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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사진 +35






롱다리 그림자 김씨는 끝나가는 하얀 겨울 속에서 길을 잃었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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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 Body Speaking Words

2015. 10. 17 ~ 12. 31

한미사진미술관 



작년 겨울, 온 몸이 지쳐있었을 때, 한미사진미술관엘 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 인근에 간 틈을 타, 잠시 미술관에 갔다 왔다. 미술관 안은 조용했다. 미술관의 조용함은,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탓에 나를 거친 현실로부터 떨어지게 한다. 하지만 이 낯설고 편안한 조용함은 반대로, 사람들이 좀 더 미술에 가까워지면, 미술시장 활성화나 예술가의 생계에 도움이 될 텐데라는 생각과 만나면, 조용함이 깨진 미술관이 어쩌면 우리 미래를 위해선 더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이 전시는 한미사진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몸을 주제로 하여 소장품들을 모아 전시하였고, 작품들의 수준 또한 좋았다. 다만, 몸의 말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메시지보다는 사진가들이 몸을 바라볼 때, 어떻게 바라보고 변모하였는가에, 지역이나 시대별로 그 변천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전시 스토리나 구성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 개별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 전시 구성은 아쉬운 점이 많았던 전시였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내설악), Gelatin silver print, 1977 ⓒ강운구 


하지만 몇몇 사진들이 주는 울림은 대단한 것이었고, 몇 명의 사진작가들을 새로 알게 된 것은 나에겐 꽤 소중했다. 모리스 타바르, 안타나 수트쿠스, ....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아래 사진 작품들은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은 아니다. 구글 검색을 통해 찾은 몇 개의 이미지들이다. 


모리스 타바르 Maurice Tabard, Untitled, 1929 


안타나 수트쿠스 Antanas Sutkus 


안타나 수트쿠스 Antanas Sutkus 



* 한미사진미술관 : http://www.photomuseum.or.kr/ 

- 송파구 한미약품 빌딩 꼭대기 층에 있다. 입장료를 받으며, 미술관 창 밖 풍경이 무척 좋다. 근처를 왕래하는 이들에게 한 번 정도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곳이 될 것이다. 8호선 몽촌토성역에서 나오면 바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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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설 읽기란, 묘한 느낌을 준다. 일상을 벗어난 공간 속에서, 현실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떨어져있고, 허구와 사실은 서로 혼재되어 혼란스럽게 한다. 시간마저 겹쳐 흐르며 외부는 모호해진다. 어쩌면 현대 소설이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치 <<아우스터리츠>>처럼.  


제발트는 소설 중간중간 사진들이 인용하는데,  마치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다'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허구와 사실 사이를 오가며, 소설은 대화의 인용으로 이루어진다. 문장의 호흡은 길고 묘사는 서정적이면서 치밀하고, 등장인물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슬프기만 하다. 과거는 추억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던 내 마음의 상처를, 가족의 상처를, 현대의 비극을 다시 꺼내어 보듬고 어루만진다. 대화는 자주 끊어지지만, 기억은 이어지고 소설은 챕터도 없이 그냥 하나다. 시간은 끊김 없고 끊어져 있던 기억들도 그것 안에서 하나로 이어져있듯, 소설은 허구와 사실을 이어 하나로 만든다.


아직도 2차 대전의 상처를 드러내며, 정면으로 응시하며 나아가는 <<아우스터리츠>>를 보며, 요즘 한국 문학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미국의 이창래도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 작가들만 무관심한 듯 싶기도 하고...


<<아우스터리츠>>의 명성은 이 작품을 향하고 있는 문제 의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 작법에서부터 전혀 다른 글쓰기를 보여주며, 현대 소설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 스스로 '다큐멘터리 픽션'(1)이라고 이야기하듯, 이 소설은 사건 중심이라기 보다는 사실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몇 개의 중요한 사실들과 이를 연결하여 소설의 중심 뼈대(내러티브)를 만들고 그 뼈대는 다시 사진들, (건축)공간에 대한 서술, 인물들에 대한 탐구와 인터뷰 등으로 형체를 이룬다. 


그런데 이 작법은 소설 감상에 그 어떤 영향을 주지 않으며, 도리어 전쟁에의 상처, 가족의 비극, 그리고 쓸쓸한 회상 속으로 빨려들게 하며,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소설적 완성도를 지닌다.

 


Bigsby(*) suggests that it was out of frustration with the strictures of academic publication that Sebald turned to creative writing (a vague and ungainly term that, by default, winds up being the most accurate generic description of his work). "He'd originally taught German literature," says Bigsby, "and had published the kind of books that academics do. But he got increasingly frustrated, and began to write in what he called an 'elliptical' way, breaching the supposed boundaries between fast and fiction - not what you're supposed to do as an academic." Sebald himself sometimes described his work as "documentary fiction," which goes some way toward capturing its integration of apparently irreconcilable elements. 


제발트는 학술 서적들의 심한 비난들에 대한 불만으로 문학창작(자연스레, 그의 작품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포괄적인 설명이 될 수 있는, 다소 모호하고 어색한 단어인)의 길로 들었다고 빅스비는 말한다. "그는 원래 독일 문학을 가르쳤어요"라고 빅스비는 말하며, "그는 학교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하듯 몇 종의 책들을 출판했죠. 그러나 그의 불만은 계속 늘어났으며, 그가 말하는 '생략된(elliptical) 방식'으로이미 가정되어 있던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발트에게 대학 연구자처럼 하라고 제시되어져 있던 기존 방식이 아니라." 제발트는 그 스스로 그의 작품을 종종 명백하게 양립할 수 없는 요소들의 결합을 포착하기 위한 어떤 방식들을 향해 가는,  "다큐멘터리 픽션"이라고 표현했다. 


- Why You Should Read W. G. Sebald BY MARK O’CONNELL 

THE NEW YORKER, DECEMBER 14, 2011

http://www.newyorker.com/books/page-turner/why-you-should-read-w-g-sebald  


Christopher Bigsby(1941~): 소설가, 비평가, 제발트가 있었던 University of East Anglia의 Colleague. 



'Elliptical'라는 단어에 대한 번역어를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예전에도 한 번 언급했듯이 현대 소설, 아니 현대 예술가들은 스스로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작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해롤드 블룸은 이를 '시적 영향에의 불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우리 시대는 새로운 방식, 일종의 혁신을 추구해야만 하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W.G.제발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여기에 성공하고 있다.  


-- 



(1) 제발트가 스스로 '다큐멘터리 픽션'이라고 이야기했으나,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2015년 실제로 다큐멘터리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벨라루스의 논픽션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제발트의 문학과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은 확연히 다르지만, 제발트를 읽으면서 알렉시예비치를 떠올렸다. 번역된 제발트의 책들을 몇 권 더 챙겨 읽고 자세한 리뷰를 적어볼 생각이다. 그만큼 중요한 작가이기도 하다.알렉시예비치도 읽을 예정이니, 서로 비교해볼까 한다. 



W.G.제발트(Winfried Georg Sebald), 1944 -2001 






* 현대 예술가라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종종 어떤 이들은 자신의 예술론을 책으로 내기도 한다. 이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칸딘스키가 그랬고 미셸 빅토르, 로브-그리예, 오에 겐자부로, 심지어 이우환도 자신만의 예술론을 모아 책을 냈다. 아래 책은 미셸 뷔토르의 소설론이다. 소설 쓰기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2014/02/10 - [책들의 우주/이론] -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미셸 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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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어스로부터 온 엽서들(Postcards from Google Earth) 

- 클레멘트 발라(Clement Valla) 

http://www.postcards-from-google-earth.com/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구글 어스에 찍힌 사진들의 모음이다. 그런데 모여진 사진들이 이상하고 낯설다. 그냥 프로그램 결함이나 에러로 여길 법한 이 사진들에 대한 클레멘트 발라의 생각은 다르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구글 어스 이미지들은 색인화된 사진들-어떤 장소를 찾고 그 곳을 미리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자동화된 데이터 모음으로, 끊김없이 아주 매끄러운 환상을 만들고 업데이트하면서 재현(representation)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진들은 프로그램 알고리즘의 에러나 결함이 아니라, 시스템 안의 변칙적이며 비표준적인 것이며, 그래서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국외자(outlier)라고 할까. 


