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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2015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으로 부른다

-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어디일까? 몽테뉴의 말대로 우리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야만일까? 그러나 레비-스토스의 생각은 다른 듯 싶다. 


"계몽시대의 철학이 인류 역사에 존재한 모든 사회를 비판하며 합리적 사회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면, 상대주의는 하나의 문화가 권위를 앞세워 다른 문화를 재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거부했다. 몽테뉴 이후로, 그의 선례를 따라 많은 철학자가 이런 모순에서 탈출할 출구를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하지만 이 상대주의가 우리의 일상에선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대체로 우리 주변 대부분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바 상대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더라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선택받은) 문명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리들과 다른) 이방인들은 야만의 세계에 속한다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바 야만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 문명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보여준다. 가령 장신구 문화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야만의 형태다. 이제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아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나, 애초에 주술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루비는 유해한 기운을 물리치며, 사파이어는 진통효과를 지니고, 터키옥은 위험을 미리 알려주며, 자수정은 그리스어 '아메두스토스'의 의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술기운을 쫓아낸다고 수 세기 전까지 믿었기 때문에 그런 보석들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비싸게 거래되었다는 것을 요즘에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91쪽 


장신구는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더구나 그 부분은 내가 '야생의 사고pense'e sauvage'라고 칭했던 것이 생생하게 지속되는 부분이다. 우리 시대의 여성도 귀걸이를 착용한다. 그런 여성이나, 그런 여성을 바라보는 남자도 불멸의 물질로 소멸하는 몸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셈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장신구가 물렁물렁한 곳을 딱딱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 93쪽 


이와 반대로 우리 스스로 야만적 형태, 주술적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꽤 당혹스러운 방식이어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최근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곤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반문하기까지 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산타클로스가 디종 성당 앞 광장에서 불태워졌다. - 디종, 1951년 12월 24일

- 12쪽 


일종의 화형식이었는데, 보수적인 가톨릭의 입장에서 산타클로스는 이교도의 문화였으며 천박한 자본주의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종교 당국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며 종교적 가치가 없는 신화를 대중의 머릿 속에 심어주며 그리스도의 탄생을 불순하게 '이교도화'하려는 시도를 신랄하게 규탄했다. 

-11쪽 


확실히 산타클로스는 이교도적이고 지독히 상업적이다. 그것에는 종교적인 것은 없다. 산타클로스를 두고 신앙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당국(프랑스 가톨릭)의 입장은 이해되고 당연해보이긴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이 행위가 얼마나 고대적이며 주술적인 것인가를 드러낸다. 


식인풍습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다. 식인풍습이 일종의 약탈이나 살인 행위의 일종일 것이라 여겼던 나에게, 실은 '사랑과 존경의 표현'으로서의 식인 풍습은 매우 의외였다. 내 생각은 더 나아가 성경에서 언급된,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이것이 내 살과 피라고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까지 이어졌다(<<길가메시 서사시>>와 구약 성경의 일부 이야기들은 얼마나 닮아있는가).


민족학자들은 그 지역에 들어가 다른 가정 하에 구루병의 원인을 조사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배를 받기 전에, 구루병이 만연한 부족사회의 식인 풍습이 있었다. 가까운 친척의 시신을 먹는 것이 고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한 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고인의 살과 내장 및 뇌를 익혀 먹었고  빻은 뼈를 채소와 함께 조리해 먹었다. 여성이 시신을 잘라내서 조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까닭에, 시신으로 여성이 감염된 뇌를 다루는 과정에서 병원균에 감염되었을 것이고, 신체적 접촉으로 인해 어린 아이에게도 옮겼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었다.

- 123쪽 

(* 구루병 - 우리에겐 광우병으로 잘 알려진 '크로이츠 펠트야코프 병'을 의미함. 양의 경우에는 '진정병scrapie'라고 함. 지연성 바이러스로 인한 퇴행성 질환이며, 식인 풍습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짐)


구루병의 원인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식인풍습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알게 된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먹다'와 '성교하다'라는 단어가 문명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언어에서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는 것이나. 모권제 사회에 대한 추측은 잘못된 정보라는 언급은 기억해둘만 했다. 


민족학 연구가 발전하면서, 한때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모권제의 환상에 종지부가 찍어졌다. 부권제 아래에서는 당연하지만 모권제 아래에서도 권력은 남성의 몫이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모권제에서는 어머니의 남자 형제들이 권력을 행사했고, 부권제에서는 남편이 권력을 생사한다는 게 유일한 차이였다.

- 154쪽 


이 책에 실린 레비-스트로스의 글은 대부분 저널에 실렸던 것이라 그 길이가 짧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무척 시사적이면서도 그 소재나 주제가 흥미로워 추천할 만하다. 


내 경우엔 이 책을 다소 급하게 읽긴 했으나, 오귀스트 콩트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언급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 콩트의 책을 읽지 않았고 그 위상에 대해서 생각해본 바가 없었으나, 콩트의 실증주의적 태도가 후대 학문에 꽤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콩트가 이야기했던 그 이론들이 지금도 유의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아래는 니콜라 푸생의 <에코와 나르시스>>에 대한 언급이 있어 메모해둔다. 


Echo and Narcissus

Nicolas Poussin(1594-1665), oil on canvas, 74 cm* 100 cm, 1630, Louvre Museum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무엇보다 그림의 구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든 선이 분산되며 서로 멀어진다. 나르키소스의 두 다리는 오른쪽을 향해 벌어졌고, 두 팔은 서로 반대방향을 향한다. 다른 두 인물, 즉 숲의 요정인 에코와 장례의 횃불을 쥐고 잇는 푸토의 몸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런 분산은 그림에서 윗부분을 차지한 나뭇가지에서도 반복된다. 이런 분산 방향은 메아리(숲의 요정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지만 거절당하자 슬픔으로 몸은 없어지고 메아리가 되었다 - 옮긴이)의 청각적 현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메아리는 소리의 원점에서 점점 멀어지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라지지 않는가. 보들레르의 유명한 시가 그렇듯이, 감각적 자료들 간에 연상되는 이런 조응(correspondance)으로 푸생의 그림에서는 멜랑콜리, 즉 일정한 배색 효과로 강조된 회상에 젖은 서글픔이 느껴진다.

