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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내리는 마산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도로 옆 수백억 짜리 골리앗 크레인은 어느 신문기사에서처럼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 텅 빈 자리엔 무엇이 들어올까.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따뜻한 평화를 뜻하는 걸까, 

아니면 또다른 아픔을 알리는 신호일까.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마음 한 켠의 불편함과 불안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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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이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모한 용기에 뒤이어 오는 경제적 고초와 무참한 절망, 패배감이 아니라 빠르고 현명한 포기였다. 그리고 그 포기 대신 내 포기는 종북들과 빨갱이들 때문으로 몰아가면 되었다. 지난 잃어버린 10년 정권으로 인한 것이면 되었다. 헬조선도 경제에 뛰어나지 못한 진보 정권으로 인한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엎지르진 물이고 뒤짚기엔 너무 강력하다. 그러니 왜 나에게 꿈과 희망을 밀어넣는가! 나에게 필요한 건 한 끼 밥과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와 종편 TV에서 틀어대는, 나보다 불쌍하고 처참한 북한 사람들의 실상이다. 


갑자기 추워진 29일 오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청계광장으로 가는 길은 을씨년스러웠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몇 블럭 떨어진 곳까지 들렸지만, 행인들은 무심하기만 했다. 죽어가던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정치는 경제를 이긴다'라고 말했지만(그래서 제대로 된 정치가 선행되어야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그런 발언 따윈 좌파 호사가들이나 좋아할 말이다. 한국에서 보수라고 알려진 이들에겐 토니 주트도 좌파로 읽혔을 것이다. 하긴 제대로 된 보수가 어디 있으려고. 내가 보기엔 조선 시대에 통용될만한 세계관과 천민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흥미로운 결합이 한국 보수주의자들가 아닐까 싶지만. 


얼마 전 알게 된 한국학의 대가인 고(故) 제임스 팔레 교수는 조선을 노예 사회로 규정한다. 그는 문헌(호적부)에 기초하여 등록된 인구의 3~40%가 노비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같은 민족을 노비(노예)로 삼은 나라는 조선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조선으로부터 현대 한국은 고작 100여 년이 지났다. 그런 사회가 오백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 사회의 정신이 고작 100년 지난다고 잊혀질까. 


종종 나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들 중의 한 가지는, 참 똑똑하고 입 바른 소리도 잘 하며 뭔가 제대로 살 것같은 사람들이 꼴통 짓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 다들 현 정권의 약점을 시작 초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그냥 묻어버린 것이다. 나라의 미래 따윈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한국의 몇몇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졌으며, IMF 시기를 통해 단련되었다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국민들은 개 돼지들이고 밥만 먹게 해주면 된다고 여기는 것일까. 이제 공중파는 다 잡았고 종편들까지 우리 편이니,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 어려운 고시 패스했다고, 유수의 국내외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대단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쳤다고 해서 믿어선 안 된다. 그 전에 먼저 그 사람의 생각, 태도, 성품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과연 사람들은 그렇게 할까) 


하긴 이번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세상은 아마 그대로였을 것이다. 조선소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그 곳을 오가던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저 파란 지붕을 가진 저택까지 들리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은 측은한 마음으로 파란 지붕의 안주인만 바라봤을 테니까. 세월호 아이들이 바다 속에서 죽어가고, 조선소 사람들이 갑작스레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괴되어도, 사람을 겨냥해서는 안 되는 물줄기를 사용해 결국 목숨을 잃게 만들어도, 어차피 고작 한 표 밖에 없는 선거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고 결국엔 다 종북과 빨갱이로 수렴될 족속들이니까. 


결국 다 노비들일 뿐이다. 가인 김병로(김종인 민주당 전 비대위 위원장의 조부) 선생은 보수주의자이면서 정권에 반발해 야당 생활을 했지만, 국회의원 선거 때 선거 벽보만 붙이고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래 것들한테 어떻게 표달라고 고개를 숙이냐"는 것.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젠 한 술 더 떠, 모든 콜센터 직원들은 "갑질 해대는 고객"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주인과 노비가 만날 일은 없고 노비는 노비들끼리 서로 갑질하느라 정신없는 나라가 되었다. 세상이 이러니, 어찌 어디 촌구석에서 나고 자란 상고 출신 대통령을 주인으로 인정할 수 있었을까. 그런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과 대면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 나라의 상층부는 조선 시대 - 일제 시대 - 현대 한국을 거쳐도 변하지 않았다. 감히 어떻게 위로 올라갈 수 있는가.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노비들끼리 몇 프로 되지 않는 재물을 두고 싸우느라 정신없게 만들면 세상 관리는 편해진다. 그리고 정권에 반발하는 이들에겐 가끔 무서운 경험을 한 두번 시켜주거나, 그들에게도 재물의 안락함을 한 번 맛보게 해주면 그 뿐. 이데올로기 시대는 갔고 똑똑한 젊은이들은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잘 살 수 있으니, 자 이제 밖으로, 세계로 나가라,고 하면 그 뿐이다. 걸핏하면 나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니면 사업을 해라, 그리고 망해라, 그러면 네 인생의 실패는 네 탓이니, 국가를 원망하지 말아라. 국가는 이미 이런저런 지원사업으로 결국 실패하게 될 네 사업에 돈을 주지 않았느냐.


글이 두서 없다. 아이를 안고 소리를 질렀지만, 청계광장의 많은 인파와 바로 옆 종로 거리의 행인들의 극명한 대비 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그 사이 이태원에선 할로윈 파티로 즐겁게 보냈을 청춘들을 떠올리면, 글쎄, 우리에게 따뜻한 변화라는 것이 올까. 전투력을 잃어버린 야당 국회위원들과 너무나도 예의바르고 신중한 대선 후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는 대통령을 불쌍한 사람으로, 그녀를 조종한 최 모 여인만을 공격하고, 그 대신 그 둘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정부 여당, 검찰, 국정원 등에 대해선 아무렇지 않은 듯 길을 걷고 커피를 마시고 단풍 구경을 간다. 마치 느리게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그렇게 이 나라는 무너지고 국민들은 사라지고 대신 영악한 주인들과 바보같은 노비들로 채워진다. 조선 시대처럼. 


한동안 임진왜란 뒤 무능하기만 했던 선조는 왜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었는데, 왕과 사대부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상부상조했던 것이다. 왕은 사대부들에게 학문을 배웠고 사대부들은 끊임없이 왕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대부분의 왕들은 사대부들보다 똑똑하지 못했으니까. 왕이 사라진다는 건 사대부들에게 치명적인 일이다. 그들이 가진 권세와 재물은 왕의 대칭구도로 인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임을.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능한 대통령으로 인해 국회의원들과 감찰 기관들, 행정 각료들은 그들이 가진 힘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며 부를 축적할 수 있으니까. 서로의 약점을 숨기고 미래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변화할 것같으면 충분히 미디어를 통한 세뇌와 다양한 색깔론과 종북몰이, 그리고 부정적인 수단이 마련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법률은 촘촘하게 정권에 대드는 이를 잡아가두기에 충분하다. 어차피 노비들은 노비들일 뿐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매질과 약값, 또는 기름진 고기를 주면 그 뿐이다. 그러니 상고 출신 대통령에겐 대들어도 무능한 대통령을 감싸고 그녀를 조정했다고 여기지는 무녀까지 배려하는 것이다. 


