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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행복한 그림자의 춤 Dance of the happy shades

앨리스 먼로 Alice Munro (지음), 곽명단 (옮김), 문학에디션 뿔, 2010


앨리스 먼로. 작가로 데뷔한 직후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로 읽은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집. 

1968년에 출간된 그녀의 첫 단편집. 

'옮긴이의 말'에서 옮기자면, '여러 해 동안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소설집.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문학적 명성을 안겨준 책이다.

젊었던 그녀가 쓴 단편들이 모인 책이다.


로이스는 치맛자락을 떨어뜨리고 손바닥으로 내 따귀를 후려쳤다. 나를, 아니 우리 둘을 건져준 따귀였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한바탕하고야 말겠다고 내내 벼르고 별렀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 156쪽 


이 짧은 문장만으로 이 소설집, 혹은 이 단편, <태워줘서 고마워 Thanks for the Ride>를 전달하긴 어렵겠지만, 보이지 않는 내일보다 지금, 당장, 오늘 밤을 쓸쓸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젊음들이 서로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갈등을 해소하는 장면으로는 최고가 아닐까. 


1950~60년대 캐나다의 작은 도시들, 어쩌면 그보다 더 작은 마을들을 배경으로 앨리스 먼로는 누구나 겪게 되는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전에 읽었던 그녀의 단편집에선 우리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소설집에선 성장하면서 결국 홀로 부딪히며 극복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어쩌면 먼로의 경험담이 묻어나온 건 아닐까.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소설집에 비해 더 쓸쓸하고 외롭고 거칠고 황량하다. 누군가의 죽음을,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나가거나, 그래서 결국 실수하게 되고 후회하고 아파한다. 적당한 착각과 위로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거짓임을 아는 까닭에 독자들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거나, 알게 될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는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릴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가끔 대도시에서 태어나 대도시에서 살다가 대도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들의 감수성이 궁금하기도 하다. 앨리스 먼로의 감수성은 지방 중소 도시의 그것이다. 한 두 명만 건너면 다들 아는 어떤 공간.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 결국엔 포기하거나 잊거나 모른 척하거나, 그러면서 인생이 내미는 손을 잡고 살짝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석양을 행복하게 바라본다고나 할까. 결국 아프지만, 아팠지만, 지금 옆에 누군가 있긴 하니까. 앨리스 먼로의 소설이 가진 장점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난 다음 쓸데없이 우울해지거나 시니컬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어느 소설보다 더 산뜻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지도 모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하면서. 








행복한 그림자의 춤 - 10점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뿔(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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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지음), 최성은(옮김), 문학과지성사, 2016 





왜 내가 새삼스럽게 외국 번역 시집을 읽으며 감탄을 연발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시는 원문으로 읽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글로 번역된 시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아마 언어 너머로도 전해지는 시적 감수성, 또는 해석의 가능성, 그리고 지역과 언어를 관통하며 흐르는 인생과 세계에 대한 태도 같은 것에  감동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쉼보르스카의 시들은 한글로 옮겨지더라도 그 시적 매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는 역자의 노고일 것이기도 하겠지만, 시 자체가 가진 힘을 그만큼 대단한 것일 게다. 




내가 잠든 사이에




뭔가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다,

어딘가에 숨겨 놓았거나 잃어버린 뭔가를,

침대 밑에서, 계단 아래에서

오래된 주소에. 


무의한 것들, 터무니없는 것들로 가득찬

장롱 속을, 상자 속을, 서랍 속을 샅샅이 뒤졌다.


여행 가방 속에서 끄집어냈다,

내가 선택했던 시간들과 여행들은.


주머니를 털어 비워냈다,

시들어 말라버린 편지들과 내게 발송된 것이 아닌 나뭇잎들.


숨을 헐떡이며 뛰어다녔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들,

불안과 안도 사이를. 


눈(雪)의 터널 속에서

망각 속에서 가라 앉아버렸다.


가시덤불 속에서,

추측 속에서 갇혀버렸다.


공기 속에서,

어린 시절의 잔디밭에서 허우적거렸다.


어떻게든 끝장을 내보려고 몸부림쳤다,

구시대의 땅거미가 내려앉기 전에,

막이 내리기 전에, 정적(靜寂)이 찾아오기 전에


결국 알라내길 포기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나는 과연 무얼 찾고 있었는지


깨어났다,

시계를 본다 

꿈을 꾼 시간은 불과 두 시간 삼십 분 남짓


이것은 시간에게 강요된 일종의 속임수다

졸음에 짓눌린 머리들이 

시간 앞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부터. 



