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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을 보기 시작한 뒤 한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지닌 일반적 인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일반적 인상이란 색조와 부분,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좌우된다. 일반적 인상이 주는 충격은 즉각적이다. (...) 그러므로 최초의 충격 다음에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세부를 살펴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8쪽 




하지만 즐기기 위해 배운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낯선 건, 그만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탓일 게다. 의외로 미술에 대한 책은 잘 읽히지 않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갤러리가 많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방문은 뜸하고, 전시를 열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으니, 작품 가격은 비싸진다. 거기다 위작 논란까지. 그만큼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그리고 현대 미술이든 고전 미술이든 다 어렵다고 여긴다. 심지어 현대 미술은 '난해한'이라는 수식어가 그냥 자연스럽게 붙어다닌다.


실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서구에선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선 대학생들도 어렵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의 책 읽기 수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밖에.


이런 면에서 이 책도 어려울 지 모르겠다. 하지만 케네스 클라크는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것의 의미를 새삼 물으며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알아두어야만 할 예술가들과 대표작품을 다룬다. 초심자에겐 그림 보는 재미를, 이미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이해를 갖진 사람들에겐 케네스 클라크만이 알려줄 수 있는 통찰이 흥미로울 것이다. 


책에선 더 많은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는 3명의 작가들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의 생각을 옮겨본다. 



엘 그레코El Greco 



16세기 후반 최고의 작가는 단연코 엘 그레코다. 하지만 그는 수 백년 동안 잊혀져 있던 작가였다. 근대 시대의 매너리즘(마니에리스모) 양식에 대한 경멸은 16세기 후반 작가들의 무시와 천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 초 엘 그레코는 극적으로 부활한다. 


그럼에도 엘 그레코를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간주했던 1920년대의 비평가들은 옳았다. 첫번째는 엘 그레코가 비사실적인 두 양식, 곧 비잔틴과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거치며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사고 방식을 타고난 덕분에 고전주의적 전통의 주된 전제를 거부한 최초의 유럽화가였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는 화면의 깊이보다 표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151쪽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The Disrobing of Christ)

Oil on canvas, Height: 285 cm (112.2 in). Width: 173 cm (68.1 in). 

1577 ~ 1579, 톨레도 대성당 



표면을 중시했다는 표현과 함께 엘 그레코가 "미켈란젤로는 훌륭하지만 그림 그리는 법을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건 참 흥미롭다. 깊이 대신 표면을 중시할 때, 고전적 원근법적 세계는 흔들린다. 중심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균등해진다. 확고한 질서 대신 흔들리는 마음이 전면에 부상한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성상화들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엘 그레코는 알고 있었다.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제르생의 간판(The Shop Sign of Gersaint)

Oil on canvas, 163 cm × 308 cm (64 in × 121 in)

1720-1, Charlottenburg Palace, Berlin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27Enseigne_de_Gersaint 



신고전주의가 자크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만든 양식이라고 한다면, 회화에서의 로코코 양식은 장 앙트완 와토의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와토의 이미저리는 그가 처음으로 전시했던 그림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향후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심지어 와토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에 태어난 후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 - 1806)는 여전히 와토의 정원, 말하자면 그의 이미저리를 활용했다. - 127쪽 



와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절반은 포기하고, 절반은 포기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노는 것같다고 할까. 그 애상은 로코코 시대 전반을 물들였다. 한 시대(토지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부르조아지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계몽주의와 로코코는 같은 시대의 양식이다. '제르생의 간판'은 와토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위키피디아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작품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Eugène Delacroix, The Entry of the Crusaders into Constantinople 

oil on canvas, 81 × 99 cm (31.9 × 39 in)

루브르 박물관 

이미지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Entr%C3%A9e_des_Crois%C3%A9s_%C3%A0_Constantinople 




오히려 그는 예술은 상상력을 비추어 사건을 재창조하므로 시의 특질을 띤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들라크루아는 아마도 매우 많은 이류화가들을 미혹했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BC 65 ~ BC 8)의 조언, '시 같은 그림 ut pictura poesis'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마지막 유럽 화가였을 것이다. - 93쪽 



H.W. 잰슨(서양미술사가)이었던가, 낭만적 고전주의와 고전적 낭만주의라고. 다비드가 낭만적이고 들라크루아가 고전적이라고. 어쩌면 케네스 클라크의 견해에 힘입어,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마지막 고전주의자일 지도 모르겠다. 낭만주의였으나, 그의 마음은 확고하게 고전적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였으며, 의미를 담아냈다. 그런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위대한 예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그 이후 나온 아카데미 화가들,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이들은 무식하게(성실하게) 그림만 그린 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몰랐으며, 그 변화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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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페리온의 노래 

J. Ch. F. 횔덜린(지음), 송용구(옮김), 고려대 출판부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삶이란, 제가 확신하건대 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시는 낯설지 않으며, 앞으로 우리가 보겠지만 구석에 숨어있습니다. 시는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튀어나올 것입니다." 

- 보르헤스, <시라는 수수께기> 중에서(<<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11쪽) 



시는 아무래도 원문 그대로 읽어야 제 맛이다. 번역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동일한 단어라고 언어마다 그 어감이나 뉘앙스, 풍기는 멋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글로 옮겨서 밋밋한 시라도 원문으로 읽으면 풍성한 느낌을 주는 시일 수 있다. 몇 해 동안 영시를 읽으면서 배운 바라고 할까. 


횔덜린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으나, 그의 시를 제대로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백 여년 전 독일 튀빙겐, 헤겔과 셀링이 있었고, 루소의 사상과 나폴레옹의 혁명 공화정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신고전주의자들과 낭만주의자들이 뒤섞여, 서서히 싹트던 민족주의적 이상을 노래하던 그 때, 그 당시 가장 위대한 시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모든 이들이 프리드리히 횔덜린이라고 말할 것임에 분명하다. 


만약 내가 독일인이라면, 그의 <독일인의 노래Gesang des Deutschen>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호소력 짙은 시가 될 것이다. 지금도 그러한데, 그 당시에는 어땠으랴. 하지만 한글로 읽는 이 시집은 횔덜린을 앍고 그 시절의 분위기, 그리고 강렬한 이상과 염원으로, 그리스 고전주의적 미학을 성취하고자 할 때의 시학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겠지만, 시 특유의 감미로움이나 위안, 서정적인 표현이나 비유를 즐기기에는 너무 관념적이라고 할까. 


그래도 시 읽기란, 잠시 내 몸과 마음을 놓고 쉬어갈 수 있는 휴식일 것이다. 


이 시집만 읽는 건 재미있을 듯하지 않고 그 당시 독일의 분위기라든가, 독일 문학 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더 흥미로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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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내가 이루어진 것도, 내 일생동안 이끌고 다녀온 이 권태에 처음으로 전염된 것도, 나의 고통이요 나의 쾌락인 이 슬픔에 물든 것도 콩부르의 숲에서였다. 그 곳에서 나는 내 가슴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다른 가슴을 찾아헤맸다. 그 그곳에서 나는 내 가족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그 곳에 그의 이름이 복권되고 집안의 재산이 쌓이기를 바랐다. 시간과 혁명이 씻어간 또 하나의 악몽. 여섯 형제 중 남은 사람은 셋. 형과 쥘리와 뤼실은 이제 없고, 어머니는 고통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재는 무덤 속에서 파헤쳐졌다."


"혹 나의 작품들이 내 죽은 뒤에 남게 되고 내가 이름을 남기게 된다면 어느 날 <회고록>의 인도를 받아 어떤 여행자는 내가 그린 장소들을 찾아오리라. 그는 성(城)을 알아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거대한 숲은 찾아도 없을 것이다. 내 꿈의 요람은 사라져버렸다. 바위 위에 홀로 서 있는 성탑만이 그 종탑과 사귀고 폭풍으로부터 그를 보호하던 옛 친구들인 거대한 참나무 숲의 죽음을 울고 있으리라. 그 성탑처럼 홀로 남은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해주고 나를 보호해주던 내 가문이 내 곁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인생은,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낸 성탑들처럼 견고하게 땅 위에 지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그의 손으로 세운 성만큼 폭풍에 견디지 못한다." 

- 샤토브리앙(Francois-Rene de Chateaubriand) 


* * 


김화영의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에서 인용된 샤토브리앙의 글이다.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대단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샤토브리앙이지만, 다른 나라로의 소개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듯 싶다. 그의 대표작인 <아탈라>, <르네>는 번역되었으나, 현재는 품절이고. 




