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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내가 수줍게 사랑하고 좋아했던 배우이자, 극작가이며, 소설가였던 샘 쉐퍼드Sam Shepard가 73세의 나이로, 수다스러우면서도 지독히 쓸쓸했던 이 세상과 헤어졌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그의 재능이며, 그의 언어가, 그의 표정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며 혼자 숨겨두었던 존재들이 나에겐 알려주지 않고 마음대로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모나드에서 모나드로 연결고리는 없겠지만, 모나드 바깥에선 단절된 모나드들을 볼 수 있으리라 한 때 생각했지만, 태어남-죽음은 하나의, 일체의 모나드임을. 

우리 각자는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아 정해진 궤도를 돌아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그 궤도가 얼마나 우아해질 수 있는지, 한 번 보여주자. 샘 쉐퍼드를 떠올리면서, 천천히 그의 부고 기사를 읽으며. (아. 젊었던 그가 나왔던 테렌스 멜릭의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은!! 혹은 줄리 델피와 함께 나왔던 <<Voyage>>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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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연극론 
<원제: Theatre et son Double(연극과 그 이중)> 
앙토넹 아르토 Antonin Artaud 지음, 박형섭 옮김, 현대미학사 



이젠 1년에 연극 한 편 보기 어려워졌다. 연극이 아직 살아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한 때 연극 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 소설이 등장하기 수십 세기 전, 영화는 상상하지 못했던 시대, 오직 서사시만이 구전으로 떠돌아 다닐 때, 그 때에도 연극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연극은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거리가 먼가(아니면 우리 모두가 배우가 된 것일까? 나를 속이고 가족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가면을 쓴 배우가 된 것일까? 그래서 연극,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연극을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은 아닐까?). 

앙토넹 아르토(1896 - 1948).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 연출가, 연극이론가였다. 하지만 그는 연극 연출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그가 죽은 후에야 연극 이론으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그의 연극이론을 한 단어로 옮기자면, '잔혹극'(Theatre of Cruelty)라고 할 수 있다. 아래 연극 동영상을 잠시 보자. 


(* '미성년자 관람 불가'입니다. 다소 자극적이고 불쾌한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르토가 쓴(혹은 연출했던) 작품인지 찾아보았으나,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잔혹극(Theatre of Cruelty)가 이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너무 자극적이긴 하네요.)



위 연극에서 아래 두 개의 지침이 반영되었는가? 글쎄다. 연극 연출에서 이해되는 바, '물질화'라든가 '말과 구별되는, 별도의 언어'가 무대 위에서 보여졌는가를 따져 묻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하지만 확연히 다른 이 연극. 아마 한국에선 실제로 보기 어렵지 않겠는가. 


1. 조형적이면서 시각적으로 말(parole)을 물질화하기.
2. 말과는 별도로 무대 위에서 발음되고 의미되는 모든 언어, 또는 공간에서 표현되는 모든 것 혹은 공간에 의해 해체되거나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언어.
- 104쪽 
 

아르토가 이야기하는 바 잔혹극의 지침인데, 다소 어렵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이에 이 책의 역자인 박형섭 교수의 설명을 인용하는 편이 좋겠다.  


아르토가 ‘잔혹연극’이라고 명명하는 ‘연극’은 서구의 문학적 연극을 지양하고 동양의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연극으로의 회귀를 강조한다. 즉 희곡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연극이 아니라 무대 연출에 중점을 둔 물질언어의 발명에 몰두하는 연극이다. 따라서 극작가보다는 무대 형상화에 종사하는 모든 연극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배우의 연기는 물론 연출가의 관점, 무대장식가의 미적 능력, 심지어는 극장의 구조까지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가령 배우는 매순간 창조의 상태에 놓여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살아있어야 하며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라야 한다. 고정된 언어의 반복적 구사가 아니라 울림과 생명이 용솟는 고함과 같은 활동적인 말표현이라야 한다. 그의 이중(double)의 개념은 여기서 비롯한다. 배우는 진정한 연극 속의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역자 서문 중에서 



말(언어)에 대한 반감(혹은 반대)은 포스트모더니즘, 즉 20세기 후반의 산물이 아니다. 따지고 든다면 19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20세기 전반기는 우리가 가진 언어에 대한 반감/반대/한계에 대해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여기에 앙토넹 아르토도 포함될 것이다. 