이 번역시집은 쉼보르스카의 유고시집을 번역한 것으로, 책 뒷편에서는 쉼보르스카의, 죽기 전 육필 원고가 실려 있기도 하다.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쉽게 읽히면서도 시적 유머나 휘트, 풍부하고 다채로운 비유들은 읽는 이들을 시 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이혼 




아이들에겐 첫번째 세상의 종말,

고양이에겐 새로운 남자 주인,

개에겐 새로운 여자 주인의 등장,

가구에겐 계다과 쿵쾅거림, 차량과 운송. 

벽에겐 그림을 떼고 난 뒤 드러나나는 선명한 네모 자국.

이웃들에겐 이야깃거리, 잠시 따문함을 잊게 해주는 휴식.

자동차에겐 만약 두 대였다면 훨씬 나은 상황.

소설책과 시집들에겐 - 좋아, 당신이 원하는 걸 맘대로 가져가

문제는 백과사전과 비디오 플레이어, 

그리고 맞춤법 교본이다.

앞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쓸 때 어떡하면 좋을지 적혀 있을 텐데 -

접속사 '그리고'로 연결해야 하는지,

아니면 두 이름을 분리하기 위해 마침표를 사용해야 하는지. 



시란 무얼까? 시를 읽는다는 행위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최근 자주 시집을 읽는다. 내가 다시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에 대해 오래 생각해볼 일이다. 쉼보르스카의 시집, 추천한다. 정말 좋은 시집이다. 

 




Wisława Szymborska (1923 - 2012)




충분하다 - 10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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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10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민음사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Memoria de Mis Putas Tristes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민음사 



1.
이름 없는 사람들의 독자성으로 포장된, 도시인의 무관심으로 가득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맞은 편 사람에게 떠들고 있을 뿐인, 소란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도심의 커피숍에는 무의미한 젊음을 소비하기 위한 21세기의 이십대만 가득했다. 희망을 잃어가는 중년은 없었고, 이승만, 새마을운동, 유신 시대를 겪었던 과거의 기억을 마치 찬란했던 영화처럼 여기는 노년도 없었다. 그저 방향을 잃어버렸고 애초에 방향 따윈 없었던 이십대만 있었던 어느 커피숍에서 나는 1928년에 태어난, 어느 소설가의 소설을 쫓기듯이 다 읽었다.

‘소설을 쫓기듯이 읽었다’는 표현이 주는 당혹감이나 처참한 기분을 알 만한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요즘 내 일상이다. 하긴 다행스러운 것은 이 소설은 해피앤딩이다. 요즘 보기 드문, 결코 일어나기 힘든, 행복한 결말이다. 마지막 문장을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볼까. 



2. 
태양은 공원의 편도나무 사이로 떠올랐고, 강이 마른 탓에 일주일이나 늦게 도착한 하천 우편선이 포효하면서 항구로 들어왔다.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건강한 심장으로 백 살을 산 다음, 어느 날이건 행복한 고통 속에서 훌륭한 사랑을 느끼며 죽도록 선고받았던 것이다. 
- 151쪽 


사랑이야기다. 그것도 천연덕스럽고 이국적인 느낌까지 자아내는,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종류의 이야기다. 아흔이 된 노인네의 사랑이야기라니! 그것도 몸을 팔기 위해 나선 사춘기 소녀(창녀)와의, 말도 안 되는 러브 스토리. 

그러니 마르케스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 소설은 아흔이 된 주인공의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아름다운 마음을 만날 수 있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소설 속 사람들-다 창녀였거나 창녀와 관계되었던 - 을 만날 수 있다. 

세월이 참 많이 흐른 것이다. 노년의 소설가 마르케스는 자신을 아껴주는 마음만으로도 감동받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어떤 어린, 하지만 순수한 창녀를 추억한다. 거친 현실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인 아흔의 노인은 젊었던 시절 자신을 받아주었던, 한때의 창녀에게 위로의 조언을 듣기까지 한다.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하지만 그 아이를 잃어버리지는 마세요.” 그녀는 말했다. “혼자 죽는 것보다 더한 불행은 없어요.” 
- 131쪽 


3.
소설은 오직 주인공의 철부지 같은 생각, 이해하기 힘든 태도, 쓸쓸한 추억을 따라 흐르며, 낡은 흑백 사진과도 같은 사랑을 되새긴다. 그리곤 끝이다. 정열적인 키스 같은 것도, 사랑의 밀어도, 사랑을 지키기 위한 분투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케스만이 가능한 소설이고 마르케스이니, 가능한 사랑이야기인 셈이다. 

