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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The Knight, Death and Devil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Albrecht Dürer 알브레히트 뒤러 

1513, Copperplate 동판화

 

 

기사 옆으로 죽음과 악마가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한다. 이 명료한 동판화는 르네상스 시기의 신념을 보여준다고 할까. 인간이 가는 길을 과거의 유물들 - 죽음, 악마 - 이 훼방 놓으며 가지 못하게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종종 후기 고딕적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 만큼은 근대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기사는 도상학적으로 진리를 수호하는 자로 해석된다. 과거 종교인이 가졌던 역할을 이제 기사가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극적인 변화는 르네상스 시기를 문예부흥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시기가 아니라, 급속하게 변화하는 혼돈기였음을 짐작케한다. 결국 고딕적 신앙이 뒤로 물러나고 기하학적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본격적으로 서구의 근대(modern)이 시작되고, 그 이후 거친 풍랑 속에서도 이성을 버리지 않는다. 


거의 1세기 후에야 철학에서 근대적 이성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예술에서의 이러한 선취(先取)는 놀랍기만 하다. 이는 예술의 역사를 통해 자주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예술사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대 예술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앞으로 펼쳐질 세계를 짐작하고 예견할 수 있다. 


까뮈의 <이방인>이 나왔을 때, 그 충격은 대단했다. 심지어 프랑스에선 이 소설을 도덕 교과서로 읽히곤 한다. 이유없는 살인은 용서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유없는 살인을 너무 자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 까뮈도 자신의 '뫼르소'가 그토록 많이, 현실 속에 등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만. 


양식(style) 상, 뒤러의 모든 작품들이 근대적이진 않다. 그는 양식적으로는 후기 고딕과 하이 르네상스(르네상스 고전주의)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그가 외부 세계와 마주했던 태도는 르네상스 시기 그 어느 예술가들보다도 근대적이고 이성적이었다. 뒤러가 끊임없이 연구되며 후대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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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명 Civilisation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 지음, 최석태 옮김, 문예출판사, 1989년 

(현재 절판) 




책을 읽어나가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 이미 20세기의 저명한 미술사학자였지만, 그는 미술의 역사 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건축, 음악을 아우르면서 서양 문명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었다. 


가령 그는 장 안트완 와또와 존 키츠, 그리고 모차르트를 함께 비교하며 설명한다. 아래 그가 인용한 존 키츠의 시 구절을 옮긴다. 



Ay, in the very temple of Delight   

Veil'd Melancholy has her sovran shrine, 

Though seen of none save him whose strenuous tongue 

Can burst Joy's grape against his palate fine;  


아아, 환희의 신전 바로 그 안에서 

베일에 가린 우울은 그녀만의 자유로운 성지를 가진다.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지만, 오직 강렬한 혀로 

기쁨의 포도를 예민한 입 안에 넣고 터뜨릴 수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 키츠Keats, <우울에 부치는 송가 Ode on Melancholy> 중에서 

(이 책의 215쪽에서 옮기나, 문학 인용문에 대한 번역은 신뢰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직접 번역했다. 뭐, 나도 신뢰할 수준이 안 되겠지만. 이에 원문도 함께 찾아 옮긴다.) 



케네스 클라크는 '와토보다 더 '예민한 입(palate fine)'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한다(번역서에서는 '민감한 입'으로 옮기고 있다). 대강 이해할 순 있으나, palate가 미각이나 감식력 등을 뜻하기 때문에, '탁월한 심미안' 정도로 받아들으면 된다(이럴 때 원문을 찾아 읽는 것이 좋다). 



와토가 세상에 나온 것은 18세기 초의 일이었습니다. 그의 걸작 <시테르 섬에의 순례 Pilgrimage to Cythera>는 1712년, 루이 14세가 아직도 생존 중인 시대에 그려졌습니다. 이 그림에는 모차르트 오페라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유한 경쾌함과 예민함이 있으며, 또 인생의 극적 요소를 파악하는 감각이 있습니다. 비너스 섬에서 한 나절을 보내고, 이제 귀로에 선 이들 남녀의 미묘한 관계는 <여자는 다 이런 것Cosi Fan Tutte> 속에서 자신에 넘친 연인들이 출발에 앞어서 전개한 무아 상태의 흥분을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차르트의 그 오페라는 70년 이상이나 뒤에 작곡되었습니다. (215쪽) 




