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오래된 메모를 다시 한 번 살펴보다가 아래 문장을 읽었다. 유럽도 미국과 비슷하다. 아마 서구 선진국들은 다들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듯 싶다. 


“내가 미국에 40년 넘게 있었어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미국은 오묘한 힘이 있는 나라야. 한국 사람들 일 많이 한다고 하지만 미국 투자은행IB에 근무하는 사람들 보면 1주일 동안 100시간, 110시간 넘게 일해요. 최고의 로펌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100시간 이상 일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져요. 미국의 엘리트들을 보면 미국을 평가절하가더나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사람들의 마인드도 중요합니다. 내가 미국과 한국 양쪽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한국은 에너지 리스크가 커요. 서로 경쟁하다가 정작 꼭 달성해야 하는 목표에 쏟는 에너지를 뺏기는 거지. 자기 목표를 가지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고 사람들이 규범을 준수해야 해요. 그런 측면에서 나는 중국의 경제적 파워도 어느 순간에는 한계에 부딪힐 거라고 봐요. 정신적 선진화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요소입니다.” 

-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금융공학 교수(KRX 2013년 8월호 중에서) 



*월간 <KRX>는 한국증권거래소에 발간하던 잡지였는데, 지금은 폐간되었다. 계속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내가 수줍게 사랑하고 좋아했던 배우이자, 극작가이며, 소설가였던 샘 쉐퍼드Sam Shepard가 73세의 나이로, 수다스러우면서도 지독히 쓸쓸했던 이 세상과 헤어졌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그의 재능이며, 그의 언어가, 그의 표정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며 혼자 숨겨두었던 존재들이 나에겐 알려주지 않고 마음대로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모나드에서 모나드로 연결고리는 없겠지만, 모나드 바깥에선 단절된 모나드들을 볼 수 있으리라 한 때 생각했지만, 태어남-죽음은 하나의, 일체의 모나드임을. 

우리 각자는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아 정해진 궤도를 돌아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그 궤도가 얼마나 우아해질 수 있는지, 한 번 보여주자. 샘 쉐퍼드를 떠올리면서, 천천히 그의 부고 기사를 읽으며. (아. 젊었던 그가 나왔던 테렌스 멜릭의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은!! 혹은 줄리 델피와 함께 나왔던 <<Voyage>>는 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뉴스레터를 읽다, 그만 놀라고 말았다. 테슬라의 시가 총액이 GM이나 포드보다 많다는 사실에. 심지어 2016년에 net loss(순손실)이 발생했는데도. 


한편으로는 무척 부러웠다.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상품을 가진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문화가. 그만큼 투자 철학이나 투자 노하우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아마 대기업에게 잡아먹혔거나 문을 닫았을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기업 생태계는 나라 경제 시스템을 왜곡시키고 있지만, 나서서 해결하는 이가 없다.

또한 사업하기 무척 어려운 나라이고, 사업하다 잘못 되면 그냥 집안이 쑥대밭이 된다. 

그런데 나라에선 창업을 권한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을까! 


저 차트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The Reluctant Fundamentalist 

모신 하미드(지음), 왕은철(옮김), 민음사 




대화체로 이루어진 소설은 종종 군더더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깔끔하다. 이야기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이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대화 속에 등장할 뿐이다.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이야기를 매끄럽게 소화시켰다는 점에서 격찬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전 세계 테러 분위기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몇 번의 피해가 있었지만, 이는 전도 지상주의와 경쟁적이고 배타적 신앙심으로 무장한 이들로 인한 것으로 인해, 이슬람 문명에 대해 우리들의 반감은 적다. 


(특정 종교의 경우에는 이슬람 뿐만 아니라 모든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므로, 이 종교의 문제라고 보는 편이... ) 


이 소설은 파키스탄인의 대화로만 구성된다. 미국과 파키스탄을 오가며 서로를 이야기하는 목소리 속에 고뇌가 묻어나오지만, 동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느낌이랄까. 말을 하지만 행동은 없다. 어쩌면 소설의 형식 속에서 두 문명 사이에 끼인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사랑도 없고 문학도 없고 떠돌 뿐이다. 모든 일들은 그저 지나간 일들이고 회상될 뿐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른다. 


과격한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가 일상화되어 버린 미국와 북유럽에서 이 소설이 보여주었던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역자인 왕은철 교수는 '나의 번역문이 하미드의 세련된 산문을 우리말로 제대로 살려 냈는지 우려되긴 하지만, 그래도 불편한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용감한 소설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역자 후기를 마무리 짓는다. 세련된 산문이라, ... 아마 이 소설에 쏟아진 무수한 찬사는 뛰어난 문장도 한 몫 했을 텐데, 이를 느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 싶다. 대화체라서 더욱 그럴 듯 싶기도 하고, ... 영어로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공부하는 보수, 

이상돈(지음), 책세상 





서평집이다. 두껍다. 색인까지 포함하면 700페이지가 넘는다. 하지만 쉽게 읽힌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문제는 '보수'라는 단어인데, 이제는 그 단어가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생각할 때, 이명박 정권은 보수를 표방하고 들어선 첫 정권이었지만 독단적인 궁정 운영과 부패,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 실패한 정권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그런 오점을 청산하고 태어난 합리적인 보수정부이기를 기대했건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봐서는 더 이상 기대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한 보수정권은 부패했고, 또 다른 보수정권은 무능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허무하다. 

- 11쪽 ~ 12쪽  

 

그래서 이 책은 현 정권과 이전 보수 정권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어야 할 텐데,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박근혜 정권 하의 정책에 대한 언급은 가끔 보이긴 하나, 직접적이지 않다. 아마 이런저런 이해 관계 속에서 공격적인 발언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공격적인 비난 뒤에 올 여러 불이익을 감수할 자신이 없었던 듯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냥 서평집이다. 그것도 보수주의자들이 쓴 원서를 읽고 쓴 서평집(대부분 번역되지 않았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나는 우파다'라고 했더니 내 주위의 진보좌파들이 크게 웃었다. 그러니 다들 나를 진보로 볼 수 있을 텐데(나는 늘 좌파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지만), 보수주의 저자들 일색인 이 책에 대한 문제적이고 비판적 읽기는 쉽지 않다. 실은 한국에는 보수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 있다면 도리어 '종북좌파'로 불리는 이들이 서구에서 바라보는 바, 보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보수'라고 하면 새정치민주연합 정도가 될 것이고(중도 좌파가 아니라),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보수로 포장한 1950년대 정당같다는 느낌. 


저자들은 보수주의란 '중용과 전통, 그리고 합리성을 존중하며, 기존의 문화시스템 안에서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이라고 정의한다. 보수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진화적 변화를 추구하며,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정부 정책을 의심한다. 

