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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지음), 장영준(옮김), 그린비 




노엄 촘스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지만, 그의 언어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에게 촘스키는 하워드 진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진보적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아마 그의 언어학 이론은 영문학과나 언어학과 학부나 대학원 과정에서나 다루어질 것이니, 일반 독자가 노엄 촘스키의 학문 세계를 알고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정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 책을 읽게 된 외부의 계기가 있었으나, 나 또한 노엄 촘스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많은 이들이 대단한 언어학자라고 추켜 세웠지만, 정작 그들도 촘스키의 언어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왜 추켜세우는 것인가! MIT 종신교수라서?) 


막상 이 책을 읽으며 촘스키의 언어학에 대해 알아보니, 그의 언어학 이론은 한 번도 주류 학문이 되지 않았고 무수한 반대학자들과 비판가들만 있을 뿐이었다. 특히 현대의 학문 방향과도 동떨어져서 <<데카르트언어학>>이라는 저서를 통해 반-데카르트주의가 휩쓰는 20세기에 데카르트를 불러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엄 촘스키에 대한 국내 명성은 너무 높아서 함부로 까면 안 되는 사람이 된 듯 싶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노엄 촘스키를 한 번 심하게 깠다가 인신공격까지 나오는, 다소 황당한 상황을 보게 된 것이다.)


촘스키의 언어학이 가지는 기본 가정이 반-현대적이고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마치 데카르트가 '송과선'이라는 단어로 육체와 영혼이 이어진다고 말하는 것처럼, 촘스키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언어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언어생득설'을 주장한다.  



인간의 본성과 인간 언어에 대한 촘스키의 입장 뿐 아니라 정치학에 대한 그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에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들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의 지적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초기 저서들과 데카르트에 관한 역사적 연구를 연관지어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촘스키는 데카르트적 관점의 연원을 계몽운동과 낭만주의 시대로까지 소급해 올라가면서, 창조성에 관한 담론을 파악하는 수단으로서 그 가치를 강조한다. 

촘스키는 궁극적으로 훔볼트의 학문에 도달한다. 훔볼트는 촘스키의 언어학 연구 뿐만 아니라 올바른 사회구성에 관한 가정들을 뒷받침해주는 또 하나의 맥락으로 작용한다. 훔볼드는 인간 언어의 창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인간의 언어를 단지 기능적인 의사 소통의 한 형태가 아니라 생각의 표명이자 자기 표현의 방식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것을 데카르트적 관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173쪽 ~ 174쪽 



이런 학문적 견지에서 촘스키의 언어학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학자들은 아직도 그의 이론에 대해 반대한다. 그렇다면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측면에서는? 여기에 대해선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말만 하는 입 진보라는 평가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보수적인 미국 환경 속에서 대단한 활동을 하고 우리도 많은 부분을 본받아야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다행스럽게도 이 두 가지 측면을 고루 다루며, 노엄 촘스키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다만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읽기 쉽고 언어학에 대한 연구활동, 언어학 이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은 절반은 읽히고 절반은 버려질 것이다. 노엄 촘스키의 입장에서 씌여졌기 때문에 대부분 우호적인 입장에서 기술되고 있으나, 노골적으로 편파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추천할만하다. 

 



노엄 촘스키는 언어학자이지, 언어철학자가 아니다. 더구나 노엄 촘스키는 반-비트겐슈타인의 입장에 서 있는 언어학자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언어학은 많은 이들에 의해 언급되지만, 언급되는 이유는 그의 언어학이 왜 틀렸는가에 집중될 뿐이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블로그'에 올라온 스티븐 핑커의 언급은 촘스키의 언어학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그에 대한 비판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비슷한 비판이 지난 50년 간 있었지요. 우선 촘스키의 이론이 언어학계에서 정론이며 다수의 동의를 얻고 있고, 따라서 자신들이 골리앗을 무찌르는 다윗이라는 식의 표현은 시작부터 맞지 않습니다. 촘스키의 이론은 언어과학 분야에서 한 번도 정론이 된 적이 없습니다. 매 시대 복수의 언어학자들이 촘스키의 이론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로 말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의 이론에 반대되는 이론들, 예를 들어 생성의미론(Generative Semantics), 인지문법(Cognitive Grammar), 관계문법(Relational Grammar), 어휘기능문법(Lexical Functional Grammar), 일반화구구조문법(Generalized Phrase Structure Grammar) 등의 대립 이론들이 있었으며, 특히 다수의 언어학자들이 하나의 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보지 않았던 점도 있었기 때문에, 한 번도 촘스키의 이론을 지지하는 이가 대다수가 된 적은 없습니다. 다른 분야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그를 지지한 반면, 그를 공격하는 이들은 더 많았습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 퍼트냄, 굿맨, 설, 데닛 등의 철학자들이 그랬고, 70년대 제롬 브루너와 피아제 학파의 발달 심리학자들이 그랬습니다. 70년대 인공지능 중흥기의 테리 위노그라드, 로저 섕크, 마빈 민스키도 촘스키를 공격했습니다. 1980년대 연결주의 심리학자와 신경망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있고, 린다 스미스와 같은 “동적 시스템 이론가”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시기의 아동 언어 습득 연구자들은 촘스키에 반대했습니다.


촘스키의 이론이 지배적인 이론이라는 오해가 생긴 이유는, 그를 반대하는 이들이 제각기 다른 접근을 취하면서, 그의 이론에 대항하는 하나의 대안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유명세와 인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촘스키만을 알았을 뿐, 그의 이론에 반대하는 이들은 알지 못했지요. 즉, 명성과 학문적 위치를 혼동한 것입니다.


‘촘스키의 이론을 뒤집었다’는 주장이 가진 또다른 문제점은 ‘촘스키의 언어 이론’이 사실 구체적으로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는 구문(syntax)에 대한 몇 가지 기술적인 이론을 발표했고, 동시에 언어가 본능이라는 내용의, 논문의 형태가 아닌 비공식적인 주장을 수십 년 동안 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확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엄밀한 형태로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보편 문법(Universal Grammar)”, 또는 본능적인 “언어 구조(language faculty)”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반면, 특정 언어의 구체적인 특징들을, 예를 들어 일본어나 영어를 우리가 실제로 학습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지요. 즉 50년 동안 언어의 특정한 측면이 학습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모든 이들이 (실제로 매우 많았지요) 자신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다고 주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보물단지 역할을 촘스키가 해온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방식은 과학적이고 생산적인 논쟁이 아닙니다.


나는 우리가 보다 정밀한 언어 습득 과정을 컴퓨터로 모델링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델은, 여러 문장들을 입력하면, 문법 구조가 출력되는 그런 모델 입니다. 그리고 이 모델이 실제 아이들처럼 자신에게 주어지는 문장들을 통해 모든 종류의 언어를 학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 방법이 성공한다면, 그 모델이 어떤 모양이건, 우리는 아이들의 언어 본능을 설명하는 이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시도할 것입니다. (나는 1984년 나의 첫 저서인 “언어 학습과 언어 발달(Language Learnability and Language Development)에서 이를 시도했습니다.) 이런 진지한 시도 없이, 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때 어떤 본능적 구조나 가정, 표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입니다. 80년대와 90년대 언어를 신경망으로 구현하려 했던 이들이 썼던 트릭이기도 합니다. 문제가 생길때마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보다, 그저 본능적인 구조를 만들어 해결했습니다. 오늘날의 모델에도 그런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 스티븐 핑커

인용: http://newspeppermint.com/2016/12/08/m-chomsky/




노엄 촘스키의 정치적 활동이나 미국 정부에 대한 비판들에 대해서는 한국의 무수한 진보 지식인들이 인용하여, 다소 식상하기까지하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노엄 촘스키에 대한 일종의 환상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왜 노엄 촘스키의 언어학 저서들은 제대로 읽히지도, 소개되지도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진 않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노엄 촘스키의 언어학이 왜 잘 알려지지 않는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비트겐슈타인 이후의 현대 철학의 지평 위에서, 혹은 포스트모더니즘(혹은 포스트 구조주의)의 반-데카르트주의 환경 속에서 노엄 촘스키는 분명한 어조로 이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리고 이는 그의 정치적 입장이나 활동에까지 연결될 수 있겠다. 