- 144 ~ 5쪽 



푸생의 그림에서 주조를 이룬듯한 분산이 온갖 모습으로 나타난다. 멍청한 듯 하면서도 기막히게 놀라운 일을 해내는 메아리의 물리적 현상에 내재된 분산이다. 따라서 메아리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산책자와 여행자를 유혹한다. 푸생의 그림이 요정 에코와 초자연적 세계의 작은 특사(푸토)가 취한 상반된 방향을 강조함으로써 명백하게 드러낸 분산이기도 하다. 에코는 일관된 단조로운 색조로 이미 자신과 하나가 되어버린 바위의 형상으로 땅을 향하고 있다. 이런 대비가 구도와 색이란 상보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에코 요정의 헛된 회상과 나르키소스의 숙명적인 오해, 그리고 메아리의 무익함과 전능함을 하나의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 152쪽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 10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강주헌 옮김/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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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공평한 걸까. 내일의, 어떤, 발생하지 않은 일이 현재, 혹은 과거에 미쳤던 영향은 대단하기만 하니, 내일을 아는 이 없다고 해서 세상이 공평한 것은 아니다.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은 인과율(law of causality)을 바탕으로 움직이며, 우리 모두는 인과율적 문명의 노예다. 우리 문명은 인과율 위에 축조되었고 우리 사고도 인과율을 벗어나 한 발짝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각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인 이 노예 근성은 현 문명에 반하는 모든 혁신을 거부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었던) 운명에 순응하는 개인이라는 표상이 생기고, 모든 이들 -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나이 든 이나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이나 - 이 '역시 이럴 줄 알았어'라며 자신의 파괴되어지고 부서지고 있는 보금자리 - 그 곳이 물리적 장소이든 마음 속의 위치든 - 에 들어가 꿈쩍도 하지 않으려 한다. 


하버마스가 말한 바 있는 공론장의 붕괴는, 어쩌면 우리 문명이 지닌 치명적이고 근원적인 약점이면서 충분히 예견된 일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그리스 비극이 감동적인 걸까. 고전 비극은 이 치명적 약점 위에 서서, 끝내 실패하고야 말 생(生)의 혁신을 꿈꾼다. 위대한 고전주의자들의 낭만성은 여기에서 싹튼다. 우리가 종종 고전주의자를 낭만주의로 오해하는 이유는, 범속한 낭만주의가 기존 질서에 반하여 무질서, 혼돈, 상상을 이야기하는 것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고전주의자들은 기존 질서 위에서 그 질서와 싸우며, 그 질서와 함께 무너지는 순간에도 질서의 문제점을 말하며,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삶 전체로 투쟁하고 저 질서 너머의 어떤 새로운 질서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고전주의자이면서 낭만주의자일 수 있는 것은, 질서를 받아들이며 요청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철학 전체는 한 편의 비극이며, 새로운 시대의 요청으로 점철되어 있다. 



잠시 들른 까페에서 위의 글을 메모하면서... 출근 전 잠시, 혹은 아주 길게, 게오르그 짐멜의 렘브란트와 메리 올리버의 고래 사이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 들었다. 아. 아무도 날 깨우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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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명 Civilisation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 지음, 최석태 옮김, 문예출판사, 1989년 

(현재 절판) 




책을 읽어나가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 이미 20세기의 저명한 미술사학자였지만, 그는 미술의 역사 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건축, 음악을 아우르면서 서양 문명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었다. 


가령 그는 장 안트완 와또와 존 키츠, 그리고 모차르트를 함께 비교하며 설명한다. 아래 그가 인용한 존 키츠의 시 구절을 옮긴다. 



Ay, in the very temple of Delight   

Veil'd Melancholy has her sovran shrine, 

Though seen of none save him whose strenuous tongue 

Can burst Joy's grape against his palate fine;  


아아, 환희의 신전 바로 그 안에서 

베일에 가린 우울은 그녀만의 자유로운 성지를 가진다.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지만, 오직 강렬한 혀로 

기쁨의 포도를 예민한 입 안에 넣고 터뜨릴 수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 키츠Keats, <우울에 부치는 송가 Ode on Melancholy> 중에서 

(이 책의 215쪽에서 옮기나, 문학 인용문에 대한 번역은 신뢰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직접 번역했다. 뭐, 나도 신뢰할 수준이 안 되겠지만. 이에 원문도 함께 찾아 옮긴다.) 



케네스 클라크는 '와토보다 더 '예민한 입(palate fine)'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한다(번역서에서는 '민감한 입'으로 옮기고 있다). 대강 이해할 순 있으나, palate가 미각이나 감식력 등을 뜻하기 때문에, '탁월한 심미안' 정도로 받아들으면 된다(이럴 때 원문을 찾아 읽는 것이 좋다). 



와토가 세상에 나온 것은 18세기 초의 일이었습니다. 그의 걸작 <시테르 섬에의 순례 Pilgrimage to Cythera>는 1712년, 루이 14세가 아직도 생존 중인 시대에 그려졌습니다. 이 그림에는 모차르트 오페라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유한 경쾌함과 예민함이 있으며, 또 인생의 극적 요소를 파악하는 감각이 있습니다. 비너스 섬에서 한 나절을 보내고, 이제 귀로에 선 이들 남녀의 미묘한 관계는 <여자는 다 이런 것Cosi Fan Tutte> 속에서 자신에 넘친 연인들이 출발에 앞어서 전개한 무아 상태의 흥분을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차르트의 그 오페라는 70년 이상이나 뒤에 작곡되었습니다. (215쪽) 




Jean-Antoine Watteau, Pilgrimage to Cythera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내가 경험한 한국의 인문학자들이나 인문학 전공 교수들 대부분이 가진 편협한 전문성 - 자신의 학위 논문 주제만 딱 알고 나머지는 전혀 모르는(심지어 인문학 전공 교수이면서 서양 철학사 한 권 제대로 읽어 내지도 못하는 지적 무능함까지 갖춘) - 과 대비되는 케네스 클라크의 이 책은, 1969년 그가 쓰고 직접 출연한 영국 BBC 다큐멘터리 <문명 Civilisation>의 방송 대본을 책으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방송 대본이라고 낮게 치부하기에는 책은 의외로 탄탄하고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면서 인문학과 서양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진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쉴새없이 자극한다. 


