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바로크 +35


데미한 허스트의 작품



제프 쿤스도 그렇고 데미안 허스트도 그렇고 현대 미술에서 잘 나가는 스타 예술가들을 보면, 진지함보다는 번뜩이는 재치와 탁월한 유머와 놀라운 비즈니스 감각과 만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풍부한 비평적 언어와 적절한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소재/주제를 제시하고 어느 공간에서나 어울리면서 그 중심에 예술 작품이 위치할 수 있도록 만든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궁금하게 한다. 예술작품 앞에선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사람이 무조건 한 두 마디를 말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실패하지 않는 작가가 된다. 다른, 심각하고 진지한 예술가 앞에 서서 현대 미술을 주도하는 예술가가 되는 셈이다. 


현대를 가벼움으로 만드는 것은 아마 현대의 공기일 것이다. 느린 속도는 태도의 진지함을 부르고 빠른 속도는 사고의 가벼움을 부른다. 연예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만남도 그렇다. 현대는 본질적으로 허무함이 극에 이른 시대다. 이는 보들레르가 진단한 바, 덧없는 모더니티의 연장선상이기도 하지만, 백년 전에는 그것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면 지금은 삶의 일부로 허무함이 내려앉아 익숙해진 시대라, 그 체감 온도는 다르다. 그래서 그 누구도 현대의 허무함을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장 보드리야르처럼 그 덧없는 허무함에 삶과 인생을 기대고 그 속으로 사뿐하게 내려앉는 꿈을 꾼다. 아니면 기존의 모든 것들에 대한 종말을 선언하거나 해체하며 새로운 것을 불러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이미 가고 아직 오지 않는 시대'가 현대가 된다. 종종 현대를 고전적 현대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이는 아주 짧은 순간, 20세기 초반 세잔, 젊은 피카소, 몬드리안이나 말레비치 등에게서 언뜻 스쳐지나갔을 뿐이다.


결국 저 허무함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연인이라는 존재는 결국 떠나갈 것이기 때문에 연인이며, 뜨겁던 사랑은 결국 차갑게 식어갈 것이기 때문에 사랑인 것이다. 


프로젝트 초반부터 삐걱대는 곳에 와서 뭔가 해결 책을 찾아보지만, 쉽지 않다. 어느 프로젝트에선 예상했던 것보다 품질 수준이 높고 난관이 예상된다. 다행인 것은 시간은 흐른다는 사실. 그런데 그 시간이 흘러서 뭘 할까. 결국 허무할 것을. 


내가 바로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허무함을 인지하면서도 고전적 태도로 직진했기 때문이다. 바니타스 작품들이 나왔으나, 그것은 생동감 넘치는 삶의 반성이거나 도리어 이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느냐였다. 그래서 렘브란트는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며 초상화를 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17세기 유럽이 아니고 나 또한 예술가가 아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가. 그래서 뭘.... (체력도 예전만 못하고 상황도 여의치 못해 술마저 줄이고 있는데...아, 디오니소스여!)




Comment +0





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을 보기 시작한 뒤 한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지닌 일반적 인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일반적 인상이란 색조와 부분,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좌우된다. 일반적 인상이 주는 충격은 즉각적이다. (...) 그러므로 최초의 충격 다음에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세부를 살펴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8쪽 




하지만 즐기기 위해 배운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낯선 건, 그만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탓일 게다. 의외로 미술에 대한 책은 잘 읽히지 않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갤러리가 많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방문은 뜸하고, 전시를 열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으니, 작품 가격은 비싸진다. 거기다 위작 논란까지. 그만큼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그리고 현대 미술이든 고전 미술이든 다 어렵다고 여긴다. 심지어 현대 미술은 '난해한'이라는 수식어가 그냥 자연스럽게 붙어다닌다.


실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서구에선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선 대학생들도 어렵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의 책 읽기 수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밖에.


이런 면에서 이 책도 어려울 지 모르겠다. 하지만 케네스 클라크는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것의 의미를 새삼 물으며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알아두어야만 할 예술가들과 대표작품을 다룬다. 초심자에겐 그림 보는 재미를, 이미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이해를 갖진 사람들에겐 케네스 클라크만이 알려줄 수 있는 통찰이 흥미로울 것이다. 


책에선 더 많은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는 3명의 작가들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의 생각을 옮겨본다. 



엘 그레코El Greco 



16세기 후반 최고의 작가는 단연코 엘 그레코다. 하지만 그는 수 백년 동안 잊혀져 있던 작가였다. 근대 시대의 매너리즘(마니에리스모) 양식에 대한 경멸은 16세기 후반 작가들의 무시와 천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 초 엘 그레코는 극적으로 부활한다. 


그럼에도 엘 그레코를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간주했던 1920년대의 비평가들은 옳았다. 첫번째는 엘 그레코가 비사실적인 두 양식, 곧 비잔틴과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거치며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사고 방식을 타고난 덕분에 고전주의적 전통의 주된 전제를 거부한 최초의 유럽화가였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는 화면의 깊이보다 표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151쪽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The Disrobing of Christ)

Oil on canvas, Height: 285 cm (112.2 in). Width: 173 cm (68.1 in). 

1577 ~ 1579, 톨레도 대성당 



표면을 중시했다는 표현과 함께 엘 그레코가 "미켈란젤로는 훌륭하지만 그림 그리는 법을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건 참 흥미롭다. 깊이 대신 표면을 중시할 때, 고전적 원근법적 세계는 흔들린다. 중심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균등해진다. 확고한 질서 대신 흔들리는 마음이 전면에 부상한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성상화들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엘 그레코는 알고 있었다.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제르생의 간판(The Shop Sign of Gersaint)

Oil on canvas, 163 cm × 308 cm (64 in × 121 in)

1720-1, Charlottenburg Palace, Berlin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27Enseigne_de_Gersaint 



신고전주의가 자크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만든 양식이라고 한다면, 회화에서의 로코코 양식은 장 앙트완 와토의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와토의 이미저리는 그가 처음으로 전시했던 그림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향후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심지어 와토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에 태어난 후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 - 1806)는 여전히 와토의 정원, 말하자면 그의 이미저리를 활용했다. - 127쪽 



와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절반은 포기하고, 절반은 포기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노는 것같다고 할까. 그 애상은 로코코 시대 전반을 물들였다. 한 시대(토지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부르조아지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계몽주의와 로코코는 같은 시대의 양식이다. '제르생의 간판'은 와토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위키피디아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작품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Eugène Delacroix, The Entry of the Crusaders into Constantinople 

oil on canvas, 81 × 99 cm (31.9 × 39 in)

루브르 박물관 

이미지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Entr%C3%A9e_des_Crois%C3%A9s_%C3%A0_Constantinople 




오히려 그는 예술은 상상력을 비추어 사건을 재창조하므로 시의 특질을 띤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들라크루아는 아마도 매우 많은 이류화가들을 미혹했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BC 65 ~ BC 8)의 조언, '시 같은 그림 ut pictura poesis'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마지막 유럽 화가였을 것이다. - 93쪽 



H.W. 잰슨(서양미술사가)이었던가, 낭만적 고전주의와 고전적 낭만주의라고. 다비드가 낭만적이고 들라크루아가 고전적이라고. 어쩌면 케네스 클라크의 견해에 힘입어,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마지막 고전주의자일 지도 모르겠다. 낭만주의였으나, 그의 마음은 확고하게 고전적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였으며, 의미를 담아냈다. 그런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위대한 예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그 이후 나온 아카데미 화가들,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이들은 무식하게(성실하게) 그림만 그린 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몰랐으며, 그 변화를 거부했다.  











Comment +0



'나사로의 소생'(The Raising of Lazarus)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Selbastiano del Piombo, 1485 - 1547)

Oil on canvas, 1517-1519

381cm * 299cm, National Gallery, London




시기적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매너리즘에 속하는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는 그의 고향 베네치아의 색채와 그가 화가로의 삶을 살았던 로마의 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나사로의 소생'은 저명한 미술사가인 케네스 클라크로 하여금 '로마적인 형태와 베니치아적인 색채의 조합을 보면, 피옴보가 17세기 고전적 풍경의 진정한 창시자였음을 알 수 있다'는 언급을 하게 하였다. 특히 인물들 뒤로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니콜라스 푸생의 바로크적 풍경을 보는 듯하다. 


후일 친구가 되는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이 이 작품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아래가 바로 그 드로잉이다. 부활한 나자로와 그를 부축하는 이들을 그린 작품이다. 



Lazarus and attendant

Michelangelo, 1516 



나자로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치유들과 달리 이미 죽어 육체가 부패하기 시작하는, 죽은 후 나흘이 되던 때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작품화되었고 쉽게 작품들을 볼 수 있다. 





Comment +0



미의 기준은 바뀌고 미의 대상도 바뀐다. 미소년에 대한 염모는, 어쩌면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18세기 후반, 시대는 로코코로 향하고 티에폴로는 바로크적 몸짓 속에 로코코적 염원을 담아낸다. 동성애적 갈망이 화폭에 담긴다.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즉 선미의식은 이런 것이 아닐까. 선한 것이 아름다운 것. 그래서 고대에는 여성의 아름다움보다 남성의 아름다움이 더 추앙받았으며, 이는 근대에까지 이어진다.  



(요즘은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는데, 예전 싸이월드에 올린 글들을 이렇게 옮긴다. 업무용으로 네이트온을 사용하다 보니, 쪽지로 예전에 올린 글들을 알려주고, 이를 다시 블로그에 올린다.) 





2003년 12월 3일에 쓰다.






The Death of Hyacinth

1752-53

Oil on canvas, 287 x 235 cm

Thyssen-Bornemisza Collection, Madrid



18세기 중엽의 지오바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작품이다. 시기적으로 로코코 시대에 속해 있으나, 프랑스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후기 바로크로 분류될 수 있겠다. 뭐, 후기 바로크가 로코코이기도 하니. 이 구분은 좀 애매한 감이 없지 않다. 


여하튼 이 작품은 아폴로와 히야신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폴로와 아름다운 소년인 히야신스가 원반 놀이를 하다가 히야신스가 그만 원반에 맞아 그 생명을 잃어버리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는데, 저 누워있는 히야신스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에로틱'이라는 표현보다 '농염하다'라는 표현이 더 와닿는 듯하다. 얼마 전에 르누와르의 <Young Boy with a Cat>을 올렸는데, 다들 미소년에 대한 관심들이 있는 듯해, 미소년 시리즈로 작품을 하나 더 올린다. 


요즘에도 미소년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일명 '동성애' 그러니 과거의 일은 아닌 셈이다. 




Comment +0


앞으로 자주 최저 기온을 갱신하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출근길, 여러번 구두 바닥이 미끌,미끌거렸다. 그러나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나 또한 미끄러지지 않았다. 내 바람이, 미래가, 우리들의 마음이 미끄러져 끝없이 유예되는 것과는 반대로, 내 낡은 구두 밑은 의외로 눈이 녹아 언 길 위를 잘 버텨주었다. 


잦은 술자리,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안 좋아졌다. 안 좋아지는 것만큼 세상도 안 좋아지고 개인 경제 상황도 안 좋아졌다. 말 그대로 올 한 해는 최악이다. 다행히 심심풀이 삼아 온 온라인 토정비결에선 내년 운이 좋다고 하니, 그걸 믿어볼까나. (이렇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행운(저 세상의 논리와 질서)에 기대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서양미술사 강의를 할 때, 이집트 미술을 설명하면서 '과연 파라오 밑의 국민들이 행복했을까요? 아니면 불행했을까?'라고 묻곤 했다. 나는 '당연히 불행했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라 여기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행복했을 수도 있다'고 답할 지 모르겠다. 그리고 실제로도 불행하지 않았고 행복했다고 믿는 편이 낫고 타당하다. 이는 '합리적이고 성실하며, 세상 분위기가 그의 편인 군주 밑의 신분제 사회가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과도 연결된다. 그만큼 이집트 사회는 변화가 없었고 흔들리지 않는 질서가 있었다. 몇 천년 동안 예측가능한 시기가 계속 되었다. 변화말로 사람들의 불안을 야기하는 어떤 것이다.  


사상의 자유라든가 발언/표현의 자유는 전적으로 근대(modern)의 산물이다. 어떤 위계질서를 버리고 극적인 변화와 새로운 질서 속에서 선택한 것이 개인의 자유이고 개인에 대한 (계량적) 믿음이다. 하지만 현대, 지금/여기에 이르기까지도 동시대 모든 사람에게 그런 근대적 의식을 바란다는 건 무리였다. 과연 누가 그들에게 근대적 의식을 강요하는가! 


근대적 의식은 변화를 긍정하고 변화 속에서 진정으로 나은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그 대신 불안을, 두려움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내일을 택한다. 초기 근대 예술가들 - 말년의 미켈란젤로, 폰토르모, 파르미지아니노 등 - 이 보여준 불안, 두려움, 막연한 공포는 여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기교적으로 능수능란하고 강렬한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던 바로크 예술가들 - 몬테베르디, 바흐, 비발디, 푸생, 렘브란트, 베르니니 등 - 에 의해 이 불안은 극복되고, 데카르트, 라이프니츠는 합리적 세계관 속에서, 버클리와 흄은 경험적 세계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 - 진리가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 - 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근대적 의식은 오래 가지 않고, 20세기 후반 논의되기 시작한, 반-근대적이라 일컫어지는 '포스트-모던'(post-modern)은 근대의 가려져 있던 불안, 두려움, 공포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포스트모던 사회인가? 그래서 전 근대적인 시기(후기 조선에 가까웠던 시기)에 대한 향수로 목 말라 하는 것일까? 


글쎄다. 잘 모르겠다. 우리에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1인당 국민소득 1천불에서 1만불로 가는 것과 1만불에서 2만불, 3만불 가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서로 다른 의견을 공유하고 나은 대답을 찾기 위해선 시끄러운 의견 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민주주의, 자유주의, 다원주의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엔 이미지로서의 정치가 답이고, 매스미디어에 의해 사람들의 의식은 조장될 수 있고, 비판적 시각을 키울 수 있는 책 같은 건 살아 있는 동안 1권도 읽지 않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마당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미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은 두서 없고 생각은 미끄러지기만 한다. 이런 주절거림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내 패배감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올 한 해, 나는 패배했다. 근대의 반성적 자기 의식은 외부를 향하지 않는다. 의식의 지향성이란 이것이다. <매트릭스>의 니오가 선택한 알약도 바로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알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현상학자들은 그러한 알약의 시작이 어디인지 묻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현상학적 접근이다. 