소설은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은, 그 사랑이 어떤 것이든 가치 있고 축복 받을 일이다. 마음의 편견과 벽을 허물고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마르케스는 우아하게 풀어놓았다. 

하지만 현실은 노년의 마르케스가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랑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상적이 아니라 현실적이기만 하다. 부언하자면 이상적으로 포장되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이며, 그 현실적 사랑의 아름다운 면만 보여준 셈이다. 결국은 우리는 땅을 딛고 서있어야만 하지, 하늘을 날 수는 없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만 하고 감동을 주기 위해선 뭔가 준비를 해야만 한다. 결국 사랑도 현실적인 고려 속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협상에 가깝고, 현대의 이론을 빌리자면, 그건 동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마르케스인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오직 아름다운 노년과 사춘기 소녀 간의 사랑을 우아하게 들려주고 있으니까. 

오래 기억할 좋은 소설을 읽었다. 다만 쫓기듯 읽은 참혹함만 쓸쓸하게 내 중년의 페이지를 장식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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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련님,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컨텐츠팀 현선입니다.

    이번에 지하련님의 리뷰를 6월 5주 <반디 & View 어워드>로 선정했습니다. 어워드 관련 적립금은 지하련님의 반디 아이디로 일주일 이내에 지급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날씨는 덥지만,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반디앤루니스 컨텐츠팀 현선 드림



저지대 - 8점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문학동네



저지대 

헤르타 뮐러(지음), 김인순(옮김), 문학동네




참 오래 이 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오래 읽은 만큼 여운이 남을 진 모르겠다. 번역 탓으로 보기엔 뮐러는 너무 멀리 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그녀의 양식이 낯설다. 자주 만나게 되는 탁월한 묘사와 은유는, 도리어 그녀의 처지를 짐작케 해주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하기 위해, 그녀는 의미의 망 - 단어들을 중첩시키고 시각적 이미지를 사건 속에 밀어넣어 사건을 애매하게 만들었으며, 상처 입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인물들 마저도 꿈과 현실 사이에 위치시켰다. 


이러한 그녀의 작법은 시적이며 함축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답답하고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얼굴의 모든 낱말은

악순환에 대해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사물들이 물질을 통해 속이고, 감정들이 몸짓을 통해 속이기 때문에, 낱말의 소리는 자신 역시 속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물질의 속임과 몸짓의 속임이 마주치는 접점에서, 말의 소리는 자신이 꾸며낸 진실을 가지고 둥지를 틉니다. 글을 쓸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느냐 보다는 거짓이 얼마만큼 성실하느냐 입니다. 

- 262쪽 - 263쪽

'모든 낱말은 악순환에 대해 알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연설 중에서 



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대단히 매력적이며, 한 번은 읽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대신 이 소설을 읽을 땐 한 번에 다 읽는 것이 좋을 지도. 나는 너무 띄엄띄엄 읽은 탓에, 제대로 읽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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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니예프의 생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지음), 이희원(옮김), 작가정신, 2006년



아르세니예프의 생 - 10점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지음, 이희원 옮김/작가정신
 

 
1.
‘그래, 그랬지. 나는 지금 이 순간 늙어가고 있고, 지나간 일 따윈 돌이킬 수 없지. 하지만 밀려드는 슬픔은 왜일까’라는 말을 하기 위해 나는 이 소설을 6개월 동안 가슴 조이며 읽었다. 6년에 걸쳐 번역한 소설을 나는 6개월에 걸쳐 읽으며, 한 장 한 장마다 러시아의 차가운 서정(敍情)을 느꼈고 거친 대지의 순수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며, 한 영혼이 어떻게 서글픔에 잠긴 채 과거를 되새길 수 있는가를 보았다. 

나는 목격자이며, 방관자였고, 공범이 되었다. 지금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지나쳐 버린 세월에 대해, 무채색으로 흐려져만 가는 추억에 대해, 그리고 시들지 않는 사랑의 기억에 대해. 그 때 나는 최선을 다했으나,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건 그나 나나 똑 같은 것이리라. 

2.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러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러시아로 돌아가지 못한 채, 1953년 파리에서 죽었다.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이 두꺼운 소설은 그의 자전적 성격이 강하게 묻어난다. 