Jean-Antoine Watteau, Pilgrimage to Cythera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내가 경험한 한국의 인문학자들이나 인문학 전공 교수들 대부분이 가진 편협한 전문성 - 자신의 학위 논문 주제만 딱 알고 나머지는 전혀 모르는(심지어 인문학 전공 교수이면서 서양 철학사 한 권 제대로 읽어 내지도 못하는 지적 무능함까지 갖춘) - 과 대비되는 케네스 클라크의 이 책은, 1969년 그가 쓰고 직접 출연한 영국 BBC 다큐멘터리 <문명 Civilisation>의 방송 대본을 책으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방송 대본이라고 낮게 치부하기에는 책은 의외로 탄탄하고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면서 인문학과 서양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진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쉴새없이 자극한다. 


실제 다큐멘터리가 13부로 나누어 방송된 것처럼, 이 책도 1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구사 일생The Skin of Our Teeth>로 시작해 13장 <영웅적인 물질문명Heroic Materialism>으로 끝나는 이 책은 중세부터 19세기말, 20세기 초까지의 서양 문명을 탐구한다.


대부분의 지성사 책들이 철학이나 사상에 기울어져 서술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압도적으로 건축과 시각 예술 작품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그래서 책에는 다수의 미술 작품 도판이 있으며, 해당 작품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읽을 수 있다. 



(13부 전체를 볼 수 있으나, 아, 한글 자막은 없다. 짧은 듣기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다큐멘터리다.) 



서양 미술사에 대해선 전문가 수준이라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이 책은 중세 후기, 근세 초기 북유럽 미술에 대한 설명은 무척 유용했다. 또한, 가령 이런 문장들은 흥미로웠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건축이 현대 건축보다 훨씬 나은 이유의 하나는 그 건축가가 예술가였다는 점에 있습니다. (...) 본직이 아닌 모든 건축가들 중에서 미켈란젤로는 가장 모험적이며, 고전주의적 원칙이나 기능면의 여러 가지 요구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덜 제약받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실제적이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아마도 미켈란젤로만이 미완성의 커다란 골치덩어리였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정돈할 만한 정신적 정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결국 그의 독자성으로 이 건물을 혼연일체의 통일체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164쪽 - 165쪽) 


 

케네스 클라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알브레히트 뒤러를 비교하며, '뒤러는 아주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스니다. (...) 그에게는 우선 강렬한 자의식과 과도한 허영심이 있었습니다'(147쪽)라고 말한다. 



Raphael, Portrait of a Cardinal, oil on wood, 79cm*61cm, about 1510 


라파엘로의 어느 추기경은 '최고의 교양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균형과 자제심을 갖춘 사람'으로 느껴지지만, 


오스발트 크렐은 지금 막 히스테리를 일으킬 것같습니다. 저 노려보는 듯한 눈, 자의식이 강한 내성적인 얼굴, 얼굴의 볼륨을 불안정하게 함으로써 뒤러가 아주 잘 파악한 저 불안, 이건 얼마나 독일적일까요? 그리고 독일 이외의 나라였다면 또 얼마나 이상한 일이었을까요? (140쪽) 



Albrecht Durer, Portrait of Oswolt Krel, oil on panel, 50cm * 39cm, 1499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양상은, 의외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 시기(15세기와 16세기)의 건축과 미술은 고딕에서 국제 고딕, 혹은 후기 고딕으로 이어지면서 동시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기법들을 받아들여 양식 상으로는 르네상스로 향하는 듯 여겨지나, 정신적으로는 중세에서 바로 종교개혁으로 이어진다. 


말이 종교개혁이지, 이는 성직자의 차원에서였지, 실제 일반 대중에게서는 일종의 반달리즘으로 표현되었다. 이 시기에는 16세기 이탈리아 매너리즘의 경향까지도 보이는 바, 16세기 북유럽 미술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는 판이하게 다른 미술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케네스 클라크는 뒤러의 작품을 저렇게 설명한다. 