그래도 청춘들은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할로윈을 즐기느라 정신없을 테니까. 


어제 청계광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사람들이 이것밖에 없지 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나라란 없고 대통령의 의사결정은 신뢰를 잃었다. 그야말로 위기상태다. 한국은 북과 대치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내려오기라도 하면 그냥 끝이다. 그건 북 때문이 아니라 미국은 신속하게 답 없는 한국을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이라도 미국은 눈 밖에 나있는 북을 공격하면 그 뿐이다. 딱 1주일이면 충분하다. 일본은 그 상황을 즐길 것이며 중국은 이미 끝난 북의 일부를 가지고 갈 것이다. 사람들은 욕을 하고 비난을 하지만, 말 뿐이다. 헬조선이라고 하면서 헬조선의 연휴를 즐긴다. 나라 걱정한다고 하면서 집 안에서 뉴스만 본다.


변화는 움직이는 자들로 인해 만들어진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최저지지율은 5%대 였다. 지금 대통령의 지지율은 10%가 넘는다. 확실히 노답이다. 내가 이렇게 길게, 두서없는 글을 이유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짧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길기 때문이다. 이와 똑같이,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많은 이들이 이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가 제대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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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을 구독한 지 몇 달이 되었다. 그 전에는 모바일 포털사이트나  Social Media, 특히 페이스북을 통한 소비가 대부분이었다. 이럴 경우 미디어 편식이 발생한다. 또한 예전이라면 스포츠신문을 읽어야만 볼 수 있는 기사만 읽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처럼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나는 스포츠신문을 읽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디지털을 통해선 그냥 스포츠신문만 읽는 느낌이다. 그만큼 엉망이 되었다. 더구나 제대로 된 기사문을 읽을 일이 줄어든 셈이다. 


다시 종이신문을 읽기 시작하자 여러 모로 장점들이 많아졌다. 다소 느리지만, 깊이있는 칼럼들을 읽게 되었다고 할까. 하지만 디지털 세대의 여론과는 다소 무관해 보인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을 지나 대중 일반의 정치적 이해와 판단능력을 마비시킬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여기 블로그에 대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는 듯하여, 아래 칼럼 읽기를 권한다. 지금 20대 이하 세대는 정말 힘든 시기를 살아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장기적 관점에서의 정치를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 관여해야 하는데, ... 너무 걱정스럽다. 


송호근 칼럼 - 한국 청년 잔혹사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041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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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학생 2016.08.31 22:59 신고

    종이신문에 관해서 과제를 쓰려하는 학생입니다만, 2026년에는 한국에서 종이신문을 보기 힘들꺼라는 통계도 있길래 여기에 질문드려봅니다.
    종이신문이 없어질꺼라고 보시나요? 안없어진다면 그 이유가 뭘까요?
    종이신문이 살아남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궁금한게 워낙많은데 질문드려봅니다 ㅎㅎ;

    • 지하련 2016.09.01 02:56 신고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심지어 학자들이나 전문가들까지도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주제예요. 그걸 덜컥, 저에게 물어보시면.. ㅜㅜ.

      아마 관련 자료를 찾으면 너무 많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어떤 주제는 너무 많은 자료 때문에 힘들고, 어떤 주제는 자료가 너무 적기 때문에 힘들죠. 그런데 이런 경우는 공부를 하던지, 직장 생활을 하던지, 반드시 겪게 되는 문제예요.

      몇 가지의 키워드를 가지고 검색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 읽어보세요. 그럼 나름대로의 해답을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riss.kr 이라는 웹사이트에서는 학위논문들을 검색할 수 있으니, 이와 관련된 석사나 박사학위 논문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해당 주제에 대한 논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종이판을 내던 뉴스위크지는 아예 종이 주간지를 없애버렸습니다. 뉴욕타임즈의 경우, 디지털화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인수한 위싱턴 포스트에 밀리는 인상을 주고 있죠. 영국의 가디언지도 디지털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한국의 중앙일보도 여기에 속한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 모노클 같은 잡지는 종이잡지로 수지타산을 맞추고 있어요. 국내에는 B 매거진이 대표적인 경우죠. 뭐, 신문은 아니지만요.

      너무 어려운 질문은 너무 쉽게 하셨습니다. 그런 질문은 마치 '왜 살아야 하나요?'와 비슷한 류입니다. 다만 '왜 살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무한한 답이 있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지만, '종이신문에 대한 질문'의 답은 몇 가지로 정해져 있고 여기에 대한 답은 자료를 찾아 읽어보시면 쉽게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 그럼.



도심 한 가운데 호텔 입구의 새벽 3시는 고요하기만 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호텔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이 연상되는 것은, 호텔이라고 하면, 놀러오는 곳이라는 인상이 깔려있어서다. 


떠.나.고.싶.다.

모.든.것.을.버.리.고.

저.끝.없.는.우.주.여.행.을. 


호텔은 해마다 한 두 번씩 돌아오는 낯선 우주다. 호텔의 하룻밤은 아늑하고 감미로우며 여유롭지만, 그와 비례해 시간은 쉽게 사라진다. 



새벽 3시. 여의도 콘래드 호텔 바로 옆 빌딩에서 며칠 째 새벽까지 일을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원하지도 않았으며 끌려다녔다. 이런 식이라면 그만 두는 게 상책이나, 관계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를 일이다. 


관계는 우리는 견디게 하고 지치게 하며 상처 입히고 미소짓게 만든다. 관계의 해석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저 지금/여기에서만 유효한 어떤 정의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실재론자들에겐 시간은 무의미하고 운동이란 없는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고 그녀/그는 언제나 내 옆에 있다,고 말한다. 경험 상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입지 않기 위해, 상처입었음에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마음 깊숙한 곳으로 사랑을 끌어당겨 마음의 문을 닫는다. 


거의 2주 가까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일에 쫓겨 살았다. 미술 평론 하나 써서 내기로 한 약속도 깨졌고 지금 하는 일에 대한 금전적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꿈꾸는 중년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표현이다. 하지만 미성년적 자아를 가졌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중년들은 죄다 미성년이다. 꿈을 꾼다. 도망가거나 회피하거나 쫓기거나.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뿐. 사회가, 시스템이 강제하는 어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리곤 어느 순간 깨달을 것이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이 여름이 가고 또 다른 가을이 오면, 이브 몽땅의 고엽을 들으며 술을 마셔야지. 에디뜨 피아프와 자끄 브렐까지. 술을 마시면서 떠나간 옛사랑과 우리 아이의 미래와 내 절망과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 술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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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01 20:16

    비밀댓글입니다


아무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공평한 걸까. 내일의, 어떤, 발생하지 않은 일이 현재, 혹은 과거에 미쳤던 영향은 대단하기만 하니, 내일을 아는 이 없다고 해서 세상이 공평한 것은 아니다.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은 인과율(law of causality)을 바탕으로 움직이며, 우리 모두는 인과율적 문명의 노예다. 우리 문명은 인과율 위에 축조되었고 우리 사고도 인과율을 벗어나 한 발짝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각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인 이 노예 근성은 현 문명에 반하는 모든 혁신을 거부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었던) 운명에 순응하는 개인이라는 표상이 생기고, 모든 이들 -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나이 든 이나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이나 - 이 '역시 이럴 줄 알았어'라며 자신의 파괴되어지고 부서지고 있는 보금자리 - 그 곳이 물리적 장소이든 마음 속의 위치든 - 에 들어가 꿈쩍도 하지 않으려 한다. 