- 230쪽 (Edwin Feulnet, Doug Wilson, <<Getting America Right: The True Conservative Values Our Nation Needs Today>>(Crown Forum, 2006)에 대한 서평, '올바른 보수정책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책들과 저자들도 미국 공화당과 보수 정권들에 대해 공격하고 심지어 진정한 의미로 보수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니까, 한국에서 보수정당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운 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읽을 만한가? 솔직히 나는 지난 1주일 동안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아마 내 주위의 진보주의자들이 읽으면 화들짝 놀랄 만한 내용도 많다. 가령 피터 스와이저Peter Schweizer의 <<내가 말한 대로 해: 진보의 위선적 모습 Do As I Say (Not As I Do): Profiles in Liberal Hypocrisy>>에 대한 리뷰 일부를 옮겨보자.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난한 사람과 소수인종과 여성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정의로운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보수주의자들이 탐욕스럽고 환경을 파괴하며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한다. 

- 333쪽 


 한국에서도 그런가? 잘 모르겠다(여기엔 내 개인적 경험까지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인 경우 위의 인용문처럼이겠지만, 한국 사회에선 일종의 희망 사항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자본가와 군대가 움직이는 '불량배 국가'이고 이스라엘은 '중동의 악'이라고 비난해서 명성을 얻은 MIT 명예교수 놈 촘스키는 전 세계 진보좌파에게 영웅과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40년 동안 국방부가 MIT에 지원한 암호 개발 프로젝트로 연구비를 받아왔다. 촘스키는 자기가 자본주의의 희생자인 가난한 민중을 대변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사실 그 자신은 매우 영악한 자본주의자다. 강연료와 인세 수입으로 인해 그는 소득이 전체 미국민의 상위 2퍼센트 안에 들 정도로 부자이다. 그는 보스턴 근교 레싱턴이라는 부자 동네의 85만 달러가 넘는 호화 주택에 살고 있으며, 케이프코드에 별장도 갖고 있다. 촘스키는 흑인과 여성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평생토록 주장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연구 스태프로는 백인 남성만 고용했다. 그는 9.11 태러 후 강연 요청이 많아지자 9,000달러 받던 1회 강연료를 1만 2,000달러로 올렸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자기가 낼 세금을 줄이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 334쪽 


내용이 선정적이어서 아마존에 뒤져보니, 표지도 선정적이다. 촘스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실생활을 까고 있다. 리뷰 평점은 나쁘지 않고 2006년 상반기에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인들도 진보주의자들(미국에선 liberals)에 이상하게 높은 절약정신과 도덕율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존 리뷰를 보니, '부자 리버럴이 보수주의자들보다 훨씬 낫다'며 이 책에 대해 별 하나를 주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은 번역되지 않는 걸까? 하긴 내 생각엔 자칭 한국에서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이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거나 다들 영어로만 책을 읽어서 그런 듯 싶다)



- 피터 스와이저의 책 표지. 유명한 사람들이 표지로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미국의 급진 세력을 대표하는 이들이 평등, 정의, 소비자 보호, 환경보호, 여성 해방 등을 내걸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사생활에서는 철저하게 개인적 이익을 챙긴 위선자들이라면서, 이제 이들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와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를 어느 보수신문이 종종 게재했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정치인들도 비슷한 주장을 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 적어도 보수 쪽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보수 쪽 사람들의 윤리 수준이 더 낮기 때문이다. 

- 337쪽 



아, 박근혜 정권은 아예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 저 센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으니 말이다(그러면서 보수 정권 어떠니, 종북 좌파 이야기를 해대는 이들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이 책에 소개되는 책들 대부분은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서서 미국과 세계 정세, 미국 정치, 이슬람, 유럽, 금융 위기를 바라보고 있다. 정말 흥미롭게도 그런 책들 일색이다. 이상돈 교수가 선호하는 저자들도 눈에 보이고 책들 중에서는 서로 비슷한 논지에서 중복되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읽는 중간 가끔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소개되는 책들 대부분이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지식인 사회에 국제 정세나 보수주의자들의 세계와는 참 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설 당시 51개였던 유엔 회원국은 1993년 무려 184개국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184개국 중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는 회원국은 75개국 뿐이니, 유엔에 속한 다수의 국가가 독재국가인 셈이다. 

- 447쪽 


아무런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유엔을 비난하는 책이라든가(부패했던 코피 아난에서 반기문 총장으로 바뀐 지금도 상황이 별반 나아진 듯 싶진 않지만), 세계 정치 구도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을 소개할 때면 무능하기만 한 한국을 보며 한숨만 나온다. 


파키스탄 대도시에서는 중국 사업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터키와 중국도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중국을 방문했고, 시진핑 중국 주석은 터키를 방문했다. 중국이 터키에 원전과 항국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두 나라의 경제 협력은 공고해지고 있다. 중국과 이란과의 관계도 깊어가고 있다. 중국은 이란이 수출하는 에너지의 최대 수입국이며, 이란은 중국에 에너지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나라이다. 

- 513쪽 



중국은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을 능가할 것이고 러시아는 냉전 시대 만큼은 아니라더라도 서유럽과 미국을 긴장시킬 수 있는 파워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에 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며, 미국으로선 이런 일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군은 국가 방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유럽, 일본, 한국 등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460쪽 



미군 철수는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미국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다. 즉 공화당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민주당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밖에서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국내 재정 적자나 줄이고 나라 살림이나 잘해라는 것이 미국 내 지식인들의 바람이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군비 축소가 이야기될 것이고 주한 미군 감축이나 철수는 미국이 먼저 통보할 것이다. 전시작전권 문제는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라면 당연히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인데, 이를 반대하는 게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이다. 그 중의 예비역 장성 한 명은 군사 기밀을 미국 회사에 돈을 받고 팔아넘겼으니..., 황당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이 강력하게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 아마 주한미군 주둔비용 전체를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믿는 바 보수정권이라고 했던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미 미국 내에선 세계 여기저기서 치른 전쟁에 대한 저항이 심각하고 세계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철수는 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조지 W. 부시는 성급하고도 오만한 전쟁을 벌여서 미국의 국력을 손상시켰고, 오바마는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다음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대외 관계에서 소극적으로 돌아선다면 이 세상 많은 곳이 보다 불안해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세계를 책임지는 '자비로운 제국Benevolent Empire' 행세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너무나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 519쪽 



그리고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이슬람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가 바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책들은 이슬람극단주의 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정책 실패와 함께 미디어 전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유대인은 졌고 이슬람이 이겼다고 진단한다. 더 나아가 서유럽 내 이슬람 인구의 증가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유럽 전체가 이슬람 지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다양성, 다원주의,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미덕으로 지키는 진보주의자들의 탓이다. 왜냐면 미국과 유럽의 진보주의자들이 믿는 이러한 미덕이 무슬림에겐 미덕이 아니며, 도리어 미국과 유럽 내에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또한 흥미롭게도 반유대주의가 서구 진보주의자들에게 넓게 퍼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또한 이슬람 세계에 대한 관용을 핑계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지만, 유럽 정치인들과 진보주의자들 때문에 무슬림 인구는 서유럽을 장악하고 있으며, 서유럽인들이 믿는 바 그 가치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책이 두껍다 보니, 서평도 길어지는데(실은 짧게 쓸 수 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ㅡ_ㅡ;), 그냥 한 번 읽어볼 만하다는 수준에서 마무리할까 한다(아마 손에 들면 놓지 못할 것이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실은 보수주의자들의 책이 거의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 다소 놀랍고(반대로 서구 진보적 지식인들의 책은 곧잘 번역되는 것과는 반대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보수주의가 자리잡지 못한 것이 어쩌면 현대 한국 사회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이상돈 교수를 야당에서 영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실은 야당이 서구적 의미에서의 보수주의 정당에 가깝지만,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중도 좌파 정당이라고 오해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문단만 옮긴다. 