이 책의 몇 부분을 옮기며 설명하다 보니,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은 꽤나 까다롭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미 절판된 책이니, 구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고, 도서관에서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번역된 문장들 상당수가 비문들이어서 이 부분에 까다로운 독자들은 화를 낼 만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수준의 책을 한글로 접하긴 어려운지라, 독자들에게 과감하게 추천한다.


(또는 이 책의 번역서가 새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생생한 컬러 도판들과 함께.)  



Amazon Link : http://www.amazon.com/Civilisation-Personal-View-Kenneth-Clark/dp/B0016XQ7LQ/ref=sr_1_5?s=books&ie=UTF8&qid=1410690328&sr=1-5 




예술과문명

케네드클라크저 | 최석태역 | 문예출판사 | ..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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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보엠 2015.07.24 19:51 신고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행보는 정말 복잡해서 공부할 부분이 많아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 반대로 이탈리아에 회화적 영향을 주는 게 보이니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기쁜 일일까요? 저는 반종교개혁이라고도 불리는 카톨릭 종교개혁 시대의 북이탈리아 회화와 기억술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 추천해주신 클락크의 다큐는 꼭 볼게요. 시작페이지에 저장해두었어요. 매일 한 편씩 보려고 합니다. 추천 고맙습니다.

    • 16세기는 정말 흥미로운 시기입니다. 16세기 초반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절정기였으나, 북유럽은 이탈리아와 비교해보면 너무 경직되어 있지요. 그리곤 곧바로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마치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건너뛰고 곧바로 근대로 뛰쳐나가는 듯합니다. 제대로만 공부한다면 현대, 그리고 앞으로 오게 될 어떤 시대에 대한 무수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아마 제가 계속 공부를 했더라면 그 시대를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말이죠. ㅎㅎ )

전미숙, ‘인간성과 신성의 조화, Trecento’, 미학-예술학연구, 1992, 2권


논문의 초반과 후반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르네상스의 인간 존엄 사상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고 있으나, 이를 작품 해석으로 연결짓지 못하며 고대, 중세와도 연결짓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다듬어서 발표했다면 참 좋은 논문이 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라색 글은 내가 부연설명을 한 부분이다.


페트라르카

현세의 경험과 인간의 감정을 중시하며 세속적 욕망과 종교적 양심 사이에서 갈등함

: 낡은 요소(중세적)와 새로운 요소(르네상스)의 공존.


고딕과 르네상스는 서로 별개의 시대가 아닌, 동일한 감수성 위에서 형성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인들이 경멸했던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과 스콜라철학은 르네상스시대와 똑같이 경험적 세계(세속적 욕망)의 부상 위에서 그것을 종교적 세계 속에서 다스리기 위한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종교적 세계를 우위에 두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는 이 두 세계의 갈등 속에서 경험적 세계를 우위에 두기 시작한다. 즉 동일한 갈등 속에서 어느 것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하나는 고딕, 하나는 르네상스로 나누어진다.



'De Secretos conflictu curarummearum: Decontemptu mundi, 1342~3'

영혼의 자유 또는 정신의 자유의 실현으로서 천상생활의 지복과 지상생활의 매력이라는 두 가지 이상 사이를 방황하는 그의 심적 갈등을 표현하고 있음.


인간의 의지가 육신에 사로잡히면 인간 자신의 근원인 창조주를 잊고 善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성립될 수 없다.


인간의 의지가 천국을 향할 때 육신의 욕망이 사라져 고귀한 영혼에 도달하게 되며, 이 끊임없는 정신운동이 영혼의 내면적이며 인간의 계속적인 자기 창조의 과정임. 의지란 동적인 힘.


