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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롱기누스의 숭고미 이론

롱기누스(지음), 김명복(옮김),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2년 




수사학 책이다. '숭고sublime'에 현혹된 셈이다. 역자인 김명복 교수에 의하면, 숭고의 개념은 수사학에서 시작되어 문화와 예술 전반에, 그리고 자연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숭고'(예술과 미학에서의)와 롱기누스가 이야기하는 바 '숭고'(수사학에서의)는 다른 것이다.


이 책은 웅변술, 저술에서의 표현과 수사법에서의 숭고에 대해서 논의한다.  


진정한 숭고미란 내적인 힘이 작용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위로 들어올려져, 우리가 의기 양양한 고양과 자랑스런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고, 우리가 들었던 것들을 마치 우리 자신이 그들을 만들어냈던 것과 같이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 29쪽 



그래서 철학적인 견지에서의 숭고라든가 조형예술에서의 숭고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책을 얇고, 읽는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지금으로부터 거의 이천년 전에도 그랬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읽는다. 말하는 방식이나 문장의 서술에 있어서의 '숭고'가 이 책의 주된 테마이며, 이 테마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었는데, 그 흔적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따라서 숭고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역자의 해설이나 뒤편에 실린 워즈워드의 글도 좋다. 롱기누스도 간간히 조형예술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나, 극히 일부분이다. 가령 아래의 부분 정도.



똑같은 관계가, 또한 회화에서도 일어난다. 비록 색으로 재현되는 빛과 어둠이 똑같은 표면 위에서 나란히 존재하지만, 시야를 붙잡아, 눈에 띠게 보일 뿐 아니라, 더욱 더 가까이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바로 빛이다. 그런 현상은 문학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감정들과 숭고미의 개념들에 호소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유사성과 탁월한 수사들이다. 이들 탁월한 수사적 비유들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주의를 끌여들여, 우리의 가슴에 호소하는 까닭에, 수사의 기교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다. - 69쪽 



2002년에 출간된 책인데, 아직도 구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거의 읽히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까. 실은 천병희 선생이 옮긴 롱기누스의 <숭고에 대하여>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도 수록되어 있으니, 어떤 이들은 천병희 선생의 번역으로도 읽었을 것이다. 


옛날 책 읽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권할 만하다. 그리고 그리스/로마 시대의 웅변이나 문학적 표현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롱기누스의 숭고미 이론 - 8점
디오니시우스 롱기누스 지음, 김명복 옮김/연세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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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의 소생'(The Raising of Lazarus)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Selbastiano del Piombo, 1485 - 1547)

Oil on canvas, 1517-1519

381cm * 299cm, National Gallery, London




시기적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매너리즘에 속하는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는 그의 고향 베네치아의 색채와 그가 화가로의 삶을 살았던 로마의 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나사로의 소생'은 저명한 미술사가인 케네스 클라크로 하여금 '로마적인 형태와 베니치아적인 색채의 조합을 보면, 피옴보가 17세기 고전적 풍경의 진정한 창시자였음을 알 수 있다'는 언급을 하게 하였다. 특히 인물들 뒤로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니콜라스 푸생의 바로크적 풍경을 보는 듯하다. 


후일 친구가 되는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이 이 작품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아래가 바로 그 드로잉이다. 부활한 나자로와 그를 부축하는 이들을 그린 작품이다. 



Lazarus and attendant

Michelangelo, 1516 



나자로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치유들과 달리 이미 죽어 육체가 부패하기 시작하는, 죽은 후 나흘이 되던 때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작품화되었고 쉽게 작품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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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고전주의



플라톤이 인간 존재를 완전한 세계(존재의 세계)에서 불완전한 세계(생성의 세계)로 추방된 존재라고 말했을 때, 그 속에는 존재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와 생성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하는 플라톤 철학의 의도가 담겨져 있으며 동시에 불완전한 세계에서 완전한 세계로 향해 가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고전주의의 절정기가 막 끝나가는 무렵을 살았던 플라톤 철학은 종종 그리스 고전주의의 철학적 반영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것은 그가 이데아를 상정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그보다 ‘완전으로부터 불완전이 나왔으며 이 불완전은 영원히 완전을 향하여 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플라톤 철학이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에서 기인된 것이다. 


