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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산문 +20



2016. 06. 01.



이럴 때 어색하지, 그다지 좋지 못한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주위 풍경이 참 여유로워 보일 땐, 슬프지, 가진 게 없는데 모든 걸 가진 듯한 풍경 속에 있을 땐 참 슬프지, 너무 슬프지. 


하나의 직선 양 쪽 끝에 서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만, 흘러가는 세월 속에 다 부질없어, 목소리는 잠겨 나오지 않아, 이젠 말라 흘릴 눈물마저 없어, 그럴 때 별안간 나타난 여유롭게 행복한 사각의 공간은 너무 어색해, 어색해, 찡그린 채 웃고 말지. 


텅 빈 도로를 지나치는 바람이 반가워 손을 내밀지만, 그는 잡히지 않아, 바람이지. 모니터 속 그녀는 나를 향해 웃고 나도 그녀를 향해 웃지만, 우리의 웃음은 만나는 법이 없지.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그녀지. 


어느날 아이가 우주여행을 가겠다며 여행가방을 쌀 때, 나는 이미 어제 밤 꿈에 우주를 갔다 왔단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 나는 언제나 바람을 타고 계속 웃는 그녀와 함께 우주 여행 중이지, 꿈 속에서. 


참, 어색하고 슬프지. 내가 한없이 낯설어지는 풍경 속에 익명의 사물이 될 때, 그렇게 있지만 없는 이가 될 때, 너무 슬프지, 그렇게 슬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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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Edouard Leve 지음, 정영문 옮김, 은행나무 




소설일까? 그냥 일기일까? 자서전일까? 에세이일까? 예술 형식에 대한 구분이 호소력을 가지지 못하는 시대에, 장르를 적는 건 무의미하다. 책 표지에 적힌 '장편소설'이라는 단어가 부적절해보인다. 


이 책의 서술, 그것이 진실인지, 허위인지 에두아르 르베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에두아르 르베는 이 짤막한 글 속에서 자신이 여든 다섯 살에 죽을 것임을 예감하지만, 마흔 둘의 나이로 자살하니, 이 책 자체로 일종의 부조리일지도 모른다. 실은 내 일상이, 내 인생이, 이 세상이, 이 우주가 다 부조리하고 무의미하지만,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그걸 부정하고 있지. 


이미 죽은 자의 자화상.  


서로 연관성 없는 문장들은 병렬적으로 나열되며 대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자화상의 하늘이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그 어떤 의미도 구할 수 없다. 개별 문장들은 일종의 취미판단일 뿐, 가치판단은 아니다. 단지 자신의 선호를 나타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개별적인 산문이 되고 유명론(Nominalism)적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을 지도. 


짧지만, 읽기 어렵다. 어떤 문장은 흥미롭지만, 어떤 문장은 재미없다. 취향이 특이하지 않고 세계 비판적이지도 않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일종의 유서이거나 기록일지도 모른다. 


형식적으로 무척 흥미롭지만, 문학적으로 대단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적지만, 자신없다. 실은 이런 식의 작법으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일종의 시리즈물이 나오면 어떨까. 예술가들이 돌아가면서 르베 식의 자화상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이면, 정말 가치있는 무의미의 축제가 될 지도. 



*    * 


에두아르 르베는 사진작가다. 그의 사진 몇 장을 찾아 올려본다. 소설 <<자화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진 모르겠다. 


 

Reconstitutions by Edouard Leve 





몇 장의 작품들을 찾았으나, 많진 않다. 포르노그라피 연작들이 눈에 띈다. 



Sans titre (de la serie Rugby)

edouard leve




에두아르 르베. 어느 프랑스 저널에 실린 르베의 사진 전시 기사에 실린 사진이다. 기자는 왜 이 사진을 실었을까. 소설과 달리 꽤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르베. 나도 강인해지고 싶다. 인상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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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도정일(지음), 문학동네 





도정일 교수의 산문집을 읽었다. 다소(혹은 매우) 실망이다. 여러 일간지와 저널에, 마치 마감 시간에 쫓겨 쓴 듯한 짧은 글들의 모음이기 때문이고 대부분 지면에 실린 지 꽤 지났다. 다만 저자가 워낙 유명한 지라, 글 읽는 재미가 없다거나 형편없진 않다. 도리어 다른 책들보다 훨씬 낫다. 글들 대부분 짧고 금방 읽힌다. 대신 깊이 있는 통찰을 느끼기엔 글들이 너무 짧고 그 때 그 당시에 읽어야 하는 시평時評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90년대에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떠나 서글픔마저 느끼게 만든다. 옛날 글 읽는 느낌이 이런 걸까. 몇몇 인용문들은 기억해둘 만했고 다소 긴 분량을 가진 몇 편의 글은 충분히 읽을 만했다. 