척 맨지오니의 'Consuelo's Love Theme'을 듣는다. 안소니 퀸이 주연을 한 '산체스의 아이들' OST 앨범. ... 두툼한 LP를 꺼내어 듣고 싶지만, 지금은 사무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적는 이 짧은 글. ... 결국 나는 근대인(homo modus)임으로 '내일의 나'를 향해 가겠지만, ... 16세기 사람들이 느꼈을, 그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Comment +0



찰스 테일러의 <<근대의 사회적 상상>>에 나오는 주석인데, 바로크Baroque 문화, 혹은 시대에 대한 언급이 있어 이렇게 메모해 둔다. 미술사 뿐만 아니라 문화사나 지성사에 있어서도 바로크 양식은 매우 중요하다. 고대와 대비되는 근대, 그리고 현대적 삶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근대, 그리고 바로크는 그 근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적 양식이기 때문이다.

찰스 테일러는 루이 뒤프레(Louis Dupre')에 기대어 바로크에 대해 언급하였고, 아래 내용은 그 각주이다. 그리고 이 글은 기억의 보조적 수단으로서의 저장이다. 이 각주에서 엿보이는 뒤프레는 바로크에 와서야 중세적 질서가 근대적 질서 속에 종합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종합의 긴장이 바로크 양식을 이룬다는 것. 일견 타당하기도 하지만, 너무 중세적 질서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한 것은 아닐까 싶다. '12세기 르네상스론'이 있듯이 어쩌면 중세적 질서(창조주 신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적 질서와 이 질서에 유비된 현실적 질서)마저도 바로크가 나오기 이미 오래 전부터 무너진 어떤 것일 지도 모른다.



물론 이렇게 슬쩍 지나가는 언급 뒤에는 거창하고 복잡한 명제가 놓여 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바로크 문화란 일종의 종합명제라는 것이다. 즉 행위자가 세계에 질서를 구축하는, 내면적이고 창조적인(poietic) 존재라는 근대적 이해방식과 형상(Form)에 의해 틀 지어진 우주(cosmos)로서의 세계라는 더 오래된 이해 방식 간의 종합 말이다. 나중에야 우리는 이 종합 명제를 불완전한 것이며 교체될 운명을 지닌 것으로 보게 되었는데, 이는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바로크 문화 속에서 일종의 구조적인 긴장을 볼 수 있다. 그 긴장은 질서와 행위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즉 거기에 이미 존재하는 위계적인 질서 그리고 자신들의 구성적 활동을 통해 그 질서를 지속시키고 완성하는 행위자들 사이의 긴장인 것이다. 이 행위자들은 자신이 스스로의 동기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에서 위계 질서의 바깥에 있고 평등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들 자신을] 그와 필적한 것의 밖에 위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루이 14세의 말과 같은 혼성적 정식화는 그로부터 나온 것이다.

나는 뒤프레(Dupre)의 책에 제시된 바로크 예술에 대한 흥미로운 서술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Dupre, Passage to Modernity, pp. 237 ~ 248. 뒤프레는 바로크가 인간 행위주체성과 그것이 발생시키는 세계 사이의 "최후의 포괄적인 종합 명제"라고 말한다. 거기서 이 행위주체성에 의해 발생한 의미들과 우리가 세상 속에서 발견한 의미들에서는 어떤 관계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긴장과 갈등으로 가득 찬 종합명제이다.

바로크 교회는 정적인 질서로서의 우주보다는 신에 이러한 긴장의 초점을 맞춘다. 이 신의 힘과 신성은 우주 속에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하향성의 힘은 인간의 행위주체성에 의해 취해지며 또 앞으로 나아간다. "따로 떨어진 권력의 중심으로 개념화된, 신적인 질서와 인간적인 질서 사이에서 근대적인 긴장을 빚어내면서"(226) 말이다.

뒤프레는 바로크 문화가 "포괄적이며 영적인 비전"에 의해 통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그 중심에는 발생 중인 세계에 형식과 구조를 줄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개인이 있다. 하지만 - 그리고 여기에 그것의 종교적 의미가 있다 - 그 중심은 여전히 초월적인 근원과 수직적으로 연결된 채 남아 있다. 인간 창조자는 매개체들이 하강하는 단계를 거침으로써 그 근원으로부터 자신의 힘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 인간적이며 신적인 - 이중의 중심이 바로크의 세계상을 중세의 수직적인 세계상과 구별 짓는다. 중세의 세계상에서는 실재가 단일한 초월적 지점으로부터 내려오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몇몇 특색 안에서 미리 나타난 바 있는, 이후의 근대성이 지닌 확실하게 수평적인 세계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두 중심 사이의 긴장이야 말로 바로크에 복잡적이고 불안정하면서도 역동적인 특성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237)
- 찰스 테일러, <<근대의 사회적 상상>>, 128 -129


아래 관련 글 2개를 올린다. 하나는 찰스 테일러 책에 대한 간단한 서평이고, 하나는 바로크 예술에 대한 글이다. 서양미술사 책을 내기 전에 요약, 메모해놓은 글이다. 이젠 미술 관련 글을 쓸 시간조차 없이 바쁘니...





뒤프레의 책도 꽤 재미있을 것같은데.... 읽을 시간이 있을까. ㅡ_ㅡ;;


 
Louis Dupre, Passage to Modernity

Comment +0



안토니 반 다이크
자화상 
1630년도작, 24.1cm*15.6cm, 에칭 판화 




오래된 작품은 어느새 내 일상과는 너무 많이 멀리 떨어져있다. 녹슬어가는 내 지식은 서재 한 구석에 박힌 강의노트 속에서 박제가 되고, ... 바로크의 초상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와 15세기 초의 반 아이크 형제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음을 이 작은 자화상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여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그런 피치 못할 사정을 보는 이들이 이해해 주겠거니 하는 여유로움이 있거나, 한 발 더 나아가 여백을 작품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으로부터 시작하거나 ... 여러 가지 이유를 따져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거친 여백을 드러내거나, 또는 고른 채색의 화면 처리가 사라지는 것은 바로크 시대부터다.  마치 하나의 원리로부터 시작해 예외가 되는 모든 것을 다 잘라내는 듯한 자신만만한 태도를 가졌다고 할까. 마치 '오캄의 면도날'같지 않은가. 

고딕 시대의 유명론이 본격적인 근대적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영국의 경험론이라면, 그 경험론적 태도가 묻어나는 것은 바로크 시대의 초상화가 될 것이다. 뭐랄까. '인생은 살아봐야 되는 것'이고, '살아봐도 잘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그런 느낌의 작품들... 

할 말이 많은 듯하지만, 정작 세상을 살아보면 하고 싶은 말은 나이가 들수록 사라지더라. 그리고 이제서야 말을 할 때가 되었다 싶으면 해질녁이 되고 저 먼 평원 너머로 붉게 물은 하늘이 펼쳐진다. 바로크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은 그런 해질녁 밑에 모여들 뿐, ... ... 실은 나도 그렇게 변해가는 건 아닐까, 요즘 들어 종종 무섭다. 






 

Comment +3

  • 음.. 반 다이크 라는 이름을 보니, 입시 때 썼던 물감 이름 중 '반다이크브라운'이라는 이름이 생각나네요. 혹시 그 이름의 주인 일까요? (물감 이름은 램브란트였으니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죠?ㅎㅎ)

    아무튼 아침부터 왠지 알 듯한 이름이 와서 반가움에 냅다 댓글을..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 또 놀러오겠습니다~

    • 반 다이크가 만든 브라운 색이 있나보군요~. 아니면 즐겨 사용했던 브라운 색이든가... 유화 물감이 만들어진 것이 르네상스 시기였고, 색의 구분이나 작명은 그 이후에 이루어졌을 겁니다.

      미니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오피스 한 번 놀러간다는 게 영~시간이 나지 않네요. ㅎㅎ.. 수첩 너무 탐나는데..ㅋㅋ

    • 아하! ^^)~
      네에 뭐 그런 구분... 어렵네요.. ㅎㅎ

      그나저나 다시보니 저 위에 반다이크 그림이 너무 멋져서..
      퍼가요~♡ 개인소장을;; ㅎㅎ

      좋은 하루 되시구요~ ^^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2011. 5. 3 ~ 8. 28. 국립중앙박물관
(Princely Treasures - European Masterpieces 1600 - 1800 from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이 글을 적고 있는 오늘이 전시 마지막 날이네요. 전시를 보러 가지 못했다고 해서 서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101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지만, 궁정 문화를 알기에 모자라기도 하고 더 많은 유물을 전시한다고 해도 궁정 문화를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이 전시를 간 이유는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를 알고 싶어서 라기 보다는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의 명성 때문입니다. 빅토리아앤앨버트 박물관(V&A Museum)은 장식 미술, 공예, 도자기, 조각 등에 있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 450만 점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V&A박물관의 101점이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 소개되었으니 기운 빠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전시는 ‘유럽 궁정의 미술 후원’, ‘권세와 영광’, ‘종교적 장엄’, ‘실내장식’, ‘패션과 장신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나는 것은 상아 조각 작품, 세밀한 장식의 담배갑 뿐입니다. 전시장 가운데 서 있는 헬레니즘 시기에 그 모습을 드러낸 코린트 양식의 기둥은 너무 어색했습니다. 도리어 바로크 양식의 건물 파사드를 일부 붙여놓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근대 유럽의 궁정 문화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화려하고 우아한 생활? 진귀한 장신구와 가구들? 아름답고 유쾌한 연애? 그러나 유럽의 궁정 문화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진짜로 유럽 궁정문화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전시보다 이지은의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이라는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아름다운 공주가 혼자 방에 앉아 우아하게 수를 놓으며 왕자를 생각하는 로맨틱한 광경이 흔히 나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6세기 왕족들의 생활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로맨틱하지 못했다. 우선 공주가 혼자 수를 놓으며 우아한 침대에서 왕자를 생각한다는 것부터가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벽난로가 설치된 방이 몇 개 안 되는데, 왕과 공주들이 독방을 차지해 버리면 나머지 궁정인들은 어디서 잠을 잤겠는가. 추운 복도에서 덜덜 떨다가 얼어 죽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사실 당시 공주는 자매인 다른 공주들뿐만 아니라 자기 시종들까지 데리고 한 방에서 잤다. 시종들은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인 호위병과 기사들까지 포함된다. 한 방에 50명 남짓한 남녀가 혼숙을 한 것이다. - 25쪽



지금이야 밤에도 환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만, 19세기 이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요즘 시대와 비교해본다면, 높고 두꺼운 벽, 넓은 유리창이라고 하지만 현대의 그것보다 좁아 보이는 창들로 이루어진 방에서 지내는 밤을 생각해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특히 비가 내리는 12월 초 궁궐에서의 일상 생활이라면?어딘가에서 들리는 자신에 대한 비방, 안 좋은 소문, 궁 밖으로의 여행은 보이지 않는 대담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이유로 유럽 왕족들끼리의 오랜 근친혼으로 인해 태양왕 루이 14세와 같이 장수한 이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여성들의 화장은 어땠을까요?

백분을 탄 장미수에 계란 흰자 거품을 넣고, 말린 오징어 가루와 장뇌 가루, 돼지기름을 넣은 다음 이것을 얼굴에 바른다. 하얗고 건조한 피부를 원할 때는 수은과 재, 모래를 넣어 굳힌 고약을 얼굴에 문질러야 된다. - 42쪽


하얀 피부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상당수의 귀족 부인들은 수은 중독이었습니다. 수은을 얼굴에 발랐으니, 안 될 수가 없었겠죠. 하지만 이런 마법과도 같은 화장법은 궁정 사회의 핫 트렌드로, 베르사이유에서 하번 유행하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런 시대의 궁정 문화라는 게 어떤 것이었을까요?그래서 저는 궁정 문화의 화려함 뒤의 우울하고 애잔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당시 여인들의 삶은 종종 애잔한 느낌을 준다.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약혼을 하고, 열두세 살에 결혼을 하고, 쉴 새 없이 아이를 낳았던 여인들은 스물다섯 살만 되어도 젊음의 생기를 잃고 시들어갔다. 높은 지위의 왕족이 아닌 이상, 여인들은 애완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1장에 등장한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궁정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서열을 나눈 기록을 보면, 궁정의 하녀들은 그녀의 개나 앵무새보다도 지위가 낮았다.
- 48쪽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전을 본다고 해서 17 - 18세기의 궁정 문화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눈으로 보기에 대단히 장식적이거나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가지기도 어렵고요. 차라리 서울 시내에 있는 여러 백화점의 명품관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전시는 제가 보기엔 다소 실망스러웠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하긴 국내에는 유럽 장신 미술에 대한 전문 연구자가 몇 명 정도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을 알린 것만으로도 의미를 두어야 할까요. 그리고 이 전시와 함께 '145년 만의 귀한, 외규장각 의궤'를 본다면 동시대의 서유럽과 조선의 궁정 문화를 비교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관련 글)
2006/09/18 - [책들의 우주/이론] -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이지은



'주말미술여행'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한 글은 '올댓 주말미술여행'에도 함께 올랍니다. ^^

"올댓 주말미술여행 출시"

미술 전시 정보/리뷰, 미술 서적 및 미술 관련 칼럼 등으로 이루어진 '올댓 주말미술여행'이라는 어플을 출시하였습니다. 이 어플은 SKT의 지원을 받아 TNM에서 제작한 콘텐츠 어플입니다. 매주 업데이트를 할 예정으로 있으며, 금요일이나 토요일, 이 어플로 주말에 가볼 만한 전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많은 이용 바라며, 주위에도 많이 추천해주세요~.

