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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더구나 꼼꼼한 연구서의 면모까지 지닌 이 책은 아비 부르부르크 생애 뿐만 아니라 주요 연구 성과, 그것에 대한 평가, 그리고 '미술사 연구'의 시작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두서없는 리뷰를 양해해주길 바란다. 다나카 준의 꼼꼼한 서술을 따라 읽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겨우 다 읽은 후 쓰는 이 리뷰는 바르부르크의 주된 테마를 언급하는 데 그칠 것이고, 이 소개가 비전공자에겐 다소 재미없고 전문적이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 책은 전문 서적이다. 


인문학의 꽃은 철학이 아니라 역사학이며, 역사학 중에서도 미술사학이 가지는 흥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지만, 책읽기 좋아하는 직장인이 하기엔 주제 넘는 짓이다. 다만 신화나 종교에 대한 편협한 도상학적 이해만을 바탕으로 미술 작품을 평하는 국내 필자들에게 하나의 도상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흐름, 그 속에서 벌어지는 정신들의 결투 같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유공간을 만들어내는 분리 운동과 마술적인 결합 강박은 언어와 도상의 한가운데 양극적인 긴장 상태를 유발한다.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에 펼쳐진 세계를 '유럽'이라고 부른다면, 양극성을 유발하는 언어와 이미지 속에 응결되는 것은 유럽 정신의 무시간적 심층이다. 다시 말하면 유럽이란 이 무시간적인 구조가 강요하는 마신들의 회귀라는 반복운동에 의해 지배받는 시공간이다. (67쪽) 



바르부르크는 '무시간적 심층'이라고 표현한다. 즉 도상들은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이동하고 번역되면서 끊임없이 되돌아오고 잔존한다. 그리고 그는 이를 두고 '무시간적'이라고 평한다. 그래서 그에게 르네상스란 고대, 특히 마신적 고대의 부활이었다. 


기들란다요의 초상화를 봉납 밀랍인형과 똑같은 수준에 놓는다는 것은 그것을 이른바 역사인류학적인 시선 아래에서 물신숭배의 측면을 지닌 종교의례의 일부로 파악하려는 것이다. (209쪽) 



Domenico Ghirlandaio (1449-1494) 

Adoration of the Shepherds

1485

Cappella Sassetti(Santa Trinita, Florence)  


그 당시 교회에는 실제 인물과 동일한 밀랍인형이 가득했으며, 일종의 풍습이었으며, '도상마술(圖像魔術)'이 된다. 


"이교적인 미신을 믿는 에트루리아인의 자손인 피렌체인들은 극단적인 형식의 이러한 도상 마술을 발전시켜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세련되게 다듬었다. (...)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도상 마술'은 자신과 비슷한 밀랍제 인형, 은제 인형을 성스러운 화상의 봉납품으로 바치는 풍습이다. 피렌체의 산티시마 아눈치아타 성당은 권력자나 신분이 높은 이국인에게 실물크기로 자신의 형상을 밀랍인형(봉납물, voti 피렌체 방언으로는 boti)을 생전부터 성당 안에 전시하는 특권을 부여했다."(206쪽 - 207쪽)



기를란다요의 작품이 지니는 과도한 사실성은 이런 밀랍 인형과 같은 역할을 회화가 수행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봉납물의 신비한 힘을 믿고 있었던 피렌체인들은 여전히 '원시적'이었으며, 봉납물은 반드시 본인과 확실히 비슷해야 했다'(213쪽) 



Cappella Sassetti(Santa Trinita, Florence)   



바르부르크가 보는 르네상스의 모습이었다. 그는 기독교의 세계로부터 고대가 어떻게 부활하는가를 도상에 대한 연구로 시작한 셈이다. 


바르부르크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고대의 부흥과 함께 '훌륭한 유럽인'이 열어놓은 점성술을 비롯한 마술적 행위 속에서 고대 그리스적인 '인간성Humanitat'을 재발견하려는 계몽을 위한 싸움에 있었다' (46쪽) 




Achilles at the court of King Lycomedes. 

Early 3rd century AD. marble

H. 1.08 m (42 ½ in.), W. 2.3 m (90 ½ in.), D. 0.8 m (31 ¼ in.)

출처: commons.wikimedia.org


책에서는 스킬로스 섬의 아킬레스 도판이 실려있으나, 이를 구하지 못한 관계로 다른 아킬레스 도판을 실는다. 위 로마 후기의 부조 작품의 유려한 표현을 감상해보자. 