결국 우리는 이 사진들을 통해 재현된 어떤 장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진들(these uncanny images)이 나오게 된 알고리즘, 컴퓨터나 서비스와 관련된 저장 시스템, 위성 카메라나 지도 등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작가는 이를 두고  '재현의 새로운 모델'(a new model of representation)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구글 어스를 찾게 되는 것은 지구(Earth) 위의 어떤 장소 때문인데, 이 기묘한 사진들은 우리가 목적으로 했던 그 장소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게 한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지만, 표상 그 자체가 아니라 표상을 둘러싼 환경을 고민하게 한다고 할까. 클레멘트 발라의, 이런 생각이 너무 흥미롭기만 하다. 그리고 그는 이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2014년 스위스에서 설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Postcards from Google Earth Installation

inkjet on vinyl, mdf

2014, Festival des Images, Vevey, Switzerland

(출처: http://clementv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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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그리고 '정물화: 살아있는 것의 소고' - 김주연 사진전

2016.4.7 - 5.3, 트렁크갤러리, 서울 





트렁크갤러리도 참 오랜만이었다. 설치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사진 작품으로 만났다. 2008년의 쿤스트독이었나, 아니면 다른 전시에서였나, 김주연의 작품을 만난 적이 있다. 선명한 작품 스타일로 한 번 보면 기억하게 된다. 그 동안 다양한 공간/물건에 식물을 키웠는데, 이번엔 옷이다. 



김주연, 존재의 가벼움I -2, 사진, 피그먼트 프린트, 144×108cm, 2014



시간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다. 김주연은 그 위로 생명의 시작과 끝은 넣으며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공간을 탈세속화시킨다. 세속에서 일정 기능을 수행하는 어떤 것에 씨앗을 심음으로서, 그것이 가지고 있던 세속의 기능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마치 버려진 물건처럼, 버려졌다가 기적처럼 식물에 의해 전혀 다른 기능과 목적으로 되살아 나는 듯하다. 


그런데 이건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여기에선 고객을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자연 속에 버려지는 모든 것들 위로는 무조건 어떤 것이 자라기 때문이다. 그게 식물이든 곰팡이든.  결국 작품들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어떤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깊은 산 속에서 마주할 때와 갤러리에서 마주하는 것이 다를 뿐. 

  


김주연, 정물화살아있는 것에 대한 소고I, 사진, 90×60cm



갤러리에서 인류 문명을 부정하는 작품을 만나, 우리와 무관한(혹은 거부하는) 자연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현대 문명에 대한 깊은 의문과 우려가 될 수 있겠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들 대부분, 그것을 위치한 콘텍스트를 상실하는 순간 전혀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김주연의 작품들은 자라나는 식물 속에서 우리를 다시 묻는 일종의 질문이며 반성이 된다.   




김주연, Metamorphosis, 아시바구조물, 신문지 약 18000부(3톤), 씨앗식물, 가변설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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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Edouard Leve 지음, 정영문 옮김, 은행나무 




소설일까? 그냥 일기일까? 자서전일까? 에세이일까? 예술 형식에 대한 구분이 호소력을 가지지 못하는 시대에, 장르를 적는 건 무의미하다. 책 표지에 적힌 '장편소설'이라는 단어가 부적절해보인다. 


이 책의 서술, 그것이 진실인지, 허위인지 에두아르 르베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에두아르 르베는 이 짤막한 글 속에서 자신이 여든 다섯 살에 죽을 것임을 예감하지만, 마흔 둘의 나이로 자살하니, 이 책 자체로 일종의 부조리일지도 모른다. 실은 내 일상이, 내 인생이, 이 세상이, 이 우주가 다 부조리하고 무의미하지만,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그걸 부정하고 있지. 


이미 죽은 자의 자화상.  


서로 연관성 없는 문장들은 병렬적으로 나열되며 대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자화상의 하늘이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그 어떤 의미도 구할 수 없다. 개별 문장들은 일종의 취미판단일 뿐, 가치판단은 아니다. 단지 자신의 선호를 나타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개별적인 산문이 되고 유명론(Nominalism)적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을 지도. 


짧지만, 읽기 어렵다. 어떤 문장은 흥미롭지만, 어떤 문장은 재미없다. 취향이 특이하지 않고 세계 비판적이지도 않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일종의 유서이거나 기록일지도 모른다. 


형식적으로 무척 흥미롭지만, 문학적으로 대단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적지만, 자신없다. 실은 이런 식의 작법으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일종의 시리즈물이 나오면 어떨까. 예술가들이 돌아가면서 르베 식의 자화상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이면, 정말 가치있는 무의미의 축제가 될 지도. 



*    * 


에두아르 르베는 사진작가다. 그의 사진 몇 장을 찾아 올려본다. 소설 <<자화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진 모르겠다. 


 

Reconstitutions by Edouard Leve 





몇 장의 작품들을 찾았으나, 많진 않다. 포르노그라피 연작들이 눈에 띈다. 



Sans titre (de la serie Rugby)

edouard leve




에두아르 르베. 어느 프랑스 저널에 실린 르베의 사진 전시 기사에 실린 사진이다. 기자는 왜 이 사진을 실었을까. 소설과 달리 꽤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르베. 나도 강인해지고 싶다. 인상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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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1928 ~ 1984) 




현대 도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가 있다면, 그건 사진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절한 작가가 있다면 바로 게리 위노그랜드가 될 터. 





예술에서의 모더니즘Modernism은 도시와 함께 시작한다. 보들레르는 근대 도시 파리를 걸어다니며 모더니티를 이야기하고 익명성에 주목했다. 그 도시의 산책자는 파리를 지나 뉴욕에 와 자리잡는다. 





거대 도시에서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전화를 거는 사소한 일상도 드라마가 되고 어떤 사건의 시작이거나 종결, 또는 클라이맥스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지며 의미들 속에서 한 없이 가벼워진다. 거리에 나서면 발가벗겨지는 기분과 함께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희열에 들뜬다.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그건 매우 드문 일이다. 정해진 길로만 다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도시에서는 모든 것들이 모험이 되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도시적 삶이 익숙한 당신은 천성적으로 모험가이면서 탐험가다. 

 



이제 안전한 사랑이란 없다. 도시에서는 사랑마저도 모험이며 탐험이 되고, 사랑을 찾기 위해 도시에서의 밤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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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영웅', 1998.



서경식 교수의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읽고 있다. 여기에 실린 정연두와의 인터뷰는, 그동안 무심코 보아온 그의 작품들에 대해 다시 생각케 했다. 정연두의 스쳐가는 이미지들 사이로, 그의 작가적 개입과 실천을 보지 못한 셈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분당의 풍경이 완전히 변해 있었어요. 같은 규격의 아파트가 장대하게 늘어서서 마치 분당이라는 지명이 사라지고 아파트 동호수만 보이는 느낌이었죠. 어느 날 거기서 교통사고를 목격했어요. 작은 오토바이가 충돌해서 운전하던 아이가 다쳤습니다. 소년은 아픔을 참으며 달려온 사람들에게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고 대답했어요. 짜장면을 배달하러 가는 참이었나 봐요. 그 후에 그 아이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고 회복한 다음에 이 작품을 찍었습니다." - 정연두 

(서경식, <<나의 조선미술 순례>>, 반비, 115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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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Smoking

Photographer Juergen Teller



유르겐 텔러의 사진. 묘한 이 느낌은 ... 뭐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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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원제 Le Photographique

로잘린드 크라우스 Rosalind Krauss(지음), 위베르 다미슈 Hubert Damisch(불어 옮김), 최봉림(불어를 한글로 옮김), 궁리 (대림이미지총서05) 





Jackson Pollock (1912-1956)

Gelatin silver print, 1950

National Portrait Gallery

Smithsonian Institution

Gift of the Estate of Hans Namuth

Image copyright Estate of Hans Namuth



그러나 분명 나무스는 사진가로서 그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가적 역량으로 촬영 각도, 프레이밍, 흑백 콘트라스트, 그리고 문제가 되는 사진 대상의 모든 구성 요소를 고려했다. (...) 

