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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개정판: 맑스주의와 형식, 원제: Marxism and Form)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 (지음),  여홍상, 김영희(옮김), 창작과비평사 



책 뒷 장을 펼쳐보니, 1997년 5쇄라고 적혀있다. 지금 읽어도 쉽지 않은 이 책을 나는 1997년이나 98년 쯤 구입했을 것이다. 아마 인적이 뜸했던 그 대학 도서관 서가에서 꺼내 읽은 아래 문장으로. 


이처럼 벤야민(Walter Benjamin)의 평론들의 한 장마다에서 풍겨나오는 우울 - 사사로운 의기소침, 직업상의 낙담, 국외자의 실의, 정치적 역사적 악몽 앞에서 느끼는 비감 등 - 은 적합한 대상, 즉 종교적 명상에서처럼 거기에서 정신이 자신을 끝까지 응시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심미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순간적인 구원을 발견할 수 있는 어떤 표상이나 이미지를 찾아 과거를 더듬는다. 그리고 발견해낸다 - 30년 전쟁의 독일에서, '19세기의 수도' 빠리에서. 왜냐면 바로끄와 근대의 이 둘 모두가 그 본질상 우의적(allegorical)이어서 우의이론가의 사고과정에 걸맞기 때문인데, 자신을 형상화해줄 외부의 대상을 찾는 비구상화된 의도인 이 사고과정을 그 자체가 이미 '언어 이전'의 우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 73쪽 ~ 74쪽 


그 때, 1990년 후반 문학전공자들의 일부는 발터 벤야민에 빠져 있었다. 아마도 이십 대 후반 이 책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었던 챕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십년 가까이 지난 후인 올 8월부터 읽기 시작해 겨우 다 읽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벤야민은 죽은 채로 우리 옆에 앉아 속삭이고, 나에게 이제 독서란 1시간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일상이 되었고, 회사에서의 시간 이외에 나머지 시간들은 다 조각나 있었다. 길고 조용하게 이어지는 양질의 시간이 나에게 구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고, 이 책의 독서 경험은, 최근 내가 읽는 다른 책처럼 조각나 있고 형편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뒤늦은 독서는, 나에게 깊은 후회와 함께 이제서야 읽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하였다. 종종 어떤 책들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마치 프루스트의 소설들처럼.  이 책은 나에게 헤겔-마르크스의 이론이 어떻게 문학 이론에 영향을 끼쳤는가를, 다소 얕게 알고 있었던 에른스트 블로흐와 루카치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아도르노부터 시작해 마르크스주의적 해석학의 몇 가지 형태라는 2장에선 발터 벤야민, 마르쿠제와 쉴러, 에른스트 블로흐를 다룬 후, 게오르그 루카치, 사르트르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는 헤겔과 마르크스에 영향을 받은, 20세기 전반기 중요하게 여기지는 문예이론가들의 대표적인 저서들을 중심으로 비판적 서술을 전개한 후, 마지막 챕터에서 '변증법적 비평'에 대해 논의하며 책을 끝낸다. 종종 프레드릭 제임슨을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헤겔-마르크스의 영향 아래서에서  현대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과 비판을 전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제임슨의 태도가 잘 드러나는 책들 중의 한 권이며, 앞으로 그가 나아가게 될 어떤 이론적 지향점을 이해하게 해준다. 그 현대문화를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이 책의 모든 부분들이 중요했지만, 아마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 챕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에 대한 그의 시각을 확실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아래 문장처럼. (프레드릭 제임슨을 읽다 보면, 종종 아도르노에 대한 편애같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연구한 싸르트르가 아니라... )


이제 우리는 상품사회에서 예술작품이 지니는 심원한 소명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그것은 상품이 되지 않는 것이며 소비되지 않는 것이며 상품적 의미에서 불쾌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가장 충분히 전개하여 적용한 아도르노의 음악 분석으로 되돌아가도 무방할 터인데, 이 분석은 실제로 그의 여타의 비교적 헤겔적인 실천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진실로 마르크스주의적인 부분을 이룬다. - 383쪽 


