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5

불안

휴가를 내어도 마음은 불안했다. 전화가 무서웠다. 예전엔 이 정도까지 아니었다. 현대인 대부분은 이럴까. 아마 대부분 이럴 것이다. 불확실성은 우리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강조되는 불확실성. 연역법의 시대가 지나고 귀납법의 시대가 되었다. 합리론은 폐기되고 경험론이 주류가 되었다. 하지만 경험론이 강조하는 불확실성은 인간 이성의 오만함을 경고하지만, 현대 자본주의는 그 오만함을 지탱하기 위해 합리적 이성(?)이 결정 가능한 세계를 제한하고 이 안에서의 합리적 결정을 위한 다양한 이론들을 등장시킨다. 그러면서 한 쪽에서는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강조하며 그 복잡성 위로 수학을 이야기한다.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고 결정할 수 없다는 경험론의 시대에 복잡성을 강조하며 이를 해결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밀어붙인다...

맥주와 커피

며칠 전. 맥주와 포카칩. 대학 시절, 작디 작은 자취방에서 먹던 기억으로 가족을 다 재우고 난 뒤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정확히 말해 예전의 맛이 아니었다. 그 사이 입맛이 변했나. 아니면 ... ... 한파주의보 내린 오전. 미팅 전 카페에서 잠시 메모. 쓸쓸한 풍경.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걸어가면서 만들 수 없는. 오전에 커피를 많이 마신 탓에, 내리지 않으려 했으나, 끝내 오래된 커피 알갱이로 만든 드립. 이렇게 물만 부으면 되는 커피처럼, 내가 걸어가는 길 위로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어떤 것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미래에 대한 불안

자연스럽게 육체의 나이에 익숙해지는 2013년.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쓸쓸해지는 나이. 사십대. 날씨 변화에 터무니없이 민감해지(또는, 아프)고, 어린 아들의 웃음에 눈물이 나고(고마워서) 아내의 잔소리가 듣고 싶어지는(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 끝도 없이 물컹물컹해지는 마흔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지나간 젊음 위로 쌓여 얼어간다. 얼어붙은 불안은 깊고 날카로운 냉기를 시간 속으로 밀어넣고. 잠시 내일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사람들이 내 주위를 피한다. 미래는 무섭고 현재는 견디기 어렵다. 현대 문명은 어쩌면 과거 문명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불안들을 켜켜히 쌓아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Atta Kim: On-Air, 로댕갤러리

Atta Kim: On-Air 2008.3.21-5.25 로댕갤러리 사진이 무엇일까. 그렇다면 사진에 대한 글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내가 예술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 순간까지 나를 괴롭힐 것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예술에 대한 사랑, 또는 호기심을 데리고 찾아간 로댕갤러리 안에서 나는 (현대)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바의 어느 극점을 발견하였다. 김아타의 이전 작업들, 뮤지엄 프로젝트나 해체 시리즈, 그 외 인물 사진 시리즈를 보았지만 내 시선을 끌지 못했다. 분명 그 때도 그의 작업들은 비평적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사진 속에서 그의 카메라가 가진 즉물적이며 파괴적인 속성이 싫었다. 나는 좀더 우아한 방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사진들은 피사체를 ..

월요일 아침의 우울

생을 휘감고 도는 불안이 내 방안에 가득했다. 그것들을 밀어내기 위한 나의 사투는 애처로울 정도였으나, 결국 역부족이었다. 거친 입술이 얇게 떨렸다. 한 겨울밤의 적막. 견디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과연 이렇게 견디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야누스와 같은 동시성은 가끔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부치기도 한다. 까뮈를 읽었다. 밀란 쿤데라를 읽었다. 김기림과 염상섭을 읽었다. 실은 거짓말이다. 까뮈를 읽었지만, 밀란 쿤데라는 읽다가 말았지만, 김기림과 염상섭은 사놓기만 했다. 윤동주의 서시를 외우고 있었는데, 이제 첫 구절 마저도 버벅인다는 걸 깨달았다. 불안함에 대한 각성. 커피 한 잔과 담배로 늦겨울, 쓸쓸한 추위를 견디고 있다. 말없는 금붕어 세 마리는 가끔씩 물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