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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아무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공평한 걸까. 내일의, 어떤, 발생하지 않은 일이 현재, 혹은 과거에 미쳤던 영향은 대단하기만 하니, 내일을 아는 이 없다고 해서 세상이 공평한 것은 아니다.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은 인과율(law of causality)을 바탕으로 움직이며, 우리 모두는 인과율적 문명의 노예다. 우리 문명은 인과율 위에 축조되었고 우리 사고도 인과율을 벗어나 한 발짝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각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인 이 노예 근성은 현 문명에 반하는 모든 혁신을 거부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었던) 운명에 순응하는 개인이라는 표상이 생기고, 모든 이들 -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나이 든 이나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이나 - 이 '역시 이럴 줄 알았어'라며 자신의 파괴되어지고 부서지고 있는 보금자리 - 그 곳이 물리적 장소이든 마음 속의 위치든 - 에 들어가 꿈쩍도 하지 않으려 한다. 


하버마스가 말한 바 있는 공론장의 붕괴는, 어쩌면 우리 문명이 지닌 치명적이고 근원적인 약점이면서 충분히 예견된 일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그리스 비극이 감동적인 걸까. 고전 비극은 이 치명적 약점 위에 서서, 끝내 실패하고야 말 생(生)의 혁신을 꿈꾼다. 위대한 고전주의자들의 낭만성은 여기에서 싹튼다. 우리가 종종 고전주의자를 낭만주의로 오해하는 이유는, 범속한 낭만주의가 기존 질서에 반하여 무질서, 혼돈, 상상을 이야기하는 것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고전주의자들은 기존 질서 위에서 그 질서와 싸우며, 그 질서와 함께 무너지는 순간에도 질서의 문제점을 말하며,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삶 전체로 투쟁하고 저 질서 너머의 어떤 새로운 질서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고전주의자이면서 낭만주의자일 수 있는 것은, 질서를 받아들이며 요청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철학 전체는 한 편의 비극이며, 새로운 시대의 요청으로 점철되어 있다. 



잠시 들른 까페에서 위의 글을 메모하면서... 출근 전 잠시, 혹은 아주 길게, 게오르그 짐멜의 렘브란트와 메리 올리버의 고래 사이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 들었다. 아. 아무도 날 깨우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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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간단하게 햄버거로 처리하고 도로를 걸었다. 작은 분수와 가로등에 달라붙은 채 갓 핀 꽃을 보여주고 있는 화분들을 보면서 참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 길가로 쏟아져 나왔다가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사람들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 웃음도 참 비현실적이었다.


모두, 우리들의 비극적 상황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모른 척할 것이고, 모른 척 하던 사람들이 다 죽고 도시는 폐허가 될 것이다.

이런 도시는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를 따라가다 보면 많이 만날 수 있다. 이젠 성채만 남아 부서지는...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과거는 과거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변화를 거부한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정지해있다. 그들은 마치 파르메니데스의 후예들 같다. 아직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믿고 있다. 자리는 고정된 것이고 사람은 변하는 것이니, 고정된 자리에 사람을 끼워맞추면 된다.


하지만 한국이 이토록 엉망이 된 것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정 반대다. 자리에 맞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교육(훈련)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나는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이런 국가가 되기 위해선 몇 백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 이름만 남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 ..





커피향은 은은하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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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지음), 송은주(옮김), 민음사 




결국은 울고 말았다. 소설 끄트머리에 가서, 오스카와 엄마가 아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비극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TV 방송 뉴스 채널로 가보라. 모든 뉴스들이 현대판 비극들로 도배되어 있다. 뉴스 앵커나 기자들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인양, 무미건조한 어조와 '이건 진짜야'라는 눈빛으로 또박또박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오스카는 아빠를 찾아나선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아빠를. 