이 소설은 한 젊은이가 태어나 성장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질풍노도와 같은 방황도, 자신의 생을 파멸로 이끄는 사랑도,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열정도 없다. 소설은 마치 순백의 눈이 쌓인 러시아 중부 평원 가운데를 지나는 강물을 담아 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쬐는 햇살의 각도에 따라, 계절마다 방향을 바꾸며 부는 바람, 혹은 시시때때로 자신의 모양을 바꾸는 구름들로 인해 끊임없이 변모하는 말 없는 강물처럼, 소설은 잔잔하게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러시아적 삶과 자연을 노래한다. 

우리의 삶이 시간 위에서 유한함의 비극을 가지고 있듯이, 소설 전체를 물들이는 것은 바로 지나간 추억에 대한 쓸쓸한 반추다. 그 위로 러시아의 건조하고 차가운 풍경이 겹친다. 

3.
 

내 삶의 첫 기억은 미심쩍은 정도로 무언가 좀 하찮은 구석이 있다. 초가을 햇살이 비쳐 드는 커다란 방, 그리고 그 방의 창을 통해 남쪽으로 보이는 산비탈 위로 빛나는 가을 태양의 건조한 섬광 …… . 오로지 그 단 한순간!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 그 순간이 아무런 이유 없이, 기억이 가능해진 후의 내 삶에 있어 첫 기억으로 그토록 선명하게 나의 의식을 사로잡은 것일까? 그리고 그 순간 이후로는 왜 또다시 오랜 기억의 공백이 있는 것일까?
나의 유년기는 슬프게 기억된다. 모든 유년기는 서글픈 것이다. 아직 온전한 삶으로 깨어나지 못한 무료한 생활과,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여리고 겁먹은 영혼이 고요한 세상 속에 흐릿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 11쪽 



문장은 유려하고 아름답고, 정처 없는 젊은 영혼이 머무는 곳은 가족이거나 문학, 또는 소녀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으로 향하는 젊은이는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었던 갈망으로 그 사랑을 놓친다. 이 소설이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그저 노년이 된 어떤 사람의 고백처럼 읽히는 건, 지나간 추억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소설 전반을 물들이기 때문이다. 

4.
 

육지의 가장자리, 칠흑 같은 어둠, 짙은 안개와 차가운 파도는 거세게 몰아쳤고, 파도소리는 잦아들다가 커지면서 야생침엽수가 내는 소리처럼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 . 밤의 심연은 앞을 볼 수 없이 캄캄하고 불안했고, 요람에서부터 시작된 고통스럽고 적대적이고 무의미한 삶을 말하는 것 같았다. 
- 302쪽



청춘은 캄캄하고 불안하고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구원처럼 나타나는 것은 문학이 아니라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어떤 것. 삶의 비극은 그 비극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우리 영혼의 병은 심해져만 가고, 그 사이 우리 사랑도 우리 곁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그 해 봄에 나는 그녀가 폐렴에 걸려 집으로 돌아갔고, 그리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가능한 한 오랫동안 내게 그 사실을 숨기게 한 것도 그녀의 뜻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495쪽 



이 소설을 통틀어 가장 멋없는 몇 개의 문장들로 수놓아진 이 작품의 끝은,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은 끊임없이 되새겨지지만, 그 밑에 흐르는 슬픔은 어쩌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6. 
소설은 구성은 아래와 같다. 

1부 카멘카, 삶의 시작 
2부 나의 조국 러시아
3부 숭고한 사명, 문학
4부 청춘, 그 찬란한 이름
5부 사랑, 시들지 않는 기억 

번역된 것으로는 작가정신(출판사)를 통해 이희원 번역으로 나온 것과 나남출판사를 통해 이항재 번역으로 나온 것이 있다. 후자의 책은 읽지 않았지만, 지금 구할 수 있는 것은 이 책뿐이다. 


7. 
6년에 걸쳐 이 소설을 번역한 이희원 선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출판사에서도 이 책의 재발간을 검토해보았으면 좋겠다. 이번 겨울, 이 소설은 지친 우리들에게 충분한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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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스꾸알 두아르떼의 가정

카밀로 호세 셀라(Camilo Jose Cela) 지음, 
김충식 옮김, 예지각, 1989년 초판.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만 유독 되지 않는다는 기분이, 그런 경험이 계속 쌓여져갈 때,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세상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쌓여져갈 때, 그것을 ‘운명’ 탓으로, ‘팔자’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축복받을 일인가. 이제 ‘운명’대로, ‘팔자’대로 살면 그 뿐이다. 헛된 희망을 꾸지 말고 그저 원래 나는 불행하게 태어났으며 되는 일이란 없으니, 그저 그렇게 살면 그 뿐이다. 그리고 저 멀리서 ‘운명’와 ‘팔자’를 다스리고 있다는 초월적 실체에 대한 경배를 시작하면 된다. 점쟁이 집에 자주 가고 부적 붙이고 굿도 하고 안 다니던 절에도 나가고 교회도 나가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 그런 주어진 대로 살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행이 일어난다면, 유독 나에게만 안 좋은 일이 연거푸 생긴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카밀로 호세 셀라의 ‘빠스꾸알’은 자신의 어머니를 난도질해버린다.

