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 3

해마다 추석.

해마다 추석이 오고, 그 때마다 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내려간다. KTX 예매는 무척 어려운 종류의 일이 되었고 짧은 여행 시간마저도 꽤 고단한 일상이 되었다. 13시간이나 걸려 가던 여행 시간은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옛날 일이 되었다. 내려가면 매일 회를 먹는다. 적어도 서울보다 저렴하고 신선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지만, 따지고 보면 막상 그런 것도 아닌데. 이번에는 마트에서 스미노프 한 병을 구입해 같이 먹었다. 그리고 추석 다음 날엔 창원 해양공원엘 갔다. 세계 2차 대전 중, 1941년 뉴욕에서 만들어진 군함 한 척이 2013년 반도 남쪽 끄트머리 섬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과 세상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지만, 바다는 잔잔했고 사람들의 일상은 전쟁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했다. 이제 만 ..

잡다한 일상

며칠 부모님께서 지난 주에 서울 오셨다가 어제 내려가셨다. 고향 집에 전화를 하고 난 다음, 운동을 했다. 거의 열흘 만에 운동을 했는데, 온 몸이 쑤셨다. 결국 아침 늦잠을 잤고 회사엔 지각을 했다. 몸이 피곤할 땐, 딸기와 같은 달콤함이 그리워지고 마음이 쓸쓸할 땐, 쓰디쓴 술이 그리워진다. 사무실에 와서 커피를 마신다. 집에선 버릴 책들을 꺼내놓는다. 몇 권은 이미 사라졌다. 쓴 술만 마신다. 러시아의 겨울을 견디고 한반도의 봄 속으로 들어온 보드카 두 병. 낡고 오래된 오렌지 쥬스와 만나,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 이번 주말에는 전시 몇 개를 챙겨볼 예정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 다소 지칠 지도 모르겠다.

차이코프스키

러시아만이 이런 이름으로 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차이코프스키. 어제 밤, 아는 분 댁에서 하나 가지고 왔다. 요즘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혼자 마실 수 있는 포도주가 좋겠지만, 멋진 모양의 병에, 슬픈 표정을 가진 차이코프스키의 사진이 박힌 이 러시아산 보드카는 너무 매력적이다. 이제 누구와 마시는가만 남았다. 한 번 일군의 무리를 집에 초대해서 술 마시기를 해야 겠다. 차이코프스키를 마시는 거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이 담긴 LP 여러 장을 꺼내놓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