우즈는 하이에크가 '호황과 버블 폭발'을 반복하는 경제 사이클의 근본 원인은 중앙 은행에 있다고 설파한 것이 정확한 분석이라고 말한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하이에크는 이자율을 낮춰서 경기 침체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하이에크는 침체Recession, 또는 공황Depression은 잘못된 투자 때문에 생긴 부작용을 교정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경제가 제 모습을 바로 찾는 것인데, 이자율을 낮추면 종국적으로 닥쳐올 붕괴Collapse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이라고 오래 전에 지적했다. 

- 611쪽 



최악의 경제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한국은 몇몇 글로벌 기업에 의지한지 꽤 되었다. 지난 정권부터 유독 심해졌는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너도나도 욕을 해댔던 노무현 정부가 그나마 살만했고 이명박 정권 이후는 엉망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더 큰 일은 지금 정부에서 경기 활성화 정책으로 내놓는 것들이 원조 보수주의자라고 평가되는 하이에크가 반대한 정책들이라는 점이다. 정녕 보수 정권인가 싶다. 진보 정권은 더더욱 아닌데 말이다. 


아마 다음 정권은 정말 잃어버린 10년을 되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되살려놓으면, 그제서야 제대로 된 입과 펜을 가지게 된 언론들이 나서서 공격을 해대며 기자라는 자존심으로 펜을 들었다며 으쓱거릴 게다. 그리고 너도나도 비난을 하는 통에 국민들도 함께 욕을 해댈 것이고,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았는가는 몇 년 후엔 다 잊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국민들의 잠재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음 정권도 계속 소위 말하는 보수 정권(미국의 관점에선 전혀 보수가 아닌)이 잡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무조건 다음 대선 때에는 야당이 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웃긴 짓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 국민들의 잠재력을 오판하고 있다. 화려하게 가짜 보수 정권이 부활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의 잠재력은 대단하다. 다들 지금 일동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 (아, 나는 정치 블로거가 아니야)


실은 한국은 정말 위험한 기로에 서 있는데,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과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정말 상황을 오판하고 있으며 한국의 미래를 진정 걱정하지 않는 듯 보이니, ... 거참, 내가 나라 걱정을 할 판인가. 이제 다시 40대 중반에 실업자 대열에 합류한 판국에. ㅡ_ㅡ;; 






공부하는 보수 - 8점
이상돈 지음/책세상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리더가 사라진 세계 Every Nation For Itself

이언 브레머(지음), 박세연(옮김), 다산북스 




Ian Bremmer



바로 이것이 G제로의 도전 과제다. 충돌을 사전에 예방하고, 세계 경제를 발전시키고, 지구의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장기적인 협약과 투자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공 건강에 대한 위협에 대처하고, 다양한 위기들을 슬기롭게 넘겨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기꺼이 총대를 메고 타협안을 강제할 능력과 의지를 지닌 리더가 필요하다.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국제적인 공동체들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현재의 상황을 ‘개선’해나갈 정치적, 경제적 힘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운전대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 30쪽



굳이 구분하자면 ‘국제 정치’에 대한 책이랄까. 우리에게 ‘국제 정치’라고 하면, 우리 일상과는 참 멀리 떨어진 이야기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갈수록 전 세계가 처해 있는 상황이 만만치 않고 이를 해결하기는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국제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이 한국이라는 나라에겐 매우 중요하며, 우리 일상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을 알게 된다. 


G제로 세계. 이언 브레머와 루니엘 루비니가 <포린 어페어>에서 처음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은 유로존을 지켜내기에 급급하다. 일본은 국내의 정치경제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힘겹다. 국제적으로 힘든 문제들을 해결할 시간, 자원, 정치적 역량을 가진 국가들이 없다. 반면 브라질, 중국, 인도와 같은 신흥강국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는 국가들간 경쟁에 대한 신뢰할 만한 해답도 없다. 이 신흥강국들은 자국의 발전에 관심이 많지만, 국외의 문제에는 무관심하다.”


“우리는 현재 'G-제로 세계'에 살고 있는데, 국제문제를 풀어갈 정치경제적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 단 하나의 국가 혹은 단일 경제블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국제 거시경제적 협력이나, 금융 규제 개혁, 무역 정책, 기후 변화와 같이 무척이나 중요한 국제적 사안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국가간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를 해결할 새로운 해법은 요원하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현금을 비축하면서 현재의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기업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기다림이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 출처: 위키피디아 재인용 / 원출처: Roubini, Nouriel, and Bremmer, Ian. "A G-Zero World", Foreign Affairs, March/April 2011



G 제로 세계의 대안으로 G2 세계(미국과 중국)가 이야기 -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하버드대 교수)은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단어까지 사용하지만 - 되고 있지만, 이언 브레머는 미국이 글로벌을 리드하기엔 많은 문제들을 극복해야 하고 중국은 그들 스스로 아직 역량 부족이라고 이야기한다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중국은 아직 사회주의 초기 단계에 있으며, 여전히 개발도상국입니다. 이것이 중국의 실제 상황이고, 솔직한 모습입니다.”

- 원자바오 (2010년 9월 UN총회 연설)


2010년,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두 번째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 7519달러로 전 세계 94위이며, 리투아니아의 절반이자 포르투칼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 49쪽



그리고 그는 <세계 경제 질서를 변화시킬 5가지 시나리오>라는 챕터에서 ‘G2: 미국과 중국의 공조체제’, ‘조화: G20이 제대로 굴러가는 세상’, ‘냉전2.0: 혹은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분열: 지역별로 나누어진 세계’, ‘시나리오X: G서브제로 등의 5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냉전2.0’이 ‘G2: 미국과 중국의 공조체제’보다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이야기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가 그의 동료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 닥터 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시장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유명한 뉴욕대 교수 - 보다 낙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측면에서 이 책도 일종의 묵시록처럼 읽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은 리더가 사라진 ‘G제로’ 시대를 따라가면서 국가 간, 대륙 간에 놓인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그것의 어려움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식량, 기후, 지역 분쟁, 미국/중국/유럽/일본/러시아/인도 등 주요 나라의 정세와 서로의 이해관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각 나라마다 그들이 생존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모색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국제 정세에 대해 이해가 없었던 독자에겐 매우 유용한 입문서이자, 탁월한 식견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제 정치에 대한 책이라고 해서 읽기 어려운 학술 서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읽기 쉬운 수필도 아니라는 점에서, 저자는 적절한 수준에서 독자들에게 깊은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책은 에세이와 같아야 한다. 에세이는 논평과 같아야 한다. 논평은 블로그 포스팅과 같아야 한다. 블로그 포스팅은 트윗과 같아야 한다. 그리고 트윗은 여태껏 한 번도 트윗되지 않은 새로운 글이어야 한다.