‘영혼의 갈등’의 제 1부는 진리의 망각을 다룬다. 즉 인간의 도덕적 진리, 덕성과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망각함으로써 야기되는 인간의 불행과 비참한 생활을 다룬 것으로, 인간의 비참은 인간 자유의지의 결과이다. 이 영혼의 병에 대한 치유책은 명상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깨닫고 마음의 평정과 구원의 내먼적 확신을 얻는 것이고 이를 위해 자신의 도덕적 생활을 엄격히 반성하는 일이다. 제 2부는 영혼의 병인 아키디아(accidia)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는 기독교의 덕성과 신앙으로 귀의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고 했다. 모든 사물과 인간에 내재한 영원한 불안정, 그리고 그것을 철저히 인식하고 난 뒤 오는 우울감, 그렇지만 그것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숙명, 이런 지적 이원성과 영혼의 반복되는 갈등, 세속적 경향 등이 잘 드러나며, 이는 페트라르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르네상스 인간의 공통된 문제였다. 제 3부는 가장 힘든 영혼의 병인 ‘사랑과 명예’의 추구에 대한 참회이며 결국 그는 진정한 명예와 자유를 위해 세속인으로서의 야심을 포기하고 명상에 몰두하라는 어거스틴에게 굴북한다. 이 책에서 어거스틴은 도덕적, 종교적 진리로서 인간이 궁극적 목표로 삼아야 할 진리이고, 베리타스 여신은 인간의 경험 세계의 진리를 상징한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신의 은총과 천상의 지복을 향유할 수 있는 경건한 생활에 두면서도 사실 그가 강조한 것은 현세에서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은 학문 연구를 통해 덕을 쌓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 능력으로 가능함. 인간은 인간 정신의 한계 내에서 자기 영혼의 설계자이며 자기 세계의 창조자임을 밝힘


인간 중심의 사상은 인간을 신과 동일시 하거나 신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이다. 신의 세계를 몰아내고 인간 위주의 세계로 만들기 위한. 르네상스 시대 이후 신의 세계를 천천히 줄어들어 19세기는 무신론자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된다. 우리가 흔히 '모던'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은 유신론의 세계가 아닌 무신론의 세계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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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ous Persons: Francesco Petrarca
c. 1450
Fresco transferred to wood, 247 x 153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ANDREA DEL CASTAGNO
(b. 1423, Castagno, d. 1457, Firenze)



르네상스인들에게 ‘신은 인간에게 무엇이나 스스로 선택한 바를 갖고 스스로 원하는 바가 되기를 허락함으로써 인간에게 자율성과 자유의지를 강조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


인간 존엄의 사상

‘인간성이란 말은 역사적으로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인간과 인간 이하의 것과의 대비에서 생기는 의미이고 둘째는 인간과 그 이상의 것과의 대비에서 생기는 의미이다. 전자의 경우 인간성은 가치를 의미하고, 후자는 그 한계를 의미한다.’
- 파노프스키


페트라르카와 살루타티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견해는 모두 초자연적인 은총으로서의 구원을, 인간이 파국을 피하기 위해 수용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즉 의지는 자유이며 이것은 신의 섭리와 조화된다. 한편 로렌조 발라는 신의 이미지와 닮은 인간은 삼위일체적 정신(또는 영혼에너지, 지성, 정서)을 가진 실체로 보고, 인간이 신과 경쟁하며 그의 이미지를 닮음으로서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을 성취하게 되는 인간 행위의 열정과 섭리를 강조한다. 이러한 인문주의자들의 인간 존엄에 대한 입장은 첫째, 인간의 존엄성은 신의 이미지와 닮음에서 나왔고 완전한 동화를 위한 진보에 의해 궁극적으로 신성화된다는 점과 둘째, 인간 본성의 지배, 이용 및 지도안에서 신과 같은 태도로 사고하고, 느끼고, 행위함으로써 결국 신성화된다는 두 입장을 함께 하고 있다. 이런 기반 위에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했던 피치노와 피코에서 인간 존엄 사상의 정점을 볼 수 있다.


피치노
고전적 전통과 성서, 플라톤 사상을 모델로 하여 신성화의 성취라는 골격 내에서 현세 인간 존엄성의 명백성과 어거스틴의 사상을 정교하게 종합한다. 인간은 이성의 의지를 통하여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수용, 거부할 수 있으며 우주의 위계질서 내의 한 부분이지만 또는 그것을 초월, 회피할 수 있다 해서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을 말했다. 또한 그는 초자연적 힘에 관심을 두었지만 현세의 경험과 성취와 인간의 자연적 욕구를 깊이 인식했다.


