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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성장통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만, 실감하긴 어렵다. 그저 자주 아프고 피곤한 육체만 떠올릴 뿐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죽음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으로 변한다는 정도. 다시 말해 죽음을 담담히 준비하게 된다. 생에 대한 미련을 줄여 나가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물욕이 사라지진 않아서 곧잘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가끔 미디어를 통해 내 나이 또래 사람을 보게 되면, 아, 저들은 왜 저렇게 늙게 보이는걸까, 하다가 내 얼굴을 거울로 보면 낯설기만 하다. 오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아래 이미지를 발견했다. 이래도 성장(Growth), 저래도 성장이지만, 성장의 모양은 제각각이었다. 내 성장의 모습은 어떤 걸까. 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걸까.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계속 노력해야 하는 건..

산기슭 카페의 봄, 바람

바람은 산기슭 카페를 지나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며 다소 높은 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기어이 봄날을 불러들이고 부드러운 햇살 아래로 길고양이가 구석진 곳에서 나와 양지 바른 곳에 앉는다. 그러나 이 풍경은 우리 인간사와는 너무 무관해서 나는 심하게 부끄럽고 우울하고 슬프다. 어제가 영화로웠고 오늘은 수치스러운 분노로 내일은 어둡기만 하다. 이 봄날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고 비가 내리고

서구의 어느 기상학자는 한반도는 4계절이 아니라 5계절이라고 말한다. 봄, 장마(우기), 여름, 가을, 겨울. 우리는 4계절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의 시선에는 우리가 정의내리지 않는 어떤 계절을 지금 지나고 있다. 다행이다. 비가 내려서. 그래서 내륙의 가뭄이 사라지길 기원한다. 봄이 지나자 더위가 밀려들었다. 더위의 위세로 인해 사람들은 기가 죽고 짜증만 낸다. 나도, 아내도, 아이도, 짜증의 바다를 지나며 서로에게 불평을 쏟아내며 빨리 지친다. 프로젝트 상황이 난감해진 지금,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노력 중이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에서 '리추얼ritual'을 항상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같은 활동이라고 정의내리고 있었다. 독일의 한병철은 리추얼이 끝났다고 말하지만, 한 쪽에서는 리추얼의 부활을 말한다...

코로나 19의 봄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그럴 나이가 되었고 그럴 위치에 올라왔으며 그럴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디테일에 강해야 된다고 말하는 시대이니, 나도 사소한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확실히 17세기 유럽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근대성Modernity이란 기본적으로 바로크Baroque적인데, 어떤 목적(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을 극복해내려고 한다. 상당히 전투적이다. 과감하다. 푸생도 그렇고 루벤스도 그렇고 렘브란트도 그렇다. 다만 표현하는 방식(양식)에서의 작은 차이들이 있을 뿐, 기본적인 태도는 근대적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목표를 향해 가면서 겪는 고통마저도 고귀하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은 ..

우울한 피곤,들 너머의 피로사회

한병철의 를 읽고 난 다음, 그의 책들을 몇 권 더 샀으나, 아직 읽지 못했다. 한병철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그가 철학자가 된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 한참 지난 뒤까지 나는 직장인을 거부했다. 작가나 예술가라는 틀도 싫었다. 꿈을 꾸긴 했으나, 그 꿈을 명료화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내 몸에서, 내 마음에서 용기가 빠져 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벚꽃이 갑작스럽게 피었다가 졌다. 예상치 못한 시기에, 준비하지 않는 봄을 맞이한 내 마음은 정처없이 떠돌기만 했다. 그걸 잊으려 야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상당히 피곤하다, 우울하다. 우리는 준비한다고 노력하지만, 막상 마주하면 준비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준비해야 ..

카테고리 없음 2021.04.15

봄 날을 가로지르는 어떤 기적을 기다리며

시간이 흐른다. 아무런 이유 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나이가 들고 상처 입고 죽는다. 이유없음은 저 실존주의자들의 가장 강력한 테마였지만, 그 무목적성 앞에서 그들도 무릎 꿇었다. 내던져진 존재.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살았다. 치열하게 부딪히며. 봄이 왔지만, 내 마음 속으로 봄은 깃들지 못한다. 봄꽃 날리는 거리를 걸었으나, 그 때의 봄이 아니다. 하긴 나에게 봄이 있었던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하지만 우리 삶은 기계론적 인과율이 지배하지 않는다. 이 생은 저 감당하기 힘든 우연성으로 포장된 어떤 것이니, 내가 기댈 곳은 어떤 기적 뿐. 그 기적 아래에서 싹트는 고백과 반성

비오는 토요일의 근황, 단상, 잡담

2019년 봄부터 2020년 2월까지 일 외에 다른 것에 신경쓸 틈이 없었다. 10억원이 넘어가는 프로젝트의 PM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Agile 방법론으로 다수의 소규모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시켜야하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책 읽기나 글 쓰기가 예전만 못했다. 다행(?)히 다시 연장된 프로젝트에 괜찮은 멤버들도 다시 셋팅할 수 있었기 망정이지, 계속 그 생활이 이어질 뻔했다.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다시 IT 영업과 컨설팅, 제안서 작성과 발표의 업무로 돌아왔지만, 역시 이 업무들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도 들고 대단한 미래가 보장되는 일상을 누리는 것도 아닌 탓에, 이런저런 준비도 같이 병행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코로나 시대, 외출이 부자연스러운 지금, 간만에 내리는 비소리를..

최근

1. 최근 블로그 상에서 바로 글을 써서 올린다. 그랬더니, 글이 엉망이다. 최근 올린 몇 편의 글을 프린트해서 다시 읽어보니, 문장의 호흡은 끊어지고 단어들이 사라지고 불필요한 반복과 매끄럽지 못한 형용어들로 가득했다. 결국 나는 몇 번의 프린트와 펜으로 줄을 긋고 새로 쓰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끼인 세대인 셈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끼인 세대.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지만, 읽기는 무조건 종이로만 읽어야 하는. 그래서 최근 올렸던 글을 프린트해서 다시 쓰고 고쳐 새로 올릴 계획이다. 얼마나 좋아질 진 모르겠지만. 2. 헤밍웨이의 를 읽고 있다. 무척 좋다. 번역된 문장들이 가지는 태도가 마음에 드는데, 원문은 얼마나 더 좋을까. 영어 공부를 열심해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번역된 셰익스피..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져가는 시간의 여울 사이로 떠오르는 한줌 알갱이들. 정체모를. 아름다운 시절들은 다들 노랫말 속으로 잠기고 고통은 리듬으로 남아 바람 속에 실리기도 하고 햇살에 숨기도 하는데, 하나의 계절이 가면 어김없이 하나의 계절이 오고 계절풍이 불고 나무들은 빛깔을 잃어버리기 시작하는데, 조수의 리듬에 영혼을 밀어넣고 흔들흔들, 노래를 부른다. *** 위 글은 2002년 10월 27일에 쓴 것이네. 그 사이 화양연화 OST는 줄기차게 들었는데, 이 영화를 다시 보지 않은 건 상당히 지난 듯싶어. 상당히 쓸쓸할 듯 싶은 이 봄, 이 영화를 다시 봐야지. (다시 보면 어떨까. 살짝, 아주 살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