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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강상중(지음), 김수희(옮김), AK 



강상중 교수의 책이 계속 번역되어 소개된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그의 책은 그 존재만으로도 한국과 일본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이름을 쓰는 재일한국인으로, 그리고 일본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그는, 한국과 일본 너머 어떤 곳을 지향하는 듯하다. 적어도 강상중을 읽는 일본인 독자나 한국인 독자는 서로 대화를 나눌 정도의 식견을 가졌을 것이다. (손정의도 이와 비슷하고 그는 이미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넘어 세계인이 되었으니까)


이 책은 강상중 교수가 읽은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안내서이다. 나쓰메 소세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소설가다. 무라카미 하루키, 마루야마 겐지, 오에 겐자부로를 지나 나쓰메 소세키로. 그 중에서도 나쓰메 소세키는 단연코 최고다. 이는 그가 일본소설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20세기 초반에 이미 20세기 전체를 물들이게 될 어떤 근대성을 포착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강상중 교수는 <<살아야하는 이유>>(송태욱 옮김, 사계절출판사)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강상중 교수는 이 책에서 가볍고 부드럽게 그가 읽은 나쓰메 소세키를, 그리고 소세키의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소세키의 생애와 주요 소설들에 대해 스케치를 하며 소개하고 있다.


사회는 어쩌면 미치광이들이 모여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미치광이들이 모여 맹렬히 싸우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욕을 퍼붓고 빼앗고, 그 전체가 집단적으로 세포처럼 무너졌다가 다시 솟아나고 솟아났다가 다시 무너지며 살아가는 곳을 사회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서 다소 이치를 알고 분별이 있는 놈은 오히려 방해가 되니 정신병원을 만들어 가둬둔 채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자는 보통 시민이고 병원 밖에서 날뛰고 있는 자가 오히려 미치광이다. 미치광이도 고립되어 있으면 미치광이 취급을 받지만 단체가 되어 세력이 생기면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심한 미치광이가 돈과 권력을 남용하여 대다수 경미한 미치광이들에게 난동을 부리게 하고, 자신은 사람들로부터 훌륭한 사내라는 말을 듣는 예가 적지 않다. 

- <<나는 고양이로서이다>> 중에서 


어쩌면 반-시대적이며 지식인 중심적인 소세키의 소설을 부담스러워할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나 또한, 아직 <<나는 고양이로서이다>>를 읽지 않았지만, 소세키 소설이 가진 태도를 이 책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할까. 


그리고 몰랐던 사실 하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에 대해 나쓰메 소세키는 소설 속에서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동시대와의 거리 두기가 소세키 소설이 시대를 넘어 감동과 울림을 가지게 된 계기가 아닐까. (1,000엔 지폐에 원래 이토 히로부미가 인쇄되었는데, 주변국의 반발로 나쓰메 소세키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이에 비추어 무척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솔직히 나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대해 열광하지만, 일부 독자들에게 소세키는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역자 후기를 통해 처음 알았다. 어쩌면 일종의 교과서 소설에 대한 반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점에서도 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재미있고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강상중 교수는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딱 그 수준에 맞추어 서술해내간다. 



* 최근 현암사에서 나쓰메 소세키 전집이 나오고 있다. 아래와 같은 장정으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나는 이 시리즈가 나오기 전에 번역된 소설들 다수를 구입한 상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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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나쓰메 소세키(지음), 오석윤(옮김), 책세상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풀베개>>의 놀랍고 아름다운 시작은, 어쩌면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소설은 독자가 읽게 되는 첫 문장들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어쩌면 '하이쿠 소설'이라는 후대의 평가도 우호적인 것일지도.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 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가 어렵다면, 살기 어려운 곳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서 짧은 생명을, 한 동안만이라도 살기 좋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시인이라는 천직이 생기고, 화가라는 사명이 내려진다.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 세상을 느긋하게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까닭에 소중하다.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기 어렵게 하는 번뇌를 뽑아내고, 고마운 세계를 직접 묘사해내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혹은 음악이고 조각이다. 자세히 말한다면 묘사해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직접 보기만 하면 거기에서 시도 생기고, 노래도 샘솟는다. 착상을 종이에 옮기지 않아도 보옥이나 금속이 부딪쳐서 나는 소리는 가슴속에 일어난다. 