이 책 <<변증법적 문학 이론의 전개>>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책으로 일찍 번역되어 국내 소개되었지만, 제대로 읽히지 못한 책들 중의 한 권이다. 문학이론 서적들이 드물던 시절, 나 또한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읽지도, 듣지도 못했으니. 더구나 1장 아도르노에 대해 읽기 위해선 현대 음악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 근현대의 여러 학설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하니, 제대로 읽히지 못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아도르노의 저서들 중 <<신음악의 철학>>을 선택하여 아도로노의 고급문화주의자적 면모를 드러내면서 동시에서 문화산업에 대한 부정과 함께 그 속에서 작품이 상품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제 열정의 모방이 아니라 음악적 매체를 통하여 무의식에서 나온 신체적 충동들을 위장되지 않은 상태로 기록하는 것이며, 형식의 금기들이란 그러한 충동들을 검열하려 하고 그것들을 합리화하여 이미지로 전환시키려 하는 것이므로, 이런 형식의 금기들에 공격을 가하는 충격들 및 정신적 외상(trauma)들을 위장 없이 기록하는 것이다. 이처럼 쇤베르크의 형식적인 혁신들은 표현된 사물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후자의 새로운 리얼리티가 의식으로 뚫고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최초의 무조 작품들은 정신분석학의 꿈의 기록(transcript)이라는 의미에서 기록이다. ...... 그러나 이러한 표현상 혁명의 상처들은 그림과 음악 모두에서 원본능(id)의 밀사로서 예술가의 의식적인 의지에 저항하는 얼룩과 반점이며, 이들은 표면을 훼손시키고 옛날 이야기의 핏자욱처럼 추후의 의식적인 수정으로 씻어낼 수 없는 것이다. 참된 수난은 그것이 더 이상 예술작품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시로서 이것들을 작품 속에 남겨놓았다. 

- 아도르노, <<신음악의 철학 Philosophie der neuen Musik>> 42~43쪽 (40쪽에서 재인용)


문학(이론) 전공자에게 추천하지만, 만만치 않는 책이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헤겔의 <<법철학>> 서문이나 <<정신현상학>>, 또는 마르크스의 <<독일이데올로기>> 정도는 읽거나 개론 수준의 이해를 가져야 할 터이고 소개된 여러 문학이론가들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긴 그래도 쉽지 않을 것인데, 끊임없이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아나톨 프랑스도 나오고 페르난도 페소아도 등장한다. 작가 이름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가끔 이런 문장 - '무조성이란 말하자면 음악의 유명론(唯名論) 같은 것이다' - 이 등장할 때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책은 흥미진진하고 많은 것들을 새로 읽고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아놀드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



기억해둘 만한 인용문들을 옮긴다. 시간이 나면 다시 읽어볼만한 책인데,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구나. 


"따라서 역사가 우리로부터 시간적으로 점차 멀어지거나 우리가 사고 속에서 역사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기만 하면 역사는 더이상 내면화될 수 없고 이해가능성을 상실하게 된다. 역사의 이해가능성이란 애당초 잠정적인 내면성에 부속된 단순한 환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 끌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열대>> 중에서 (265쪽 재인용) 


"역사란 내가 깨어나려 애쓰는 악몽이다."

-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중에서 (302쪽 재인용) 


"문체와 관계를 맺는 것은 역사보다는 생물학이나 과거의 차원이다. 문체는 작가의 '대상'이며 영광이자 감옥이며 고독이다... ... 그 비밀은 작가의 육체에 파묻힌 기억이다. 문체의 암시적인 힘은 말해지지 않은 것이 일종의 언어적 간격으로 남아 있는 회화에서처럼 속도의 현상이 아니라 밀도의 현상이다. 왜냐하면 문체의 비유 속에 거칠거나 부드럽게 조합되어 문체 밑에서 견고하고 깊이있게 지속되는 것은 언어와는 전적으로 다른 한 현실의 단편들이기 때문이다."

- 롤랑 바르트, <<Le Degre zero de l'ecriture>>, 58~59쪽(331쪽 재인용)


"유력한 개개인이 그들의 정신과 성격의 특수한 자질로 인해 사태의 개별적 양상과 일부 특정한 결과를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사태의 전반적인 추세를 바꿀 수는 없고, 이 추세는 다른 힘들에 의해 결정된다."