실제 다큐멘터리가 13부로 나누어 방송된 것처럼, 이 책도 1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구사 일생The Skin of Our Teeth>로 시작해 13장 <영웅적인 물질문명Heroic Materialism>으로 끝나는 이 책은 중세부터 19세기말, 20세기 초까지의 서양 문명을 탐구한다.


대부분의 지성사 책들이 철학이나 사상에 기울어져 서술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압도적으로 건축과 시각 예술 작품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그래서 책에는 다수의 미술 작품 도판이 있으며, 해당 작품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읽을 수 있다. 



(13부 전체를 볼 수 있으나, 아, 한글 자막은 없다. 짧은 듣기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다큐멘터리다.) 



서양 미술사에 대해선 전문가 수준이라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이 책은 중세 후기, 근세 초기 북유럽 미술에 대한 설명은 무척 유용했다. 또한, 가령 이런 문장들은 흥미로웠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건축이 현대 건축보다 훨씬 나은 이유의 하나는 그 건축가가 예술가였다는 점에 있습니다. (...) 본직이 아닌 모든 건축가들 중에서 미켈란젤로는 가장 모험적이며, 고전주의적 원칙이나 기능면의 여러 가지 요구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덜 제약받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실제적이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아마도 미켈란젤로만이 미완성의 커다란 골치덩어리였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정돈할 만한 정신적 정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결국 그의 독자성으로 이 건물을 혼연일체의 통일체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164쪽 - 165쪽) 


 

케네스 클라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알브레히트 뒤러를 비교하며, '뒤러는 아주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스니다. (...) 그에게는 우선 강렬한 자의식과 과도한 허영심이 있었습니다'(147쪽)라고 말한다. 



Raphael, Portrait of a Cardinal, oil on wood, 79cm*61cm, about 1510 


라파엘로의 어느 추기경은 '최고의 교양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균형과 자제심을 갖춘 사람'으로 느껴지지만, 


오스발트 크렐은 지금 막 히스테리를 일으킬 것같습니다. 저 노려보는 듯한 눈, 자의식이 강한 내성적인 얼굴, 얼굴의 볼륨을 불안정하게 함으로써 뒤러가 아주 잘 파악한 저 불안, 이건 얼마나 독일적일까요? 그리고 독일 이외의 나라였다면 또 얼마나 이상한 일이었을까요? (140쪽) 



Albrecht Durer, Portrait of Oswolt Krel, oil on panel, 50cm * 39cm, 1499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양상은, 의외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 시기(15세기와 16세기)의 건축과 미술은 고딕에서 국제 고딕, 혹은 후기 고딕으로 이어지면서 동시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기법들을 받아들여 양식 상으로는 르네상스로 향하는 듯 여겨지나, 정신적으로는 중세에서 바로 종교개혁으로 이어진다. 


말이 종교개혁이지, 이는 성직자의 차원에서였지, 실제 일반 대중에게서는 일종의 반달리즘으로 표현되었다. 이 시기에는 16세기 이탈리아 매너리즘의 경향까지도 보이는 바, 16세기 북유럽 미술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는 판이하게 다른 미술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케네스 클라크는 뒤러의 작품을 저렇게 설명한다. 


이 책의 몇 부분을 옮기며 설명하다 보니,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은 꽤나 까다롭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미 절판된 책이니, 구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고, 도서관에서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번역된 문장들 상당수가 비문들이어서 이 부분에 까다로운 독자들은 화를 낼 만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수준의 책을 한글로 접하긴 어려운지라, 독자들에게 과감하게 추천한다.


(또는 이 책의 번역서가 새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생생한 컬러 도판들과 함께.)  



Amazon Link : http://www.amazon.com/Civilisation-Personal-View-Kenneth-Clark/dp/B0016XQ7LQ/ref=sr_1_5?s=books&ie=UTF8&qid=1410690328&sr=1-5 




예술과문명

케네드클라크저 | 최석태역 | 문예출판사 | ..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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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보엠 2015.07.24 19:51 신고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행보는 정말 복잡해서 공부할 부분이 많아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 반대로 이탈리아에 회화적 영향을 주는 게 보이니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기쁜 일일까요? 저는 반종교개혁이라고도 불리는 카톨릭 종교개혁 시대의 북이탈리아 회화와 기억술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 추천해주신 클락크의 다큐는 꼭 볼게요. 시작페이지에 저장해두었어요. 매일 한 편씩 보려고 합니다. 추천 고맙습니다.

    • 16세기는 정말 흥미로운 시기입니다. 16세기 초반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절정기였으나, 북유럽은 이탈리아와 비교해보면 너무 경직되어 있지요. 그리곤 곧바로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마치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건너뛰고 곧바로 근대로 뛰쳐나가는 듯합니다. 제대로만 공부한다면 현대, 그리고 앞으로 오게 될 어떤 시대에 대한 무수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아마 제가 계속 공부를 했더라면 그 시대를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말이죠. ㅎㅎ )





눈 앞에 펼쳐지는 색들이 변했다. 조금 투명해지고, 조금 분명해지고, 다소 차갑고 냉정해졌으며, 약간 쓸쓸해졌고, 그리고, 그리고, 지난 더위에 지친 표정으로 흔들거리며 색채가 퍼지며 사라졌다. 


온도가 내려갔고 바람이 불었고 사람들은 숨길 수 없는 불안을 숨기며 웃었다. 아니, 울었다. 실은 그게 웃음인지 울음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말을 하고 싶었으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고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내 존재의 집은 나에게 아무 말도 없고 내 곁을 떠났다. 


화양연화를 떠올리며 십 수년 전, 화양연화를 혼자, 극장에서 보고 난 다음 월간지 기자와 술자리에 티격태격했던 걸 추억했다. 그 땐 '사랑의 현실에 타협한 왕가위'를 비난했으나,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왕가위가 옳았음을 알게 된다, 되었다. 


간밤 잠을 설쳤다. 아내는 불을 켜서 모기를 네 마리나 잡았다. 전기 콘센트에 꽂아둔 모기약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나는 여섯 군데 이상 물렸다. 출근길, 무거운 표정을 한 사람들 사이로 걸으며, 문득 내 나이를 떠올리자, 인류의 문명은 인간의 무지한 아집 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미궁이고 외부 세계는 나와 무관한 것임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수한 지성들은 자신의 터무니없는 자신감 위에 뭔가 한 마디씩 남겼고 그것으로 인류의 문명이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토마스 쿤은 그걸 '패러다임'이라고 불렀으니, 어차피 사라지고 폐기될 것임을 직감하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인정받으며 살자는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 중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화양연화의 장만옥은 참 매력적이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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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책을 10대 읽을 때, 20대 읽을 때, 30대 읽을 때, 40대 읽을 때... 다르게 읽는다. 읽으면서 깨닫는 게 다르다. 