첫 번째 메시지. 화요일 오전 8시 52분. 누구 있니? 여보세요? 아빠다. 있으면 받으렴. 방금 사무실에도 전화했는데 아무도 받지 않는구나. 잘 듣거라, 일이 좀 생겼어. 난 괜찮다. 꼼짝 말고 소방수가 올 때까지 기다리래. 아무 일 없을 거다. 상황을 좀 더 알게 되면 다시 전화하마. 그냥 아빠는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전화했어. 곧 다시 걸게. 


아빠로부터 네 개의 메시지가 더 와 있었다. 9시 12분, 9시 31분, 9시 46분, 10시 4분에. 나는 그것들을 듣고 또 들었다. 무엇을 해야할 지, 아니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어떤 기분이 들어야 할지 미처 알 겨를도 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10시 22분 27초였다. 

발신자 번호를 봤다. 아빠였다. 

- 35쪽 ~ 36쪽



소설은 어수선하고 수다스럽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아홉살 꼬마 오스카에겐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자, 그리움의 대상이다. 사진들이 나오고 문장들마저 조각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설 작법으로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빙빙 둘러가는 과정을 반영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빙빙 둘러, 오스카를 따라가며 9월 11일을 아주 천천히 떠올리며, 그 사건 한 복판에 있었던 어느 가족의 슬픈 이야기를 소설 결말부에 가서야 비로소 마주한다. 


소설에 대한 형식적 파괴, 또는 실험적인 변화가 작품 속 깊숙히 들어가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스토리와 형식은 하나의 형태를 지니며,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원하지 않던 비극과 그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가족의 노력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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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부두 Quai Quest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지음), 유효숙(옮김), 연극과 인간


서쪽 부두 - 10점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지음, 유효숙 옮김/연극과인간




 

이 희곡은 공연을 위해서도 씌여졌지만 동시에 읽히기 위해서도 씌여졌다.
- 163쪽



 

이 연극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감정적으로 연기하는 것이며, 이는 좋지 않은 선택이다. 이 연극의 어떤 장면도 사랑의 장면처럼 해석되어져서는 안 된다. 그 어떠한 장면에서도 사랑의 장면이라는 가정 하에 쓰여진 장면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장면들은 거래, 교환, 암거래를 나타내는 장면들이며, 이런 장면들로 공연되어야 한다. 거래를 할 때 부드러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169쪽


 
 
1989년 에이즈로, 40대 초반의 나이로 사망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es)의 희곡이다. 사무엘 베케트 이후 최대의 불어권 희곡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콜테스는, 대부분의 낭만적 천재 작가들처럼 살아있을 때보다 죽고 난 후 생전에 누려보지 못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할까. 하지만 작품은 어둡고 절망적이며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우린 벽으로 가로 막혔어요, 선생님. 더 이상 갈 수 없어요. 이제 뭘 해야 할 지 말씀해 보세요. 우리가 어느 구멍으로 떨어지기를 원하시는 말씀해 보시라구요.' - 모니카, 11쪽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었고 알 수 없는 무대를 상상했고 무겁게 단어들을 입에 올리며 어색하고 낯선 몸짓의 배우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과연 그런 무대 였을까.

이 희곡은 1985년도 작품으로 국내에는 2004년에 번역 출판되었다. 작품은 뉴욕의 어느 버려진 부두가를 배경으로 가난한 이민자 가족, 세실, 샤를르, 클레르 등의 인물들과 종교 단체의 자금을 관리하다 돈을 다 탕진하고 자살을 위해 온 콕과 그를 따라온 모니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연극을 목적으로 씌어진 이 작품은 동시에 읽히기 위한 작품이기도 하며, 막과 장의 구분이 없으며, 몇몇 배우들에겐 곤혹스러울 정도로 대사가 장황하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부두임으로 종종 배 소리,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가 들릴 것이고 멀리 뉴욕의 번잡스러운 불빛도 비칠 것이다. 그래서 무대는 극단적 대비와 황폐한 분위기를 자아낼 것이고 길게 이어지는 대사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지루한 절망감을 안겨줄 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은 그 곳에서 저지른 범죄의 냄새로 오욕과 침묵과 너희들이 숨기는 그 모든 것들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거야. 아버지도 없고, 엄마도 없고, 근본도 없고, 언어도 없고, 이름도, 종교도, 비자도 없는 너희들이 이 곳에 온 후 모두에게 불행이 닥쳤어. 너희들 때문에 우리도 불행해졌다구. 불행이 슬그머니 계단을 올라와 우리 문을 걷어차고 들어와서 빛과 태양이 필요할 때, 비참, 돈 한 푼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지.' - 세실,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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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문고판 책을 꺼내 읽는다. 한창 공부를 할 때다. 1990년대 후반, 이 책은 지방의 작은 서점에서 - 지금은 없어졌을 - 구했다. 짧지만, 내용은 탄탄하고 전문적이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에 대해 짧지만, 매우 정확한 언급이 담겨있다.