- 331쪽




리더가 사라진 세계

이언 브레머저 | 박세연역 | 다산북스 | 2014.02.25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콰이어트 Quiet - 8점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콰이어트Quiet, 수전 케인(지음), 김우열(옮김), RHK 



책을 읽은 지 벌써 2달이 지났고, 내 바쁜 일상은 이 책의 리뷰를 허락하지 않았다. 몇 장에 걸쳐 책의 내용을 메모해놓았으나, 기억이 가물가물한 걸 보면 이 책은 세계적인 명성에 비하면 다소 식상하고 너무 미국적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외향성이 강요되고 내향성은 회피된다. 미국의 교육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이는 고쳐야만 한다. 그리고 책은 이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례들과 저서들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이 미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 것은 그만큼 외향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외향성이 다소 강요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향성이 무시당하진 않는다. 적어도 내 경험 상에선. 


하지만 앞으로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육의 핵심은 지도자들이 자신감 있게 행동해야 하고 불완전한 정보를 토대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82쪽)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듯이 한국 사회도 외향성으로 물결치는 사회는 아닐까? 불완전한 정보를 토대로 큰 목소리로 상대방을 몰아 부치면서 결정 내리는 사람들이 득세하게 되는 건 아닐까? 



영향력 있는 문화역사가 워런 서스먼Warren Susman에 따르면 미국은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로 전환했고, 결코 회복하지 못할 개인적 불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인격의 문화에서 이상적인 자아는 진지하고 자제력 있고 명예로운 사람이었다.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어떤 인상을 주느냐가 아니라 홀로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였다. (…) 하지만 ‘성격의 문화’를 수용한 뒤로, 미국인들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46쪽)



‘성격의 문화’에 대해선 찰스 테일러의 <불안한 현대 사회>(이학사)에서 접해 본 바 있었다. 지극히 미국적인 단어인데, 흥미롭게도 전 세계적인 추세가 된 듯 싶다. 외향성이란 결국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며,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나를 변화시키려는 (불행한) 시도들의 집합일까? 


최근 갑자기 늘어난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이제 외향성의 가면 속에 숨는 것이 요즘 자라나는 세대들에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알게 되면서, 한국 사회도 점점 불행해질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건 내 삐딱한 시선 탓이라고 여기고 싶다. 


이 책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한국 사회가 마주하게 될 흥미로운 사태에 대한 맛보기일지도 모르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 이책 리뷰를 최근 며칠사이에 두번을 보네요. 어서 주문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한국은 제 생각에는 이미 성격의 문화에 들어섰다 생각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급증한 것은 팽배해있던 문화에 대한 반영이라 여겨지구요. 인구대비 1위라는 성형수술도 성격의 문화의 한 예일테구요.

    • 무척 시사적인 책이었습니다. ~ 재미있긴 했지만, 명성에 비해 과대 포장되었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이 지구 상에는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과 예술 작품들이 있을까? …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아찔해진다. 내가 읽었고 보았던 작품은 극히 일부였고, 그 일부만으로도 내 삶은 변화되었고 내 마음은 감동받았으니, 나는 내가 변할 수 있고 감동받을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니 말이다.

서가에 쌓여있던 종이 뭉치들을 정리하다가 2008년에 있었던 쥴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 아시아 순회전 전시 소개 프린트물을 발견했다. 바스키아의 친구로 더 유명한 슈나벨은 1980년대 미국 New Painting의 대표 작가였다.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해졌지만. (역시 영화는 대중적인 매체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감독 슈나벨로 나오는 것이 더 많구나)

갤러리 현대에서 작성한 전시 소개 글을 옮기면서, 줄리앙 슈나벨의 작품들에 대해 되새겨 본다.

1980년대 미국 뉴 페인팅(New Painting)의 대표주자 줄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의 최초의 아시아 순회 회고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9월 베이징(Beijing World Art Museum, 9월 12일 ~ 10월 19일)을 시작으로 홍콩(10 Chancery Lane Gallery, 11월 6일 ~ 11월 27일), 상하이(Shanghai Zendai Museum of Modern Art, 2008년 1월 19일 ~ 2월 18일)를 거쳐 3월 서울(Gallery HYUNDAI, 3월 19일 ~ 4월 6일)에서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전세계인의 이목을 주목시켰던 접시 회화(Plate Painting), 블랙페인팅(Black Painting)을 비롯하여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의 대표작 30여 점이 소개된다.

슈나벨은 현재 55세로, 1980년대 미국 뉴 페인팅을 선도하였다. 그는 캔버스 대신 도자기가 붙어 있는 표면, 동물가죽, 벨벳, 타르를 칠한 천 등의 특별한 질감을 가진 바탕에 화려한 색채의 공격적이고 과감한 스타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대형 사이즈의 작품과 매체에 대한 주목이 그를 동시대 미술 시장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게 하였다. 1979년 뉴욕 최고의 화랑 메리 분 갤러리(Mary Boone Gallery)에서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제 미술계에 발을 내딛은 슈나벨의 작품은 전세계 미술관과 주요 컬렉터들에게 소장되어 있다.

슈나벨은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영화 감독으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동료 작가 바스키아의 인생을 그린 <바스키아Basquiat>를 연출해 주목을 받았으며, 최근 2007 칸느 영화제에서 <잠수 종과 나비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번 아시아 순회전은 서울의 갤러리 현대와 뉴욕의 아트 컨설팅업체인 포춘 쿠기 프로젝트(Fortune Cookie Project)가 공동 기획했으며 슈나벨 작가 스튜디오의 협조로 모든 전시되는 작품은 작가 컬렉션이다.