이것 참 큰 일이다. 


만약 그 책을 60대 읽을 때, 70대 읽을 때, ... 140대 읽을 때, 150대에 읽을 때 나는 어떤 걸 다시 알게 될까? 


우리 문명은 딱 우리 수명만큼 그 깊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머리로 알지만 몸으로는 실천하지 못하고 지식은 쌓아가지만 지혜를 쌓지 못하는 것이다. 딱 우리 수명만큼이다. 


(너무 비관적인가)




Let things age
Let things age by Celeste 저작자 표시비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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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의 배신 The Vegetarian Myth 
리어 키스(지음), 김희정(옮김), 부키 



근래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과격하고 직설적이다. 저자 자신의 체험 이야기를 하다가 영영학자나 고생물학자의 논문을 인용하기도 한다. 전문성이 확보된 듯하면서도 전문적이지 않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내 평가는, 과격하지만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아니, 반드시 읽어야 한다. 

아직도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사카린이 위험한 감미료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발암 물질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카린은 보기 드물게 안전한 인공 감미료다. (참고 기사: 사카린은 억울하다… 착한물질에 씐 주홍글씨 )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아직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았지만, 가령 ‘콩은 무조건 좋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적극적인 형태의 채식주의인 ‘비건 생식’이 도덕적으로 고결하며, 우리 몸을 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긴다면? 그리고 저자인 리어 키스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비건vegan - 유제품, 달걀류 등을 포함한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식습관을 유지하는 사람. 단순채식주의자보다 더 철저함.)

비건주의자였던 저자는 그녀의 말에 의하면, 20년 동안 그것을 실천하였고 각종 질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잘못된 식사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망쳤음을, 그리고 그 고백과 함께 자신과 같은 잘못된 결정을 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쓰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문명 자체가 잘못되었고 탄수화물(특히 밀)이 중심이 된 농업 방식이 우리의 몸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육류의 섭취가 장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의 주장은 ‘5장 - 지방에 새겨진 주홍글씨’에서 정점을 이룬다.

지난 15년 사이 미국 내 지방 소비량은 거의 25퍼센트가 줄었다. 모두 의학계의 계속적인 공갈 협박과, 유사 식품, 유사 지방을 기꺼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식품업계 덕택이다. 값싼 식물성 기름의 다가 불포화지방을 본능적으로 포화 지방을 원하는 인간의 입맛에 맞게 만들려면 화학적 변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25퍼센트면 엄청난 감소량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더 건강해졌을까? 그 반대다. 보통 동물성 식품이 원인이라고 지목되는 질병이 거의 전염병 수준으로 치솟았다. (234쪽) 


케냐 마사이 족은 거의 완전히 고기, 우유, 피로만 된 식사를 한다. 마사이 족의 젊은 전사가 날마다 취하는 동물성 지방은 300그램에 달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는 평균 160 이하로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심장 질환은 병 자체가 거의 알려져 있지도 않을 정도다. 그들의 사체를 부검해 보면 동맥 혈전(혈관 벽에 생기는 플라크)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마사이 족을 연구한 만은 지방 가설을 “금세기 최고의 공공 보건 스캔들”이라 부르며, “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기극”이라고 선언했다. (278쪽) 



채식의 배신 - 10점
리어 키스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저자는 도리어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가 성인병의 주범이라고 말한다. 

“현재 미국에서 발생하는 장애와 사망의 원인은 대부분 곡물과 당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높아진 인슐린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질병들이다.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은 모두 인슐린으로 인해 발병한다. 이 질병들이야말로 서구 사회의 죽음의 사자다. 
(…) “탄수화물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겨우 참을 만한 정도의 탄수화물과 끔찍한 탄수화물이 있을 뿐”이라고 이즈 박사 부부는 말한다.” (257쪽)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산업화된 농업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소나 돼지에게 옥수수 등으로 만든 사료를 먹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미국 정부의 세제 지원이나 지원금 혜택으로 인해 과잉 생산된 옥수수 등과 같은 작물이 정상적인 소비 경로를 거치지 못하자, 믿을 수 없는 싼 가격으로 공급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키워진 소나 돼지, 닭 등은 영양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태(방목되어 풀 등을 먹고 자란 것들과 비교해)에서 도축되어, 우리들의 식탁에 오르며 그러는 동안 우리의 몸도 병 들어간다고. 

맹목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의 식탁도 지배하고 있다. 가령 한국에서는 모유가 분유보다 낫다고 여기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분유 회사(네슬레 등)의 광고와 로비로 분유가 모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아직도 농업이 농부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바보가 있진 않겠지만, … 

그 낮은 가격(곡물의)과 생산 비용의 차액(최 일선 농부의 생산 비용의 적자)은 미 연방 정부의 돈, 다시 말해 미국 납세자의 돈으로 메웠고, 전 세계의 소규모 농장들과 지역 경제를 망쳤다(값싼 미국의 농산물들은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는 그 지역 농부들이 끝없는 가난의 터널로 들어섰다. 수입된 미 농산물의 가격이 그 지역에서 생산된 가격보다 더 저렴했던 탓에). 이제 그들은 종자 자체에 낸 특허를 소유하고 있다. 전 인류의 지식과 노동, 유산을 담은 그 종자들의 유전자가 이제는 몬샌토와 콘애그라, ADM의 소유가 된 것이다. 그들은 식량 과두 체제의 우두머리, 생명 그 자체의 가장(家長) 지위에 등극했다. 파일은 “농업에 대한 소유권, 유전자 정보, 경작 행위, 이윤은 점점 더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있다. 한 번도 흙을 묻혀 본 적도 없는 손들 말이다.”라고 개탄한다. 이들은 사회적인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마케팅을 할 때는 마르고 닳도록 이용되지만 전혀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굶주린 어린이들, 이 어린이들을 먹겨 살릴 만한 의도와 능력이 있었지만 이제는 저들 때문에 농장을 잃은 전 세계 방방곡곡의 농부들 누구에게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직 주주에게만 책임감을 느낄 뿐이다. (196쪽 - 197쪽, 인용 본문의 ( ) 안 문장은 필자가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것임.)  