플라톤 철학이 그러했듯이 그리스 고전주의 양식은 완전함을 향해간 양식이었다. 즉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여, 완전하지 못한 어떤 대상을 영원히 정지해있으며 완전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양식인 셈이다. 그리고 뮈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은 이러한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뮈론, ‘원반 던지는 사람’ 

 



후기 고전주의 



기원전 431년 그리스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죽은 아테네 시민을 기리며 아크로폴리스에 모인 아테네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도시가 평범하기만 한 도시는 결코 아닙니다. 어떠한 다른 도시도 우리만큼 많은 정신적 즐거움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일년 내내 경기와 제사가 있고 우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또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공공 건물이 나날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 … 우리는 지나침이 없이 미를 사랑하고 비굴함이 없이 지혜를 사랑합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부는 단지 허영을 위한 재료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성취를 위한 한 기회입니다. 우리는 가난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을 진정한 불명예로 여길 따름입니다. … … 단적으로 말씀드려서 우리들의 도시는 하나의 전체로서 그리스에 대한 한 본보기입니다. 모든 구성원의 평등, 정신적 독립성, 다방면의 업적, 육체와 두뇌의 완전한 자립 등올 인해서 우리들의 도시가 산 교육의 장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리스 고전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아테네와 그 주변에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현대와 비교할 것은 못 되지만, 기원후 1600년 경의 아테네가 폐허더미 속에 오두막 몇 채들이 있었던 것에 비한다면, 이 당시 그리스 아테네가 누렸던 물질적 풍요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물질적 풍요가 예술적 만족이나 성취를 가지고 오는가 이다. 예술사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게 되는 이 문제에 대한 정해진 답은 없다. 즉 물질적 풍요와 예술적 성취와의 정해진 상관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각 시대마다 어떤 측면에서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지만 때로 전적으로 다른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당시, 기원전 5세기와 4세기 경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는 물질적 풍요가 문화예술적 성취와 학문의 융성을 동시에 수반하였음을 분명한 사실이었다. 저 페리클레스의 연설 속에서 우리는 당시 그리스의 언어가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었음을, 그리고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에 대해서까지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오랜 전쟁 속에서 한때 지중해를 호령했던 자신감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며 리십포스와 프락시텔레스의 양식도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대체로 딱딱한 느낌을 주던 폴리크레이토스의 조각상에서 리십포스와 프락시스텔레스의 부드럽고 상대적으로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조각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즉 개인과 사회(국가)의 균형과 조화가 무너지면서 개인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예술 작품들은 어떤 이상이나 당위로서의 세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느낌이나 취향을 반영하기 시작하며, 극단적으로는 사사로운 장식으로까지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 고전주의가 개인주의의 발달에 일정 부분 기반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개인주의는 그 고전주의가 뒤로 후퇴하게 하는 기반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 철학과 서사양식에서는 냉소주의가 물들기 시작한다)




리시포스의 조각



프락시텔레스의 조각, ‘헤르메스’




헬레니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패권을 쥐게 되지만, 스파르타에게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끌고 갈 힘이 없었다. 이 때부터 지중해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지중해의 패권을 쟁탈하기 위한 몇 세기의 혼란기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헬레니즘이라는, 후대 학자들에 의해 쇠퇴기의 양식이며 바람직하지 못하고 천박한 양식으로 평가 받았던 예술 양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어떤 남자의 머리’, 델로스에서 출토, 기원전 80년경, 청동, 기원전 80년경, 높이 32.4 cm, 국립 고고학 박물관, 아테네



‘죽어가는 병사’



이제 세계는 분열되기 시작한다. 하나의, 정치경제적이며 학문적, 정신적 중심은 사라졌으며 사람들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새로운 것들 뿐이다. 이미 위대한 과거는 사라졌고 눈 앞에 보이는 건 혼란스러운 모습들 뿐이다. 걸핏하면 전쟁이 나고 어제까지 만났던 이가 전투에서 죽어버리는 시절이 온 것이다.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지탱하기도 힘든 시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다양한 민족들이 뒤섞이게 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시작한다. 


헬레니즘 양식은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이면서 동시에 극단화된 자연주의적 경향을 띄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나의 체계가 무너졌지만, 그 체계의 유산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체계의 유산 속에서 이질적인 것들은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적 세계 속에서 용납되지 못했던 그 어떤 것들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의 그리스 문화 속으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경우에는, 어떤 원리에 의한, 그리고 그것으로 수렴 가능한 자연주의적 양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눈 보이는 대로 나타낼 수 밖에 없는 자연주의적 양식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헬레니즘 조각들은 표현적이고 동적이며 애절하고 자극적이며 흥분을 자아내게 된다. 




라오콘 군상 




‘사모트라케의 니케’, 기원전 200년경, 대리석, 높이 244 cm, 루브르 박물관




하지만 사람들은 위대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우리가 예술 작품에 ‘실험적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예술가가 새로운 현상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양식적인 변화나 전적으로 다른 표현을 하는 경우이다. 그런 점에서 헬레니즘 예술가들은 실험적이었으며, 그 시도는 라오콘 군상이나 니케 상에는 성공적이었다. 