슈나벨의 작품은 아래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 갤러리 현대의 쥴리앙 슈나벨 전시 관련 웹페이지
http://www.galleryhyundai.com/kor/exhibitions/introduction.asp?SiteNum=1&ArtistsPK=&ExhibitionsPK=21&iExhibitKind=P 

- 쥴리앙 슈나벨 웹사이트 내 Painting 작품 페이지
http://www.julianschnabel.com/category/paintings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이런 예측과 관련된 분석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사실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하나는 분석의 틀을 장기적인 경제 트렌드의 이면에 있는 딥 팩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석 방법으로 경제 체제의 역학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들은 최종 결과로 나타나는 숫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들이 어떻게 서로 어긋나지 않고 잘 맞아 떨어지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302쪽



저자는 딥팩터Deep Factor라고 이야기하는 국가의 지리적 위치, 기후, 문화, 정치 그리고 역사적 사건에 의해 형성된 것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를 예측하고 있다.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한 중국 경제의 성장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며, EU의 문화적, 정치적 다양성으로 인해 바람직한 방향의 경제 통합나 성장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재정 적자와 부채, 실업율 등으로 불안하기만 한 미국 경제에 대해 다소 낙관적인 의견을 보이며, 라이프스타일 허브 도시의 등장, 미들맨(중개인)의 부상 등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하지만 기대 했던 것만큼 통찰력이 있거나 놀라운 견해들을 이야기한 책은 아니었다. 최근에 읽은 레베카 코스타의 <지금, 경계선에서>(쌤앤파커스)에서 나타난 바의 그러한 통찰이나 견해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문화, 사회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경제 현상들을 설명해내는 저자의 시각이 다른 경제 서적과의 차별점을 만들어주는 듯하지만, 대단히 깊이 있게 파고든 저작은 아니다. 전문 연구자의 글쓰기라기 보다는 글 잘 쓰는 칼럼리스트의 글쓰기라고 할까. 이 점에서 책은 쉽게 읽히나 종종 스치듯 많은 정보들을 나열하기 바쁜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한 나라의 경제가 잘 되기 위해서는 경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즉 전직 CEO 출신의 대통령을 가진 현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주력했지만, 실은 경제를 살리고 죽이는 것은 경제 영역이 아니라 다른 영역들을 아니었을까 반문하게 된다. 2009년 유종일 교수는 <위기의 경제>(생각의 나무)라는 책을 통해 중요한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련지는 의문스럽다.

결국에는 딥팩터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경제 번영의 장기적 영속성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 점에서 저자인 대니얼 앨트먼은 현대 비즈니스의 트렌드나 기조(태도)를 만들고, 이제 세계적인 공용어가 된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이 가장 유리하다고 여기고 있다.



관련도서 리뷰
2011/06/26 - [책들의 우주/이론] - 지금 경계선에서, 레베카 코스타
2009/02/01 - [책들의 우주/비즈] - 위기의 경제, 유종일


10년 후 미래 - 8점
다니엘 앨트먼 지음, 고영태 옮김/청림출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조안 미첼 Joan Mitchell - Drawings
October 22 to November 22, 2009
국제갤러리 Kukje Gallery


출처: http://www.upliftmagazine.com/uplift/tag/joan-mitchell/ 


“나는 내 안에 지니고 있는 풍경을 기억해 내어 그립니다. 그러는 동안 그것들은 변모되기도 합니다. 자연은 그 자체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나는 그것을 더 낫게 그리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그대로 표현할 능력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나는 그저 자연이 내게 남기는 것을 그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추상 미술의 역사는 채 100년을 넘어서고 있을 뿐이다. 등장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혁명적인 접근이었다. 하지만 어느 추상 미술은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다양한 매체가 등장한 탓도 있겠지만, 모더니즘 미술의 지성주의는 추상 미술에 그 극점에 다다르게 되었고 그 저항에 부딪힌 것이다. (아니면 모더니즘 미술의 추상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한계에 직면하여 새로운 국면 전환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새로운 형태의 구상 회화를 불러온 것일지도 모르리라.)


JOAN MITCHELL
New York. Robert Miller Gallery / Kertess (조안 미첼 화집 표지임)


그래서 국내에서 만나는 조안 미첼의 작품은 더욱 반갑다. 색채와 율동, 평면성 위의 운동 속에서 그려내는 자연과 그 속에 담긴 인생.
조안 미첼만이 가질 수 있는 색채의 율동은 그녀를 다른 추상(표현주의) 작가들과 어떻게 다른가를 드러낸다.



미첼은 1940년대 당시 전혀 새로운 회화적 표현이었던 추상표현주의를 20세기의 중요한 예술적 사조들 중 하나로 발전시킨 선배 작가들의 뒤를 이어 추상회화의 새로운 스타일을 확장하고 번창하도록 도왔다. 나아가 회화라는 신체적 행위에 대한 깊은 행위와 사명감을 바탕으로 특유의 화법과 색채를 구현했다. 남성 작가 못지 않은 힘찬 붓 놀림과 춤추는 듯한 섬세한 색채의 조합이 표현된 미첼의 작품은 생의 의욕과 충만감을 북돋운다.
 - 전시 설명문에서 인용함.




이렇듯 그녀는 윌리엄 드 쿠닝, 잭슨 폴록과 같은 추상 표현주의 선배들과 교류하였으며, 보기 드문 여성 작가들 중의 한 명으로, 뉴욕을 넘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이 전시는 국제 갤러리에서의 2번째 전시다.

Merci, 1992
출처:
http://brittanystiles.blogspot.com/2010/12/joan-mitchell-at-gagosian.html 



tip. 전시 관람 가이드
이 전시는 다소 어려울 지 모르겠다. 이 전시에서는 한 가지만 보자. 어떤 크기의 붓으로 어떻게 그렸을까? 그리고 전시장을 나와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이 어떻게 그려졌는가를 찾아보자. 평면 위에 어떤 특정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그리는(?) 방법이 왜 중요한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이 복잡하고 난해하게 보이는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작은 단초가 될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일본의 재구성 - 10점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마티



일본의 재구성
패트릭 스미스(지음), 노시내(옮김), 마티, 2008




1. 일본과 한국, 그 닮음에 대해


이 책을 읽고 있는, 그리고 읽었던 일본인은 이 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까? 하긴 나도 박노자의 책을 읽고 우리 한국인들, 우리들의 가치관, 그리고 우리들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뜨끔했다. 한국인 스스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박노자는 자신이 살아왔던 서양 세계의 가치관대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트릭 스미스의 이 책은 박노자가 한국, 한국인에 대해 묻는 것 이상으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분석하고 따져 묻는다. 그리고 많은 문헌들과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은 그 동안 나왔던 일본학이 얼마나 허구적이며 오리엔탈리즘에 젖어있었는가를 드러낸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매우 불편했고 아팠다. 그리고 가끔은 일본 속에 숨어있는 한국과 만나기도 했다. 가령,

모든 것이 공산주의 견제라는 이름 아래 희생당했다. 우익 국가주의자의 제거가 중단되었고 미국의 국익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자들은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시아 대륙 침략을 후원하고 전쟁 물자를 공급했던 족벌 경영 체제의 재벌을 해체하려던 계획도 무산되었다. 1948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전戰前 일본의 재벌 세력은 모두 제자리로 복귀했고 구시대의 정치엘리트 세력들이 다시금 일본을 다스리기 시작했다.(35쪽)


한국의 상황과 꽤 유사하지 않은가. 한국에서도 똑같이 일제 식민지의 순사가 바로 한국 정부의 경찰이 되었던 시기였다. 그러는 동안, 김구가 암살당하고 임시정부에 속해있던 중도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소외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임시정부는 국제적 승인에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현실 공간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한 공로는 1948년 8월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책자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광복 대신 건국에 방점을 찍는 순간 시작된 일의 사소한 과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선 할 말도 많고 종종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이 책과는 대체로 무관한 내용이다.