나무스의 사진 속에서 폴록은 언제나 커다란 화폭 사이에 끼여 있는데, 어떤 화폭은 벽에 세워져 있고, 어떤 화폭은 바닥에 놓여져 있다. 그 연속 상태 속에서 검은 선과 하얀 선은 뒤얽혀 공격적인 모티브를 형성하며, 또한 아틀리에의 바닥에 보이는 얼룩 반점들 속에서 반복된다. 그리하여 사진은 위아래가 하나로 붙은 공간을 재창조한다. 여기에서 사람의 형상이 제대로 존재할 수 없다. 인체가 중력과 단단한 바닥과 맺는 관계는 아무래도 애매 모호할 뿐이다. 작업실 공간은 더 능동적이고 더 현란한 또 다른 공간에 의해 포섭되어 진다. 물감으로 뒤덮인 평면들의 연쇄 결합은 콜라주의 결합 양상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애초의 작업실 벽과 바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보여주는 특수한 평면적 시각 효과에서 기인한다. 

- '텍스트로서의 사진 - 나무스와 폴록의 경우' 중에서, 146쪽 



Jackson Pollock painting in his studio on Long Island, New York, 1950.

Credit: Hans Namuth



한스 나무스의 사진은 잭슨 폴록으로 가는 창과도 같다. 크라우스는 이 점을 제대로 지적한다. 우리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폴록을 알지만, 그의 예술 세계를 탁월한 시각으로 카메라로 잡아 해석해낸 한스 나무스에 대해선 소홀했다. 


이 책을 기획하고 여기저기 실린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글들을 모아 불어로 번역한 위베르 다미슈는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사진에 대한 글들의 가치를 발터 벤야민, 롤랑 바르트에 비해 손색없다며 격찬한다. 이 격찬에 대해서 내가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점만은 분명하다. 잭슨 폴록 대신 한스 나무스에 대해서 설명하듯, 이 책은 온전히 사진에 대해서만, 사진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씌여진 책이다. 회화적 전통 속에서가 아니라 오직 사진만을 위한 이론적 지평을 만들고 해석하며 독립적 가치를 논한다. 


하지만 이 책 만만치 않다. 거의 한 달 내내 들고 다니며 읽었다. 겨우 다 읽고 정리하는 지금, 이 모음집에 대해서 뭐라고 적어야 할 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흥미로움으로 따지자면, 탁월한 비평집들 못지 않았지만, 책은 쉽지 않았다. 사진 이론서이지만, 인문학 서적이며, 사진에 대한 깊은 이해 뿐만 아니라 현대 인문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어쩌다가 미술 비평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직접 사진을 찍는 이들 중 이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러므로 발자크에 따르면, 자연계의 모든 신체는 일련의 유령들로 구성된다. 유령들은 사방 모두 아주 얇은 막이 무한히 포개어진 잎 모양의 무수한 층들로 이루어지며, 눈은 이를 통해 신체를 인지한다. 

인간은 결코 창조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 환영처럼 만질 수 없는 것으로 어떤 단단한 것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또는 무(無)에서 어떤 사물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다게레오식 사진 촬영은 사진 찍는 대상의 여러 층 가운데 하나를 급습하여 은판에 덧붙이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전술한 신체는 다게레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유령, 다시 말해 신체를 구성하는 본질적 부분을 잃어버리는 게 분명하다. 

- 나다르의 회고록 <내가 사진가였을 때> 중에서 (32쪽 재인용) 



거의 읽히지 않는 나다르의 회고록에서 인용한 위 문장을 읽으면서 '사진적인 것'에 대해 생각했다. '사진은 인영, 흔적, 자국의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 어쩌면 이것은 이 책 전반을 흐르고 있는 중심 테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크라우스는 퍼스의 '인덱스Index'에 의존하며 사진적인 것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Alfred Stieglitz

Equivalent

1930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등가물'에 대해 크라우스는 이렇게 적는다. 



그것은 대기 상태의 각인이다. 빛의 굴절을 통해 가시화된 구름의 형상은 바람의 방향과 습도를 기록하고 가시화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것의 흔적을 구름이 고정시키는 한에서, 그것들은 자연의 기호들이다. <등가물>에서 스티글리츠는 이 자연의 기호들을 비자연 기호로 변환시키는 곡예를 수행했다. 다시 말해 구름이라는 자연의 기호를 사진이라는 문화의 언어로 전환시켰다. 

- 209쪽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파울라 또는 햇살, 베를린>, 1889년 



현재(2014년)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하지 못한다면, 도서관에서라도 구해 읽으면 좋을 것이다. 특히 사진, 이미지, 미술사 전공자들에게 추천한다. 책의 난이도는 상당하지만, 의외로 재미있고 흥미롭다. 






사진인덱스현대미술

로잘린드크라우스저 | 최봉림역 | 궁리 | 2003.07.15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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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의 '자화상'이라는 작품(?)이다. 구글에서 찾아보았으나, 구한 것은 아래 책 표지뿐. 


지난 한 달 동안 매일 들고 다니며 조금조금씩 읽은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의 한 챕터에서 소개된 작품이다. 헤르바이트 바이어의 이 작품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사진 실천의 비약적 발전을 기념하고, 예증하고, 분석해보고자 사흘 동안 열렸던 학술 회의 <말로는 부족할 때>의 프로그램 책자에 실렸다.


뭐랄까, '책 읽기 따위는 잊어라'는 식이랄까. 기이한 자기 반영성으로 사진 실천과 글쓰기, 혹은 텍스트와 사진 간의 기묘한 연관성을 표현한 사진인 셈이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이런 컨셉은 자주 있었다고 말하지만, 이 흑백사진이 주는 여운은 꽤 흥미로웠다. 제목이 자화상이라니. 


초기 사진이 가지는 리얼리티와 글이 가지는 리얼리티 사이에서 사진 기술의 획기적인 발달은 몇몇 이들에겐 열광적인 찬탄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하긴 새로운 표현 기술이 나왔을 때는 늘 있는 법이니... 이 점에서 우리는 어떤 특정한 표현 기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 기술의 등장에 대한 인류의 반응을 모아 분석해보는 것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요즘 몇몇 이들은 스마트폰의 등장에 열광하고 있는데, 나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터라, ... ) 


하지만 헤르베르트 바이어의 자화상으로 검색하니, 다른 사진들만 나왔으니... 



헤르베르트 바이어, 자화상, 1937.

(이미지 출처: http://www.barnesandnoble.com/w/herbert-bayer-arthur-allen-cohen/1114577708?ean=9780262022064) 


  


나도 이런 사진을 찍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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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마르네 강둑에서', 1938 



"언젠가 그(카르티에 브레송)는 내게 자신이 사진을 구성하는 방식은 기하학의 문제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그가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세계를 즉각 평면적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능력도 지녔음을 의미합니다." - 데이비드 호크니 



호크니를 통해 사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진은 새로운 형태의 드로잉이며 미술이고 예술이다. 이는 브레송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의 열정은 사진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피사체의 정서와 형태의 아름다움을 찰나의 순간에 기록하는 가능성, 다시 말해서 보이는 것이 일깨우는 기하학을 향한 것이다. 

