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기다리는 것, 즉 기다림을 하나의 중성적 행위로 만드는 것에 주의하는 것, 

자기에게 감겨서, 가장 내부의 것과 가장 외부의 것이 일치하는 

그러한 원들 사이에 끼여서, 예기치 않은 것으로 다시 향하는, 

기다림 속에서의 부주의한 주의, 어떠한 것도 

기다리기를 거부하는 기다림, 발걸음마다 펼쳐지는 고요의 자리


- 모리스 블랑쇼, '기다림 망각(L'attente L'oubli)' 중에서




Comment +0

기다림 망각 - 10점
모리스 블랑쇼 지음, 박준상 옮김/그린비



기다림 망각 L'attente L'oubli 
모리스 블랑쇼(지음), 박준상(옮김), 그린비 



장르가 불분명한 이 책은 모리스 블랑쇼의 일종의 에세이다. 일종의 연애담으로 읽어도 될 것이며, 문학론으로 읽어도 되고, 인생에 대한 태도로 읽어도 무방하다. 어차피 모리스 블랑쇼 연구자가 될 턱 만무하고 어려운 철학 용어나 문예 이론을 들이민다고 해서 이해될 리도 없다. 이 책 속의 그도 그녀를 향해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그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죽고 사라져야만 비로소 의미가 드러나는 법이다. 망각. 
그리고 그 드러나는 의미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언어이거나 문학이거나 예술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와 그녀를 통해, 모리스 블랑쇼가 마주 했던 언어와 문학에 대한 일종의 고백이자, 연애담, 그리고 이론적 방향에 대한 개요이다. 그래서 연구자에겐 꽤나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것이고 일반 독자에게는 흥미로운 문장들로 이루어진 연애 아포리즘이 될 수 있다. 

책은 읽기 편하고 내용은 어렵지 않다. 연구자에겐 어려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리스 블랑쇼가 궁금했던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하다. 








Comment +0




기다리는 것, 즉 기다림을 하나의 중성적 행위로 만드는 것에 주의하는 것, 자기에게 감겨서, 가장 내부의 것과 가장 외부의 것이 일치하는 그러한 원들 사이에 끼여서, 예기치 않은 것으로 다시 향하는, 기다림 속에서의 부주의한 주의, 어떠한 것도 기다리기를 거부하는 기다림, 발걸음마다 펼쳐지는 고요의 자리

- 모리스 블랑쇼, '기다림 망각(L'attente L'oubli)' 중에서 






Comment +0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 - 10점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박규현 옮김/동문선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고 직장에서의 내 위치가 올라갈수록 개인 시간을 만들기란 참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닫고 있다. 특히 돈벌이와 무관한, 개인적 시간은 가족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임을. 그 중 하나가 책을 읽고 난 다음 짧은 서평을 쓰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읽은 몇 권의 책에 대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 책도 그 중 한 권이다. 쓰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쓰게 된다면, 적어도 그 책에 대한 찬사가 되어야 하고, 그 찬사가 그 책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마누엘 레비나스의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책이다. 레비나스는 오래 동안 블랑쇼와의 깊은 우정을 통해 그의 세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레비나스의 애정 어린 철학적 시선은 이 짧은 책을 통해 모리스 블랑쇼 -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에게 직,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주류 문학이 아닌 비 주류 문학에 서서, 전통적 문학에 반기를 든 작가이자 이론가였던 - 가 지향하였던 문학과 예술을 탁월하게 재구성해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현대적 문학, 또는 다가올 예술에 대한 낯설고 기묘하고,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어떤 이론과 마주하게 될 것이며, 그 앞에서 서서 그동안 배워왔던 문학과 예술의 존재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 

아래 인용은 내가 그저 한 번 읽고 싶은 문구들의 일부이다. 이 책은 문학 이론서들 중에서 최고의 책들 중 한 권이 되겠지만, 아마 이 책을 언급하는 이는 드물다는 건 슬픈 일이다. 
 

** 


예술의 본질은 언어로부터 말할 수 없는 것으로 향하고, 작품에 의해 요소의 어두운 모습을 가시화하는 데 있다. 작품을 이렇게 모순과 더불어 묘사한다는 것은 변증법과 상관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대립항들의 교차로부터 타자를 삼키는 동일자가, 이 교차가 극복되고 그에 따라 모순이 완화되는 사유의 계획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사유가 이러한 변증법적 계획을 풀어놓아야 한다면, 즉 하나의 종합에 도달해야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세계에, 가능성과 인간의 결단력의 영역에, 행동과 적합성 가운데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그 어떤 사유도 다다를 수 없는 해안 - 문학은 사유할 수 없는 영역으로 향한다 - 으로 우리를 내던진다. 그 곳에서 존재-지각에 매달리는 관념론적 형이상학이 종결된다. 문학은 모든 가장 과감한 시도들에 의존해서는 벗어날 수 없는 세계의 모든 지평들을 성큼 건너가는 어떤 초월을 향한 유일한 모험이다. (23쪽)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사물들을 말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존재에게 메아리를 울리는 근원적인 언어로 되돌아가는 것일 게다. 사물들의 존재는 작품 속에서 명명된 것이 아니라 말하여지는 것이며, 말들은 사물들의 부재를 가리킨다. 존재한다는 것은 말하는 것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모든 이야기 상대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말하는 것이다. (18쪽) 


