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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유럽편 - 

차문성(지음), 책문(성안당), 2013년 초판/2015년 장정개정판 


좋은 책이다. 비전문가인 저자가 전문가가 되어간 과정이 녹아있다. 성실한 내용과 애정이 담긴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물관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유럽 주요 도시에서 가기 쉬운 미술관/박물관을 선정해 보여주었다는 점도 이 책이 꽤 실용적임을 증명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 흩어진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이 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책 제목 그대로 예술기행이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생페테르부르그 등의 도시에 있는 미술관/박물관에 대한 소개와 그 곳에 대한 간단한 느낌이나 감상, 그리고 소장 전시되고 있는 주요 작품들에 대한 짧은 안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내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매우 부러웠다. 한 달 이상 파리에 체류하면서, 일 드 프랑스와 생-제르맹 거리를 오가며, 갤러리에만 있었던 건 아닌가 후회를 한다. 누구나 다 가는 루브르와 오르세만 간 걸 이제서야 후회하다니. 다시 가게 되면 꽤 오래 머무르며 작품들을 보고 와야 겠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 대부분은 이미 여러 미술 관련 서적에서 본 내용들인 탓에, 빠르게 읽었다.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꽤 도움이 될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유럽 여행객들이 미술관 관람이 목적이 아닌 만큼, 이 책에서 언급된 도시에 가게 될 경우, 이 책은 꽤 유용할 수 있겠다. 



렘브란트, <예루살렘의 멸망을 탄식하는 예레미야>, 1630,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그렸다. 렘브란트가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깊이를 가진 작품을 그렸다는 건 놀랍기만 하다. 아마 그만큼 신앙심이 깊었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통을 지긋이 누르며 곤혹스러워하는 얼굴 옆으로 불타는 예루살렘이 보인다. 바로크 특유의 명암법은 화면 전체를 감싼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하지만 밝은 쪽은 슬픔으로 가득하고 어둠 속으로는 절망감이 감돈다. 그리고 팔을 괴고 있는 모습 아래로 성경이 보이고 그 밑으로는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로부터 받은 금은보화로 보이는 것들이 놓여져 있다. 전체적으로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통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바로크의 고민이 보인다. 확실하 바로크는 과거를 향하지 않는다. 미래로 열린 양식이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그러나 우리 시선은 어두운 쪽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래서 저 반짝이는 금속물질의 물건은 참 흥미롭기만 하다. 


이 책에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소개하면서 이 작품을 언급했다. 위 설명은 내가 별도로 작성한 것이라 책 내용과는 다소 다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작품이 눈에 들어왔는데, 마네의 베르트 모리조 초상화와 렘브란트의 위 작품이었다.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의 관계에 대해선 다음에 한 번 언급하기로 하자. 혹자는 19세기 미술사 가장 아찔한 로맨스라고도 하니 말이다. 대체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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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림이다 Conversation with David Hockney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지음), 주은정(옮김), 디자인하우스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가 지난 10년 간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와 나눈 대화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 책 제목은 <A Bigger Message : Conversation with David Hockney by Martin Gayford>, 한국 번역서의 제목은 <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Mr and Mrs Clark and Percy

Acrylic on canvas, 1970-1971

305 cm × 213 cm, Acrylic on canvas, Tate Gallery, London




데이비드 호크니? 이 글을 읽는 이에게 데이비드 호크니를 설명해야 하나? 먼저 그는 화가다. 생존해 있는 영국 최고의 화가이며, 평단, 예술가, 화상 등을 가리지 않고 최고로 인정하는 예술가다. 그는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 :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이라는 책을 통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를 통해 그림을 정교하게 그린 화가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르네상스 이후 몇몇 화가들이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던 방식을 대부분의 화가들이 이용하였음을 책을 통해 밝혔으며, 이 방식으로도 위대한 화가들을 따라잡지 못했음을 설득력 있게 기술하기도 했다(하지만, 논란거리만을 쫓는 평자들에겐 미술사에서 유명한 화가들이 사진과 같은 원리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베겼다는 데에만 집중했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그렇게 알려지기도 했다). 