아딸라 - 르네
샤또브리앙 저/신곽균 역

영역본을 찾아보았으나, 3권 정도 검색되었다.



 

- 샤토브리앙, <Atala / Rene>



- 샤토브리앙, <무덤 너머로의 회상Memoirs from Beyond the Tomb>



읽고 싶은 건 역시, <무덤 너머로의 회상>이다. 학생 시절이었다면 어떻게든 불어로 읽으려고 했을 텐데, 돌이켜보니, 영어라도 제대로 해놓고 불어공부를 할 걸 하는 후회가 앞선다. 지금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영역본을 찾아보고 있으니. 


프랑소와 르네 드 샤토브리앙. <무덤 너머로의 회상>은 30년 걸쳐 씌여진 회고록이다. 소설가이자 외교관이었으며 1786년에 태어나 1848년에 죽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프랑스 귀족의 몰락, 프랑스 대혁명, 왕정복고, 나폴레옹 ... 격변기를 보냈고, 그 이야기들이 <무덤 너머로의 회상>에 담긴 것이다.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지금 샤토브리앙을 읽는 독자들은 많지 않다. 


위에서 소개한 책들 말고 국내 번역된 책들이 있으나, 발췌번역이거나 요약본이라 다소 부족해 보인다. 


* *


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 보게 된 정보 하나, 언어 사용인구로 따져, 한국어가 13위였는데, 순위에 민감한 사람들이 한국어의 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읽었는데, 실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어로 된 양질의 정보가 얼마나 많고 이 정보들에의 접근이 얼마나 쉽고 편리한가다. 따져보면 한국어로 구할 수 있는 양질의 정보는 많지 않다(영어와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긴 하나, 비교는 늘 최고와 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이 사회에 조금이나 기여한 게 있다면, 한국어로 된 정보에 이 블로그가 조금의 도움이 되었다는 것밖에 없는 듯해 좀 씁쓸해졌다. 


정부 차원에서 한글 번역 - 여기에는 외국 서적에 대한 번역 뿐만 아니라 한문으로 된 국문학 서적에 대한 번역도 포함되어야 한다 - 에 대한 다양한 공적 사업이 진행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늘어나야 한다,고 적어보지만, 그게 가능할까 싶다. 기업은 돈 되는 일에 매진하고 정부는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고 나중에도 돈이 되지 않으나,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기초 사업에 힘을 써야 한다,고 적어보지만, 이 나라 정부 관료나 정치인이 이런 이야기 한 적을 본 적도, 읽은 적도 없다. 


쓸데없이 글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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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 E. 흄(Hulme) 지음, 박상규 옮김, 현대미학사 





위대한 화가란 모든 사람들의 비젼이 되었고, 

또 장차 비젼이 될 어떤 사물의 비젼을 처음으로 가졌던 사람들이다. 

- 133쪽 


 


토마스 어네스트 흄(Thomas Ernest Hulme, 1883 - 1917)이라는 영국의 예술 비평가가 쓴 <<Speculation>>을 번역한 이 책은 다소 의외의 번역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1980년대 초반 박상규 교수(홍익대)가 번역한 문고판 책을 현대미학사에서 관심을 가져 새로 낸 듯하지만,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책은 아니기 때문에 전공자가 아니면 꺼내보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2000년대 초반에 구입하였으니,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간 읽지 않고 서가에 꽂아두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비평가의 문장이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예술론을 이야기하는 흄의 문장은 사색적이면서도 모호하기만 했다. 꼼꼼한 독서가 필요하지만, 그렇게 하여 얻는 건 이미 다 논의되었던 내용들이거나,  흄이 기대고 인용하는 저자들의 책을 직접 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분명 1900년대 초반에는 최신의 시각이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장점이 있다면, 보링거(Wilhelm Worringer)과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예술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추상과 감정이입>>이라는 저서로 미술사의 해석에 탁월한 관점을 제시한 보링거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흄은 이 책 전반에서 보링거의 태도 -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예술과 자연주의적이고 감정이입적인 예술의 대비 - 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더욱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베르그송의 충실한 번역자였으며, 베르그송의 추천을 받기도 한 흄은 이 책에서 베르그송 철학에 대한 탁월한 요약을 제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예술론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보링거의 이론에 기대어 흄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예술에는,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종류가 있다. 첫째로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예술, 즉 희랍의 예술과 르네상스 이래의 근대 예술이 있다. 이러한 예술에 있어서는 선은 부드럽고 생명력이 있다. 그리고 이집트와 인도와 비잔티움의 예술과 같은 예술이 또 하나 있다. 이러한 예술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각을 형성한 경향이 있고, 곡선은 날카롭고 기하학적으로 되어 있고, 그리고 예컨대, 인체의 표현은 때로는 아주 비생명적이고 비틀어져서 여러 종류의 딱딱한 선과 입체적인 형태에 알맞게 되어 있다. (79쪽) 



그들은 실존의 여러 가지 혼란과 변덕에도 불구하고 보링거가 말한느 일종의 정신적 '공간 기피'에 좌우되어 있다. 예술에 있어서는 이러한 정신상태는 어떤 추상적인 기하학적 형태를 창조하려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는 인내력이 강하고 영속성이 있으므로 외부 자연의 유동성과 비영속성의 비난처가 될 것이다. (82쪽) 



세잔, <목욕하는 여자들>, 208 × 249 cm, 1906 (출처: 위키피디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세잔느의 최근의 그림의 하나인 <목욕하는 여자들>을 보라. 이 그림에서는 모든 선이 피라미드형으로 나란히 그려져 있고, 여자들은 이 모양에 알맞게 그려져 있다. 만일 하나의 그림에서 만족할 율동적인 구도를 항상 찾아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피라미드형의 구도에는 매력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싫증을 느낄 것이다. 그 형태가 아주 강렬하게 강조되어 있고, 기하학적인 특색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 그림은 '생명적인' 예술의 영역으로부터 추상적인 예술의 영역에로 끌어올려진 것이 된다. 그 형태는 르네상스의 예술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것보다도 라벤나에 있는 (테오도라 황후) 비잔티움의 모자이크에서 보는 구도에 훨씬 더 흡사하다. (94쪽)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화 - 테오도라 황후와 시녀들.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베르그송의 철학과 예술론에 대한 논문들도 책에 실려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 


지성은 모든 물체란 완전히 분석되어서 개개로 분리될 수 있는 요소로 되어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 그래서 지성은 결과로서 모든 변화를 이러한 분자의 단순한 위치의 변화에 귀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지성은 변화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변화를 설명한다. (168쪽) 



즉 그것들은 진정한 시간 속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모든 것은 '주어져' 있다. 진정한 창조는 없다. 그는, 생명의 모든 형태의 특징은 생명의 모든 형태가 뚜렷하게 지속성 속에 존재하여 있고, '시간'이 그것에 대하여 차이를 일으키게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그것을 '깨물고', 그리고 이빨의 흔적을 거기에 남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늙어간다. 그런데 물질은 결코 늙어 가지 않는다. 물질은 항상 '불변하는' 것이고, 항상 '동일한' 것이다. (178쪽) 



보링거와 베르그송의 예술론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그 소개 정도로 읽을 만하다. 다만 깊이 있는 연구 논문이라기 보다는 스케치에 가깝기 때문에 연구자들이라면,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맨 뒤에 실린 <잿더미>라는 글은 단상을 엮어놓은 짧은 노트이나, 두고 읽을만큼 좋다.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E.흡저 | 현대미학사 | 2002.09.14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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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 Fantasie-Impromptu No.4 in C sharp minor, op.66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의 쇼팽Chopin을 꺼냈다. 폴란드 태생의 작곡가 쇼팽과 폴란드 태생의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 루빈스타인하면 쇼팽이 떠오르고 쇼팽하면 루빈스타인이 떠오른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와 쌍벽을 이루며, 한 시대의 피아노를 지배했던 그의 음반을 꺼내 듣는다.

상쾌하지만, 금세 쓸쓸한 기분에 잠겨 들고, 어쩔 수 없이 쇼팽인가 하며 중얼거린다. 내가 좋아하는 곡은 쇼팽의 즉흥곡Impromptu. 방 안 가득 피아노 소리가 깔리고 방금 내린 커피로 나는 목을 적신다. 음악은 마치 사랑에 빠진 외로운 마음을 닮아서, 어떤 때는 화가 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다시 사랑하는 연인을 떠올리며 평정을 되찾기를 여러 차례 … 창 밖으로는 거센 폭풍우가 지나지만, 튼튼한 벽돌로 지어진 주택의 거실 창문 안으로는 오직 마음의 아름다운 태풍이 실내의 온기 속에서 조용히 내려앉는 듯한, 그런 음악이다.