하버마스가 말한 바 있는 공론장의 붕괴는, 어쩌면 우리 문명이 지닌 치명적이고 근원적인 약점이면서 충분히 예견된 일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그리스 비극이 감동적인 걸까. 고전 비극은 이 치명적 약점 위에 서서, 끝내 실패하고야 말 생(生)의 혁신을 꿈꾼다. 위대한 고전주의자들의 낭만성은 여기에서 싹튼다. 우리가 종종 고전주의자를 낭만주의로 오해하는 이유는, 범속한 낭만주의가 기존 질서에 반하여 무질서, 혼돈, 상상을 이야기하는 것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고전주의자들은 기존 질서 위에서 그 질서와 싸우며, 그 질서와 함께 무너지는 순간에도 질서의 문제점을 말하며,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삶 전체로 투쟁하고 저 질서 너머의 어떤 새로운 질서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고전주의자이면서 낭만주의자일 수 있는 것은, 질서를 받아들이며 요청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철학 전체는 한 편의 비극이며, 새로운 시대의 요청으로 점철되어 있다. 



잠시 들른 까페에서 위의 글을 메모하면서... 출근 전 잠시, 혹은 아주 길게, 게오르그 짐멜의 렘브란트와 메리 올리버의 고래 사이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 들었다. 아. 아무도 날 깨우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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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간단하게 햄버거로 처리하고 도로를 걸었다. 작은 분수와 가로등에 달라붙은 채 갓 핀 꽃을 보여주고 있는 화분들을 보면서 참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 길가로 쏟아져 나왔다가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사람들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 웃음도 참 비현실적이었다.


모두, 우리들의 비극적 상황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모른 척할 것이고, 모른 척 하던 사람들이 다 죽고 도시는 폐허가 될 것이다.

이런 도시는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를 따라가다 보면 많이 만날 수 있다. 이젠 성채만 남아 부서지는...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과거는 과거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변화를 거부한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정지해있다. 그들은 마치 파르메니데스의 후예들 같다. 아직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믿고 있다. 자리는 고정된 것이고 사람은 변하는 것이니, 고정된 자리에 사람을 끼워맞추면 된다.


하지만 한국이 이토록 엉망이 된 것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정 반대다. 자리에 맞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교육(훈련)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나는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이런 국가가 되기 위해선 몇 백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 이름만 남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 ..





커피향은 은은하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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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드러낼 때, 사람은 아름다워진다. 그제서야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상처 없는 사람 없고 상처로 아파하고 고통받지 않는 사람 없다. 상처는 영광이자 추억이고, 회한이며 깊은 후회다. 상처는 반성이며 아물어가며 미래를 구상하고 펼쳐나간다. 상처 안에서 우리는 단단해지며, 성장하고, 한 발 한 발 걸어나간다. 


떠나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프지만, 언젠가는 아련하게 아름다워진다, 처절하게 그리워지기도 하며, 눈물겹도록, 상처,들 속에서 나는 너를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내 속에 너를, 타자를 키우게 된다, 같이 살게 된다. 


그렇게 타자들이 쌓여 상처는 너에 대한 예의가 되고 세상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된다. 한때 우리 젊은 날을 물들였던 절망과 분노는 상처 속에서 더 깊어지다가, 끝내 상처로 인해 사랑으로, 희망으로, 용기로 거듭난다. 


나는 어제도 상처 입었고, 오늘도 상처 입으며, 내일도 상처 입겠지만, 상처는 끝내 아물 것이고 오늘의 고통이 내일 나를 만들 것이다. 그러니 상처, 나는 너이고 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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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유적이란, 비-현실적이다. 마치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일상 속으로 들어오지만, 기억에 남지 않고 현실과는 무관하거나 반-현실적이다. 가야 시대의 고분 위로 나무 하나 없는 모습을 보면서 관리된다는 느낌보다는, 신기하게도 나무 한 그루 없구나, 원래 묘 위엔 나무가 자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생각은 논리와 경험을 비껴나간다. 그 당시 인구수를 헤아려보며 이 고분을 만들기 위해 몇 명의 사람들이 며칠 동안 일을 했을까 생각했지만, 이 역시 현실적이지 못했다. 


자고로 현실은 돈과 직결된 것만 의미할 뿐, 나머지는 무의미했다.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20대 때 알았더라면, 나는 돈벌기에 집중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이 점에서 진화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그러나 불편하기만 한 비밀을 알려준 셈이다. 


여름휴가다. 





사람들은 바다로 들어갔지만, 해변 근처만 얼쩡거릴 뿐, 깊은 바다로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아예 걸어다녔다.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은 좋았지만, 그건 떠있다는 기분보다는 내 눈높이로 낮은 파도가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파도는 햇살을 머금고 소리를 내며 내 눈 앞까지 와서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내 눈 앞에서 사라진 것들은 참 많았다. 사라진 것들의 목록을 적고 싶지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 그것들이 걸어나와 내 눈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는 기억되지만, 실현되지 않고 개념은 절대로 개별화될 수 없다. 






아들에게 공룡발자국을 설명해주었지만, 그에겐 너무 어렵거나 너무 낯설거나, 무서운 것이었다. 공룡은 사라졌고 흔적으로만 남았다. 가끔 우리의 영혼이 분자, 원자 따위까지 쪼개질 수 있다면, 그것들이 공기 속에서, 혹은 시간에서 서로 연결되어 사유할 수 있다면, ...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던 사이에 아들은 저 멀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해변을 따라 나있는 나무 산책로는 아이가 뛰기엔 다소 위험해보였고, 아마 이 사소한 위험이 그를 자극했을 것이다. 





여름휴가 때마다 도서관으로 가던 버릇은 여전해서 휴가 마지막 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원래 계획은 휴가지 그늘 아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지만, 그건 너무 사치스럽고 공허하기만 한 상상일 뿐이다. 


요즘 자주 내일이 두렵고 무섭다.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사십대가 되었고 사십대가 되자 무력하기만 한 나를 보고 있을 수 조차 없다. 그런데 아마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애초에 이 나라의 시스템이 잘못 설계되거나 사소한 설계 변경들이 모여 문제 해결력은 커녕, 장애 처리에서만 모든 자원이 소비되기에 이르렀다. 시스템의 문제이니,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시스템을 설계하고 도입한 자들은 이미 없고 그걸 운용하는 이들은 경험 없는 초짜들이거나 낙하산들이다. 아니면 그렇게 스스로를 포장하고 언론들이 뒷받침해준다. 언론들은 연일 정부를 비난하지만, 그 비난도 계산된 정치적 타협일 뿐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을 게다. 