QR코드: 안드로이드마켓에서 다운받아 설치하기


QR코드: T스토어에서 다운받아 설치하기




Comment +0


바로크의 꿈 - 1600 ~ 1750년 사이의 건축
프레데릭 다사스(지음), 시공디스커버리총서



“형태(형식)는 그것이 재료 속에 살아 숨쉬지 않는다면, 정신의 관점(추상)에 불과하거나 이해하기 쉽게 기하학으로 표현된 영역에 대한 사변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잘못된 생각처럼, 예술은 결코 환상적인 기하학이나 그보다 더 복잡한 위상지리학이 아니다. 예술은 무게와 밀도와 빛과 색채와 연결된 그 무엇이다.”
- 앙리 포시옹, ‘형태들의 삶’, 1939년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으로 학고재에서 번역 출판되었음)





이 책은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시리즈들 중에서 제법 어려운, 하지만 바로크에 대해서 그 어느 책보다 충실한 내용을 가진 책이다. 프레데릭 다사스의 ‘바로크의 꿈’은 건축을 중심으로 바로크 양식이 가지는 특성과 지향했던 세계를 풍부한 도판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종종 책의 서술은 딱딱하지만 흥미롭고, 전문적이면서 아름답고 운동감으로 넘쳐 흐르는 바로크 건축에 대해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 여겨지는 바로크 양식에 대한 이해가 실은 대부분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음을 안다면, 이 작은 책은 매우 귀중한 역서가 될 것이다.

바로크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오해와 짧은 식견으로 인해, 바로크 양식이 가지는 역동성, 충돌과 열정, 극적인 자연주의가 근대성(modernity)를 기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현대인)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아래 인용된 설명처럼 바로크 양식은 먼저 고대와 중세의 본격적인 단절과 극복이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가 그 시작이라면.


고대의 유산인 건축의 오더는 무엇보다도 비례 체계라 할 수 있다. (중략) 오더의 비율은 인간 신체의 비율을 반영한다. 오더의 인간 형체는 오더의 미가 지닌 신성하고 절대적인 성격과 특히 오더가 구성하고 있는 건물의 조화를 보증한다. 또한 오더는 장식 체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한하고 미묘한 변화가 가능하며, 건축가에 따라 그 질이 좌우되는 조각 부분 - 쇠시리 장식 - 에 큰 중요성이 부여되기도 한다. 오더는 운율론에서 보면 12음절 시행의 구조에, 그리고 고전음악의 협화음에서 나타나는 음계법의 체계와 비교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는 조화와 표현의 체계인 것이다.
- 46쪽 ~ 47쪽



 

17세기 후반부터 오더는 비틀림, 중단된 회전, 늘임, 병렬 등 지나친 변용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오더에 대한 조작 범위가 체계적으로 연구되면서 오더의 완전성 자체가 의문시되기 시작했다.
- 48쪽




고대 건축의 오더 양식
출처 http://blog.naver.com/archmys/30106190006



출처
http://www.romasegreta.it/scarlo_alle_quattro_fontane.html 
보로미니의 산카를로알레콰트로폰타네 파사드.

[작품설명] 고대 건축에서 오더는 기하학적이며 규범적이었지만, 바로크에서의 오더는 건축의 일부로 들어가며, 도리어 건축 외형에 있어 방해가 되는 것이 되었다. 보로미니의 위 건축물은 바로크 건축의 시작을 알린 건축물들 중의 하나로, 건축물 외벽에 운동성을 표현한 최초의 건축물이기도 하다.




예술 양식의 역사에서 르네상스 - 매너리즘 - 바로크로 이어지지만, 르네상스의 정신을 이은 것은 바로크이다 (마치 르네상스 미술의 철학적 반영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이듯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사이의 매너리즘은 반-르네상스 운동이며, 후기 중세(고딕)적이며, 종종 반-근대적으로, 후기 근대적(postmodern)으로 해석된다. 이를 다시 이야기하자면, 고대와 중세를 벗어나기 위한 근대인의 운동은 비로소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와서야 그 꽃을 피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정확하기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뉴턴의 시대와 일치한다.

바로크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은 고대의 영향 속에서도 고대와 다른 이상을 열망하였으며, 신의 세계(중세)에서 벗어나 인간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건축을 하나의 감각적인 체험으로 만들고자 열망했던 건축가들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들인 빛과 공간에 대한 탐구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시각적 효과에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다른 수단들을 그에 집중시켰으며, 채색되거나 조각된 장식을 건축과 융합하는 놀랄 만한 대담성을 보여 주었다.
- 75쪽




바이에른의 비스(Wies) 교회
[작품설명] '연극성'은 바로크 전반을 물들이는 하나의 기조였다. 이는 건축 내부에서도 반영되는데, 비스 교회도 여기에 포함된다.



인간의 세계에 충실했던 그들은 감각적 체험을 우위에 둔 시각 세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경험론 우위의 자연관이 시작된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이 바로크 양식의 다양성을 표현한다면, 바로크 이후의 양식들은 경험론의 우위를 공공연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로코코는 바로크 후기 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극적인 효과를 드러내기 위해 인간적 범속함을 채용하기도 하였다. 가령 성적인 표현들.) 

이 책에 담긴 바로크 양식에 대한 충실한 설명은 건축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양식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에 관심 있는 독자 뿐만 아니라 17세기 서양 예술 전반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흥미로운 한 부분을 옮긴다. 이는 정원 양식에 대한 것이다. 요리가 예술이듯이 정원도 예술 장르 중의 하나다. 이 점에서 예술의 역사에서 정원도 한 부분을 차지해야겠지만, 시간에 종속된 정원은 오직 현재성만을 드러내는 까닭에 역사적 서술이 어렵다. 아래는 르네상스 이후 정원 양식의 변화를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Picturesque Garden이라고도 한다)의 대비은 언제나 흥미롭다.


르네상스식 정원은 테라스, 동굴, 폭포를 설치할 수 있는 경사진 땅을 선호하며 풍부한 물놀이가 구성되어 있고 녹음이 중요시된다는 특성을 지닌다. 녹음의 아래로는 기하학적으로 정돈된 화단 옆에 놀라움을 선사하는 설치물과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동굴이 있는 길이 나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프랑스 정원은 기복이 별로 없는 토지에 적응해야 한다는 조건과, 그늘이나 시원한 동굴에 관심을 두지 않는 탁 트인 성격으로 인해, 건물을 ‘안뜰과 정원’ 사이에 영지 입구를 설치했다는 점에서 다른 양식과 구별되었다.

풍경화식 정원을 형성하는 근원으로의 회귀는 1720년대에 영국에서 등장하는데, 이러한 흐름은 프랑스식 궁전의 공간과 대립된다. 이것은 지식인의 인본주의적 성찰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자 전통적인 정원 양식을 거부하는 정원 형식 상 혁명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정원의 건축가들은 전세기에 푸생, 로렌 또는 네덜란드의 풍경주의 화가들이 그린 이상적인 풍경 속에서 영감을 얻었다.
- 28쪽 ~ 29쪽







르네상스식 정원
The Villa Lante di Bagnaia

출처: http://www.gardenaesthetics.com/italian.html



프랑스식 정원
출처: http://blog.aladin.co.kr/stella09/501079 (베르사이유 궁 정원)

영국식 정원
출처: http://www.telegraph.co.uk/gardening/4389731/Britains-gardens-A-private-passion-and-a-public-disgrace.html


* 참조할만한 링크: 정원의 역사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gardening 
* 시공디스커버리 시리즈들 중 예술 양식이나 예술가에 대한 책은 적극 추천할 만하다. 나머지 시리즈들도 풍부한 도판과 알찬 설명으로 명성이 있지만.
 



[그 외 바로크에 대한 글들]
화려한 바로크 양식, 멜크 베네틱트 수도원 Melk Abbey   http://intempus.tistory.com/1389
귀도 레니(Guido Reni)의 성 세바스찬(St. Sebastian) http://intempus.tistory.com/716
바로크 예술 http://intempus.tistory.com/186
(* 검색에서 '바로크'로 검색하면 그 외 많은 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크의 꿈 : 1600-1750년 사이의 건축 - 10점
프레데릭 다사스 지음/시공사

Comment +0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무대가 되는 멜크 수도원은 9만여권의 장서를 가진 도서관을 가진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976년 레오폴드 1세(남부 오스트리아의 군주)는 지금의 멜크 수도원 자리에 자신의 성을 지었고 그의 후손들은 이 곳에서 지냈으며, 1089년 레오폴드 2세가 베네딕트 수도회에 성을 주었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배경은 바로 이 시대부터 시작된다. 12세기 많은 수도사들이 멜크 수도원에서 성경을 옮겨 적으며, 도서관을 만들게 된 것이다.




현재의 멜크 수도원은 18세기 초 Jakob Prandtauer에 의해 새롭게 지어졌다. 이로 멜크 수도원은 중부 유럽의 대표적인 바로크 건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수도원 건축물의 발달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구교의 위기 의식에 기초하고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ient, 1545 ~ 1563) 이후 많은 수녀회, 수도회가 생겨났으며, 기존 수도회도 개혁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자연스럽게 수도원 건축물에 대한 투자로 이어졌고 카톨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지역의 귀족들과 국왕들은 일반 민중을 중심으로 그 세력을 확장해나가던 개신교에 대응하여 수도원 건축물에 지원을 한 것이다.


멜크 수도원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신앙과 믿음의 상징인 수도원도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무관치 못했다는 점은 종교가 역사 속에서 성스러운 신앙 이전에 막강한 정치적 권력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 ‘기증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10세기 이후 세속의 군주들은 자신의 신앙심을 과시하며 일반 민중으로부터의 지지를 구하고 종교 권력으로부터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권력을 종교에 아낌없이 기부하였다. 중세 후기의 교회 건축물들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지어진 것들이다.


참고 문헌)
프레데렉 다사스, '바로크의 꿈 - 1600 ~ 1750년 사이의 건축', 시공디스커버리
멜크 수도원 홈페이지 http://www.stiftmelk.at/englisch/index.html 
이미지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elk_Abbey 





Comment +0


하루의 피로가 몰려드는 저녁 시간. 밖에는 3월을 증오하는 1월의 눈이 내리고 대륙에서 불어온 바람은 막 새 잎새를 틔우려는 가녀린 나무 가지에 앉아 연신 몸을 흔들고 ... 어수선한 세상에서 잠시 고개를 돌리고, 밀려드는 업무에 잠시 손을 놓고 ... 하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눈 오는 3월의 어느 저녁.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소리 내어 읽는다.

사물들에게 바치는 송가



모든
사물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것들이 정열적이거나
달콤한 향내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모르긴 해도
이 대양은 당신의 것이며
또한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단추들과
바퀴들과
조그마한
잊혀진
보물들.
부챗살 위에 달린
깃털
사랑은 그 만발한 꽃들을
흩뿌린다.
유리잔들, 나이프들
가위들…
이들 모두는
손잡이나 표면에
누군가의 손가락이 스쳐간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망각의 깊이 속에
잊혀진
멀어져간 손의 흔적



나도 사물들에게 몰두할 때가 있었다. 그건 내가 어떤 사랑도 받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 때였다. 외로움의 강물이 내 몸에 흘러넘쳐,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거친 살갗 사이로 희멀건한 물기가 흘러나왔다. 내 방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여있는 샘이 되었고 그 위로 쓸쓸한 음악이 흘렀다. 

파블로 네루다가 외로웠을까. 모든 사물들에게서 흔적을 찾는다. 흔적을 간직하며 애무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노래한다. 사물들에 대한 사랑을. 

아마 17세기의 이 벨기에 화가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Adriaen van Utrecht (Flemish painter (b. 1599, Antwerpen, d. 1652, Antwerpen))
Vanitas Still-Life with a Bouquet and a Skull
c. 1642
Oil on canvas, 67 x 86 cm
Private collection


해골과 꽃다발, 그리고 세월이 가면서 그 흔적을 지친 먼지들로 숨기는 사물들을 위트레흐트(Utrecht)는 사랑했는가 보다. 사랑하고 싶었으나, 사랑받지 못한 자신을 뒤돌아보며, 시간의 흔적들을 숨기는 사물들 속에 자신의 외로움을 투영시킨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가, 위트레흐트가, 그리고 젊은 날의 내가... 그러다가 어느 날 사물들에 병적인 집착을 드러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까. 

눈이 내리는 3월의 저녁은 길기만 하다




  

 

Comment +2

  • 지나가는사람 2011.06.01 04:04 신고

    옛날에 기사로 읽었는데요 어떤 여자가 에펠탑이랑 결혼했데요 되게 슬프죠? ㅠㅠ

    • 일본의 어떤 남자는 게임의 캐릭터와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요~.. 사물이나 가상의 존재와 결혼했다가도,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 사람과 결혼했을 거예요~.. ^^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이 주위에 없네요. 바쁜 일상인지라, 교류할 틈이 없었던 탓이죠.
저의 경우에는 팝->아트락/프로그레시브락 -> 재즈 -> 클래식의 궤적을 밟아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을 듣지 않았다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옮겨 오던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클래식 음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재즈를 그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마일즈데이비스 & 캐논볼애덜리의 'Somethin' else의 'Autumn Leave'와 덱스터 고든의 'Appointment in Gana'(음반명이 기억나질 않네요)를 듣고는..)

클래식 음악은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가장 좋아합니다. 레퀴엠 음반만 7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음반은 지오나비 바티스타 페르골레지라는 이탈리아 작곡가의 음악입니다.
26살에 요절한 바로크 작곡가로 남긴 곡이 몇 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크 특유의 깊은 슬픔으로 우러나오는 비장한 아름다움은 어떤 누구의 작품보다 더 훌륭합니다.

그 중에서도 리날도 알레산드리니와 콘체르토 이탈리아노의 연주가 최고입니다.
바로크 고음악 연주와 해석에 있어서 탁월한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아래 3종의 음반은 다 같은 음반입니다. 시기별로 출시되어 자켓 이미지가 다릅니다.
오래 전에 나와 절판된 음반도 있습니다.

[수입] 페르골레지 & 스카를라티 : 스타바트 마테르 (슬픔의 성모) - 10점
스카를라티 (Alessandro Scarlatti) 외 작곡, 알레산드리니 (Rinaldo/NAIVE

 

[수입] 페르골레지 & 비발디 : 스타바트 마테르 [Digipak] - 10점
비발디 (Antonio Vivaldi) 외 작곡, 알레산드리니 (Rinaldo Alessa/NAIVE

 



위 음반에 실린 음악을 누군가가 youtube에 올려놓았군요.

(* 이 글은 다른 게시판에 올린 글을 제 블로그에 옮겨놓았습니다.)

Comment +0





오전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신문을 잠시 보다가, 9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서 근처 분식집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실은 오후 늦게 약속이 있는데, 과연 내 몸 상태가 그 약속을 소화시킬 정도인가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걷는 모습은 꾸부정하고 움직일 때마다 적당한 수준의 통증을 느꼈다. 결국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기 곤란한 상황이라, 나중에 전화를 다시 하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전화가 없다.