촘스키, 끝없는 도전 - 8점
로버트 바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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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두 개의 글로 요약하면서  느낀 바를 적은 글이다. 매우 개인적인 견해를 담고 있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나에게 종교의 문제는 가끔 매우 첨예하게 다가온다. 나같이 유약한 이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의 불가사의함이란 때로 견디기 힘든 공포와 유혹으로 다가온다. 한 때 현세에서의 고독이나 무력감, 허탈함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를 심각하게 고려한 적도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보여주는 자기 내면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로마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세계에 풍부한 영감을 던져주었으며 정신적인 영역에 있어서 거대한 방향을 설정하였다. 그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신의 목소리(계시)를 발견하고자 하였으며, 때로는 신비주의적 면모까지 엿보이게 한다.

이러한 내면의 발견은 종교 개혁 이후의 기독교에서도 다시 한 번 일어나게 된다. 즉 성경만 있으면 어디에서든지 자기 내면 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확신이야말로 개인화된 신앙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이미 보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루터와 칼뱅에 의해 주도된 종교개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초기 교회의 시대로.)

하지만 이러한 내면의 발견이 자아나 자유의지에 대한, 외부 세계에 대한 명확한 확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의 계시, 교회 중심의 신앙 생활의 강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정신주의적인 중세적 경향을 특징짓게 된다. 이러한 정신주의적인 태도는 현대 기독교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경향이라는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세계와 현대가 그리 멀지 않음을 엿보게 한다.

시간의 문제는 유한한 인간에게 있어서 신의 본성을 깨닫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신은 유한의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원성의 세계에 속해 있으며 시간을 평면적으로 인식하는 존재이다. 신은 만물과 만물의 유전을 눈 앞에 펼쳐진 대로 보기 때문에 시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며,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보는’ 것일 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이것이 그가 ‘예정설’이라고 하는 과격한 결정론적 관점을 다소 완화시키는 방향이다.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하지만 이미 신의 앎 속에서 과거-현재-미래는 결정되어 있음을 우리 인간은 예정된 어떤 결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 의지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중세를 물들이는 어떤 절망이나 당혹스러움, 불안함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표현하였던 이런 세계관의 영향 때문은 아니었을까.

데카르트적 세계관이 현대에 와서 ‘독단론’, ‘기계론적 인과주의’라는 이유로 비난받고 있는데, 반데카르트주의자들이 보여주는 정신주의적, 심미주의적 태도는 혹시 아우구스티누스가 지향하였던 바의, 그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냥 이런 의문이 밀려든다. 눈 앞에서 보이는 불안함, 불가해함, 유한한 시간, 유한한 인간이 느끼는 어떤 절망을 극복하기 위하기 위해 영원한 신의 진리로 귀의한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현대의 정신주의는 데카르트적 세계관가 실패했다는 당혹스러움을 바탕에 깔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불가해함을 받아들이고 어떤 가상적 세계를 향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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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를 쓰기 전에 적어놓은 노트입니다. 바로크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1. 바로크: 근대성Modernity의 시작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떤 세계일까?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꼭 이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든가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물음과 유사한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특징을 부각시켜서 말하거나 아예 이 물음에 대한 답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너무 거대한 질문이라 실제 우리의 삶과는 무관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본다면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이 세계에 대해서 자주 듣게 되는 단어들, 신자유주의, 개인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과 같은 것의 근원을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17세기 서구사회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17세기와 2004년과의 관계를 알기 위해,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와 같은 철학자가 구상하였고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와 같은 예술가들이 재현하였던 그 당시의 세계와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 한적한 일요일 오후에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몇 가지의 규칙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신호등이라는 교통시스템만 지키면 도로가 연결되어있는 원하는 목적지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동 속에서 자동차 안과 밖은 명확하게 구분된 공간이라는 점. 밖이 아무리 춥더라도 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근대 최초의 기획들은 기계론이다. 인과율적 체계의 다른 말이기도 하며 근대 자본주의가 그 기틀을 명확히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드디어 시계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기계론적 관점에서 시간과의 싸움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이 때 미래는 그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하나의 질서가 있다. 그 질서는 신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신의 질서와 자연과학의 질서가 등가적 관계를 이루게 되고 이 사이를 예술가가 자리잡게 된다. 이것이 르네상스적 세계관이자 미학관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적 세계관은 얼마 뒤 매너리즘적 세계관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데, 우리들의 삶이나 현실은 신적이지도, 자연과학적이지도 않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매너리즘에서는 나와 너, 이상과 현실, 어제와 오늘이 분열하게 된다. 고딕적 분열의 연장선상에 놓이면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종종 겪게 되는 분열을 이미 매너리즘 시대의 예술가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분열은 바로크 시대에서 극적으로 해소된다. 그리고 그 해소의 방법은 생각하는 나를 중심으로, 이상 대신 현실을, 어제 대신 오늘, 그리고 내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근대성(Modernity)는 이 시대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적인 것이 가장 우선시되는 세계. 인간들이 만든 규칙이 신의 규칙과 똑 같은 위상과 가치를 지니게 되는 세계. 유한한 세계 속에서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세계. 아니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세계. 이제 무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는 끝이 나고 유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드디어 세속적이며 경험적인 세계가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바로크에 들어서 고딕적 분열 양상은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중심으로 해소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완전한 해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살아가면서 별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해소로도 바로크 예술가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긍정하는 시대였다.

바로크는 절대왕정의 시대이면서 과학혁명의 시기요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시대이면서 우리들의 약점들이 무수한 장점들로 가려져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에는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 바흐, 헨델(George Frederick Handel, 1685-1759), 카라바지오, 베르니니, 벨라스케즈(Diego Rodriguez de Silva Velazquez, 1599-1660),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렘브란트, 베르미르(Jan Vermeer, 1632-1675), 푸생, 끌로드 로렌(Claude Lorrain, 1600-1682)이 속하며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들과 라신느(Jean-Baptiste Racine, 1639-1699), 꼬르네이유(Pierre Corneille, 1606-1684), 몰리에르(Moliere, 1622-1673) 등의 프랑스의 극작가들, 그리고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 존 던(John Donne, 1572-1631)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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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 Descartes
Frans HALS, c. 1649
Oil on panel, 19 x 14 cm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2. 무한한 우주 속의 유한한 인간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먼저 이야기했지만,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에 와서 비로소 논쟁거리가 된 '지동설'은 인간이,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당시 천문학의 발전은 이 우주에는 끝이 없으며 끝 없는 우주에서 인간은 그저 티끌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천동설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신(무한자)과 가까이 있었으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고 그것은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동설의 세계 속에서 지구는 우주의 변방이며 인간은 신(무한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었다. 즉 드디어 인간은 신과 무관한 어떤 존재, 심지어 신에게서 버림받은 존재로 떨어지게 된다. 이는 파스칼에게서 두드러지며 바로크 양식의 어두운 그림자에 해당된다. 하지만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내며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의 확실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티끌 같고 언젠가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불안은 이 현실 세계 속에서 뭔가를 할 수 있고 알아낼 수 있다는 자신과 자만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정치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데, 서구에서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전제군주제가 확고하게 뿌리내리기 되었다는 점이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신화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세계의 안정을 바탕으로 상업이 발달하였으며 많은 것을 포기한 구교와 경제적으로 적절한 지위를 부여 받은 개신교 사이의 분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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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Louis XIV
Hyacinthe Rigaud, 1701
Oil on canvas, 279 x 190 cm
Musee du Louvre, Paris