여름휴가를 다녀왔고 여름휴가가 끝났다. 난생 처음 모든 이들이 가는 7월말 8월초에 휴가를 갔다왔다. 어느새 나는 지워졌고 그 자리에 가족이 자리잡고 있었다. 


휴가를 떠나기 전 로또 한 장을 구입했는데, 5등도 되지 않았다. 뭔가 운 좋게 당첨된다면 ... 참 좋을 텐데, 아마 모든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겠지. 실은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여 삶이 개선되거나 계단을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현대 자본주의는 그렇지 못하다. 마치 르네상스에서 중세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랄까. 소란스럽게 세속화에 열광하며 계량적 가치와 도구에 맹목적인 믿음을 가졌던 근대인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할까. 


토니 주트의 <<20세기를 생각한다>>를 휴가 내내 읽을 계획이었나, 겨우 몇 장 읽었을 뿐이다. 다만 그의 놀라운 시각은 20세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준다. 한국은 파시즘 국가에 가깝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파시즘의 메시지임을 알게 되었다. 파시즘 정당은 하층 계층의 미묘한 심리을 자극하여 지지를 얻고 확고한 신념이나 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태도만 공유할 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정당도 여기에 속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마르크주의를 억지로 연장시키는 것일 뿐, 마르크스와는 별 관련없다. 유태인이 20세기 초 유럽에서 희생당한 것은 유태인들만의 커뮤니티를 고수하면서 정치 권력에는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 동시에 그 당시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독일어를 구사하던 그들이 도리어 희생되었다는 아이러니.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현대 이스라엘은 아주 흥미롭게 정치전략에 결부시켜서 미 유태인 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분석은, 아마도 토니 주트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피곤하다. 집에 오자마자 몇 시간 낮잠을 잤고 다시 잠자리에 들 것이다. 마음은 어수선하고 내일은 무섭다. 달리기를 해야 하고 무조건 1등을 해야만 한다. 사십대에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이십대엔 몰랐다. 이제 오십대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조만간 리뷰를 써서 올리겠지만, 강력 추천한다. 일종의 20세기 지성사, 사상사가 될 법한 이 책은 20세기를 리뷰하면서 현재를 다시 읽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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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뜨아 2015.08.11 17:19 신고

    와. 글을 참 멋지게 잘쓰시네요~
    저책을 장바구니에 살며시 담긴했는데.... 읽기는 쉬울려나 모르겠습니다.

    • 지하련 2015.08.12 22:59 신고

      책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전문적인 연구서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강연을 책으로 옮긴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읽기 어렵진 않습니다. 다만 한 세기를 여기저기 오가며 서술되기 때문에 문맥을 따라 읽는데, 다소 어려움을 느낄 순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지만, 매우 천천히 읽게 되더군요. 벌써 한 달째 잡고 있습니다. 뭐, 읽은 시간도 그리 많지 않지만요~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



일주일에 한 번 운동을 한다. 이마저도 힘들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 저녁을 먹고 아이와 놀다 보면 9시, 10시, ... 이러면 운동하러 가지 못한다. 그리고 잔다. 꿈을 꾼다. 꿈 속에서도 나는 쫓기고. 그러다보면 아침이 오고 곱게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힘을 내자고 다짐을 한다. 


이렇게 아빠,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된다. 종종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놀란다. 이렇게 늙었다니. 그러고 보면 늙는다는 걸 인식하며 세월을 보내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 늙었구나 하고 인식한다. 그리고 그 때 뿐이다. 


나는 아직 클럽에 갈 수 있다고 여기고(간 적도 없지만), 아직 옆을 지나는 여대생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말을 건 적도 없지만). 




회사 워크샵을 다녀왔지만, 뾰족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같이 가자는 자리였다. 그 목적이 달성되었는지는 시간이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지만. 그러기엔 산적해 있는 문제가 너무 많고 비즈니스 세계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제서야 나는 조직이라든가 인적 시스템라는 것에 대해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참 잘하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관련 책 읽고 사람들 신경 쓰고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앞으로 나가려고 노력한다. 솔직히, 정말 쉽지 않다.




요즘 지나가는 말로, 대체로 무슨 일을 하려고 내가 이러는 걸까 하곤 중얼거리곤 한다. 회사를 옮기고 참 많은 일들을 겪고 있다. 그래서 시간은 흐르고 나는 나이를 먹겠지. 결혼을 하고 보니, 참, 아빠들 어렵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아빠들 중 돈 많고 힘 있는 이들은 떼지어 이 사회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거참. 그나저나 글은 언제 쓰나. 전시는 언제 보고 벗들과 술은 언제나 마시나. 할 이야기가 많아지니, 글을 쓸 시간이 없구나.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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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맥주와 포카칩. 대학 시절, 작디 작은 자취방에서 먹던 기억으로 가족을 다 재우고 난 뒤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정확히 말해 예전의 맛이 아니었다. 그 사이 입맛이 변했나. 아니면 ... ... 




한파주의보 내린 오전. 미팅 전 카페에서 잠시 메모. 쓸쓸한 풍경.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걸어가면서 만들 수 없는. 






오전에 커피를 많이 마신 탓에, 내리지 않으려 했으나, 끝내 오래된 커피 알갱이로 만든 드립. 

이렇게 물만 부으면 되는 커피처럼, 내가 걸어가는 길 위로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어떤 것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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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no magic in street fighting. Street fighting may be lethal, especially when one guy is bigger and stronger than the other. But boxing is designed to be lethal, designed to test lethally the male will of both fighters, designed to see who's boss, who will stake out and control the magic territory of a square piece of enchanted canvas. 

- F.X. Toole, Million Dollar Baby - stories from the cornerECCO(HarperCollinsPulishers), 2000, 7쪽 


'사각의 링'이라는 비유를 자주 사용하곤 하는데, 최근 읽기 시작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삶이란 '사각의 링 위의 복싱'이 아니라 '길거리 싸움'이기 때문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may be lethal'이라는 문구와 'is designed to be lethal'이라는 문구의 차이를 보다 생생하게 느끼고 싶은데 쉽진 않다. 


종이 울리면 실컷 맞다가도 잠시 쉴 수 있지만, 길거리 싸움에선 피를 흘리며 쓰러져도 발길질은 깨진 얼굴과 뒤틀리는 복부에 끊이지 않은 테니, 우리 삶은 길거리 싸움에서 늘 맞는 쪽일 것이다. 


날은 춥고 햇살은 가지런하기만 하다. 아이는 잠이 들었고 몇 주만에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 턴테이블에 수십년이 지난 존 바에즈의 Best 곡 모음집 LP를 올리고 잠시 상념에 잠기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채 가시질 않는다. 우리 시대는 과거는 쉽게 잊어버리고 현재는 발목을 잡고 미래는 차마 오지 않았으면 하는 어떤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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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병 2013.12.30 04:28 신고

    마지막 문단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평안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지하련 2013.12.30 10:39 신고

      감사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연말입니다. 그렇행복한 연말 되시고요~.





무관심한 듯 시선을 거두는 행인 A, B, C, ... 무수한 알파벳들은 실은 다른 알파벳들, 다른 숫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봐주고 어떻게 평가할까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가치 기준을 가지고 봐주고 평가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였다. 커피 위로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선릉역 인근 빌딩숲에서는 그 수를 세기 어려운 모기들이 가을 깊숙한 곳까지 진을 치고 있었다.