집에 들어와,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 - 1764)의 '피그말리온 Pygmalion'을 들었다. 감미롭고도 슬픈 선율을 날 잠시 위로했다.

쓸쓸함이라든가 외로움이라든가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아플 땐 특히 더 그렇다.

원래는 운동을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도리어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약국에 갔더니, 이상한 진통제들만 잔뜩 준다. 하루 이틀 먹어보고, 그래도 계속 아프면 병원 가라고 한다. 어제 운동을 하러 갔다가 샤워를 하기 전 거울을 보니, 얼마나 아팠던 건지 상체가 갸우뚱해져 있음을 발견하고 놀랬다. 옷을 입은 상태에선 보이지 않던 것이 옷을 벗고 나니, 내가 예상하던 것보다 내 육체는 그 통증에 매우 김각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로, 자신이 만든 여인상과 사랑에 빠진다. 이렇고 저렇고 해서, 여인상이 실제 여인으로 변해 피그말리온 옆으로 온다는 기이한 이야기의 주인공인데, 이 로맨틴한 스토리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작품의 갈라테(Galatea, 피그말리온이 사랑에 빠진 여인상의 이름)은 대부분 아름답다. 그런데 아래 작품은?

  

브론지노(Angelo Bronzino)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은 너무 흥미롭다. 1529년에서 153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 속에서, 두 인물은 마치 자신들이 그림 속에 위치한 가상의 인물임을 아는 듯, 다소 작위적이고 가식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색채도 공중에 붕 뜬 듯, 단단한 느낌을 주지 못하고, 그렇다고 환영적이라든가 자연주의적이지도 않다. 마치 결과를 알 수 없는 슬픈 꿈처럼, 그렇게 표현되고 있다.

요즘 우리 시대도 이런 모습은 아닐까. 아니면 내 모습은? 하지만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작곡가였던 라모의 음악은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으니 ... ...





Comment +2


[수입] DHM 창사 50주년 기념앨범 (50CD) - 10점
여러 아티스트 (Various Artists) 작곡/DHM




미친 짓이라는 걸 안다. 이 시디를 사기 전에 나는 이미 2월에만 도서 구입으로 15만원 이상을 지출한 상태였다.  하지만 선택에 그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바로크 이전 음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그리고 종종 이 시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설레는 기분을 어쩌지 못하는 나는, 이 박스 세트를 구하지 못했음을 최근 통탄해하고 있었다. 

이 박스세트는 작년 초에 수입되었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야 이 박스세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작년에는 광화문 교보 핫트렉에 자주 들리지 않았고, 주위에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없었던 탓에, 나는 이 박스세트를 알지 못하고 있다가, 가끔 들리는 블로그를 통해 두 달 전에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매장을 뒤졌으나, 없었다. 광화문 교보 핫트렉 담당자는 작년 매장에 나오자 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소진되었다고 했다. 그리 많지 않은 수량이 수입되어 금방 품절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결국 아마존서점의 희망리스트에 이 박스셋트를 올려놓고 책 몇 권과 함께 주문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알라딘에서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이 왔다. 그리고 난 바로 주문을 했다.

바로크 시대 전후의 무수한 작곡가들의 주옥같은 음악들이 실려있는 이 박스 세트는 정말 돈이 아깝지 않은 세트다. 미켈란젤리, 모차르트 오페라 박스세트 이후 최고의 세트가 아닐까 싶다. 

정말 강추다. 

 



 

Comment +7

  • 그러니까 지금 구할 수 있단 말씀? 저도 하나 사보게요. ^^

    • 바로크를 포함한 고음악을 좋아하시면, 정말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 사무실 구하신 거 축하드려요. ㅎㅎ

  • 참.. 저 사무실 구했어요.. 처음으로 알려드리는 거에요. 에헴.. 뱅뱅사거리 못미쳐 우성아파트 근처.. 요.

  • 이쪽으로는 그렇게 knowledge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런 특별판 한정판에 대한 욕심도 많고
    워낙 다양한 음악을 즐겨듣는지라
    예전에 일을 할 때는 틈틈이 영화, 음악, 책 들을 사서 즐기곤 했었지요.
    근데 틈틈이 일을 하는-_- 지금 상황에서는 뭘 사기는 커녕 먹고 살기도 힘들어서...;;
    한편으로는 상당히 부럽습니다.. ^^

    다음에는 좀 더 자세한 리뷰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 하도 좋아하다보니, 그냥 지르고 보는 거죠. ㅡㅡ;; 여러 번 좋아하는 음반들을 놓친 적이 있어서. 인터넷이 발달했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을 쉽게 구할 수 있을 듯 싶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어느 땐, LP 때나 작은 음반가게들이 즐비했던 시절보다 더 구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꽤 있어요. 그렇다 보니, 경제적인 가격의 좋은 음반이 나오면 바로 구입하는 편이예요. 주머니 사정과 무관하게. 그리고 아직 총각인 탓에.. ㅎㅎ

  • 윤민연우맘 2009.02.19 23:01 신고

    아, 나도 샀어.
    당신한테 1% 적립금이 쌓여질 거래. 소박한 적립금 퍼센테이지가 아닐 수 없네.
    여하튼 이 전집에 대한 (당신 포함)리뷰어들 뽐뿌질엔 정말이지 못 당하겠더라고.

    • 며칠 째 음반만 듣고 있어. 뭐랄까. 뾰족한 첨탑의 깊고 높은 천정을 가진 성당에서 신심이 깊은 성악가의 노래를 듣는 기분이랄까... 교회나 성당을 다니지 않지만, 소박하고 우아한 열정(passion)적인 풍경이랄까... 강력 추천하기는 하지만, ...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이라고 하기엔 좀 진입 장벽이 있는 클래식인 듯. ^^




어느새 2008년의 마지막 날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 가는 게 빠르다는 생각을 곧잘 하게 된다. 올 한 해 안 좋았던 일도 많았고 좋았던 일도 여럿 있었다. 되새겨보면, 결국, 참 힘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 만났던 어떤 이는, 나이가 들수록 클래식 음악이 좋아진다고 했다. 나도 그랬던 걸까. 그렇다고 해서 재즈를 듣지 않는 것도, 가요를 듣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가지는 미묘한 깊이가 날 감동시키곤 한다. 최근 들어 더욱 더 그렇다. 그 중에서도 페르골레지는 언제나 날 울린다.

지오바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는 26살에 죽은 비운의 작곡가였다. 대중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남긴 작품이란 몇 곡 되지 않는다. 어떤 작품의 경우 페르골레지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Stabat Mater'를 영어로 옮기면, 'the Mother was standing'가 된다. 이 곡의 처음은 'Stabat mater dolorosa'은 'The sorrowful mother was standing.'의 뜻이다. 조각이나 회화에서 '피에타'가 있듯이 음악에서는 '스타바트 마테르'가 있는 셈이다.

많은 작곡가들이 'Stabat Mater'를 작곡하였으며, 현대의 아르보 페르트도 이를 작곡하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 페르골레지의 음악이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고, 우울하며, 슬프고, 아련한 세계를 보여준다. 데카르트처럼 동적이며 밝은 곳을 향하는 듯한 바로크 시대에, 파스칼이 있었듯이, 견고하고 밝은 세계 옆에 이토록 어둡고 음울한 세계도 있었다. 꼭 슬픈 빛깔의 귀도 레니 작품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바로크 예술 속에 숨겨진 어둠의 기운이라고 해야 할까.

아래 음반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음반들이다. 모두 콘체르토 이탈리아노의 연주, 리날도 알레산드리니의 지휘로 녹음된 음반들이다. 이 중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가지고 있던 시디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더 구입하게 되었다(시디가 영구적이라느니, LP보다 음질이 낫다느니 하는 말은 관련 업체의 영업 문구일 뿐, 영구적이지 않고 음질이 낫지도 않다. 특히 시디에 문제 생기면 버려야 한다. 음질의 경우에는 LP로 (시디 수준의) 깔끔한 소리를 듣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비용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 걸림돌이긴 하다).



* 텍스트 : http://en.wikipedia.org/wiki/Stabat_Mater 





[수입] 페르골레지 & 스카를라티 : 스타바트 마테르 (슬픔의 성모) - 10점
스카를라티 (Alessandro Scarlatti) 외 작곡, 알레산드리니 (Rinaldo/NAIVE


[수입] 페르골레지 & 비발디 : 스타바트 마테르 [Digipak] - 10점
비발디 (Antonio Vivaldi) 외 작곡, 알레산드리니 (Rinaldo Alessa/NAIVE


Comment +2

  • 페르골레지의 플룻곡을 딸이 한동안 연습했었는데,, 좋았었어요.
    새해에는 계획하시는 일들이 평온하게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



나에게 엄청난 돈이 있어(세계 탑 100위 정도의 갑부 수준으로) 미술 작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제프 쿤스의 작품을 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접근한다면 구입할 의향도 있다. 미술에 대해서 조금 떠벌려야 하는 비즈니스가 있다면, 대단한 사람들을 초대해 뭔가 과시해야될 필요가 있다면, 한 점 정도는 구입해볼 생각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그리고 결국 알만한 다른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겠지만). 


나는 제프 쿤스가 현대미술이 요구하는 바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정반대다. 그는 주체하지 못하는 재능으로 현대미술을 망쳐놓고 있는 몇 되지 않는 예술가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타당할 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약국' 데미안 허스트가 '삶과 죽음'이라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제프 쿤스는 매우 표피적이고 말초적이며 현대적 가벼움이란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드러낸다(데미안 허스트도 다른 의미에서 현대미술을 망쳐놓고 있는 예술가들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표피적이고 말초적이며 현대적 가벼움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현대 자본주의가 현대 문화나 예술에 대해서 요구하는 바도 동일하다. 현대 자본주의가 미국에서 고도화되었듯이, 현대적 의미의 스타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스타 예술가도 미국이 고향이다. 그러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심각한 주제 의식 따위는 집어던지자. 어떻게 하면 현재, 지금은 좀 유쾌하고 즐겁게 보낼 것인가에만 집중하자. 한없이 가벼워지고 표피적이 되며 말초적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아주 짧게만 고민하자. 그리고 즐기자.
(위의 강아지, 꽤 관능적이지 않은가!) 


제프 쿤스는 즐기는 법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극단적으로 표면을 강조함으로써 시각적 즐거움과 동시에 유쾌하고 자극적인 관능성까지 포착해낸다.  심지어 저 블룬 강아지의 터질 듯한 볼륨감은 에로틱하다. 꼭 여인의 가슴처럼 만지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더구나 살아있는 미국 예술가 중에서 최고의 스타로 각광받고 있는 제프 쿤스의 작품이  아닌가.

이런 작품이 집 거실에 하나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제프 쿤스라는 것을 안다. 제프 쿤스, 그는 누구인가. 심심치 않게 대중 매체에 등장하며, 미국의 생존 작가들 중에서 가장 작품 가격이 비싼 이들 중의 한 명이며, 미국 현대 미술 최고의 스타 예술가이지 않은가. 상황이 이 정도 되면, 집에 방문한 사람들은 한 마디씩 꼭 한다. '이야, 제프 쿤스도 소장하고 있군요. 정말 너무 좋네요'

(실은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의 작품을 집 거실 벽에다 걸어두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솔직히 제프 쿤스의 작품이 나를 감동시키지는 않는다. 도리어 정반대다. 제프 쿤스는 끊임없이 '(미술이 주는) 감동이란 게 도대체 뭐야?'라고 묻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제프 쿤스 나름대로 현대 미술이 대중에게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들고 있다. 즉 현대 미술의 의미를 다시 묻고, 미술이 주는 감동이라는 것이 성적인 자극이나 관능성과 어떻게 다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비평적인 관점에서) 제프 쿤스가 제시하는 질문은 늘 흥미진진하며, 유쾌하고, 심지어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작품을 미술 작품이라고 말한다면, 누가 믿을까? 그것도 수십억, 수백억 한다면.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일반 대중들은 몇 십만원 정도 하는 판화 작품이나 몇 백만원 하는 소박한 유화 작품이 주는 진지하고 사려깊은 감동에 대해선 별로 관심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제프 쿤스같은 이가 절대적 관심의 대상이다.  절대로 구입하지도 못할 작품, 도대체 이게 미술 작품이야 하는 의문을 들게 만드는 작품, '나도 하겠다'라고 말하게 만드는 작품, 그래서 절대로 작품이 제기하는 바의 현대적인 질문들을 이해하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작품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상황을 빨리 깨달은 몇몇의 예술가들은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끈다.

확실히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예술가들이 있다. 제프 쿤스는 예술가이지만, 동시에 능수능란한 비즈니스맨이기도 한 셈이다.


하지만 난생 처음 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제프 쿤스의 작품은 좀 당혹스러웠다. 솔직히 내가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다면, 제프 쿤스의 작품을 베르사이유에 전시하는 것을 반대했을 것이다. 외국인인 내가 보기에도, 이건 좀 아닌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런 식으로 베르사이유 궁전 방마다 작품 한 점씩 전시되고 있었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전시 컨셉이라니.


제프 쿤스의 작품을 두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비평적 지지가 대단하고 그만큼 그의 작품은 흥미진진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베르사이유 궁 밖의 푸른 하늘 만큼 감동적이진 않다.

실은 제프 쿤스의 작품을 두고 뭔가 근사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런 식으로 쌓아두고 있는 작품 사진들이 산더미같고 밀린 전시 리뷰도 엄청 많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결국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 적고 말았지만.



지난 10월의 어느 일요일에 베르사이유를 갔는데, 파리 사람들도 근처에 갈만한 곳이 없어서 주말이면 베르사이유로 가는 모양이었다. 가는 길도 막히고 파리로 들어오는 길도 막혔다. 이런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올해의 거의 마지막 일요일일 지도 모르니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이지만, 유럽의 겨울은 최악이다. 우울증에 걸릴 수 밖에 없는 날씨가 거의 다섯 달 동안 계속된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베르사이유에서 제프 쿤스를 만났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제프 쿤스의 작품을 보았다. 어둡고 낡은 가구들과 복제화들로 가득한  베르사이유 궁전 안의 방들보다 제프 쿤스가 더 재미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베르사이유 정원을 보면서 달라졌다. 제프 쿤스의 작품 이상의 흥미로움을 가진 정원이라고 할까. 그리고 베르사이유의 정원을 보면서, '역시 데카르트의 나라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똑같이 바로크 철학이고 바로크식 정원이기도 했다). 반듯반듯한 정원은 데카르트의 철학 세계를 보는 듯 했다. 확실히 합리론의 철학을 대변하는 정원이 프랑스식 정원이라면, 경험론의 철학을 대변하는 것이 영국식 정원이라고 해야 할 수 있다. '픽쳐레스트picturesque'라는 단어도 지극히 영국적인 단어다. 프랑스식 정원은 어딘가 기계(론)적인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바로크 예술 http://intempus.tistory.com/186 을 참조하면 좋겠다. 이 글을 쓴 지도 벌써 4-5년이 된 것같지만. 근대 기계론에 대해서는 이 리뷰 http://intempus.tistory.com/5 가 약간의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은 더 오래되었구만.)