- 7쪽~ 8쪽



하지만 소세키는 우리를,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나는 소설 속의 '나미 氏'와 같은 이를 그리워하고 있는 지도 모르고, 작중화자처럼 그런 여행을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에게 이 소설은 부러움의 대상인 셈이다. 


그래서 소설은 전쟁 중인 현실과 멀리 떨어져, 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아주 자주 딴 세상을 꿈꾼다. 그건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저 지금 여기를 벗어나 잠시 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남 몰래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고, 경제적 불안이나 세상사의 갈등이나 불협화음에서 벗어나, 어떤 사색의 풍요로움 속에 빠지고 싶은 게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사색의 풍요로움으로 넘쳐나며, 나미 氏의 가느다란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소세키의 소설들 대부분이 현실 속에서 갈등하며 흔들리는 자아의 심리를 보여준다면, 이 <<풀베개>>는 그 갈등과 흔들림에서 한 발짝 옆으로 벗어나 꿈 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 끝에서 나미 氏의 이혼한 남편이 등장하고 전쟁터로 나가는 규이치를 배웅해주는 장면에서, 주인공 화자가 그림 한 장면을 포착해내는 순간, 결국 예술의 창작은 꿈에서 벗어나 현실의 슬픔 속에서 나온다는 걸 이야기할 땐, 여행의 끝은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것임을 비극적으로 깨닫게 된다. 



나미 씨는 우두커니 떠나가는 기차를 보내고 있다. 그녀가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에,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애련이 얼굴 가득히 떠 있다. 

"그거야! 그거야! 그게 나오면 그림이 됩니다."

나는 나미 씨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속삭였다. 내 가슴 속의 화면은, 뜻하지 않았던 바로 이 순간에 이루어졌다. 

-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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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10점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문예출판사



마음, 나쓰메 소세키(지음), 김성기(옮김), 이레 



1.
나쓰메 소세키, 무려 1세기 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동시대적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이미 근대성(modernity)의 본질을 간파한 것이리라.  

이번 소설도, 내가 이전에 읽었던 소설과 비슷하게, 큰 사건이 없이 한 편의 풍경화처럼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간다. 소설의 전반부는 나와 선생님이 만나고 가깝게 되는 과정을, 소설의 후반부는 선생님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한 부분은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나머지 한 부분은 독백에 가까운 편지로만 구성된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대화가 아닌 '글로 씌어진 편지'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리고 오래 전에 상처 입었던 마음이, 누군가에 그 마음의 속내를 드러내자마자,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취하게 되는 건, 과연 올바른 방식일까 하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윤리적 질문까지 던지게 되는 건, 그 극단적인 선택- 죽음, 자살- 을 비정상적이라고 하기엔 이미 우리의 마음은 너무 닫혀있고 상처입었으며 돌이킬 수 없는 절벽의 끄트머리를 향해 가고 있음을 우리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더군. 만족할 만한 사랑을 하고 있다면 좀 더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을 테지. 하지만 ... ... 자네, 알고 있나. 사랑은 죄악이야." 
- 42쪽 


2.
사랑하는 마음은 죄악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일방적이고 소통하지 않으며 오직 내 마음을 알아주길 상대방에게 호소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선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어야만 하고, 그 죽음 위로 사랑을 수놓아진다. 그런데 과연 그런 걸까?  

그런데 결국 사랑을 해도 쓸쓸하고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해도 마음은 위로받지 못한다. 마음은 혼자이고 고독하고 이해받지 못한 채 (똑같은) 죽음을 향해 간다. 마치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처럼. 

근대의 개인주의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고, 그 근대의 끄트머리에 선 우리들에게 자살이란 너무 일상적이 된 셈이다. 


3. 
강상중 교수의 최근 두 권,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나쓰메 소세키의 충분한 해설서가 될 수 있으며, 나쓰메 소세키를 기초로 하여 현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위로가 될 순 있을 것이다. 그는 <<마음>>에서 선생님의 편지를 두고 아래와 같이 평한다. 