선생님, 저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나쁜 사람이 되었을 뿐입니다.
- 8쪽


소설의 시작은 밋밋하고 도대체 왜 이 사내는 이런 말을 소설의 처음부터 하고 있는 걸까 하고 의아해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이 짧은 시작은 그 무수한 현대 소설들 중 가장 멋진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짧은 문장 속에서 빠스꾸알이라는 이 사내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분노, 사랑, 증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요즘의 꼬마 아이들마저도 세상은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이며 되먹지 못한 곳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제 ‘세상탓’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제 세상에 ‘변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세상의 순리대로 살아갈 뿐이다. 나의 태생, 배경, 학력 등으로 내 인생은 정해져 버렸으며 그냥 여기에 만족하고 살아가면 그 뿐이다.

하지만 빠스꾸알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용감하게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는 전적으로 다른 인간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던 행복은 아주 짧은 순간 뿐이었고 연거푸 불행이 이어진다. 더구나 그 불행에 대한 해결책이 그에겐 없었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할 뿐. 태어날 아이가 죽어 나오고 겨우 태어난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리고 사랑하는 아내는 다른 남자의, 자신의 여동생과 살고 있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게 되고. 빠스꾸알에게는 평범한 삶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천연덕스럽게 잉태하곤 그 아이를 죽게 내버려둔 그의 어머니나 술만 마시면 몽둥이질을 해대는 그의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빠스꾸알. 하지만 그는 끝내 그의 어머니를 살해한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죽은 지 오래.

세상에 진리가 있느니, 신의 밝은 빛이 지상에 당도한다느니, 선한 신이 있다느니 하는, 너무 듣기 좋아,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다 날 지경인 그런 말들은, 불행하게도 빠스꾸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정말 다행스런 일은 그런 말을 지껄이는 이들에게 빠스꾸알에게서 일어났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누구나 똑같은 가죽을 뒤집어쓰고 어머니 뱃속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운명은 인간들이 마치 밀랍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죽음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여러 갈래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즐거워합니다. 고운 꽃과 풀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꽃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엉겅퀴와 선인장이 무성한 험난한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꽃길을 걷는 이는 평화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기쁨을 맛보면서 천진난만한 얼굴로 행복에 겨워 미소 짓습니다.
그러나 엉겅퀴와 가시밭길을 걷는 자들은 광야의 폭염으로 괴로워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험상궂은 우거지상을 합니다. 몸에 화장품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는 것과 지울 수 없는 문신을 넣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 8쪽에서 9쪽.


26살의 카밀로 호세 셀라가 1942년에 발표한 이 데뷔소설은 20세기 이후 모든 사람들이 부딪히게 되는 어떤 실존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빠스꾸알이라는 인물을 통해 역설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운명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이냐며.


'작가에 대하여'

 카밀로 호세 셀라(1916~2002) 

2권의 소설이 번역되었으나, 이젠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비극성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며, 실존적 삶에 물음표를 던지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소설가들 중의 한 명이다.  

'빠스쿠알 두아르떼의 가족', 그리고 '벌집'이 번역되어있으니, 헌책방 어딘가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1989년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스페인 마드리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을 정도다.


민음사에서 새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 10점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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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지음), 영목(지음), 해냄

 

 

 

소설을 읽다 끔찍한 기분이 들어, 읽기를 멈춘 적이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소설을 읽은 지금도, 끔찍한 기분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놀라운 소설 앞에서, 나는 다시 위대한 서사가 어떻게 우리 인간의 삶과 영혼, 밑바닥에 숨겨진 고통스러운 존엄성에 대해 상기시켜 주는가를 목격하게 된다.

 

내가 동안 읽었던 어느 소설보다 위대했고, 고통스러웠으며, 인간이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누구든지, 소설은 반드시 읽어야 소설들 중의 하나다.