사진 촬영은 내 스케치북의 하나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1994년 2월 8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루마니아,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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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기억은 사진으로 되살아난다. 사진이 없으면 여행은 없다. 그저 사라질 뿐이다. 여행 이후 쌓이는 건 사진이고 추억은 사진에 기생하는 어떤 것이 된다. 


작년 늦가을 속초를 다녀왔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사람은 나고 자란 곳을 잊지 못한다. 내가 자란 곳이 중소 도시이듯, 이런 도시에 가면 살고 싶어진다. 바람이 막힘없이 흘러가는 도시, 조금만 움직이면 산과 바다를 볼 수 있는 도시, ... ... 나도 서울에 지쳐가고 있었다. 내가 서울로 올라온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누군가는 여행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사회적 죽음을 겪는다.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벗어남으로써 부재를 경험한다.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을 지켜보며 자신의 가치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사회적 존재로서 부활하는 기쁨을 누린다. 이것이 여행이 주는 진정한 의미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설악산으로 왔는데, 기억나질 않고 ... 


아바이 마을 옆 다리 ... 


두 개의 등대, 


멀리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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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날 밤 꿈 속 사건을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여기며, 며칠 지내다가, '아, 그건 꿈이었지'하는 식이었다. 다행히 그건 몇 달 가지 않았고 그것으로 인해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단지 더 쓸쓸해진 것 뿐. 


대한민국의 회사원들이, ... 아니 지난 수십년 간 IT 기술에 기반한 급격한 정보화,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쟁의 격화로 인해 OECD 대부분의 국가 지식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심해졌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해졌다. 나도 나이가 들고 직무가 늘수록 그런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있다. 그렇게 늙어가고 있었다. 


출근길 카페에 들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사왔는데, 마실수록 속이 쓰려오는 것이 내 현재를 말해주는 것 같기만 하다. 


잠시의 위안을 얻기 위해 사진을 뒤진다. 그리고 ... 레티티아 몰레아르 Laetitia Molenaar. 에드워드 호퍼의 세계가 이 세상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가다. 



충무로 사진 축제 때 극동빌딩에 전시되었던 모습. 


아래는 실제 작품 사진. 

Second Story Sunlight, 2012 © Laetitia Molenaar 

http://lejournaldelaphotographie.com/entries/9529/laetitia-molenaar-here-comes-the-sun 




Summer Evening, 2012 © Laetitia Molenaar



저 작품 사진 속에 내가 들어간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세계다. 19세기말 유미주의자들의 세계. 삶은 예술을 닮아가다가 예술 속에 묻힌다. 보드리야르는 그것을 시뮬라크르라고 말했지. ~... 마치 쓸쓸함 속에 우리가 묻혀 침묵 속에 살아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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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나자마자 몇 명의 노동자가 자살했다. 부끄럽다. 슬프다. 노동운동이 치열했던 시기에도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자살했을까. 


한 때 문학이, 예술이 열성적으로 '현실 참여'를 부르짖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언제였는지 아련하기만 하다. 실은 지금 더 필요한데 ... ... 


아내의 사촌 동생(그는 사진을 전공하고 있다)으로부터 아래의 달력을 받았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달력은 콜트 악기 부평 공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업주의 입장과 노동자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IMF를 지나고 어느 새 우리 사회는 기업주의 입장만 대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본주의화는 심화되었고 우리에겐 반성할 여지조차 사라져 버린 걸까.


이 작은 달력이 가지는 외침은 꽤 커 보인다. 


월별로 두 장의 사진 작품이 실려 있다. 사진은 조용하지만, 호소력이 진하고, 무엇보다 삶에 대한, 이 세상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와 좋았다. 아래는 내 핸드폰으로 찍은 달력의 일부이다.  아래 인용된 사진 작품에 대한 별도의 표기는 하지 않았다. 

 





(처남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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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묵직한 흑백의 사진이 주는 무게가 상당하네요. 사진의 메시지와 별도로 사진 자체가 부럽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자살하는 사장이나 자본가가 있을까 하구요. 그것만으로도 이땅에 절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수 있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사는 사람이 참 많다는게 마음 아픕니다.

    •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대선이었습니다. 대선 뿐만 아니라 저도 작년 한 해는 꽤 힘든 시절을 보낸 탓에.. ~.
      사진은 무척 좋습니다. 달력도 깔끔하고요. 정치가 개개인의 삶에, 그리고 후세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데, 현실은 너무 한 쪽으로 쏠려 있다보니, 모두 한 쪽만 바라보는 형국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우습게도 학력 수준이 높고 월급이 많이 받는 이들에게서 문재인 지지도 높게 나왔다는 사실을 보면서,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습니다. 그냥 제 고민들을 한 번 정리해서 포스팅해볼까 하는데, 쉽지 않네요. 크~.
      제 메일 주소(yongsup.kim@yahoo.com)으로 주소 보내주세요. 달력 한 부 보내드릴께요. ^^


사진을 찍어 PC로 옮기니,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요즘 내 신세같다고 할까. 일은 밀려드는데, 바로 실적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한 제안은 긍정적인 담당자 손을 떠나 위에서 보기 좋게 떨어진다.


또다시 나는 경영을 배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딱 맞다. 아직 배운다는 건 좋지 않은데, ... 이 말은 죽을 때까지 할 것같으니 걱정이다. 


올해 독서 계획 중에 '정치철학' 책을 읽자는 것이 있었는데, 바쁜 일상 속에 흐지부지 되었다. 블로그에서 정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대선을 앞두고 한 번 올릴 예정이다. 설마 선거법 위반으로 걸려들어가는 건 아니겠지. 




요즘 주로 활동하는 곳은 구로디지털단지다. 이 곳은 좀 삭막한 느낌이다. 





사무실이 있는 빌딩 맞은 편 건물이다. 폰으로 볼 땐 봐줄만 했는데, PC로 옮겨서 보니 아니었고 보정도 하고 수정해도 별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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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노트에 옮겨적었다. 선물받은 라미 만년필은, 사용한지 꽤 되었는데, 아직까지 필기감이 좋지 않다. 비슷한 유형의 로트링 만년필은 필기감이 매우 훌륭했는데 말이지. 당분간 라미 만년필을 사용하면서 펜을 길들일 예정이다. 


오늘에서야 수전 케인의 '콰어이트'를 다 읽었다.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으로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성격의 문화'가 가져다 준 영향, 그리고 아시아와 서구 사회를 비교하면서 자녀 양육으로 끝나는 책이었다. 그러나 명성에 비해 책은 얇다. 4시간이면 넉넉하게 다 읽을 수 있다.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책 읽는 재미는 무척 좋다. 내용도 훌륭하다. 깔끔한 정리는 아메리카 쪽 저자들의 특징이기도 한 듯 싶다. 하지만 책의 깊이는 유럽 쪽 저자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건 내가 그 쪽 편향적이기 때문일까.  


이 책도 내가 활동하고 있는 독서 모임 활동 탓에 부랴부랴 읽을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모임 활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신경 쓰는 모임이 있다면, '독서모임'이다. 다만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않아, 반성 중이다. 내가 너무 내 스타일대로 한 건 아닌가 하고. 