'오뒷세이아'는 같은 10년이란 긴 세월동안의 표류와 귀국을 41일 속에 압축한다. 사건은 극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진행된다. 호메로스의 말은 유창하면서 단순하고 기교적이면서도 그 기교를 느끼게 하지 않고, 자유로이, 미끄러히, 장대히 흘러간다. 장려한, 인간을 초월한 광휘 속에 절절한 애조를 띠며 말해진다. 어떠한 용사라 할지라도 인간의 아들로서 태어난 자의 힘의 한계와 세상의 덧없음을 알고 있다. 이것이 다만 강하기만 한 영웅을 만들지 않고 강함과 애처로움이 상접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결코 체념이나 미신의 세계가 아니다. 지극히 밝은 것이다. 이윽고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한 인간은 신들의 행운을 얻지 못할지라도 절망에는 빠지지 않는다. 아니, 반대로 그러하기에 노력을 쌓아 영원불멸의 이름을 얻으려 한다. 이것이 그리이스 문학, 아니 그리이스인 전체의 하나의 특징이다. 그들은 인간의 아들인 것의 한계를 뼛 속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중요한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 중에 인간만큼 덧없는 것은 없다. 그리이스 문학에서 되풀이 강조되는 이러한 생각과, 이것을 어떻게 해서든 밀쳐 버리려는 분투와 노력, 거기에 그리이스 인간성의 하나의 유래가 있다.
- 코우즈 하게시루 & 사이토 닌즈이 지음, '그리이스 로마의 고전문학', 이재호 옮김, 43쪽, 탐구당, 1982년



그리스의 고전 문학이 아직도 호소력이 있고 가슴 절절한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가질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질문-우리는 누구이고, 왜 살아가는가?-에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세의 작가들은 여기에서 배워, 인간이기에 자신의 영혼과 생의 고결함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적 비극 상황 속에서 살아내는 어떤 생명력 - 베르그송이 찬탄했던 엘랑 비탈과 같은 - 을 그려내게 된 것이다.

위대한 고전주의는 그리스 문학에서 그려졌던 바의, 그런 인간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조형적 대응물은 '슬픔에 잠긴 아테나(Mourning Athena)'가 될 것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등장했던 아테나. 이 여신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 도시의 운명에 대한 아테나의 숙고를 만나게 된다.




'슬픔에 잠긴 아테나'는 파르테논의 조각에 비하면 거의 소품에 지나지 않으나 완전한 의기소침 상태를 완벽하게 통어된 형식으로써 표현하고 있는 점이라든가, 일체의 무리하고 경련적이고 무절제한 느낌을 말끔히 극복하고 있다는 점, 그 자유롭고 경쾌하면서도 침착하고 의젓한 점 등에서 그리스 고전주의의 예술 이외에서는 이에 비견할 작품이 없을 정도이다. - 아놀드 하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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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민음사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처음부터 어떤 계획을 세워서 자연을 억지로라도 자기의 계획에 맞추려드는 고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이란 인간이 세운 그 어떤 계획보다도 위대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가 자연을 거역하고 자기 계획을 고집하게 된다면, 그건 버림받은 아내가 이혼장을 방패 삼아 부부 관계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228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된다. 적어도 다이스케에게 있어선 그랬다. 그는 자연의 이치대로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무 일도 기획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며 그냥 조용히 외부 세계와는 무관한 듯 그렇게.