문제는 어디까지나 시나 부조, 회화에서 조형적으로 처리된 운동의 표현이다. 그들은 그 표현을 위해 종종 고대의 시나 미술 작품을 모방했다. 그들은 고대적인 것으로서 발견하고 강한 관심을 가진 것은 고대 예술에 나타난 격렬하게 움직이는 부속물의 세부적인 형태이다. 고대 예술에 대한 관심 자체가 부속물의 운동에 대한 흥미로 인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부속물이야말로 고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고대의 부조를 모방한 소묘에는 원작에는 없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그려진 것이다. (161쪽-162쪽)


그리고 아래 보티첼리의 '봄'을 보자. 보티첼레 작품에서 옷의 주름이나 머리 장식이나 스타일 등 부속물에 주목해 보면, ... 


보티첼리가 위치하고 있던 곳은 '고대'를 둘러싼 판타즘과 각성 사이, 15세기 피렌체의 현실에 대한 '개입'과 고대 예술이라는 꿈에 사로잡힌 '방심'의 틈새였다. 그것은 합리적인 '사려 깊은 생각'과 '상상력'에 의한 감정이입이 서로 부대끼는 공존 상태다. 이 '너무나 유약한' 화가에게 현저하게 나타난 '고대'라는 판타즘에 관심이 없었다면, 바르부르크가 박사학위 논문을 보티첼리론으로 썼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175쪽)  



Sandro Botticelli (1445-1510) 

Primavera 

1482, tempera

203 × 314 cm (79.9 × 123.6 in)

출처: commons.wikimedia.org


베버가 바르부르크의 논문에서 읽어낸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상업자본주의에 있어서 '경제 형식과 윤리적 생활양식'의 어긋남이었다. 이 모순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에 의해 통합된다. 베버는 모순을 극복한 후, 자본주의적 에토스가 성립하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진다. 이에 비해서 바르부르크는 상업자본주의라는 경제형식과 기독교적 생활양식의 긴장 관계를 고전 고대와 기독교의 대립 관계로 상징한 다음에, 이것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합불가능한 이 양자의 분열 상태의 한복판에서 찾으려고 한다. (238쪽) 


도상 연구자로서의 바르부르크의 연구 방향은 분명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몇 선배들 - 뵐플린, 부르크하르트 등 - 이 존재했지만, 바르부르크의 연구 방식은 거의 최초였다.  그는 서양미술 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일상 생활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무시간적 심층에 속해 있는 '고대 도상들의 이동과 흐름'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 연구의 최종판은 '도상 아틀라스 - 므네모시네' 기획으로 이어졌다. 


마신적 고대의 부활은 그동안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감정이입적인 이미지 기억이 지닌 어떤 양극적인 기능에 의해 생긴다. 우리는 파우스트 시대에 살고 있다. 거기서 근대의 과학자들은 - 마술적 실천과 우주론적 수학 사이에서 - 자기와 대상과의 사이에 '진지한 생각'의 '사유 공간'을 획득하려고 노력했다. 아테네는 확실히 다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재탈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아비 바르부르크, 1920년 (65쪽) 




- 일본 원서.  



- 아비 바르부르크 




Aby Warburg, Mnemosyne Atlas, Panel 79 (“The Eucharist”), 1929



"시간의 거울에 비친 '고대'를 재현한 이미지의 다양함은 각 시대의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인 선택경향을 보여주며, 그것에 의해서 소망이 형성되고 이상을 설정하는 집합적인 영혼이 세상에 명백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한 영혼은 구체화로부터 추상화로, 또는 그 반대로 향하는 주기적 왕복운동으로 인간이 절제Sophrosyne를 추구하며 벌여야 하는 싸움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309쪽) 



"고대풍의 역동적인 형태는 최대의 긴장상태에서 전승되는 것인데, 그것을 모방하고 흉내(상기)내는 자의 수동적 또는 능동적 에너지와의 관계에서 무극화된다. 시대와 접촉하고 나서야 비로소 양극화가 형성된다. 이것은 본래의, 고대에 있어 의미의 근본적인 역전(전도)에 이르는 것일 수도 있다." (309쪽) 


1929년 1월 19일 로마에서 므네모시네의 일부를 이루는 도상들로 바르부르크는 '기를란다요 공방에 있어서 고대 로마'를 테마로 강연을 했다. 아마 그의 논문이나 글보다 그의 강연은 수 배는 더 흥미진진하고 놀라웠을 것이다. 실제 도상을 앞에 두고 이루어지는 강의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서로 얽히고 교차되면서 몇 가지의 주제나 이야기로 순식간에 수렴되기 때문이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바르부르크에게 개인 지도를 받듯이 강연을 들었던 케네스 클라크는 그 체험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회상한다.'(314쪽) 



점성술 그림과 정념정형은 고대의 재생을 경유한 변화의 기록이며, 바르부르크는 평생동안 탐구한 이 두 가지 테마를 도상 아틀라스의 계획으로 집대성하고자 한 것이다. (310쪽) 


*  *


한 때 미술사학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진 바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보자면, 아비 바르부르크는 평생 아마추어(*) 연구자였다. 다만 그의 집안이, 그의 형제들이 세계적인 은행을 가진 유대인 가문이었고, 그는 형제들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했다는 점에서 그의 연구는 어려움이 없이 이루어졌고, 한동안 정신병으로 고생했지만. 한국에서의 아마추어 연구자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긴 요즘 같은 시기에, 국내든 해외든 석사나 박사로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것은 스스로 백수가 되겠어요 라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렸으니. 