책은 유기체적이며 순환론적 우주론을 이야기하면서 산업화된 농업과 축산업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리고 농업은 근본적으로 반-자연적 활동이며, 농업의 확장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은 고스란히 인류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에서 ‘투석기에서 핵폭탄으로 이르는 한 길’이라는 표현을 쓴 아도르노가 떠올랐다. 하긴 문명의 문제란, 현대 지성사의 주된 관심사이며, 심지어 ‘반-지성주의’라고 지칭하니까.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 책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비건주의자들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반-지성주의의 입장을 견지하고 고대적 관점의 회복, 또는 문명 이전 단계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저자가, 개인적 실천법으로 ‘아이를 낳지 말고, 차를 가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음식은 자기가 기르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읽기에도 과격한 어조로 쓰여진 책이라,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아마존과 인터넷 서점 및 포탈 사이트에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찾아보았다. 아마존 리뷰(총 리뷰 201개)에서는 거의 절반(99개)이 별 다섯 개를, 50개의 리뷰는 별 한 개를 주었다. 그러나 국내의 평가는 너무 인색했다. 아마 채식주의자들, 혹은 채식옹호론자들의 걱정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이 책은 극단적 채식의 위험함, 산업화된 농업과 축산업이 끼치는 악영향, 그리고 그것이 세계의 빈곤 지역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고찰, 동물성 지방에 대한 심각한 오해, 콩의 효과에 대한 맹신 등은 유익하기만 했다(한국 식단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된장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된장은 콩의 발효시켜 콩의 유해한 성분을 희석시키고 그리고 조리 과정도 서양의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 책의 과격한 어조만큼이나 이 책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리뷰의 어조도 과격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네이버로 가서 ‘비건’이라고 검색해보라. 그러면서 많은 쇼핑몰이 나온다. 즉 ‘비건’도 비즈니스의 일부다. 이 책의 과격한 어조는 잊고(저자의 고통스러운 과거에 대한 회한과 통탄이라고 이해해주자), 책의 내용을 읽고 전혀 설득력이 없는가 돌이켜보자. 이 점에서 이 책에서는 참고 문헌 리스트 정도를 제시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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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3.06 20:25 신고

    풀먹이고 자란 고기는 좋죠 ^^ gmo 먹여 자란 고기는 서서히 병신되는 독약입니다.

    • 그러게 말입니다. ... 책은 '채식의 배신'이지만, 실은 채식보다 더 큰 정치적이고 산업적인 비난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읽을 만하고요. ~. 과격하긴 하지만요. ㅎ

  • 스티브 잡스도 극단의 채식주의를 고집하다고 죽었다고 하죠. 그렇다고 고기를 맘놓고 먹을 수 없는 현실이 암울합니다.

    • 실은 채식주의의 문제가 부각되기 보다는 산업화된 농업으로 인해 마음 놓고 고기를 먹을 수 없고, 심지어 농산물까지도 먹기 위험한 시대에 접어들었음이 강조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 책에 대해 채식주의자들의 반발이 꽤 심하더라고요. ~..

  • 2013.03.15 17:11

    비밀댓글입니다

문명의 붕괴 - 10점
조지프 A.테인터/대원사




문명의 붕괴
조지프 A. 테인터, 대원사, 1999.


(오래 전에 쓴 서평을 다시 업데이트해 올리는 것은, Slow Death(느린 죽음)이라는 것이 최근의 내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테인터의 이 책은 지금은 구하기 힘들지만, '문명의 붕괴'에 대해 탁월한 통찰을 보여준 책들 중 한 권이다. 레베카 코스타의 <<지금 경계선에서>>에서 초반부 복잡성의 증대가 문명의 붕괴를 불러온다는 견해도 조지프 테인터의 이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붕괴하는 문명의 끝자락에 있을 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태평하기만 하고 자신들만을 위한 평화와 안정에만 관심이 있으니 ... 걱정이 앞선다.) 

 



"48시간 내로 이라크를 떠나라"라는 최후 통첩은 <<문명의 붕괴>>를 읽고 난 다음 무척 신선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아마 요한묵시록의 팬이라면 최후의 전쟁인 "Harmagedon"을 떠올릴 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중동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게 보인다. 그만큼 붕괴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뜻일까. 테인터가 정리하고 있는 붕괴의 과정은 아래와 같다.


1. 인간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다.
2. 사회정치적 체제는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유지된다.
3. 복잡성이 증가하면 단위비용도 증가한다.
4. 문제해결을 위한 대응으로서 사회정치적 복잡성에 대한 투자를 하면 한계 수익이 감소하는 시점에 봉착하게 된다.



그리고 한 문명은 붕괴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 문명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일 뿐이다. 중요한 점은 붕괴도 문제해결의 방식이며 '효율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말하듯이 온난화 때문에 극 지방의 빙하들이 녹고 이렇게 늘어난 바닷물이 해일이 되어 해변가의 도시를 덮치더라도,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복잡한 사회는 붕괴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면 단순한 사회에서 만족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사회에 대한 염원은 여러 생태 공동체 운동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생태공동체 중 하나인 '오로빌'에서는 최근 자율방범대를 만들었다. 얼마 되지 않던 인구가 현재 1600여명 가까이 거주하고 있는 큰 마을이 되어 버렸다. 인구의 이동이 잦아지고 빈부의 격차가 나타남으로 인해 돌발적인 사건의 가능성도 높아진 셈이다. 이런 환경의 변화로 인해 자발적으로 방법대를 조직하여 야간에 오가는 사람들을 체크한다. 

1600여명의, 생태공동체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마을에서 자율방범대를 조직했다는 것만으로 우리 문명에는 탈출구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 하나둘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는 복잡해지고 이 복잡의 정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서서히, 혹은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단순한 사회를 지향할 필요는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합리적으로 사고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단순한 사회를 지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들 중 몇몇은 모험을 즐기고 복잡한 문제에 남다른 호기심을 보이면서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몇몇은 단순한 사회로 들어가 한 문명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몇몇은 끊임없이 몰락하고 새로 생기고 하는 문명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우리 문명이 붕괴한다고 해서 놀라거나 당황할 필요는 없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보자면 자주 있어왔던 일이니 말이다.