웹 검색을 통한 쇼팽의 즉흥곡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하네커가 ‘분방한 감정과 묵상적인 의지로 이루어진 독창적인 네 개의 즉흥곡’이라고 표현한 이 곡은, 쇼팽의 다른 곡과 같이 그의 천재를 나타낸 대표적인 것으로, 약간의 과장된 구상과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끓어오르는 그의 악상이 생생하게 흘러 넘치고 있다.

제1번 A♭장조 작품29번.
네 곡 중에서도 특히 즉흥 기분이 넘치고, 처음부터 끓어오르는 듯하면서도 장난치는 듯한 성질을 지녔으며, 자연 그 자체와 같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맑고 명백하고 진실하게 불려진다. 1837년 출판.

제2번 F#장조 작품36번.
‘과거의 따뜻한 은혜와 사랑을 처량하게 묵상하는 한 개의 발라드이다’라고 하네커가 평했는데, 꿈꾸는 듯한 노래, 환상, 모두가 즉흥의 이상답게 실감대로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1839년 작.

제3번 G♭장조 작품51번.
우수의 쇼팽을 나타낸 듯한 곡인데, 네 개의 즉흥곡 중 가장 어려운 것으로 인정받고 있고, 부드럽고 울적한 시정(詩情)을 띠고 있다. 1842년 작.

제4번 c#단조 작품66번 (「환상 즉흥곡」).
쇼팽의 사후에 발견된 곡으로서, 쇼팽은 ‘내가 죽은 후 파기해 주기 바란다’고 유언했는데, 오늘날에는 오히려 전곡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매혹적이며 안타까운 슬픔과 상냥함이 깃든 곡이다. 1834년 작.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00804



오늘 오후 키신Kissin의 쇼팽과 미켈란젤리Michelangeli의 쇼팽도 들을 생각이다. 19세기 초반 전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낭만적 세계 속에서 쇼팽의 음악은 달콤한 슬픔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듯하다. 그래서 더 슬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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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과 루빈스타인, 차이코프스키와 에밀 길레스가 언급된 몇 개의 포스팅을 적고 수정했지만, 예약으로 걸어둔다. 오늘 너무 많은 포스팅을 올리게 되기에(이제 나도 그런 걸 신경써야 할 때가 왔다).

어느 새 일요일 오후이고 쓸쓸하다는 기분에 잠긴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연주를 듣는다. 20세기 피아노 연주의 낮을 지배했다는 루빈스타인과 밤을 지배했다는 호로비츠의 연주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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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포스팅한 글이다.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린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미학이나 미술사를 공부하게 되면, 거의 매시간 듣게 되는 단어이지만,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는 극명한 지적 차이를 드러내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고전주의에 대해서 젊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첫 머리를 떠올리면 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와 자아, 천공의 불빛과 내면의 불꽃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지만, 서로에 대해 결코 낯설어지는 법이 없다.


외부-내부가 동일한 원칙와 질서로 움직이는 것. 새로운 방향의 운동이지만, 그 운동의 귀결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이 세상이 정해진 규칙(수학적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문학과 예술의 기본 원리로 삼고, 자신의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발현되는 것. 그것이 고전주의다.
 
젊은 날의 루카치는 이상적인 고전주의를 꿈꾸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신기루같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상주의는 무너지지 않았고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무언가 이 세상에 기여하고 싶었을 테지만, ... 고전주의 시대란 실제론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저 문학과 예술의 어떤 작품들 속에서만 간절히 구현되는 어떤 것일지도.

1800년, 자끄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그린 초상화이다. 본질적으로 낭만주의 시대였던 18세기, 19세기의 일부를 고전주의 열풍으로 몰고 간 것은 자끄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끄 루이 다비드의 작품들 대부분은 바로크 시대의 고전적 작품들과 비교해 더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낭만적 고전주의'라는 평가를 한다. (들라크루와가 '고전적 낭만주의'라면)

Madame Recamier
Oil on canvas, 244 x 75 cm
Musee du Louvre, Paris


안정적인 구도. 세밀한 표현. 모든 것들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듯한 세트를 연상시킨다. 배경은 무시되며, 오직 인물을 향해서만 집중한다. 모든 것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의 법칙이나 원리가 아니라 한 인물에 의해서 평정되는 어떤 고전적 세계이다. 인물의 표정을 볼수록 삶과 그 삶이 놓인 세계를 능히 자신의 의지대로 펼쳐나갈 수 있다고 믿게 되는 세계. 그것이 신고전주의다. 외부 세계를 지배하는 낭만주의는 절대로 내가 있는 이 세계 속으로는 한 발짝도 들어올 수 없다는 신념. 스스로 그 시대의 낭만성을 부정하면서 고전주의를 향하는 양식. 그것이 자끄 루이 다비드의 고전적 양식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고전주의 작품은 자끄 루이 다비드와는 전혀 다른 양식을 취한다. 

RAFFAELLO
The Granduca Madonna
1504, Oil on wood, 84 x 55 cm
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lorence



고전주의 작품들은 안정된 구도 속에서 이미 정해진 질서의 편안함, 아늑함을 표현한다. 마치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품 안처럼. 모든 것은 조화롭고 행복해보인다. 세속의 번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한들, 이 세계 속에서는 금세 사라질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앞서 보았던 자끄 루이 다비드의 작품 속에서의 인물을 둘러싼 텅빈 배경은 인물의 고전적 태도를 드러내기 위한 극적 대비의 역할을 하지만, 산드로 라파엘로의 작품에서는 배경은 부차적인 문제다. 실은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감히 성모 마리아라는 존재를 배경과의 대비를 통해 드러내는 그런 불경한 짓은 하지 않았으며, 그럴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원래 세상은 정해져 있는, 원만하고 편안한 고전적 질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다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High Renaissance라고도 불리는 Renaissance Classicism 시기는 정말로 의문스러운 시기다. 이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 국가들로 조각난 상태이며, 교황청의 힘이 무력해진 틈을 타, 작은 도시 국가들이 상업을 기반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나갔던 시기이며, 그 독자적인 도시 국가의 세력이, 북유럽의 절대 왕정 초기 국가들에 의해 공격받게 될 시기의 바로 전이었기 때문이다. 종교 혁명이 시작될 것이고, 이제 기존 종교는 급격하게 그 세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작품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공교롭게도 르네상스 고전주의 시대는 라파엘로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1500년 경부터 그가 죽은 1520년 무렵으로만 국한된다. 그리고 이 때 다 빈치, 미켈란젤로, 티치아노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에 의해 집중적으로 고전주의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미술사에서는 그 이전 시기는 그냥 초기 르네상스이고 이 이후는 후기 르네상스 또는 매너리즘이라고 부르며,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추켜세운다. 

과연 우리는 산드로 라파엘로가 그렸듯, 저런 심적 태도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앞에 놓여진 모든 문제들은 해결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키면서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삶의 아늑함을 맛볼 수 있을까? 실은 고전주의 시대라면 문제해결의 과정도 아늑한 삶의 일부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고전주의가 우리에게 말하는 저 목소리는 가능한 것일까?

젊은 날의 미켈란젤로는 첫 번째 피에타를 만들고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왜 예수 그리스도보다 그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더 젊게 표현했는가, 마치 젊은 처녀의 모습으로, ... 미켈란제로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신의 세계에 속한 성모 마리아에게 나이가 무슨 소용이냐고. 즉 보이지 않는 질서는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르네상스 고전주의 작품들은 현대의 우리로선 꿈꾸어선 안 될 어떤 신념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언제나 열망하지만, 끝내 가질 수 없는 어떤 신념과 태도를. 그리고 신고전주의의 천재 예술가 자끄 루이 다비드는 그 신념과 태도를 인간의 의지라면 능히 가질 수 있고 그것을 세상에 내 보일 수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고전적 질서를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전주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감동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질서에 대한 염원. 필연적 세계, 꽉찬 세계에 대한 파르메니데스적 열망을 그대로 작품으로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를 가지지 못했던, 다비드가 그렇게 아꼈다는 제자 그로는 낭만주의 양식로밖에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고 신고전주의를 열었던 세대보다 한 세대가 어린 앵그르의 작품들 대부분은 어색하기 짝이 없으며 앵그르가 실권을 잡았던 아카데미에서 인정을 받았던 부게로 같은 화가들은 신념이나 태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저 예쁘기만 한, 그래서 역겨운 작품들만 만들어냈다. 키치 화가라고 이야기할 때 불행하게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게로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성실한 화가였지만, 그 성실함이 현실 세계를 인식함에 대한 태만함을 가려주지 못하는 셈이다.