 

 

눈먼 자들의 도시 - 10점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네오북)



* 아래는 주제 사라마구의 단편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2007/04/15 - [지하련의 우주/Jazz Life] -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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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사랑 이야기 Enemies, A Love Story
아이작 B. 싱어(지음), 박석기(옮김), 문학사상사, 1986년(초판)

(현재 절판되었음. 현재에는 아래 범우사에서 나온 것을 구할 수 있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홀로코스트를 만들었던 나치들과 유태인들은 평등하다. 신의 방관 속에서 이루어진 유태인 학살. 그래도 아이작 B. 싱어는 ‘신은 있다’(He is behind everything)고 말한다.


‘적, 사랑 이야기’는 197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면서 아이작 B. 싱어의 대표작이다. 한 남자와 세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러브 스토리를 표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사랑을 나누고 있는 등장인물들조차 혼란스럽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뜨거운 사랑의 장면이 등장하지도, 남녀간의 애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저 서로를 찾고 더듬을 뿐이다. 결국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한 남자와 세 여자를 서로 이어주는 것은 지난날의 상처(홀로코스트)와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뿐이다.


결국 한 여자는 자살하고, 한 남자는 사라지고, 두 여자가 남아 한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 끝나는 이 소설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도 허먼(소설의 남자 주인공)처럼 혼란스럽기만 하다. 상처 입은 이들은 그 상처에서 헤어나기 위해서 발부둥칠 뿐, 그들에게서 이성적인 판단이나 행동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일까. 부도덕한 한 유태인 남자 허먼과 유태인이 되고자 하는 한 야드비가, 홀로코스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전 부인 타미라, 그리고 격정적인 표현과 행동으로 남자를 끌어당기는 마샤. 이들 네 명으로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가는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기억나는 것이라곤 그들이 겪었을 지난 날의 상처뿐이었다. 



적들, 어느 사랑이야기
아이작 B. 싱어 지음, 김회진 옮김/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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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여자 (반양장) - 10점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문학동네


피아노 치는 여자 Die Klavierspielerin, 엘프리데 옐리네크 Elfriede Jelinek (지음), 이병애(옮김), 문학동네




길을 가다가 그녀를 만났다. 몇 해 전 봄날이었는데, 그가 나에게 먼저 자신의 피아노선생이라며, 그녀를 소개시켜주었다. 에리카 코후트. 그녀의 이름이다. 나르시시즘 연구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하인츠 코후트와는 어떤 관계냐고 묻고 싶었지만, ‘당신, 혹시 지독한 나르시스트 아닌가요?’라는 질문의 빌미가 되지 않으려는 조심스런 생각에 그건 묻지 않았다.

삼십대 후반의 그녀는 어딘가 낯설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한때 대단한 예술가적 재능을 인정받다가, 그저 그런 예술 선생, 또는 예술과 관련된 직업으로 내려앉게 되는 이들에게서 종종 풍겨오는 그런 느낌으로 치부해 버렸다. 젊은 공대생인 그는 그녀를 사랑스런 눈길로 쳐다보며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뒤에 자리 잡은, 그녀를 자신의 성적 소유물로 만들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눈치 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 젊은 아가씨보다 삼십대 후반의 여자가 풍부한 성적 매력으로 남성을 유혹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으며, 그도 그녀에게 그러한 것을 발견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녀의 일상,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치료할 수 없는, 치료되기에는 이미 깊이 무너져버린 정신적 상처의 규모에 놀라, 슬퍼하기보다는 도리어 허겁지겁 그녀를 만났다는 사실을 내 기억으로부터 지워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 에리카는 부재하는 아버지의 대리인이자, 어머니의 팔루스(남근)이었다. 이러한 관계의 고착 속에서 그녀는 정상적인 정신의 성장을 이루지 못한 채, 환상적인 혼동 속에 갇히고 만다. 그녀는 성인이면서 어린 아이이고 어린 아이이면서 성인이고(어머니의 파트너), 여성이면서 남성이고(어머니와 침대를 나눔), 남자이면서 여성인 어떤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1) 이러한 비정상적인 배경은 그녀의 주변을 심하게 일그러뜨린다. 그녀의 사연을 소설로 엮어낸 옐리네크 여사의 표현들은 그녀가 갇혀 지내던 그 비정상적 영혼의 공간을 매우 적절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 에리카가 이름을 바꾼 채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들의 정신적 아픔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왜냐면, 우리의 정신은 너무 효율적이어서 자신의 망가진 부분들을 그 내부 속에서 치료하고 봉합해버린다. 정신과 의사들의 소견으로는 잘못된 치료이고 봉합이겠지만. 그리고 모나드처럼 그 어떤 출구도, 창도 만들지 않은 채 자신의 내부 깊숙한 곳으로 그 아픔을 숨겨버린다. 우리들의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근사한 사랑에의 모험은 언제나 우리를 가슴 설레게 하지만, 이미 닫혀져 출구마저 온데간데없는 우리의 영혼은 그 설레임으로 심하게 요동치고 흔들리겠지만, 그 뿐이다. 우리의 영혼은 그 누구의 손길도 받아주지 못한 채, 이룰 수 없는 사랑에의 열망만으로 가득 차, 슬퍼하며 혼자 서있는다. 그리고 서로의 영혼을 설레게 했던 이들은 이제 사랑의 열망을 이루지 못했다는 슬픔으로 서로의 열리지 않는, 열 수도 없는, 그 닫힌 마음을 마주보며, 서로를 할퀴고 헐뜯는다.