- 쁠레하노프, <<역사 속에서의 개인의 역할 The Role of the Individual in History>> (352쪽 재인용)


"세계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데 대해 한 마디 하자. 이 문제에 대해 철학은 항상 지각생이다. 세계에 대한 사고로서 철학은 현실이 그 전개과정을 다 마친 이후에야 나타난다. 개념이 가르치는 것은 역사가 이미 필연적인 것으로 보여준 것이다. 현실이 성숙했을 때에야 이상은 현실적인 것과 대치되는 것으로 등장한다. 이때 이상은 이 세계의 본질을 포괄하는 지적 영역의 형태 속에서 이 세계를 스스로 재구성한다. 철학이 그 백발을 은빛으로 칠할 때 삶의 형식은 이미 노쇠했으며 이 은빛으로 칠한 백발은 삶을 회춘시킬 수 없으며 단지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날기 시작한다."

- 헤겔, <<법철학>> 서문에서. (356쪽 재인용) 


"변증법이 헤겔의 손에서 신비화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변증법의 일반적 작용형태를 포괄적, 의식적으로 제시한 최초의 사람임에 변함이 없다. 그에게 있어서는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다. 신비화의 껍질 내부에서 합리적 핵을 찾아내려면 이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

- 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 2판 서문에서 (361쪽 재인용)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19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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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과 벤야민 그리고 소셜 미디어





오늘날 나타나는 것이 프로그래밍된 체험들이다. 사회적 삶은 총체 예술이 된다.
- 노르베르트 볼츠, 『컨트롤된 카오스』 중에서


변화하는 기술 환경과 창작



노년의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아이폰의 브러쉬 기능을 통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해외 토픽에 나오는 지금,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의 발달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매년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이를 쫓아 배우고 소비하기도 바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급변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느리게 변화할 뿐이다. 눈에 보이는 여러 문화와 기술 트렌드가 이전 시대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고 해서, 19세기 이래로 우리의 일상은 변한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이는 예술가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장르를 만들기도 하지만, 예술가의 창작 작업이 급변하는 것이 아니다. 젊은 데이비드 호크니도, 늙은 데이비드 호크니도 그림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붓으로, 아이폰의 브러쉬로.


Three images by David Hockney - a self-portrait, a still life, and a summer dawn?made with the Brushes application on his iPhone, 2009
출처: http://www.nybooks.com/articles/archives/2009/oct/22/david-hockneys-iphone-passion/


새로운 기술에 대한 무분별한 열광은 종종 창작환경에 대한 불필요한 논의를 야기하기도 한다. 원고지로 글을 쓰고 종이책을 내던 작가들이 PC 키보드로 글을 쓰고, 온라인의 전자적 문서(하이퍼텍스트)로 펴내기 시작했을 때,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들이 있었다. 작업 환경과 결과물의 변화로 문학의 본질까지 건드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고, 새로운 문학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십수년이 지난 지금, 그런 연구는 철지난 유행이 되었고, 이제 어떤 기대나 우려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진 때문에 미술이 죽고, 영화 때문에 소설이 죽을 거라는 호들갑스러움처럼. 그렇다면 최근의 소셜 미디어(Social Media) 열풍은 예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소설가 박범신은 인터넷 블로그로 소설을 연재하여 출판하였고 이외수는 트위터(Twitter)에 올린 짧은 글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 1차 출판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고, 실시간으로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의 출판은 마치 뒷북치듯 오프라인 서점에 깔리는 것이다.