그리고 '개인적 공명'이라는 말에서 저는 소세키를 떠올립니다. 개인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대에 고독한 영혼끼리 공명하는 무언가는 <<마음>>에서 '선생님'과 '나' 사이에 오고간 것이 아닐까요.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친척'과도 인연을 끊었으며, 고등유민이기 때문에 '사회'와도 접점이 없고, 단 한 명인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가족'인 '아내'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게 되어 버린, 세계 어디와도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우주로 튕겨 나간 공 같은 궁극의 개인입니다. 
아울러 선생님은 이름조차 없습니다. 이름 없는 공空입니다. 그 선생님은 최종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 외에 길이 없었습니다만, 그때 작품의 절반에 이르는 길고 긴 고백인 '나'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는 테일러가 말하는 개인적 공명을 찾는, 세대를 초월한 이야기의 시도가 아니었을까요. 
강상중, <<살아야 하는 이유>>,  146쪽 - 147쪽 
(* 개인적 공명: 찰스 테일러가 주장하는 바로, '흩어진 개인들이 새로운 차원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개인적 공명'이라고 해야 할 새로운 공통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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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하는 이유 - 10점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사계절출판사



살아야 하는 이유, 강상중(지음), 송태욱(옮김), 사계절




결국 우리는 각자 자신이 꿈속에서 제조한 폭탄을 껴안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는 게 아닐까. 다만 어떤 것을 껴안고 있는지 다른 사람도 모르고 나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내 병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유럽의 전쟁도 아마 어떤 시대부터 계속된 것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나갈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계속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 나쓰메 소세키, <<유리문 안에서>> (산문집) 중에서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9)이 번역되어 나온지도 몇 년이 지났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깨달았다. 그 사이 일본의 지진이 있었고 절망적인 원전 사태가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우리와 적대적일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의 전작 <<고민하는 힘>>과 함께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다. 


그는 이번에도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 특히 나쓰메 소세키에 의존하며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이 설명은 독자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강상중 교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를 인용하면서, '거듭나기twice born'에 기대어 고통스러운 번민과 나락으로의 절망이 새로운 앎을 열게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전작 <<고민하는 힘>>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윌리엄 제임스)는 '건전한 마음'으로 보통의 일생을 끝내는 '한 번 태어나는 형once born'보다는 '병든 영혼'으로 두 번째 삶을 다시 '거듭나기'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 121쪽 


책은 짧고 단단하다. '사랑은 상대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181쪽)처럼 자신을 포함한 세상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주문한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테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는 19세기 말에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은 틀림없이 종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러한 장에서는 "'자연의 법칙'이 '숭배되어야 할' 것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즉 과학이 신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112쪽 


이는 계량적 세계의 질서처럼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종교적인 질문, 형이상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강상중은 신을, 종교를 부정하는 도킨스, 히친스 대신 <<신을 옹호하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의 테리 이글턴의 편에 선다. 결국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의미를 구하는 현대인에게 과학은 의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한다." 

-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 중에서


이번 겨울, 이 책은 흔들리는 현대인을 위한 작은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나쓰메 소세키, 막스 베버로 이어지는 작은 독서 여행의 시작이 되기를! 


강상중 교수 (출처: 강상중 교수 홈페이지) 



<<고민하는 힘>>에 대한 서평

2011/12/26 - [책들의 우주/문학] - 고민하는 힘, 강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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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이 많아도, 계속 새 책에 손이 가는 건 예전부터 읽어온 습관 탓이다. 1주일에 1권 이상은 읽어왔는데, 올해 들어 한 달에 2권 이상 읽지 못하고 있으니. 하지만 손의 습관은 1주일에 1-2권씩 새로운 책 표지에 살갗이 닿아야만 손의 마음은 놓이는 것일까. 