 

 

다이스케는 책상 위의 책을 덮고 일어섰다. 약간 열려있는 툇마루의 유리문 사이로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와 화분에 심은 색비름의 빨간 꽃잎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큰 꽃 위에 햇살이 가득했다. 다이스케는 허리를 굽혀 꽃 속을 들여다 보았다. 이윽고 가늘고 긴 수술 끝에서 꽃가루를 따다가 암술 끝으로 가져가서 정성스레 발랐다.

- 58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아무 일도 못 하리라 여겨지진 않았다. 많은 책을 읽었고 부드러웠으며 신중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의 하루 일상은 단조로웠지만, 지식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런 종류였다. 그는 매일 차를 마셨고 책을 읽었으며 다양한 화초가 자라는 정원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달리, 자연을 따르기로 한 다이스케에게 있어 '자연'이란, 이 외부세계의 어떤 거대한 흐름 이전에 정처 없이 떠도는, 자기자신에게마저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신의 마음이었다. 사람의 마음, 나무의 마음, 구름의 마음, 식물의 마음이 모여 이 거대한 자연을 이루듯, 그 시작에는 다이스케의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솔직해진다는 것의 무모함이란, 자기 마음의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가져다 주는가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21세기 초반의 TV 드라마들 대부분은 이 마음의 자유가 가져오는 통속적 비극에 대한 것들뿐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이여,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말고 어른이, 이 세계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생각하고 움직여라)

 

요즈음 마음이 쓸쓸하니 자주 와주세요.”라는 미치요의 말에 다이스케는 휘청거리며 100미터 정도를 걸었다.’ 마음 가는 대로 친구의 여동생인 미치요와 친구인 히라오카와의 결혼을 주선하였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 마음 가는 대로 친구의 부인인 미치요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비극을 선물한다. 우리 비극의 원인은 바로 자연이다.)


 

왜 저를 버렸지요?”

라고 말하고는 다시 손수건을 얼굴에 갖다 대고 또 울었다.

- 286

 

 

미치요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면서 띄엄띄엄 한 마디씩 말하고 있었다. ‘너무하세요’, ‘잔혹해요라고 말하며, 지나간, 이미 버림받은 사랑을 되새기고 있었다. 친구의 아내가 된 미치요 앞에서 19세기 후반의 다이스케는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용납하지 못할 어떤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없어요?”

라고 물었다.

그런 건 없어요. 뭐든지 당신 뜻에 따르겠어요.”

떠돌이 생활 …….”

떠돌이 생활을 해도 좋아요. 죽으라고 말씀하시면 죽겠어요.”

다이스케는 또 한번 전율을 느꼈다.

- 316

 

 

이 흥미로운 소설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사랑에 대해선 별 내용이 없다. ‘그 후이라는 소설의 잔인한 제목처럼, 현대적 비극은 막이 내려간 다음 이루어지고 그 누구도 그 비극의 원인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는 데에 나쓰메 소세키는 의문을 갖는다.

 

다이스케는 19세기 후반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못한 나약한 일본 지식인을 떠오르게 하며, 미치요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순종적으로 살아가는 일본 여성을 보여준다. 결국 둘의 사랑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다이스케와 같은 지식인 류의 고백이란 늘 한 발 늦기 마련이고, 어떤 상황은 종료되고 현장은 깨끗이 치워진 이후다. 그리고 자신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질서에 순종하며 늘 자기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하다며, 이미 끝난 사랑의 옷자락 끄트머리를 붙잡곤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봐달라고 해대는 것이다.

 

 

잘 알았습니다.”