사진은 수전 케인의 책을 다 읽고 밑줄 친 부분들을 노트에 옮기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옮겨적기도 힘들만큼 여유 없는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낯설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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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ooja

To Breathe 

August 29 - October 10, 2012 

Gallery Kuje 





"작가의 작품 세계는 시각적인 이미 및 오브제를 넘어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탐구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 삶의 인류학적 면모를 보여준다. 김수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시공간의 축적이 담긴 장소특정적인 삶과 문화 그리고 역사적인 흐름을 관통하는 작업 세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동양적 또는 한국적이라 불리는 서구의 근대적인 관점에서 간과한 가치들을 선험적인 태도로서 접근한 이번 국제갤러리의 김수자의 첫 개인전은, 최근 10여 년에 걸친 최근 작업들로써, 그녀만의 고유한 유목적이고 관조적인 관점, 그리고 초기 작업부터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심화되어 온 페인팅과 드로잉의 개념들, 아울러 그것의 휴머니즘적 연관성을 경험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설명 중에서)



국제갤러리 2관, 3관에서 전시된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만나기 어려운 김수자 전이었다. 그리고 한국 작가이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그녀의 예술 세계가 어떤 모습이며, 어떤 이유로 인정받는가를 확인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위 두 영상물은 그녀의 과거 작업들이다. 그녀는 지극히 로컬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는 동양의 구석, 외부의 교류가 드문 아시아적인 느낌이 아니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현대의 팝적이고 세계화되는 문화적 흐름에 반대하여 매우 지역적인 특색을 포착해 이를 영상-비디오와 사진-으로 풀어낸다. 


또한 동서양 사람들이 서로 교류를 하게 되는 최초의 매개물 - 면(국수), 천(비단) 등 - 을 통해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로컬리티를 탐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류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여러 작품들은 아래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을 나는 몇 해 전 파리에서 최초로 보았다. 해외 아트페어에서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이우환이나 백남준의 작품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김수자의 작품만 보게 되어, 무척 흥미로웠다(2008년의 파리 피악Fiac). 


이 전시는 이미 종료되었지만, 그녀의 작품을 찾는 이들을 위해 늦게나마 내 생각과 몇 개의 영상물 링크를 올린다. 



김수자 http://www.kimsooja.com/ 

헤럴드경제 지의 상세한 기사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20903000607&md=20120906003744_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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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경 2013.01.09 14:20 신고

    김수자 작가의 소개 비디오 중 잘못 소개된 것이 있네요.
    첫번째 비디오는 미국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 김작가의 바늘여인을 모방하여 유튜브에 올린것이며 김수자 작가 본인의 퍼포먼스가 아니랍니다....


피로가 머리 끝까지 올라갔다. 집에 오니, 밤 12시가 가까이 되었고 나는 아직 일을 끝내지 못한 상태다. 하긴 내가 무리하게 욕심을 부려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딱딱한 걸 먹으면 안 되는데, 맥주 몇 잔에 딱딱하다 못해 씹혀지지도 않는 오징어 뒷다리를 안주 삼았다. 나이가 들수록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상 속에 내 온 몸이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은 한 발 뒤로 물러나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데, ... 올해 그런 여유가 생길 지 모르겠다. 


여름, 뜨거운 절망을 뒤로 하고, 가을, 내년을 위한 희망을 꿈꾸어도 좋을 시기다. 몇 번의 주말 오후, 핸드폰으로 늦은 오후 석양 아래의 서울을 찍었다. 내가 가진 니콘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있지만, 지금 PC에 옮기기가 귀찮다. 














이 작은 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어쩌면 이루어지지 못할 지라도, 신의 시간과 비교한다면 보잘 것 없는 시간이라도 희망을 꿈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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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참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그렇게 사진 속에 숨어 세월은 사라진다. 사진은 미완의 기억이며 흔적이다. 사진은 미학적 매체이기 이전에 어떤 상처이다. 그래서 예술가들 중 일부는 사진 속에 깃들어 사고하고 행위하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인상주의자들은 사진의 친구였으며 동지였다. 그렇게 사진은 평범한 우리들 손으로 들어왔고,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 오늘도, 내일도. 

그래서 사진은 참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침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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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페이즈망 - 벌어지는 도시 Depaysement - blooming the City
2011.6.15 - 7. 17. 아르코미술관(대학로)
(2011년 아르코미술관 기획공모전, 기획: 최재원, 김미경)





우리들 대부분은 도시에 살아갑니다. 서울이거나 부산, 혹은 광주이거나. 아니면 뉴욕이거나 런던이거나 LA이거나. 그리고 지금 여기를 살아갑니다. 거기 어제가 아니라. 그런데 지금 여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쫓기는 듯한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는 이 도시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현재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 열리고 있는 ‘데페이즈망 ? 벌어지는 도시’는 지금 여기 이 도시에 대한 반성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전몽각, 경부고속도로29, 99.7x150cm, 1968 경,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우리의 도시는 식민 지배와 근대화, 서구와 전통이 혼재하는 삶 속에서 서구 근대의 도시형성 과정과는 매우 다른 복합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전시는 흥미롭게도 그 혼성적 특성을 ‘데페이즈망’이라는 말로 풀어낸다.

“수술대 위에서의 우산과 재봉틀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다운”이라는 로트레아몽의 말처럼, 낯익은 사물들이 낯선 장소에 놓일 때 일어나는 충격을 미학적으로 간주하는 말이 초현실주의 단어인 “데페이즈망”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상 우리의 도시도 “데페이즈망” 도시다. 도시의 물리적인 외형만이 아니라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문화예술 모두가 “데페이즈망”이다.



데페이즈망. 이건 그렇게 어려운 단어가 아닙니다. 혹시 어렸을 때 다녔던 초등학교에 놀러 간 적이 있다면, 초등학교 운동장 크기를 보고 실망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예전엔 참 넓었던 곳인데, 이렇게 작았다는 것에 말이죠.

낯익은 사물이 시간 속에서 낯선 사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이 전시의 키포인트는 여기에 있습니다. 참여한 작가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도시를 낯선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는 관람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태범, Ambivalence-(파키스탄 폭탄테러), 120x180cm, 디아젝 프린트, 2010


원래 모더니즘의 ‘데페이즈망’, 혹은 낯설게 하기는 어떤 사물이나 존재를 낯선 공간에 위치시킴으로서 미학적 충격이나 효과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시간 위에서 ‘데페이즈망’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도 말이죠.

잭슨홍, 순진하고 낙관적인, 39.5x26.2x22.7cm, 혼합재료(machined ABS plastic, plastic helmet, wood), 2010


이 전시에 놓인 작가들은 강국진, 김기영, 김기찬, 김형관, 박경근, 이제석, 임명진(임단), 전몽각, 잭슨홍, 주재환, 최병소, 하태범, 홍형숙입니다. 시각 이미지와 조형들로 배치된 전시 공간은 도시의 재해석, 시간 위의 데페이즈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열립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기찬, 서울 사근동 뚝방촌, 디지털프린트, 1969






*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계시다면, T스토어나 마켓에서 '올댓 주말미술여행'을 검색하셔서 다운로드 받으세요. 매주/매월 가서 볼만한 미술 전시정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술 정보를 업데이트합니다. ^^ 

위 QR코드를 찍으시면 바로 마켓으로 들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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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Denzler

‘Freeze Frame Paintings’

2011.1.27 – 2.27 

Michael Schultz Gallery Seoul

www.andydenzler.com


늦겨울
햇살이 건조한 바람에 희미하게 갈라졌다. 오랜만에 마이클 슐츠 갤러리에 들렸다청담 사거리에 있는 네이처 포엠 빌딩에 때면 빠뜨리지 않고 방문하는 갤러리로, 독일 베를린, 중국 베이징에도 갤러리가 있다.

그리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나는 마이클 슐츠 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 서로 명함을 주고 받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는 우리에게 갤러리스트로 성공할 있었던 이유로 탁월한 안목을 꼽았다.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찾아 작품을 원하는 고객에서 소개할 있는 안목. 나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지만, 한국에 들어와 부딪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내 안목에 대한 스스로의 신뢰가 시간이 갈수록 사라졌고, 탁월한 안목만으로 버티기엔 한국은 폐쇄적이고 견고했다.

갤러리에, 낯익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2008 겨울 독일 칼스루헤에서 만났던 작품이었다. 앤디 댄즐러(Andy Denzler).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은근히 보는 이의 시선을 자극하며, 적당한 속도로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마치 추운 겨울 바람이 부는 거리를 마주한 까페 창가에 앉아 헤어진 연인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갤러리의 설명을 옮긴다면 이렇다.

