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17

코로나가 만들어내는 풍경

며칠 재택 근무를 했다. 이제 원격 근무가 가능해진 상태라 업무를 수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Zoom이나 구글 Meet으로 회의를 할 수 있으며, 크롬 원격데스크탑이나 대부분의 회사에서 사용한 그룹웨어에는 원격 접속이 가능한 기능들이 탑재되어 있다. 사무실 PC에 원격으로 붙어서 작업하는데, 조금 속도가 느릴 뿐, 불편함은 없었다. 아이는 Zoom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고 아내는 코로나 확진으로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와 아이는 계속 음성이 나오다가 결국 아이까지 양성이 나왔다. 이제 내가 걸리는 건 시간 문제다. 그런데 나는 아직 걸리지 않았다. 오늘 내일 걸리겠지 한 게 벌써 1주일이 다 되어 간다. 결국 걸리지 않는 건가. 재택은 쉽지 않다. 의외로 시간이 없고 일을 많이 하게 된다. 사..

일요일 오후 사무실

주말 난지캠핑장에 갔다. 동네 지인들과 함께 간 곳은 잠을 자러 온 곳이라기 보다는 술을 마시러 온 공간 비슷했다. 사진 속으로 보이는 공간들은 모두 잠을 잘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이 흙먼지로 쌓여 있었다. 몇 번을 닦아냈지만, 계속 흙이 묻어나와 불편했고 결국 아침까지 술을 마시다가 집에 올 수 밖에 없었다. 밤바람이 다소 시원해진 탓에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긴 했지만, 토요일은 종일 잠만 자는 불상사가.... 토요일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보니, 어둠이 내려 앉은 도시의 풍경이 들어왔다. 매번 보는 풍경이라 익숙하지만, 이 풍경도 보지 못하면 꽤 보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하긴 매일 바다를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직도 나는 바다 앞에 가서 살고 싶은 바람을 버리지 못했다..

텅 비어가는 중

5월 7일. 텅 빈 대체 공휴일. 아무도 없는 사무실. 인적이 드문 골목. 몇 시간의 집중과 약간의, 불편한 스트레스. 태양은 빠르게 서쪽을 향하고 바람은 머물지 않고 그대는 소식이 없었다. 봄날은 하염없이 흐르고 내 마음은 길을 잃고 내 발길은 정처없이 집과 사무실을 오간다. 운 좋게 예상보다 많은 일을 했고 그만큼 지쳤고 어느 정도 늙었다. 몇 만 개, 혹은 몇 백만개의 세포가 소리없이 죽었고 텔로미어도 짧아졌을 것이다. 책 몇 권을 계속 들고 다녔지만, 5월 내내 읽지 못했다. 밀린 일도 많고 읽을 책도 많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대체공휴일, 조금의 일을 했고 나를 위해 와인 한 병을 샀다. 그리고 마셨다. 최근 콜드플레이를 우연히 듣고 난 다음, 아, 내가..

소세키의 '풀베개'에 누워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 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가 어렵다면, 살기 어려운 곳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서 짧은..

패스트푸드 저녁

야근을 할 때면, 혼자 나가 햄버거를 먹고 프로젝트 사무실로 돌아온다. 재미없는 일상이다. 근사하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많고 긴장을 풀 수 없다. 잘못 끼워진 나사 하나가 전체 프로젝트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퇴근길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요즘은 ... 조용한 단골 술집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하지만 조용하면 장사가 되지 않는 것이니, 다소 시끄러워도 혼자 가서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가끔 바Bar같은 곳을 들리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샐러리맨이 가서 맥주 한 두 병 마시기엔 눈치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난 화분과 혼다 효과

지난 주부터 갑작스럽게(혹은 예상된) 사정이 안 좋아졌다. 이번 주도 계속일 듯 싶다. 오늘 본 어느 아티클 제목은 Free Your Strategy from Annual Planning이었다.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정해진 계획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그 때 그 때 계획을 세워야 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혼다의 미국 시장 진출기다. 혼다가 미국 시장을 갔을 때, 미국 시장은 대형 오토바이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대형 오토바이를 팔 생각만 했다. 그러나 누가 혼다의 오토바이를 사겠는가! 투자가 계속 이루어졌지만, 매출은 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대박이 난 곳은 '스쿠터'였다. 미국에 나간 직원들이 집과 사무실을 오가기 위해 '스쿠터'를 몰고 다녔는데, 난생 처음 보는 소형 오토바이에..

금요일의 의미

인터넷서점의 출판사 블로그에서 진행하는 서평 이벤트 2개에 참여했다. 그리고 2개 다 당첨되었고 1주일 동안 2권을 책을 읽고 서평을 올려야만 했다. 허걱. 1주가 지난 건지, 2주가 지난 건지 가물가물하다. 한 권의 책을 빠르게 읽고 서평을 올렸다. 서평의 첫 문장이 이렇다. '이 책, 천천히 읽어야 한다' ㅡ_ㅡ;; 나머지 책은 이제 서문을 읽었다. ㅜ_ㅜ (아, **출판사님 미안) 읽고 있던 손재권 기자의 책, 알렝 투렌과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책은 멈춰진 상태다. 제안서 하나를 써서 수주했고 여러 번의 미팅 끝에 또 하나 계약을 할 예정이다. 조직 개편이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도 뽑아야 한다. 아는 분의 소개로 '머리에 쥐 나는' 원고 작업을 하나 하고 있고 그리고 오늘은 금요일이다.그렇다. 금요일이..

사무실에서 난 키우기

제대로 잘 키우진 못해도 죽이지는 않는다.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방에서 반 년 이상을 버틴 난초들에게 물을 주었다, 어제 밤에. 업무 시간 중에 화분을 들고 화장실까지 옮겨 물을 주는 건 민폐인지라, 밤 늦은 시간까지 일하게 될 때 물을 준다. 입주해 있는 다른 사무실에도 난 화분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물을 주는 것일까? 회사 직원이 많을 땐 서른 명 가까이 들어와 있기도 하는데, 그 누구 한 명 화분에 관심 기울이는 이가 없다. 정치도, 회사도, 우리 마음도 매말라가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