라고 다이스케는 간단히 대답했다.

너는 바보 천치다.”

라고 형이 크게 소리쳤다. 다이스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들지 않았다.

얼간이 녀석.”하고 형이 또 말했다.

평소에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입심이 센 놈이 정작 이런 때는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잠자코 있구나. 그리고 뒤에서는 부모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나쁜 짓이나 하고 말이야. 이제까지 무엇 때문에 교육을 받은 거냐?”

- 348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나고 그 후 아무도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사랑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아무렇게나 그 둘은 슬픈 풍경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고 지병이 있었던 미치요는 갑자기 무능력해진 다이스케의 손을 잡으며 죽었을 것이다. 자연의 질서란 언제나 잔인하게 공평한 것이다.


그 후 - 10점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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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기 2009.12.30 21:07 신고

    몇해 전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 싶으면서도 또 스산한 감흥을 가지고 덮었던 책인데
    어제 집에 들어갔더니 엄마가 이 책을 꺼내놓고 계시더군요. 이상하게 <그 후>와 거푸 마주치게 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란 인사를 하러 왔어요.
    새해에는 함 만나서 수다떨 기회라도 있길 바래요. :)

    • 소세키의 소설은 19세기말, 20세기초의 분위기스럽지 않게 스산하더군요. 아니면 우리는 스산하지 않았던 때 없었던 건지. ㅡ_ㅡ;;;
      수다~! 너무 좋아해요.. ㅎㅎ 딸기님두 건강하시고요. ^^ 새해에는 수다를 기필코.. : )



이름 없는 주드 1 - 10점
토마스 하디 지음, 정종화 옮김/민음사


이름 없는 주드 2 - 10점
토마스 하디 지음, 정종화 옮김/민음사




소년이여, 꿈 꾸지 마라.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해라.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자신이 자란 마을을, 그대의 부모와 가문을. 만일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더라도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라. 그리고 절대로 자신의 고통스런 가난을 저주하지 말며, 타인들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 것이며, 자주 견디기 힘들고 쓸쓸할 지라도 그 일상을 소중하게 여겨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드는 늘 다른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어떤 미래를 향해 서 있었다. 그는 꿈을 꾸고 있었다. 크라이스트민스터에서의 평온한 삶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의 일상을 꿈꾸었으며, 사촌인 수와의 사랑을 지키며, 사촌과의 결혼을 원했다.

그러나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아선 안 된다. 이 오랜 격언은 주드가 속했던 19세기도 합당했으며, 그 이전 과거의 어느 시대나 지금, 21세기 한국에서도 마땅한 격언이다.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한두 번 이상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곤 한다. 그 중 몇 명은 오르지 못할 나무로 올라가곤 한다. 그리고 시도했던 대부분의 이들은 소리 소문 없이 절망하고 포기하고 쓸쓸하게 죽어간다. 마치 주드처럼.

주드는 세속의 천박함과 용감스러운 무지로 가득 찬 아라벨라의 결혼 생활이 견디기 힘들 지라도 만족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이는 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필롯슨과의 결혼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용납하기 힘든 불합리를 견디는 것, 자신의 순결한 영혼과 안타까운 사랑을 숨기고 거짓된 세속의 때를 묻히며 거짓된 사랑으로 살아가며 견디는 것.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자 노하우이며, 어느 시대에야 요구되는 세속의 법칙이다. 헛된 희망보다 빠른 포기가 나은 법이다. 주드의 비극은 꿈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빨리 파악하여, 적당한 시도와 적절한 포기를 섞어가며 살아야만 했다.

혹시 꿈꾸고 있진 않은가. 누군가와의 사랑을, 어떤 희망이나 바람을. 우리가 바라는 어떤 꿈들이 가을날 석양에 걸린 나뭇잎이 매섭게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듯,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속적 환경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불합리하고 거짓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침묵을 지키며 견뎌야만 할 것이다.