화요일이 왔고, 수요일이 올 것이고, 목요일, 금요일, ... 2013년이 지날 테지만, 우리에게 인생의 해답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안 그녀는 연애를 포기했고 그 남자는 한국을 떠났다. A는 그림을 포기했고 B는 사업을 시작했다. 15세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세속적 가치, 뉴튼이 공표했고 데카르트가 뒷받침했던 도구적 이성의 상징적인 수단, 돈을 위해 B는 사업을 했다. 그리고 그 B의 열정적이고 감동적이며 자기 헌신적인, 종교적으로까지 승화된 도전에 B1, B2, B3도 따라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저기 출사표들로 넘쳐나는 어느 오후. 나는 미련스럽게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묻고 다시 묻고 다시 물었다. 해가 오고 해가 가고, 해가 반복될수록 내가 막연하게 가졌던 답은 오답으로 결정하거나 예외들을 쌓아가서 결국 무너졌다. 막연한 방향들로 내 미래의 지침을 삼는 요즘, 마치 앞으로 가지 못하고 뒤로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건 아닌가 무섭고 두렵다. 


결국 나 혼자 할 수 없고 나 혼자 해서도 안 된다. 새로 팀을 꾸릴 생각이고 팀원들 앞에 'Great Team'이 되자고 할 생각이다. 내년 1월 1일에. 나는 벌써 내년 1월 1일을 고민한다. 올해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시간은 가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 성장한 내 아들은 나에게 '사람은 왜 살아가는가, 아버지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고 질문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을 두려워하자. 그리고 그 순간만은 아버지의 지혜로움으로 대답을 하자. 지금 그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그 순간에도 해답을 가지지 못했을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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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옮긴다. 어제 아침 CNN에 올라온 기사라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 언론, TV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날이 멀다하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시국선언을 하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다. 


언론과 관련된 교과서에는 '비판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 그런 언론을 찾기 어렵다. 


이 나라의 미래는 이렇게 어두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화살은 지금 침묵하는 언론들에게, 그 침묵을 강요하는 정부와 여당으로, 그 옆 무능력하기 이를 데 없는 야당에게까지 돌려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정치적 지형에 대해 알 생각도, 알아도 침묵하는 국민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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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육체의 나이에 익숙해지는 2013년.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쓸쓸해지는 나이. 사십대. 날씨 변화에 터무니없이 민감해지(또는, 아프)고, 어린 아들의 웃음에 눈물이 나고(고마워서) 아내의 잔소리가 듣고 싶어지는(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 끝도 없이 물컹물컹해지는 마흔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지나간 젊음 위로 쌓여 얼어간다. 얼어붙은 불안은 깊고 날카로운 냉기를 시간 속으로 밀어넣고. 


잠시 내일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사람들이 내 주위를 피한다. 미래는 무섭고 현재는 견디기 어렵다. 현대 문명은 어쩌면 과거 문명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불안들을 켜켜히 쌓아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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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커피를 많이 마신 탓에 잠이 잘 올련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글쓰기란 일종의 반성이자, 정리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행동의 지침과도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오늘 쓴 글의 일부를 옮기면서 하루를 마무리 해볼까.



'사람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 따위는 없다. 하지만 친한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외톨이는 드물다. 유능한 협상가는 협상 파트너를 친구로 만들 줄 알며,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리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고 나아가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고 예상되었던 결과물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게 만든다. 왜냐면 성공적인 협상이란 서로의 이기심을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가 모두 승자가 되는 협력의 장이기 때문이다.'



두 편의 글을 마무리 하면서 참 많은 반성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반성하는 횟수가 많아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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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계선에서 Watchman’s Rattle
레베카 코스타 Rebecca Costa 지음, 장세현 옮김, 쌤앤파커스
http://www.rebeccacosta.com/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미 설명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문명 붕괴의 패턴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슈퍼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계하고, 벤처자본 모델을 이용한 완화책의 실시로 시간을 벌고, 우리의 두뇌를 활용하여 침체되어 가는 인식 능력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인식 한계점에 대응하여 자연이 준 해결책인 통찰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신경과학은 장차 현대인의 생존을 좌우할 열쇠를 쥐고 있다. (362쪽)



책의 후반부는 다소 실망스럽다. 이 실망스러움은 책 끝에 붙은 저명 인사들의 찬사로 인해 더욱 커진다. ‘신경과학이 밝혀낸 통찰의 힘’이 해결책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재미없거나 읽을 가치가 없거나 한 것은 아니다. 책의 전반부, 현대 문명이 마주한 거대한 위기에 대한 풍부한 사례와 분석에 비해 책의 후반부 서술은 너무 작고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의 서술이 우리, 현대 인류가 마주한 운명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어림짐작으로 볼 때, 유기체가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유기체의 복잡성이 환경(모든 규모의 환경)의 복잡성과 대등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 - 야니어 바-얌(Yaneer Bar-Yam) <Making Things Work> 중에서 (29쪽)



문명 붕괴의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 안정적인 생산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작은 마을은 몇 세기 지나지 않아 제법 큰 도시가 되고, 작은 국가가 된다. 그리고 이 작은 국가는 거대한 제국이 된다. 이러한 성장과 함께 동시에 성장하는 것이 ‘복잡성’이다. 작은 마을에서는 도난 사건이 생기더라도 누가 훔쳐갔는지 금세 밝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큰 도시에서는? 이러자 도난 사건을 담당하는 기관이나 사람이 필요해진다. 작은 마을일 때는 우물 하나면 충분했던 것이 도시가 되면 수로를 만들어야 하고 식수와 오수를 구분해 처리해야 한다. 인구 100만의 도시 로마에서 하루에 나오는 쓰레기의 양을 계산해 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는 이 쓰레기를 치워야만 도시가 운영된다. 이렇게 복잡해진 도시에서 생기는 문제도 복잡한 해결 방법을 거치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문제들에 대한 해결 능력이 정체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서 두 손 두 발 놓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문제 해결 대신 마야인들이 취한 조치는 인식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모든 위대한 문명에서 나타나는 바로 그것이었다. 즉, 그들은 위험한 문제들을 다음 세대로 전가하는 길을 택했고, 이에 따라 문제는 점점 더 방대하고 위태로워졌다. (39쪽)


어떤 문명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동안 문제 해결에 동원되었던 지식과 지성은 뒤로 밀리고 믿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믿음은 ‘길러지는 것nurture’가 아닌 ‘타고 나는 것nature’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기본적 욕구의 대상이다. 그리고 인류는 지식을 습득할 수 없을 때 사실 대신 믿음을 택한다. (41쪽) 복잡성으로 인해 지식 입수가 불가능해지면 그때부터는 불가피하게 믿음에 의존하게 된다. (43쪽)


