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15

그림을 본다는 것, 케네스 클라크

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

농염한 몸짓의 소년 - 티에폴로(Tiepolo)

미의 기준은 바뀌고 미의 대상도 바뀐다. 미소년에 대한 염모는, 어쩌면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18세기 후반, 시대는 로코코로 향하고 티에폴로는 바로크적 몸짓 속에 로코코적 염원을 담아낸다. 동성애적 갈망이 화폭에 담긴다.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즉 선미의식은 이런 것이 아닐까. 선한 것이 아름다운 것. 그래서 고대에는 여성의 아름다움보다 남성의 아름다움이 더 추앙받았으며, 이는 근대에까지 이어진다. (요즘은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는데, 예전 싸이월드에 올린 글들을 이렇게 옮긴다. 업무용으로 네이트온을 사용하다 보니, 쪽지로 예전에 올린 글들을 알려주고, 이를 다시 블로그에 올린다.) 2003년 12월 3일에 쓰다. The Death of Hyacinth1752-53Oil..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2011. 5. 3 ~ 8. 28. 국립중앙박물관 (Princely Treasures - European Masterpieces 1600 - 1800 from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이 글을 적고 있는 오늘이 전시 마지막 날이네요. 전시를 보러 가지 못했다고 해서 서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101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지만, 궁정 문화를 알기에 모자라기도 하고 더 많은 유물을 전시한다고 해도 궁정 문화를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이 전시를 간 이유는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를 알고 싶어서 라기 보다는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의 명성 때문입니다. 빅토리아앤앨버트 박물관(V&A Museum)은 장식 미술, 공예, 도자기,..

바로크의 꿈 - 1600 ~ 1750년 사이의 건축

바로크의 꿈 - 1600 ~ 1750년 사이의 건축 프레데릭 다사스(지음), 시공디스커버리총서 “형태(형식)는 그것이 재료 속에 살아 숨쉬지 않는다면, 정신의 관점(추상)에 불과하거나 이해하기 쉽게 기하학으로 표현된 영역에 대한 사변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잘못된 생각처럼, 예술은 결코 환상적인 기하학이나 그보다 더 복잡한 위상지리학이 아니다. 예술은 무게와 밀도와 빛과 색채와 연결된 그 무엇이다.” - 앙리 포시옹, ‘형태들의 삶’, 1939년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으로 학고재에서 번역 출판되었음) 이 책은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시리즈들 중에서 제법 어려운, 하지만 바로크에 대해서 그 어느 책보다 충실한 내용을 가진 책이다. 프레데릭 다사스의 ‘바로크의 꿈’은 건축을 중심으로 바로크..

루브르의 그뢰즈

로코코 시대의 성적인 메타포가 가득찬 작품을 어수선한 루브르 미술관 안에서 보았을 때, 대단한 감동이 밀려들진 않았다. 다만 책에서 보던 어떤 작품을 실제 보았다는 것 뿐. 장 밥티스트 그뢰즈는 18세기 시민-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한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충실히 18세기 로코코적 여성들을 그렸다. 볼은 홍조를 띄고 창백한 피부와 마른 듯한 몸매에 성적인 분위기를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현실적인(정치-경제적인) 고통과 육체적 쾌락을 대비시켰다. 하지만 루브르에서 위 작품을 보고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걸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소녀는 깨진 항아리 탓에 치마 가득 꽃을 들고 있다. 이 흥미로운 배치로 인해, 이 작품은 노골적인 로코코적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요..

베르사이유와 제프 쿤스

화창한 일요일, 베르사이유 궁전에 갔다 왔다. 동양에서는 매우 익숙한 '중앙집권'이 서양에서는 매우 낯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전성기 로마를 제외하곤 서양에서 중앙 집권 국가는 근대에 들어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과 무관하게 그의 일상은 참 피곤한 것이었다. 그의 식사는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였으며, 그에게 비밀스러운 일이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은 오래 살지 못했고 그의 가문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라졌다. 프랑스의 일부 사람들은 루이 왕가가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하긴 조선 왕조 복권을 꿈꾸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한국에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화려하면서도 절제와 규율을 지키는 바로크 고전주의..

예술의 우주 2008.10.20

마그나스코와 로코코 미술 Magnasco and Rococo Art

Alessandro Magnasco, Sacrilegious Robbery, 1731, Oil on canvas, Quadreria arcivescovile, Milan 이탈리아 로코코 화가인 Alessandro Magnasco의 작품은 어딘가 어둡고 무거우며 침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바로크적이거나 로코코적이기 보다는 매너리즘에 더 가깝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이런 느낌을 환기시키는 그림을 떠올린다면, 'Stil Life'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Jean Simeon Chardin, Still Life (The Silver Tureen), 1728, Metropolitan Museum of Art 둘 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목적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작품의 스타일은 판이하게 틀리..

현실과 꿈 사이에 있을 숲 속 그 곳

사랑의 정원이 된 숲 내 몸 어디에서도 고된 노동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틈 날 때마다 그 흔적을 지우고, 또 지우고, 지우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탓이다. 자줏빛 뿔테 안경을 끼고 한 손에는 낡은 수필집을 든 채, 매일매일 전투 같은 일상을 보내는 직장인으로써가 아니라 책 읽기와 산책으로 소일하는 한가로운 룸펜처럼 보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 이 세상과는 무관하게 살아간다고 웅변하고 싶은 것이다. 현실을 떠나 꿈 속 세계로. 내가 원했지만, 절대로 실현되지 않았던 어떤 것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세계로. Fete Galante. 우아한 축제. 그 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알 턱이 없지만, 아름다운 무희가 춤을 추고 한순간도 술잔은 비는 법이 없으며, 새가 사랑을 노래하고, 얇은 바람이 시샘하듯..

로코코 예술

* 2004년에 작성하였던 글입니다. 로코로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크와 로코코 바로크 양식은 카톨릭과 귀족을 위한 양식이었다. 바로크의 웅장하고 거대한 양식은 카톨릭과 귀족을 위한 것이지 개신교와 시민계급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화가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소박한 느낌을 풍긴다. 그러나 이도 자기 과시적이며 은근히 귀족과 경쟁하는 구도로 발전한 양식이라는 점에서 카톨릭적이며 궁정적 바로크와 동일한 예술 의욕(kunstwollen)을 가진다. 즉 바로크는 귀족과 돈 많은 시민계급을 위한 양식이었다. 그리고 17세기 네덜란드는 당시 유럽의 패권국가였다. 이런 점에서 로코코는 분명 바로크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대체로 로코코는 귀족의 양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데카..

그뢰즈의 '로코코'

프랑스 로코코 화가 장 밥티스트 그뢰즈의 작품이다. 한 마디로 매력적이다. 매혹의 로코코란 저런 것이다. 화사한 색과 우울한 표정... ----- 좀 덧붙이자면, 그뢰즈는 두 개의 로코코 - 귀족의 로코코와 부르조아지의 로코코 - 사이에서 부르조아의 미덕을 표현했던 화가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뢰즈, 샤르댕 같은 화가들을 로코코로 포함시키기는 것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위 작품을 보라. 로코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가. 몰락해가는 귀족과 상승하는 부르조아지가 바라보았던 아름다움의 세계는 동일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