테인터의 책을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이 머리 속에 떠올랐는데, 하나는 오마르 카이얌이 쓴 <<루바이야트>>(민음사)이라는 시집이다. 11세기 아랍의 시집이지만, 현대인이랑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인다. 수메르의 경우처럼 말이다. 두번째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녹색평론사)라는 책이다. 이 책은 생태공동체에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책이다. 두 권 다 감동적인 구석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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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육체의 나이에 익숙해지는 2013년.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쓸쓸해지는 나이. 사십대. 날씨 변화에 터무니없이 민감해지(또는, 아프)고, 어린 아들의 웃음에 눈물이 나고(고마워서) 아내의 잔소리가 듣고 싶어지는(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 끝도 없이 물컹물컹해지는 마흔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지나간 젊음 위로 쌓여 얼어간다. 얼어붙은 불안은 깊고 날카로운 냉기를 시간 속으로 밀어넣고. 


잠시 내일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사람들이 내 주위를 피한다. 미래는 무섭고 현재는 견디기 어렵다. 현대 문명은 어쩌면 과거 문명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불안들을 켜켜히 쌓아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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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계선에서 Watchman’s Rattle
레베카 코스타 Rebecca Costa 지음, 장세현 옮김, 쌤앤파커스
http://www.rebeccacosta.com/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미 설명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문명 붕괴의 패턴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슈퍼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계하고, 벤처자본 모델을 이용한 완화책의 실시로 시간을 벌고, 우리의 두뇌를 활용하여 침체되어 가는 인식 능력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인식 한계점에 대응하여 자연이 준 해결책인 통찰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신경과학은 장차 현대인의 생존을 좌우할 열쇠를 쥐고 있다. (362쪽)



책의 후반부는 다소 실망스럽다. 이 실망스러움은 책 끝에 붙은 저명 인사들의 찬사로 인해 더욱 커진다. ‘신경과학이 밝혀낸 통찰의 힘’이 해결책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재미없거나 읽을 가치가 없거나 한 것은 아니다. 책의 전반부, 현대 문명이 마주한 거대한 위기에 대한 풍부한 사례와 분석에 비해 책의 후반부 서술은 너무 작고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의 서술이 우리, 현대 인류가 마주한 운명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어림짐작으로 볼 때, 유기체가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유기체의 복잡성이 환경(모든 규모의 환경)의 복잡성과 대등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 - 야니어 바-얌(Yaneer Bar-Yam) <Making Things Work> 중에서 (29쪽)



문명 붕괴의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 안정적인 생산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작은 마을은 몇 세기 지나지 않아 제법 큰 도시가 되고, 작은 국가가 된다. 그리고 이 작은 국가는 거대한 제국이 된다. 이러한 성장과 함께 동시에 성장하는 것이 ‘복잡성’이다. 작은 마을에서는 도난 사건이 생기더라도 누가 훔쳐갔는지 금세 밝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큰 도시에서는? 이러자 도난 사건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사람이 필요해진다. 작은 마을일 때는 우물 하나면 충분했던 것이 도시가 되면 수로를 만들어야 하고 식수와 오수를 구분해 처리해야 한다. 인구 100만의 도시 로마에서 하루에 나오는 쓰레기의 양을 계산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는 이 쓰레기를 치워야만 도시가 운영된다. 이렇게 복잡해진 도시에서 생기는 문제도 복잡한 해결 방법을 거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문제들에 대한 해결 능력이 정체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서 두 손 두 발 놓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문제 해결 대신 마야인들이 취한 조치는 인식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모든 위대한 문명에서 나타나는 바로 그것이었다. 즉, 그들은 위험한 문제들을 다음 세대로 전가하는 길을 택했고, 이에 따라 문제는 점점 더 방대하고 위태로워졌다. (39쪽)


어떤 문명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동안 문제 해결에 동원되었던 지식과 지성은 뒤로 밀리고 믿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믿음은 ‘길러지는 것nurture’가 아닌 ‘타고 나는 것nature’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 욕구의 대상이다. 그리고 인류는 지식을 습득할 수 없을 때 사실 대신 믿음을 택한다. (41쪽) 복잡성으로 인해 지식 입수가 불가능해지면 그때부터는 불가피하게 믿음에 의존하게 된다. (43쪽)


로마 후기 율리아누스 황제가 마주했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교회에서는 배교자로 공격하며 진실된 신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가혹한 이교도로 이야기하는 율리아누스 황제가 보았던 로마의 상황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너무 손쉽게 믿음을 택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갈릴리 사람들(기독교도)이 믿는 것이 이 지상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황제로서 실증해보고 싶네. 그들이 말하는 칭찬할 만한 가르침, 그들은 그것을 가난한 사람한테만 허용하고 게다가 천국에서만 달성할 수 있다고 단언하지만, 그 미덕과 행복은 현세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내가 제위에 있는 동안 정착시키고자 하는 공정한 통치를 통해, 그리고 종교와 관계없는 복지 사업을 통해 달성하고 싶다고 굳게 결심하고 있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4권 중에서)



다시 말해서 현대 문명도 후기 로마처럼 그렇게 몰락해갈 수 있다는 것은 현대의 교회들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인류의 성패는 기술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기술이 있어요. 그건 쉬운 일이지요.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 이게 훨씬 더 어렵습니다. - 딘 케이먼(Dean Kamen) (91쪽)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쪽으로든 정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마음은 아무 것도 믿지 않느니 차라리 거짓이라도 믿는 쪽을 택한다 - 장 자크 루소 (99쪽)



저자는 복잡한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점에 다다르면, 선택하게 되는 이 바로 믿음이라고 말한다. 이 믿음이란 종교적인 믿음(신앙)도 포함되지만, 그것 이상의 어떤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슈퍼밈이라고 한다. 원래 밈Meme이란 ‘문화적 전달 혹은 모방 단위’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등장한 단어이다. 레베카 코스타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슈퍼밈을 제안하는데, 이는 이드-에고-슈퍼에고로 이어지는 프로이드의 체계를 옮긴 것이다.


슈퍼밈은 사회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널리 만연하여 다른 모든 믿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거나 억압을 가하는 모든 종류의 믿음, 생각, 행동을 가리킨다. (97쪽)



사람들이 지식과 지성을 이용한 적극적인 문제 해결 대신 택하게 되는 태도를 슈퍼밈이라고 말하며 저자는 대표적인 슈퍼밈 다섯 가지를 설명한다.