그러나 도정일 교수의 진면목을 느끼기엔 아쉬움이 많은 책이다. 아니면 나같은 독자가 읽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덧붙이자면, 글들의 편차가 너무 심하고 밋밋한 칼럼들이 많았다. 글을 읽으면서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편집이 아쉽다고 해야 할 것이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8점
도정일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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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앗, 그런가요?
    제목이 참 좋아서 언젠간 읽어야지, 싶었는데 말이죠..

    • 1990년 중반부터 쓴 신문 칼럼 모음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글들이 나쁘다기 보다는 잡지 기고글인지라 지금 읽기엔 철 지난 글들이기도 하고, 사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부드러운 산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담긴 것도 아니고 ... 재미없다고 할 순 없으나, 저자가 워낙 유명한 분인지라, 그 명성에 책은 미치지 못했다고 할까요. ~ ^^; (아니면 제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城 

김화영(지음), 문학동네 






여행은 나의 삶이 남의 삶이나 공간을 만나는 감촉이며 공명(共鳴)이다. - 7쪽 




'예술기행'이라는 부제를 읽곤 프랑스의 여러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대부분 프랑스 문학 작품과 연관된 기행 산문집이다. 예술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미술이나 조각, 음악에 대한 다채로운 내용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대를 했다. 


김화영, 그는 1974년에 이미 카뮈 연구로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카뮈에 있어선 국내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년 그는 어느 형편없는 출판사의 노이즈 마케팅에 휘말렸다. 그 때 나온 기사들이나 광고를 거의 읽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번역 문제는 늘 있어왔던 것이고 해석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 불어를 한글로 옮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며, 김화영 교수의 번역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는 있기에. 하지만 내가 그 기사들이나 광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예의 없고 버릇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성실한 프랑스 문학 연구자이며 한국 독자들에게 프랑스 문학을 소개해왔으며 카뮈 전집을 한국에서 읽을 수 있게 한 老교수에 대해 '엉터리 번역'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마케팅을 했고, 오래 전부터 자신들의 형편없음을 여러 기사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던 여러 일간지의 기자들마저도 앵무새처럼 '엉터리 번역'이라고 옮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절망적이었던 것은 이런 상황에 독자들은 자신들의 무지몽맹함을 뽐내며, '엉터리 번역'에 동조하며 흥분하고 있었다. 실은 지금도 인터넷 서점 리뷰들을 보면 그 때 올라간 많은 리뷰들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새움출판사의 <<이방인>>은 영어 번역본을 한글로 번역했고 이를 프랑스어 원문과 대조했음이 드러났다. (관련 사항은 엔하위키 미러 - 이방인 항목 참조) 더구나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indifference님 블로그 참조) 하지만 그래서? 일은 이미 벌어졌고 새움출판사는 자랑스레 이 책을 팔았고 지금도 팔고 있다. 세상은 이렇다. 상처는 아물지 않고 상처를 낸 사람은 잘 살아갈 것이다.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서두에 나오는 여러 성들의 모습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성만 남거나 그 성을 가지고 있던 귀족은 없고 그 후손도 없고 관리인만 남아있거나 ... ... 그런데 성마다 남모를 사연들이 있어서 하나하나 놓칠 수 없다. 아마 지금 프랑스에 가서 그 성들을 보는 것과 이 산문집에서 표현된 성들과는 벌써 거의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 책은 젊은 불문학자의 글에서부터 노년에 이른 불문학자의 글이 한 곳에 담긴 것이다. 첫 장 '예술의 성'은 이미 1980년에 열화당을 통해 문고판으로 나온 바 있었지만, 책 후반부의 여행 산문들은 1990년대 이후의 흔적들이다. 