최근 정치적 상황이나 정부와 여당의 정책 방향은 도를 지나쳐, 잘못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과거와 소란스럽긴 하지만 나름대로 악전고투하고 있는 현재 사이의 갈등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잘못된 과거로 돌아가길 염원하는 듯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러한 과거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다수의 법들과 다양한 제재 장치들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잘못된 과거 속에서는 이 책에서 언급하는 근대 일본의 유산과 전통도 포함되어 있다. 전쟁 전 식민지 세대들 중 일부는 일본어로 황국신민교육을 받고 자라났으며, 그들 극히 일부는 광복 한국을 아주 부정적으로 보았을 것이고, 일본어로 생각하고 쓰고 읽는 것이 더 편했을 것이며(http://intempus.tistory.com/790),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천황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들 후손들에게 그런 생각의 일부는 남겨놓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은연 중에 이어져 오는 것은 아닐까? 내 생각이 매우 위험한 가설에 지나지 않겠지만서도.

현대 일본이 그들만의 독자적인 과거사를 정립하지 못하고 과거사에 있어서는 중국과 한국에 대해 열등감을, 근대 이후에는 서양 국가에 대한 열등감을 숨기지 못하는 것은, 근대 이후 일본이 한 번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한국은 조금 유리한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쨋든 악전고투 끝에 민주주의를 이루었으니까. 하지만 최근 정부와 여당의 여러 정책들은 다소(혹은 매우) 위험해 보일 정도로 과거 회귀적임을, 더구나 대다수의 역사학자들까지 반대하는 역사 교과서 수정 문제나 한국 정부의 정통성 부분 등, 일본의 정치가들이 그랬듯이 한국의 정치가들도 그렇게 새롭게 채색된 한국의 가면을 만드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2. 일본의 근대(Modern), 그리고 근대적 자아

현대
일본은 이러한 과정 속에도 다수의 학자들은 서양의 근대를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한국에 번역 소개되는 무수한 서양 번역서들 대부분이 일차적으로 일본에서 수입되었고 최근까지도 국역본 대부분은 먼저 번역된 일본 번역본에 의존했음을 떠올린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근대의 초극’이라는 표현을 20세기 초반에 사용하기도 했으며, 가라타니 고진같은 비평가는 세계적인 지명도가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스타급 대우를 받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아래의 인용문은 낯설다.

일본인은 루소나 존 스튜어트 밀 같은 무수한 계몽시대 사상가들의 저서를 읽으며 근대를 시작했다. 그러고는 읽은 책과 그 속에 담긴 사상을 한쪽으로 제쳐두었다. 근대 경제는 이룩했으나 (여러 측면으로 미루어 보건데) 근대사회는 이룩하지 못했고, 패전 후 황국신민이 아닌 시민이 되었으나 참여할 만한 시민사회는 형성하지 못했고, 민주주의의 조직은 갖추었으나 민주주의는 이루지 못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뭐라고 정의하든 간에 일본은 절대로 포스트모던이라 할 수 없다. 고도의 테크놀로지와 미래에 대한 환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체로 포스트모던이 아니라 프리pre-모던, 즉 전근대이다. (313쪽~314쪽)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과 실제 일본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가 아는 일본은 책이나 잡지, 혹은 만화나 영화로 만나는 가면으로서의 일본(수출용 일본), 또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으로 탈색된, 혹은 변장된 일본일 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19세기 일본의 정치가들이 먼저 시작했으며, 패전 이후에는 미국의 주도적인 역할과 많은 역사학자들이 관여했고, 그러다가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세대의 포스트모던으로 넘어가버렸다. 재일한국인과 같은 외국인(백인이 아닌), 일본 내의 부락민,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립국가였던 오키나와 등 자신들 내부에 많은 차별을 만들어놓고 있으면서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인 스스로도 이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전반적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일본인 스스로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주체성, 또는 근대적 자아)이 가장 거대한 문제일 지도 모른다.

외국인이 제일 빨리 깨닫는 일본인의 특징은 남에게나 자신에게 진심을 숨기는 습관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인은 전부 가면을 쓰고 있고 각자 가면 쓰는 법을 배운다. 이 가면을 통해일본인은 남들과 가까이 살면서도 떨어져 사는 방법을 배운다. 일본이 이상하게 속이 텅 비고 모호하여 표면은 잔잔하고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밑으로는 갈등과 긴장, 역류와 불안감이 잔뜩 존재하고 있다.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늘 그래왔다. 단지 최근에 와서 마치 뚜껑이 열린 듯 가면의 일부가 벗겨진 듯, 그 현상이 좀더 뚜렷해졌을 뿐이다.
(74쪽)


일본인에게 자기 자신이 된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사랑 표현을 쉽게 하는 한국인이 낯선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러나 일본인이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그렇지 않고 일본 내의 부락민 운동하는 이들도 그렇지 않다고 패트릭 스미스는 말한다. 가면을 쓰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는 사회로 일본인들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채 와버린 셈이다.


개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가장 자유주의적인 사람들조차 개인을 민족국가 개념에 끌어다 붙였다. 후쿠자와의 실수, 즉 “한 개인이 된다는 것은 일본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보는 실수는 이후에도 여러 번 되풀이되었다. (112쪽)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이 아닌 채, 정치적으로 과장되고 의도되어진 일본인은 경제 발전에 몸을 내던지는 근대 무사의 모습에서, 전쟁 중의 일본 군인, 그리고 현대 기업의 직장인의 모습 등으로 변화하지만,  어느 것 속에서도 '스스로의 나 자신'은 없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인물들이 한결같이 외롭고 쓸쓸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나 혼자, 나 혼자만의 생각과 감정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것, 그것은 외롭고 쓸쓸한 일상을 견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세키는 다채롭게 살았던 경험에서 얻은 통찰을 뒤로하고 도망가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세상이 시골과 도시, 전통과 근대, 외국과 일본, 하는 식으로 우열로 나뉘는 집단들의 집합체라는 일반적인 시각을 그는 거부했다. ‘자기다워진다’는 것, 즉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만큼이나 불투명한 과제가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소세키 이후 그의 신념을 공유하는 일본인은 거의 없었다.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일본은 소세키가 제시했던 ‘진실’에 걸맞게 살아갈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인다.(376쪽 - 377쪽)


그리고 이러는 동안 일본인들은, '지금도 일본인들은 소속감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그 그물망 안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121쪽) 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뿐이다.