로마 후기 율리아누스 황제가 마주했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교회에서는 배교자로 공격하며 진실된 신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가혹한 이교도로 이야기하는 율리아누스 황제가 보았던 로마의 상황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너무 손쉽게 믿음을 택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갈릴리 사람들(기독교도)이 믿는 것이 이 지상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황제로서 실증해보고 싶네. 그들이 말하는 칭찬할 만한 가르침, 그들은 그것을 가난한 사람한테만 허용하고 게다가 천국에서만 달성할 수 있다고 단언하지만, 그 미덕과 행복은 현세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내가 제위에 있는 동안 정착시키고자 하는 공정한 통치를 통해, 그리고 종교와 관계없는 복지 사업을 통해 달성하고 싶다고 굳게 결심하고 있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4권 중에서)



다시 말해서 현대 문명도 후기 로마처럼 그렇게 몰락해갈 수 있다는 것은 현대의 교회들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인류의 성패는 기술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기술이 있어요. 그건 쉬운 일이지요.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 이게 훨씬 더 어렵습니다. - 딘 케이먼(Dean Kamen) (91쪽)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쪽으로든 정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마음은 아무 것도 믿지 않느니 차라리 거짓이라도 믿는 쪽을 택한다 - 장 자크 루소 (99쪽)



저자는 복잡한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점에 다다르면, 선택하게 되는 이 바로 믿음이라고 말한다. 이 믿음이란 종교적인 믿음(신앙)도 포함되지만, 그것 이상의 어떤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슈퍼밈이라고 한다. 원래 밈Meme이란 ‘문화적 전달 혹은 모방 단위’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등장한 단어이다. 레베카 코스타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슈퍼밈을 제안하는데, 이는 이드-에고-슈퍼에고로 이어지는 프로이드의 체계를 옮긴 것이다.


슈퍼밈은 사회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널리 만연하여 다른 모든 믿음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거나 억압을 가하는 모든 종류의 믿음, 생각, 행동을 가리킨다. (97쪽)



사람들이 지식과 지성을 이용한 적극적인 문제 해결 대신 택하게 되는 태도를 슈퍼밈이라고 말하며 저자는 대표적인 슈퍼밈 다섯 가지를 설명한다.

첫 번째 장벽, 불합리한 반대 - 자유 선택이라는 환상이 부른 반대의 수렁

이 챕터를 읽고 난 다음, 불합리한 반대가 전세계적 트렌드임을 확인했다. 교도소를 건설하지 못하는 미국의 사례처럼 한국에서는 화장 시설을 건립하지 못한다. 모든 이들이 죽은 이를 묻을 땅이 없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공감하면서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장례 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극렬히 반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내놓으라면 그 어떤 해결책도 없다. 아파트 단지에 임대 아파트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레베카 코스타에 따르면, 이는 지역 이기주의를 넘어서, 우리 문명 전체를 멸망을 이끄는 하나의 태도다.

두 번째 장벽, 책임의 개인화 - 개인에게 책임 지우는 시스템의 문제

장례 시설을 짓지 못해 죽은 이들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치자.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그 때부터 지식과 지성을 활용해서 문제 해결에 뛰어들까? 레베카 코스타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 때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희생양 개인’이다. 아마 장례 시설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부서의 장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누군가 희생양이 되어 그 자리에서 떠나거나 감옥에 들어가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해결책은 현대 사회 전반을 만연해 있다. 정부 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흥미롭지 않은가.

책에서는 ‘비만’을 사례로 들고 있다. 비만, 즉 사회 시스템의 문제인데, 이를 개인의 인내심이나 의지 부족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기관 마켓데이터Marketdata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력구제 산업은 2000년 이래로 매년 10퍼센트씩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는 그 규모가 미국에서만 8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해마다 80억 달러를 쓰고 있는 셈이다. (159쪽)


 

한 문명이 인식 한계점에 도달하여 문제의 복잡성이 인식 능력을 넘어서면, 곤란한 사회적 문제를 바로잡을 책임이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전가된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같은 고통을 겪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시스템적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각 개인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리는 간편한 길을 택하기가 쉽다. 그 결과, 비만, 우울증, 중독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은 각자 스스로 극복해야 할 개인적 시련으로 다시 포장된다. (159쪽)



세 번째 장벽, 거짓 상관관계 - 우리가 진실이라 알아온 상관관계의 오류


유럽 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하루에 15회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십대 청소년은 전화를 조금만 쓰는 청소년보다 잠드는 데,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184쪽)



그런데 휴대전화와 수면 장애의 인과관계는 증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휴대 전화 사용 단속에 들어갔다. ‘이렇듯 거짓 상관관계는 허구와 사실, 단순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별하는 일을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 결국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개인, 가족, 학교, 리더, 국가에 혼란과 고난을 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너무도 성급하게 상관관계를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받아들인다.’(185쪽)


네 번째 장벽, 사일로식 사고 - 고립된 사일로들이 만드는 오류


나사NASA에서 획기적인 태양열 발전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미국 에너지부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환경 관련 자료를 학계와 공유하려다가 비난을 받았던 CIA와 마찬가지로, 무공해 에너지 개발 역시 나사의 공식 임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것을 “부적절한 임무 확대”로 본 에너지부는 나사를 비난하며 우주 개발이나 충실히 하라고 지시했다. 나사 과학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에너지와 우주 연구 사이에 놓인 사일로의 벽을 돌파할 수 없었다. 한편, 에너지부와 청정기술Cleantech 벤처 자본가들은 나사가 개발하여 이미 실험실 내에서 효과까지 입증한 태양열 발전보다 훨씬 못한 기술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었다.’(223쪽)


다섯 번째 장벽, 극단의 경제학 - 경제우선주의에만 매몰되는 오류


“경제가 모든 것을 망치고 있어”라는 에드먼드 윌슨의 표현만큼 적절한 것이 있을까?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는 인류 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무수한 많은 기술들이 채택되지 못하고 사장되고 있다. 이는 기술뿐만 아니다. 북반구에서 너무 많이 생산되어 버려지는 음식물들이 남반구에 전달된다면? ‘21세기에 타당성을 판단하는 가장 강력한 척도는 분명 수익성이다’(234쪽) 바로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기업가적 혁신을 부추기는 그 경제적 인센티브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발견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더욱 복잡해지고 시스템적이고 세계적인 것이 되어감에 따라, 손익계산은 다소 무의미한 일이 된다. (235쪽)

저자는 다섯 가지 장벽을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슈퍼밈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야 된다고 역설한다.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지 아니면 낙관적인지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제 대답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한 지식을 접한 다음에도 비관적이지 않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을, 가난한 이들의 삶을 다시 일으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을 만난 다음에도 낙관적이지 않다면 여러분의 맥박은 뛰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세상 곳곳에서 본 것은 이 세상의 우아하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서 절망과 권력, 수많은 어려움과 맞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폴 호켄Paul Hawken (273쪽에서 인용)


책은 신경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뇌의 활동, 그리고 통찰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된다고 하면서 끝맺는다. 이미 서두에서 이야기했듯 이 결말이 다소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은 흥미진진하고 현대 문명 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저자가 제시하는 슈퍼밈은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선 각자의 몫이지만, 적어도 절망적인 기분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제법 괜찮은 책임에 분명하다.