주드의 비극이 주드의 잘못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화석화된 전통과 규범을 지키며,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는 천박한 욕망이나 타인의 목소리에 더 기울이는 그 시대, 그 시대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여긴다고 해서, 주드의 비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처절한 비극으로 끝이 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현대의 주드와 수가 있을 것이니, 주드와 수에게 공감한다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세상 사람들의 무지와 허위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세속의 무지와 허위를 벗어던지고 도시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을 오늘날의 주드와 수의 친구가 되는 것임을.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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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스꾸알 두아르떼의 가정

카밀로 호세 셀라(Camilo Jose Cela) 지음, 
김충식 옮김, 예지각, 1989년 초판.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만 유독 되지 않는다는 기분이, 그런 경험이 계속 쌓여져갈 때,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세상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쌓여져갈 때, 그것을 ‘운명’ 탓으로, ‘팔자’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축복받을 일인가. 이제 ‘운명’대로, ‘팔자’대로 살면 그 뿐이다. 헛된 희망을 꾸지 말고 그저 원래 나는 불행하게 태어났으며 되는 일이란 없으니, 그저 그렇게 살면 그 뿐이다. 그리고 저 멀리서 ‘운명’와 ‘팔자’를 다스리고 있다는 초월적 실체에 대한 경배를 시작하면 된다. 점쟁이 집에 자주 가고 부적 붙이고 굿도 하고 안 다니던 절에도 나가고 교회도 나가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 그런 주어진 대로 살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행이 일어난다면, 유독 나에게만 안 좋은 일이 연거푸 생긴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카밀로 호세 셀라의 ‘빠스꾸알’은 자신의 어머니를 난도질해버린다.

선생님, 저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나쁜 사람이 되었을 뿐입니다.
- 8쪽


소설의 시작은 밋밋하고 도대체 왜 이 사내는 이런 말을 소설의 처음부터 하고 있는 걸까 하고 의아해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이 짧은 시작은 그 무수한 현대 소설들 중 가장 멋진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짧은 문장 속에서 빠스꾸알이라는 이 사내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분노, 사랑, 증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요즘의 꼬마 아이들마저도 세상은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이며 되먹지 못한 곳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제 ‘세상탓’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제 세상에 ‘변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세상의 순리대로 살아갈 뿐이다. 나의 태생, 배경, 학력 등으로 내 인생은 정해져 버렸으며 그냥 여기에 만족하고 살아가면 그 뿐이다.

하지만 빠스꾸알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용감하게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는 전적으로 다른 인간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던 행복은 아주 짧은 순간 뿐이었고 연거푸 불행이 이어진다. 더구나 그 불행에 대한 해결책이 그에겐 없었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할 뿐. 태어날 아이가 죽어 나오고 겨우 태어난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리고 사랑하는 아내는 다른 남자의, 자신의 여동생과 살고 있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게 되고. 빠스꾸알에게는 평범한 삶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천연덕스럽게 잉태하곤 그 아이를 죽게 내버려둔 그의 어머니나 술만 마시면 몽둥이질을 해대는 그의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빠스꾸알. 하지만 그는 끝내 그의 어머니를 살해한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죽은 지 오래.

세상에 진리가 있느니, 신의 밝은 빛이 지상에 당도한다느니, 선한 신이 있다느니 하는, 너무 듣기 좋아,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다 날 지경인 그런 말들은, 불행하게도 빠스꾸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정말 다행스런 일은 그런 말을 지껄이는 이들에게 빠스꾸알에게서 일어났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누구나 똑같은 가죽을 뒤집어쓰고 어머니 뱃속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운명은 인간들이 마치 밀랍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죽음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여러 갈래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즐거워합니다. 고운 꽃과 풀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꽃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엉겅퀴와 선인장이 무성한 험난한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꽃길을 걷는 이는 평화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기쁨을 맛보면서 천진난만한 얼굴로 행복에 겨워 미소 짓습니다.
그러나 엉겅퀴와 가시밭길을 걷는 자들은 광야의 폭염으로 괴로워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험상궂은 우거지상을 합니다. 몸에 화장품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는 것과 지울 수 없는 문신을 넣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 8쪽에서 9쪽.