피코
‘인간 존엄에 대하여’

인간은 진화의 소산이 아닌 창조의 소산이며 인간의 신적 근원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 중심주의에 의하면 인간과 신의 관계는 자리바꿈을 하여 인간이 신격화된다. 쿠사누스가 ‘인간은 비록 절대적이지는 않을 지라도 신이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적인 신이다. 인간적인 방식으로 신인 것이다’라고 한 것이나, 부르노가 기독교적인 인간의 자기 감정이 하나님께 겸손한 복종을 한데 반하여 자율성과 창조성을 갖고 있는 인간은 ‘다른 신alter deus'으로 지칭하여 르네상스가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한 사실은 인간 자신의 신격화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신의 특별한 창조물인 인간만이 신적인 특성을 가진 존엄한 존재로서 다른 피조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예술에세 인체에 눈을 돌리게 하였다. 신 안에는 모든 피조물의 창조적 이념이 존재하고, 이는 모든 피조물의 비례는 신의 지혜에서 유래하고 신적 미 안에 모든 피조물의 비례라고 있다고 해서, 신과 피조물 사이에 비례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르네상스인들은 전지전능하신 신에게로 향하는 점진적 안락함 속에서 신의 모습과 닮은 인간의 형태에서 기쁨을 느끼고 특히 인간의 미를 특별히 취급하였다. 그들은 잘 비례화된 인체는 신의 능력과 이데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며 이성으로 확인된다고 믿었다. 인체의 미는 이데아와 이성과의 조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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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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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즐리의 미학사(이론과실천)을 읽고 요약한 글입니다. 오래된 글이네요.)


제 6장 르네상스



비어즐리는 르네상스를 15세기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탄생부터 16세기말 지오다노 브루노의 사망까지로 잡는다. 매우 의미심장한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쿠자누스는 철학사에서는 중세 말기의 철학자로 구분되나, 실제 그가 살았던 시대는 고딕 후기, 또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여기에서 고딕과 르네상스의 시대 구분이 문제로 떠오르는데, 지역적으로 그 사정이 틀리다. 이탈리아의 경우 15세기면 르네상스 중기이고 북유럽의 경우에는 고딕 후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학자들마다 어느 것에 무게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 구분이 제각각이며 읽는 이가 알아서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술이나 사상에 있어서 시대 구분은 몇 년부터 몇 년까지 확정적으로 나누는 것은 이해의 편의를 그러는 것일 뿐, 정확하게 말한다면 도리어 대략 몇 년 즈음 정도로 말할 수 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경우 스콜라철학의 후퇴가 분명한 사실이었고 이를 대신해 신플라톤주의가 유행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많은 영향을 준 이가 Marsilio Ficino였다. 그는 플로티누스를 라틴어로 번역하였고 플라톤도 번역하였다.

그는 신이 창조한 세계, 즉 "모든 형상과 이데아들의 이 합성체를 라틴어로는 mundus, 희랍어로는 cosmos, 즉 조화체라 부른다. 이 조화체의 매력이 미이다." 이 때 사랑(eros)은 '미에 대한 갈망'으로 정의된다. 사랑은 미의 상 아래에서 선에 끌리는 데 있다. 이제 미의 매력은 여러 요소들의 조화에서, 즉 정신에서는 여러 덕목들의 조화에서, 가시적인 것에서는 색채와 선의 조화에서, 음악에서는 음조의 조화에서 발견된다. "정신의 미는 마음에 의해 지각되고, 육체의 미는 눈에 의해, 소리의 미는 오직 귀에 의해 지각된다."

또한 "비례를 잘 갖춘 사람의 그 외모와 자태가, 만물의 창조주로부터 우리 정신이 포착해 가지고 있는 저 인간 개념과 아주 명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마음 속의 '인간의 참된 이데아'라는 플라톤적 형상이 있어서, 그것이 현실과 맞아 떨어지고 그래서 그 현실에서 식별되게 된다는 것이다.