저자 인터뷰: http://earthsky.org/human-world/rebecca-costa-on-thinking-our-way-out-of-extinction 



지금, 경계선에서 - 10점
레베카 코스타 지음, 장세현 옮김/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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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재진 2011.07.02 21:26 신고

    혹시 초대장있나요? 초대장 좀 주세요 ㅜ.ㅜ제발
    qp094@naver.com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었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문득 내 나이를 떠올리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자 아팠다.


"상이한 두 개의 세계에서 일했습니다. 국영은행 시절 나는 국가의 돈을 가지고 화폐와 대출정책을 실행했습니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최우선 순위는 다음과 같았어요. 첫째, 이 정책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둘째, 이 정책은 기업과 노동을 위해서도 유익할까? 그리고 세 번째 순위에 가서야 이 정책이 은행에도 유익할 것인가를 따졌습니다. 사적 자본을 위해 일할 때에는 우선 순위가 전도되었어요. 이 정책이 은행에 유익할까에 대한 질문이 우선이었지요."
- 에드가 모스트(동독 출신의 경제학자), 자서전 '자본을 위해 봉사한 50년' 중에서 인용.
(* 2009년 11월 르몽드 디플로마크 한국어판에서 재인용함)


통일 이후의 독일, 그리고 그 독일 속 동독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천천히 세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동독이 가졌던 장점과 자부심은 어느새 지워지고 그 사이를 자본주의의 이기적인 경쟁심만이 채우고 있더라고 전한다. 통일 당시의 흥분과 기쁨, 감격은 가물가물해지고 동독 사람들의 기억 속엔 그리운 동독, 차갑고 이기적인 자본주의 서독 중심의 통일 이후만 남아있는 것이다.

'이중텐, 제국을 말하다'라는 책에서 저자 이중텐은 중국 제국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말없이 묵묵히 일한 관료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청나라 말기를 이야기하면서 과거 제도과 유가 사상의 힘을 전하며, 중국 역사를 볼 때 청나라 말기는 외부 환경을 제외한다면 망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외부 세상은 변했고, 그 변화의 틈 속에서 중국 사람들이 무엇을 원했으며 변하기를 얼마나 열망했는가를 적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중국은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였다. 이중텐은 현대 중국을 이야기하면서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공화와 민주에 대해서 적고 있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중국은 공산당이 나라의 전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어찌되었건 마르크스-엥겔스가 국가 정책의 기본처럼 자리잡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많이, 혹은 형편없이 윤색되고 흐려졌겠지만. (이중텐의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책들 중 한 권은 마르크스-엥겔스였다.)

그렇다면 입만 열면 좌파 정치인이라고, 좌파 NGO 단체라고, 좌익이라고 이야기해대는, 현재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강렬한 민족애와 조국애로 무장한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해야만 된다. '우리는 중국과 교역을 끊어야 된다'고. 아마 논리적으로는 정당한 내 말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겠지만.

사람들은 어떤 것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에 강력하게 주장하고 어떤 것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더라도 현실적이기 때문에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먼저일까? 논리가 먼저일까, 아니면 현실이 먼저일까? 현실적 견지에서의 논리성 따위와 같은 추상적인 것은 생각하지 말자.

물론 나에게 이 물음에 대한 답도, 지혜도, 경험도 없다. 우리는 그저 안개 속을 걸어갈 뿐이다.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물음만 안고. 그런데 이 안개의 불투명성(불확실성)은 어느새 우리 일상 마저도 집어삼키고 있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은 어떤가? 이 안개와 같은 불투명성을 부른 것은 우리가 약속이라도 하듯이 논리적인 어떤 것(이상)을 버리는 순간부터 생기기 시작한 것임을. 그리고 더 낯선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서양이든 동양이든)이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과 논리의 이분법 속에서 현실을 택하자 일어나는 이 일상의 불투명성 앞에서, 최근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모든 것들이 불투명하게 여겨졌다. 실은 논리적 귀결이 현실의 논리 앞에서 아무런 맥도 못추고, 그 어떤 현실적 동의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갑자기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될 터이지만, 이런 상황은 참 견디기 어렵다.

에드가 모스트의, 저 자조섞은 고백은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믿고 따랐던 신념이 무엇이었는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그것이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것이라 할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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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의 어느 커피샵



어김없이 어둠이 내리고 계절풍이 불고 대기가 식어가고. ... 금요일 밤,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텅빈 사무실을 지키며 메일을 쓰고 전화를 하고, 창틈으로 새어들어오는 금요일 밤의 향기에 몸달아 하면서, 나는 갈 곳이 없다. 만날 사람도 없다. 사랑도, 애정도, 내일도 없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몸을 흔드는 생각을 해본다. 번쩍이는 청춘. 그런데 내 나이는 벌써. 곤드레만드레 취해 비틀거리며 도시를 여행하는 것도 이젠 너무 식상한 일상. 나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하는 것일까.

오늘. 이 봄밤. 견디기 힘들다. 어제부터 시작된 이명현상도 나를 힘들게 한다. 쉬지 않고 귀를 울리는 소음.들.

도대체 나에게 사랑이란 존재하는가. 미래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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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동 빌라 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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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살아있는 시스템 - 10점
피터 셍게 외 지음, 현대경제연구원 옮김/지식노마드


미래, 살아있는 시스템
피터 셍게, C.오토 샤머, 조셉 자와스키, 베티 수 플라워즈(지음), 현대경제연구원(옮김), 지식노마드 2006


읽는 이마다 그 반응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는 책이다. 결국은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책이지만, 책 내용은 신비주의적이며 범신론적이고, 유기체적 세계관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양인들이 동양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형태이기도 하여, 스스로 동양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눈에는 이들의 노력이나 열정이 깊이가 없어 보이고 철부지 아이 같은 것이라 치부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좋았는데,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나 기업의 경쟁력 제고, 경영 혁신과 같은 것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였다는 것이 꽤나 신선했고 그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를 보라. 누가 나서서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가? 우리의 발전 방향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나서서 이야기하지도, 이야기할 분위기조차 되지 않는다. 어느 새 우리는 우리가 미덕을 가지고 있었던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산술적인 것에 기초를 둔 논리적 해결에만 너무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 


책에서는 'U이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특별한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유기체적 세계관 속에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며, 기존 사고 패턴을 중지하고 전체를 보며 사고하고 행동해야 되고 이것을 도식화시키면 'U'자 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U이론'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래는 'U이론'의 필요성을 알기 위해 책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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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론적이다. 하나의 상황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게 되면, 계속 그 패턴의 반복이다. 하지만 이 반복의 지속은 아래와 같은 상황에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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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스피린 남용이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아스피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 문명 전반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아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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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기존의 패턴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사고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속가능한 미래'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책의 결론이 시시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경영자들을 키우는 세계적인 경영학자들이 할 일 없고 시간이 남아서 이런 연구를 했을까. 그만큼 우리의 미래는 어둡고 불투명하다. 이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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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미래 - 10점
라인하르트 코젤렉 지음, 한철 옮김/문학동네


지나간 미래 Vergangene Zukunft
라인하르트 코젤렉 Reinhart Koselleck 지음, 한철 옮김, 문학동네



겨우 이 책을 다 읽었다. 대중 교양서라고 하기엔 너무 전문적이고 그렇다고 손을 놓기에는 너무 흥미진진했다.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역사적 기본개념들, 정치적-사회적 언어에 대한 역사사전>>이라는 방대한 사전의 편집자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인문학 연구자들에게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그리 유명해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몇 달 동안 이 책을 잡고 있었는데, 읽고 난 다음 느낀 바를 크게 아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 역사 서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 실제 경험한 사실, 목격자의 증언, 또는 사료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역사 서술은 ‘서사’와 ‘묘사’를 바탕으로 하면서 과연 ‘허구’와 얼마나 많은 거리를 두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또한 역사 서술에 사용되는 개념 분석은 매우 인상 깊었다.

