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클레지오 4

죽음을 향한 침묵

2015년, 기억해둘 만한 해가 되었다. 2016년, 아직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고 주말에 쉰 적이 없다. 스트레스로 인한 폭음 뒤, 몸져 누워 나가지 않은 때를 제외하곤. WLB(Work & Life Balance)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던 때가 부끄러워졌다. 일요일 출근 전, 르 클레지오를 짧게 읽었다.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동떨어진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스물 여덟 무렵, 자신만만하게 젊은 날의 르 클레지오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의 놀라웠던 데뷔작, , 그 이후의 슬프고 감미로웠던 , , ... 십 수년이 지나고 노년의 르 클레지오는 서울에 와서 살기도 하고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이제 르 클레지오는 내 일상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내 탓도, 세상 탓도 아니다. 애초에 이렇게..

침묵

"내가 죽으면 나를 알고 있었던 이 대상들은 더이상 나를 증오하지 않게 되겠지. 나의 내부에 있는 내 생명이 꺼져버릴 때, 내게 주어졌던 이 통일성을 내가 마침내 흩어버리게 될 때, 소용돌이는 중심을 바꿀 것이며 세계는 그 자체의 존재 방식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긍정과 부정의 대결, 소란, 빠른 움직임, 압박들이 이제는 더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시선의 차디차고 불타는 흐름이 멈추게 될 때, 긍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던 저 숨은 목소리가 말하기를 그치게 될 때, 흉물스럽고 고통스러운 이 모든 소란이 잠잠해질 때, 세계는 간단하게 이 상처를 되아무릴 것이며, 부드럽고 한가한 세상의 층을 넓혀갈 것이다. 더이상 과거의 잠재적 나를 초월하여 가기 위한 무슨 상처자국도 추억도 그 무엇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우연, 르 클레지오

르 클레지오, 우연, 앙골라 말라, 문학동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르 클레지오는 그러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신비, 어떤 매혹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신비와 매혹이 현대 문명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까지도 시적인 풍경으로 묘사한다. 무척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르 클레지오의 화법이나 문장에 익숙치 않은 사람은 꽤나 지루해할 만한 소설이다. 지극히 현대적인 소설이긴 하지만, 그것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이고 프랑스에서도 무척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일 것이다. 다음 기회에 르 클레지오의 문학 세계를 다룬 글을 올릴까 한다. 따지고 보면 르 클레지오의 문학 세계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다. ..

홍수, 르 클레지오

『洪水Le De'luge』, 르 클레지오 지음(* 이휘영 옮김), 동문선. 1988. * 그대들은 죽음을 모르고 있다 * 익명성: 이것은 누구나 혼잡한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현대 도시의 비극적 특성들 중의 하나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프랑소와 베송은 이 익명성 속에 자신을 파묻는다. 그래서, 소설은 프랑소와 베송의 뒤를 따라다니며 전개되지만, 프랑소와 베송은 그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도리어 그가 보는 사람들, 거리들, 풍경들만 독자의 눈동자 속 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주인공 대신 독자의 눈동자 속에 들어온 사람 들, 거리들, 풍경들에서 독자는 르 클레지오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 를 제외하곤 아무런 것도 얻을 수 없다. 특별한 사건도, 특별한 줄거 리도, 특별한 인물도 없으며, 아무 것도 특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