바로크의 세계는 유한한 인간이지만, 그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진행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의 회화 속에서는 '진리를 잡기 위해서 운동하는 나' 즉, 데카르트적 자아가 있으며 그 운동이 모아지는 빛나는 중심으로 삶의 격정, 활력이 흘러나온다. 드디어 어둠 속에 묻어두었던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적 세계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물은 유전한다. 한 번 담근 강물에 두 번 다시 담글 수 없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한 번 담그는 그 강물 속에서 강물의 본질을 잡아낼 수도 있으리라는 신념을 가진다.


3. 정지에서 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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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arkation of St Paula Romana at Ostia
Claude Lorrain, 1637-39
Oil on canvas, 211 x 145 cm
Museo del Prado, Madrid



움직이는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 고전주의이다. 그것은 기하학적이며 무한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모아진다. 그래서 이 세계 속에서는 운동이나 생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크는 반대로 운동이나 생성 속에서 어떤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들의 생각을 전개시킨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경험적 세계 속에서 나는 내 가치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드디어 진리를 향한 삶의 성실성이 요구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의 포기는 경험적 세계 속에 있는 유한한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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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atthew and the Angel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32 x 183 cm
Formerly Kaiser-Friedrich-Museum, Berlin
(* 현재는 소실되어 없으며 그 당시 불경하다는 비난을 받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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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92 x 186 cm
Contarelli Chapel, San Luigi dei Francesi, Rome



하나는 교회로부터 거절당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작품이고 하나는 교회에 걸렸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작품이다. 카라바지오만큼 바로크 시대에 걸맞은 예술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난봉꾼에 일자 무식에 매일 사고만 치는 건달이었지만, 그는 예술가였다. 드디어 지적 교양을 가진 예술가에서 지적 교양 없이도 예술 작품을 남기는 예술가의 시대로 변해온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적 영감을 중요시하는 일군의 예술가들은 바로 한 발짝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자연과학적 태도는 신의 질서를 자연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시작되었지만, 예술의 세계 속에서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다. 매너리즘 예술가인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이 태도는 실제 있었던 그것을 그대로 표현해내는 것으로 변화하였으며 바로크에 이르는 그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카라바지오의 세계에서 성 마태와 천사는 한 쌍의 연인처럼 붙어있는 것이다. 신의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는 고독한 성인과 그 고독을 위로해주는 천사로 말이다. 하지만 카라바지오의 세계는 교회로부터도 거부당했고 그 당시의 일반 대중으로부터도 거부당했다. 아마 21세기에서도 카라바지오의 작품이 불경하다고 여기는 기독교도가 있을 것이니, 17세기 때의 기독교도라면 그 거부는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4. 경험적 세계 속으로

우리 앞에서 지금 두 개의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멸하며 경건하고 신성한 신의 세계이며 하나는 경험적이며 유한하고 언젠가는 죽게 될 인간의 세속적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의 세계이며 하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이다. 하나는 정지된 공간의 세계이며 하나는 끊임없이 변화는 시간의 세계이다. 그리고 바로크는 전자보다는 후자에게 그 가치를 두는 양식이다.

베르니니에게 신과의 교감은 인간적인 그 어떤 것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즉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도리어 그의 경험이 신과의 교감과 비슷한 유형이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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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cstasy of Saint Therese
Bernini, 1647-52
Marble Cappella Cornaro, Santa Maria della Vittoria, Rome
 


더 이상 인간적인 것은 수치이거나 불경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인간적인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한 치의 주저함이나 물러남 없이 자신의 모습이 왜소해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나는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다는 것. 이제서야 인간적인 것이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의 세계이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모더니티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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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Rembrandt, 1627
Oil on wood, 23,5 x 17 cm
Staatliche Museen, Kas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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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Rembrandt, 1668-69
Oil on canvas, 82,5 x 65 cm
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어쩌면 예수도 늙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가인 뒤러가 자신의 초상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치 예수처럼 그렸듯이 렘브란트는 그도 늙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이제 드디어 변화한다는 것이 가치를 가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운동이며 생성의 세계, 경험적 세계를 뜻한다. 그것은 현실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바로크 예술가들에게 이것은 훈장과도 같았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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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의 파사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 로마
 

건축에 도입된 유려한 곡선은 직선적인 느낌을 강조하던 이전의 건축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건축 속에서 도입된 이러한 운동감은 조각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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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and Daphne
Bernini, 1622-25
Marble, height 243 cm
Galleria Borghese, Rome
 


조각에서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라고 한다면 베르니니만큼 잘 구현했을 만한 조각가도 없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아폴론과 이 사랑을 거부하는 다프네가 올리브 나무로 변해가는 순간을 표현한 이 조각에서 바로크 시대의 사랑을, 바로크적 비극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 이제 드디어 언젠가는 헤어질 수 없는 사랑이 누군가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세속의 사랑이 주제가 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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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ady at the Virginals with a Gentleman
Vermeer, 1662-65
Oil on canvas, 73,3 x 64,5 cm
Buckingham Palace, London
 


한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 옆에 한 남자가 서서 그 음악 소리를 듣고 있다. 그는 가만히 서서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 속에 빠져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서 그 사랑을 거절당하지 않을까. 이건 이 작품에 대한 추측이긴 하지만, 이제 세속의 사랑, 불경하면서 비도덕적인 사랑도 예술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되기 시작하였으며 종교적인 그림을 그려지는 작업실에서 동시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5. 두 개의 바로크들


매너리즘이 전유럽적 양식이었다면, 바로크는 그 지역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는 양식 상으로는 지역에 따라 매우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 전시실에 나란히 푸생의 'Et in Arcadia Ego, 루벤스의 Raising of the Cross, 베르미르의 Woman Holding a Balance가 걸려있다면, 이 세 작품이 같은 시대의 양식이라고 설명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푸생은 확실히 고전적이다. 어떤 이는 푸생의 작품들을 두고 '바로크 고전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한한 세계 속에서의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그래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바로크적 신념은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고전적이며 푸생은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이 기하학적이길 원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다른 화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고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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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in Arcadia Ego
Poussin, 1637-39
Oil on canvas, 185 x 121 cm
Musee du Louvre, Paris
 

하지만 바로크는 고전주의가 될 수 없는 시대였다. 바로크의 예술가들이 잡으려고 노력했던 바 진리는 시간과 변화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변하는 진리관과는 다른 것이었다. Et in Arcadia Ego, 아르카디아 속에서도 나는 있다는 말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속에서도 죽음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깐 이상향 속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그래서 우리는 늙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나오는 여인을 크로노스(시간의 여신)이라고 해석한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말은 죽음을 막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라는 말이기 보다는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알고 살아있는 동안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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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Life
Pieter Claesz, 1633
Oil on oakwood, 38 x 53 cm
Staatliche Kunstsammlungen, Kassel
 