바람은 무척 차고 일은 많고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들 중의 하나가, '비밀 없는 사람이 되자'였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강상중의 신간 '살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 ... 참, 일본은 대단하기도 하면서 신기하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미 백 년 전에 20세기 후반에 최초로 마주하게 되는 현대적 모더니즘(contemporary modernism)을 보여주고 있고, 그 옆에서 재일한국인 강상중은 현대인의 마음과 존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 현대 일본을 지배하는 것은 그런 모더니즘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한국도 마찬가지리라) 


바람은 차고, 마음 속에 비밀만 늘어나는 것이 매우 싫어지는 화요일 오후 사각의 사무실 안 방황은 끝이 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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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지음), 이경덕(옮김), 사계절



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비가 온 뒤 땅은 굳어지는 왜일까.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진 다음에서야 우리는 왜 사랑에 대해 (철저하리만큼) 숙고하고 보잘 것없이 여겼던 연애의 기술을 반성하는 것일까. 거친 홍수처럼 세차게 밀려들었던 후회와 끔찍한 반성의 세월을 술과 함께 보내며, 나는 얼마나 많이 ‘철 들지 않는 나’를 괴롭혔던가. (그리고 결국 ‘철이 든다는 것’을 지나가는 세월과 함께 포기했지만)

이 책을 읽게 될 청춘들에게 자이니치(재일한국인) 강상중은 힘들었던 자신의 이야기 너머로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등장시킨다. 이미 베버와 소세키가 죽었던 그 나이보다 더 살고 있으면서(그래서 그는 이 책의 말미에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강상중 교수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인용하면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는 건 의외의 일이긴 하다. 허나 막스 베버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문학에서 나쓰메 소세키 같은 작가가 있다는 건 정말 기적적인 일이 아닌가!(한국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하지만 ‘인간의 마음 자체는 사고하고 성찰하는 데 부적합한 것’(1)일 지도 모르니,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 나쓰메 소세키는 세계문학전집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작가이고, 막스 베버는 전공자들에게나 읽히는 사회학자 쯤으로 여겨지는 요즘에, 강상중 교수의 이 책이 이렇게나 많이 팔리고 읽혔다는 건 참 낯선 일이다(그리하여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더 많이 읽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삐딱하기만 한 내 눈엔, 저자는 진실한 마음으로 ‘고민하는 힘’을 이야기했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에겐 ‘고민하는 힘을 읽은 위안’만 전해준 것은 아닐까. 몸으로 부딪히며 고민하라는 저자의 조언 대신.

현대, 즉 모던(Modern)과 그 이후에 있어서 자신의 문제는 자기에게로 돌아온다(자기반영성의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 이후의 우리에게 ‘자아의식(self-consciousness)은 결국 신경쇠약을 낳는다. 신경쇠약은 20세기의 모두가 공유하는 병’(나쓰메 소세키)이 되어, 우리는 그 정신병과 싸우거나, 반대로 그까짓 것 하는 심정으로 ‘본 투 비 와일드(Born to be Wild)’가 되어야 할 것이다(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채 거대한 세상에 끌려 다니다 죽을 수도 있겠지).

강상중의 이 짧은 책은 독자에게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끔 요청하지만, 책은 너무 간략하고 강상중 교수의 문장은 종종 넋두리 같이 들렸으니, 이는 결국 살아가야 하는 건 나이거나 독자이고, 저자인 강상중 교수도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까. 

자살을 생각하는 한 여인을 앞에 두고, “죽지 말고 살아야해”라는 소세키의 조언 다음에 나오는 ‘죽음은 삶보다 귀하다’라는 독백은 우리 인생이 어떤 대지 위에 서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 이 책 속에서나 밖에서나 삶(인생)의 문제란, 근대(Modern)의 문제이고, 청춘의 문제이며, 젊음의 문제였다. 

그래서 스물 살 때의 고민이나 스물 다섯이나 서른 다섯, 혹은 쉰 다섯이라고 해서 그 고민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자기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나 질문이 달라지지도 않을 게다. 고민하는 시간이 오래 되었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 고민이나 의문에 대한 답이 나온 것도 아닐 것이고. 단지 고민과 의문에 답을 구하는 자신의 태도가 달라져 있을 뿐.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고민이나 의문이 아니라 그 고민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될 것이니,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대하게 될 비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고, 잔인한 슬픔을 동반한 헤어짐 뒤에, 새로 만나게 되는 연인에 대해선 과거 자신이 했던 행동과는 다른 태도로 연인을 대하게 될 것이니, 인생은 관객은 없고 오직 주인공만 혼자 이리저리 부딪히고 힘들어하는, 한 편의 잔인한 드라마는 아닐까.(2)

그저 인생은 원래 쓸쓸했고, (주위의 조력자) 없이 고민하는 나로 인해 세상은 조금이나마 살만한 곳이 될 터이니,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 대한 공허한 위로만이 저 차가운 대기를 채운다.