2. 근대Neuzeit에 대한 깊은 이해: Modern으로 옮겨지는 근대에 대한 논의는 국내에서도 많았지만, 라인하르트 코젤렉의 분석은 그간 읽어온 그 어떤 글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근대에 경험과 기대 사이의 차이가 점점 커진다는 것이고, 더 정확히 말해서 기대들이 그 때까지 경험들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근대가 새로운 시대로 파악된다는 것이다”(p.399) 즉 미래에 대한 기대가 대중에까지 미치게 된 시기는 18세기이며 이 이후 본격적으로 ‘근대’, ‘새로운 시대’가 대중적인 단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3. 근대적 삶에 대한 이해: 미래에 대한 기대가 가지게 된다는 것은 경험된 것들 이상의 의미를 미래에 부여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예측 가능한 형태로서의 미래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서의 미래가 더 큰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18세기에는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서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높게 보았으며 인간 이성에 대한 강력한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20세기 후반부터는 이러한 신뢰와 지지를 부분적으로 상실하기 시작했으며 예측 불가능함, 즉 ‘우연적 요소’에 더 큰 무게 중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의 물질만능주의(소외와 자본주의의 심화)는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삶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예측가능성을 잡아두려는 심리에 기인하고 있는 셈이다. 근대는 이미 그 시작에서부터 그 붕괴를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인문학 전공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지만, 비전공자에게는 선뜻 추천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같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 생각된다. 역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되었으며 근대에 대해, 근대적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나간 미래>>에 대한 보충 설명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일독을 권할 만큼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밑줄을 엄청 그었다) 그리고 리뷰를 올렸는데, 몇몇 분들께서 리뷰가 어렵다는 견해를 밝혀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보충 설명을 하고자 한다.

1. 이 책의 목차의 아래와 같다. 목차에 적힌 단어들부터 만만치 않다.


I. 근대사에 있어서의 과거와 미래의 관계
- 근대초기의 지나간 미래
- 역사는 삶의 스승인가
- 근대 혁명개념의 사적 기준
- 로젠츠 폰 슈타인의 역사예측

II. 사적 시간규정의 이론과 방법
- 개념사와 사회사
- 역사, 역사들, 시간의 형식구조
- 서술, 사건, 구조
- 우연: 역사서술에서의 계기화의 불가능성
- 입장연관성과 시간성

III. 역사적 경험변화의 의미론
- 비대칭적 대응개념의 사적-정치적 의미론
- 역사의 생산가능성
- 공포와 꿈: 제3제국에서의 시간경험
- ‘근대’: 현대적 운동개념의 의미론
- 경험공간과 기대지평

2. 각각의 챕터는 각기 다른 내용을 서술하고 있지만, 크게 ‘역사서술 방법론’과 ‘근대의 시간 경험’이라는 두 부분으로 모여질 수 있겠다.

3. ‘역사서술 방법론’에 대하여
과연 '역사의 완벽하고 정확한 전달'이란 가능할까?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의 완벽하고 정확한 전달'이란 불가능하다. 이 부분에서 역사 서술의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서술 방법(론)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서술가들은 나름대로 정확한 사실 전달을 위해 여러 역사적 사료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고고학적인 탐사를 벌이기도 하며 목격자의 증언들을 토대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들이 다 모였다고 해서(* 대부분 다 모을 수도 없지만) 완벽하고 정확한 전달이 가능해질까. 또한 여기에 또 개입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서술가의 시각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당파성’. 이렇게 어려운 일이니,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시가 역사보더 더 낫다고 한 것이 일견 수긍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주목하는 부분은 여러 개념을 담고 있는 단어들의 변천사이다. 이를 그는 ‘개념사’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단어들의 의미 변화를 통시적으로 분석하여 그 당시의 의식 구조를 예리하게 분석해 낸다. 하나의 단어가 시대 마다 다른 의미로 통용되었고 같은 시대라 하더라도 역사 서술가의 시각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이런 역사서술과 관련된 논의를 담고 있다.

4. ‘근대의 시간 경험’
아마 이런 생각을 낯설게 여기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란, 바로 ‘내일은 좋아질꺼야’ 따위의 생각을 말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코젤렉에 따르면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불과 몇 세기 되지 않는다. 아마 르네상스 무렵부터 이런 생각의 단초가 보여졌을 텐데, 이런 생각이 일반 대중 속으로까지 확대된 것은 그보다 한참 후인 18세기이며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한 시기였다고 한다.

앞선 글에서 내가 인용한 “근대는 경험과 기대 사이의 차이가 점점 커진다는 것이고, 더 정확히 말해서 기대들이 그 때까지 경험들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근대가 새로운 시대로 파악된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쉽게 설명해서 평생을 시골에서 산 사람에게 (시골이라는 공간 속에서의) 내일에 대한 예상은 자신이 살아왔던 경험의 범위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고대적 삶이나 중세적 삶은 이런 환경 속에 속해있었다. 즉 하나의 행위 결과는 경험의 범위 안에 있었고 그것에 대한 기대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로 오면 상황은 급격하게 바뀐다. 시간이 갈수록 이 상황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즉 이때까지 살아온 경험의 범위 안에서 내일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맨 처음 등장했을 때, 그러니깐 18세기 무렵에는 미래에 대한 열광으로 표현되었다. (* 이 열광이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고 이러한 열광은 예술적 반영은 바로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대해선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내일이 되면 새로운 과학 법칙이 생겨나고 새로운 기계가 생기며 카페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상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근대가 새로운 시대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요즘은 더 심해졌다. 블로그를 보라.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하루에도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가)

이러한 상황은 내일, 즉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전의 삶 속에서 미래란 과거와 똑같은 그 무엇이었지만, 18세기에 오면 미래는 과거에도 오늘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그 무엇으로 변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몇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내일 일을 누가 알아’라고 말해버리기 시작했다.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에 ‘내 인생이 내일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즉 경험과 기대의 간격이 벌어짐으로 인해 나는 온전하게 내 삶을 제어하지 못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즉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이는 인생에 드리워진 생의 불확실성에도 기인하지만, 최근의 인문학적 성찰은 이 인식(*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에 더 큰 무게 중심을 두게 만든다.

최근의 자본주의 심화(* 돈 중심주의)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초조하고 불안한 심리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면 내 영혼의 삶은 아니더라도 내 육체의 삶의 안정성을 그나마 확실하게 담보할 수 있는 것은 ‘돈’이기 때문이다.

근대는 내일에 대한 기대로 시작되었지만, 그 기대 속에는 이미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나는 내일 펼쳐질 내 삶의 운동을 알지 못한다’는 인식을 숨기고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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