푸생이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면 이에 비해 루벤스는 색채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같다. 이는 이후에 푸생주의와 루벤스주의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더욱 격정적이며 회화 속에서 바로크적 운동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격정적인 색채감은 와토나 부셰, 프라고나르 등의 로코코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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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sing of the Cross
Rubens, 1610
Oil on panel, 460 x 340 cm (centre panel), 460 x 150 cm (wings)
O.-L. Vrouwekathedraal, Antwerp
 

루벤스가 궁정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라면 렘브란트와 베르미르는 시민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특히 베르미르는 수수한 색채 속의 개신교적이며 시민적인 바로크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이러한 양식의 바로크는 개신교적 성격과 초기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의 예술 양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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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Holding a Balance
Vermeer, 1662-63
Oil on canvas, 42,5 x 38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네덜란드의 시민계급들이 좋아했던 것은 풍경화였다. 이러한 풍경화는 끌로드 로렌의 풍경화와는 틀리다. 이러한 풍경화 양식의 차이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비교해보면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탈리아, 특히 베네치아의 풍경화는 화려하면서도 인상주의적 면모를 보여주지만, 네덜란드는 정적이면서 소박한다. 이러한 소박함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겸손으로 이어져 여러 바로크 정물화에서는 유한한 인간임을 인식하고 현실 세계에 보다 충실히 복무하라는 도덕적 메시지를 담게 된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치품들을 정물화의 소재로 이용함으로써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축적한 부를 자랑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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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with a View of Haarlem
Ruisdael, 1670-75
Oil on canvas, 52 x 65 cm
Staatliche Museen,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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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계몽주의 시대: 데카르트적 합리주의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선 데카르트의 태도만 알아도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그만큼 중요하다. 17세기 바로크 예술이나 그 전 르네상스 고전주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데카르트 철학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종종 미학과 예술이 서로 평행을 유지하며 나란히 가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도리어 미학과 예술이 무관한 경우도 더 많다. 개인적으로 미학은 예술 이해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사상사적 맥락이나 철학사적 맥락을 그 시대의 예술 양식과 서로 연관 지어 이해하는 것은 예술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미학의 역사를 이해하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비어즐리는 데카르트는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데카르트는 본질적으로 단순하고 따라서 매우 명석하고 판명한 관념들을 분석을 통하여 발견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관념은 지식의 기본적 구성요소가 된다. 명제에 관하여 그는 직관과 연역법을 필연적 진리의 원천으로 취하였다. 직관은 “오직 이성의 빛에서 나오는, 청명하고 세심한 마음의 회의 없는 개념작용이고” 연역법은 결국 직관들의 사슬이다. 데카르트의 가장 중요한 요청들 가운데 하나는 확실한 보편적 진리를 얻기 위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보편적이라 함은 모든 합리적 존재에 타당할 것과 모든 것, 주어진 탐구분야 내에서의 모든 것에 적용될 것이라는 점에서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방법은 선험적이고 추상적이었다. 그가 추구하였던 종류의 지식은 자연에 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하여는 기대될 수 없었다. 그것은 본유개념과, ‘자연의 빛’에 직접 내맡겨지는 명제에 의존했다. 그리고 지식으로서 그것의 안정성은 명제들을 보다 근본적인 것과 덜 근본적인 것으로 정리하여 그들이 서로 논리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함께 그 지식의 명백한 명료성과 연역적 체계화에 의해 입증될 것이었다.”

위에서 몇 개의 핵심 개념을 끌어내면, ‘이성’, ‘보편’, ’자연’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기계론적, 인과율적, 기하학적 이성은 보편적인 것이며 이는 다시 자연 탐구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미, 또는 미적 대상에 대한 탐구에까지 확장되는 것이 이 시대 미학자들의 태도인 셈이다.

모방을 하고자 하는 자연 대상을 이성을 통해 정확하게 재현한다면 이는 보편적인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시대 대륙의 미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태도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모방론은 ‘이상적 모방론, 즉 본질적인 것, 특징적인 것, 훌륭한 것을 다양한 비례 가운데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그 자신이 화가이기도 했던 조슈아 레이놀즈는 ‘예술에 관한 담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이 예술의 미는 그 대상에 근거한다. 이것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그 대상의 미는 보편적이고 지적이다. 그리고 마음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관념뿐이다. 시각은 그것을 보지 않았고, 손은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것은 화가의 가슴 속에 머무는 관념이며, 그는 항상 그것을 전하려 애쓰지만 끝내 그것을 전하지도 못하고 죽는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사상을 제기하고 관객의 시야를 확장시켜 줄 만큼은 전달 수 있다.”
“그는 철학자처럼 자연을 추상하고 고찰하고 그가 그리는 상 하나하나에서 그 종의 특성을 재현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심리 상태를 어떻게 모방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선 비어즐리의 책에 인용된 한 연구자의 글을 살펴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식화, 내지 규범화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의 예술 모방, 또는 표현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은 이 자연 세계 또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세계를 확실히 드러낼 수 있다는 신념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기계론적 세계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아카데미 미술의 편협함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그들이 볼 수 없는 마음의 상태를 볼 수 있는 표현으로 정식화함에 있어서 보여주었던 그 범주적 정확성의 배후에는 철저하게 합리적인 데카르트의 방법 뿐만 아니라 데카르트 물리학의 중심 개념, 즉 전체 우주와 모든 개체는 일종의 기계이며 따라서 모든 동작은 기계적이라는 개념이 놓여 있었다. 따라서 르 브렁의 정념 해부학의 다함 없는 정밀성은 신체를 인간적으로 중요한 정서적 삶의 매체로서보다는 오히려 정서적 충격의 불변적 효과를 기계적인 정확성으로 기록하는 복합적 기구로 취급한다.”


* 비어즐리, <<미학사>>(이론과실천)을 요약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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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이론 넘어서기
- 서사구조와 그 한계



1.
몇 년전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라는 말로 듣는 사람을 갑자기 소름 돋게 만든 이야기가 있었다. 승강기 안에서 들리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엄마로 변신한 귀신의 아찔한 대화. 하지만 이 이야기를 그저 그런 공포담으로 받아넘기기엔 어딘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어머니마저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순간 우리들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대신 귀신을 등장시키는 이 공포이야기는 '가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믿음이나 가치가 상실되었고, '부모들'에 대한 아이들의 숨겨진 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안쓰러운 이야기 속에서 요즘의 우리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믿을 수도 없음을,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따지고 보자면 이것은 근대 개인주의(Individualism)의 잘못된 귀결이기도 하다. 한 개인의 생각이나 가치관, 또는 자유를 소중히 생각한 나머지 타인의 그것들에 대해서, 혹은 이 세상에 대해서 소홀해지고 그 틈 속에서 개개인들은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해'라고 중얼거리며 '고독감'에 휩싸인 채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음모이론'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한 대중문화의 서사구조의 한 양식에 불과하다.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지 못하고 그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는, 그렇지만 합리적인 연구나 사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상상'을 통해서만 그것을 향해 가는 서사구조.