변해가는 것, 움직이는 것을 어떤 고전적 원리를 통해, 바람직한 어떤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처절하지만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감의 소산이 아니라 자신감을 잃어가는 와중에 그 자신감을 되찾기 위한, 하지만 끝내 그것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의 산물이었다. (* 바로크 양식과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를 향해가고 있었던 양식이었다.)



로마의 예술


기원전 700년경의 에트루리아 문명으로부터 로마는 시작된다. 기원전 50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석상에서는 당시 그리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표현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원전 1세기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통일하였을 때에는 이러한 에트루리아 문명보다는 헬레니즘 문명에 속해있었다. 


헬레니즘 양식이 소아시아와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하였다면 이제 로마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여 북유럽, 북아프리카까지 포함하는 제국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로마의 예술 양식에는 ‘~주의’ 같은 단어가 붙지 못하게 된다. 즉 로마는 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가 아니라 여러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민족들과 지역들로 이루어진 제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단일한 양식이 지배했다고 보기에는 어렵게 되었으며 또한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몇몇 특징적인 양식들이 나타나지만 그리스 고전주의나 헬레니즘 시대와 비교해서 그 예술성이나 감동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들은 그리스나 헬레니즘 시대에 가지고 있었던 예술만의 자율성을 상실하였고 감동보다는 즐거움이나 유희의 대상이거나 또는 국가나 가문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공공 미술적 양식으로 전락해버렸다. 초상조각의 무덤덤한 표정은 지도자의 권위, 가부장의 권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의 건축은 로마 사회가 외양적으로는 얼마나 굳건하고 체계적이었던가를 보여주는 양식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아치들로 이루어진 긴 복도와 계단, 몇 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에서 그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큰 건물이었으며 건축공학적으로도 놀라운 걸작이었다.



콜로세움, 72-82년, 로마



판테온



하지만 콜로세움의 건축공학적 기술은 판테온에서는 또다른 기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판테온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투박하고 무거워 보이는 외양과 달리 내부의 모습은 화려하고 신비적이며 종교적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외부와 내부의 분리는, 어쩌면 로마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기 전까지 로마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범람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들은 대체로 내세적이었고 신비주의적 경향을 띄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플로티누스의 철학 사상은 이러한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로마인들은 국가의 의무에 충실히 복무했고 가문의 전통에 누가 되지 않으려 행동했으며 물질적인 풍요와 로마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풍요와 자부심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이나 전통을 기반으로 할 때에만 빛날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로마는 그렇지 못했다. 그만큼 현실적이었던 것일까. 즉 현실적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개인의 희생을 요구했던 것은 아닐까.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드>는 이러한 로마 건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개인의 열정과 노력, 희생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 개인을 바라보는 연민까지 담겨있다. 한 쪽으로는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나아가는 개인을 닮고자 하는 시선이 있으며 한 쪽으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고통과 희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공적 세계 속에서는 전자를 취했지만 사적 세계 속에서는 후자를 택했다. 이러한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분리는 로마의 사회가 초기 신분 기반의 사회였다가 후기에는 계약 기반 사회로 넘어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과도한 개인주의는 개인중심주의로 나아가며 그리고 아예 공적 세계는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로마의 회화 양식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기원전 20년경, 대리석, 높이 203 cm, 바티칸 박물관(로마)



아라비아인 필리푸스 황제, 244-249년, 대리석, 실물크기, 바티칸 박물관. 




아마 폼페이의 유적이 발굴되지 않았다면 로마 시대의 회화 양식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면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회화 양식은 이전 시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식으로, 또한 로마의 건축이나 초상조각과도 극히 다른 양식으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치밀하게 사실적인 표현으로 만들어진, 그래서 딱딱하고 무덤덤해 보이는 조각상과 달리 회화 양식은 몽환적이며 화사하게 꾸며져 있다. 


이러한 조각 양식과 회화 양식의 단절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바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분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각 양식은 공공적인 성격이 강했다면 회화 양식은 집 안에, 개인의 즐거움과 향락을 위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단절에서 우리는 국가의 이상이나 가치, 혹은 가문의 전통(* 로마 시대에는 전적으로 가문적이며 가부장적인 사회였다)과 개인의 이상과 가치가 분리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분리와 단절은 사회 속에서의 개인을 고립시켰고 공적 영역의 가치와 의무는 사적 영역 속의 개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 무엇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사회는 신분적이고 황제를 중심으로 한 일원화되고 체계적인 것에서 계약적이며 황제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무관한 다른 체계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즉 개인은 공적 사회와 격리되고 공허해지면서 일회적인 재미나 저 세상에나 있을 법한 환상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되는 회화 양식은 이러한 로마 시민들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폼페이 유적의 벽화 1. 




폼페이 유적의 벽화 2. 