안트완 장 그로가 그린 나폴레옹이다. 약간 신경질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닮은 것같지 않은가.  아마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의 초상과 비교해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같다.

안트완 장 그로의 Napleon Bonaparte on Arcole Bridge




프랑스 낭만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인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이다. 그로가 그린 작품에서 나폴레옹의 얼굴 부분만 따로 떼서 들라크루아의 쇼팽 옆에 두면, 형제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아래 그림은 부게로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이다. 부게로라든가 제롬과 같은 19세기 아카데미 화가들의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 1층 구석에서 만날 수 있다. 그 거대한 작품들을 보고 이 큰 걸 어떻게 그렸나 하는 의문을 안고 미술관 꼭대기의, 아카데미 화가들의 작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인상주의 작품들을 본다면, 19세기 아카데미 화가들의 작품이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부게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마치 대단한 미술 작품인 양 소개하고 전파하는 이들을 보면, 제발 그런 짓 좀 안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지만, 우리 시대의 순수 미술은 마치 저 딴 세상처럼 여기는 일반 대중에게 그런 짓도 약간의 도움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주저주저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게로의 작품은 고전주의 양식처럼 그렸지만, 고전주의 작품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작품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고전적 신념이나 태도, 흔들리지 않는 고전적 질서를 발견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주의를 가슴으로 느끼기 어려운 것일까. 그래서 부게로나 제롬같은 화가들을 고전주의 화가로 오인하게 되는 것일까. 하긴 잘 알려진 필자들 중에서도 그런 표현을 버젓이 쓰고 있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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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올바른 낭만주의의 이해를 위하여’(『세계의 문학』, 2002년 겨울호)
-「지금 우리에게 낭만주의란 무엇인가?―문학적 절대」, 필립 라쿠 라바르트, 장뤽 낭시
-「소설에 관한 편지」, 쉴레겔



김진수,『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 책세상





앙리 뻬르는 그의 책 <고전주의란 무엇인가>에서 ‘고전주의는 불안정하며 일시적인 ‘평형상태’이며, 곧 뒤이어 무질서와 불안이 뒤따르고 있으며 고전주의 자체도 혼란과 무질서의 시기에 뒤이어 온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즉 그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낭만주의는 혼란과 무질서의 시기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의 미적 태도들을 통칭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고전주의의 입장에서 본 것일 뿐, 낭만주의 내에서 본다면 혼란과 무질서가 만들어내는 ‘이상’, 또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거나 혼란과 무질서를 관통해 지나가는 어떤 질서나 원칙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이 경우 낭만주의 내에서 어떤 고전주의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낭만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전주의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계간 <세계의 문학>에서 이야기하는 낭만주의라는 단어는 초기 낭만주의, 즉 노발리스와 쉴레겔이 주도했던 운동에만 국한시켜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라는 소개글에서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어 읽는 이 스스로 그 사실을 파악해내야만 한다.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김진수의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를 읽을 필요가 있겠다. 그는 낭만주의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이면서 예술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어져온 어떤 태도를 뜻하며 하나는 표현적이고 상징적인 예술관의 정초로서의, 노발리스와 쉴레겔이 주도했던 초기 낭만주의로 나눈다. 그리고 김진수의 책이나 세계의 문학에 실린 두 편의 글은 이 초기 낭만주의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초기 낭만주의에 대한 논의는 발터 벤야민의 견해대로 낭만주의라는 단어가 초기 낭만주의에서만 개념의 혼란없이 다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며 필립 라쿠 라바르트와 장 뤽 낭시 또한 이 초기 낭만주의를 ‘이론적 낭만주의’라고 칭하면서 벤야민의 견해를 수용한다. 하지만 이 낭만주의는 예술의 역사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낭만주의와는 본질적으로 틀리지 않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따라서 이 두 낭만주의가 서로 상이하거나 확연히 틀린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이 글은 그러한 바탕 위에서 씌어진 글이다.

<세계의 문학> 2002년 겨울호에 실린 필립 라쿠 라바르트와 장 뤽 낭시의 글은 그들의 책, <문학적 절대>의 서문에 해당하는 글이다. 그들은 이 서문에서, <‘문학적 장르’에 대한 사유는 그러므로 문학적 사물‘의’ 생산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에서 생산 ‘그 자체’에 관련되어 있다. 낭만주의 시는 포이에시스의 본질을 꿰뚫고자 하며 문학적 사물은 여기서 생산의 진리 그 자체를 생산해내며, 이 책의 뒷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 ‘자기 자신의’ 생산, 일종의 자기 생산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기 생산이 사변적 절대의 궁극적 단계이자 완성을 이룬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낭만주의적 사유에서의 문학의 절대 뿐만 아니라 절대로서의 문학을 인정해야 한다. 낭만주의는 ‘문학적 절대’의 옹립이다>(*)라고 하면서 이는 낭만주의에 대한 통상적인 이미지와 전적으로 구분된다고 말한다. 이 통상적인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아마 김진수의 견해와 비슷하리라 생각되는데, 그도 그의 책 서문에 <애수에 찬 회고적인 취향과 꿈결 같은 몽상적 분위기로 특징지어지는 ‘낭만주의의 보수성’ 내지 ‘낭만적 보수주의’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불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낭만성과 낭만주의는, 내가 알고 있는 한, 이 운동을 주창한 누구에 의해서도 주장된 바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낭만주의는 그 문학적, 예술적 프로그램을 한층 진보적이고 근대적인 것의 핵심적인 특성으로 파악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하고 있다.

필립 라쿠 라바르트와 장 뤽 낭시의 글만 읽어서는 낭만주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내리기 어렵다. 차라리 그 다음에 실린 쉴레겔의 글이 독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쉴레겔은 ‘낭만적이란 바로 우리에게 감성적 소재를 환상적인 형식으로 서술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감성적이란, ‘그것은 감정이 지배하는 곳에서, 더욱이 감각적인 감정이 아니라 정신적인 감정이 지배하는 곳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감각적 흥분의 근원이자 영혼은 바로 사랑이며, 낭만적 포에지에서는 그러한 사랑의 정신이 도처에서 보이지 않는 모습과 보이는 모습을 동시에 지녀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쉴레겔의 언급은 김진수의 책을 통해 보다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낭만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세계의 문학에 실린 특집을 읽을 필요 없이 김진수의 책을 먼저 읽는 편이 좋다. 초기 낭만주의를 이해하는데 있어 김진수의 책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김진수는 낭만주의가 지니고 있는 반이성적이며 반계몽적인 특성에 주목한다. 그는 ‘낭만주의는 삶을 이성의 빛으로 조명하고자 하는데 반대한다. 오히려 낭만주의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삶을 신화로 만들고자 한다’고 평가한다. 즉 미적 근대성 프로젝트가 예술 자체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낭만주의는 그 극점에서 서 있는 운동이었고 이것은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근대성보다는 탈근대성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진수는 낭만주의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예술적 차원이 아닌 정치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보급되고 통용되는가에 대해선 깊이 있는 통찰이나 견해를 제시해주지 못한다. 도리어 이 둘을 엄밀하게 구분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낭만주의의 혁명성은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 오로지 미적 측면에만 놓여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의 논의는 미적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으로 확대되고 만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낭만주의적 태도가 어떤 극점에 다다르면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와 연결된다. 즉 우리의 삶을 상상력과 환상으로만 채우려고 할 때, 정치적으로는 매우 관심해지며 삶을 개선시키고자하는 실천적인 과제에서 멀어진다. 김진수의 책이 낭만주의에 대해선 매우 잘 정리되어있는 책이지만, 거리 위에서 건물 속에서, 혹은 논밭이나 공장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삶을 상상력과 환상으로 채우려고 했던 쉴레겔과 노발리스는 매혹적이긴 하나, 우리의 고단한 삶을 실제로 구원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진수가 언급했던 낭만주의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낭만주의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낭만주의 연구자로서 김진수는 낭만주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벗겨내는데 노력을 해야겠지만, 낭만주의가 지니고 있는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진수가 인용한 만프레드 프랑크의 견해는 귀담아들을 만 하다. “사변이 성찰을 통해 절대적인 것에 이르려는 요청을 포기하는 철학을, 그리고 이러한 결핍을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보충하려는 철학을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낭만주의 예술론은 예술을, 미적 직관을 중심으로 세계를 해명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문학적 절대’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낭만주의 속의 어떤 이상주의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김진수의 언급 : ‘미적 직관을 절대화함으로써 야기되는 미와 예술의 절대성에 관한 이론이 낭만주의의 (미적) 근대성을 특징짓는다’와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예술의 자율성을 넘어서 예술의 절대성을 추구했던 초기 낭만주의자들의 이념에 대한 것이다. 이 경우 두 명의 프랑스 저자들은 이러한 절대성 추구에 많은 의미를 부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2010.01.28) 요즘 키신(Kissin)이 연주하는 쇼팽을 들으면서, 자주 낭만주의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 전에 낭만주의에 올렸던 포스팅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업데이트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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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
Oil on tinplate, 43 x 32 cm
Museo del Prado, Madrid