바르부르크가 연구하고 수집했던 책들이 있었던 도서관은 현재 바르부르크 연구소가 되었다.  


이 책은 전문 연구서이며 평전이다. 다만 르네상스 미술이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울 수 있다.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꽤 난이도 있을 지 모르는 책이니, 선뜻 추천하기 어렵다. 다만 이 정도의 평전이 일본 연구자에 의해, 일본어로 씌여졌다는 점에서 일본 인문학의 수준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새삼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 혹시 '아마추어'라는 단어에 대해 오해가 있을까 덧붙인다. 여기에서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그가 학교에 적을 두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했다는 데에 강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아마추어가 자칫 바르부르크의 학문 세계를 낮게 평가하는 듯 하기도 하다. 하지만 바르부르크는 서양미술사에 있어 도상학적 연구의 시초를 닦았으며 이후 그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미술사학자들을 바르부르크 학파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작슬(Fritz Saxl), 빈트(E.Wind) 등이 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네 번째 소장을 지냈던 이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였다. 다소 비약하자면, 20세기 거의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들이 아비 바르부르크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학교에 적을 두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아비 바르부르크와 달리 한국에서의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실은 이를 드러내고 싶어서 나는 의도적으로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 지도 모르겠다. 특히 인문학의 경우는 그 상황이 더 열악해지는 듯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라는 의식으로 인한 지적 불성실함보다는 아마추어적인 지적 열망이 더 필요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뭐, 해답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 ㅡ_ㅡ;; 





- 곰브리치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 


* 바르부르크 연구소 : http://warburg.sas.ac.uk/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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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요새.... 지하련님 추천 서적 읽다가 그지가 될판이긴한데 ㅋㅋㅋ 이 책도 땡기네여

  • 라보엠 2015.07.29 20:39 신고

    일본인 학자의 시각으로 본 바르부르크의 생애도 궁금하군요. 제가 지내는 곳에선 이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먼저 곰브리치가 쓴 책을 찾아봐야겠습니다.

    • 저자는 곰브리치가 쓴 평전이 지니는 약점을 이야기하며 그 부분부터 서술해 내갑니다. 그래서 두 권 다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므네모시네 관련 책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일본에선 므네모시네 전시를 했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저력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곰브리치의 평전을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았으나, 언제 읽게 될지.. ㅎㅎ



우리는 종종 최근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경향의 작품을 보면서 경탄해 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들은 정교하게 제작된 Painting을 곧잘 사진과 비교해가며 대단하다는 표현을 금하지 못합니다. 아직까지도 Painting에 ‘발전’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것은 사진에서 보여지는 바의 ‘사실적(realistic)’인, 그 어떤 것을 향해가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인상주의의 등장이 사진술의 등장과 발달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때 리글이 말하는 바의 ‘예술의욕’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성이 생기게 됩니다.


예술의 역사 속에서 ‘진보와 퇴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카소가 비슷하게 말한 바 있듯이 ‘그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표현양식을 찾기 마련’입니다. 리글이 미술사 저술에 있어서 현대적인 기틀이 마련하였고 이후 대부분의 미술사가들이 리글의 영향권 안에 놓이게 되는 이유는 ‘사건의 주체를 인간으로 보지만 더 이상 역사의 흘러가는 목표를 파악하지 않으며 단 그 흐름의 법칙성만을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류의 역사가 어떤 목적점을 향해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단지 역사의 흐름에 대한 법칙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동시에 의미에 대한 문제가 오직 미술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미술사 저술의 모범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리글이 말하는 바 ‘예술의욕’은 무엇일까요? 실은 리글은 그의 여러 저서 속에서 ‘예술의욕’을 확실하게 정의 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 영어번역본 제목)에서 인용해보겠습니다.(* 참고했던 미술사 서적(<<미술사학의 이해>>(헤르만 바우어 지음, 홍진경 옮김, 시공사)의 번역이 리글이 쓴 저서의 내용과 차이가 있어 제가 다시 번역해보았습니다만 엉망이군요. 그래도 참고한 서적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듯하여 옮깁니다.)


