Selected Artworks from New York 아르코미술관. 8.31 - 9.30 만남이란 가슴 떨리는 신비다. 그 신비가 소란스런 대학로 한 가운데로 왔다. 흐트러진 질서와 무표정한 낡은 빛깔들로 채워진 나무들이 우리와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조숙진의 작업은 세월의 파편 하나하나를 안고 쓰러져 시간의 먼지를 먹고 있던 나무 조각조각들 꺼내어 다시 구조화한다. 그런데 그 구조화는 ‘공간’(컨텍스트) 속에서의 ‘설치와 해체’(텍스트화) 속에서 이루어져, 가변성과 우연성을 동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열려있는 성격은 관객과의 참여 속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메타포를 지니게 된다. 나무의 상징은 복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