첫 번째 장벽, 불합리한 반대 - 자유 선택이라는 환상이 부른 반대의 수렁

이 챕터를 읽고 난 다음, 불합리한 반대가 전세계적 트렌드임을 확인했다. 교도소를 건설하지 못하는 미국의 사례처럼 한국에서는 화장 시설을 건립하지 못한다. 모든 이들이 죽은 이를 묻을 땅이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공감하면서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장례 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극렬히 반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내놓으라면 그 어떤 해결책도 없다. 아파트 단지에 임대 아파트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레베카 코스타에 따르면, 이는 지역 이기주의를 넘어서, 우리 문명 전체를 멸망을 이끄는 하나의 태도다.

두 번째 장벽, 책임의 개인화 - 개인에게 책임 지우는 시스템의 문제

장례 시설을 짓지 못해 죽은 이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치자.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그 때부터 지식과 지성을 활용해서 문제 해결에 뛰어들까? 레베카 코스타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 때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희생양 개인’이다. 아마 장례 시설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부서의 장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누군가 희생양이 되어 그 자리에서 떠나거나 감옥에 들어가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해결책은 현대 사회 전반을 만연해 있다. 정부 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흥미롭지 않은가.

책에서는 ‘비만’을 사례로 들고 있다. 비만, 즉 사회 시스템의 문제인데, 이를 개인의 인내심이나 의지 부족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기관 마켓데이터Marketdata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력구제 산업은 2000년 이래로 매년 10퍼센트씩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는 그 규모가 미국에서만 8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해마다 80억 달러를 쓰고 있는 셈이다. (159쪽)


 

한 문명이 인식 한계점에 도달하여 문제의 복잡성이 인식 능력을 넘어서면, 곤란한 사회적 문제를 바로잡을 책임이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전가된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고통을 겪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시스템적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각 개인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리는 간편한 길을 택하기가 쉽다. 그 결과, 비만, 우울증, 중독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은 각자 스스로 극복해야 할 개인적 시련으로 다시 포장된다. (159쪽)



세 번째 장벽, 거짓 상관관계 - 우리가 진실이라 알아온 상관관계의 오류


유럽 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하루에 15회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십대 청소년은 전화를 조금만 쓰는 청소년보다 잠드는 데,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184쪽)



그런데 휴대전화와 수면 장애의 인과관계는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휴대 전화 사용 단속에 들어갔다. ‘이렇듯 거짓 상관관계는 허구와 사실, 단순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별하는 일을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 결국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개인, 가족, 학교, 리더, 국가에 혼란과 고난을 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너무도 성급하게 상관관계를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받아들인다.’(185쪽)


네 번째 장벽, 사일로식 사고 - 고립된 사일로들이 만드는 오류


나사NASA에서 획기적인 태양열 발전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미국 에너지부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환경 관련 자료를 학계와 공유하려다가 비난을 받았던 CIA와 마찬가지로, 무공해 에너지 개발 역시 나사의 공식 임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것을 “부적절한 임무 확대”로 본 에너지부는 나사를 비난하며 우주 개발이나 충실히 하라고 지시했다. 나사 과학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에너지와 우주 연구 사이에 놓인 사일로의 벽을 돌파할 수 없었다. 한편, 에너지부와 청정기술Cleantech 벤처 자본가들은 나사가 개발하여 이미 실험실 내에서 효과까지 입증한 태양열 발전보다 훨씬 못한 기술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었다.’(223쪽)


다섯 번째 장벽, 극단의 경제학 - 경제우선주의에만 매몰되는 오류


“경제가 모든 것을 망치고 있어”라는 에드먼드 윌슨의 표현만큼 적절한 것이 있을까?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는 인류 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무수한 많은 기술들이 채택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다. 이는 기술뿐만 아니다. 북반구에서 너무 많이 생산되어 버려지는 음식물들이 남반구에 전달된다면? ‘21세기에 타당성을 판단하는 가장 강력한 척도는 분명 수익성이다’(234쪽) 바로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기업가적 혁신을 부추기는 그 경제적 인센티브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발견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더욱 복잡해지고 시스템적이고 세계적인 것이 되어감에 따라, 손익계산은 다소 무의미한 일이 된다. (235쪽)

저자는 다섯 가지 장벽을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슈퍼밈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야 된다고 역설한다.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지 아니면 낙관적인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제 대답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한 지식을 접한 다음에도 비관적이지 않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을, 가난한 이들의 삶을 다시 일으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을 만난 다음에도 낙관적이지 않다면 여러분의 맥박은 뛰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세상 곳곳에서 본 것은 이 세상의 우아하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서 절망과 권력, 수많은 어려움과 맞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폴 호켄Paul Hawken (273쪽에서 인용)


책은 신경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뇌의 활동, 그리고 통찰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된다고 하면서 끝맺는다. 이미 서두에서 이야기했듯 이 결말이 다소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은 흥미진진하고 현대 문명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저자가 제시하는 슈퍼밈은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선 각자의 몫이지만, 적어도 절망적인 기분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제법 괜찮은 책임에 분명하다.


저자 인터뷰: http://earthsky.org/human-world/rebecca-costa-on-thinking-our-way-out-of-extinction 



지금, 경계선에서 - 10점
레베카 코스타 지음, 장세현 옮김/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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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딱딱하고 무거운 책을 끝까지 읽기도, 힘겹게 다 읽는다고 하더라도, 과연 제대로 읽었는지, 다른 이들은 혹시 다르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아리송할 때가 많다. 이것이 독서 모임 빡센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첫 책으로 강유원의 책과 세계’(살림)를 선정했다. 책은 얇다. 두 번째 책으로 선정된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16세기 문화혁명’(동아시아)가 무려 9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인데 비해, 첫 번째 책은 두 번째 책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얇고 가볍다고 하여 읽기 만만한 책은 절대 아니다. 도리어 무겁고 두 세 번에 걸쳐 완독해야 할 책에 가깝다.

모인 이들은 책을 즐겨 읽으나, 독서 모임에 경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나 또한 독서 모임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오고 간 이야기는 두서 없었다. 그리고 두서 없는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긴 주제는 '쓸쓸함'이었다.


책의 시작부터 '쓸쓸한 세계'가 시작된다. 
 