고야의 작품은 언제나 흥미롭고 격조있지만, 비극적이고 끔찍한 우울과 절망을 가리고 있다. 몇 년 전(2004년 6월), 어딘가에 올렸던 글을 다시 여기에 옮긴다.
 

낭만주의 시대(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최고의 예술가는 "프란시스코 고야"다. 그는 계몽주의가 남긴 혁명의 그림자 속에서 삶의 허무와 거짓된 역사를 뚜렷하게 목격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보통의 낭만주의자들이 이야기하곤 하는 사랑이라든가 환상, 또는 매혹의 도피 따윈 다 허위이거나 기만이고, 도리어 그 세계 속에서조차 우리는 삶의 허무나 죽음,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래서 자끄 루이 다비드와 동시대인이면서 다비드가 계몽주의 신념 속에서 자만과 오만의 성을 쌓았다면 고야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계몽주의 세계가 만들어놓은 거짓, 그리고 우리가 끝내는 굴복하고 말 어떤 허무와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고야의 세계를 느끼게 될 때 그 이후의 모든 낭만주의자들이 시시해지고 19세기 초반의 낭만주의자들을 다시 보게 된다. (2004년 6월)


내가 스페인 마드리드를 가게 된다면, 아마 그것은 프라도 미술관 때문일 것이다. 여튼 이 짤막한 글을 올리고 난 다음, 아는 분의 긴 리플이 이어졌다. 여기에도 옮긴다. 미뇽님께선 어떻게 사시는지 무척 궁금하다. 건강하게 잘 계신지. 


미뇽 (2004/06/28 13:53)

프랑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비하여 서정성이 부각되고 주제에 있어서 다양화되면서 어떤 것도 주제가 될 수 있었지만 대부분 사랑으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자기 목소리로 시를 쓸 수 있었겠죠.
그러나 위고를 비롯해서 역사성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독특하죠.
그래서 서사시에 대하여 높은 가치를 두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미술에서는 계몽주의와 대비가 되어 낭만주의가 상관관계 속에 놓임으로써 그 특징이 비교되는 것이 일반적인가 봐요. 문학에서 낭만주의는 보통 고전주의와의 대비 속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지하련 (
2004/06/28 13:54)

빅토르 위고는 '후기 낭만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진보에 대한 열정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이 때부터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논의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좀더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한 계급갈등. 도시의 급성장과 농촌의 피폐화. 자본주의 시스템 속으로 편입된 예술가의 지위에 대한 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19세기 초의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은 18세기 계몽주의의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는 곧바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특히 칸트에게서 두드러지는데, 칸트의 철학은 계몽주의이며 그의 미학은 낭만주의 미학입니다. 다른 관점으로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예술사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도 마찬가지이구요.


미뇽 (2004/06/29 18:16)

초기 낭만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이라는 말은 개인의 해방과 자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혁명의 이념과 낭만주의의 모토가 같은 뿌리라는 말로 이해되며 그 점은 저도 동감을 해요. 그러나 초기 낭만주의의 경우 이상한 점은 혁명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적어도 프랑스 낭만주의의 경우에는요.
왜냐하면 혁명기의 격동은 도리어 18세기의 낭만주의 예고자인 루소가 대표적으로 보여 준 새로운 감수성의 맥을 끊어 놓았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복고주의가 대두하고 문학의 모든 쟝르에 있어서 옛 형식이 그대로 지배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나폴레옹의 정권은 신 고전주의의 틀 속에 문학을 가두어 두려고 했으니까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새로운 감수성의 작가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차라리 고립적, 예외적 존재들이었다할 수 있었어요. 이들(샤토브리앙, 스탈부인, 콩스탕, 세낭쿠르)을 소위 전기 낭만주의자들로 명명합니다.

지하련님이 위에서 지적하신 대로 고야에게서 초기 낭만주의 자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이들 모두가 18세기 이성이 약속해준 듯이 보였던 새로운 사회는 환상에 불과함을 인지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낭만주의는 크게 보수적, 진보적 낭만주의로 나누어지나, 이들의 고통된 점은 현실에 대한 혐오와 고전주의에 해단 반감으로 합결된다는 점에서 볼때, 외적으로는 대혁명의 연장선으로 이해되지만 내적으로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하련 (
2004/06/29 18:43)

흠. 제 리플에 오해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있군요.
19세기 낭만주의가 프랑스 혁명의 결과물이라고 한 것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 속에서 낭만주의가 생겼다는 뜻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미뇽의 생각과 별 차이가 없는..)

프랑스 혁명의 귀결은 이성주의가 아니라 감정주의였으며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의 등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계몽주의가 내세웠던 이성의 결과라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낭만주의는 반합리주의, 비이성주의라는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의 반발이라고 볼 수 있죠. 즉 혁명 실패에 대한 결과인 셈이죠.

제가 프랑스 대혁명이나 계몽주의를 이야기한 것은 19세기 낭만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두 계기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나 연구자들이 낭만주의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그 당시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혁명의 열기, 그리고 그 혁명이 가져다 준 절망감, 공포, 독재에 대해선 별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 속에 자신의 성을 쌓고 안주하기 시작합니다. 독일의 경우 사태가 좀더 심각하여 독일이라는 나라에는 아예 혁명이 가능하지도 않는 곳이라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의 이러한 고립감은 더욱 심각했으며 이것이 독일 이상주의를 만들게 됩니다.
루소의 경우 18세기, 19세기 초반을 지배했던 인물입니다. 이는 루소라는 인물 자체가 서로 모순되는 점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루소에게서는 이성주의적 성격과 비이성주의적 성격을 동시에 파악해낼 수 있습니다. 전자는 프랑스 혁명으로 연결되지만, 후자의 경우 로코코 양식이나 낭만주의 양식으로 연결됩니다. 미뇽님이 생각하시는 바가 맞습니다.

고야의 경우에는 보통의 낭만주의자들이 도피한 곳을 보여주면서 그 곳마저도 현실의 절망이나 비극, 삶의 허무가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야는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제대로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만큼 현대는 절망적인 인식을 하기 시작하는 시대이니깐요.

***
요즘 포스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실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 집중할 시간이 없다.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다. 꽤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예전에 올렸던 글을 새로 올리면서 사소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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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운동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데아에 공허나 부정적인 것을 덧붙여야 한다. 플라톤의 "비존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는 이런 것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마치 산수의 한 단위에 영이 합쳐지듯이 이데아와 합쳐져서 이데아를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다수화시키는 형이상학적 공허인 것이다. 불변적이고 단일한 이데아는 이에 의하여 무한히 퍼져가는 운동으로 분산된다. 권리상으로는 오직 불변적인 이데아들만이 있어서 상호간에 움직일 수 없이 꽉 들어차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질료가 나타나서 공백을 거기에 덧붙여주고, 동시에 우주적인 생성을 분리해 낸다. 질료는 파악할 수 없는 무가치한 것이면서 이데아들 사이에 잠입하여 마치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스며든 의심처럼 끝없는 동요와 영원한 불안을 자아낸다. 불변의 이데아의 지위를 하락시켜 보자. 그러면 그에 의하여 우리는 사물의 영구적인 변화를 획득하게 된다. 이데아 내지 형상은 의심할 것없이 예지적인 전 실재, 즉 전부 모여 [파르메니데스적] 존재의 이론적 평형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진리의 전부라고 하겠다. 감각적 실재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이 평형점의 양쪽으로 끝없이 일어나는 동요인 것이다.
-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315~316쪽.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서광사, 183쪽)


