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트 2

폐허에 대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뒤에야 김경주라는 시인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하긴 대학 졸업하고 난 뒤, 직장생활을 하고 난 뒤, 시집을 샀던 적이 몇 번 되지 않았을 테니... 요즘 나오는 시인이나 소설가에겐 흥미를 잃은 지 오래... 그러다가 읽게 된 김경주. 아래 글은 얼마 전 휴간으로 들어간 브뤼트 마지막 호에 실렸다. 예전부터 한 번 블로그에 옮기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올린다. 이런 글 참 오래만이었다. 언어는 폐허 위에서 생겨난다. 언어의 폐허로부터 시는 태어난다. 시는 자신의 폐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는 폐허의 속살이다. 시는 언어와 폐허가 교미한 흔적이다. 시는 언어의 폐허를 채운다. 언어는 인간의 폐허를 망각하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가서 발화된다. 한 인간의 사랑이 ..

어느 토요일의 단상 - 브뤼트 Brut 6월

무너질 듯, 무너질 듯, 일상을 지탱해온 것 같다. 아내를 직장으로 보내고, 집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주 짧은 휴식을 취해보지만, 습관은 늘 그렇듯 활자로 나를 이끌었다. 활자 속의 삶. 대학시절, 글 쓰던 친구들은 시집이나 소설을 읽을 때 늘 작가의 등단 연도를 찾았다. 몇 년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몇 살 때인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시간은 있어, 당연하게도 20대 초반 만에 등단하는 작가는 많지 않았으니, 가끔 김인숙이나 구광본처럼 대학 심지어 그 이전에 등단한 작가를 만나면 책을 휙 던지며 말 한 마디 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그 짓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시들해져갔다. 보기는 하지만, 나는 대기만성형이야, 라고 주절거리는 횟수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