폼페이 유적의 벽화 3, 플로라.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북방의 이민족들은 끊임없이 침입해 들어왔으며 로마 사회 내부에서는 동방의 여러 신비스러운 종교들이 급속도로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이 때 기독교는 이러한 종교들 중에서, 로마 황제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위험한 종교였다. 그리고 그만큼 강력하고 혁명적인 종교였다. 공적 영역에서 이탈해가는 로마 시민들은 한 쪽으로는 환상을 쫓으면서 공허를 달래고 있었으며 한 쪽으로는 종교에 대한 심취로 정신이 나가 있었던 셈이다. 





- 위 글은 2004년 초에 쓴 노트입니다. 이 때 서양미술사를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였고, 그 해 말에 작은 서양미술사 책을 공저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내고 난 다음, 미술 관련 책은 거의 팔리지 않고(인문학책보다도 더), 진지한 책은 아예 전공자들조차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ㅡ_ㅡ;; 미술사는 참 흥미롭고도 진지하며 그 어떤 인문학 분야보다도 통찰력을 전해줄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깊이있는 공부를 하기에는 여러모로 힘에 부치긴 하네요.책을내고 난 뒤 미술사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여 노트를 계속 업데이트했는데, 언제 다시 책으로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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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이야기 10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기원전 작은 도시 국가였던 로마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는 제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반(infrastructure)시설이다. 이 책은 로마 제국의 ‘인프라’에 대해서만 기술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표현대로 ‘쓰는 일이 어려웠던 만큼 읽는 것도 당연히 어려울’ 책이다. 이는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물들 중에서 이 책이 가지는 차이점이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책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책은 ‘하드 인프라’와 ‘소프트 인프라’로 나누어져 있으며 ‘하드 인프라’에서는 가도, 다리, 가도를 이용한 사람들, 수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소프트 인프라’에서는 의료, 교육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고대 로마의 인구는 100만 명까지 불어났다가 서기 3-4세기에는 몇 만명 수준으로 떨어진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인구 100만 명의 규모가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고대의 도시에서 인구 100만 명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00만 명의 사람들이 먹는 물의 양이 생각해보거나 이 사람들이 밖에 나와 활동하는 낮 시간을 떠올리거나 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양을 생각해본다면 고대 로마의 기반 시설들에 대해서 호기심을 안 느낄 수가 없다.

고대 로마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기반 시설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기획하고 실현해냈다. 그리고 이를 먼저 로마에 적용하였고 이 적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각 지방의 도시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고대 유럽과 지중해의 길들은 로마에서 시작해서 대륙의 구석구석으로 이어졌다. 19세기 철도가 나오기 전까지 로마의 길만큼 빠른 길은 없었다. 중세의 건물들에 사용된 돌들은 로마 시대의 건축물에서 빼온 돌들이었고 후기 중세의 수도사들이나 방랑 시인들이 걸어 다닌 길도 바로 이 로마 시대의 길들이었다. 그러나 길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고대 도시에서는 늘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에는 황제가 근위병의 호위 없이 여행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치안이 확보되었던 때도 있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고대 로마의 인프라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구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이 고대 로마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 읽은 사람들은 다 읽은 걸까. '로마인 이야기'를 읽는다는 사람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책 읽기도 유행이긴 하지만, 반대로 유행과 어긋하는 책 읽기도 필요하다.


로마인 이야기 10 - 10점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한길사



[로마에 대해 보다 깊게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한 추천 책]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이야기 14권  - 그리스도의 승리, 한길사 http://intempus.tistory.com/246
제롬 카르코피노,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우물이 있는 집 http://intempus.tistory.com/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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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예술 양식을 이야기할 때, '환영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위의 그림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벽화인데, 꼭 창문인 것처럼 그렸다. 그래서 창 너머로 다른 건물이 있는 듯하다. 그 옆의 그림은 꼭 액자 속에 담겨져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 너머의 어떤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

오래 전에 업로드한 이미지다.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벽화 사진으로, 시중에 나온 서양 미술사 책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로마 시대의 회화 양식에 대해서 알게 해준다. 실제 로마 시대 내내 회화는 실내 벽 장식으로 주로 그려졌다. 북아프리카에서는 나무판에 그려진 초상화들도 있지만, 로마 전역에 유행했기 보다는 지역적인 경향으로만 보아야 할 것이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회화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창문 너머에 어떤 세계가 있는 것처럼 그려졌다는 것이다. 또한 원근법과 단축법이 제대로 구현되어 있으며(그래서 원근법이 르네상스 시대의 발명이라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도리어 뛰어난 화가였던 로마인들의 회화 작품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도리어 낯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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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지네요.이거 보니까,이스탄불 여행할 때 곳곳에 눈에 띄었던 로마양식 건축물과 벽화들이 기억나네요.^^

    • 이스탄불에서 만날 수 있는 로마양식은 동로마제국, 미술사에서는 비잔틴 양식이라고 합니다. 로마 양식 + 동방 양식 + 기독교 등이 혼합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


Inside Nostalghia, by DCG and Jonathan LeVine Gallery
October 31st  - December 30th 2008
http://www.dorothycircusgallery.com/



이젠 정말 예술가 천지인 것같다. 이 말은 그만큼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수한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 독창적인 세계를 서로 닮아있으며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종종 한국 작가들에게 느끼는 실망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보여주어야 해도 모자랄 판국에,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품을 갤러리에서 보게 되었을 경우의 당황스러움이란 때론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론 슬프기도 하다.