나에게 이 책은 여러 성들의 모습과 이야기가 좋았다. 서양미술사에서 언급되는 성들은 그리 많지 않고 조형적 혁신을 이룬 대표적인 작품 위주이지, 그 성에 담긴 사연 위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몇 명의 작가들, 특히 샤토브리앙을 알게 된 것은!! 이미 샤토브리앙에 대해선 포스팅했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거나 기행 산문집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하지만 우리가 요즘 흔히 접하는 그런 기행 산문집 - 글을 거의 없고 사진들로만 가득찬 - 이 아니다. 보기 좋은 사진들 대신 프랑스 소설가나 시인의, 기억하고 노트해 둘만한 글들이 인용된다. 그러니 이 책의 독자들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방인>> 번역을 언급한 것은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몇몇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사태가 바로 잡히긴 했지만, 우리가 아는 바 기자나 학자가 아니라 이름 없는 블로거가 실질적인 대응을 했기 때문에 더 안타까웠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 자주 접하게 되는 역자들이 있다. 이휘영, 김현, 민희식, 김화영, 이재룡 ... 그들의 노고를 잊지 말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城) - 8점
김화영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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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Une Rencontre 
밀란 쿤데라(지음),한용택(옮김), 민음사 



1. 
에밀 시오랑(치오란), 아나톨 프랑스, 프란시스 베이컨,  셀린, 필립 로스,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 .... 밀란 쿤데라가 만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 이 산문집은 편파적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낯선가는 경험해본 이만이 알 수 있으리라. 좋아한다는 그 고백이 다른 이들과 나를 구별짓게 만들고 나를 일반적이지 않은, 평범하지 않은, 결국 기괴한 사람으로 만드는가를.  
 

그리고 치오란은 어떤가! 내가 그를 알게 된 시절부터 그가 한 것이라고는 인생의 황혼기에 블랙리스트에 자리 잡기 위해 이 리스트에서 저 리스트로 돌아다니는 일 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프랑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징낳아 그의 앞에서 아나톨 프랑스를 언급했을 때, 그는 내 귀에 대고 짖궂게 웃으면서 속삭였다. "여기서는 절대로 그 이름을 큰 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당신을 놀릴 거예요!"라고 말이다. - 71쪽 

  
에밀 시오랑과 아나톨 프랑스를 알고 읽어본 이만이, 그리고 밀란 쿤데라를 알고 있는 이만이 위 문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독자는 한정되어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독자의 수는 줄어들 테지. 


  

- 이 책에서 언급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인터뷰는 이 책에서 나온 것이다.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인데, 얼마 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 에밀 시오랑의 책은 3권이나 번역되었다. 허무주의적 아포리즘으로 유명한 에밀 시오랑은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로 온 이후 루마니아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어로 작품을 활동하다가 죽는다. 20세기 프랑스 문필가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구사한 몇 되지 않는 이로 손꼽히지만, 번역된 책에서는 이를 온전히 느낄 수 없고 다만 그의 도저한 허무주의만 알 수 있을 뿐이다. 



2. 
"한 쪽에는 그 어떤 열정도 생기를 불어넣을 수 없는 무관심한 사람들, 소심한 사람들, 이성적으로 사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감정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논증은 거의 이해할 수 없어 보이며, 감성으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후자들은 늘 유죄를 선고하곤 했다."
- 아나톨 프랑스, <신들은 목마르다> 중에서 

아나톨 프랑스의 장례식이 프랑스 국장(國葬)으로 치러지고 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나톨 프랑스에 대한 기묘한 침묵에 대해, 심지어 아나톨 프랑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시대에 뒤쳐지고 취향이 이상한 사람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 밀란 쿤데라는 아나톨 프랑스를 인용하며, 프랑스 지식인들의 감정적인 비판을 꼬집는다. 

하지만 비단 프랑스 지식인만 그럴까. 위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한국의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을 떠올렸다(실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마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논증하는 듯 싶지만(왜냐면 현란한 이론가를 인용하거나 뭔가 그럴싸한 주의, 주장으로 언어를 구사하기에), 결국엔 감정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판단내리니까. (그리고 한국의 보수적이라는 지식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한국엔 보수란 없다. 보수적 지식인이라고 하는 이들 대부분 한국에선 진보적이라고 봐야할 수준이다) 


3.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은 위대한 유럽 소설가이다. 그의 예술에 첫 번째로 영감을 준 것은 사회적 또는 역사적 호기심이 아니고, 지리적 호기심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실존적 추구이며 진정한 실존적 치열함이고, 이 덕분에 그의 소설은 (내 생각으로는) 소설의 현대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정중앙에 자리를 잡는다. 

바로 인간은 자신의 나이 속에서만 존재하고, 모든 것은 나이와 함께 변한다는 점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지금 먹어가는 나이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나이의 수수께기, 오직 소설만이 밝힐 수 있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다. - 49쪽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Gudbergur Bergsson)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싫어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의 글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름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가령 크세나키스! 


    

- 베르그손이 표지로 나온 책. 그리고 그의 소설, <백조 The Swan>의 영역본 표지. 