에리카와 그녀 어머니의 관계 속으로 그가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가 속한 세계와 그녀가 속한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를 비추는 태양과 에리카를 비추는 태양, 그리고 그녀 어머니를 비추는 태양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는 사람 숫자와 똑같은 수의 태양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거대한 일반 이론이란, 메마른 사막의 신기루이며 ‘우리는 같은 하늘에 있어’ 따위의 말은 늘 착각에 빠져 사는 바람둥이의 대사이며, 거의 모든 이들이 사랑을 나누기도 전부터 사랑의 파국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떨게 되는 것이다.

내가 발터 클레머였더라면, 그녀에게 매혹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녀를 나의 소유물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 허접스러운 모험을 벌리기엔 난 이미 그때 마음의 견고한 성채를 구축하고 있었다). 에리카에게 그는 아무런 역할도 해주지 못했으며(이미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도리어 그녀의 비극적 상황을 더욱 고착화시켜버렸다. 그녀처럼 우리의 일상은 조금씩 조금씩 비극적인 상황으로 고착화되어 간다. 아무도 우리의 상처 입은 정신을 어루만져 줄 수 없으며, 과거 우리 정신의, 영혼의 깊은 상처를 위안 받고자 한 모든 시도들이 비극적 파국으로 끝났음을 실제로 경험했거나, 이미 여러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후, 우리들은 우리의 상처 입은 영혼의, 정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견고한 사회적 가면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과 잠들기 전 의식되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우리 자신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그 가면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이제 그저 이렇게 살아가기만 하면 될 뿐이다. 조용히, 평온하게, 나의 태양을 쐴 수 있는 토요일 오후의 고요처럼. 그렇게 흘러가다 죽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1)박희경(성균관대)의 논문 ‘독일 현대 여성 소설에 나타난 모녀관계-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 ’피아노치는 여자‘를 중심으로’를 참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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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 10점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김효정 옮김/문학과지성사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Uno, nessuno e centomila>>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926.(김효정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9)





살아가는 게 버겁다. 소박하고 순수하던 고대의 풍습은 시간의 바람 속에서 먼지가 되고 훗날 그 먼지들을 모아 새로운 성(城)을 쌓지만 그 성은 우리가 지어, 들어가지 못한 채 버림당하는 곳으로 남겨진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선량한 우리, 아벨에게서 왔지만 그가 가졌던 양들은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고 그 몇 천년 동안 푸른 언덕이며 깊은 호수며 그 곳을 가득 메우고 있던 새와 물고기들은 몇 미터의 높이로 쌓인 먼지들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아,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모스카르다. 그는 거울을 보면서 그 거울 속에 누군가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가 아닌, 낯선 이방인. '나를 보여지게 할 수는 있지만 나를 볼 수 없는' 어떤 이방인.

그 순간 책을 읽던 나도 책을 덮고 거울 앞으로 간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그런데 과연 거울 속의 나는 나일까. 나란 도대체 무얼까? 나, I, Je, 我, ... ...

진지한 학문과 예술은 참된 어떤 것을 찾아가면서 거짓되고 허상인 것들을 폭로하고 비판한다. 그러다가, 아뿔싸! 거짓과 허상의 중심에 '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현대인에게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제 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없다. 나란 없는 자(nobody).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은 아주 사소한 계기.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서서 나는 누구이고 내 인생은 무엇이고 ... ... 이런 자질구레하고 매우 일상적이지만, 때때로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있어 극히 치명적인 질문으로 인해 고통받는 한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주제인 '주체의 분열'이란 실제로는 모더니즘의 것이다. 그건 현대(Modern)의 학문과 예술이 19세기말부터 의문시해온 어떤 근본적인 반성과 관련되어 있다. 모스카르다의 정신 나간 듯한 말투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치명적인 자화상과 마주한다. 나를 찾기 위해서 방황하고 노력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고립당하는 우리 자신들과.