“그러한 모든 인간의 의욕(Wollen)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만족을 향해 있다(말에 대한 가장 폭넓은 감각 속에서 인간 존재가 외적으로, 내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처럼). 창조적인 예술의욕(Kunstwollen)은 인간과 인간의 감각을 통해 인지하게 되는 대상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다(regulate).; 이것은 우리가 항상 사물로부터 형태와 색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꼭 우리가 시작품 속에서 예술의욕(Kunstwollen)을 통해 그것을 시각화시키듯이). 그럼에도 인간은 (수동적으로) 그의 감각을 통해 한정적으로 인지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욕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인간의 내적 추동력(국가, 장소, 시대에 의해 변해질 수 있는)에 따라 쉽게 인지되어진 세계를 해석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의욕(Wollen)의 성격은 (용어에 대한 폭넓은 감각 속에서) 주어진 시대(Weltanschauung)에서의 세계에 대한 개념(conception)이 무엇이라고 불려지는가에 따라, 즉 종교, 철학, 과학 뿐만 아니라 보통 지배하는 것이라고 말해지는 하나 이상의 어떤 형태들, 정부, 법률 등에 의해 항상 결정되어진다.”

- Alois Riegl, 중에서(<* The Art of Art History : A Critical Anthology> ed. Donald Preziosi, Oxford University Press, p.174)


이러한 예술 의욕으로부터 한 시대를 특징짓는 양식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의 변화에는 ‘진보와 퇴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이집트의 예술 양식에서 그들이 자연주의적 표현 방식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또는 비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리글 이후 뛰어난 미술사가들 한 명으로 인정 받고 있는 한스 제들마이어의 경우에는 리글을 부정적으로 해석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신사로서의 미술사(Kunstgeschichte als Geistesgeschichte)’라는 개념은 알로이 리글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막스 드보르작과 한스 제들마이어에게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라는 개념을 사용한 제들마이어는 알로이 리글의 ‘예술의욕’의 한계를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그리고 아래의 주장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1. 미술은 다른 것으로부터 파생될 수도 또 대체될 수도 없는 인간의 자율적인 표현수단이라는 이론. 실제 리글은 미술을 일종의 ‘수반현상(Epiphanomen)’이라 파악하고 있다.


2. 천부적인 재능, 어느 개인, 혹은 예술가가 제1차적인 주체라고 하는 관찰. 이와 같은 관찰로 리글은 자신의 집단적 의욕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인간의 본성과 이성이 통일성과 불변성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 왜냐하면 인간정신은 사실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미술가는 항상 그대로 남아있는 자연을 꾸며진 것으로 모방하거나 양식화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제들마이어에게 현대미술(Modern Art)는 ‘타락한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움베르토 에코는 ‘코키토 인터룹투스(Cogito interruptus)’라는 표현을 써가며 조목조목 따집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제들마이어가 그렇게 주장했던 이유는 미술사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는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특정 시대의 미술을 유전학적으로 해석함에 있어서 신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따라서 정신사로서의 미술사는 구체적으로 보자면 종교사로서의 미술사로 이해될 수 있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에 놓인 핵심은 ‘숭배사로서의 미술사(Kunstgeschichte als Kultgeschichte)’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신에 대한 관계가 진지해질 때 숭배의 표현이 생기기 때문이다. … ‘정신사로서의 미술사’의 초기 과정에 놓인 특성은 그 방법론이 바로 완성되고 있는 단계에서 멈춘 것이다. ‘정신사로서의 미술사’가 내놓으려 했던 것은 ‘세계관(Weltanshauung)’의 역사로 본 미술사였다. 세계관의 개념은 학문사의 과정에서 일종의 유행어가 되어버렸는데, 이는 그 개념이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아무 것에나 쉽게 적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사로서의 미술사에서 세계관이라는 개념의 비중이 확대되자 그 개념은 곧 종교적 특성 혹은 ‘종교적 사상’의 역사에 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 H. Sedlmayr, “Kunstgeschichte als Geistesgeschichte”(1949) (* 헤르만 바우어, <<미술사학의 이해 Kunst-Historik>>, p.125에서 재인용)


이런 식으로 제들마이어는 ‘정신’이 놓였던 자리에 ‘신’을 대체시키기 시작하면서 그의 미술사는 미술신학의 자리로 옮겨가게 됩니다. 이러한 제들마이어가 보기에 현대미술이 제대로 평가 받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원래 그의 스승 막스 드보르작에게 있어서의 미술사는 절대성을 향한 인간의 정신적 발전이라기 보다는 부르크하르트의 문화사적인 관념론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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