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2

어수선한 세상 살이

2010년의 가을이 오자, 사무실 이사를 했다. 다행이다. 직장생활에 뭔가 변화가 필요했고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진 않지만, 좀 더 넓은 사무실로 옮겼다. 강남구 삼성2동. 강남구청역에서 내려 높은 아파트들을 지나 근사한 빌라촌을 지나 있는 어느 흰 빌딩. 아침 햇살이 부서지는 10월 초의 어느 날. 몇 해 전 우리를 가슴 아프게 했던 텔런트 고 장자연의 소속사가 있던 건물 근처다. 그 건물 앞을 지나칠 때마다 사람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체계에 갇힌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혹은 치유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결국엔 세월이 약이라고들 이야기하겠지. 안 좋은 일이나 사건이 지나고 난 다음, 사람들은 곧잘 세월이 약이라고들 하지. 그런데 세월이 약일까. ..

목마와 숙녀

문득 목마와 숙녀가 생각났다. 사춘기 시절, 외우던 몇 편의 시들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시라고 하기엔 그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지만, 모던한 허무주의는 늘 매력적이다. 금요일, 토요일 술을 마셨고 일요일에는 두 시간 동안 운동을 했다. 토요일에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하는 ‘인상주의’전시를 보았는데, 돈벌기 위한 전시라서 그런지 그 전시 공간에 놓인 작품들이 애처로워 보였고 그 공간 속에서 줄을 서서 길게 보는 사람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예술과 사람을 애처롭게 만들고 있었다. 애처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