2008년 뉴욕 브룩클린 미술관에서는 흥미로운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 이름은 「Click! A Crowd-Curated Exhibition」이었다. 전시의 목적은 제임스 서로워키(James Surowiecki)의 책 『대중의 지혜』에서 주장하듯, 일반 대중의 의사 결정이 전문가들의 그것보다 현명하다는 것이 미술에서 가능한가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일반 대중의 의사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먼저 예술가들에게 페이스북(facebook), 플리커(Flickr)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락하였으며, 전시할 사진 작품들도 온라인으로 받았다. 그리고 웹사이트에 사진 작품들을 전시하였고, 일반인들로 하여금 전시 작품들을 평가하도록 하였다. 모든 전시 활동들이 먼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사진 작품들에 대해 일반 대중들이 평가하도록 하였으며, 그 평가를 바탕으로 실제 미술관 전시가 이루어졌다. 즉 ICT의 발달로 인해 예술 창작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창작 이후의 어떤 과정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뒤샹과 벤야민의 소망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변기를 「샘」이라 이름붙이고 미술관에 전시했을 때, 그 의도는 분명했다. 당신들,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면서 ‘미술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는 이들이 이야기하는 바, 미술이란 존재하지 않고, 누구나가 원하기만 한다면 미술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라는 소논문을 통해, 기존 예술 작품이 가지던 종교적, 정치적 아우라가 기술 복제를 통해 사라질 것이고 예술은 대중의 것이 될 것이며, 예술의 정치화를 통해 파시즘에 싸울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을 주도할 예술 장르로 사진과 영화를 주목했다. 그렇다면 마르셀 뒤샹의 의도는 성공하고 발터 벤야민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일까?

뒤샹의 「샘」 원작(?)은 한 번 분실된 후, 새 변기에다 「샘」이라고 적는 해프닝이 있었다. 뒤샹의 의도와는 반대로 뒤샹만이 상점에서 파는 변기를 「샘」이라는 현대 미술 작품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뒤샹의 도발적인 ‘레디메이드’는 20세기 이후의 미술을 개념 미술의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발터 벤야민의 소망, ‘아우라’는 사라지고 예술의 정치화를 통해 그가 바라던 어떤 사회는 결국 오지 않았다. 도리어 뛰어난 예술가가 되려면 먼저 시장과 정치를 알아야하고, 예술 권력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전문가, 아마추어, 일반 대중의 거리를 더욱 멀어졌다. 20세기 중후반까지 현대 예술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셜미디어가 만들어가는 예술적 일상

제롬(Jean-Leon Gerome)이나 부게로(William-Adolphe Bouguereau)같은 아카데미 화가들이 보기에 모네(Claude Monet), 피사로(Camille Pissarro)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마치 형편없는 아마추어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마추어들은 현대 미술(Modern Art)을 만들었다.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연극 무대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의 서사극이론은 관객이 무대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개방된 무대를 지향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얼마 전 끝난 국립현대미술관의 「누가 미술관을 두려워하랴 - 박기원」전은 현대 미술이 어떻게 일반 대중의 참여를 바라는가를 드러내는 전시였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예술의 시대는 가고 평등과 개방을 지향하는 예술가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마치 뒤샹과 벤야민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소셜미디어가 바라는 것도 이것이 아닐까. 모두에게 개방되고 모두가 참여하며 공유하는 어떤 것. 이미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운영하며 대중들과 대화하고 있다.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블로그에 올려 공유하고, 온라인을 통해 판매까지 하고 있다. 미국시인아카데미에서는 ‘Poem Flow'라는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휴대폰에서 시를 읽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런 어플리케이션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미 많은 갤러리와 미술관들은 웹사이트뿐만 아니라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로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고 있으며, 미국의 인디아나폴리스 미술관은 아예 소셜미디어 기반의 웹사이트인 ’ArtBabble'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소셜미디어의 개방성으로 인해, 일반 개인도 이러한 활동이 가능해졌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나 직접 그린 그림, 그리고 자작시나 소설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하고 공유하며,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해졌다. 즉 누구나 원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작품을 온라인으로 전시하고 평가받는 일이 가능해졌다. 19세기 인상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전시장을 가지기 위해 고분 분투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면 된다.

소셜미디어의 힘은 전문 예술가와 일반 대중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는 예술 창작의 기반을 흔드는 일이 아니라, 예술 유통의 기반을 흔들어, 예술가의 존재를 새로 정의내리고 있는 셈이다. 전문 화가가 되기 위해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해야 된다든지, 소설가나 시인이 되기 위해 등단을 해야만 한다는 기존 공식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기존 예술 권력의 힘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중과 소통하며 대중과 호흡하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 소셜미디어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하는 것이 현대 예술가의 중요한 활동이 된 셈이다.

