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르트 2

볼프강 보르헤르트

“여자는 사랑할 때, 남자에게 모든 걸 주고, 헤어질 때, 모든 걸 잊어버린다. 남자는 사랑할 때, 딱 절반만 주고, 헤어질 때, 나머지 절반마저 준다.“ 새벽까지 마신 술 탓에 택시를 잡아타고 나가던 어느 아침, 멍한 눈동자를 가득 채우고 있는 알콜 향 너머 자리 잡고 있던 고막을 울리던 라디오 DJ의 말. 내 주위, 몇 명의 여자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녀들 모두 아니라고 했다. 철부지 같은 나를 몇 년 동안 기다린 여자가 있었고 철부지 같은 내가 싫어 떠나간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간 건 지나갔으며, 이젠 돌이킬 수 없다. 후회란 부질없고 우리에게 미래마저 불투명하니, 그저 지금 있는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된다. 사각의 방에 앉아 아무 짓도 하지 말아야 된다. 아마 그라면 나를, 우리를 위로해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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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이가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가 없냐고 물었다. 그대 는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말했다. 난 좋아하는 작가가 있 지만, 그들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 있다고 보 기 힘들다 말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고민에 잠겼다. 과연 나에게 그런 작가는 없었나 하고 말이다. 볼프강 보르헤르트. 그는 침울하고 지친 표정으로 앙상한 손을 내밀었다. 그 는 나에게 한 마디 인사도 하지 않고, 창백한 눈빛으로 "이 번 겨울엔 쓸쓸하게 술을 마시지 말게나"하고 말했다. 이미 죽은 자의 손을 마주 잡고 난 한참을 서있었다. "그래야 겠 지. 하지만 여자들은 날 좋아하지 않는다네. 그러니 어쩌겠 나." 보르헤르트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정 술을 마시고 싶 으면 날 부르게. 아마 별빛들 사이에서 내가 술잔을 내밀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