명화의 비밀

데이비드호크니저 | 남경태역 | 한길아트 | 2003.10.01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나에게는 2000년대 후반 갔던 파리 피악Fiac(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에서 내 눈을 단숨에 사로잡은 단 한 점의 풍경화를 그렸던 예술가이기도 하다. 지극히 편파적이긴 하지만, 데이비드 호크니만 제대로 알아도 현대 미술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만큼 데이비드 호크니는 사진, 영화, 무대 미술, 회화 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미술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다) 






나도 그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어려운 미술 용어들로 도배되고 제대로 된 분석 없이 양식만 훑는 미술 입문서나 전문 교양 서적을 읽는다. 한 때 지적 허영에 가득 차, 그런 책들을 읽으며 우쭐대기도 했지만(그런 책들로 인해 우리가 조금이나마 앞으로 간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현대 미술이란 지독하게 어려운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일상 생활에선 사용하지 않을 단어를 써가며 미술 작품을 논하는 모습은, 진정 위대한 작품을 모독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 책, 이 대화집은 그런 전문 용어 따윈 거의 나오지 않는다. 원근법에 대한 기술은 다소 어려울 수 있겠지만, 대부분 그린다는 것, 본다는 것에 대해 집중한다. 



내가 사람들을 차에 태워 여기로 올 때 길이 무슨 색이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지요. 10분 후에 내가 같은 질문을 다시 하자 그들은 길의 색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후에 그들은 "길이 무슨 색인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그런 질문을 받지 않았다면 길의 색은 그저 길색일 뿐입니다.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항상 이와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물을 훨씬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84쪽) 





누군가는 이 책에 실린 호크니의 의견이 호크니만의 의견이라고 여길 지도 모른다. 그는 사진(카메라)은 기술일 뿐이고 작품으로서의 사진은 드로잉의 영역 속으로 들어와 있고, 영화는 드로잉에서 시작한 미술의 역사 속에서 사진을 거쳐 사진들의 연속물로서 미술의 역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아이폰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며 포토샵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은 늘 자신을, 예술가를 흥분시킨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가 사진처럼 보인다고 여깁니다. 나는 사진이 대부분 맞지만, 그것이 놓치고 있는 약간의 차이 때문에 사진이 세계로부터 크게 빗나간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지점이 내가 찾고 있었던 바입니다.(47쪽) 



드로잉과 흔적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매체를 탐구하는 것을 즐길 것입니다. 나는 기술에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시각적인 것은 어떤 것이나 나의 흥미를 끕니다. 매체는 흔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이지 흔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98쪽) 




Place Furstenberg, Paris, August 7,8,9, 1985 #1

Photographic collage, 88.9 x 80 cm

Collection of the artist



이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는 어떻게 보고 어떻게 그리느냐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결국 드로잉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제대로 된 드로잉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세히 끈질게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네, 그렇죠. 그(반 고흐)가 그랬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맞습니다. 반 고흐는 많이 응시했을 겁니다. 틀림없이 아주 집중해서 보았을 겁니다. 사실 오랫동안 작업하면 눈이 아주 피곤해집니다. 그러면 그저 눈을 감아야 합니다. 전적으로 강렬한 응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185쪽) 



정말로 뛰어난 소묘화가에게는 공식이 없습니다. 각각의 이미지가 새롭습니다. 렘브란트와 프란시스코 고야, 피카소, 반 고흐의 작품이 그렇습니다. 렘브란트나 반 고흐의 작품에서는 같은 얼굴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작품에는 항상 개개인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187쪽) 




A Bigger Splash

1967, Acrylic on canvas

243.8 x 243.8 cm

Tate Gallery, London



현대 미술에 관심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정말 많은 예술가들의 이름이 나온다. 북유럽 예술가들의 한글 표기가 마음에 들지 않고(베르메르Vermeer를 페르메이르로 옮기고 있는 등 많은 이름이 다소 낯설게 - 영어 식인지 모르겠지만 - 옮겨졌다), 한 두 군데(내가 발견한) 오역이 보이지만, 이름과 작품 명 뒤에는 원문 표기가 되어 있고 문장은 쉽게 잘 읽히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그리고 용지의 선택이 무척 마음에 들고 인쇄 품질도 좋다. 도판은 작지만 꽤 선명하다. 