4. 
이 책은 밀란 쿤데라의 산문집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한 글에서 시작해, 그가 아끼는 몇 권의 소설과 소설가들, 아나톨 프랑스가 프랑스 지식인들의 작가 리스트에서 기묘하게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한 조소, 지금은 사라진 체코, 프라하의 봄, 망명한 체코 지식인들에 대한 이야기, 크세나키스, 야나체크와 쇤베르크의 음악, 말라 파르테의 소설에 대해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즐거운 이유는 바로 아래같은 이유다. 바르트를 좋아하냐는 프랑스 젊은이의 물음에 대해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좋아하죠.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요! 카를 바르트를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부정신학의 창시자 말예요! 천재예요! 바르트가 없었다면 카프카의 작품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걸요!" - 69쪽 

밀란 쿤데라는 그 젊은이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에 대해 묻고 있음을 알지만, 카를 바르트(Karl Barth)를 이야기한다. 카를 바르트를 모를 그 젊은이를 위해 카프카를 살짝 언급하면서 '너랑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어'라며 속내를 비친다. 이 얼마나 현란한 거부인가! 


5. 
고백하건대, 내가 현재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밀란 쿤데라다. 내가 얼마나 그를 좋아하는지, 이 짧은 산문집을 읽으면서 다시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 김승옥, 르 클레지오, 뒤라스, 주제 사라마구, 이탈로 칼비노를 지나, 밀란 쿤데라.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체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아무리 불어로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에밀 시오랑이 루마니아 사람이듯. 그래서 번번히 후보로만 언급될 뿐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보다 한참 문학성이 떨어지는 모디아노가 받는 그 문학상을 말이다. 일본의 하루키가 받게 된다면, 아, 밀란 쿤데라는 어쩌란 말인가. (내가 알기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는 사무엘 베케트가 유일한 듯 싶다)  하긴 20세기 후반 가장 위대한 소설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도 받지 못했으니. 좀 우습긴 하다. 

 




만남 - 10점
밀란 쿤데라 지음, 한용택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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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Journal de deuil>>를 읽고 있다. 뒤라스, 바르트, 끌레지오, 모디아노, ... 읽지 못한 지 꽤 되었구나. 올해는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다. 




1977년 11월 21일, 롤랑 바르트. 


절망, 갈 곳 없는 마음, 무기력: 그래도 여전히 맥박을 멈추지 않게 하는 건 단 하나 글쓰기에 대한 생각. "그 어떤 즐거운 것". 피난처, "축복", 미래의 계획으로서의 글쓰기,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랑"으로서, 기쁨으로서의 글쓰기. "신"을 향하는 경건함으로 가득한 어느 여인의 가슴 벅찬 감동들 또한 다른 것이 아니리라. 



(새해를 의욕적으로 시작해야 되나, 작년의 영향권 아래서 꽤 힘든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여하튼, 일본에서 나온 책 표지 디자인은 너무 깔끔하다! 사고 싶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 사는 재일한국인 화가 친구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야겠다.) 









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저 | 김진영역 | 이순 | 2012.12.1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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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가에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을 보았다. 여기서 '보았다'는 그 책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의미이지, 그 책을 다시 읽었다는 건 아니다. 반가웠다. 대학 시절 한 번 읽었고, 직장을 다니면서 또 한 번 읽었다. 이번 가을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루쉰(노신)의 마음도 요즘 내 마음 같았을까. 대학시절 '아큐정전'을 읽었으면, 그 짧은 소설이 가진 거대한 힘 앞에서 나는 절대 이런 소설은 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동시에 우리 시대는 루쉰의 시대가 아니므로, 그런 소설을 쓸 생각도 하지 않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세상은 돌고 도는 법. 우리 시대가 다시 이렇게 어두워지리라 누가 생각했을까. 잘못된 것일지라도 과거는 흐릿해지며 아름다워지기 마련이고, 그 과거 화려했던 이들은 다시 한 번 누군가에겐 끔찍했고 비합리적이었으며 심지어 절망적으로 죽음을 불렀던 그 때 그 시절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그리고 말없고 무관심하고 심지어 자신의 일로 닥칠 어떤 일에 대해서도 지금 당장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손사레를 치는 대중은 오직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요즘, 루쉰(노신)은 다시 읽을 만한 작가가 되는 셈이다. 





*** 

2005년 1월 15일 메모한 글. 