지오다노 브루노의 <<영웅적 광신자들에 관하여>>(The Heroic Enthusiasts)도 중요한 책인데, 그는 이 책에서 "감각적 미와 순수 절대적 미 간의 대조를 반영하였고 전자에 탐닉하는 사람들이 후자로부터 멀어지고 위험, 저급한 미에 접근하더라도 올바른 정신만 있으면 고차의 미를 사랑하는 디딤돌로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술가는 규칙을 뛰어넘는 특유한 천재, 자유와 활동의 기회를 필요로 하는 영웅으로서 상위의 인간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는 자기의 작품에 스스로의 개성을 각인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혹은 주로) 그의 작품을 그의 것이기 때문에 흥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든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회화론이 발달하는데, 알베르티, 다 빈치, 뒤러를 통해서 이다.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국내에 번역되어 있으니,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회화는 원래 재현적이라는 개념이 전통적인 데 반해, 알베르티는 시각적 유사성(verisimilitude, 양감과 깊이)을 강조하고 어떤 고차의 상징적 목표에 집착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였는데, 새로운 르네상스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즉 그에게는 르네상스 예술가들을 대변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 11세기에 지오토, 마사초 같은 화가가 나타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마녀사냥을 당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현대의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이렇게 정리한다. "중세기 동안 그림은 삼차원적 대상의 징표나 상징으로 해석되어져야 할 선이나 색채로 덮인 불투명한 이차원적 평면으로 인식되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 그림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를 인용하면, '가시적 세계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보는창'으로 인식되었다."

알베르티는 특히 istoria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극적인 주제 혹은 장면'을 뜻하는 단어로 "화가의 가장 위대한 작업은 istoria - 행위, 표현된 정서, 그 과정에 내포된 테마 - 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화가는 다양한 인문 지식이 요구되었으며 동시에 실제로는 깊이가 없는 곳에서 깊이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대단히 어렵고 특별한 작업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화가는 수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이는 선형 원근법과 비례론으로 연결된다.

알베르티는 '그 본성 상 사물을 아름답게 해 주는 특질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아래와 같이 답했을 것이다.

"수, 그리고 내가 마무리와 배열이라고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밖에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다른 부분들의 접속과 결합에서 생겨나서 전체에 미와 우아함을 부여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조화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는 우아하고 멋진 모든 것들의 원형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조화의 임무는 그 본성이 서로 다른 구성원들을, 하나의 아름다운 전체를 형성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함께 배치하는 것이다. 그 결과 그러한 구성이 시각을 통하든 다른 감각을 통하든 우리 마음에 제공될 때마다, 우리는 이 조화를 즉각적으로 지각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예술가이다. 그에게 회화는 학문이었다. 왜냐하면 1. 재현원리는 체계적 정식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며, 2. "회화는 신체의 동작과 행동의 신속성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3. 그것은 "명암의 비례 뿐만 아니라 모든 연속적인 양(量)을 다룬다"는 점에서 수학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양뿐만 아니라 질까지도 포함하므로 산수와 기하학보다 더 훌륭하기조차 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자연에서 태어나고, 회화는 이 사물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회화를 자연의 손자며 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부르는 것이 옳다." 혹은 화가를 '신의 손자'라 부를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다 빈치만의 생각이 아니라 그 당시 위대한 예술가를 바라보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태도이기도 했다. 그래서 예술가는 장인의 단계를 지나 학자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이는 위대한 천재로서, 신의 영광을 재현하는 이로서 추앙 받았다.

뒤러는, 자신의 두 연구 분야에서 추구하는 수학적 법칙이 회화의 두 가지 근본적 요구, 즉 재현의 정확성과 시각적 질서나 조화 간의 화해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미가 양극단 사이의 중용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용성은 미의 일부이며", "어떤 것과 다른 것의 조화는 아름답고 따라서 조화가 결여되면 아름답지 않다. 진정한 조화는 서로 다른 사물들을 결합시킨다."라고 말한다.

“16세기 이래로 음악이 그 영감을 끌어들여 온 두 가지 주요 관념, 즉 표현으로서의, 즉 음의 회화로서의 음악과, 테마에 바탕을 둔 구조로서의 음악이라고 하는 이 두 관념은 르네상스에 그 기원을 두었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에 시와 음악이 긴밀하게 협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 개인이 이 두 예술을 결합해서 구사했다는 사실, 그리고 가사와 선율이 합쳐 있는 뮤지케mousike(아우구스티누스의 musika 개념과 유사한)라는 개념이 있었다.