로로코 양식의 베르사이유 궁전 안, 바로크 양식의 베르사이유 정원과 건물,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제프 쿤스. 로로코와 바로크는 종종 동일한 양식의 다른 측면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제프 쿤스는 약간 뜬금없다. 루이 왕가가 미국의 독립을 지지했다고 하고, 사르코지가 프랑스 대통령이 된 이후 프랑스와 미국 간의 관계 개선도 도모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제프 쿤스의 전시가 추진된 것일까?


종종 프랑스 사람들은 루이 왕가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 한다. 프랑스 대혁명의 전통이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었으나, 찬란했던 태양왕의 시대에 대한 그리움도 동시에 있다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궁전에, 얼마 되지도 않는 역사의 나라에서, 작품가격으로 따지자면 최고라는, 하지만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종종 작품의 수준이 의심스럽고  엄격한 도덕주의자의 눈에는 자극적이고 심지어 손가락질 당하기까지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는 점에서 프랑스 사회 내에서도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전시였다.

이건 과거와 현대의 만남도 아니고 프랑스와 미국의 만남도 아니었다. 좀 기형적이라는 측면에서 재미있긴 했지만, 관람객의 입장에서 베르사이유를 제대로 본 것도, 제프 쿤스를 제대로 본 것도 아닌 셈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뭔가 다른 사연이 있는 듯 보이는 전시였다. 말 많은 전시를 보았다는 점에서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 싶다.



* 제프 쿤스 전시에 대한 한글 기사로는 http://blog.naver.com/sanstitre/20057198839 가 적당합니다.
* 제프 쿤스의 홈페이지는 http://www.jeffkoons.com/ 입니다.
* 위 사진들은 직접 베르사이유에서 찍은 사진임을 알려드립니다.

Comment +6

  • 자기가 알고 있는 편협한 상식으로 예술을 보려고 한다면 예술을 보고 느끼고 감상하는데 아주 큰 장애가 올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 제프쿤스작품들이 베르사이유궁전에서 열린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느누구가 바로크양식이 프랑스가 만들어낸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바보가 있겠는가? 독일의 바로크미술이 베르사유의 고전주의적 건축에 도입되었던 을 보더라도 그 당시 베르사이유가 외국문화(바로크)에 언제나 흥미롭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것을 알 수 있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언제나 새로운 문화의 장이었고 루이 14세의 과감하고 항상 도전적 취향에 항상 실험적인 문화예술의 도가니였다고 보면 될 것 이다. 그런데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프랑스의 일부 사람들은 과거의 이미지속에 베르사이유를 일종의 '문화유산' 이라는 개념에 묶어두고 '흐르는 역사'가 아닌 '고여있는 문화'에 집착하여 제프 쿤스의 전시에 못 마땅했던 것이다. 여기에 못 지 않게 일부 외국관광객들마저도 제프쿤스의 전시를 황당하게 보는 모습들이었다. 이것은 예술의 역사를 잘못 해석하고있는 즉 변화와 새로운것을 두려워하고 있는것이라고 보면 될 것 이다. 에펠탑이나 루브르박물관의 피라미드가 세워지려고 했을때도 이런 보수파들이 늘 있었다는것을 잊지 말았음한다.
    이번 전시는 로랑 르 봉Laurent Le Bon 같은 시대를 파악하고 앞서나가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베르사이유궁은 관광객들에게만 사랑받는 고적지가 되었을것이다. 이 전시는 정말 새로운 숨을 불어넣었던 큰 역할을 했다고 보면된다. 이것은 정치적인 뒷 배경도 아닌 예술의 진취적인 정신을 이 베르사이유궁에 힘껏 불어넣어주게 된 것으로 본다.
    예술은 끊임없이 환타즘의 가능성이 이루워지는 자리이기도 하고 관객의 입맛에 맞는 뻔한 당연성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눈에 익혀진것을 보여주는것이 아니라는것이다. 루이 14세가 베르사유궁전에서 많은 스펙타클을 크게 즐겼는데 만일 그가 Split-Rocker를 보았다면 분명 감탄했을것임에 틀림없다.그런 차원에서라도 이번 제프쿤스의 전시는 크게 성공했다고 본다. 그리고 Split-Rocker가 그 어느 도시의 현대미술관앞에 설치 된 것 보다 바로 베르사이유궁전의 정원에 설치된것이 얼마나 조화로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제프 쿤스의 예술적 재능과 감각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기가 막힐 정도죠. 도대체 내가 왜 제프 쿤스를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는가하고 스스로 반문할 정도이니깐요. 하지만 베르사이유와 제프 쿤스 조합은 다소 의아스러웠어요.
      실은 베르사이유와 제프 쿤스는 (역사적으로나 미적으로나)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정치적인 인간관계들을 제외한다면. 또한 제프 쿤스의 작품들을 베르사이유가 아닌 다른 곳에서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최초의 바로크 양식은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여(보로미니의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에서)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꽃 피우게 됩니다. 독일의 바로크 미술이 프랑스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다소 의외입니다.

      긴 댓글 감사합니다. ^^. 이 전시는 저에게 '제프 쿤스의 대단함'을 느끼게 한 전시였습니다. 확실히 그는 대단한 예술가임에 분명합니다.

  • 깨비 2014.03.20 19:51 신고

    뉴스에서 제프쿤스라는 이름을 듣고 어떤 사람인지 검색하러 왔다가 잘 보고 갑니다. 잡지같은 데 내놔도 손색이 없는 글이네요

    • 감사합니다. ^^ 제프 쿤스는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작가입니다. 또한 선호가 갈리기도 하죠. ~.. 그만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기도 합니다.

  • 뉴욕에서였나?? 제일 처음 제프 쿤즈의 저 거대풍선푸들을 보고 제가 느꼈던 감정을 글로 참 잘 쓰셨네요.

    정말로 만지고 싶었습니다 ㅋㅋㅋ

    반짝이고 누가 한번도 손대지않았을거같이 반질한 저 표면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비쌀거같다. 재료값이 만만치않았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풍선 꼭지마저도 쇠라는 어려운 소재로 그 고무 꼬인 느낌을 참 섬세하게도 표현했더라고요. 현대적인 관점과 감각으로 보았을 때 품질이 명품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지고싶다... 라는 그 감각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관능과 밀접한 연관이 있네요.

    저는 작품을 봤을 당시 좀 어렸던걸로 기억하는데. 나이때문인지 만지고싶다라는 생각과 관능을 연관시키지는 못했었습니다.
    다만 역시 돈을 많이 벌면 저런 작품을 사고싶다라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사고를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저 작품을 뉴욕이라는 참 제프 쿤즈와 너무도 어울리는 동네에서 구경을 했었기때문인지 제프 쿤즈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제가 만약 베르사유에서 제프 쿤즈의 작품을 처음 봤었다면 제 견해도 조금은 달라졌을지 궁금합니다.


    아무튼 꽤 시간이 흐른 제 기억을 이렇게 꺼내주시는 글을 써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 제프 쿤스가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을 보면, 참 똑똑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비즈니스 매너도 참 좋아서 '고집스러운 예술가'스럽지 않습니다. 이 또한 배워야 할 점이겠지요. 하지만 작품에 대해선 선호가 갈립니다만, 이 또한 전략인 것같아요. ㅎㅎ


1983년에 나온 LP를 가지고 있으니, 나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LP를 구입한 건 90년대 중반쯤 되었을 테니, 창원의 어느 상가, 문 닫기 직전의 음반 가게에서 먼지를 먹고 있는 레코드였다.

하지만 이것이 내 바흐 순례의 시작이었으니, 어찌 그 감동을 잊을 수 있을까.

낮게 깔리는 첼로의 선율을 위로 얇게 올라가 물방울 흘러가듯 부딪히는 하프시코드는 아슬아슬하면서도 율동과 운동감을 전하는 바로크 음악의 열정을 숨기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본다. 어느 모바일 게임 회사에 입사 지원을 했고, 이력서를 다시 업데이트를 할 생각이다. 미술 쪽은 애호가나 개인적인 일로 돌려야 할 듯 싶다. 일자리가 쉽게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수준이 될 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가끔 우울해 견딜 수 없을 때, 기운이 빠질 때, 꼭 향기좋은 남미 산 커피같이 이 음반, 꽤 좋다.



(음질이 좋지 않고 저작권 관계로 며칠만 올려놓고 내릴 예정임)



Comment +2


화창한 일요일, 베르사이유 궁전에 갔다 왔다. 동양에서는 매우 익숙한 '중앙집권'이 서양에서는 매우 낯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전성기 로마를 제외하곤 서양에서 중앙 집권 국가는 근대에 들어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과 무관하게 그의 일상은 참 피곤한 것이었다. 그의 식사는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였으며, 그에게 비밀스러운 일이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은 오래 살지 못했고 그의 가문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라졌다.

프랑스의 일부 사람들은 루이 왕가가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하긴 조선 왕조 복권을 꿈꾸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한국에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화려하면서도 절제와 규율을 지키는 바로크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궁 건물과 화려한 로코코 장식들로 채워진 궁 내부는 현대인들이 보고 감탄하는 화려함 혹은 우아함보다는, 그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떠올렸을때, 다소 쓸쓸하고 외로우며 슬프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내리는 11월부터 3-4월까지 두꺼운 커튼을 열어도 어두운 실내의 답답함이 가시질 않았을 것이다.

로코코의 화려함은 이런 일상을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한 과장한 몸짓일 지도 모른다. 베르사이유를 보면서 나는 이런 슬픔 같은 걸 느꼈다.

일요일을 맞아 많은 파리 사람들이 베르사이유엘 왔다.

프랑스식 정원. 프랑스 사람들 특유의 고전적 풍모를 느낄 수 있는 정원이다.

베르사이유 궁에 기거했던 여왕(?)의 방.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한 실내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베르사이유 안에 제프 쿤스가 있었다. 미국인들이 베르사이유 관광을 많이 하기를 바라는 프랑스 정부의 의도가 깔렸다는 평도 있지만, 이방인인 내가 보기에도 베르사이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베르사이유와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가 사뭇 궁금해지기도 했다.







Comment +2

  • skynsea 2008.10.23 15:57 신고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많이 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미국인들 의외로 여행 안합니다.. 올 사람들은 오고... 그나저나 베류사유도 보시고.. 프랑스는 가볼만 하죠..

    • 베르사이유는 기대했던 것보다 즐겁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르사이유 궁에 붙은 정원은 환상이더군요. 궁 뒤쪽 먼 정원은 무료 개방이기 때문에 많은 파리 사람들이 나들이를 왔더군요.

Pablo Casals- The 6 Cello Suites - 10점
바흐 (J. S. Bach) 작곡, 파블로 카잘스 (Pablo Casals) 연주/굿인터내셔널
(* 현재 절판된 상태임)

[수입] Pablo Casals - J.S.Bach / Cello Suites - 10점
파블로 카잘스 (Pablo Casals) 연주/이엠아이(EMI)
(* 현재 구할 수 있는 음반이나, 가지고 있지 않음)


파블로 카잘스, 바흐, 흐린 일요일 아침

거친 호흡을 연신 해대며, 겨우 담배 한 개피를 피웠을 뿐이었다. 잠시 나의 삶은 살아가면서 종종 마주하게 되는, 아주 현실적인 절망 한가운데 있었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창 틈으로 늦겨울의 한기가 아침 햇살 속으로 밀려들었다. 그 사이, 굵고 낮은 첼로 소리가 내 마음의 낮은 물가를 스치며 몽롱한 의식으로 사라져갔다.


바흐의 기적은 어느 다른 예술에도 나타나 본 적이 없다. 성스러움이 드러날 때까지 인간성을 파헤치며, 가장 덧없는 것에도 영원의 날개를 돋게 하는 것이 바흐의 음악이다. 뿐만 아니라 성스런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인간적인 것을 성스럽게 했던 이야말로 바흐이며, 바흐야말로 음악이 있어온 이래 가장 위대하고 순수한 인간이었다.
- 파블로 카잘스


CD가 나오고, 인터넷으로 음반을 사기 시작한 이후, 너무 자주 보게 되는 두 단어는 ‘품절’이거나 ‘절판’이었다. 실은 오프라인의 오래된 음반 가게에는 보물처럼 이 CD가 있을 텐데, 인터넷의 가공할 만한, 신속한 정보력은 우리에게 빠르고 현명한 포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스스로 나는 애호가, 혹은 매니아라는(때로는 형편없기는 하지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오랜 시간을 거친 수소문, 발바닥이 부어 오르는 고통, 음반 가게 구석구석을 오가며, 먼지가 쌓여가는 손가락들의 희열을 빼앗아 가버렸다. 대부분의 이들이 형편 없는 MP3에 만족하는 이 시대에, 가끔 고전 풍의 매너와 습성, 까다롭고 성실한 애호가가 있기도 하는 법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형편없는 디지털 시대의, 간편하고 신속한 음향을 간단하게 무시할 줄 아는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3.21~1750.7.28)의 삶은 특별하지 않았다. 도리어 너무 평범했다. 그 시대, 그 누구도 바흐의 천재성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태양왕 루이14세가 그를 초대해, 왕 앞에서 의자에 앉아도 좋다라고 허락하고(몰리에르Moliere에게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그의 연주를 밤새 듣기 위해 자신의 플루트 연주회까지도 취소했지만, 바흐가 살았던 라이프치히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그냥 평범한 음악가였고, 교회 합창 지휘자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학자인 헨드릭 빌렘 반 룬은 이렇게 적는다.