문명인은 하나의 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의 마음 속에서는 행위가 생각과 일치되기는 커녕 오히려 행위에서 생각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부조리한 상태로까지 확장된다. - 15쪽 


그는 문명, 서구문명에 대한 반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발리 연극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극작가가 쓴 희곡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 모든 것이 가지는 가능성을 극단까지 추구하며 극적인 순수함을 이끌어내는 연극, 이를 아르토는 잔혹극이라고 명명한다. 


'잔혹 연극'은 연극에 정열적이고 경련하는 듯한 삶의 개념을 주기 위해 창조되었다. 잔혹성은 강렬한 엄격함이나 무대적 요소들의 극단적인 응축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잔혹 연극은 잔혹성에 의존하는 연극인 것이다. 

잔혹성은 필요한 경우 피를 부를 것이지만 체계적으로 피를 요구하지 않는다. 결국 잔혹성의 의미는 무미건조한 정신적 순수함의 개념과 뒤섞여 있다. 이 정신적 순수함이란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가를 삶에 지불하는 일에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순수함이다. 
- 181쪽 





출처 - https://theatrerun.wordpress.com/tag/antonin-artaud/  



아르토는 발리 연극에서 잔혹극의 단초를 발견한다. 


(...)발리 연극의 첫 공연은 춤, 노래, 판토마임, 음악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환영과 공포의 시각 하에서 연극을 자율적이고 순수한 창조적 차원으로 되돌려 놓았다. - 81쪽 



아래 영상은 발리 전통 연극의 일부다. 그가 찾으려고 했던 바가 무엇이었을까? 






정열의 '시간'(temps)에 관한 비밀을 체험하는 것, 조화로운 율동을 조절하는 어떤 음악적 '템포'(tempo)를 체험하는 것, 그러한 것들이 바로 연극적 양상이다. 

- 194쪽 



이 책을 전문적인 연극 이론 서적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마치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인류학 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전에 이 책은 탁월한 시적 산문집이며, 서구 근대 문명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그 대안을 찾는다는 점에서 문명 비평서로도 읽을 수 있다. <<슬픈 열대>>가 20세기 최고의 기행산문집들 중 한 권이듯이. 

아르토가 이 책에서 보여준 시적인 문장, 극적인 설득력, 그리고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읽히고 영감을 주는 이유가 될 것이다.    



연기 

공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언어처럼 암호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동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운동은 하나의 리듬에 맞추어질 것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극단적으로 유형화됨으로써 그들의 제스처와 얼굴 표정, 의상 등은 조명과 같은 특징을 띨 것이다. 

- 145쪽 



2014년 봄부터 읽기 시작해 12월이 되어서야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책은 의외로 단단하고 압축적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놓쳐 읽을 수 없었고 어떤 문장 앞에서는 한참을 서성거려야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앙토넹 아르토의 시도가 20세기 후반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을까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 몇 권 되지 않을 듯 싶다. 예술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잔혹연극론 - 10점
앙토넹 아르토 지음, 박형섭 옮김/현대미학사



별첨) 


아르토에 대한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 대한 평점도 제법 높다. 아래 youtube 동영상으로 영화의 도입부를 잠시 볼 수 있다. 



http://www.amazon.com/compagnie-dAntonin-v%C3%A9ritable-histoire-dArtaud/dp/B007KDA3B6

영화 정보 : http://www.imdb.com/title/tt0106810/ 






2) 아르토는 발리 연극에서 연극의 순수함을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고대 연극의 특징들 - 제의에서 시작했다는 점, 음악이 연극에 포함되었고 가면을 쓰고 나온다는 점 - 에서, 아르토가 이야기하는 바 잔혹극은 일종의 고대적 방식으로의 회귀, 혹은 언어 이전 시기로의 복귀 같은 게 아닐까 싶어 한 번 자료를 찾아보았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적 방식으로  연극 연출이 실험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아래 연극은 모든 부분에서 고대 그리스적 방식을 적용한 것은 아닌 듯싶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에서 재현한 영상물을 찾아보았으나, 없어 아래 연극 영상을 올린다. 하지만 아래 설명에도 있듯이,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작품이다. 