덴즐러는 움직이는 피사체를 순간적으로 정지시켰을 정지된 피사체와 함께 움직임에 따른 잔상이 번져 보이는 모션회화에 기반을 작품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미지는 마치 1960년대 전파의 혼선으로 인해 텔레비전 화면 장면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면서 일그러지고, 왜곡되는 현상을 평면으로 옮겨놓은 하다.


하지만 작품 설명이 그리 중요할까. 어려운 단어들로 설명하지 않아도, 덴즐러의 작품은 충분히 대중적이면서도, 작품의 완성도는 뛰어나다. 그만큼 좋다. 현대 평면 회화의 지점을 보여주며, 동안 진행되었던 피사체와 평면성에 대한 탐구를 모으고 있다.

겨울이 가기 전에 앤디 댄즐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즐거울 것이다.

tips. 전시 관람 가이드

네이처 포엠 빌딩에 가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예술에 조예 깊은 사람이 있다. 지하부터 3층까지 유명한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빌딩은 사랑하는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로 손색이 없다. 또한 앤디 댄즐러의 작품은 부드러우면서도 서로의 온기를 느끼게 있을 것이다.

 


 




* 위 사진 이미지는 2008년 아트 칼스루헤(Art.Karlsruhe)에 나왔던 앤디 댄즐러의 작품들이며, 아트페어에서 직접 찍은 사진 이미지임을 알려드립니다. 현재 마이클 슐츠 갤러리 서울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2010년 마이클 슐츠 갤러리 베를린에서 열렸던 개인전 작품들로 현재 앤디 댄즐러의 웹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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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굿
최재영 사진전
2011. 1. 25 - 2. 13, 아트링크 www.artlink.co.kr


사진은 순수한 우연성이며, 오직 우연일 뿐이므로 민속학적 지식의 재료가 되는 '세부들'을 단번에 보여준다. - 롤랑 바르트




1952년생인 최재영은 이번 전시가 첫 개인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 동안 미디어에서 사진 기자 생활을 해온 터라, 평생을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나, 개인전이라고 할 만한 전시를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첫 개인전으로 백남준을 내세웠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사진은, 2006년 1월 29일 작고한 백남준의 5주기를 맞이하여,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최초로 공개하는 백남준의 퍼포먼스 기록 사진이다.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의 생일이기도 한 이 날, 백남준은 서울 현대화랑 마당에서 요셉 보이스를 기리며 행위 예술로서 굿을 선보였고, 이를 찍은 것이다. 



이 전시가 흥미로운 것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현대 행위 예술에 있어 대표적인 그룹이었던 '플럭서스'의 멤버였던 백남준의 예술 행위를 사진으로 옮긴 것이라는 점이다. 이전과 다르게 사진은 현대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매체이자 소재로 인정받고 있는 요즘, 최재영의 사진 작품이 주는 시사점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예술가의 시간적 예술(행위)를 정지된 화상으로 옮기는 작업은 일종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해석이며 재창조로까지 승화된다. 

하지만 이렇게 깊이 들어가지는 말자. 우리는 다시 백남준을 떠올릴 수 있고, 백남준이 있는 사진을 보며, 예술가와 사진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관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프닝과 샤머니즘은 하나의 예술의 행위를 띠고, 다른 하나는 제식적 형태를 띨 뿐, 기본 원리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굿도 볼거리도 제공하는 일종의 공연예술이며, 해프닝이나 굿이나 모두 자기 정화라는 치유적 기능을 갖는다. 또한 무당도 아방가르드 못지 않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굿이나 해프닝이나 모두 관객의 참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상호적 매체들이다. 결국 해프닝은 샤머니즘의 현대적 표현으로서, 해프닝의 수행자, 특히 어려서부터 굿판을 보고 자란 백남준은 첨단의 아방가르드인 동시에 전통 무당이 되는 것이다. 
- 김홍희
 



tip. 전시 관람 가이드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에 대해서 별도로 공부를 하고 가면 좋겠지만, 이는 어려운 종류의 일이 될 것이다. 미술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해프닝이나 행위 예술에 대한 이해나 감상은 전혀 다른 종류다. 대신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해프닝이나 순수 미술 작품에 제의적 성격을 본격적으로 부여하기 시작한 이가 요셉 보이스라면, 동양적 태도에서 서구를 받아들였던 백남준에게 굿도 일종의 행위 예술로 보였던 것이다. 굿이 가지는 본질적인 예술성에 주목한 것이다. 백남준에게 굿은 하나의 예술이다. 그리고 이 예술 행위를 찍은 사진들이 이번 전시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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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ce Of Silence #016, 90x120cm, Inkjet print, 2010



침묵의 목소리 (Voice of Silence)

이일우 전
2010년 10월 21일 - 11월 4일, 갤러리 보다 컨템포러리
www.artcenterboda.com


소리가 들린다. 사진에서 소리가 들렸다. 도발적이다. 소리를 지르는, 혹은 흐느끼는, 갤러리 가득 어떤 소리를 내는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없었다.



Voice Of Silence #001, 90x120cm, Inkjet print, 2010


사진 너머에는 어떤 소리가 숨겨져 있을 테지만, 우리에게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단지 상상할 뿐이다.

공감과 이해가 사라져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이일우의 사진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소리 지르고 싶지만, 소리 지르지 못하는 우리의 삶.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지만, 말을 들어주기는커녕, 말하기도 전에 시끄럽다고 해대는 타인들. 혹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Voice Of Silence #006, 90x120cm, Inkjet print, 2010


소리 속에 있는 인물들로 뒤로 펼쳐진 하늘과 바다는 인물들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보는 이의 공감과 부러움을 이끌어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슬퍼하고 싶을 때 슬퍼하지 못하고 화를 내고 싶을 때 화를 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일우의 사진 작품들은 우리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고 정직해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Voice Of Silence #005, 90x120cm, Inkjet print, 2010


tip. 전시 관람 가이드
혹시 옆에 있는 사람과 싸운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싸움이나 다툼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미루어 짐작하기 때문이다. 참는 법이 아니라 참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며 이야기하는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전시는 자신에게, 우리에게 솔직해지자는 숨겨진 메시지를 전해준다.하지만 다툰 연인들이 함께 가기보다는 혼자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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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진, 느끼는 사진
-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기획 - 사진 展

2009. 3. 6. Fri - 5.24. Sun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


책장을 정리하다가 읽다만 책들로 어지러운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각의 얇은 카탈로그. 작년 봄에 보았던 전시. 그러고 보니, 요즘 통 전시를 챙겨보지 못하고 있다. 회사일도 많고 개인적으로 여러 일들이 겹친 탓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핑계만 늘고, 핑계가 늘수록 게으름은 배가 된다. 한 없이 게을러지는 나이가 된 것일까.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은 사당역에서 나오면 걸어서 바로 앞에 있다. 옛 벨기에 대사관 건물로 1905년에 지어진 이국적인 건물이다. 건물 앞 정원에는 흥미롭고도 아름다운 조각작품들이 세워져 있다. 사당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그 기다림이 지겨워질 때 이 미술관은 매력적인 친구가 될 수 있다. 




디지털카메라의 극적인 확장은 사진에 대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이들이 아마추어사진가가 된 지금, 사진 작품이 가지는 위치는, 한 쪽으로는 공고해지면서 한 쪽으로는 위태로운 것이다. 이 전시는 '예술가의 방', '연극적 상황연출', '사물의 재인식', '다큐멘터리', '심상적 풍경', '만드는 사진'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에서,  

김종욱, into the Ancient City, 컬러인화, 30×40", 2003

만드는 사진은 현대 사진에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로 '찍는' 사진에서 이제는 만들거나 '만들어놓고 찍는' 혹은 '찍지 않고 인위적으로 만드는' 등의 사진의 인위적 조작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기계적 사진술에 디지털 기술이 가미되고 이미지의 조작과 인위적 상황 연출까지 포괄하면서 예술가의 창조정신으로 이어진다. 이는 다원주의적 양상으로 나타나는 현대미술담론의 맥락에서 이해되며 동시대 젊은 현대미술가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 전시 카타로그에서 인용함.