이번 여름, 데이비드 호크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면, 몰랐던, 혹은 알고 있다고 여겼던 미술을 새삼스럽게 다시 알게 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그림이다

마틴 게이퍼드저 | 주은정역 | 디자인하우스 | 2012.10.2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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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展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2007. 6. 26 - 9. 30    덕수궁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 프라도 미술관 등과 함께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은 유럽 여행을 갈 경우 반드시 들려야만 하는 곳들 중 한 곳이다. 그러므로 유럽에 관심이 많다거나 안목 있는 미술 애호가라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놓칠 수 없는 것임에 분명해 보인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귀도 레니, 루벤스, 렘브란트, 반 아이크, 벨라스케스 등 미술사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화가의 작품을 한국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보러 가라고 이야기해야만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확실히 렘브란트의 ‘책을 읽고 있는 화가의 아들, 티투스 판 레인’은 위대한 작품이란 어떤 것인가를, 그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었다. 음울한 바로크 색채 아래로, 그 너머로 무한한 정신성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순간은 순간으로 머물지 않고 영원을 향해 전진했다. 하나의 감각은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감각으로 넘어가고 불명료함은 명료함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명료함을 지향했다.

가령 아래 설명문을 읽어보자. 서양미술사를 수놓은 위대한 미술가들 중에서 아래와 같은 설명이 어울리는 미술가는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물질성을 넘어 정신의 상태까지도 환기시키는 미술가가.

‘티투스는 적당한 길의 곱슬머리에 챙 없는 모자를 쓰고, 입을 약간 벌려 책을 낭독하는 순간에 있다. 은은한 빛줄기가 티투스의 이마에 직접 떨어지고, 펼쳐진 책에는 반사된 빛이 표현된다. 어둠 사이에서 화면 전체를 감도는 빛은 물질성을 넘어 정신의 상태까지도 환기시키는 위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 전시 설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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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로크의 위대성들 중의 하나는 보여주어야 하는 세계와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던 최초의 양식이었다는 점이다. 벨라스케스의 ‘흰 옷의 어린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에서 화가는 어린 왕녀의 뒤로 보이는 배경은 그냥 무시해버린다. 그가 어린 왕녀의 얼굴에 섬세한 감정의 표현들, 이 왕녀가 살아가야 될 어떤 운명을 엿보게 하지만, 그에 비해 그녀의 옷이나 뒤 커튼은 힘이 있으나 거칠고 매력적이나 르네상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전시된 몇몇 작품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물들의 운동에 집중하거나 그림의 중앙은 밝게 처리하려는 경향에서 우리는 바로크 미술의 정신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에서 볼 수 있는 모더니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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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전시된 한 작품 한 작품이 서양 근대 미술의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어떤 감동을 느꼈을까 하는 생각에는 (늘 그렇듯이) 비관적이다. 예술이 우리 곁에 남아 숨쉬고 있는 이유는 삶과 세상에 대한 새롭고 깊이 있는 통찰이거나 눈물겹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감동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이 전시는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가기에는 조금은 낯설고 어렵거나, 책에서 본 듯한 익숙함으로 인한 무료한 관람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이 전시를 추천하지 못했다. 매너리즘, 바로크, 로코코에 이르는 서양 근대 미술의 정수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책에서 본 듯한 익숙한 이미지들, 그러나 그냥 잘 그렸다는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재미 정도로 밖에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미술 전시는 무료한 종류라는 편견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르겠다. (정말 우리가 아무런 준비 없이 가더라도 너무 흥미진진하고 때때로 벅찰 정도의 희열을 주는 전시가 서울의 여러 갤러리들에서 전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시에서 귀도 레니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창백한 빛깔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푸념을 해보지만, 그의 ‘참회하는 베드로’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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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사용된 이미지는 오마이포토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전시 소개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의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바로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 위와 같은 전시를 관람하실 때에는 반드시 전시 설명을 듣는 것이 좋습니다. 아니면 전시를 보러가기 전에 웹사이트를 방문하여 전시 작품을 확인하고 관련 책이나 정보를 통해 미리 선행 학습을 한 후 가는 것이 좋습니다.

