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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나이가 들수록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하나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밀스러운 속살이라기 보다는 굳이 알 필요 없는 구차함에 가깝다. 인과율의 노예라서 '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나 배경으로 끼워 맞출 수 있다는 것 이외에 쓸모없는 것들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쌓이면 이 세상이나 우리 삶은 참 슬픈 것이라는 생각에 휩싸인다. 아마 하우저가 그리스 고전주의 정점을 'The Contemplating Athena'로 여기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게다.


부연하자면, 알기 때문에 피하게 되고 알기 때문에 멀리하게 되며 알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게 된다. 알기 때문에, 결국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회한과 눈물의 밤을 보내고 젊음을 부러워하고 되돌릴 수 없는 추억에 자신의 마음을 맡기게 된다. 


자기 반성은 불필요한 일이다. 세상은 자기를 반성하는 자를 원하지 않는다. 세상은 진지한 철학자를 원하지 않는다. 결국 미르네바의 올빼미는 세상이 끝날 무렵에서야 날개짓을 한다. 그리고 그건 세상의 관점에선 소득 없는 일이다. 


저 작은 부조는 그리스 고전주의의 정점에서 어떻게 그리스 고전주의가 뒷걸음칠 것인가를 드러내는 듯하다. 우리가 믿는 굳건한 신념과 이상이 현실 앞에서 결국엔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아테네는 알고 있다. 그래서 고전주의자들은 낭만주의를 가슴으로 이해하지만, 한 번도 고전주의자가 되어본 적 없는 낭만주의자는 고전주의는 커녕, 낭만주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메모해놓은 노트에는 'The Contemplating Athena'으로 되어 있는데, 구글링을 해보니, 'Mourning Athena'로 나온다. 기원전 46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대리석 부조인데(세로 50cm, 가로 30m 정도),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        * 


오랜만에 글 하나를 올린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책도 거의 읽지 못하고 일만 하고 있다. 사정이 좀 나아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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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즐거움 - 6점
김열규 지음/비아북



'한국학의 석학이자 지식의 거장인 김열규 교수!', '한국의 키케로' 김열규 교수의 노당익장老當益壯 분투기! 

하지만 책 표지에 있는 이 수사에 비해, 책의 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더구나 군데군데 잘못된 정보도 있었다. 가령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화상이라고 알려진 스케치가 실제 다 빈치의 자화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미술사에 식견이 있는 이에게만 알려진 사실이라고 치자. 하지만 자끄 플레베르의 '아침식사'를 일부만 옮겨놓고 이렇게 적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이 지루하고 답답하면서도 얄궂은 시는 프랑스의 현대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작품이다. 이는 빈 커피잔과 함께 남겨진 아내가 투덜대는 것이지, 시가 아니다. 잘해야 구시렁댐이고 잘못하면 이혼 사유서 같은 것이다. 할 짓, 할 말은 하지도 않고 안 해도 좋을 시시한 일만 골라서 한다는 것, 그게 이 작품의 대의이다.
샹송 '고엽'으로 유명한 프레베르, 초현실주의를 내건 이 별난 시인에게는 일상성이야말로 포에지, 즉 시정신의 탯불 같은 것이다. 초현실을 내건 시인이 이런 시시한 일상을 노래하다니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194쪽 ~ 195쪽


그는 이 시의 제목도 밝히지 않고, 시의 전문이 아닌 일부만을 인용한 채, 이 시를 한참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담백한 연시로 유명한 자끄 플레베르의 시를, 문학을 전공하고 가르친 교수가 잘못 알고 있다는 건 의외의 일이다. 

(자끄 플레베르, '아침식사' 원문 - http://blog.daum.net/skdmlgkfnek/7233266 )

전체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수필집이지만 기대할 필요까진 없을 것이다. 책을 공짜로 받고 이런 서평을 쓴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책은 저자의 경력에 비해, 함량 미달이었으며, 자신의 노년 생활을 자랑하기 위해 쓴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과연 한국의 노인들 중에 저자와 같은 삶을 사는 이가 몇이나 될까. 책을 읽으면서 머리에선 출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마주치는 김밥이나 찬거리를 파는 노인들의 얼굴이 떠나질 않았다.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얻는 것이라곤, 김열규 교수만의 일상일 뿐, 우리 시대 노인들의 일상은 아니다. 

 




Comment +6

  • 윤민연우맘 2009.08.14 19:33 신고

    학교 다닐 때 호기심 삼아 국문과 수업을 들은 적 있는데
    가뜩이나 한국 대학의 국문학 수업은 영 신통찮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있는 와중에
    이 양반이 쓴 교재는 더욱더 하품나는 것이었더란.
    이 양반의 이름 석자만으로도 이 책이 벌써 지루하고나.
    제목만 봐도 딱 진단이 나와.

    아침식사는 비문학 전공자이면서 시를 안 좋아하는 축에 속하는 나조차 좋아하는,
    몇 되지도 않는 시 중 하나인데 쫌 어이 없는 노인네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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