고전주의자, 혹은 플라톤주의자가 되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낭만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저 하늘의 별빛과 내 마음의 별빛이 일치하던 시대의 아름다움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플라톤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사상을 접하면서 나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마음이라든가, 이상적인 아름다움, 영원한 가치 따위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퇴근길에 베르그송의 저 문단을 읽으면서 약간 울컥했다. 모험으로 가득찬 그리스 시대를 살았던 사상가들은 마음 속으로 모험이지만 모험이 아닌 어떤 세계, 움직이지만 실은 정지해 있는, 그래서 꽉찬 어떤 세계를 염원했고 그것을 남겨놓았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 달기라고 하지만, 플라톤 철학도 알고 보면 파르메니데스와 피타고라스에 나왔고 이 둘의 사상은 고대 이집트의 세계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고대 이집트가 어떤 곳인가. 이 곳에선 죽음은 또다른 탄생이고 영원이며, 운동은 일종의 반복이고 시간을 끊임없이 도는 것이며 직선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란 없다. 세상은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며, 여기에 예외란 없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몇 천 년 후에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지적한다. 그의 철학은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곡선을 그리는 듯 하다. 그의 문장은 대단히 아름답고 비유적이다. 그리고 설득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마 10년 전의 나라면 베르그송을 인정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 이래저래 실패의 흔적들만 얼굴에 남긴 채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베르그송은 아주 슬픈 위안이다. 그는 나에게 정지해있는 모든 것들은 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그것의 신비나 가치,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한다. 하지만 난 아직 그것의 신비나 가치, 아름다움에는 관심없고 플라톤이 잡고자 했던 어떤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실은 나도 그런 것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추구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 옆의 사랑이 변치 않았으면 바랬고 내 언어가 영원하길 염원했으며 변하지 않는 어떤 것, 그것이 이데아이든 형상이든 물자체든, 반드시 있다고 믿었다.  

'영원의 움직이는 이미지인 시간',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언급한 표현이다. 그는 시간마저도 붙잡아버렸던 것이다. 그는 시간을 부정했다. 그러니 시간이 지배하는 이 현실 세계는 도대체 평가할 만한 가치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세계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현실 세계를 한 발짝 벗어나지 못하지 않는가. 칼 포퍼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경향 때문은 아니었을까. 

베르그송이 그간 읽히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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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플라톤 주석 달기라는 애기를 많이들었는데요..
    플라톤의 필레보스를 읽고 있노라면 뭐랄까..
    정제되고 순환되지 않는 이데아라는 개념이
    무한이 반복하고 진화되고 있는 이상의 개념으로 바꼈었는데요...
    전 철학과라 관심이 많네요 ㅋㅋㅋ

    • 화이트 헤드의 표현입니다. 너무 깊이 생각하시지 마시고, 그냥 플라톤 철학이 서양 철학사 내에서 가지는 위상에 대한 표현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같습니다.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의 쿠르베



"어떤 세기의 화가가 그 이전 세기나 미래의 세기의 사물을 재현한다는 것, 즉 달리 말해서 과거나 미래를 그린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역사적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당대적인 것이다. ... 또한 나는 회화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현실적이고 실재하는' 사물들의 재현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화란, 어떠한 단어 대신에 모든 가시적인 대상으로서 구성된, 전적으로 물질적인 언어이다. '추상적인' 대상, 눈에 보이지 않으며 실재하지 않는 대상은 회화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 쿠르베,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1861년 12월) 중에서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오랜만에 미술에 대해서 잠시 끄적여 본다. 로만티시즘(낭만주의)의 로만은 로마에서 온 것이 아니라 중세의 '로망스(romans)'에 왔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귀족 부인과 기사의 사랑 따위나 요정과 마녀 같은 것들은 이 로만티시즘 시대(19세기 초반)에 부흥한 것도 이와 연관이 깊다. 요정과 마녀가 중세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이유는 이 서양의 전설은 기독교적이거나 그리스-로마적인 전통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게르만적-북유럽적이며 중세적 전통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서유럽의 역사 속으로 북유럽 게르만이 자신들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중세가 시작될 무렵이며 7-8세기 이후에는 그들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그리스-로마 문화의 부흥(르네상스)로 인해 이것이 다소 위축되다가 로만티시즘 시대에 와서 다시 불꽃을 피우게 된다. 북유럽 신화와 전통에 기대어 있는 '반지의 제왕' 같은 소설도 이러한 로만티시즘의 끝자락에 위치한 소설인 셈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것들이 유행의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일까?

학자들은 18세기를 '계몽주의 시대'라고 말한다.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 '합리적 이성'에 바탕을 두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정치적 지성인들이 서구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서구 역사 상 최초다. 18세기가 인문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상 최초로 지식인이 정치적 권력을 얻었으며, 이는 종교나 왕권, 혹은 군대에 기대어 이룬 것이 아니라 대중과 저널리즘(* 인쇄술이 얼마나 지대한 공로를 했는지를 알 수 있다)에 기댄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결과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은 '이성'일지 모르나, 그 귀결은 '광기'요, '파시즘'이었다. 결국 유럽은 '합리적 이성'이 현실 정치 상황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끝없는 절망감 속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영향 속에서 낭만주의는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흔히 '낭만적'이라고 할 때의 그 기분이 현실 앞에서 서서 현실에 대응하며 그것과 싸우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곳에 위치한 것도 바로 이 까닭 때문이다. 하지만 위대한 낭만주의자들은 그 절망, 무력감, 광기와 싸우며 그것들을 보여준다. 들라크루와는 싸우는 낭만주의자였으며, 제리코는 보여주는 낭만주의자였다. 이러한 낭만주의자들 속에서 쿠르베는 낭만주의 너머의 세계를 보게 된다. 즉 신화적 현실 세계(들라크루와)도 아니며, 미쳐버린 현실 세계(제리코)도 아닌, 그냥 너무 평범해서 아무런 가치 판단도 할 수 없는 어떤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경향을 '레알리즘'이라고 이름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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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유채, 135*200cm
1866년, 프티-팔레 미술관,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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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어
캔버스에 유채, 55*89cm
1872년
쿤스트하우스, 취리히
 
쿠르베의 '잠'은 사교계나 귀족 고객들의 취향을 고려해 그린 작품이다. 그의 표현력은 당대 최고였기 때문에,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는 상업적으로 성공적인 예술가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래 작품 '송어'를 보라. 뭐라고 하기에 다소 난감한 소재의 작품이다.
(미술고교에 다니는 학생이 이런 작품을 그린다면 바로 미술담당 교사에게 핀잔을 듣거나 야단을 맞겠지. 나도 초등학교 때 이런 유형의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상식 이하의) 지적이었는데.)

'송어'를 보면 쿠르베가 얼마나 정치적인 인물인가를 알 수 있다. 그는 적절히 당시 지식인들과 미술계를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그 방법을 곧잘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 방법을 통해 낭만주의 미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였으며, 아카데미 미술과 낭만주의 미술에 파묻혀 있던 이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감식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쿠르베는 낭만주의 시대를 끝내고 근대 예술의 최절정인 인상주의 시대를 열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셈이었다. 쿠르베는 현실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면, 마네는 그 현실을 사각의 캔버스에 옮기는 방법에 있어서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다시 한 번 위 쿠르베의 편지를 읽어보자. 그리고 아래 그림을 한 번 보자. 1890년에 그려진 이 그림. 많은 웹사이트와 미술 관련 책에 등장하는 이 그림. 그런데 정작 권위 있는 미술사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 그림. 뭐, 이야기 해 봤자, 비난 밖에 나오지 않을 테니 이 쯤에서 그치는 것이 좋을 것같다. 더구나 이 그림을 대단한 그림인 양, 이야기해대는 무수한 웹사이트의 글쓴이들과 미술 관련 서적에 이 그림을 가지고 뭐라고 해댄 저자들이 솔직히 두렵기도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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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1890년

위 작품이 제작되기 70년 전에 그려진 아래 그림을 보자. 아리 세페르와 장 레옹 제롬이 뭐가 틀리지? 놀랍게도 세상은 한 순간도 변하지 않았다. 이런 놀라운 일이. 예술이 시대의 반영이라는 소리 따위는 집어치워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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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세페르, 성 루이의 죽음, 1817년