이 책을 감히 추천하기에는, 이 책을 번역한 역자도 나쓰메 소세키를 번역하면서 읽었다고 하니, 과연 이 책이 얼마나 깊은 호소력을 가지게 될 지는 미지수다. 그나저나 막스 베버의 책은 서가 어디에 있는 걸까. 오래 전에 읽었으니,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다 읽고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읽기를!)



1)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Black Swan’(동녁사이언스) 중에서
2) 하긴 이런 경우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의 99%는 돈으로 해결 가능한 것이다’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는 부자가 되었다.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1%의 문제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파멸을 향해 달려갈 테지만, 이 얼마나 현실적인 답변인가! (출처: 잭 트라우트, 알 리스, '마이 포지셔닝My Postioning'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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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민음사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처음부터 어떤 계획을 세워서 자연을 억지로라도 자기의 계획에 맞추려드는 고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이란 인간이 세운 그 어떤 계획보다도 위대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가 자연을 거역하고 자기 계획을 고집하게 된다면, 그건 버림받은 아내가 이혼장을 방패 삼아 부부 관계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228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된다. 적어도 다이스케에게 있어선 그랬다. 그는 자연의 이치대로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무 일도 기획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며 그냥 조용히 외부 세계와는 무관한 듯 그렇게.

 

 

다이스케는 책상 위의 책을 덮고 일어섰다. 약간 열려있는 툇마루의 유리문 사이로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와 화분에 심은 색비름의 빨간 꽃잎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큰 꽃 위에 햇살이 가득했다. 다이스케는 허리를 굽혀 꽃 속을 들여다 보았다. 이윽고 가늘고 긴 수술 끝에서 꽃가루를 따다가 암술 끝으로 가져가서 정성스레 발랐다.

- 58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아무 일도 못 하리라 여겨지진 않았다. 많은 책을 읽었고 부드러웠으며 신중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의 하루 일상은 단조로웠지만, 지식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런 종류였다. 그는 매일 차를 마셨고 책을 읽었으며 다양한 화초가 자라는 정원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달리, 자연을 따르기로 한 다이스케에게 있어 '자연'이란, 이 외부세계의 어떤 거대한 흐름 이전에 정처 없이 떠도는, 자기자신에게마저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신의 마음이었다. 사람의 마음, 나무의 마음, 구름의 마음, 식물의 마음이 모여 이 거대한 자연을 이루듯, 그 시작에는 다이스케의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솔직해진다는 것의 무모함이란, 자기 마음의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가져다 주는가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21세기 초반의 TV 드라마들 대부분은 이 마음의 자유가 가져오는 통속적 비극에 대한 것들뿐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이여,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말고 어른이, 이 세계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생각하고 움직여라)

 

요즈음 마음이 쓸쓸하니 자주 와주세요.”라는 미치요의 말에 다이스케는 휘청거리며 100미터 정도를 걸었다.’ 마음 가는 대로 친구의 여동생인 미치요와 친구인 히라오카와의 결혼을 주선하였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 마음 가는 대로 친구의 부인인 미치요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비극을 선물한다. 우리 비극의 원인은 바로 자연이다.)


 

왜 저를 버렸지요?”

라고 말하고는 다시 손수건을 얼굴에 갖다 대고 또 울었다.

- 286

 

 

미치요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면서 띄엄띄엄 한 마디씩 말하고 있었다. ‘너무하세요’, ‘잔혹해요라고 말하며, 지나간, 이미 버림받은 사랑을 되새기고 있었다. 친구의 아내가 된 미치요 앞에서 19세기 후반의 다이스케는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용납하지 못할 어떤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없어요?”

라고 물었다.

그런 건 없어요. 뭐든지 당신 뜻에 따르겠어요.”

떠돌이 생활 …….”

떠돌이 생활을 해도 좋아요. 죽으라고 말씀하시면 죽겠어요.”

다이스케는 또 한번 전율을 느꼈다.