* 하지만 오래된 미술 작품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의 폭이란 제한적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대형 전시를 보기 보다는 우리에게 덜 알려진 현대 미술가의 전시를 보는 것이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합니다. 인사동, 사간동, 청담동, 삼청동 등지에 위치한 갤러리나 화랑에 가서 보면 현대 미술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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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를 쓰기 전에 적어놓은 노트입니다. 바로크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1. 바로크: 근대성Modernity의 시작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떤 세계일까?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꼭 이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든가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물음과 유사한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특징을 부각시켜서 말하거나 아예 이 물음에 대한 답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너무 거대한 질문이라 실제 우리의 삶과는 무관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본다면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이 세계에 대해서 자주 듣게 되는 단어들, 신자유주의, 개인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과 같은 것의 근원을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17세기 서구사회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17세기와 2004년과의 관계를 알기 위해,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와 같은 철학자가 구상하였고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와 같은 예술가들이 재현하였던 그 당시의 세계와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 한적한 일요일 오후에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몇 가지의 규칙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신호등이라는 교통시스템만 지키면 도로가 연결되어있는 원하는 목적지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동 속에서 자동차 안과 밖은 명확하게 구분된 공간이라는 점. 밖이 아무리 춥더라도 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근대 최초의 기획들은 기계론이다. 인과율적 체계의 다른 말이기도 하며 근대 자본주의가 그 기틀을 명확히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드디어 시계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기계론적 관점에서 시간과의 싸움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이 때 미래는 그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하나의 질서가 있다. 그 질서는 신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신의 질서와 자연과학의 질서가 등가적 관계를 이루게 되고 이 사이를 예술가가 자리잡게 된다. 이것이 르네상스적 세계관이자 미학관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적 세계관은 얼마 뒤 매너리즘적 세계관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데, 우리들의 삶이나 현실은 신적이지도, 자연과학적이지도 않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매너리즘에서는 나와 너, 이상과 현실, 어제와 오늘이 분열하게 된다. 고딕적 분열의 연장선상에 놓이면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종종 겪게 되는 분열을 이미 매너리즘 시대의 예술가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분열은 바로크 시대에서 극적으로 해소된다. 그리고 그 해소의 방법은 생각하는 나를 중심으로, 이상 대신 현실을, 어제 대신 오늘, 그리고 내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근대성(Modernity)는 이 시대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적인 것이 가장 우선시되는 세계. 인간들이 만든 규칙이 신의 규칙과 똑 같은 위상과 가치를 지니게 되는 세계. 유한한 세계 속에서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세계. 아니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세계. 이제 무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는 끝이 나고 유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드디어 세속적이며 경험적인 세계가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바로크에 들어서 고딕적 분열 양상은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중심으로 해소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완전한 해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살아가면서 별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해소로도 바로크 예술가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긍정하는 시대였다.

바로크는 절대왕정의 시대이면서 과학혁명의 시기요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시대이면서 우리들의 약점들이 무수한 장점들로 가려져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에는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 바흐, 헨델(George Frederick Handel, 1685-1759), 카라바지오, 베르니니, 벨라스케즈(Diego Rodriguez de Silva Velazquez, 1599-1660),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렘브란트, 베르미르(Jan Vermeer, 1632-1675), 푸생, 끌로드 로렌(Claude Lorrain, 1600-1682)이 속하며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들과 라신느(Jean-Baptiste Racine, 1639-1699), 꼬르네이유(Pierre Corneille, 1606-1684), 몰리에르(Moliere, 1622-1673) 등의 프랑스의 극작가들, 그리고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 존 던(John Donne, 1572-1631)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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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 Descartes
Frans HALS, c. 1649
Oil on panel, 19 x 14 cm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2. 무한한 우주 속의 유한한 인간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먼저 이야기했지만,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에 와서 비로소 논쟁거리가 된 '지동설'은 인간이,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당시 천문학의 발전은 이 우주에는 끝이 없으며 끝 없는 우주에서 인간은 그저 티끌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천동설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신(무한자)과 가까이 있었으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고 그것은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동설의 세계 속에서 지구는 우주의 변방이며 인간은 신(무한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었다. 즉 드디어 인간은 신과 무관한 어떤 존재, 심지어 신에게서 버림받은 존재로 떨어지게 된다. 이는 파스칼에게서 두드러지며 바로크 양식의 어두운 그림자에 해당된다. 하지만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내며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의 확실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티끌 같고 언젠가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불안은 이 현실 세계 속에서 뭔가를 할 수 있고 알아낼 수 있다는 자신과 자만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정치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데, 서구에서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전제군주제가 확고하게 뿌리내리기 되었다는 점이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신화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세계의 안정을 바탕으로 상업이 발달하였으며 많은 것을 포기한 구교와 경제적으로 적절한 지위를 부여 받은 개신교 사이의 분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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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Louis XIV
Hyacinthe Rigaud, 1701
Oil on canvas, 279 x 190 cm
Musee du Louvre, Paris