아리 세페르(Ary Scheffer)에 대해 보들레르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보들레르는 들라로쉬(Delaroche)를 생각나게 하는 '그토록 불행하고 그토록 슬프고 그토록 막연하며 그토록 더럽기 짝이 없는' 셰페르의 그림에 대해 조소한다.
- A. 리샤르, '미술 비평의 역사', p.113

아, 이 글에서 들라로쉬까지 이야기하진 말자. 다만 인상주의 미술가들과 제롬, 아리 세페르, 들라로쉬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동격에 놓고 설명하는 글이나 책이 있다면, 그 책은 형편없는 쓰레기임을 기억해두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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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로그를 돌아다니다보면 윌리엄 부게로를 인상주의 혁명에 밀려 인정받지 못한 저주받은 화가로 추켜세우는 포스트를 쉽게 볼 수 있는데요. 부게로의 그림을 보면 지하련님이 말씀하신 아리 셰페르나 제롬이나 부게로와 다를바 없다는 것을 당장에 알 수 있습니다. 회화가 이미 모더니즘의 시대로 들어온 이후에도 티치아노나 틴토레토 스타일로 그리스/로마 시대의 神들을 그리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 퇴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쿠르베야말로 프랑스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로부터 로마 시대의 토가를 체계적으로 벗겨낸 거의 최초의 인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합니다. 보들레르는 쿠르베를 일컬어 연미복과 프록코트가 '우리 시대의 필연적인 복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화가라고 했습니다. 들라크루아가 있기에 쿠르베가 가능했고 쿠르베가 있기에 마네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마네에 이르러 비로소 미술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예술을 베끼지 않고 동시대의 삶을 직접 묘사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푸코는 보들레르를 인용해서, 모더니티란 현재를 영웅화시키는 의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술이 더 이상 그리스/로마 시대의 예술을 베끼지 않고 독자적으로 동시대의 삶을 직접 미메시스하는 분기점이 바로 쿠르베와 마네부터라고 생각해요; 보들레르로부터 호의적인 지원사격을 받았던. 운문예술에서 그 자신이 분기점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 퇴행이죠. 아직도 예술에 있어서의 그런 퇴행은 자행되고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에 현혹되죠.
      아리 세페르는 예수 그리스도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입니다. 좀 비현실적으로, 비역사적으로, 심지어는 반종교적인 그림인데, 기독교인들은 그 그림을 좋아하는 것같더군요. 부게로는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인정받기 어려운 화가입니다. 그런데 블로그에, 그 화가의 그림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걸 보면, 건전한 심미안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되새기게 됩니다.
      푸코가 보들레르를 인용하면서 '모더니티란 현재를 영웅화시키는 의지'라고 표현한 것은 매우 정확한 지적이라 여겨집니다.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끊임없는 변화하는 현 공간 속에서 정직한 한 순간을 담아내려고 하였듯이 보들레르 또한 그의 시를 통해 그 순간의 시심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모더니스트들의 예술의욕일 지도 모르겠네요.


두 얼굴의 '숲'



문명화된 숲


어렸을 때, 나는 언제나 마을 뒷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채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의, 내 호기심을 자극하던 뒷산 너머에 있을 그 무언가, 미지의 세계. 거대한 바다가 있거나 반짝이는 조명으로 찬란한 대도시이거나, 아니면 내가 세계 최초로 발견하게 되는 외계인 마을이거나. 그리고 결국 나는 뒷산에 오르고 만다. 오전 일찍 집을 나선 나는 마을 뒤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키에 적당한 길이로 나무 가지를 꺾어 지팡이로 사용하면서. 그렇게 몇 시간을 올라갔을까. 산 정상은 보이지 않고 좁은 길 흔적마저도 사라진 채,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들 소리만 들리고, 눈앞에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 속으로 가느다랗게 내려앉은 햇빛뿐. 이 때쯤 되면 나를 지배하던 호기심은 어디론가 뒷걸음쳐 그 모습을 숨기고, 숲 속은 별안간 두렵고 무서운 어떤 것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올라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는 뒤로 돌아 마을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지만, 어느 방향에서 올라온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고 등 뒤 공포의 크기는 시간이 갈수록,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더 커져만 간다. 산 정상으로부터 물들어가는 어둠이 산 아래까지 스며들었을 무렵, 겨우겨우 마을이 보이는 언덕에 도착하게 되고 눈앞에 보이는 마을 불빛을 보며 안도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안전한 문명의 불빛이었다.

무섭고 두려운 공포의 자연과 안전하고 아늑한 문명의 대비를 최초로 경험한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산행을 하더라도 등산로가 아닌 다른 곳으로는 가지 않게 되었다. 어렸을 때의 이 사소한 경험은, 실은 오래된 ‘안전한 문명과 야만적 자연의 대비'다. 가령 중세 유럽의 ‘숲’은 ‘가상적 혹은 현실적인 위협과 위험으로 가득했다.' 밤에 늑대로 변신하는 도깨비들이 출현하였고, 야수와 반야만인이 살고 있었다. 그 곳은 ‘장원과 장원, 지방과 지방 사이의 변경 지대였으며, 특히 전혀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한 가공할 만한 어둠으로부터 굶주린 늑대들이며 산적들이며 약탈적인 기사들이 갑자기 출현하였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서양 중세에 있어서 모든 진보는 가시덤불과 소관목, 또는 만일 불가피하거나 기술과 장비가 허용된다면, 거목과 처녀림, 페르스발의 ‘황량한 숲’, 단테의 작품에 등장하는 ‘침침한 숲’에 대한 개간과 투쟁과 승리의 결과이다'. (자크 르 고프, <<서양중세문명>>, 유희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2년, pp. 155~158 참조)

자크 르 고프가 언급하는 바의 그 ‘진보’는 12세기 고딕(Gothic)을 꽃피우게 하였으며, 근대의 정신(Modernity)이 되었다. 이제 숲, 혹은 자연은 인간이 개척해야 되는, 개척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었다. 이후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는 자연과학은 이러한 정신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야만적 자연은 그 모습을 감추는 듯했다. 저 밝게 빛나는 이성의 빛 앞에서 자연은 아무런 힘 없는 배경으로 자리 잡는다. 네덜란드 바로크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문명화된 자연이다. 인간의 힘 앞에서 그 본래의 원초성, 야만성을 잃어버린다.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문명 앞에서 나약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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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더르트 호버마
<데펜터의 풍경>
목판에 유채, 53.3*71.7cm, 1662년~1663년경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위스 왕립미술관.


숭고한 어떤 세계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이성의 빛으로 포섭될 수 있을까. 한 때 그런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시대가 있었으니, 그 시대가 바로 바로크 시대였다. 뉴튼과 데카르트를 위시하여 바흐와 렘브란트로 이어진 그 시대에 인간은 신의 진리를 알아챌 수 있는,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유일한 존재의 역사는 신의 진리를 알아도 시간 속에 놓여진 운명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하다는 사실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를 살다간 칸트는 ‘우리는 결코 물 자체(Ding an sich)가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없고, 사물이 우리들에게 현상하는 대로만 사물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금 문명과 자연의 대비를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킨다.


높이 솟아 방금이라도 내려앉을 듯한 험한 절벽, 번개와 우뢰를 품고 유유히 다가오는 하늘 높이 피어오른 먹구름 온통 파괴력을 자랑하는 화산, 황폐를 남기고 지나가는 태풍, 파도가 치솟는 끝없는 대양, 힘차게 흘러내리는 높은 폭포와 같은 것들은 우리들의 저항하는 능력을 그러한 것들이 가지는 위력과 비교해서보잘 것 없이 작은 것으로 만들고 만다. 그러나 우리가 안전한 곳에 있기만 한다면, 그 광경은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더욱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이 될 뿐이다.
- 칸트, <<판단력비판>>, 이석윤 역, 박영사, 1996년 중판, p.128


칸트에게 있어서 이러한 자연은 숭고한 것이다. 그에게 숭고미는 문명의 빛이 닿지 않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숭고한 자연은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을 매혹시킨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이러한 숭고한 자연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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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떡갈나무 숲의 대수도원 묘지>
캔버스에 유화, 110.4*171cm, 1809년경
베를린 국립 미술관.