르네상스 음악에서 중요한 미학적 관심사들 중 하나가 음악에 요청되는 정서적, 윤리적 효과가 어떻게 산출될 수 있는가 였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한 가지 방법으로 음악적 자원을 증가시키는 것. 즉 보다 풍부한 화성적 언어, 음계의 혼합, 한 음계에서 다른 음계로의 전조, 보다 넓은 음역을 지닌 새로운 악기의 도입 등이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방법은 음악을 그 텍스트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요세프 짜를리노(Gioseffe Zarlino)의 <>를 인용해보자면, “설명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모방에 의한 것이든 간에 (가사에는 항용이 두 가지가 함께 있다) 가사에서 유쾌하거나 슬픈 제재, 엄숙하거나 엄숙하지 않은 제재, 혹은 점잖거나 음란한 제재가 다루어진다면, 우리는 이것들을 비례에 맞게 결합하여 목적에 부합하는 어떤 멜로디를 산출하기 위하여 그 발화에 담겨진 제재들의 성격에 유사한 어떤 화음과 리듬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의 형식적 특성보다는 그 내용을 형성하는 시에 담겨져 있었다. 이는 알베르티가 istoria를 강조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인 셈이다. 이러한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이후 예술 양식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관점들 중 하나이다. (* 철학의 분과학문으로서의 미학에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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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시커50-회화

롤프H.요한젠저 | 황현숙역 | 해냄 | 2002.03.11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롤프 H. 요한젠, <클라시커 50 회화>, 황현숙 옮김, 해냄



1.
서평이란 책을 평가하고 읽는 이, 또는 읽을 이를 위해 씌어진 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글 쓰는 이의 사정에 따라 그 글의 모양새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책에 있다기 보다는 책의 외부에 있다. 즉 책을 온전하게 평가하기 못하고 책이 놓여있는 Context에 너무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미술사(학)라는 한국에 아직 낯선 학문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예술을 포함한) 전반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서평을 쓰는 이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요컨대 한국의 학문 연구 풍토가 어떠하며 대학 교육이 어떻고 독자의 수준이나 태도가 어떠하다는 말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원래 시대가 혼탁할수록 책에 대한 글에 정확한 시선과 정갈함이 요구되며 가치 있는 책들이 일반 독자에게 읽혀져야만 한다.

2.
미술 작품을 소개하거나 해설하는 책들은 예상 밖으로 많다. 하지만 그 책의 내용이나 질이 의심스러운 책들 또한 많다. 모든 책들이 정확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정적인 제목과 허술한 내용과 논증으로 독자를 기만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는 선정적인 제목의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독자의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잰슨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이 좋다. 혹자는 이러한 '미술의 역사'에 대한 책보다 개별 화가나 개별 작품들에 대한 책으로도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 미술사를 이해하고 있어야만 개별 미술 작품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장 프랑수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1857년)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고 곧잘 광고 소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는 이는 몇 명쯤 있을까? 아마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이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수들 중에서도 많지 않을 듯 싶다. 그리고 감동 받지 않았으면서도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가르친다면 자기 기만적인 행동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이와 가장 유사한 예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될 수 있겠다).

Millet, Jean-Francois,
Les Glaneuses, 1857


2002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미술작품을 보는 모든 이들이 1857년에 완성된 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중반 유럽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19세기 중반의 사람에게 백남준이나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듯이 우리가 19세기 중반에 완성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19세기 중반의 사람이 되어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래된 미술 작품을 보고 이해하고 감동 받기 어려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 가지는 의미 내지는 당시 미술계에 던진 충격은 이 작품이 완성되고 난 다음 6년 후의 작품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터키 목욕탕'을 옆에 두고 보면 쉽게 알 수 있다(눈을 감고 한 화랑에 밀레의 작품과 앵그르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있다고 상상해보라). 자끄 루이 다비드의 제자인 앵그르는 그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고 그 당시 미술계에서는 앵그르류의 작품들을 최고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 때 공개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한 마디로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롤프 H. 요한젠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얼굴에 주먹 한 방을 날리는 것 같은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 없다'.(p. 184)



Ingres, Jean-Auguste-Dominique,
The Turkish Bath, 1862
;Oil on canvas on wood, Diameter 108 cm (42 1/2"); Musee du Louvre, Paris


3.