말년에 이르러 뛰어난 그의 작품 ‘푸가의 기법Art for the Fugue’이 출판되었으나(그것은 그가 살아 있을 때 간행된 몇 개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겨우 30부만 팔렸으며 동판은 구리값으로 팔렸다. 그러나 요한 제바스티안만큼 평생을 불평없이 조용히 산 사람도 드물다. 또 이 사람만큼 초보자에게 친절하고 원수를 용서하는 데 너그러웠던 사람은 더 드물다. 평생을 통하여 그는 옛 그대로 단순한 ‘악사’였으며, 파헬벨의 금단의 음악을 달밤에 베끼던 소년이었다.
그는 불굴의 작곡가이자 뛰어난 하프시코드 연주자며 당대의 가장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이자 훌륭한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자였다. 성악과 모든 기악을 위해 그가 쓴 작품의 수효는 너무나 방대해서 직접 조사해보기 전에는 사실일까 하고 의심스러워질 정도다. 단순한 것이나 복잡한 것이거나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바흐의 수법이 있다. 가짜 바흐의 칸타타를 짓기란 렘브란트의 에칭을 위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 반 룬의 예술사 이야기, 3권 88쪽 - 89쪽.


바흐는 그가 죽고 난 뒤 한참 후에야 인정받기 시작했다. 현대의 이러한 평가는 바흐가 살아있을 때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준다면, 아마 콧방귀를 뀔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바흐가 남긴 음악은 너무 방대해서, 바흐의 이 작품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그냥 평범한 ‘첼로 교본’ 정도로만 여겨졌을 뿐이다. 이 음악을 연습할 시간에 바흐의 다른 작품을 연습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16세의 파블로 카잘스는, 어느 날 고서점에서 낡은 악보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홀로 이 음악을 연습했다. 이후 그는 공개석상에서 이 음악을 연주했으나, 전곡을 연주한 것은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후였다.


파블로 카잘스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듣고 있으면, 마치 이 세상을 속속들이 경험해 본, 나이 든 이가 자신과 적대적인 세상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혹은 눈을 부릅뜬 채, 그렁그렁한 물기를 눈가에 매달고, 비탄, 주저함, 각오, 슬픔을 삼키고 있는 듯한 모습이 떠오른다. 억제되고 절제되었지만, 조금만 날카로운 어떤 것으로 힘주어 누르면 바로 터질 듯한 긴장감이 연주 속에 묻어 나온다. 힘있게 연결되는 선율은 연주 당시의 팽팽했던 대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일요일 아침, 파블로 카잘스의 바흐를 듣는다. 마음은 고요해지고 흐린 대기는 잠시 거친 호흡을 가다듬는다.  



(* 음원은 goclassic.co.kr 에서 가져왔음)



Comment +6

  • 링크 신고해요.
    제가 참 좋아하던 곡인데 잘 듣고 갑니다.

  • pink-lotus 2008.02.04 22:54 신고

    흔한 표현이지만 마음을 울린다는 표현이 더 없이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같이 울어주는 느낌이 드는 음악, 절절하게 울고 용서하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늘 마음이 평안해지는 거 같아요. 덕분에 카잘스의 연주 정말 오랫만에 듣습니다. :)

  • 클래식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그중에 좋아하는 곡이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파블로카잘스의 음반은 사진이 다르네요. 여기 링크를 남깁니다. CD로 가지고 있지 않고 LP로 가지고 있지요.

    http://www.amazon.com/Bach-Cello-Suiten-Pablo-Casals/dp/B000002S8E/ref=pd_bbs_7?ie=UTF8&s=music&qid=1202172420&sr=8-7

    요즘은 양성원교수의 무반주첼로조곡을 듣고 있습니다. 파블로카잘스처럼 끝간데 없는듯한 깊은 맛은 없지만, 날좋은 가을날 산책하는 듯 편안한 분위기가 오히려 좋을 때가 있습니다. 한번 비교하면서 듣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

    • 똑같은 음반입니다. ^^

      클래식 음악은 똑같은 음악의 다른 연주자의 음반을 비교해가며 듣는 것도 재미있는 듯합니다. 딱히 비교랄 것도 없이 그냥 들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점이 들리거든요.

      저도 클래식을 잘 아는 건 아니고 그냥 음악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클래식으로 온 것같아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갑자기 찾아든 가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육체와 영혼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진정시키란 구름이 가뜩 끼어있는 서울 하늘에서 별빛을 발견하는 것처럼 어려운 종류의 일이었다. 갑작스런 계절의 변화는 자주 격렬한 심리적 불안과 섬세하고 민감한 우울을 동반한다. 이럴 때 기댈 수 있는 초월적 실체, 또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시대는 니체와 프로이드로부터도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 ‘신은 죽었다’고 말했을 때의 니체만큼 신을 갈구했던 이도 없었을 것이다. 프로이드는 아예 영혼의 신비를 없애버렸으며, 젊은 루카치는 심리학의 발달을 비난했다. 하지만 ‘종교는 아편’이라며 공격했던 마르크스는 종종 나에게 그만큼 종교적인 사람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하지만 종교와 함께 살면서 신에 대해 무한한 신뢰와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초월적 세계와 현세 사이의 거리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눈만 감으면 천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그런 세계. 그런데 과연 그런 세계는 존재했던 것일까. 종종 우리가 중세에 대해서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19세기 초의 낭만주의자들은 이를 열정적으로 믿었다), 현대의 많은 중세 연구는 그런 느낌의 허황됨을 보여주고 말았다.

세속의 세계에 살면서 초월적 세계에 대한 염원은 인류에게 문명이라는 것이 생기는 시대부터 현재에까지 지속된, 우리 문명의 본질적인 태도 중의 하나다. 그것은 세상과 마주하면서 느끼는 끝없는 불안과 공포에 대한 강력한 방패다. 그리고 그 방패의 결정체는 종교인 셈이다. 그 속에 있으면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기독교의 역사가 끝없이 이어지는 순교의 역사라는 점을 보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순교는 서양 미술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그것은 신앙심의 표본이며 절정이고 인간이 신성에 가장 가까이 가는 순간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순교의 순간을 그렸고 그 순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귀도 레니(Guido Reni, 1575 ~ 1643)는 순교의 순간을 창백한 우아함으로 그려낸다. 조용하고 진지하게, 하지만 캔버스 바깥 어딘가를 향해 뜬 두 눈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보이지 않은 신을 향해 갈구하는 눈빛은 귀도 레니의 작품에 빠뜨릴 수 없는 지점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19세기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은 그를 경멸하고 비난했다. 18세기 사람들이 귀도 레니에 열광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하긴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주의는 때로 너무 기형적이었다. 1575년 볼로냐에서 태어난 귀도 레니는 9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20살 때는 카라치의 화실에 나갔고, 안니발 카라치(Annibale Carracci)가 세상을 떴을 때 그 화실의 수장이 되었다. 그에게 스물 중반의 로마 여행이 그의 예술 세계를 결정지은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주로 종교적이거나 신화적인 소재/주제에 많은 노력과 열정을 기울였으며, 고전적인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우아하고 현대적인 화풍을 보여주었다.

성 세바스찬은 로마 황제 근위대 장교로, 그 당시 기독교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도리어 많은 이들을 개종시키기까지 했다. 그리고 결국 로마 황제에게 들키고 나무에 묶인 채로 화살을 맞았다. 하지만 한 순교자의 아내가 죽어가던 세바스찬을 다시 살려내어, 그는 다시 황제가 행하고 있던 기독교 박해의 부당함을 알리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는 그를 잡아,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채찍질로 그를 죽인다. 죽은 후 그는 한 부인의 꿈에 나타나, 자신을 찾아 지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성당 자리 근처의 지하 묘지에 매장해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이후 680년경 로마에 페스트가 창궐하자, 사람들은 세바스찬의 유해를 모시고 장렬한 행렬을 거행하여, 페스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 때부터 성 세바스찬은 페스트에 대한 수호성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성 세바스찬을 둘러싼 이런 이야기를 귀도 레니의 작품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화살을 맞고 그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리어 그의 작품이 가진 어떤 메시지를 반감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화살이 깊숙하게 꽂힌 성 세바스찬의 육체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롭다. 도리어 화살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대비를 통해 그 부각시키는 듯하다. 아름다운 남성의 육체는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동성애적 분위기를 환기시키기까지 한다. 귀도 레니의 붓 끝에서 순교의 순간은 죽음과 무관한 어떤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난다. 매끈하고 우아한 성 세바스찬의 육체는 바로크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던 육체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위를 향해 있는 시선은 신을 향한 갈구가 표현되어 있다. 초월적 세계에 대한 염원을 귀도 레니는 이러한 시선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염원으로 그칠 뿐,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남성 앞에서 깊숙이 박힌 화살마저 무력하다는 것뿐일 지도 모른다. 기독교에서 소재를 가지고 왔으나, 귀도 레니의 세계 속에서는 종교에 대한 열정은 꺼져가는 불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꺼져가고 있음을 느낀 귀도 레니는 저 갈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 시대에 다시 신의 영광이 도래하길 염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 세바스찬(St. Sebastian)
Oil on canvas, 146 x 113 cm
Genoa, Palazzo Rosso
1615-161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 세바스찬(St. Sebastian)
Oil on canvas,170  x 133 cm
Prado Museum, Madrid
1630년대 초반

 
* 얼마 전에 관람했던 비엔나미술사박물관 전시에서의 '참회하는 베드로'에서도 귀도 레니 특유의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Comment +0


두 얼굴의 '숲'



문명화된 숲


어렸을 때, 나는 언제나 마을 뒷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채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의, 내 호기심을 자극하던 뒷산 너머에 있을 그 무언가, 미지의 세계. 거대한 바다가 있거나 반짝이는 조명으로 찬란한 대도시이거나, 아니면 내가 세계 최초로 발견하게 되는 외계인 마을이거나. 그리고 결국 나는 뒷산에 오르고 만다. 오전 일찍 집을 나선 나는 마을 뒤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키에 적당한 길이로 나무 가지를 꺾어 지팡이로 사용하면서. 그렇게 몇 시간을 올라갔을까. 산 정상은 보이지 않고 좁은 길 흔적마저도 사라진 채,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들 소리만 들리고, 눈앞에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 속으로 가느다랗게 내려앉은 햇빛뿐. 이 때쯤 되면 나를 지배하던 호기심은 어디론가 뒷걸음쳐 그 모습을 숨기고, 숲 속은 별안간 두렵고 무서운 어떤 것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올라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는 뒤로 돌아 마을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지만, 어느 방향에서 올라온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고 등 뒤 공포의 크기는 시간이 갈수록,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더 커져만 간다. 산 정상으로부터 물들어가는 어둠이 산 아래까지 스며들었을 무렵, 겨우겨우 마을이 보이는 언덕에 도착하게 되고 눈앞에 보이는 마을 불빛을 보며 안도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안전한 문명의 불빛이었다.

무섭고 두려운 공포의 자연과 안전하고 아늑한 문명의 대비를 최초로 경험한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산행을 하더라도 등산로가 아닌 다른 곳으로는 가지 않게 되었다. 어렸을 때의 이 사소한 경험은, 실은 오래된 ‘안전한 문명과 야만적 자연의 대비'다. 가령 중세 유럽의 ‘숲’은 ‘가상적 혹은 현실적인 위협과 위험으로 가득했다.' 밤에 늑대로 변신하는 도깨비들이 출현하였고, 야수와 반야만인이 살고 있었다. 그 곳은 ‘장원과 장원, 지방과 지방 사이의 변경 지대였으며, 특히 전혀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한 가공할 만한 어둠으로부터 굶주린 늑대들이며 산적들이며 약탈적인 기사들이 갑자기 출현하였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서양 중세에 있어서 모든 진보는 가시덤불과 소관목, 또는 만일 불가피하거나 기술과 장비가 허용된다면, 거목과 처녀림, 페르스발의 ‘황량한 숲’, 단테의 작품에 등장하는 ‘침침한 숲’에 대한 개간과 투쟁과 승리의 결과이다'. (자크 르 고프, <<서양중세문명>>, 유희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2년, pp. 155~158 참조)

자크 르 고프가 언급하는 바의 그 ‘진보’는 12세기 고딕(Gothic)을 꽃피우게 하였으며, 근대의 정신(Modernity)이 되었다. 이제 숲, 혹은 자연은 인간이 개척해야 되는, 개척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었다. 이후 급격하게 발전하게 되는 자연과학은 이러한 정신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야만적 자연은 그 모습을 감추는 듯했다. 저 밝게 빛나는 이성의 빛 앞에서 자연은 아무런 힘 없는 배경으로 자리 잡는다. 네덜란드 바로크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문명화된 자연이다. 인간의 힘 앞에서 그 본래의 원초성, 야만성을 잃어버린다.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문명 앞에서 나약할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메인더르트 호버마
<데펜터의 풍경>
목판에 유채, 53.3*71.7cm, 1662년~1663년경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위스 왕립미술관.


숭고한 어떤 세계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이성의 빛으로 포섭될 수 있을까. 한 때 그런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시대가 있었으니, 그 시대가 바로 바로크 시대였다. 뉴튼과 데카르트를 위시하여 바흐와 렘브란트로 이어진 그 시대에 인간은 신의 진리를 알아챌 수 있는,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유일한 존재의 역사는 신의 진리를 알아도 시간 속에 놓여진 운명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하다는 사실을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를 살다간 칸트는 ‘우리는 결코 물 자체(Ding an sich)가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없고, 사물이 우리들에게 현상하는 대로만 사물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금 문명과 자연의 대비를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킨다.


높이 솟아 방금이라도 내려앉을 듯한 험한 절벽, 번개와 우뢰를 품고 유유히 다가오는 하늘 높이 피어오른 먹구름 온통 파괴력을 자랑하는 화산, 황폐를 남기고 지나가는 태풍, 파도가 치솟는 끝없는 대양, 힘차게 흘러내리는 높은 폭포와 같은 것들은 우리들의 저항하는 능력을 그러한 것들이 가지는 위력과 비교해서보잘 것 없이 작은 것으로 만들고 만다. 그러나 우리가 안전한 곳에 있기만 한다면, 그 광경은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더욱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이 될 뿐이다.
- 칸트, <<판단력비판>>, 이석윤 역, 박영사, 1996년 중판, p.128


칸트에게 있어서 이러한 자연은 숭고한 것이다. 그에게 숭고미는 문명의 빛이 닿지 않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숭고한 자연은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을 매혹시킨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이러한 숭고한 자연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떡갈나무 숲의 대수도원 묘지>
캔버스에 유화, 110.4*171cm, 1809년경
베를린 국립 미술관.