26살의 카밀로 호세 셀라가 1942년에 발표한 이 데뷔소설은 20세기 이후 모든 사람들이 부딪히게 되는 어떤 실존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빠스꾸알이라는 인물을 통해 역설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운명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이냐며.


'작가에 대하여'

 카밀로 호세 셀라(1916~2002) 

2권의 소설이 번역되었으나, 이젠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비극성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며, 실존적 삶에 물음표를 던지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소설가들 중의 한 명이다.  

'빠스쿠알 두아르떼의 가족', 그리고 '벌집'이 번역되어있으니, 헌책방 어딘가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1989년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스페인 마드리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을 정도다.


민음사에서 새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 10점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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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지음), 김재남(옮김), 하서



시청률의 노예가 되고 하나의 광고라도 더 받아야 하는, 처량한 TV 드라마의 시대에, 몇 세기가 지난 영국 작가의 희곡을 읽는 건, 참으로 터무니없어 보인다. 우리의 일상은 셰익스피어를 읽을 만큼, 고상하지도 않고 더구나 여유롭거나 한가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한다면, 그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끝까지 살아남아 이 비극의 전말을 후세에 남기게 될 호레이쇼에 대해 햄릿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햄릿
여보게 호레이쇼, 나는 스스로 영혼 속에 분별력이 생겨서 인간의 선과 악을 가릴 줄 알게 된 때부터 자네를 영혼의 벗으로 꼭 정해놓고 있네.
자네만은 인생의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뿐더러, 운명의 신의 상과 벌을 똑같이 감사한 마음으로 맞아들이는 사람이었네.
감정과 이성이 잘 조화되어 운명의 손가락이 노는 대로 소리를 내는 퉁소가 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지.
정열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다니려네.
자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네.
- 93쪽


아마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 햄릿의 바람이지 않았을까. 극은 긴박하게 돌아간다. 몇 시간 안에 무대 위에서 모든 것들을 보여주어야 하는 희곡은 스토리를 질질 끌지 않으며, 사건과 인물을 압축적으로 형상화하면서 갈등의 끄트머리에서 이 이야기의 전말을 보여주며 끝난다.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 깊은 밑바닥을 드러내며 몰락해가며 희곡은 끝나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토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도리어 이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 속에서 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드러내며 사건을 종결시키는가, 정해진 시간 속에 인물들의 갈등을 어떻게 첨예화시키며, 주요 인물의 도덕성과 고결함을 드러내는가, 그것을 위해 어떻게 언어를 조탁하는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아야 하는 것은, 햄릿 일가의 비극적인 상황도, 햄릿과 오필리어의 사랑도 아니다. 쓰레기같은 스토리, 구차한 감정들로 이루어지는 갈등, 인생의 고결함이라곤 전혀 없는 TV 드라마의 시대에(* 드라마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조차 부끄럽기 그지 없는), 원래 드라마란 이런 것임을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라파엘 전파의 한 사람인 밀레이는 죽은 오필리어를 그린다. 낭만주의 말기, 슬픈 사랑의 주인공인 오필리어는 많은 예술가들을 사로잡았음에 분명해 보인다.


왕비
시냇물가에 하얀 잎사귀를 거울 같은 수면에 비치며 비스듬히 서 있는 버드나무가 있는데, 그애는 그 가지에다 미나리아재비니, 쐐기풀이니, 실국화니, 자란 등을 잘라서 괴상한 화한을 만들지 않았게니.
이 자란을 무식한 목동들은 상스러운 이름으로 부르지만, 얌전한 아가씨들은 사인지라고들 하더구나.
아무튼 그 화환을 늘어진 버드나무가지에 걸려고 올라가던 참에, 심술궂은 은빛 가지가 부러져 화환과 함께 사람은 시냇물 속에 떨어지고 말았지. 그러자 옷자락이 활짝 펼쳐지고, 그애는 마치 인어처럼 물에 둥실둥실 떠서 옛날의 찬송가를 토막토막 부르는데, 절박한 불행도 아랑곳없이 마치 물에서 자라 물에서 사는 생물 같았지.
그러나 그게 오래 갈 리는 없고, 옷에 물이 배어 무거워지자 그 가엾은 것은 물 속으로 끌려들어가 아름다운 노랫소리도 끊어지고 말았지.
- 159쪽 ~ 160쪽