하지만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성급하게 말한다면, 혹은 90년대 후반 하나의 유행에 불과한 것이라고 치부한다면 이 음모이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할 것임에 분명하다. 실제 이러한 '음모이론'은 그렇게 낯선 것이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예로부터 있어왔고, 특히 근대(Modern)라는 이 시대는 그러한 이들에 의해 발전을 거듭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음모이론'이 세간에 등장한 것일까?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속에서도 '음모'는 있었을 것이고 중세의 상업도시와 카톨릭교회 사이에서도 있었을, 계속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음모이론'이 나올 만한 시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많았건만, 특히 한국이라면 7-80년대가 그 시기로 적당함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지금 '뜬금없이' 등장한 것에는 어떤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2.
데카르트는 우리가 이 세상을 인식할 때 '절대적인 확실성' 위에 서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방법적 회의'로 자신의 사유를 전개시킨다. 모든 인식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결국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이라는 유명한 말로 '의심하는 나의 확실성'을 말한다. 이로부터 '진정한 의미의 근대'는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데카르트가 '확실한(명석 판명한) 인식'을 위해 자신의 감각과 그 감각으로 인식하는 외부세계를 먼저 부정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여기에서 '확실하다'는 것은 '진실하다'는 것의 동어반복이다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는 먼저 외부세계를 부정하고 난 다음 자기자신마저 부정하려고 했지만 '의심하는 나'의 존재는 부정하지 못했고 이 지점에 서서 다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유방식은 이후 전개되는 모든 '근대적 사유'의 기본을 형성하게 되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근법(perspective)'이란 데카르트적 사유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양식의 하나이다. 하나의 소실점은 '의심하는 나'의 시선을 보여주며 주위의 배경은 그 '나'가 세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표시해준다. 그리고 우리들은 사물을 배열할 때 '원근법'적으로 위치시키며 또한 그것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여긴다.

실제로 이것은 데카르트 이전 르네상스 고전주의-알베르티, 브루넬레스키,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에서 시작되었지만, 철학사에서는 데카르트에 와서 비로소 그 빛을 발휘하게 된다. 문학에서는 라신느, 꼬르네이유의 고전주의 연극에서, 그리고 이후 근대 소설에서의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 주인공, 제1배우)와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제2배우)의 대립과 반목, 갈등에서 하나의 중심-프로타고니스트이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실제의, 의심하고 생각하는 나-로 향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데카르트주의도 20세기 후반 본격적으로 비판되기 시작한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란 반데카르트주의의 현대적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원근법적 구축물들을 거부하면서 우리들의 인생이란 기하학적이지도, 인과율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고 오직 '우연'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유양식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소설의 정의인 '필연적 허구'는 현대 소설에 와서는 '전적인 공상'이거나 '우연적 허구', 혹은 '서사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알랭 로브-그리예나 미셸 뷔토르의 '누보로망'이나 마르께스나 푸엔테스의 '마술적 리얼리즘', 보르헤스의 소설들이 속한다. 이제 데카르트의 믿음은 그간 우리를 속여왔고 진실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제아무리 우리들의 삶을 기하학적이며 인과율적으로, 그래서 필연적 인생을 살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지 않고 그렇게 될 수도 없음을 몸 속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근대적 서사양식은 무너지고 포스트모던 서사양식이 부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우연' 속에 위치하게 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조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는데, 그것의 대중 문화적 반영이 '음모이론'이다. 그렇다면 실제 음모이론은 대중문화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3.
토니 스콧 감독의 블럭버스터 『Enemy of the State』의 시작은 지극히 사소하고 지극히 우연적인 계기에서 비롯된다. 통신감청법안을 반대하는 한 국회의원이 보안국 요원에 의해 암살 당하는 장면이 철새를 연구하는 대니얼의 카메라 속에 녹화가 되고 그 사실을 보안국에서 알게 된다는 상황설정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변호사 딘은 단지 속옷 가게에서 친구 대니얼을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영문 없이 쫓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누구에게 쫓기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쫓는 방법이 예사롭지 않고 얼마 뒤 자신의 몸은 온통 도청장치 투성이였고 그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노출당하고, 심지어 자신의 신용카드마저 사용정지를 되고 심지어 그가 최근 누구와 친하게 지내며 과거에는 무엇을 했는가하는 행적까지도 알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에게 비밀이란 없고 순식간에 그는 '국가의 적'이 되어 쫓기기 시작한다. 이렇듯 현대의 국가 안에서 한 사람의 비밀이나 행동의 자유란 누군가의 감시 아래서만 허용되는 셈이다. 국가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의 과거 경력뿐만 아니라 현재의 여자친구, 신용카드의 비밀번호, 자주 가는 술집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이것이 대중매체에서 그렇게 떠들어대는 '정보화시대'의 실체인 셈이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때에도 '비밀번호'나 '신상정보' 누출에 주의해야하고 집의 전화로는 중요한 대화를 함부로 할 수 없다. 올 국회에서 '도청', '감청'에 대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모습에서 『Enemy of the State』가 영화 속 허구로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보통의 국회의원이 네다섯 개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사실에서 평범한 우리들에게는 권력 앞에서 우리들의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재확인시켜줄 뿐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음모 이론'의 서사구조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가를 대강 알 수 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개인이 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곤경'에 빠지게 된다. 쫓기기도 하고 신용카드가 정지 당하며 하던 일이 계속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거대권력기관의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서사구조는 매우 상투적인 것이다. 가령 질 미무니 감독의 프랑스 영화 『라빠르망L'Appartement』은 이러한 '음모이론'의 서사 구조가 애정 영화에서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적절하게 보여준다. 막스와 리자 사이에 끼여든 외로운 사랑의 소유자 알리스는 이 삼각관계에서 '음모'를 꾸미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는 의도적으로 막스에게 접근하고 그의 사랑을 유도해내지만, 무모한 사랑의 집착은 이 영화의 결말을 비극으로 이끈다. 리자는 죽고 알리스는 사랑에 실패하게 되며 막스는 자신의 사랑을 고작 추억으로만 간직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리자는 앞에서 언급한 서사구조에서의 곤경에 빠지기만 하는 한 개인의 역할을 수행하며 알리스는 한 개인을 계속 곤경에 빠뜨리는 거대권력기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4.
하지만 이 두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거대권력기관의 유/무이고 또한 음모이론의 서사구조가 다른 서사구조들과 구분되는 유일한 차이점 또한 바로 이것이다. 모든 서사들은 실제 현실의 반영임으로 해서 그 서사의 무게 또한 실제 현실의 무게와 비례한다. 그러므로 다른 서사구조들 보다 '거대권력'이 들어가는 음모이론의 서사구조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Enemy of the State』에서 보여지는 힘없는 한 개인과 거대권력기관, 혹은 약자와 강자와 같은 이런 서사 구조는 실제 역사를 통해 부단히 반복되어온 테마이다.

고대 로마의 황제들이 기독교를 박해했을 때, 그것은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음모'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 기존 체제가 잘못된 체제였을까? 여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놀라운 사실 하나는 로마의 현명한 왕들이 초기 기독교 박해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서기 161년에 로마 황제가 되어 지금까지 읽히고 있는 『명상록』을 남겼고 이성을 숭상했으며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 로마의 현명한 황제들 중의 한 명으로 역사에 남아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황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기독교학자였던 저스트 마틴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을 죽었다. 그렇다면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어떤 이유를 이들을 죽였던 것일까? 지나친 판단일지도 모르나 전체적인 역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아우렐리우스는 기독교가 어떤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이미 파악했다고 보는 편이 정당할 것이다. 즉 중세 천 년 동안을, 그리고 근대에까지 종교재판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런 종교의 힘이 로마를 집어삼킬 것임을 로마의 몇몇 황제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도들이야 '유일신신앙'만을 주장했을 뿐이지만, 그 주장은 주술적이고 혼성문화적인 로마의 헬레니즘과는 반대되는 것이었고 기존의 문화 체제를 거부하는 반체제 행위였던 것이다.