낭만주의자들에게 자연은 지친 우리 영혼을 쉬게 해주는 안식처를 넘어 기독교의 신을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신적인 존재로까지 부상하게 된다.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는 정통 기독교에 대한 가장 막강한 대안이요 유행이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범유럽적 경향이었으며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자연에 대한 숭배가 종교적인 것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자, 숭고한 자연의 모습은 몇몇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소박하고 친근하며 애잔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19세기 후반 영국 라파엘 전파와 프랑스 인상주의자들이 바라보는 자연의 풍경은 후대 미술사가들의 극단적인 평가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존 에버릿 밀레이의 <오필리아>는 숲 속 개울물 위를 떠내려간다. 그녀의 얼굴은 당혹스런 슬픔으로 가득 차 있고 그녀의 주검 주위로 버드나무와 데이지꽃, 장미와 제비꽃 등 낭만주의자들을 매혹시켰을 꽃의 상징들로 장식되어있다. 이제 숲 속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흘러가는 곳으로 변한 것이다. 여기에 비해 인상주의자들에게 숲은 너무 건조하고 딱딱하며 지나치게 쓸쓸한 어떤 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캔버스에 유화, 76.2*111.8cm, 1851년경
런던 테이트갤러리.



(*월간 <숲> 8월호에 실린 글이다)

Comment +0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크
신정아(지음), 살림지식총서143


이런 책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바로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 때, 이 단어에 대한 정의와 해설을 해주는 책이 있다는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책이 있다는 것일 뿐, 이 책의 저자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도 읽지 않은 듯 보인다.

그래서 바로크의 전 양식인 매너리즘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으며, 고전주의적 바로크와 낭만적 바로크에 대한 구분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바로크 음악에 대해선 잘못된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전문 연구자가 아닌 필자의 전문 서적 집필이 매우 위험한 행위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책을 만들 생각을 할까? 정말 난감한 일이다.

차라리 이 책의 저자가 ‘바로크 문학’이나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에 대해서 적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 이 책은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신정아 씨가 지은 책이 아닙니다. 아래 알라딘 링크를 걸어둡니다. 이 책을 지은 신정아 씨는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고전주의 작가인 라신느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예술사에서는 라신느를 바로크 고전주의 작가로 파악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정아 씨는 바로크 문학 전공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문학에서의 관점은 다소 다릅니다만) 하지만 이 책에서 서술된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설명들 중 구체적이지 못하거나 잘못된 부분도 드러 있습니다. 위 서평은 이러한 지적을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2017년 12월에 덧붙임.

누군가가 이 책에 대해 검색하여 들어와 읽었다. 내가 다시 읽어보니, 너무 성의없는 서평이라 불쾌해질 듯 싶다. '바로크' 양식은 17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이어진 서양 예술의 한 양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구사해야 하는데, 가령 기원후 헬레니즘 양식에 대해서도 '바로크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양식이 가지는 어떤 성격이나 특성을 구체적인 서술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음악에서, 미술에서, 문학에서 이 양식이 드러나지만 이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약간씩 상이한 지점들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동시에 셰익스피어는 매너리즘에서 바로크 사이에 위치하지만, 라신느는 온전히 바로크 문학가라는 점에서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한다. 위 책은 음악사나 미술사 전문가가 아닌 저자가 무리하게 다른 예술 장르까지 포함시켜 설명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하우저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평가한 것이다.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바로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저자의 전문 분야이지만, 이 방식으로 비전문 분야인 다른 예술까지 설명하고자 하였기에 위와 같은 서평이 나왔다.  


바로크 -
신정아 지음/살림


Comment +0

*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를 쓰기 전에 적어놓은 노트입니다. 바로크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1. 바로크: 근대성Modernity의 시작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떤 세계일까?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꼭 이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든가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물음과 유사한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특징을 부각시켜서 말하거나 아예 이 물음에 대한 답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너무 거대한 질문이라 실제 우리의 삶과는 무관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본다면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이 세계에 대해서 자주 듣게 되는 단어들, 신자유주의, 개인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과 같은 것의 근원을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17세기 서구사회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17세기와 2004년과의 관계를 알기 위해,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와 같은 철학자가 구상하였고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와 같은 예술가들이 재현하였던 그 당시의 세계와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 한적한 일요일 오후에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몇 가지의 규칙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신호등이라는 교통시스템만 지키면 도로가 연결되어있는 원하는 목적지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동 속에서 자동차 안과 밖은 명확하게 구분된 공간이라는 점. 밖이 아무리 춥더라도 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근대 최초의 기획들은 기계론이다. 인과율적 체계의 다른 말이기도 하며 근대 자본주의가 그 기틀을 명확히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드디어 시계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기계론적 관점에서 시간과의 싸움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이 때 미래는 그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하나의 질서가 있다. 그 질서는 신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신의 질서와 자연과학의 질서가 등가적 관계를 이루게 되고 이 사이를 예술가가 자리잡게 된다. 이것이 르네상스적 세계관이자 미학관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적 세계관은 얼마 뒤 매너리즘적 세계관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데, 우리들의 삶이나 현실은 신적이지도, 자연과학적이지도 않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매너리즘에서는 나와 너, 이상과 현실, 어제와 오늘이 분열하게 된다. 고딕적 분열의 연장선상에 놓이면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종종 겪게 되는 분열을 이미 매너리즘 시대의 예술가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분열은 바로크 시대에서 극적으로 해소된다. 그리고 그 해소의 방법은 생각하는 나를 중심으로, 이상 대신 현실을, 어제 대신 오늘, 그리고 내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근대성(Modernity)는 이 시대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적인 것이 가장 우선시되는 세계. 인간들이 만든 규칙이 신의 규칙과 똑 같은 위상과 가치를 지니게 되는 세계. 유한한 세계 속에서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세계. 아니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세계. 이제 무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는 끝이 나고 유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드디어 세속적이며 경험적인 세계가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바로크에 들어서 고딕적 분열 양상은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중심으로 해소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완전한 해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살아가면서 별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해소로도 바로크 예술가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긍정하는 시대였다.

바로크는 절대왕정의 시대이면서 과학혁명의 시기요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시대이면서 우리들의 약점들이 무수한 장점들로 가려져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에는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 바흐, 헨델(George Frederick Handel, 1685-1759), 카라바지오, 베르니니, 벨라스케즈(Diego Rodriguez de Silva Velazquez, 1599-1660),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렘브란트, 베르미르(Jan Vermeer, 1632-1675), 푸생, 끌로드 로렌(Claude Lorrain, 1600-1682)이 속하며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들과 라신느(Jean-Baptiste Racine, 1639-1699), 꼬르네이유(Pierre Corneille, 1606-1684), 몰리에르(Moliere, 1622-1673) 등의 프랑스의 극작가들, 그리고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 존 던(John Donne, 1572-1631)이 여기에 속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Rene Descartes
Frans HALS, c. 1649
Oil on panel, 19 x 14 cm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2. 무한한 우주 속의 유한한 인간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먼저 이야기했지만,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에 와서 비로소 논쟁거리가 된 '지동설'은 인간이,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당시 천문학의 발전은 이 우주에는 끝이 없으며 끝 없는 우주에서 인간은 그저 티끌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천동설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신(무한자)과 가까이 있었으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고 그것은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동설의 세계 속에서 지구는 우주의 변방이며 인간은 신(무한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었다. 즉 드디어 인간은 신과 무관한 어떤 존재, 심지어 신에게서 버림받은 존재로 떨어지게 된다. 이는 파스칼에게서 두드러지며 바로크 양식의 어두운 그림자에 해당된다. 하지만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내며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의 확실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티끌 같고 언젠가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불안은 이 현실 세계 속에서 뭔가를 할 수 있고 알아낼 수 있다는 자신과 자만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정치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데, 서구에서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전제군주제가 확고하게 뿌리내리기 되었다는 점이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신화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세계의 안정을 바탕으로 상업이 발달하였으며 많은 것을 포기한 구교와 경제적으로 적절한 지위를 부여 받은 개신교 사이의 분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rtrait of Louis XIV
Hyacinthe Rigaud, 1701
Oil on canvas, 279 x 190 cm
Musee du Louvre, Paris



바로크의 세계는 유한한 인간이지만, 그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진행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의 회화 속에서는 '진리를 잡기 위해서 운동하는 나' 즉, 데카르트적 자아가 있으며 그 운동이 모아지는 빛나는 중심으로 삶의 격정, 활력이 흘러나온다. 드디어 어둠 속에 묻어두었던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적 세계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물은 유전한다. 한 번 담근 강물에 두 번 다시 담글 수 없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한 번 담그는 그 강물 속에서 강물의 본질을 잡아낼 수도 있으리라는 신념을 가진다.


3. 정지에서 운동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Embarkation of St Paula Romana at Ostia
Claude Lorrain, 1637-39
Oil on canvas, 211 x 145 cm
Museo del Prado, Madrid



움직이는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 고전주의이다. 그것은 기하학적이며 무한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모아진다. 그래서 이 세계 속에서는 운동이나 생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크는 반대로 운동이나 생성 속에서 어떤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들의 생각을 전개시킨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경험적 세계 속에서 나는 내 가치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드디어 진리를 향한 삶의 성실성이 요구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의 포기는 경험적 세계 속에 있는 유한한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t Matthew and the Angel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32 x 183 cm
Formerly Kaiser-Friedrich-Museum, Berlin
(* 현재는 소실되어 없으며 그 당시 불경하다는 비난을 받았던 작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92 x 186 cm
Contarelli Chapel, San Luigi dei Francesi, Rome



하나는 교회로부터 거절당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작품이고 하나는 교회에 걸렸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작품이다. 카라바지오만큼 바로크 시대에 걸맞은 예술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난봉꾼에 일자 무식에 매일 사고만 치는 건달이었지만, 그는 예술가였다. 드디어 지적 교양을 가진 예술가에서 지적 교양 없이도 예술 작품을 남기는 예술가의 시대로 변해온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적 영감을 중요시하는 일군의 예술가들은 바로 한 발짝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자연과학적 태도는 신의 질서를 자연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시작되었지만, 예술의 세계 속에서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다. 매너리즘 예술가인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이 태도는 실제 있었던 그것을 그대로 표현해내는 것으로 변화하였으며 바로크에 이르는 그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카라바지오의 세계에서 성 마태와 천사는 한 쌍의 연인처럼 붙어있는 것이다. 신의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는 고독한 성인과 그 고독을 위로해주는 천사로 말이다. 하지만 카라바지오의 세계는 교회로부터도 거부당했고 그 당시의 일반 대중으로부터도 거부당했다. 아마 21세기에서도 카라바지오의 작품이 불경하다고 여기는 기독교도가 있을 것이니, 17세기 때의 기독교도라면 그 거부는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4. 경험적 세계 속으로

우리 앞에서 지금 두 개의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멸하며 경건하고 신성한 신의 세계이며 하나는 경험적이며 유한하고 언젠가는 죽게 될 인간의 세속적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의 세계이며 하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이다. 하나는 정지된 공간의 세계이며 하나는 끊임없이 변화는 시간의 세계이다. 그리고 바로크는 전자보다는 후자에게 그 가치를 두는 양식이다.

베르니니에게 신과의 교감은 인간적인 그 어떤 것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즉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도리어 그의 경험이 신과의 교감과 비슷한 유형이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을 수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he Ecstasy of Saint Therese
Bernini, 1647-52
Marble Cappella Cornaro, Santa Maria della Vittoria, Rome
 


더 이상 인간적인 것은 수치이거나 불경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인간적인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한 치의 주저함이나 물러남 없이 자신의 모습이 왜소해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나는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다는 것. 이제서야 인간적인 것이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의 세계이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모더니티의 핵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elf-Portrait
Rembrandt, 1627
Oil on wood, 23,5 x 17 cm
Staatliche Museen, Kassel
 


사용자 삽입 이미지

Self-Portrait
Rembrandt, 1668-69
Oil on canvas, 82,5 x 65 cm
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어쩌면 예수도 늙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가인 뒤러가 자신의 초상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치 예수처럼 그렸듯이 렘브란트는 그도 늙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이제 드디어 변화한다는 것이 가치를 가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운동이며 생성의 세계, 경험적 세계를 뜻한다. 그것은 현실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바로크 예술가들에게 이것은 훈장과도 같았던 것은 아닐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의 파사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 로마
 

건축에 도입된 유려한 곡선은 직선적인 느낌을 강조하던 이전의 건축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건축 속에서 도입된 이러한 운동감은 조각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pollo and Daphne
Bernini, 1622-25
Marble, height 243 cm
Galleria Borghese, Rome
 


조각에서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라고 한다면 베르니니만큼 잘 구현했을 만한 조각가도 없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아폴론과 이 사랑을 거부하는 다프네가 올리브 나무로 변해가는 순간을 표현한 이 조각에서 바로크 시대의 사랑을, 바로크적 비극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 이제 드디어 언젠가는 헤어질 수 없는 사랑이 누군가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세속의 사랑이 주제가 되기 시작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 Lady at the Virginals with a Gentleman
Vermeer, 1662-65
Oil on canvas, 73,3 x 64,5 cm
Buckingham Palace, London
 


한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 옆에 한 남자가 서서 그 음악 소리를 듣고 있다. 그는 가만히 서서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 속에 빠져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서 그 사랑을 거절당하지 않을까. 이건 이 작품에 대한 추측이긴 하지만, 이제 세속의 사랑, 불경하면서 비도덕적인 사랑도 예술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되기 시작하였으며 종교적인 그림을 그려지는 작업실에서 동시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5. 두 개의 바로크들


매너리즘이 전유럽적 양식이었다면, 바로크는 그 지역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는 양식 상으로는 지역에 따라 매우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 전시실에 나란히 푸생의 'Et in Arcadia Ego, 루벤스의 Raising of the Cross, 베르미르의 Woman Holding a Balance가 걸려있다면, 이 세 작품이 같은 시대의 양식이라고 설명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푸생은 확실히 고전적이다. 어떤 이는 푸생의 작품들을 두고 '바로크 고전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한한 세계 속에서의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그래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바로크적 신념은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고전적이며 푸생은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이 기하학적이길 원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다른 화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고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t in Arcadia Ego
Poussin, 1637-39
Oil on canvas, 185 x 121 cm
Musee du Louvre, Paris
 