John Everett Millais,  Op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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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필리어 그림이 참 이쁘네요. 햄릿을 읽은지 얼마 안되서 읽으니 더욱 그런것 같아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들은 정말 이쁘죠. ^^ 문제는 너무 이쁘기만 하다는 데에 있어서, 미술사적인 평가는 그리 높지 못해요. 크~. 이번에 햄릿은 두 번째 읽는 건데, 다시 읽어도 좋네요. ^^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울'을 창조적인 사람들의 특징으로 보았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꼴리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맞닿아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우울'은 병든 자의 몫이다. 사회적 질병이 되어버린 '우울증'은 약물 치료와 정기적인 정신과 방문을 요구한다.

요 며칠 우울하다. 내부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외부적인 영향도 크다. 도로 한 복판에서 길을 잃어버린 어린 강아지와 그 강아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강아지 바로 앞에서 멈추는 마을버스며, 소형 트럭이며, 자동차들이 낸 키익키익 소리가 내 귀에서 점점 멀어지는 풍경이며, 6호선 공덕역에서 역 안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로 몸을 던지는 젊은 사내며, 다리 하나가 없는 슈나우저가 인사동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며, ... 나를 어둡게 했다.

하나의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 싸움의 원칙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 싸움에서 이겨, 그 싸움의 규칙을 정해야만 되는 것이다.

플라톤이 이데아 세계와 현실 세계로 나누는 것은 그가 현실에서 희망과 비전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화는 이 세계관 속에서 깊어지고 성숙해지고, 결국 우울해진다. 위대한 고전 희극 작품이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 자신을 추스리고 신념과 각오를 다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고전주의의 위대한 비극 작품이 가지는 힘이고 매혹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힘을 가지는 것은 희곡의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신탁을 끝까지 거부하며 싸웠던 오이디푸스의 신념과 각오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운명(moira)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끝까지 저항하고 지켜내기 때문이다. 

오늘, 종일 바쁘다. 적당하게 우울하고 쿨한 음악은 힘이 되기도 한다.


George Benson, Golden Slumbers/You Never Give Me Your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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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의 충동>>, 정진홍(지음), 21세기북스



성공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위기와 고난을 극복하고 끝내 성공하고 만 사람들의, 딱 그 때의 스토리만 모아서 묶은 책이다. 에센스만 모아 책으로 엮어내었으니,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반드시 읽어야 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반드시, 결국에는 성공하고 마리라고 다짐, 다짐, 또 다짐해야만 된다.

하지만 비극적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 편의 비극이다. 도대체 세상이 너무, 무지막지하게, 비합리적으로 거대한 탓에 태어날 때부터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에 이 책은 한 편의 허무한 우스운 자작극이자, 코메디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무수한 성공가이드 책들 리스트로 이 책도 끝내 목록화되고 말 것이다.

나는 그 전에 이 책에 나온 몇 개의 문장을 노트해 책상 앞에다 붙여놓을 것이다. 그리고 다짐할 것이다. 성공하고 말 거라고. 어차피 내 인생은 한 편의 뜬구름 잡는 코메디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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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요즘 이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이 저에게 주는 가슴 설레임이 좋습니다. 이 책을 보고 세상과 나의 현실을 보면 비극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서 세상이 재미있다고 생각됩니다. 저에게는 아직 완벽을 추구할 힘이 남아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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