20세기 초반에 어느 일본 작가가 요염하고 매혹적인 것을 뜻하는 ‘비타이’라는 일본인 특유의 미적 감각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기대하며 기다리는 상태를 선호하며, 욕망의 대상과 가능한 거리를 좁히되 목적을 달성하지 않은 채 가까이에서 최대한 목적 실현의 가능성을 음미하는 것이 ‘비타이’에서 얻는 쾌감의 진수라는 것이다. 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타자는 영원히 타자이다. 꿈꾸는 상태가 실현되는 것보다 나은 모양이다. (21쪽)


그래서 어떤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일본인들은 스스로의 기분을 만끽한다. 꼭 히로히토 천황의 연설 전과 연설 후의 모습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도, 일본인 스스로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어쩌면 역사적으로 두려워하게끔 만든 것일 수도).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자서전은 일본이 항복한 날을 다음과 같이 놀랍게 묘사한다. 그날 구로사와는 스튜디오로 와서 히로히토의 항복연설을 들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스튜디오로 가는 길에 도쿄 시내를 걸어서 통과하던 구로사와의 눈에는 온 국민이 고귀한 일본정신인 국체와 덴노의 명예를 위해 금방이라도 죽을 각오인 것처럼 보였다. 다들 “경황이 없었다. 일본도를 빼들고 앉아 칼날을 망연자실 내려다보는 상점주인도 있었다.” 젊은 구로사와는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히로히토의 연설을 들었다. 그를 포함한 7,000만 명의 일본인은 히로히토의 목소리를 그날 생전 처음 들었다. 그리고 구로사와는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집에 돌아갈 때는 거리 분위기가 일변해 있었다. 상점가 사람들은 마치 다음날 있을 축제라도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들뜬 표정으로 소란스러웠다." (303쪽 ~ 304쪽)



3. 진짜 일본을 찾아가는 일본 현대 문학


하지만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은 않았다.

오에가 말했다. “저는 작가로서 보통사람들이 사는 주변부에 관심이 있습니다.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일본인의 내면적 자아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주변부야말로 진정한 일본 문화가 그렇지 않은 것과 함께 변천해가는 곳이지요.” (392쪽)


오에 겐자부로의 저 말처럼, 한국인들이 냉전과 독재 속에서 악전고투하여 민주주의를 얻어내었다면, 똑같이 일본인들도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아직 소수에 지나지 않더라도. 하지만 한국에서도 진짜 일본을 그려보여주었던 오에 겐자부로 대신 무라카미 하루키를 선택했듯이, 일본도 그런 것은 아닌까 걱정스럽다.

오에 겐자부로의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은, 드디어 전 세계가 일본과 일본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중략) 그러나 일본 국내에서는 변한 게 없었다. 오에의 소설이 선명하게 보여주듯 오에 세대와 나머지 일본인들 간의 간극은 넓어지기만 했다. 오에가 스톡홀름으로 향할 즈음에는 오에나 아베 코보(1993년 사망)는 일본 문학계에서 멸종된 공룡에 속했다. 노벨상 수상 이후 미처 거장을 알아보지 못한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아키히토는 서둘러 오에에게 덴노상을 수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덴노상은 자기 작품 속에서 극복의 대상이 되는 문화를 상징했으므로 오에는 이를 거부했다. 아키히토가 괜히 어색한 원조를 시도했다가 자국 최고의 작가들을 소외시키는 은밀한 현상을 드러내버린 꼴이었다.  (394쪽)


작품성으로나 문학적 위상으로나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애초부터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에 겐자부로가 어른이라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갓 유치원을 졸업한 초등학생 저학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이라는 간판은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대한 소설가로 올려주는 국내의 모 문학잡지나 평론가들을 보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실은 그들의 형편없는 상업주의와 감식안을 탓해야 할 것이다 나도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선 몇 년 전에 작은 평문을 쓴 적이 있었다. 하루키 문학은 본격 문학이라기 보다는 상업 문학에 가깝고, 이 점을 인정한 후 그나마 있는 가치에 대해서 적으려고 노력했던 글이다. 하루키, 또는 현대적 삶 - http://intempus.tistory.com/135)

그렇다면 패트릭 스미스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포스트모던 작품에 공통된 맥락은 ‘의도적 무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스로를 “오리지널”이라 일컫는다. “내가 내 소설을 위해 완전히 독자적으로 새로운 일본어를 창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꼭 그렇게 선언되어야 진정한 독창성인가?  (중략) 등장인물이 생활하는 환경에 관한 묘사를 거부하고, 일본에 대해 쓴다고 하면서 일본에 대한 진솔한 묘사를 작품에서 실종시키는 작가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398쪽)

그에게 과거란 무관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모방이나 죽은 전통에서 탈피하라는 과제에 대한 무라카미의 해답은,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에서 아예 통째로 탈피하는 것이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일본이라는 문제 많은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일본을 외국인처럼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일본 바깥에서 일본사회에 대해 쓰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지나치게 ‘일본적’인 부분을 하나씩 전부 던져버린 후에도 남아있는 것이 일본인의 본성이 아닐는지요.” 말도 안 되고 근거도 없는 역설이다. 지나치게 일본적인 부분? 뿌리 깊은 열등감이 또 한 차례 등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다 무라카미도 십 년 후에는 감상적인 국가주의자로 변모해버리는 게 아닐까. (397쪽)


패트릭 스미스는 '나쓰메 소세키 - 아베 코보 - 오에 겐자부로'를 분명히 한다. 나도 여기에 대해서 100% 동의한다. 이 세 명의 소설가는 일본 근현대 문학의 최정수이다(반드시 읽어야 하는 소설가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 옆에 슬픈 소설가 두 명 있다면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금각사'의 미시마 유키오다. 

 

미시마 유키오가 자살하기 몇 해 전인 1960년대 후반, 프랑스 텔레비전 방송국의 외국인 특파원이 취재차 도쿄 남쪽 해변에 위치한 미시마의 집을 방문했다. 미시마가 사는 집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 특파원이 털어놓았다. 당시 골수 국수주의자였던 미시마의 집은 번지르르한 서양 저택이었다. 프랑스식 문에, 연철로 만들어진 발코니에, 정원에는 오르페우스 조각상이 서 있었다. “온 집안을 둘러봐도 특별히 일본적인 물건을 찾아볼 수 없네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파원이 미시마에게 물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빼면 전부 일제예요.” 미시마의 대답이었다.(292쪽)

일본인들이 과거라는 감옥을 만들어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는 점, 그리고 일본정신이란 관념이 바로 그 감옥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미시마는 잘 알고 있었다.(293쪽)

“실패한 비극배우라 함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나는 열심히 사람들을 울리려고 무대에 나가는데 사람들은 모두 박장대소하는군.” (384쪽에서 재인용)