직업적 일러스트 작가들에게 타라 맥퍼슨(Tara McPherson)의 작품들은 순수 예술(Fine Art)로 보이기 보다는 아마 자신들이 그리는 일러스트와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미술계는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이는 미술계 종사자들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콜렉터의 책임이기도 하다.

'Hey We All Die Sometimes' by Tara McPherson


Dazed Digital의 기사에 의하면, 대학 졸업 후 그녀는 프리랜서 일을 원했고 그 시작이 락 포스터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러스트를 그린 것과 그녀의 작품 스타일과는 별 관련없어 보인다.

그녀가 고백하듯이, 우리들 세대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서 성장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보았고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를 존경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녀의 작품들도 이러한 영향 속에서 성장되었을 것이다. (이는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얼마 전 신사동 SP갤러리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하고 있는 여성 작가 마유카 야마모토도 그러할 것이다)


Dazed Digital: 달콤함과 우울함, 새로운 것과 낡은 것, 동화와 악몽 사이, 그것은 당신이 대비(contrast)을 좋아한다는 보여줍니다. 당신은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아이와 괴물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Mellow and gloomy, futuristic and vintage, between fairytale and nightmare, it’s clear you love contrasts. Do you think that inside everyone is hidden a child, as well as a monster?)

Tara McPherson: 물론이죠! 우리는 다양한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단지 사람들이 가진 개성(personality)의 측면들을 힐끗 보면서, 한 사람을 재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모두 본래적으로 모순된 영혼이라고 여겨요. 복잡하지만, 절대로 둔하지 않은 측면이라고 할까요.
(Of course! We are multi dimensional people, there can never be one way to represent a person, only glimpses into facets of their personality. Which I think we are all inherently contradictory souls. Complicated but never a dull moment!)




'The Guilt Will Eat You Alive…If You Let It' by Tara McPherson


로마의 Dorothy Circus Gallery와 뉴욕의 Jonathan LeVine Gallery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 전시는 현재 로마에서 올해 말까지 전시된다. 타라 맥퍼슨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그 외 많은 작가들이 참여한, '인상적이며 흥미를 자아내는 이 전시는 누군가의 부재와 연관된 기억들, 관계들, 감정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탐구함으로서 우리들의 무의식을 연관시킨다.' (an impressing and intriguing  exhibition which involves our unconscious by exploring the diverse appearances of memories, relationships, and feelings related to one’s absence.)


Ciou,
Back from the Grave
round size, diameter 30 cm
mixed media, acrylic, ink and collage
(한국의 몇몇 작가들도 이런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니 현대 사회의 동시대성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Elena Rapa
Pepa, dalla serie “Ipotalami"
100x150 cm
Mixed technique on burlap


이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아래 웹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다. 혹시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면 이 전시 꽤 흥미로울 듯 싶다. 그리고 가격이 적당하다면, 하나 정도 구입해 두어도 나쁘지 않을 듯.




* 본 블로그는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닙니다(This Blog is non-commercial). 하지만 위 작품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없으며, 작가와 갤러리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작가와 전시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저작권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바로 삭제할 것입니다.
* 위 글에서 사용된 이미지와 인용문은 아래 웹페이지에서 가지고 온 것임을 알립니다.
http://www.dazeddigital.com/ArtsAndCulture/article/1467/1/Inside_Nostalghia_with_Tara_McPherson
http://www.dorothycircusgallery.com/home.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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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sun 2008.12.16 07:15 신고

    (작가입장에서)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작업이나 했던것과 비슷한 그림을 만나게 되었을 경우 얼마나 당황스러운지도 생각해주세요 ^^;....... 끊임없는 새로움'이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황스럽긴 하지만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ㅡㅡ;;; 그것도 그거지만, 우리가 너무 트렌드에 휘둘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트렌드에 따라 작품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실은 트렌드를 창조해야 하는데. 뭐, 저도 뭐, 댓글을 달고 있긴 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 10점
제롬 카르코피노 지음, 류재화 옮김/우물이있는집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
제롬 카르코피노 지음, 류재화 옮김, 우물이 있는 집, 2003년(1939년)