2006년 타임지는 ‘세계의 역사는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일 뿐’이라는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사상이 현대에서는 더 이상의 호소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말하며,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으로 선정했다. 뒤샹이 원했고 벤야민이 의도했던 바, 모든 이들이 예술가가 되고 예술의 유통이 무한 복제와 공유가 가능한 공간이 소셜미디어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http://www.artbabble.org/ 



* 이 글은 인천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저널인 '플랫폼'에 실렸던 글입니다. 2010년 봄에 실렸던 글인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제 블로그에 올립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소셜미디어와 관련된 책 여러 권을 구입했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아 씁쓸했던 기억이 나네요. 뭔가 새로운 시각으로 쓰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제목은 저널에 실린 제목대로 올렸습니다. 원래 제가 적었던 제목이 있었으나, 편집자가 선택한 제목이 좋습니다. 책이든 저널이든 편집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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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좋은글이네요...호크니의 아이폰드로잉들은 모순적으로 오히려 공유되지못하게 철통보안하고있다고하더라구요 갤러리측에서..말그대로 원화라는개념이 없으니 판매를위한전략?이라더라구요...참 아이러니한거같아요^^

    • ㅎㅎ.. 그러니 벤야민의 예언은 잘못된 거죠. 아우라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아우라가 강화되고 어떻게 하면 아우라를 만들까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죠. ㅜㅜ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 

발터 벤야민 지음, 김영옥/윤미애/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란, 5분, 10분, 5분, 이런 식으로 조각난 것이 아니라, 1시간, 2시간, 혹은 하루나 이틀 이상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린 2013년 가을, 내가 집어든 책은 도서출판 길에서 나온 ‘발터 벤야민 선집 1권 - 일방통행로, 사유이미지’이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내 조각난 시간 틈 속으로 들어와 사뿐히 내려앉은 벤야민의 글들은 번뜩이는 통찰이 어떻게 짧은 글들로 조각나 고딕 교회의 모자이크화처럼 구성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결국 발터 벤야민은 20세기의 전반기를 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급진적이었다. 그것은 그의 인식 태도 - 대중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 속에서 사회주의적이며 카발라적인 진지함을 잃지 않고 그것을 그 속에서 해석하고 실천하려는 - 에서도 기인하지만, 그의 글쓰기 방식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 책은 벤야민 글쓰기의 급진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이러한 글쓰기의 급진성으로 이미 조각난 시간, 조각난 일상을 영위하는 현대인에게 꽤 적절한 책이 되었다(그러나 가끔 만나게 되는 곱씹어야 하는 문장들 앞에선 아쉽긴 하지만). 


고전적 예술 양식은 이미 사라지고 그 흔적들이 광고 문구 - 위대한 작가들의 문장에서 따오거나 유래한 비유적 문장들로 즐비한 - 나 디자인 소품 - 이미 고전 예술을 넘어 현대적 예술 양식의 하나로 인정받는 - 으로 남겨진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이 세계란 24시간 꺼지지 않는 케이블 방송처럼 끊임없이 변하며, 이 세계의 본질마저 이미지들의 연속체로 존재한다. 연속체, 즉 영화적인 병렬적 구성 -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를 구성하는 방식인 셈이다. 


그는 각 단락을 나누고 그 단락마다 에피소드를 담는다. 마치 각기 다른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일렬로 늘어선 아케이드를 지나는 산보자의 시선에 들어오는 거리 풍경처럼, 이 책도 그런 구성을 띄는 것이다. 


하지만 거리를 산책할 때나 그 산책을 끝내고 혼자 있을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끝없는 허전감, 쓸쓸함 - 혹은 이름도 알지 못하는 행인들 사이에서 경험하는 익명성의 공포 - 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듯이, 벤야민이 향하는 곳은 그 산책의 본질을 호도하고 그 산책의 외관으로서의 글쓰기 형식 자체이거나 그 산책의 쓸쓸함을 극복하기 위한, 비현실적 이상향이다. 그래서 벤야민은 여러 문학작품들에 빗대어 세계를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며 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만, 우리는 벤야민을 통해 현실 변화의 단초를 읽기 보다는 이미 변해버린 현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데 지나지 않는다. 