하지만 바로크는 고전주의가 될 수 없는 시대였다. 바로크의 예술가들이 잡으려고 노력했던 바 진리는 시간과 변화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변하는 진리관과는 다른 것이었다. Et in Arcadia Ego, 아르카디아 속에서도 나는 있다는 말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속에서도 죽음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깐 이상향 속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그래서 우리는 늙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나오는 여인을 크로노스(시간의 여신)이라고 해석한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말은 죽음을 막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라는 말이기 보다는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알고 살아있는 동안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것을 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till-Life
Pieter Claesz, 1633
Oil on oakwood, 38 x 53 cm
Staatliche Kunstsammlungen, Kassel
 

푸생이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면 이에 비해 루벤스는 색채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같다. 이는 이후에 푸생주의와 루벤스주의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더욱 격정적이며 회화 속에서 바로크적 운동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격정적인 색채감은 와토나 부셰, 프라고나르 등의 로코코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Raising of the Cross
Rubens, 1610
Oil on panel, 460 x 340 cm (centre panel), 460 x 150 cm (wings)
O.-L. Vrouwekathedraal, Antwerp
 

루벤스가 궁정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라면 렘브란트와 베르미르는 시민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특히 베르미르는 수수한 색채 속의 개신교적이며 시민적인 바로크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이러한 양식의 바로크는 개신교적 성격과 초기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의 예술 양식을 보여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Woman Holding a Balance
Vermeer, 1662-63
Oil on canvas, 42,5 x 38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네덜란드의 시민계급들이 좋아했던 것은 풍경화였다. 이러한 풍경화는 끌로드 로렌의 풍경화와는 틀리다. 이러한 풍경화 양식의 차이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비교해보면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탈리아, 특히 베네치아의 풍경화는 화려하면서도 인상주의적 면모를 보여주지만, 네덜란드는 정적이면서 소박한다. 이러한 소박함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겸손으로 이어져 여러 바로크 정물화에서는 유한한 인간임을 인식하고 현실 세계에 보다 충실히 복무하라는 도덕적 메시지를 담게 된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치품들을 정물화의 소재로 이용함으로써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축적한 부를 자랑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Landscape with a View of Haarlem
Ruisdael, 1670-75
Oil on canvas, 52 x 65 cm
Staatliche Museen, Berlin




 

Comment +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 살라메아 시장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Pedro Calderon de la Barca(지음), 김선욱(옮김), 책세상


인생은 꿈, 삶은 한 편의 연극, 우리들은 태어날 때 각자 배역 하나를 맡고 죽을 때까지 성심성의껏 연기한 후 죽는다. 죽은 후 얼마나 잘 연기를 수행했는가에 따라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맡은 바 배역을 제대로 연기해야만 할 것이다. 17세기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이 생각은 바로크 특유의 허무적 미학을 만든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은 이러한 허무적 미학을 종교적인 메시지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러한 연극을 ‘성찬신비극’이라고 한다. 이 연극 형식에 대해 이해하려면 먼저 성찬에 대한 의미부터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죽기 전날 밤, 예루살렘에서 열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갖는다. 이 때 그리스도는 빵을 주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라고 하며, 포도주를 주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너희와 모든 이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린 피니라’, ‘너희는 이 예를 행함으로써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성찬(聖餐, eucharistia)은 이 때의 빵과 포도주를 의미하며 초대교회에서는 이 명령에 따라 빵을 떼어 나누는 의식을 행하였으며, 그 후 이것이 미사성제라는 형태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의식은 빵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해 그리스도가 행한 속죄의식 속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성찬신비극은 성찬식의 의미를 연극으로 표현한 것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알려주고 그것을 경험하고 궁극적으로 속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도록 하는 종교극이다. 교회 안에서 행해지던 성찬신비극은 교회 밖으로 나오게 되며 대중적 취향의 서정성을 받아들인 극적 감동으로, 이성으로는 절대로 감지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신성한 신학의 문제를 무대로 옮긴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은 바로크 특유의 허무적 미학 위에 종교적 가르침을 덧씌워놓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몇 백 년이 지난 뒤, 발칙한 모더니스트인 내가 읽기에 매혹적인 부분은 종교적 가르침보다는 바로크 특유의 허무적 미학이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종교적 가르침은 그 시대의 한계 속에서 작가가 억지로 끼워넣은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살라메아 시장’은 코메디아(comedia)극이다. 이 극은 17세기 스페인에 유행했던 양식으로 희극과 비극의 경계가 사라진 장편연극들을 총칭하는 단어였다. 이 연극은 유럽의 근대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장면을 볼 수 있다. 국왕, 귀족 또는 군인, 시민으로 대변되는 세 계급이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시민의 명예와 정의가 승리하게 된다는 근대적 가치관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연극은 끝난다.



세상이라는거대한연극살라메아시장

페드로칼데론데라바르카저 | 김선욱역 | 책세상 | 2004.08.3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Comment +0

사용자 삽입 이미지


Still-Life of Flowers, 1734
Oil on panel, 81*61cm
Private collection



Jan van Huysum의 작품이다. 시든 꽃은 보이지 않고 활짝, 금방이라도 꽃 향기가 그림 속에서 풍겨나올 듯한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그림이다. 그러니 이런 작품을 두고 생의 허무를 노래하고 있다고 하면 어딘가 이상하지 않을까.

Comment +0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병에 담긴 접시꽃들과 다른 꽃들(Hollyhocks and Other Flowers in a Vase), 1710
Oil on canvas, 62*62cm
National Gallery, London





Jan van Huysum의 작품이다. 18세기 초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했던 이 화가는 17세기부터 본격화된 정물화(Still-Life)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대체로 정물화는 Vanitas(생의 허무)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를 드러내기 위해 시계, 불이 꺼진 양초, 시들어가는 꽃, 해골 등을 그림 속에 담아내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18세기 이후로 갈수록 진기하고 보기 드물며 값비싸고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변해간다.

생의 허무에 대한 공포가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고 그 사이를 생의 아름다움, 그것이 비록 찰라이거나 꿈일 지라도 그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초기의 정물화가 교훈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면 세월이 흘러갈수록 이러한 성격이 퇴색되고 그저 진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18세기 로코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어떤 감수성은 아닐까. 꼭 현대인들이 시계를 보며,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는 대신 시계의 디자인이나 장식에 더 몰두하듯이 말이다.

Comment +0

사용자 삽입 이미지St Cecilia (1606, Oil on canvas, 94 x 75 cm, Norton Simon Museum of Art, Pasadena)


Guido RENI의 작품. 바로크 초기의 작품이다. 성 세실리아는 3세기 초의 동정성녀로, 음악과 음악가들의 수호성인이다. 천사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하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온갖 악기를 다룰 줄 알았으며 오르간을 발명해 하느님께 헌정하였다고 전해진다. 성 세실리아를 상징할 때는 오르간이 주로 사용되며 여러 그림 속에서 악기를 들고 있거나 연주에 귀 기울이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귀도 레니의 이 작품 속에서는 바이올린을 들고 있다.





Comment +0

사용자 삽입 이미지


David
1600
Oil on canvas, 110 x 91 cm
Museo del Prado, Madrid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작품이다. 미술사에 보기 드문 일자무식에 난봉꾼이었던 카라바지오는 살아있는 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보는 세계는 시대를 너무 앞서서 정직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선 '정직한 삶'이 당연하다고 가르친다. 과연 그럴까? 내가 초등학교 선생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수하게 많지만, 그들은 거짓말로 가득찬 교과서를 그대로 읽어줄 뿐이라는 데에 있다. 더구나 그들도 정직하게 살아가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잠시 딴 소리를 했는데, '정직'의 기준도 시대마다 다르다고 말하는 편이 살아가는 데에 문제를 좀 덜 일으키고 편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정직한 것이 어떤 때는 정직하지 않는 것으로 되고 말이다.

카라바지오는 그 당시 사람들이 보고 있는 바를 그대로 그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보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씌운 채, 색안경으로 바라보던 것이었다. 그리고 카라바지오는 그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벗기고 색안경까지 발로 밟아 부수어 버린다. 그러니 카라바지오가 인정받지 못하고 도리어 욕먹는 경우 많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종종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두려워진다. 그 순간,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역겨움으로 미칠 것같고 돌아버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곤 한다. 예술가들이 왜 담배와 술을 찾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 왜 현대 예술가들이 골방에 틀어박히든지, 정신병으로 미치든지, 아니면 허구의 이미지 속에 자신을 숨기는지 일반인들은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해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이해하는 순간, 삶은 한없이 슬퍼하고 인생은 비참해질 테니깐 말이다.

Comment +0

고향집(* 창원)에 내려가기 위해 고속버스 승차권을 한 장 사고는 습관처럼 영풍문고를 들렸다.

요즘 내가 찾는 책은 크리스토퍼 래쉬의 <<나르시시즘의 문화>>(문학과 지성사)이지만,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오래 전에 절판되었다고 한다. 책 제목 자체가 꽤 흥미로워, 헌책방에서도 구하기가 어려운 책이다.

영풍문고를 어슬렁거리다가 외서 코너에서 소더비나 크리스티의 경매 카타로그를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두 권을 구입했다. 서울 옥션에서는 이런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보통의 화집보다 인쇄나 편집, 대부분의 면에서 뛰어난 책자였다.

홍대 앞에 헌책방에서 소더비 카타로그를 본 적이 있었지만, 얇은 책에 별 내용 없는 듯해서 무심코 지나쳤는데, 영풍문고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두껍기도 하거니와 화집과 같은 구성이어서 사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다.

이런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봐야되는데. 요즘 하는 일들이 잘 되면 올해 하반기엔 프랑스를 한 번 정도 갔다 올 수 있을 것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피카소의 작품이다. 가격은 약 70억원 정도. 로또 몇 번 걸려야 살 수 있는 작품이다. 제목은 "Femme Ecrivant" 아래의 책자 안에 있는 그림인데, Evelyn Sharp라는 여성의 Collection인데, 소더비 경매에 유명한 화가들의 여러 작품들을 내놓은 모양이다. 마르크 샤갈, 시암 쑤띤, 조르주 루오, 특히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라 아예 가격을 매겨놓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경매에 나온 여러 작품들이 실려있다. 아래 그림도 이 책자에 실려있는데, 거참, 무슨 짓을 하는 그림인지... 이거 바로크겠구나 하는 했더니, 17세기 초에 제작된 작품이다. 바로크 시대(17세기부터 18세기 중반)는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로도 유명하고 푸생이나 렘브란트와 같이 대체로 얌전했던 화가들도 있었지만, 남성주의가 꽤나 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뭐라고 할까. 남성의 수학적 이성, 또는 세속의 힘(* 절대왕정과도 연결되는)이 여성의 퇴폐적인 면이나 비합리적인 면을 조절한다고 믿었다고 할까. 이렇게 보면 페미니즘 지지자들이 바로크 화가들을 좋아하면 뭔가 이상하다. 미술의 역사 속에서 남성적인 면이 가장 강하게 부각되는 시기가 이 바로크 시대였기 때문에. 그리고 렘브란트도 베르미르도 ... 네덜란드 바로크 화가들의 작품들 속에서도 쉽지 않게 이러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래 작품은 Salvator Rosa의 <Glaucus and Scylla>(1628)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Matamorphoses>에 나오는 인물들로 Glaucus는 어부이고 Scylla는 님프요정이다. 그런데 Glaucus는 Scylla가 목욕하는 걸 보고는 바로 사랑에 빠졌다나?? 그런데 Glaucus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여자마법사인 Circe가 이 장면을 보고 Glaucus의 말도 안 되는 짓을 말리기 위해 Scylla를 요상하게 생긴 바다괴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목욕하는 걸 보고 바로 사랑에 빠져, 바로 덤빈다? 이것이 바로 바로크적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하긴 이런 시대가 있었다. 19세기까지. 그리고 제 3세계나 도시의 어두운 곳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사랑일까 싶다. 쩝. (* 아래 작품의 가격은 4천만원에서 7천만원 사이)

Comment +0


바로크 예술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되는 양식이다. 이는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천동설을 버리고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믿으며 무한한 우주에 보잘 것 없는 인간임을 인정하는 순간 시작되는 예술이다. 이 인정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한 번민과 불안, 걱정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실존주의 이후의 현대 양식), 무한한 신이 만들었다는 이 지구와 우주에 대한 기하학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랑과 자만으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이제 인간적인 것은 신적인 것으로 대체되었으며 인간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나타났다. 17세기 해부학이 인기 학문이 된 이유의 배경에는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한순간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카라바지오는 교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으며 대중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누가 감히 예수를 비천한 인간으로 표현한다는 말인가 라며 일반 평민들은 카라바지오의 그림들을 업신여겼다.  

종종 당대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유행의 물결이 되며 가치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쫓아다닌다. 그리고 그 속에는 카라바지오의 작품들은 속하지 않는다. 시대의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때때로 사람들의 무시와 비아냥, 비난을 자초한다는 것을 뜻하며 자신에게는 생의 고초와 가난의 연속, 번민과 절망을 야기시키는 그 무엇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2004년도 이와 비슷한 시대이거나 이보다 더한 시대일 것이다.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1-02
Oil on canvas, 107 x 146 cm
Sanssouci, Potsdam

사용자 삽입 이미지

Comment +0

보르헤스 씨의 정원

일러스트: 메테오 페리코니 보르헤스 씨의 정원 부에노스 아이레스, 레꼴레타 인근의 어느 집에는 이중의 특권을 가진 창문이 있다. 그 창문에서는 한 눈에 하늘이 들어오고, 이웃한.....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

보이지 않는 용 The Invisible Dragon: Essays on Beauty 데이브 하키(지음), 박대정(옮김), 마음산책, 2011년 몇 번 읽다가 만 책이다. 구.....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

보들레르의 수첩,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년 1846년 산문과 1863년 산문이 함께 실려있고 죽은 후 나온 수첩까지 실린 이 책은 기억해.....

메시Messy, 팀 하포드

메시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팀 하포드(지음), 윤영삼(옮김),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확실히 기존 통념을 깨뜨린다. Messy라는 제목 그대로, 무질서와 혼.....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

맑스주의와 형식, 프레드릭 제임슨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개정판: 맑스주의와 형식, 원제: Marxism and Form)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 (지음), 여홍상, 김영희(옮김), .....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일요일 오후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