현대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는 고대의 삶이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 무지하기 뿐만 아니라, 심각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그래서 전등이 사라진 밤 도시의 풍경을 떠올리라고 하든지, 큰 교회나 절, 혹은 궁궐이 고대인들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상상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나는 고대 로마의 규모에 대해서 설명할 때면, 인구 백 만 명의 도시에서 하루에 나오는 쓰레기의 규모나 소비하는 물, 또는 음식의 양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정교하게 이루어진 일련의 체계로 일사 분란하게 가동되어야만 인구 백 만의 도시가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확실히
이 점에서 고대 로마는 종종 나의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철저한 가부장적 사회와 군대적 문화가 기반이 되어 형성된 로마 제국이 몰락한 이후 서유럽에서 중앙 집권 정치체제가 등장하기까지는 무려 천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1939년에 출판된, 제롬 카르코피노의 이 책은 고대 로마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책들 중의 한 권이다. 우리는 편의상 고대 로마의 몰락을 북방 민족의 남하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북방 민족이라는 표현도 잘못된 표현이다. 이들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이민족이거나 이미 로마인들의 풍속에 익숙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 국가의 몰락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이 국가를 살아가고 있었던 사람들의 정신적, 문화적 배경과 일상 생활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 때 서유럽 대부분과 북 아프리카 일부를 차지했던 세계 제국이 북방 민족이 남하했다고 몰락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왜 로마인들은 이러한 혼란을 막을 힘을 상실했는가, 혹은 막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하고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전성기 로마의 일상 생활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서이다. 하지만 로마 제국이나 로마인들의 삶에 대해 궁금한 일반 독자에게도 이 책은 매우 즐겁고 유용한 독서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뛰어난 역사가들이 보여주는 통찰이 어떤 것인지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로마 시대의 문헌들과 현재 남아있는 역사적 유물들을 조합하여 제롬 카르코피노는 우리 눈 앞에 생생하게 고대 로마의 하루를 옮겨놓는다. 늘어나는 인구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 인술라(공동주택)이 어떤 문제를 가졌으며, 초기에는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했던 여성들이 어떻게 힘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결혼 제도, 육아,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분석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들은 전성기 로마의 일상을 통해 몰락해가는 제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끄집어 내는데 있다.

아마 현대의 학자라면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을 보면서 현대의 어두운 면을 발견할 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현대와 가장 닮은 시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원후 로마 제국이 아니었을까. 심각할 정도로 교육 시스템이 붕괴되었으며 가족은 해체되고 있었고 강력하던 신분제는 흐물흐물해졌으며 로마인들은 도박,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검투사의 경기나 음란하고 자극적인 연극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모습은 현대의 여러 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책은 두껍고 무거우며, 보는 것만으로도 전문 연구서라는 인상을 주지만, 몇 페이지 읽지 않고도 제롬 카르코피노의 번뜩이는 표현과 통찰력, 그리고 고대 로마의 흥미로운 일상 생활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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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지음), 안규철(옮김), 한길사


하인리히 고흐의 전기는 미켈란젤로의 일부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이 책 서두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라는 챕터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전기의 일부는 이 논란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책 속에서 미켈란젤로는 예술가이면서도 피렌체 장사꾼처럼, 자기 스스로는 검소하게 살았지만 은행과 부동산 투자로 대단한 부를 가진 이로,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했던 이로 묘사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예술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매우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그려질 뿐이다.

예술(조각)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뜨거운 열정과 끊임없는 번뇌와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다른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자의 독특한 관점이 반영되었다거나 미켈란젤로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얻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이 책의 장점으로는 예술가 미켈란젤로보다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고수하면서 절도 있고 절제된 삶, 그러면서도 자신과 가족의 경제적인 기반까지도 걱정했던 미켈란젤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을 옮겨놓는다.
 

“나의 예술이 나의 여자다.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것이 나를 평생 동안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자식들은 내가 남기는 작품들이다. 비록 그들이 별로 신통치 않을지라도, 한동안 그것들은 살아갈 것이다. 로렌초 디 바르톨루치오 기베르티(Lorenzo Ghiberti)가 산조바니의 문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가련했을까! 자손들이 그가 물려준 모든 것을 팔아치우거나 쇠락하도록 방치해두었지만 그 문들만은 아직 거기 남아있다.”