김종욱, into the Ancient City, 컬러인화, 30×40", 2003


특히 김종욱의 사진 작품은 제한된 세계 속에서의 의미 없는 반복되는 일상을 시간과 이미지의 낯선 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대 사진이 가지는 흥미로운 지점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정지된 이미지로서의 사진을 넘어 움직이는 사진, 그러나 동적 영상은 아닌 형태로 사람 앞에 놓여진다. 그리고 그가 담아내는 풍경이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여가를 즐기는 듯하지만, 실은 아무런 의미 없는, 그저 스쳐지나가 끝내 잊혀지고 말 일상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공허한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그래서 김종욱에게 사진이란 허무한 테크놀러지에 기댄 당스 마카브르(dance macabre)와 같은 것이 된다.



그 외 많은 사진 작품들이 전시되었으나, 이 전시가 끝난 지는 이미 1년이 지나, 가장 흥미로웠던 김종욱의 작품만 언급하였다. 앞으로 전시 리뷰를 자주 올리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 이미지는 neolook.net에서 가지고 온 것이며 글쓴이에게는 작품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이 없습니다.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토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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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획, 특히 대형 미술 전시 기획의 어려움은 수익만 쫓아가는 비즈니스의 속성, 그리고 그것과 무관하거나 아직 한국적 풍토와 잘 맞지 않는 예술성, 작품성을 서로 만나게 하는 데 있다. 내가 관여하고 있는 아트페어도 마찬가지다.

4 29일부터 5 3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포토2010도 그런 사정을 여실히 드러낸 전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아트페어에도 프리-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프로덕션이 존재한다. 결국엔 공통된 관심사와 목적, 팀웍이 중요하다. 내가 갤러리스트로 나갔던 아트페어, 혹은 주관했던 아트페어에서 결국 중요했던 것은 팀웍과 참가한 작가나 갤러리의 작품성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마인드였다. 적고 보니, 참 어려운 일이었음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서울포토2010의 특별전 'Rawvision'의 큐레이터가 아끼는 동생이라, 유심히 살펴보려고 했으나, 
부스 디자인이 매우 좋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공간 구성으로 인해 사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느 곳에선 사람들로 비좁았고 어느 곳에선 낯설 정도로 한산했다.

특별전의 기획 의도는 분명하다.

저는 작업의 예술성, 문화 예술 및 사회 공헌 활동, 기업의 경영 능력 및 비전 창출 능력(RAWVISION)을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로 환기시켜야만 한다는 측면에서 특별전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감각과 소양, 경영 능력과 실천의 중요성을 작업에서 보여 주고 계신 총 여덟 분들의 작업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 최재원, '특별전 도록'에서



 

사실 예술가들은 지성, 통찰력, 포지셔닝과 실현 능력, 펀딩, 생계유지와 리터러시literacy, 로컬이 아닌 국제적 차원의 경쟁, 테크놀러지 업데이트를 선두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생존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고 또 실천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상황에 내몰려 있습니다. 그것은 <RAWVISION>에 선정된 여러분들께서 제각기의 자리에서 보고 계신 현장의 세계상과 과연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 최재원, '특별전 도록'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차원과 예술을 창조하는 차원의 유사함,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를 대비시키며, 한국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의 분발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사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를 흥분시키는 작가를 만나기란 참 어려운 일이 되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의 잘못이다. 하지만 세계는 앞을 향해 움직이고 옆 나라 일본의 흥미로운 사진작가와 대단한 내공을 지닌 스페인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만난 건 서울포토2010의 즐거움이었다. 또 특별전에서 만난 사진작품들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진 위력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다.


행사장 내 커피빈에 앉아서...  

 

스페인의 사진작가들 부스를 지나며... 


전시를 보고 난 뒤, 봄밤,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예술과 정치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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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했다. 사무실 근처에서의 점심 식사는 대체로 무의미하거나 우울하거나 쓸쓸하다. 하루 종일 기획서를 쓰고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고객이나 파트너에게 전화를 걸어 업무를 협의한다.

어젠 신사동에 있는 어느 갤러리에 들렸다. 그 갤러리의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한다. 회사 일에, 아트페어 준비에, 이젠 갤러리 일까지 해야 하는 건가. 흥미가 있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 몇 장을 올린다.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100%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일요일 오전이 전부다. 마지막 연애도 오래 전에 1년을 지났고 이젠 2년을 향해 달려간다. 일상을 꽉 짜여져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가끔은 치명적인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이 지상에서 살아온 시간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자기 관리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건, 정말 잘못된 일은 아닐까.


홍대 까페 '중독' 
요즘 발견한 가장 흥미로운 까페다. 자주 놀러가고 싶지만, 딱히 같이 갈만한 사람도, 갈 시간도 없다. 카페 중앙 무대에 기인 봉이 천정에서부터 바닥까지 세워져 있어, 봉춤을 출 수 있다! 또한 오래된 턴테이블과 만 장이 넘는 LP를 가지고 있다. 


미국산 피노누아 와인 '마크웨스트'. 
내가 마실 땐 적당하지 못한 온도와 디켄팅을 하지 못했다. 이 와인은 반드시 디켄팅이 필요하다. 가격은 2만원대이지만, 잘 관리해 마신다면 꽤 좋은 풍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Cono Sur, 피노누아 
칠레와인으로, 가격 대비 적당한 맛을 가지고 있다.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같이 마셨던 미국산 아발론 카베르네쇼비뇽보다 훨씬 나았다. 가격대 차이 제법 나는데 말이다.


가평 쁘띠 프랑스 
일 때문에 가게 된 쁘띠 프랑스. 늘 가게 될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곳이다. 나의 생각이라는 게, 대부분 사업 생각이긴 하지만. 


이 철길이 어디 철길인지 기억 나지 않는다. 헐~. 기차 타고 여행 가 본 게 언제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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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
아트선재센터, 2008.12.6 - 2009. 2. 15




헌법 2장, 39조 2항에는 "누구든지 병역의 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 한다"는 문항이 있다. 지난 2월에 끝난 이 전시의 제목은 위 문항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 국가에 사는 국민으로, 군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터널 속에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9(2)”는 동시대 한국사진전시로 한국사회에 깊이 파고 들어있는 군사문화와 전쟁의 흔적들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5명의 사진가들로 구성되었다. 김규식, 노순택, 백승우, 이용훈, 전재홍 등 5명의 사진작가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한국 사회에서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군사문화와 전쟁의 이미지를 다양한 시각과 감각으로 포착하고 있다. 작가들은 시대에 따라서 혹은 다양한 계층에 의해서 변형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을 사진 이미지로 시각화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사진은 전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흑백사진 인화를 하는 스트레이트 사진, 일상적인 스냅샷, 잡지나 대중매체 이미지를 차용하여 디지털 기술로 변형시키는 등의 사진의 다양한 기법들은, 이미지가 갖는 컨텍스트를 드러내게 하는 방식과 연계되어 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동시대 사진이 이전의 사진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한금현, 전시도록 18쪽)



이용훈, Paradise, 잉크젯 프린트, 110×110cm, 2008


사진에 붙은 제목이 인상적이다. 실은 거칠고 피곤한 직장 생활을 하는 샐러리맨에겐 예비군 훈련은 '파라다이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흐릿하고 얼룩진 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몽환적이지 않다. 아마 다른 인물들이나 공간이 등장했다면 몽환적으로 보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군복과 군대라는 공간은 보는 이, 특히 경험해본 이들에게 몽환적으로 느끼게 해주질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군대 문화를 어렸을 때부터 반복해서 교육받고 훈련 받는다. 문화의 다양성에서 보자면, 군대 문화도 엄연히 하나의 문화다. 어떤 목적을 위해 다른, 대부분의 것들을 무시하는 문화. 하지만 그 문화가 나라 전체를 감싸고 돌 땐 문제가 매우 심각해진다.