낭만주의자들에게 자연은 지친 우리 영혼을 쉬게 해주는 안식처를 넘어 기독교의 신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신적인 존재로까지 부상하게 된다.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는 정통 기독교에 대한 가장 막강한 대안이요 유행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범유럽적 경향이었으며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자연에 대한 숭배가 종교적인 것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자, 숭고한 자연의 모습은 몇몇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소박하고 친근하며 애잔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19세기 후반 영국 라파엘 전파와 프랑스 인상주의자들이 바라보는 자연의 풍경은 후대 미술사가들의 극단적인 평가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존 에버릿 밀레이의 <오필리아>는 숲 속 개울물 위를 떠내려간다. 그녀의 얼굴은 당혹스런 슬픔으로 가득 차 있고 그녀의 주검 주위로 버드나무와 데이지꽃, 장미와 제비꽃 등 낭만주의자들을 매혹시켰을 꽃의 상징들로 장식되어있다. 이제 숲 속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흘러가는 곳으로 변한 것이다. 여기에 비해 인상주의자들에게 숲은 너무 건조하고 딱딱하며 지나치게 쓸쓸한 어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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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캔버스에 유화, 76.2*111.8cm, 1851년경
런던 테이트갤러리.



(*월간 <숲> 8월호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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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예술가와 사회

19세기의 특징
- 18세기에게 본격적으로 등장한 부르주아가 확고한 기반을 다짐
- 패트론 제도가 유명무실화됨: 19세기적 상황이라기 보다는 17세기부터 진전되어왔으나 18세기 후반부터 계급 갈등이 본격화되고 세속화가 첨예한 형태로 진행됨
- 이 상황 속에서 부르주아의 속된 취미에 봉사하는 예술 양식이 유행하게 됨
- 인상주의자들의 성장 배경을 형성함.

예술가의 자의식
-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 속에서 예술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현실 세계를 폄하하고 벽을 쌓아올림.
- “가령 셸리의 ‘민감한 식물sensitivie plant’, 비니(vigny)의 요람Moise, 보들레르의 거대한 날개 때문에 땅 위를 걷지 못하는 신청옹albatross 등이 이러한 예술가의 자의식, 예술가의 운명, 지위 등을 상징한다.”
- ‘상아탑tour d’ivoire’ : 생뜨 뵈브가 알프레드 드 비니의 생애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 미적 은둔 생활을 위해 사회적 의무를 포기한 삶.

L’art pour l’art
테오필 고티에. “책은 젤라틴 수우프와 바꿀 수 없고 소설은 봉합흔적이 없는 한 컬레의 장화가 아니다.”, “나는 예술의 자율성을 믿는다. 나에게 있어 예술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 “, “호머의 시, 피디아스의 조각, 라파엘의 그림은 도덕주의자들의 온갖 논문보다 인간의 영혼을 더 많이 고양시켰다.”
미의 종교religion de la beaute’ : 플로베르
esse est percipi (존재하는 것이 지각되는 것이다)
말라르메: 세계는 한 권으로 책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존재한다.
오스카 와일드 : 예술이 삶을 모방하기보다는 삶이 예술을 훨씬 더 많이 모방한다.

사실주의
후기 낭만주의적 경향으로 이해하는 학자도 있음.
빅토르 위고와 구스타브 쿠르베 : 과학과 진보에 대한 믿음.
졸라. “우리는 실험화학과 물리학을 가지고 있다.” <- 실험소설론.

사회적 책임.
위고. “예술을 위한 예술은 훌륭하다. 그러나 진보를 위한 예술은 훨씬 더 아름답다.”
콩트. “예술은 사실의 이상적인 재현이다. 그리고 예술의 목적은 우리의 완전성에 대한 감각을 함양하는 것이다.”
푸리에. 유토피아로 가기 위해 예술과 미는 필수 요건임.
프루동. “예술은 자연과 우리 자신의 이상화된 재현으로서, 그것의 목적은 인류의 신체적, 도덕적 완전성이다.”

러스킨와 모리스의 경우.
러스킨 : 미적 양식의 기능주의
“산업 문명은 인간을 기계로 바꾸어 놓았다.”
윌리엄 모리스: 장식적 예술. 바우하우스. 아르누보. 현대 디자인 개념을 만듦.
톨스토이.

12장. 오늘날의 전개 양상.
크로체와 형이상학자들.
크로체. 직관 = 표현. 따라서 “예술은 곧 표현”, 정서의 표현.
예술적 직관은 서정적일 뿐만 아니라 우주적이다.
콜링우드 : 크로체의 세계를 그대로 이어받음.
베르그송.
산타야나. 도덕주의자.
듀이. 정제되고 강화된 경험형태인 예술 작품과 일반적으로 경험을 구성한다고 여겨지고 있는 일상적 사건들 사이의 연속성, 행함과 겪음 사이의 연속성을 회복시키는 것, 이것이 과제이다.
미적 경험은 한 문명의 삶의 표명과 기록과 기념이며, 그 문명의 발전을 촉진하는 수단이다. 그것은 또한 한 문명의 질에 대한 최종적 판단이다.

기호학적 접근
다른 어떤 하나의 기호로서 기능하는 과정, 즉 기호화semiosis의 문제.
의식의 새로운 차원, 즉 자의식에까지 뚫고 들어갔으며, 기호sign와 지시체significatum (referent)를 구별해야만 수월하게 사고 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특징적이게도 기호론적 차원을 염두에 두면서 문제들에 접근하는 것 같다.

마르크스-레닌주의
플레하노프. 예술작품이 그릇된 관념에 기초해있으면, 내재한 모순이 필연적으로 그것의 미적 성질의 타락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재능을 입증받은 어떤 예술가라도 우리 시대의 위대한 해방적 이념들에 몰두함으로써 자신의 작품의 강렬도를 상당히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현상학.
예술작품은 “세계를 건립하고 대지를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물’이나 유용한 사물(도구)과 구별된다. – 하이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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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한길사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다고 느낄 때, 진정으로 그러하다고 느낄 때, 그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란 몇 가지 밖에 없다. 그 첫 번째가 죽음이며, 그 두 번째는 죽음이 무서워 벌벌 떨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정도. 그 외에도 있겠으나 내가 아는 바는 이 두 가지뿐이다.

그러니 그-루소-가 정말 '고독'했는지는 두고볼 일이다. 이 책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루소의 두 가지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다. 하나는 그 나쁜 놈들, 자신을 미워하고 모함했던 자들에 대한 증오이며 나머지 하나는 그 증오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산책'이란 삶의 거친 풍랑 속에서 살아남은 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행위들 중의 하나이다. 루소의 산책은 그러한 매력이 그저 산책이라는 행위로 기인된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 논리와 감정, 합리와 모순 사이에서 갈등하며 스스로의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정신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제 나는 이 지상에 혼자다. 오직 나 자신뿐, 형제도 이웃도 친구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애정이 넘치는 한 사람이 이렇게 그들에게서 만장일치로 추방되었다."


"행복이란 이승의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지 않은 어떤 항구불변의 상태다. 지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아무 것도 불변의 형태를 갖지 못한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우리 자신도 변한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가 오늘 사랑하는 것을 내일도 사랑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처럼 인생을 위한 우리의 모든 지복의 계획들은 망상일 뿐이다."


아무렇게나 인용한 두 단락 속에서 루소가 바라보는 세계관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관과 대치되는 곳에 '산책의 세계관'이 위치한다. '자연관'이라고 해야 더 옳을 듯한 루소의 그 세계는, 솔직히 나에겐 별 호소력 없는 세계다. 그건 늙은이의 세계다.

이렇게 말해도 옳다면 실존의 세계에서 방황하다 존재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나온 세계관이라 칭하고 싶다. 난 끔찍하기 그지없는 실존의 세계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루소의 '산책의 세계관'은 감동적이지 않다. 차라리 그의 증오가, 그의 미움이 더 매력적이다.





고독한산책자의몽상-개정

장자크루소 저 | 김중현 역 | 한길사 | 2011.01.07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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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책'이란 삶의 거친 풍랑 속에서 살아남은 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행위들 중의 하나이다." 멋진 문장입니다. 지하련 님의 글을 보고 있자니, 어쩔 수 없이 이 책이 보고 싶어지네요.^^

    - 현선 드림

    • 읽어볼 만합니다. 루소가 워낙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해요. ^^~. 이 책을 읽은 지도 꽤 되었네요. 올핸 루소의 다른 저서 한 권 정도 읽어야겠군요. 그리고 너무 과찬이세요. ^^ 이 책을 쓸 당시 루소의 처지가 그랬고, 그걸 문장으로 적어본 것에 불과합니다. ㅎㅎ

  • 2014.01.24 18:41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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