'주체의 분열'이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모더니즘적 방식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분열 이후'다. 우리는 진정한 나를 찾아가기 위해서 무수한 위험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지만 과연 우리는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가능할까?

"그것은 묘비명, 즉 이름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죽은 자들에게 편리한 것이다.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인생은 이름을 모른다. 이 나무는 새로 난 나뭇잎이 흔들릴 때 호흡한다. 나는 나무다. 나무이자 구름이다. 내일은 책이나 바람이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읽는 책. 내가 마시는 바람이 된다. 그 모든 것이 외부에서 방랑한다."(240쪽)

덧붙임 : 자신의 삶을 후기 구조주의자들에게 의지하기 말기를 바란다. 그들의 뛰어난 재능은 우리에게 어떤 실마리를 가르쳐주기는 하지만, 그들은 실패한 자들임을.








Comment +2

  • 2018.01.12 23:59 신고

    혹시 책 가지고 계신가요?

    • 가지고 있습니다. 피란델로는 최고의 작가입니다. 국내 독자에겐 희곡 작가로 더 알려져있지만요.

      이 소설의 영어번역본은 ebook 파일로 인터넷으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국역본은 도서관에서 쉽게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나의 미카엘 - 10점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민음사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 p.7

하지만 한나는 죽는다. 그녀의 사랑하던 힘이 죽고 그녀의 기억들이 죽고 그녀의 꿈들이 죽는다. 그녀가 간직하고 있었던 모든 사랑과 모든 기억들로부터 떠남으로써 그녀는 나에게, 혹은 우리들에게 그녀의 슬픈 죽음의 날개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검은 날개가 눈에 익다. 우리들의 눈에 익숙한 그녀의 검은 날개.

때때로 증명할 수 없는 물음들이 우리들을 인생의 고통 속으로 빠뜨리곤 한다. 꼭 ‘넌 날 사랑하니’라는, 그 어떤 대답으로도 채워지지 못하는 깊은 정답의 우물을 채우기 위해 지쳐 가는, 그래서 끝내 헤어지고 마는 戀人들처럼.

한나는 언제나 꿈을 꾼다. 꿈 속에서 그녀는 공주이지만, 갑자기 生의 포로가 되어 쫓기기도 한다. 그러나 미카엘, 나의 미카엘은 언제나 침착하고, 합리적이며, 조심스럽다. 그는 언제나 한나를 위해 성실한 몸짓을 보여준다. 그 성실함이 한나는 너무도 싫다. 아니 그것이 부럽다. 아무 것도 증명해 줄 수 없는 이 세상 속에서 그토록 성실하고 합리적일 수 있다는 자체가 부럽다. 그 성실함에 대한 질투가 한나로 하여금 늘 꿈 속으로 도망치게 한다. 하지만 이제 한나는 꿈을 꾸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그토록 자신의 생을 억누르고 있던 사랑의 힘을 포기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모스 오즈가 29살에 쓴 이 소설은 뜨거운 여름 햇살 속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視線을 먹어버리는 자외선과도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선 ‘난 사랑 따윈 믿지 않아’라는 상표의 선글라스가 필요하다. 이 선글라스를 가지고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나의 미카엘』은 너무나도 행복한 소설이다. ‘그것 봐, 사랑은 믿을 수 없는 거야, 한나’라면서 웃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나 난 이 선글라스는 한 여자의 생일선물로 줘버렸고, 이젠 없다. ‘나도 죽고 싶지 않다’라면서 한나의 목소리에 내 목소리를 싣는다. 나도 사랑을 하고 싶지만, 사랑할 힘이 이젠 남아 있지 않다. 어느 老詩人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라는 시집제목은 얼마나 행복한 속삭임인가. 하지만 한때 사랑하는 힘이 넘쳤던 사람에게 사랑을 믿지 말라는 소리는 죽음을 뜻한다. 한나의 꺼져가는 목소리는 4월의 흐린 창가에서 부서지는 내 잃어버린 사랑의 소리와 닮아 있다. 그래서 나도 한나와 함께,


나는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저 유리만 투명했으면, 그것이 전부다.
- p.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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