간단하게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현재 특별한 주술적 의미도 없는 '단군상'을 몇몇 철없는 기독교인들이 훼손하는 것에서 고대 로마인들이 기독교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에 대해 얼마 정도의 추측은 가능할 것이다. 지금의 단군상을 고대 로마로 비유하자면 '만신전'에 모셔둔 여러 신들 중의 하나였을 테니깐. 이러한 역사적 사실 속에서 그 당시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러한 박해는 요즘의 우리들이 말하는 '음모이론'이였을 테지만 지극히 평범한 로마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상황은 정반대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역사적 사실에서 고대 로마의 체제와 기독교도들과 관계에서 설정되는 음모이론의 구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음모이론과는 상황이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면 기독교도들이 원하는 것이 종교적 자유였지만 그들이 종교적 자유를 얻는 것과 동시에 다른 이교도들은 종교적 자유를 박탈해 버렸기 때문이다. 역사적 진실은 그들의 '유일신 신앙'이 아니라 '종교적 자유'이며 천 년 넘게 유럽인들은 그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았다.


5.
이미 결론이 나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음모이론'의 유무를 따진다는 것은 매우 가치 없는 작업일 수도 있다. 즉 역사는 언제나 동일한 테마를 반복해왔고 기존의 체제를 새로운 체제를 거부하며 시기하고 어떻게든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가령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경우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종교재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정확히 말해서 그 사실은 부분적으로는 거짓말이다. 왜냐면 이미 그 종교재판에 임했던 카톨릭 주교들도 지동설이 사실임을 깨닫고 있었거나 전적으로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동설이 사실이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의 학설(천동설)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미 코페르니쿠스와 싸워야만 했다. 그렇다면 왜 코페르니쿠스로부터 70년이 지난 후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아야만 했을까? 우리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그가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것은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문제는 '우주라는 이 거대한 책은 ‥‥‥ 수학의 언어로 저술되었고 그 알파벳은 삼각형, 원, 여타의 기하학적 수식으로서, 그것들 없이는 우주의 단 하나의 단어도 인간에게 이해될 수 없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알지 못한 채 어두운 미로를 배회하고 있다'(『The Assayer』, 1623)라고 말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흔히 말하는 '근대적 방식'으로 이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최초의 인물들 중의 한 명이었고 그 방식은 종교가 중심에 있던 시대의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상업 시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카톨릭교회는 그를 종교재판에 세웠고 지동설이 진실임이 명확한 상황 속에서 교황과 주교들은 갈릴레이에게 거짓을 강요했던 것이다. 오직 자신들이 믿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여기에서 우리들의 알고 있는 '음모이론'의 구도는 명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거대권력기관인 '종교집단'과 한 개인인 '갈릴레이'의 갈등. 하지만 우리가 현재 대중매체에서 볼 수 있는 음모이론과 달리 여기에서는 역사가 갈릴레이 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을 후세의 우리들은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명확하게 말하자면 이 사실은 음모이론이 아닌 분명한 역사적 사실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을 '음모이론'이라고 주장한다면 음모이론은 너무 많아 일일이 따질 수 조차 없어진다. 이러한 일들은 지금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7-80년대에 한국에서 사회운동을 하다 투옥된 사람들 전부가 이러한 음모이론의 구도 속에 위치하며 잘못된 판결이나 오해로 누명을 뒤집어쓰는 사람들도 모두 이러한 음모이론의 희생자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음모이론이란 하나의 이론이라기 보다는 그저 하나의 명칭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진실의 편에 속해있지만, 외면 당하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무마하기 위한. 혹은 진실을 숨기기 위한 거대 권력의 간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모이론'이 지금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 이유는 세계는 너무 거대화되었고 이 세계 속에서 한 개인은 고작 기계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절망감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보면 과연 이렇게 많은 이들이 어디에서 걸어나온 것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개인들마다 그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을 것이고 그들 나름의 가치관이나 행동방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하지만 그 순간 그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우리들은 눈 앞에 닥친 일상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아는 사람이 몇 명쯤 될까?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 그 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고 다시 스쳐지나가더라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그런 사람들이다. 이 익명성 속에 우리들 자신도 포함된다.

요즘 젊은이들이 '스타병'에 걸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떻게든 자신을 널리 알려 익명성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무의식적 갈구. 하지만 그것은 가능할까? 현대인들은 천천히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죽더라도 내 죽음에 신경을 써주는 이들이라곤 '가족'이거나 심지어 '가족'마저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그 공포이야기는 여기에 해당된다. 이렇듯 한 개인의 죽음은 너무나 사소해서 전체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셈이다. 커다란 회사에서 몇 명이 정리해고를 당한다고 해서 그 회사가 망하지 않듯이 몇 명의 개인이 사고로 죽거나 자살을 하더라도 이 사회 전체가 충격에 휩싸이거나 슬픔에 잠기지 않는다. 사회는 끊임없이 한 개인에게 강요하지만 사회는 그 개인의 인생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한때 데카르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확실성의 기초로 삼은 '생각하는 나'는 이제 회사에서 쫓겨나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으며 이 세상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거나 이런 경우를 당하기 싫으면 이 세계가, 이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맞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나는 은행만을 위해서 일한 결과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라는 짤막한 유언을 남기고 자살한 30대 가장(家長)의 모습에서 우리들과 관계없는 한 타인의 모습 대신 우리들의 쓸쓸한 자화상만을 확인할 뿐이다. 그리고 이때 음모이론은 90년대 후반의 자연스러운 대중문화의 한 양식으로 우리들 옆에 자리잡게 된다.


7.
우리의 인생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지 않을 때 우리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나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음모이론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는, 그 속에 어떤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의문을 품지만 그 곳에서 정지한다. 이 거대한 세상 속의 한 평범한 개인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자기가 왜 이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조차 모를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의 진실이란 없고 이 거대한 세계 속에 살아남기 위해 껍데기로서만 살아가는 자신만을 발견할 뿐이다. 그리고 음모이론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이 세계의 희생양으로 설정하고 눈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우리들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권력의 음모라면 최소한 '어쩔 수 없다'라는 포기라도 할 수 있으리라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 아예 '외계인의 음모'라면 상황은 매우 수월해질 것이다. 그리고는 그러한 음모이론을 다룬 영화를 보며 한 사소한 개인의 영웅적 행위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망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음모이론의 서사 구조의 본질을 이룬다. 즉 그것의 시작은 현실 속의 한 우연적 사건이지만 그것을 메워나가는 것은 전적으로 '상상'에 의하는, 전형적인 포스트모던 서사의 한 양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음모이론이란 거대권력기관의 음모로 희생당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것들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그것이 '음모'였다는 것이 결론 날 뿐 지금의 우리들이 겪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래서 현실 속에서의 음모이론은 하나의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그것의 뒤에는 끔찍하고 가공할 만한 음모가 들어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진실이거나 검증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면 현대인들의 고독하고 처량하며 껍데기 인생을 위한 위안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누군가가 우리들 침실을 엿볼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막겠는가? 법이 한 개인의 완벽한 방패막이 되어 주리라고 믿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우리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음모'이며 음모 한 가운데 우리들은 서있다 하더라도 음모이론은 우리들의 곤궁한 삶의 변명을 제공해주며 한순간의 위안이 될 뿐, 그것의 해결책은 아닌 것이다.