- 316

 

 

이 흥미로운 소설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사랑에 대해선 별 내용이 없다. ‘그 후이라는 소설의 잔인한 제목처럼, 현대적 비극은 막이 내려간 다음 이루어지고 그 누구도 그 비극의 원인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는 데에 나쓰메 소세키는 의문을 갖는다.

 

다이스케는 19세기 후반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못한 나약한 일본 지식인을 떠오르게 하며, 미치요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순종적으로 살아가는 일본 여성을 보여준다. 결국 둘의 사랑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다이스케와 같은 지식인 류의 고백이란 늘 한 발 늦기 마련이고, 어떤 상황은 종료되고 현장은 깨끗이 치워진 이후다. 그리고 자신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질서에 순종하며 늘 자기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하다며, 이미 끝난 사랑의 옷자락 끄트머리를 붙잡곤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봐달라고 해대는 것이다.

 

 

잘 알았습니다.”

라고 다이스케는 간단히 대답했다.

너는 바보 천치다.”

라고 형이 크게 소리쳤다. 다이스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들지 않았다.

얼간이 녀석.”하고 형이 또 말했다.

평소에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입심이 센 놈이 정작 이런 때는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잠자코 있구나. 그리고 뒤에서는 부모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나쁜 짓이나 하고 말이야. 이제까지 무엇 때문에 교육을 받은 거냐?”

- 348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나고 그 후 아무도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사랑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아무렇게나 그 둘은 슬픈 풍경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고 지병이 있었던 미치요는 갑자기 무능력해진 다이스케의 손을 잡으며 죽었을 것이다. 자연의 질서란 언제나 잔인하게 공평한 것이다.


그 후 - 10점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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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기 2009.12.30 21:07 신고

    몇해 전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 싶으면서도 또 스산한 감흥을 가지고 덮었던 책인데
    어제 집에 들어갔더니 엄마가 이 책을 꺼내놓고 계시더군요. 이상하게 <그 후>와 거푸 마주치게 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란 인사를 하러 왔어요.
    새해에는 함 만나서 수다떨 기회라도 있길 바래요. :)

    • 소세키의 소설은 19세기말, 20세기초의 분위기스럽지 않게 스산하더군요. 아니면 우리는 스산하지 않았던 때 없었던 건지. ㅡ_ㅡ;;;
      수다~! 너무 좋아해요.. ㅎㅎ 딸기님두 건강하시고요. ^^ 새해에는 수다를 기필코.. : )


 

다이스케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우메코의 어깨 너머 커튼 사이로 맑은 하늘을 기웃거리며 보고 있었다. 멀리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시야에 들어왔다. 옅은 갈색의 새 잎이 돋아나고 부드러운 나뭇가지 끝이 하늘과 맞닿은 곳은 이슬비에 젖은 것처럼 뿌옇게 흐려 있었다.
-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민음사), 48쪽~49쪽



그는 지난 주 내내 전날의 피로의 채 가시지 않은 직장인들이 빼곡히 들어찬 출근길 지하철 객차 안에서 서서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한 문단을 떠올렸다. 한 때 문장을 지어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꿈이었으나, 누군가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적는다는 것이 주제넘은 일이라는 생각에 그만 두었다. 하지만 형편없는 글을 소설이라고 발표해대는 요즘 작가들의 글을 읽곤 암담해지는 기분은 어쩌질 못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오에 겐자부로, 아베 코보 이후로 그가 탐독하는 일본 작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일 년에 읽는 소설은 고작 20권 남짓. 최대한 까다로워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책들이 쌓인 무채색 무늬 벽지로 덮인 벽 사이의 철제 샤시로 된 유리창을 연다. 안개가 자욱했다. 며칠 째 아침,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그를 제외한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서, 그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듯한 미소를 안개 낀 도시 변두리에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그가 왜 그런 미소를 지었지는 알지 못한다. 실내는 안토니오 미켈란젤리가 연주하는 쇼팽의 피아노곡 소리로 가득했다. 그는 어제 직장 근처 빈하모니라는 커피집에서 사온 이디오피아 예가체프 원두로 드립커피를 해 마신다. 요리를 거의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씽크대는 요리 기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마치 언제든지 동거인이 생긴다면 바로 요리를 해줄 수 있다는 태세로 무장해있었다. 하지만 그 무장된 씽크대를 보고 있자면, 혼자 사는 남자의 지저분한 쓸쓸함밖에 보이지 않지만, 씽크대는 행복한 요리에 대한 상상에 취해 그 무장을 풀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몇 통의 메일을 확인하고 오늘 일정을 체크하는 그의 눈에 들어온 어제 기사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의 현대사는 아직도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음을 그는 쓸데없이 안타까워했다. 20세기 중반의 냉전시대와 국토개발 시대의 가치관으로 21세기 한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사람들을 향해 박수를 치고 동조하는 국민들을 보면서, 정치란 정보의 공유와 활발한 의사소통, 그리고 합리적 의사 결정의 과정이라기보다는 그럴싸한 이미지를 통한 설득과 감성적 공감 과정을 통한 일종의 고도화된 조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그에게 정치란 마치 뒷산 너머 남의 마을 이야기처럼 된 지 오래였다.