실은 너무 늦게 우리가 벤야민을 읽기 시작한 것이며, 너무 일찍 벤야민이 절망했던 탓이다. 그러나 그나마 이런 글쓰기를 통해 변해버린 현실을 알려주는 이마저도 드문 탓에, 벤야민은 우리들의 숨겨진 친구가 된다. 


이 책은 벤야민의 주저가 아니다. 일종의 산문집에 가까우며, 짧은 글들의 연속으로 인해 도리어 독서의 혼란스러움만을 가져다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발터 벤야민’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을 지도.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발터벤야민저 | 김영옥외역 | 길 | 2007.11.3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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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의 노래>>, 바진(지음), 홍석표, 길정행, 이경하(옮김), 황소자리

 

 

 

책을 읽으면서 현대 중국 사회에 있어서 문화혁명’(1966 ~ 1976)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노(老) 작가 바진은 끊임없이 개인의 삶과 문학의 존재 의미를 물으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문화혁명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끊임없이 문화혁명 시기의 자기 자신과 그의 가족, 그의 동료들에 대해 회상하면서 후회했다. ‘바진 타계 일주년 추모 수상록 선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에서 독자는 시간 앞에서 끝없이 진실해야 된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일을 없단 말인가? 문혁이라는 기름 솥에서 10년을 뒹굴었는데, 몸과 마음을 졸였던 재난에 대해서 쓰면 된단 말인가? 누군가 나에게 서독 청년이 나치가 폴란드에서 종족 말살용 살인공장을 지었던 일을 믿지 못하고 일이 일부 사람들의 환상 불과하다고 생각하더라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런 일이 있을 있다니! 겨우 40년의 세월인데, 사람들은 나치당원이 인성을 저버리고 행한 극악무도한 죄행을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아우슈비치의 나치 전범 박물관에 적이 있다. 학살수용소의 유적은 아직도 그곳에 보존되어 있었다. 독가스실과 시체를 태우던 용광로가 몸서리쳐지게도 눈앞에 보였는데, 벌써 존재들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생겼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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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란 부정할 없는 사실로서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혁명은 이미 잊혀진 과거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문화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상기시키면서 비이성적인 시기 동안 사라져간 동료들과 고통 받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바진을 도리어 공격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은 극좌파적 오류라는 중국 공산당 공식 평가를 받은 문화혁명. 책에 실린 글들이 1980년대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2000년대의 중국 작가들은 이것을 어떻게 회상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문화혁명 시기, 중국 신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중의 사람인 바진을 비난하고 공격했던 10대의 아이들은, 40, 50대가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은 과연 아직도 문화혁명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래서 바진은 문혁박물관 세워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 … 일부 사람들에게는 과거란 날조된 상상의 부산물이고,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어떤 종류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수잔 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마지막 부분의 짤막한 이야기는 묘하게 바진의 책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과거는 끊임없이 우리 곁을 돌며, 우리의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

 

1982년에 (1926년에 벤야민의 교수 지원을 퇴짜놓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열린 국제학회에서는 <<파사젠베르크(아케이드 프로젝트)>> 벤야민 <<전집>> 5권으로 출판된 사건에 주목했다. 공식 발제가 끝난 다음날 아침에 학생들과의 자유 토론에서, 벤야민 학자들은 각자 대립하는 학파에 맞서 자기만의벤야민을 옹호했다. 이들 논쟁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많이 들었던 논쟁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아침에 통찰력 있는 발언을 것은 우리가 아니라 독일 학생이었다. 갑자기 그는 학회장에 독일계 유대인이 없다, 자기 세대 학생 중에 그들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의 부재가 느껴진다고, 그들이 없어서 슬프다고 말했다. 학회장은 갑자기 유령들로 가득 찼다. 우리는 오한을 느꼈다.
(<<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수잔 모스 지음, 문학동네), 427
)





매의 노래 - 8점
바진 지음, 홍석표.길정행.이경하 옮김/황소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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