한 예를 더 들어보자. 주위에 클림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데, 여기에 대해 무척 흥미로운 추측을 해보자. 나에게 클림트의 작품은 뛰어나거나 감동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는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욕심많은 한 화가의 집요함이 너무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성을 비방하고 그녀에게 무한한 애로틱한 힘을 부여하여 그녀 앞에 다가온 남자를 살해하는 요부로 그린다'.(p.214) 이처럼 클림트는 여성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적어도 그의 작품들은 이러한 혐의를 벗기 어렵다. 그런데 이토록 여성을 비하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 도리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이러한 요부를 선호하고 이러한 요부가 되길 꿈꾸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추측이기 때문에 자신이 클림트를 좋아한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추측도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가령 '유디트 I'을 보면 유디트로 표현된 여성의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데, 이는 여성을 성적 대상(또는 노리개)로 파악할 때의 여러 미술 작품들에게 주로 보여진다. 이러한 여성이 빼곡히 그려진 기하학적인 문양들 속에 갇혀있으니, … …


Klimt, Gustav
Judith I ,1901
; Oil on canvas 60 1/4 x 52 3/8 in. (153 x 133 cm) Osterreichische Galerie, Vienna



4.
그러나 이러한 흥미진진한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은 드물다. 서점에 많은 책들이 나와있기는 하지만, 그 책들을 다 읽을 사람도 없겠거니와 다 좋은 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내가 대학 일이학년 때 읽은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를 지금 읽어보면 무척 식상하고 재미없게 읽혀지지만, 그래도 일반 독자에게는 진중권의 그 책처럼 친절하게 하나하나씩 설명해주는 책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대학의 교양 교육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니). 하지만 국내 연구자에 의해 씌어진 우수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있는 책들은 번역서적들인데 대부분 전문연구서들 일색이다. 지금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일반독자를 위해 씌어진 책이라 할 수 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전문서적 못지 않은 지식과 성찰을 보여주고 있어 일반 독자가 부담을 가지지 않고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 책 '클라시커 50 회화'는 해냄에서 나오는 시리즈물로서 원래 독일에서 출판된 시리즈이다. 여러 분야들에게 대한 책들이 나와있는데, 미술에 대해서 디자인에 대한 책이 한 권 더 있다. 책은 총 50개의 미술 작품(전적으로 회화에만 국한된)과 이에 대한 상세한 해설, 화가에 대한 간략한 요약으로 구성되어있다. 르네상스 초기, 흔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이라고 평가되는 지오토의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부터 시작해 앤디 워홀의 '마를린'까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웬만한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해볼 만한 하다. 또한 작품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 화가의 다른 작품들이나 다른 화가의 작품들까지 곁들이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일부분을 예로 들어 독자에게 이 책이 읽어볼 만한 책이면서도 만만치 않은 책임을 보여주기로 하자.


DURER, Albrecht
Selbstbildnis im Pelzrock (Self-Portrait in Furcoat, Self-Portrait at 28), 1500
Oil on panel, 67 x 49 cm Alte Pinakothek, Munich


작품의 창작을 수학적인 질서로 파악하고자 했던 뒤러는 휴머니즘(인본주의)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양식화된 자화상 속에서 인간은 기하학과 미(美)를 통해 그 가치가 상승된다. 그것은 인간과 신이 동일화된 근원을 갖기 때문이다.(p.49)

'자화상'은 뒤러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새로운 자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자의식은 바로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가는 신의 뒤를 잇는 제 2의 창조자이다.(p.53)


Millais, John
Ophelia 1851-52
Oil on canvas 76.2 x 111.8 cm (30 x 44 in) Tate Gallery, London


라파엘 전파의 기본 원칙은 자연에 대해 최대한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들은 이상화된 라파엘로의 방식을 거부했다. 초기 르네상스회화, 특히 보티첼리와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에서 그들의 전형을 찾았다. 밀레이는 모든 식물과 꽃들을 식물학적 특성으로 파악했다. 그것은 파엘 전파가 추진했던 하나의 '세부적인 사실주의'였지, 결코 포괄적인 사실주의는 아니었다. 밀레나 쿠르베의 동시대적 사실주의와 그들은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라파엘 전파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는 하지만 그 사물과의 직접적인 논쟁을 피한다. 그들의 그림은 비현실적이며 풍경은 상상에서 비롯된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남긴 그들만의 특징이라면 젊은 신부나 죽은 애인으로 또는 남자의 자기 파괴적인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 성모이거나 '팜므 파탈'로 - 나뉘어지는 여성상의 분열이었다(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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