 

쓸쓸한 세계: ‘길가메시 서사시

사람의 삶은 고되다. 고됨은 여가를 용납하지 않는다.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학문이 본래 여가라는 뜻을 가졌듯이, 여가가 없는 이들은 텍스트를 읽을 틈이 없다.
-
6



그리고 왜 쓸쓸해지는가에 대해 짧은 설명이 이어진다.  



참으로 덧없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고통스러운 세상, 쓸쓸한 인생. 유행가 가사 같은 정조는 이렇게 오랜 옛날부터 인류 곁에 있었다.

후대에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는 이렇게 말한다.

길가메시여, 그대가 찾는 것은 결코 찾을 수 없으리라. 신들이 인간을 창조할 때 죽음을 인간의 숙명으로 안겨주고 영생의 삶을 거두었기 때문이오. 그대가 살아있는 시간을 즐겁고 충만하게 보내오. 그대와 손을 잡는 어린아이를 사랑하오. 그대의 아내를 품에 즐겁게 해주오. 기껏해야 이런 것들만이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것이 때문이오.

인간은 이렇게 읊으면서도 끊임없이 신의 자리를 탐냈다. 만족되지 않는 욕구의 좌절. 사랑만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수메르에는 사랑 노래가 드물다. 수천을 헤아리는 수메르 점토판 중에서 사랑을 다룬 시는 딱 두 편뿐이었다.

- 8쪽에서 9쪽까지



쓸쓸한 고대 세계에서 시작되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그 당시의 시대상을 언급하면서 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먼 옛날의 서사시들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 없이도 세계가 쓸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또다시 같은 것을 알아차리는 건 너무 허망하다. 쓰라린 것이다.

- 91



하지만 행복한 시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행복한 시대의 지식인은 처세와 개인의 안락을 위한 저작을 남긴다. 키케로의 우정론은 웅변, , 서한, 철학을 망라하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라틴어 문학의 백미로 간주되는 글이다. 행복한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저작에는 삶의 긴장보다는 문체의 다채로움을 위한 노고가 깊게 배어 있고, 또 그것으로써 평가받는다.
- 48

 


그런데 행복한 시대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우호적이지는 않는 듯 읽힌다. 

 

로마적 세계가 실용적이라 함은 달리 말해서 합리성의 극단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기서 합리성을 가치가 포함된 것이나, 독일의 관념론자들이 말하는 사변적 합리성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성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ratio’의 본래의 뜻, 계산으로 파악해야 한다. 로마는 이성적이었으므로 계산이 분명한 사회였다.

- 43



독서 모임 내내 현대 지식인의 쓸쓸한 세계 인식, 고대 세계와 현대, 로마 시대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 중간중간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아래는 두서 없었던 내 의견의 일부다.

1. 인류가 이성을 가지는 순간, 쓸쓸하다는 감정은 운명처럼 깃든다. 이성이란 내가 아닌 나 밖의 외부 세계를 인식을 한다는 것을 뜻하며, 나와 외부 타자를 경계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이 지성을 가지는 순간부터, 인간은 나 밖으로 펼쳐진 자연을 객관화시킬 수 있고 질서를 부여하게 되었으며, 나와 타자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런데 이 지성(문명)의 시작은 '나'를 홀로 있게 한다. 쓸쓸한 자아는 이렇게 시작된다.

결국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존재(데카르트적 자아의 붕괴)가 되며, 그것으로 인해 외부 세계마저도 붕괴되는 현대로 이르게 된다. 마치 길가메시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듯, 인간의 이성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채 '이성의 붕괴'를 이야기하는 이성으로 전락하게 되는 포스트 모던에 이르게 되는...

2. 로마와 현대
역사적으로 현대와 가장 유사한 시대가 있었다면, 그것은 헬레니즘을 지나쳐가는 후기 로마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세계가 천천히 무너지고 사람들이 가상의 놀이문화에 빠져들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교육 제도가 붕괴되며 모든 일상 생활이 계약 관계로 성립되던 시기가 후기 로마였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깊이 없는(천박한) ratio에 기반해 있다. 현대도 이와 비슷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여러 학자들이 비판하는 도구적 이성의 본격적 시작도 이 로마 시대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로마적 행복의 귀결이 중세적 세계라면 과연 그것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가?   

로마 시대에 대한 탁월한 해설서는 제롬 카르코피노의 저서다. 보기 드물게 탁월한 역사책이다.

고대 로마의 일상 생활, 제롬 카르코피노 지음(우물이 있는 집)
http://intempus.tistory.com/889


2번째 독서 모임 '빡센'은 8월 첫번째 토요일 오후에 열린다. 혹시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책 '16세기 문화 혁명'을 읽고 참가하면 된다. 두서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야기할 거리를 가지고 와야할 것이다. (독서 모임에 대한 안내는 본 블로그 공지사항을 확인하거나 검색)



빡센의 첫 번째 책.

책과 세계 - 10점
강유원 지음/살림


빡센의 두 번째 책.

16세기 문화혁명 - 10점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남윤호 옮김/동아시아



Comment +2

  • 콩세알 2010.07.19 09:43 신고

    이렇게 정리된 걸 읽으니 또 새롭네요. 근데 '16세기 문화혁명'에 별다섯개네요. 저는 읽으면서 제가 손을 잘 못 든 것이 아닌가 슬~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근대에 대해 확실한 개념을 잡고 싶었고 지금도 그 주변 언저리에 있는 학자들, 현대 자본주의의 아버지인 학자들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 16세기라는 한정된 범위, 전환적 17세기 문앞을 확인해 두자는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너무 병렬적이라 학술서로서는 가치가 있겠으나 일반인들이 읽고 토론하기엔 좀 그렇지 않은가 싶기는해요. 그래도 항상 뚜껑을 열어보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기도 하는 것이 토론의 재미이니까 기대해 봅니다. 책과 세계에서 제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듯이...

    • 저도 읽기 시작했는데, 다들 읽으면서 어려워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인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근대를 이해하는 시기로 16세기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확실히 16세기는 과도기입니다. 12세기가 한 번의 과도기였다면(중세에서 근대로의 계단), 16세기는 중세와의 연결고리가 확실히 끊어지는 시기입니다(15세기가 아니라!). 그리고 17세기는 본격 근대의 시기입니다. 아마 8월 초 모임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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