미켈란젤로가 독신으로 살았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독신으로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종종 동성애자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가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는 언제나 예술 창작에만 몰두해 있었고 그것으로 고통스러워했다. 그에게 이성과의 사랑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 연애시를 적기도 하였으며, 후일 한 여성과의 우정을 쌓기도 하였지만, 그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예술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결혼한 여성들보다 훨씬 더 신선하게 자신을 유지한다는 것을 자네는 모르는가? 더구나 음란한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해본 적이 없는 동정녀라면 말할 것도 없지. 음란한 생각은 그 육체를 왜곡시킬 수 있었을 것이네. 그렇지, 나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자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네. 만약 이러한 신선함과 젊음이, 이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신체에서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신의 힘에 의해서 유지된다면, 그것은 성모의 동정과 영원한 순결을 세상에 증언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일세.
반면에 그녀의 아들, 예수에게는 이런 것이 불필요했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드러나야 할 것은 신의 아들이 실제로도 그러했듯이 정말로 인간의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네. 그가 보통 사람이 굴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죄업에 대해서조차도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연약했으므로, 신성(神性)은 예수 속의 인간성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순환과 질서를 인간적인 것에 맡겨야 했네. 그 때문에 예수가 그가 가졌던 바로 그 나이를 그대로 보여주었던 것이네. 그러므로 나로서는 성스런 동정녀이자 신의 어머니를 그 아들과 비교할 때 나이보다 훨씬 젊게 만들고, 아들이 자기 나이에 맞도록 만든 것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네.”


젊은 미켈란젤로가 ‘피에타’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너무 젊은 동정녀 마리아와 자신의 어머니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예수에 대해서 궁금해 했다. 그리고 위 인용문은 이 의문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설명이다.



나는 죄를 살고 나는 죽음을 살아,
더 이상 삶으로 살지 않고, 오직 해악으로만 사노라.
하늘은 선(善)을, 그 은총을 내어놓는데,
나는 악을 취하네. 탐욕은 나의 빵이 되었고,
자유는 나의 하녀가, 덧없음은 나의 신이 되었네.
저주받은 나! 격정의 오솔길에서
이제 나는 어떤 인생 속으로 흘러들었는가!


우울한 미켈란젤로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대부분의 책에서 언급되는 주제이다. 음침하고 음울하며 사람들과의 교제보다는 혼자 있기를 즐기며, 화를 잘 내고 자기중심적인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의 전기에서는 이러한 미켈란젤로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코흐의 생각이다. 하지만 예술에 몰입했을 때의 미켈란젤로는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위의 시구처럼. 그러나 그러한 성격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치명적인 지장을 준 것은 아니었다.

 

미켈란젤로 - 10점
하인리히 코흐 지음, 안규철 옮김/한길사
- 절판이라니.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성 미켈란젤로 - 10점
제임스 H. 벡 지음, 박혜수 옮김/이룸
-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힌다. 또한 예술가로서의 미켈란젤로와 일상인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균형있게 담아내고 있다.


르네상스 - 10점
폴 존슨 지음, 한은경 옮김/을유문화사
- 르네상스 예술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 이 책은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당시 미켈란젤로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를 알기에도 충분하다(많은 지면이 할애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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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i 2007.12.12 21:17 신고

    말씀하신 책들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로스 킹이 지은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은 몇년 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로마에 여행가기전에 열심히 읽고 갔는데 정작 시스티나는 못봤다는..ㅠㅠ 국내에는 다다북스에서 올해 낸 모양이던데 번역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못 보셨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미켈란젤로가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는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미켈란젤로라는 인간의 수완과 성격이 잘 드러나는 책입니다. 후진양성 내지 가르치는 걸 그렇게 싫어했다는군요..자기일만 좋아하고. 여자도 싫고 제자도 싫고 오직 일만 좋아하는 일벌레였나봐요. 지하련님도...?^^

    참, 잘 다녀오셨냐는 인사를 깜빡할뻔 했네요^^

    •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재미있을 것같네요. 로스 킹이 쓴 <브루넬네스키의 돔>을 읽었습니다. 르네상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몇 권의 책들 중 한 권이죠. 약간의(?) 에고이스트적 경향이 있죠. 좀 심하다고 해야 하나. 흐.

      이스탄불에 갔다온 건 무척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내년에는 독일 칼스루헤에 갈 예정입니다. art Karlsruhe에 참가하러. ^^

    • noi 2007.12.15 21:58 신고

      예 저도 <브루넬레스키의 돔> 읽었어요. 저자가 읽기 어렵지 않게 잘 쓰는 사람인거 같아요. 책을 읽고 나니깐 브루넬레스키가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그 돔이 완전 달라보이더라구요.. 그게 책을 읽는 즐거움일까요^^

      칼스루헤라.. 일로 다니시는 건줄은 알지만 부럽네요^^



시오노 나나미(지음), 김석희(옮김), <<로마인이야기 14 - 그리스도의 승리>>, 한길사, 2006





자신의 시대를 알고 있다는 것, 자신의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견하고 있다는 것, 아니 관대하고 넓게 세상을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를 견주어 문제를 진단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후대의 사람들은 주저 없이 ‘배교자’, ‘시대착오’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                   *

이 점에서는 세속인도 성직자도 마찬가지다. 이 로마에서 주교를 맡고 있는 사람의 호사스러운 생활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한번은 로마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알려진 사람이 로마 주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로마 주교로 삼아주면, 내일이라도 당장 기독교로 개종하겠습니다.”
- 330쪽

율리아누스 황제가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었고 그가 시행한 일련의 개혁조치들은 기독교의 반발을 사게 된다. 이 전투적인 종교의 신봉자들에게 율리아누스 황제는 ‘배신자’였던 셈이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불합리나 전투성, 배타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대단한 흥행 속에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진진한 로마 세계로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전문 역사학자가 아닌 소설가의 입장에 가깝기 때문에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녀의 이 시리즈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 재미있는 역사책도 드물다.