김규식, Bombs, Rockets, Missiles, 잉크젯 프린트, 140×108cm, 2008


김규식의 사진은 매우 흥미로운 군대 문화의 시작을 알려준다. 그의 사진은 건조하고 딱딱하지만, 군대 문화가 어떻게 흥미를 끌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이 극적인 상징성은 현대 사진이 보여주는 것보다 이야기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음을, 그래서 과거 사진이 가졌던 여러 요소들을 과감하게 없앨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순택, “좋은, 살인”, Lambda print, 2008


군대 문화는 이미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노순택의 일련의 사진들은 군대 문화와 그 문화가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군사주의의 극복은 비단 남성들만 이런 악몽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군대 갔다 온 아버지, 군대 갔다 온 선생님, 군대 갔다 온 친구와 애인, 군대 갔다 온 선생님, 군대 갔다 온 친구와 애인, 군대 갔다 온 선후배와 직장상사들과 부대껴 살아야 하는 여성들에게도 군사주의의 끈끈이주걱을 벗어나는 것이 절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출발점은 군사주의가 얼마나 우리 주변에 가까이 와 있는지를 인식하는 일에서부터이다." (한홍구, 전시 도록 40쪽)


그런데 군대 문화를 왜 극복해야 되는 것일까? 반대로 군대 문화를 변화시킬 순 있는 건 아닐까? 한홍구 교수의 군사주의 극복이란 어떤 의미일까?

"사진은 보여주거나 가리거나 강조하거나 은유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진가의 삶의 세계의 일부이며, 그 시선은 눈에서부터 뻗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눈의 일부이다. 그러니까 사진의 장치는 사진가들과 하나이며, 장치가 변하면 존재도 변한다. 인간과 사진 둘 다 기계이며 서로 붙어 있어서 한 쪽이 변하면 다른 쪽도 변하고, 한 쪽이 망 하면 다른 쪽도 망한다. 그러므로 사진가들이 군사 문화를 찍는다는 것은 마치 누드모델이 벌거벗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기다리듯이 사진의 대상으로 떡하니 놓여있는 군사적인 어떤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의 존재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는 군사문화를 다른 곳에 취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영준, 전시도록 80쪽) 



백승우 “Utopia”, Digital c-type print, 2008


군대란 만일에 있을 지도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한국의 경우, 군대 문화가 급속도로 퍼진 이유는 단순하다. 50년대, 60년대, 심지어 70년대까지 군대는 최고의 조직 문화, 최고의 기술력, 최고의 효율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대에서 무언가를 배워 나온 사람들이 이 나라 곳곳을 (경제적 관점에서) 일으켜 세운 것이다. 고대 로마 제국도 하나의 군대가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가 이루어진 나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군대 문화가 가지는 효율성 밑의 폭력성, 비합리성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극복이란 그것을 먼저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사진가들은 보여주는 것에서 머물지 않는다. 적극적인 현실 개입, 서사로 이야기하기를 통해 군대 문화의 현재, 과거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전재홍, 목포일본영사관, 전남 목포시 대의동 목포 개항 이후 1900년에 건립된 일본영사관 본관,

젤라틴 실버프린트, 50×60cm, 1999




* 본 리뷰에 쓰인 사진 작품의 이미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사진 작품의 이미지를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사진 작품 이미지들은 neolook.com과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artsonje.org)에서 가지고 왔음을 알립니다.
* 본 블로그는 비상업적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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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Tree #1 -〈A Series of 'Tree'〉 among 〈Project, 'Photography-Act'>,
디지털 프린트, 2005 (Printed Date:2007)



트랜스 트렌드 매거진(trans trend magazine) 2008년 겨울 호에 젊은 사진작가 이명호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흥미로운 그의 사진 작품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던 터라, 그가 말하는 사진 작업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의도하는 것이나, 평면 회화와 사진, 그리고 그 속에 담기는 존재(피사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이명호의 사진은 어떤 존재는 그 존재를 둘러싼 콘텍스트(context)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가령 마르셀 뒤샹의 '샘'이 화장실에 있을 때는 변기이겠지만,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작품이 되는 이치와 비슷하다. 일종의 ‘낯설게 하기’며 브레히트 식의 소격효과다.

"지금은 사물의 대상화, 재현된 이미지를 환경에 개입시키는 것을 하고 있어요."

 


 
이명호, Tree #2-〈A Series of 'Tree'〉 among 〈Project, 'Photography-Act'>,
디지털 프린트, 2006 (Printed Date:2007)




하지만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교묘하게 회화성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나무 뒤에 서 있는 사각의 흰 천은 마치 캔버스처럼 펼쳐지고, 그 위의 나무는 캔버스에 그려진 듯하다. 그는 실제 공간을 의도적으로 평면화하면서, 사진과 회화 사이의 거리를 흥미롭게 탐구하고 있다.


"나무 자체가 주는 이야기가 있지요. 어떤 나무를 보면 눈물이 나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나무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대신하는 것 같아요. 저는 특정한 나무를 반복해 찍지 않고 향나무, 자작나무, 그밖에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나무 등 여러 가지를 찍는데요, 나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코드에 쓸려가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이명호, Tree #3-〈A Series of 'Tree'〉 among 〈Project, 'Photography-Act'〉,
디지털 프린트_, 2006 (Printed Date:2007)



그러나 이런 추상적인 분석보다, 그의 사진 작업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의 사진 작품은 실제의 어떤 공간 속에 낯선 평면의 흰 공간 하나를 만들고 그 안에 나무를 위치시킨다. 마치 고립된 섬처럼. 나무가 있었던 원래의 공간(context)과 나무(text) 사이에 인위적 공간을 만든다. 이 개입을 통해 그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존재와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사각의 흰 천 안에는 어김없이 한 그루의 나무만 위치하고 그 나무는 외부 공간과 격리된다. 마치 대중 속에 파묻혀 있을 때는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어느 날 대중과 떨어져 혼자 서 있게 되자, 대중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만, 그 순간 대화하지 못하는 어떤 상황처럼. 그러니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어서는 안 된다. 어떤 공간 속의 일부로 남아있어야 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을 대중과 분리시켜 낯설게 만들거나 격리시켜서는 안 된다.

이명호의 사진들이 나에게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꼭 현대인들이 얼마나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알레고리처럼. 그리고 결국엔 저렇게 흰 천으로 격리될 수밖에 없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처럼.



* 위 글에 사용된 사진 이미지의 출처는 neolook.com이며, 이미지의 저작권은 원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 본 사이트는 비상업적 사이트이며, CCL의 규약에 따름을 알려드립니다.
* 이명호 사진에 대한 다른 이들의 리뷰: http://blog.naver.com/nalrari66/20065516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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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어딘가 올라간다는 것은 언젠간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람이 불었다. 궁궐 건물 아치형 입구 옆으로 살짝 비켜 불어들어온 바람은 실내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따가운 햇살에 푸석푸석해진 머리칼을 스다듬어 올렸다. 이마 살갗이 거친 손바닥에 밀렸다. 따끔거렸다. 

환상은 쓸쓸함 사이에 깃들고 공상은 한 잔 술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은 잡을 수 없는 파도였고 내 곁에 머무는 모든 것들의 존재는 느낄 순 있었으나, 소유할 순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먼 미래를 회상해본다. 앞으로 다가올 것이지만, 이미 경험했던 어떤 것들의 변형이거나 알레고리에 가까울 것이다. 어느 새 봄은 왔고 내 육체는 봄 향기에 지쳐 쉽게 피로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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