바로크의 세계는 유한한 인간이지만, 그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진행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의 회화 속에서는 '진리를 잡기 위해서 운동하는 나' 즉, 데카르트적 자아가 있으며 그 운동이 모아지는 빛나는 중심으로 삶의 격정, 활력이 흘러나온다. 드디어 어둠 속에 묻어두었던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적 세계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물은 유전한다. 한 번 담근 강물에 두 번 다시 담글 수 없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한 번 담그는 그 강물 속에서 강물의 본질을 잡아낼 수도 있으리라는 신념을 가진다.


3. 정지에서 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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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arkation of St Paula Romana at Ostia
Claude Lorrain, 1637-39
Oil on canvas, 211 x 145 cm
Museo del Prado, Madrid



움직이는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 고전주의이다. 그것은 기하학적이며 무한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모아진다. 그래서 이 세계 속에서는 운동이나 생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크는 반대로 운동이나 생성 속에서 어떤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들의 생각을 전개시킨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경험적 세계 속에서 나는 내 가치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드디어 진리를 향한 삶의 성실성이 요구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의 포기는 경험적 세계 속에 있는 유한한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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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atthew and the Angel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32 x 183 cm
Formerly Kaiser-Friedrich-Museum, Berlin
(* 현재는 소실되어 없으며 그 당시 불경하다는 비난을 받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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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92 x 186 cm
Contarelli Chapel, San Luigi dei Francesi, Rome



하나는 교회로부터 거절당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작품이고 하나는 교회에 걸렸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작품이다. 카라바지오만큼 바로크 시대에 걸맞은 예술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난봉꾼에 일자 무식에 매일 사고만 치는 건달이었지만, 그는 예술가였다. 드디어 지적 교양을 가진 예술가에서 지적 교양 없이도 예술 작품을 남기는 예술가의 시대로 변해온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적 영감을 중요시하는 일군의 예술가들은 바로 한 발짝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자연과학적 태도는 신의 질서를 자연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시작되었지만, 예술의 세계 속에서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다. 매너리즘 예술가인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이 태도는 실제 있었던 그것을 그대로 표현해내는 것으로 변화하였으며 바로크에 이르는 그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카라바지오의 세계에서 성 마태와 천사는 한 쌍의 연인처럼 붙어있는 것이다. 신의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는 고독한 성인과 그 고독을 위로해주는 천사로 말이다. 하지만 카라바지오의 세계는 교회로부터도 거부당했고 그 당시의 일반 대중으로부터도 거부당했다. 아마 21세기에서도 카라바지오의 작품이 불경하다고 여기는 기독교도가 있을 것이니, 17세기 때의 기독교도라면 그 거부는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4. 경험적 세계 속으로

우리 앞에서 지금 두 개의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멸하며 경건하고 신성한 신의 세계이며 하나는 경험적이며 유한하고 언젠가는 죽게 될 인간의 세속적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의 세계이며 하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이다. 하나는 정지된 공간의 세계이며 하나는 끊임없이 변화는 시간의 세계이다. 그리고 바로크는 전자보다는 후자에게 그 가치를 두는 양식이다.

베르니니에게 신과의 교감은 인간적인 그 어떤 것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즉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도리어 그의 경험이 신과의 교감과 비슷한 유형이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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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cstasy of Saint Therese
Bernini, 1647-52
Marble Cappella Cornaro, Santa Maria della Vittoria, Rome
 