블랑쇼에 의하면, 세계를 밝게 비추는 것과는 거리가 먼 예술은 세계의 기초가 되는 모든 빛이 차단된 황량한 지하의 세계를 일깨운다. 예술은 우리의 거주에, 그리고 사막에서의 오두막의 기능을 하는 건축물의 찬란함에 추방의 본질을 되돌려준다. (중략) 예술은 빛이다. 하이데거에게 이 빛은 위로부터 내려와 세계를 만들고 거주처를 구축하는 빛이다. 반면 블랑쇼에게 이 빛은 지하로부터 올라온 밤의 어두운 빛으로 세계를 해체하고, 그 세계를 기원으로, 되풀이됨으로, 중얼거림으로, 끊임없이 딸각거리는 소리로, 어떤 '깊은 옛날, 아주 먼 옛날'로 인도한다. 비현실에 대한 시적 탐구란 실재의 맨 밑바닥을 탐구하는 것이다. (31쪽) 




Comment +5

  • 정말 좋은 글을 많이 개재하시네요. 아까 '서양 사상의 역사'로 댓글을 달았던 학생입니다. ^^ 링크 블로그도 걸어두었는데 좋은 글 읽으러 자주 들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모리스 블랑쇼는 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특이하면서도 무척 매력적인 작가입니다. 얼마 전 선집이 번역되어 나오고 있으니, 한 번 찾아 읽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 꼭 읽어보겠습니다. ^^ 수능 끝나고 부랴부랴 인문학 공부를 하니 읽을 책이 무척 많네요!

    • 이번에 수능 보셨어요? 훔훔.. 그럼 모리스 블랑쇼는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인문학은 말 그대로 사람과 글에 대한, 즉 세상사에 대한 학문이므로 나이가 들수록 공부하는 재미가 나는 분야이지요. 대학 들어가기 전 한 번 읽을 만한 책들을 한 번 추려봐야 겠군요. ^^;;;

    • 네 현재는 푸코를 공부하고 있고 서양철학사도 함께 읽고 있습니다. 프랑스 유학 후에 전공할 학문이 철학이기에 철학이라는 학문이(혹은 인문학) 저한텐 더 각별하네요. ^^


        추억하고자 하는 사람은 망각을 믿어야 한다.  절대적 망각
     이라는 위험을 믿어야 하며, 그때 추억은 아름다운  우연이 된
     다. 이 아름다운 우연을 믿어야 한다.
        - 모리스 블랑쇼
       
                        *                   *
       
        새벽 공기에 묻은, 지난 하루의 흔적들을 물로, 비누거품으
     로 씻어내고 난 다음, 낡은 턴테이블에 자정이 지난 시간에 어
     울릴 만한 음반 하나를  올린다. 또 이렇게, 무참하게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오는 길에 술에 취해 계단에서 쓰러지는  한 여
     대생을 보았다. 그녀를 보며, 언젠가 술에 취해 쓰러지는 여대
     생을 안스럽게 바라보았던 날 기억해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녀가 부러웠다.
       
        서가에서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꺼내
     "풍경의 발견"이라는 첫 장을 다시 읽었다.  김윤식교수가 '풍
     경'이라는 단어를 비평에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실은 가라타
     니 고진의 단어였음이 탄로났다며, 反김윤식성향의 비평가와의
     대화를 기억하며 웃었다.
       
        새벽 한두시가 내 귀가시간이다. 그때까지 도서관에서 소설
     나부랭이 읽다가 집에 온다. 소설 나부랭이 읽는  도중에 영어
     공부도 하고, 장차 대학원 전공이 될 서적들도 뒤적인다. 하루
     8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동서기'보다 힘없는 미래를  위해 내
     스물여섯의 초가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personae님의 의문에  대해서: 연기? 많이  보아야
     한다. 연기를 알기 위해선  영화보단 연극이 나을 것이다.  특
     히, 연기 못하는 배우와 연기 잘하는 배우가 똑같은 무대에 서
     는 작품! 너무 기본적인 대답이긴 하지만, 어느 것이  잘된 연
     기인가를 알기 위해선 많이 보는 수밖에 없다. 이것보다 더 빠
     른 방법은 직접 연기를 해보는 것!

Comment +0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

보들레르의 수첩,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년 1846년 산문과 1863년 산문이 함께 실려있고 죽은 후 나온 수첩까지 실린 이 책은 기억해.....

경쟁 우위의 종말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 리타 맥그레이스

경쟁 우위의 종말 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 리타 군터 맥그레이스(지음), 정선양, 김경희(옮김), 경문사 "소니는 스스로 경쟁우위의 함정에.....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2015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안경을 바꿔야 할 시기가 지났다. 나를,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신경쓰이게 한다. 글자가 흐릿해지는 만큼 새 책이 쌓이고 잠이 줄어드는 .....

반듯이 누워

반듯이 누워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얇게 흔들리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조함에 묻혀 아주 짧게 내 삶을 되새기며 슬퍼한다. 이름 모를 바람이 들어와 잠시 내 몸 위에 살짝 앉았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지음), 장영준(옮김), 그린비 노엄 촘스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지만, 그의 언어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에게 .....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지음), 권진아(옮김), 마음산책 헤밍웨이가 너무 유명했던 탓에, 내가 그를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이것이 세계문학전집의 폐해다. 헤밍웨이의 소설들.....

파리 Paris, 명동 Myeong-dong
바니타스 Vanitas
Chateau Meyney Prieur de Meyney, Saint-Estephe
Chateau Meyney Prieur de Meyney, Saint-Estephe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