로마 후기는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기독교의 확장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공표했을 때 확실히 엎질러진 물이 되었고 율리아누스 황제가 그 엎질러진 물을 없애고 제국을 바로 잡기에는 너무 일찍 죽었다.

종교가 ‘관용’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그 종교에 있어서도 불행한 일이고 그 종교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었다. 성직자들은 귀족처럼 행세하기 시작했고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황제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해버리자, 모든 것은 분명하게 명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는 사라지고 르네상스 인들이 그렇게 경멸했던 중세의 천 년 암흑은 이렇게 시작된다. 왜 율리아누스 황제는 이를 막으려고 했던 것일까. 그는 불행한 유년을 보내고 혼자 적지에서 죽는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고 좋아했던 이 황제의 곁에 친구는 없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를 자처했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나에게 맡겨진 불행한 사람들을 버릴 수 있을까? 그들에게 행복한 일상을 보장하는 것이 이제 나의 책무일세. 내가 여기 있는 것은 그 일을 하기 위해서야.’

페허로 변해버린 로마의 변방에서 학창 시절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리고 황제로 즉위한 후 동방의 도시에서 그는,

‘나는 갈릴리 사람들(기독교도)이 믿는 것이 이 지상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황제로서 실증해보고 싶네. 그들이 말하는 칭찬할 만한 가르침, 그들은 그것을 가난한 사람한테만 허용하고 게다가 천국에서만 달성할 수 있다고 단언하지만, 그 미덕과 행복은 현세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내가 제위에 있는 동안 정착시키고자 하는 공정한 통치를 통해, 그리고 종교와 관계없는 복지 사업을 통해 달성하고 싶다고 굳게 결심하고 있네.’

라고 적는다. 하지만 율리아누스 황제의 제위 기간은 서기 361년부터 363년, 고작 3년이었다. 너무 젊었으며 또한 불행했다.

기독교의 승리가 확실해졌을 때, 수도장관이었으며 암브로시우스 주교와 논쟁을 벌였던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버린다. 하긴 더 이상 막기 힘들 정도로 거대해졌으니. 그리고 천 년 후 심마쿠스가 살았던 그 로마에서 신의 시대인 중세를 ‘암흑’이라고 부르며 경멸하게 되는 이유는 무얼까. 똑같은 종교를 믿는 후대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로마제국에는 율리아누스 황제와 심마쿠스만 있었던 걸까. 종종 ‘시대 착오’라는 경멸을 받는 이들이 있다. 하긴 시대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어디로 가는 지로 모른 채 앞만 향해 내달리고 있을 때, 그 앞을 가로 막고는 ‘이 길이 아니야’라고 한다면, 그건 시대에 분명 역행하는 일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다.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그런데 왜 나는 ‘시대착오’라는 단어에 더 끌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율리아누스황제는 철학 공부를 하고 사색에 잠겨있었으면 좋았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전투라고는 해보지 않은 그가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누가 그 사실을 믿었을까. 그리고 그가 일련의 개혁 조치를 시행했을 때, 그것이 왜 시행되었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고려도 없이 오직 기독교를 박해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배교자 율리아누스’라고 부른 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로마인 이야기 14 - 10점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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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us Arabus c244-249 AD (Vatican Museums)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저 두 눈에 가득담긴 두려움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거친 턱에서 보여지는 그 동안의 삶의 고통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 실제 작품은 이 그림자진 이미지보다 약간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며 약간은 슬퍼보인다. 이 때 로마는 변방에 온 군인 황제들이 몇 년간 통치하다가 암살당하던 시기였다. 천천히 이민족의 침입이 늘어나고 있었고.

종종 역사학자들은 현대와 로마를 비교하곤 한다. 국가의 행정 시스템이 우수하였으며 사회 기반 시설은 그 당시에서 세계 최고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미 시민의 삶 속에서는 허무주의가 깊숙하게 물들고 있었다. 폼페이의 어느 집 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매너리즘 시기의 화가들에게서 보여지는 몽환적인 느낌의 그림들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 밖에 있는 어떤 세계. 아름다우나 삶의 허무까지는 극복해주지 못해, 현실 속의 인간은 소외된 듯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octavius_quarto, 폼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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