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열어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는, 두텁고 축축한 서른다섯 사내의 불쾌한 냄새를 치우려고 해보지만, 바람이 밀려들어 오는 것도 잠깐, 뒤 따라 들어온 빗방울들은 먼지가 쌓인 책상 귀퉁이를 적시고, 체모가 뒹구는 방바닥을 적시고,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는 책을 덮치고 내 발은, 내 손은 금세 젖어버린다. 나무로 된 케이스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갈라진 캔우드 리시버 앰프의 불륨을 조절하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19세기 초반의 낭만주의 풍의 피아노 음악 소리 사이로 비가 지상의 여러 구조물과 만나 부서지고 흐르는 소리를 엿듣는다. 그 소리 속에 이 여름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어떤 비결이라도 숨어 있는 건 아닐까 기대를 해 보지만, 삐친 애인의 숨소리 마냥, 그 비결을 눈치 채기도 전에 내가 먼저 주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