더 이상 인간적인 것은 수치이거나 불경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인간적인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한 치의 주저함이나 물러남 없이 자신의 모습이 왜소해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나는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다는 것. 이제서야 인간적인 것이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의 세계이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모더니티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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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Rembrandt, 1627
Oil on wood, 23,5 x 17 cm
Staatliche Museen, Kas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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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Rembrandt, 1668-69
Oil on canvas, 82,5 x 65 cm
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어쩌면 예수도 늙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가인 뒤러가 자신의 초상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치 예수처럼 그렸듯이 렘브란트는 그도 늙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이제 드디어 변화한다는 것이 가치를 가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운동이며 생성의 세계, 경험적 세계를 뜻한다. 그것은 현실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바로크 예술가들에게 이것은 훈장과도 같았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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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의 파사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 로마
 

건축에 도입된 유려한 곡선은 직선적인 느낌을 강조하던 이전의 건축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건축 속에서 도입된 이러한 운동감은 조각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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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and Daphne
Bernini, 1622-25
Marble, height 243 cm
Galleria Borghese, Rome
 


조각에서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라고 한다면 베르니니만큼 잘 구현했을 만한 조각가도 없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아폴론과 이 사랑을 거부하는 다프네가 올리브 나무로 변해가는 순간을 표현한 이 조각에서 바로크 시대의 사랑을, 바로크적 비극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 이제 드디어 언젠가는 헤어질 수 없는 사랑이 누군가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세속의 사랑이 주제가 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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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ady at the Virginals with a Gentleman
Vermeer, 1662-65
Oil on canvas, 73,3 x 64,5 cm
Buckingham Palace, London
 


한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 옆에 한 남자가 서서 그 음악 소리를 듣고 있다. 그는 가만히 서서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 속에 빠져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서 그 사랑을 거절당하지 않을까. 이건 이 작품에 대한 추측이긴 하지만, 이제 세속의 사랑, 불경하면서 비도덕적인 사랑도 예술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되기 시작하였으며 종교적인 그림을 그려지는 작업실에서 동시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5. 두 개의 바로크들


매너리즘이 전유럽적 양식이었다면, 바로크는 그 지역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는 양식 상으로는 지역에 따라 매우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 전시실에 나란히 푸생의 'Et in Arcadia Ego, 루벤스의 Raising of the Cross, 베르미르의 Woman Holding a Balance가 걸려있다면, 이 세 작품이 같은 시대의 양식이라고 설명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푸생은 확실히 고전적이다. 어떤 이는 푸생의 작품들을 두고 '바로크 고전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한한 세계 속에서의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그래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바로크적 신념은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고전적이며 푸생은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이 기하학적이길 원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다른 화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고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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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in Arcadia Ego
Poussin, 1637-39
Oil on canvas, 185 x 121 cm
Musee du Louvre, Paris
 

하지만 바로크는 고전주의가 될 수 없는 시대였다. 바로크의 예술가들이 잡으려고 노력했던 바 진리는 시간과 변화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변하는 진리관과는 다른 것이었다. Et in Arcadia Ego, 아르카디아 속에서도 나는 있다는 말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속에서도 죽음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깐 이상향 속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그래서 우리는 늙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나오는 여인을 크로노스(시간의 여신)이라고 해석한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말은 죽음을 막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라는 말이기 보다는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알고 살아있는 동안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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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Life
Pieter Claesz, 1633
Oil on oakwood, 38 x 53 cm
Staatliche Kunstsammlungen, Kassel
 

푸생이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면 이에 비해 루벤스는 색채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같다. 이는 이후에 푸생주의와 루벤스주의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더욱 격정적이며 회화 속에서 바로크적 운동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격정적인 색채감은 와토나 부셰, 프라고나르 등의 로코코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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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sing of the Cross
Rubens, 1610
Oil on panel, 460 x 340 cm (centre panel), 460 x 150 cm (wings)
O.-L. Vrouwekathedraal, Antwerp
 