그러면서 아르마티아 센을 떠올렸다.


영미공리주의 이론가인 아마르티아 센이 지적하듯이, 평등은 사회구성에 관한 자유주의적 개념의 본질적 특성(모두에 대한 동등한 자유, 모두에 대한 동등한 고려)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유와 평등을 대립시키는 것은 인위적이고 부정확하다고 말한다. 자유는 평등의 적용가능한 영역 중 하나이며, 평등은 자유의 가능한 분배 양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장 피에르 크로스, ‘자유를 누린 평등한 가치 - 자코뱅이 추구한 현대적 가치’, 르몽드디플로마크 한국어판 9월호.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의 귀에 미켈란젤리의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안토니오 미켈란젤리는 그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다. 비행기에 피아노를 들고 다녔던 미켈란젤리의 이야기는 다소 심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가 연주에 임했던 태도는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현대 세계를 지배하는 형편없는 독자, 관객, 청중들을 비아냥거렸던 미켈란젤리...

실은 문화와 예술을 망가뜨리는 것은 형편없는 대중들이고 그리고 그 대중들의 눈높이에 어떻게든 맞추려고 하는 일군의 재능 없고 덜 떨어진 작가들과 예술가들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최근에는 비평가들이나 철학 저술가들까지도 그런다는 점을 심히 염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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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行人
나쓰메 소세키(지음), 유숙자(옮김), 문학과지성사



인생은 쓸쓸한 거다.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연인은 떠나가고, 마음 한 켠에 남은 상처는 새벽 네 시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마냥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들이닥친다.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이 현대식 사랑이다. 그러니 다치지 않기 위해 사랑은 한 켠으로 밀어 놓은 지 오래. 하얀 눈이 보기 드문 겨울이 가고 황사 가득한 봄이 오고 나는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과 만나게 된다.


어떤 확신처럼, ‘인생은 쓸쓸한 거다’라고 읊조리지만, 그것을 확인할 때면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건 어쩌지 못한다. 



     방 안은 촛불로 인해 소용돌이치듯 동요했다. 나도 형수도 눈살을 찌푸리고 타오르는 불꽃 끝을
   응시했다. 그리고 불안한 쓸쓸함이라 형용될 법한 심정을 맛보았다.
    (156쪽)



아무런 사건도 없지만, 아무런 사건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이 소설은 당황스럽고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한다. 쓸쓸함으로 시작해 불안함으로 끝나는 이 소설 앞에서 독자가 쥐게 되는 것은 그저 ‘인생이 그렇지, 뭐’ 정도.


나쓰메 소세키는 여러 상황들과 공간들을 만들어놓고 그 속에 인물들을 가둔 채 그들의 외면을 훑는 것만으로 그들의 심리적 변화를 드러낸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긴장이 흐르지만, 그 긴장 끝에는 어떤 결말이나 긴장의 해소를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그것은 독자의 몫이란 건가. 하긴 그에게도 그것을 해결한 힘도, 지혜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인생이 쓸쓸한 걸 해결할 수 있겠는가.



그래, 인생은 쓸쓸한 거다. 그것을 받아들인 채 늙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생이 쓸쓸한 거라는 걸 확인할 때마다 흐르는 눈물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행인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숙자 옮김/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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