모든 포스트모던 서사 양식이 비난받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현실/가상의 경계를 흐려놓고서 현실의 문제를 가상의 범위(상상의 공간) 안으로 들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 문화의 대표적인 서사양식인 영화는 이것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심지어 친절한 이웃이 악당으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우리는 이제 이 세상에서 믿을 사람이라곤 오직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확인할 뿐이다. '음모이론'은 늘 충격적이고 돌발적인 서사를 동반한다. 의외의 곳에서 어떤 사건의 진실이 숨어있다는 식의 설정은 믿을 곳이 사라져가는 현대인들이 어떤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는가를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 아무런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이 원하는 것이라곤 오직 돈을 보기 위해서 더욱 잔인하고 충격적인 영상이나 서사를 만들어낼 뿐이다. 만약 이 세상에 진실이 있다면, 천박한 상업주의와 대중문화들은 우리들에게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면서 오직 한 순간의 재미와 쾌락, 달콤한 위안만을 선사할 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들은 우리들의 처지가 더욱 힘들어져 병적으로 그것에 빠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왜냐면 우리들이 용기 없고 무력하다는 사실을 그 속에서 잠시라도 잊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대중문화를 향유하면서 우리들은 지금 우리들의 인생이 우리가 진정 원하던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 서로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있다는 사실, 심지어 사랑마저도 믿지 못하는 상황을 잠시나마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음모이론의 서사 구조 속에서 '자기 반성'이란 등장하기 않고 오직 자기를 둘러싼 세계의 그 누군가를 향해 있는 것이다.

8.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대중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그가 원한 것은 '과연 미술이란 있는 것인가?'라고 한 번쯤 대중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그래서 기존의 통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를 알아주었으면 하고 원했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그 작품으로 인해 일약 미술계의 스타가 되었다. 음모이론이 한 번쯤 눈 여겨 볼 가치가 있다면 우리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이 세상의 진실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 '음모이론의 신봉자들'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듯이 우리는 왜 우리들이 음모이론들 속에 파묻혀 있는지를 우리들 스스로에게 한 번쯤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뒤샹이 '변기'를 보여주면서 그 당시의 대중에게 원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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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의 구조 - 10점
이마무라 히토시 지음, 이수정 옮김/민음사


근대성의 구조
, 이마무라 히토시(지음), 민음사, 1999.


1. 인과율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현상에는 인과율 (causality)이라고 하는, <원인-결과>라는 이름의 족쇄에 묶여 있다. 그리고 현재의 고통이나 불합리는 이것을 둘러싼 이러한 인과 관계를 이해할 때에만 벗어나거나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 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근대인(Moderni)라면 그렇게 생각 할 것이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간이 속해 있는 우주에 비한다면 '근대(Modern)'란 그렇게 특별한 시대는 아니다. 단지 이 세계와 우주, 그 속에서 진행되는 인간들의 삶을 이러한 인과 관계와 이성의 눈을 통해 보다 치밀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 시대이며, 20세기 후반의 학자들은 이 치밀하고 정확하려 했던 활동에 큰 문제점이 있었다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이마무라 히토시는 『근대성의 구조』라는 책을 통해 이 난삽한 지도를 간략하게 정리해놓고 있을 뿐이다.

2. 이마무라 히토시

근대에 대한 근본적 회의의 시대로서 1960년대, 그 중에서도 1968년의 파리와 프라하가 있었다라는 말로 이마무라 히토시의 논의는 시작된다. 그러나 그가 68세대의 철학-소위 '포스트 구조주의'라 불리는-을 긍정하면서 걸어가려 하는 이러한 논의의 시작은 마샬 버먼이 미셸 푸코를 언급하면서 '그의 언어는 꿰맨 자 국이 없는 거미집, 즉 베버가 일찍이 꿈꾸었던 모든 것보다도 훨 씬 더 완벽한 새장, 어떤 생명도 꿰뚫고 들어갈 수 없는 새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많은 오늘날의 지성인들이 그 새장 안에서 푸코와 함께 질식사하기를 원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이다'(『현대성의 경험』, 현대미학사, p.37)라고 말했을 때처럼 스스로 새장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위험한 작업임을 미리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토시의 논의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는데, 그것은 근대 속에 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 대해 보다 정확하 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전해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큰 희망을 부여하기 보다는 그러한 희망을 앗아가는 것이 긴 하지만.

3. 시간관

우리는 밝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근대인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야'라든지 '내일은 이렇게 비참 하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현재를 극복하려 한다. 하지만 과연 그 옛날 내일이라고 믿었던 오늘은 행복에 가득차 있는 것일까?

내일을 염두해 두고 인간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백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즉 오늘은 어제보다 나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는, 앞으로 전진해나가는 '직선적 시간관'은 중세 와 그 이전의 순환적 시간관을 대체한, 근대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전의 순환적 시간관 속에는 과거 와 현재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에겐 미래란 없었고 끊임없이 순 환하는 시간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도시와 상업의 발달 그리 고 종교개혁 등 일련의, 근대를 향해가는 여러 사건들 속에서 우 리는 '직선적 시간관'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알 수 있다. 간단 하게 우리가 내일을 예측하기 위해 오늘의 주가동향을 유심히 살 펴보는 것처럼 그러한 행동들이 중세 말기의 도시 상인들에게서 도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를 향해 기도 한다고 하는 시간의식'인 것이다. '기도하는 정신의 시간의식은 미래를 선취하여 현재에 편입시키고, 미래를 편입시킨 현재에 있 어서 계획을 세우며, 또다시 미래를 향해 모험적으로 도박을 해 가는 시간의식이다. 그런 점에서 순환시간과는 정반대이다. 순환 시간은 전적으로 과거를 향하지만, 근대의 시간의식은 전적으로 미래를 향하는 것이다.'(p.76)

4. 기계론

그렇다면 근대의 직선적 시간관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미래를 선취한다는 것, 그것도 신의 이름이 아닌 인간의 능력으 로 <계획>하고 <제작>하고 끊임없는 <실험>의 반복을 통해 <확실 한> 미래를 달성하는 것. 여기에는 '이 세계 즉 자연이라고 하는 책은 삼각형이나 원과 같은 수학이나 기하학의 언어로 씌여있다' 라는 수학에 대한 신뢰(갈릴레이), '제작으로써 자연을 정복한 다'라는, 기계를 제작하듯이 자연도 수학적 확실성을 바탕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새로운 태도(베이컨),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나>의 발견, 그런 나에 대한 절대적 믿음, 그 믿음으로 시작되는 <분석>, <종합>, <검산>의 시스템(데카르트)이 밑바탕 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 속에서 세상 의 모든 것은 등질 공간과 등질 시간 속에 위치하게 되며, 시간 은 직선적인 양적 존재로 파악되면서 진보라는 새로운 시간관념 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뉴튼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렇듯 기계론적 이성은 '세계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적 정신'의 다른 이름이며, '이 방법을 뒷받침하는 원점에 분할 불 가능한 개인'이 놓이게 된다.(p.121) 근대 시민사회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기계로서의 인간과 세계'를 말하고 있으며, 근대의 <자연법사상>이란 데카르트의 '코키토'가 만들어낸 근대 정신의 끝없는 변주들 중의 하나이다. 개인의 자 유와 권리는 자연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라는 <자연법사상>은 근대 자유주의와 정치 사상의 뿌리를 형성하게 되며,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에서 '인간이 자유이며 공적 시민으로서 권리를 주장 할 수 있다'는 근대적 <개인>의 개념이 확고하게 선언되기에 이 르게 하는 밑바탕이기도 하다.