과거가 현대에 대한 보호막이기를 원하던 그 꿈은 미시마, 가와바타와 함께 죽어버렸다. 이제 앞으로 그들과 같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루지 못한 꿈’이 하나 더 있다. 침묵하는 과거와 불협화음 가득한 현재가 뒤섞인 일본을 그저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싶은 꿈 말이다. 과연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일본 소설가들이 재능은 있어도 탁월한 정상급 작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84쪽)


문득 '위대한 전통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다'는 표현이 떠오른다. 예전 미술사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이다. 문제 많은 일본 옆에 문제 많은 상태에서 문제 더 만들고 있는 한국. 흥미로운 조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의 미래에 대해서 낙관할 수 있을까. 페트릭 스미스는 적어도 그렇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보건데, 쉽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리더들이 바뀌지 않는 이상 말이다.(이는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4. 숨겨진 일본

도카이도는 근대 일본을 둘로 나누는 경계이다. 태평양과 도카이도 사이에 놓인 지역이 ‘오모테니혼’ 즉 일본의 얼굴이고, 나머지 지역이 일본의 등에 해당하는 ‘우라니혼’이다. 메이지유신이 이런 구분을 새로 탄생시킨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지리적 구분에 격변을 일으켰다고 보는 편이 옳다. 중국에서 문물을 수용하던 수세기 동안 일본의 앞면은 거꾸로 동해 쪽이고 태평양 쪽이 뒷면이었다. 그러다 일본이 19세기에 서구로 눈을 돌리면서 앞뒤가 바뀐 것이다. 도카이도의 한쪽이 근대화되는 동안 다른 한쪽은 과거에 멈춰야 했다.
요즘 ‘우라니혼’은 약간 실례되는 말이다. (중략) ‘숨겨진 일본’이라고 번역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우라니혼은 시골이다. 대나무 수, 계단식 논, 단선철로, 반딧불, 지푸라기 냄새, 가열처리 안 한 곡주가 있는 곳이며 근대 일본인이 있는 힘을 다해 벗어나려 노력했던 곳이다. (254쪽)  


'오모테니혼'과 '우라니혼'의 대비. 다소 낯설지만, 근대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되는 도시과 농촌 사이의 갈등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근대적 일본’이 ‘전근대적 일본’에 돈을 주어가며 진보를 막는 모습을 보면 그런 행태가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 알 수 있다. 시골을 박물관으로 만들고 시골사람들을 전시물의 일부로 삼아 자신이 옛날 그대로 순수한 존재라는 환상을 조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64쪽)


그런데 한국도 이렇게 변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벌써 이렇게 변한 것은 아닐까. 우라니혼은 오모테니혼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종의 타자인 셈이다. 그리고 일본 안에는 많은 타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에서 열린 피아노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한국에 갔습니다. 그때 3주 정도 한국에 머물렀는데, 사람 사는 후텁지근한 냄새가 나던 것과 빨리 일본에 돌아오고 싶던 것이 기억납니다. 두 번째로 한국에 갔을 때는 1980년 대학교 1학년 봄방학 때였습니다. 진정한 내 조국은 한국이라는 생각으로 한국에 갔는데 오히려 제 자신이 얼마나 일본적인지 강렬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416쪽~417쪽에서 재인용) 


1981년 22세의 나이로 지문날인을 거부한 이후 내내 일본 법정을 들락거린 최선애의 법정 진술의 일부다. 꼭 소설가 유미리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그런데 한국도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이 타자에 대해서 배타적이라면, 한국 사회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일본 사람들은 느리지만, 한발한발 앞으로 나가고 있는 듯 보인다. 책의 결말은 일본과 미국을 향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일본, 일본인을 보라는 것이다. 그 다음은 전적으로 일본인들의 책임이다. 하긴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 글을 쓰고 다듬다 보니, 어느새 2009년이 되어버렸다. 지금 여의도와 종로에서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무수한 인파들 속에서 촛불을 든 이들이 있을 것이다. 흥미롭다. 어째서 정치인들은 19세기나 20세기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토록 변한 것이 없는 것일까.

*      *  

책은 매우 두껍고 방대하며 많은 문헌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은 리뷰를 이렇게 길게 적을 생각은 없었다. 글이 길어지면 초점이 흐려지고 지루해진다. 따라서 위 글도 그러하리라 싶다. 그만큼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으며 한국, 한국사회, 한국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던 책이라 여겨진다. 또한 일본인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늘 일본인을 만날 때나 볼 때 뭔가 애잔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 더 심해졌다. 내년에는 반드시 일본 여행을 갈 생각이다.

그리고 이 두꺼운 책을 번역하신 noi님에도 감사를. noi님은 이 불성실한 독자를 위해 기꺼이 번역한 책을 보내주셨다. 2009년 최초의 포스팅은 noi님께서 번역하신 책의 리뷰가 되었다. : )  2009년 속을 살아갈 한국과 일본의 모든 개인들이여, 파이팅Fighting~!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5

  • 크롬차 2009.01.01 19:13 신고

    글 잘 읽었습니다~(__) 특히 고도의 테크놀로지와 미래에 대한 환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체로 포스트모던이 아니라 프리pre-모던, 즉 전근대이다~라는 말이 의미 심장하게 느껴지네요...쩝, 저도 일본은 한번쯤 가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엔고로 인해서 고민이 많이 되네요 ㅎㅎ 가본곳이라고는 네팔이나 방글라데시 혹은 태국 밖에 없으니~자주 들리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
      엔고 정말 걱정입니다. ㅡ_ㅡ;; 2009년에는 환율 문제 제발 해결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 2009.01.03 12:39

    비밀댓글입니다

  • 일본의 재구성을 읽는다 읽는다 하면서도 계속 밀쳐두고 망설이기만 했었는데 오늘에야 주문을 했네요. 이렇게 상세하게 감상기를 올리셔서 읽는 데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아요. 정말 번드르르하기만 하고 어렵기만 한 일본학 서적보다 훨씬 더 사람의 마음을 울릴 것 같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원래 무라카미 하루키를 싫어했는데, 역시 저자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 무척 좋은 책입니다. 한국, 그리고 한국사람들에 대해서도 이런 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네요. 패스츄리님의 댓글 덕분에 저도 이 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KBS 민경욱 기자가 귀국했다면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3년 동안 있으면서 느꼈던 것을 적었는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버지니아 공대에 추모석이 있는데, 32명의 희생자와 함께 조 씨의 것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술을 마시면서 한국은 일본을 보면서 그들의 장점을 배워야 하고 중국을 보면서 그들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고 열을 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들의 장점을 보기 보다는 단점부터 먼저 보고 멀리하려고 하니, 큰 문제인 듯 싶다.

민경욱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을 다시 느끼게 한다.  

[민경욱의 워싱턴 리포트] 미움과 한풀이의 유혹
http://news.kbs.co.kr/bbs/exec/ps00404.php?bid=134&id=828 


신고

Comment +0

늦은 봄날의 일상

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서양철학사, 윌리엄 사하키안
서양철학사, 윌리엄 사하키안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