루벤스가 궁정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라면 렘브란트와 베르미르는 시민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특히 베르미르는 수수한 색채 속의 개신교적이며 시민적인 바로크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이러한 양식의 바로크는 개신교적 성격과 초기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의 예술 양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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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Holding a Balance
Vermeer, 1662-63
Oil on canvas, 42,5 x 38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네덜란드의 시민계급들이 좋아했던 것은 풍경화였다. 이러한 풍경화는 끌로드 로렌의 풍경화와는 틀리다. 이러한 풍경화 양식의 차이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비교해보면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탈리아, 특히 베네치아의 풍경화는 화려하면서도 인상주의적 면모를 보여주지만, 네덜란드는 정적이면서 소박한다. 이러한 소박함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겸손으로 이어져 여러 바로크 정물화에서는 유한한 인간임을 인식하고 현실 세계에 보다 충실히 복무하라는 도덕적 메시지를 담게 된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치품들을 정물화의 소재로 이용함으로써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축적한 부를 자랑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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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with a View of Haarlem
Ruisdael, 1670-75
Oil on canvas, 52 x 65 cm
Staatliche Museen,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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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회화의 시대 -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The Age of Rembrandt - 17th Century Dutch Painting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의 마우리츠하위스 왕립미술관에서 대여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이 미술관의 소장품은 비록 1천여점에 불과하지만, 렘브란트, 베르미르, 루벤스, 반 다이크 등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유럽의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작품의 수준에 걸맞는 작품관리와 보존의 원칙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그림 수송과정으로 이어졌다. 또한 조도 역시 회화 전시의 통상적인 기준보다 더 낮은 150룩스 이하로 설정되었고 온도와 습도는 하루 24시간 내내 체크되어 매우 헤이그로 보고되고 있다.”
- Art in Culture, 2003.9. 64쪽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던 것일까. 이 전시를 보고 난 사람들 대부분은 교과서에 봤던 그림들을 실제로 보았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두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실은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클래식을 듣지 않는 이가 몬테베르디의 음악을 듣고 낯설어하는 것처럼, 미술사에 대한 지식 없이 이 전시를 보고 소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과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적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나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보다 더 한국 사회, 한국 사람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표현하는 한국 예술가들의 전시에는 왜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꼭 명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명화를 소비하려 몰려드는 것일까? 상상 이상으로 몰려든 관람객들은 언제나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을 탈출해 어떤 감흥, 또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이 전시 관람은 썩 좋은 선택이 되지 못한다. 왜냐면 지금으로부터 몇 백년 전의 감수성으로 돌아가 네덜란드 사람이 되지 않는 다음에서야, 이 작품들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일정 시간 이상의 학습이 필요하다. 이 전시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키워드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바로크의 정신


아놀드 하우저의 견해대로 바로크는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겠다. 궁정적 바로크와 시민적 바로크. 하나는 카톨릭적이며 하나는 개신교적이다. 하나는 교회와 귀족을 위한 것이고 하나는 시민을 위한 것이다. 루벤스는 전자를 위해 자신의 작품을 바쳤으며 렘브란트는 후자를 위해 작업을 하였다. 바로크의 세계는 이 둘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그것을 관통하는 것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사상이다. 네덜란드는 시민적 바로크를 추구하였다.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중 '바로크' 편 참조)


2.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개신교가 지배하던 상업 국가였다. 이번 전시에 나온 정물화(* 발타사르 데어 반 아스트의 작품)에 중국 도자기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네덜란드가 중국까지 교역을 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이러한 상업활동을 통해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미국이 패권 국가가 되었듯이 17세기 유럽의 패권 국가는  네덜란드였다. 그 당시 네덜란드의 자신감이 이번 전시 작품들 속에 숨어있다.


3. 바로크적 자신감

이러한 자신감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긍지를 자신만만하게 표현하게 하였으며(* 여러 장르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여러 바로크 철학자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스피노자)의 세계와 동일한 것이다.

특히 삶의 부질없음(vanitas)을 표상하는 여러 정물화(* 정물은 서양 미술에서 바니타스(허무)를 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섬세한 디테일과 화려한 색채 속에서 삶 깊숙이 들어와 삶의 일부로 자리잡은 듯이 보였다. 이는 허무까지 삶의 운동 속으로 끌어들이는 바로크적 자신감의 결과물이다. 인생의 허무(Vanitas)를 통해 보다 열정적인 현세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다.


4. 전시

개인적으로 무척 뜻깊은 전시였다. 감동적이었고 시민적 바로크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전시였다. 특히 바니타스 정물화는 바로크 양식의 한 특징을 매우 잘 드러내고 있었다. 흔들리는 삶을, 그 속에 흐르는 허무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듯한 표현은 바로크적 신념이 어떤 것인가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실내, 예의가 없고 그림을 보려는 의지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관람객은 내가 본 여러 전시들과 마찬가지로 짜증나고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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