근대 시민 사회는 이러한 기계부품으로서의 개인들이 모여 있 는 곳으로서, 크게 나와 나의 관계(윤리 혹은 정신), 타인과의 관계(정치 경제), 자연과의 관계(생산과정)라는 세 가지 관계가 기계론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래서 홉스는 '사람들에게 이성 (기계론적 이성)을 자각시키고, 개개인이 이성적 존재자가 되어, 만인의 생명과 소유물을 보전할 수 있는 국가를 창출하고, 근대 세계에 어울리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p.146)한다. 여기에는 '부품으로서의 개인, 톱니장치로서 의 사회'가 구성되며, 국가란 거대기계(리바이어던)가 된다. 이 렇게 새롭게 구성된 세계 속에서는 스미스는 홉스가 <이성>이 인 공적 인간관계를 만든다고 본 것과 대조적으로 <감정>이 인간적 인 대타관계를 만든다고 본다. 스미스의 이런 주장을 통해 시장경제의 매커니즘이 완성되며, 칸트에게서는 자기 입법과 자기 통 제가 이루어진다. 근대란 개인적 자율의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자율은 정치 혁명과 산업 혁명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며, 근대 기 계론은 부분적으로 근대 유기체론-라이프니츠, 헤겔, 화이트헤드 -으로 그 결점을 보완하면서 시민사회에 더욱 강력하게 정착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근대는 똑같은 이름의 다른 모습으로 나가게 된다.

5. 근본적 회의

하지만 1968년의 파리와 프라하에서 일어난 일을 우리는 어떻 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마무라 히토시는 자본주의 내부에 서, 그리고 사회주의 내부에서 일어난 이 움직임을 근대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파악한다. '근대 세계가 충분히 <합리적>이기 때 문에, 근대적 시민의 내면이 너무나도 충분히 <자기 통제적> <자 기 입법적> 이기 때문에, 도리어 근대성은 배제적, 차별적이라는 반성이 일어나게 된 것', 다시 말해서 근대 세계가 스스로의 인 과율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순 수 자아>가 <경험 자아>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일 안에는 가능하 면 <경험 자아>(신체와 욕망을 갖는 자아)를 말살하고 싶다는 욕 구가 몰래 작용하고 있다. 근대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이미 배제와 차별의 구도를, 말하자면 매일같이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p.175)

인간 내부에서부터 이루어진 이러한 <배제>와 <차별>은 근대 성의 구조가 필연적으로 지니게 되는 성격이라 할 수 있다. 그것 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계론적, 수학적 이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 직선적 시간관과 진보에 대한 확고한 신뢰는 신의 손을 떠 난 인간이, 자신의 앞에 놓여진 세계를 해명하고 구축시키면서 자연의 질서가 아닌 인간의 이성이 파악한 질서와 인과율을 부여 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이성적이지 않은 모든 것은 배 척당하게 된 것이다. 이마무라 히토시는 이러한 근대성의 구조를 진단하면서 이러한 근대를 넘어서는 방법을 제시한다.

6. 타자 공동체

'타자의 공동체는 중심이 없는 공동체이다. 동일화도 배제도 없는 공동체이다. 솔선해서 자기배제하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만든 소극적 공동체는, 비록 무력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거기에 서는 인간이냐 비인간이냐 하는 물음이 완전히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p.190) 하지만 이러한 타자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해 야 하는 일들-자신 내부의 타자를 발견하는 것, 스스로 타자화 되는 것, 그리고 세계의 타자를 수용하는 것 등에 앞서 먼저 '타 자'를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 는 결코 타자를 알 수 없는데, 왜냐면 우리가 진리를 알아가는 방식은 전적으로 수학적 이성에 의지해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는 우리의 사고가 진행되기 시작하는 지점에서부터 이마무라 히 토시의 진단한 근대성의 구조- <배제>와 <차별>-속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적 자아가 아닌 <경험 자아>(신체와 욕망 의 자아)를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근대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는 모든 학자들의 논의 속에서 궁극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지점 은 바로 이 지점인 것이다.

7. 근대

근대란 <희망>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신의 손을 떠난 인간이 스스로 상정한 '이성이라는 이름의 빛'을 따라 항해한 시대이며 항해 도중에 만나게 되는 파도와 암초, 바람과 별빛의 지도를 손 수 제작하는 것과 동시에 배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점들을 여러가지 규칙으로 제도화하려고 노력한 시대이다. 그것은 뉴튼 과 케플러가 '과학혁명'을 진행시켰을 때, 프랑스 민중들이 바스 티유감옥을 습격했을 때, 그 희망은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하지 만 이제 그 근대가 꿈꾸던 '희망'이란 고작 '자본주의의 승리'쯤 이라는 사실에 우리들은 당혹해하고 있다. 그 동안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현대 과학이 어떻게 인간을 조직적으로 학살 할 수 있는가와 폭탄 하나가 한 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가 에 대한 처절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20 세기 최대의 정치실험이 68년 프라하에서 그 정체를 드러내었을 때,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을 제도화하고 억압하며 감시하 는가가 그 해 '파리'에서 드러났을 때, 근대에 대한 회의는 그 극단에 치달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소위 탈근대라 고 불리는 '절망'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절망을 요약하고 있 는 책이다. 나는 '타자공동체'론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무라 히토시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근대가 마주하게 된 '절망'을 이성의 눈으로 그 깊숙이 응시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최후의 근대인 이 될 지도 모르는 우리들이 해야할 첫번째 일일 것이다.

'절망적이라고 일단 판단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 아닐까. 달콤한 언설과 이데올로기에 속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간의 사회성이 내포하는 끔찍스러움에 직면해 나가야 한다. 그 편이 인간적인 성실함의 표시가 될 것이다.'(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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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련 님, 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 컨텐츠팀 현선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번에 지하련 님의 리뷰를 9월 5주 <반디 & View 어워드>로 선정하였습니다. 어워드 관련 적립금은 지하련 님의 반디 아이디로 일주일 이내에 지급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네요.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컨텐츠팀 현선 드림

    • 고맙습니다. ^^~. 코엑스 반디앤루니스에 가끔 들려서 책을 사가지고 가곤 해요. 사무실이 근처라서요~. 인터넷 서점으로도 책을 사보기도 하지만, 그래서 책은 실제로 만져보고 내용도 확인하고 사는 게 최고라서..ㅋㅋ. 이번에도 요긴하게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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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이 누워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얇게 흔들리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조함에 묻혀 아주 짧게 내 삶을 되새기며 슬퍼한다. 이름 모를 바람이 들어와 잠시 내 몸 위에 살짝 앉았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지음), 장영준(옮김), 그린비 노엄 촘스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지만, 그의 언어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에게 .....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지음), 권진아(옮김), 마음산책 헤밍웨이가 너무 유명했던 탓에, 내가 그를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이것이 세계문학전집의 폐해다. 헤밍웨이의 소설들.....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유현경, <은주>
비 오는 날
데이비드 밴 David Vann 인터뷰 중에서 (Axt 2017.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