(아마 한국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연극이겠지. ㅡ_ㅡ;)




Filmed by the famed British actor/director Sir Tyrone Guthrie, this elegant version of Sophocles' important play adds a brilliant stroke--the actors wear masks just as the Greeks did in the playwright's day. The story of Oedipus' gradual discovery of his primal crime--killing his father and marrying his mother--has influenced many of the great plays, films and books of all time. When this landmark film production of one of the great dramas ever appeared, it was hailed from all corners: "Spectacular and awesome...this film is a jewel of great price!" raved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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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 - 10점
로베르 브레송 지음, 오일환 외 옮김/동문선




너의 관객은 책의 독자도, 공연극의 관객도, 전시회의 관람객도, 콘서트의 청중도 아니다. 너는 그들의 문학적 안목과, 연극적 취향과 회화적 기호와, 음악적 센스의 욕구에 부응할 필요가 없다.(120쪽) 


책은 얇고 문장들은 짧다. 로베르 브레송은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긴 호흡 대신 짧은 입맞춤, 달콤한 향기보다는 스산한 조명빛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은 권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데이비드 린치의 (상대적으로 형편없는) '빨간 방'이 낫다. 적어도 '빨간 방'을 읽는다는 것은 트렌디한 어떤 삶에 들어간다는 것을 뜻하며(서점에 깔린 '빨간 방'들을 본다면 린치가 이토록 인기가 많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트윈픽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요즘 유행타는 '미드'의 원조격이지 않은가) 창의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잊혀져가는 로베르 브레송의)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직까지 영화는 상업주의, 자본주의, 장르 시스템에 빨려들어가지 않았으며, 예술가, 혹은 예술가 집단의 영화로운 창조물이며, 현대의 마지막 예술 장르임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의 죽음과 세 번의 탄생에 대하여.
내 영화 작품은 처음에는 내 머릿속에서 태어나고, 시나리오 위에서 죽는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생생한 모델들과 실재 사물들에 의해서 부활한다. 그리고 다시 이것들은 촬영된 필름 위에서 죽는다. 그러나 편집이라는 어떤 순서 속에 자리잡아 배열되어 스크린 위에서 투사되면 물속의 꽃들처럼 다시 소생한다. (28쪽) 


마치 하나의 생명처럼, 영화는 창조되어진다. '창조한다는 것은 사람과 사실들을 변형하거나 발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사람들과 사실들 사이에, 그리고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새로운 관계들을 엮는 것'이다.(29쪽) 


드뷔시는 뚜껑이 닫혀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다. (62쪽)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닫혀 있는 피아노를 연주하던 드뷔시를 잊어버렸다. 심지어 영화 감독들마저도!

영화는 돈 속으로 깊이 빨려들어가, 창조되기도 전에 펀딩(funding) 문제로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영화는 예술의 위대한 전통에 먹칠을 하기 시작했으며, 당당하게 자신은 상품이지, 예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스타-시스템. 이것은 새로움과 예측 불허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드넓은 매혹의 힘을 무시하는 시스템이다. 이 작품이건 저 작품이건, 이 주제건 저 주제건 똑같은 얼굴들을 대면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126쪽)


그러므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위대한 시대착오을 향한 모험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움직이는 이미지들과 소리들을 가지고 하는 글쓰기'(시네마토그래프)를 향한, 현대의 마지막 예술 장르인 영화를 향한 사랑 고백이 될 것이다.






*  *   *


로베르 브레송: http://www.cine21.com/Movies/Mov_Person/person_info.php?id=9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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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어려운 듯... 책을 오랫동안 읽지 않았나 봅니다.

    • 요즘 사람들이 너무 쉬운 책들만 읽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도리어 최근에는 제가 너무 유별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니깐요. 이 책, 무척 좋습니다. 저의 편파적인 평가이긴 하지만요. ^^

  • 페킨파 2010.04.22 15:45 신고

    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1005.asp?lessonidx=off_snHong03 여기서 평론가 홍성남 선생님이 브레송 강의를 하시네요

    • 설마 광고는 아니시겠죠? ^^.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 강의 세부 내용이 좀 더 자세하게 나오면 좋을 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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