노신의 여러 글들을 모아 옮긴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이욱연 편역, 도서출판 창)를 읽었다. 노신의 글들을 벗 삼아 세상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시절 중문학을 전공하신 백원담 교수에게 강의를 들은 이후, 노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다가 최근 홍대 앞 헌책방에서 이 책이 눈에 띄어 구입하여 읽게 되었는데, 대학 때나 지금이나 역시 거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현실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가는 이다. 페어플레이도 그만한 상대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상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추근(秋槿: 중화민국의 여성혁명가)여사가 바로 밀고로 죽었다. 혁명 후 잠시 <여걸>이라고 불리더니, 지금은 입에 올리는 사람도 거의 없다. 혁명이 일어나고, 그녀의 고향에 도독(都督: 군사 책임자)이 부임했는데, 그녀의 동지인 왕금발(王金發)이란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를 살해한 주모자를 체포하고, 밀고 서류를 수집?조사하여 복수를 하려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그 주모자를 석방하였다. 듣자니, 이미 민국이 된 마당에 구원(舊怨)을 새삼스레 다시 들춰내 무엇하겠느냐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2차 혁명이 실패한 뒤, 그 왕금발은 원세개의 앞잡이에게 총살을 당하였다. 여기에 힘을 도운 자는 바로 그가 석방해주었던 사람, 추근을 살해한 그 주모자였다.

그 자는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그러나 그 곳에 여전히 출몰하고 있는 자들 역시 그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이다.

-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중에서, 143쪽


혹자는 문학은 궁할 때 탄생한다고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오히려 궁할 때는 문학이 탄생하지 못합니다. 제가 북경에 있을 때만 해도 곤궁해지면 사방으로 돈 구하러 다니느라 글이라곤 한 자도 쓸 수 없었습니다. 월급을 받게 된 다음에야 책상에 앉아 글도 쓸 수 있었습니다. 바쁠 때 역시 문학은 나오지 않습니다. 짐을 진 사람은 짐을 내리고서야 글을 쓸 수 있고, 인력거꾼은 인력거를 놓고서야 글을 쓸 수 있습니다.

- <혁명시대의 문학>중에서, 213쪽


여기서 조금만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 생계를 도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공산당의 특기라고 떠드는 자들이 있는데, 이것은 큰 착오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이것을 실행하고 있으면서도 단지 입 밖에 내지 않을 뿐입니다. 둘째, 애인을 위로해 주십시오. 그런 것은 혁명으로의 길과는 정반대라는 게 세상의 여론인 듯하나, 이는 개의할 바가 못 됩니다.

- <미래를 지나치게 밝게 본 잘못>중에서, 176쪽


                                       *                                         *

 

노신을 읽고 느낀 바를 조금 적어보려다가 그만 둔다. 차라리 노신의 산문집을 한 번 더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족을 먹여살리지 못하는 소설가를 이웃과 그의 주변 사람들은 쉬지 않고 욕을 해대다가 어떻게 운 좋게 그 소설가가 베스트셀러라도 만들면 '그러게 그럴 줄 알았어'하면서 칭찬해대는 게 사람들이니. 그러면 그 소설가가 대단한 걸까? 나는 그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나는 확실하게 고전주의자이다. 먹여살려야 할 가족이 있다면 그는 돈을 벌어야한다. 어떻게든. 예술은 그 다음 문제다.

 

사람들은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위대하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어느 독재자가 한 사람을 죽일까, 아니면 <모나리자>를 태울까 할 때, 전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 <모나리자>를 선택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나이가 들고 보니, 만 년 전 세상이나 지금 세상이나 크게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죽게 될 것을 조금씩만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산다면 이 세상은 분명 좋은 세상이 될 터인데.

 

희망을 만드는 것은 현실의 고통 때문이지, 미래에 대한 낙관 때문이 아니다. 애초부터 미래란 없어도 무방한 종류의 것이었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 - 루쉰문고 6

루쉰저 | 김하림역 | 그린비 | 2011.07.1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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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오열을 터뜨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가 아니라 오로지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 뿐이다. ... ... 따라서 모든 강박 관념과 상반된다 할지라도 이같은 가증스러운 추함이 없이 지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 조르주 바타이유



과연 그럴까? 하긴 아름다움은 오열을 터뜨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로 인한 상처는 오열을 불러올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바타이유의 말이 맞는 걸까. 그렇게 동의하는 나는 그러한 퇴폐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일까. ... 


아련한 봄날, 외부 미팅을 끝내고 잠시 걸었다. 부서지듯 반짝이는 봄 햇살 사이로 지나가는 도심 속 화물열차. 바쁜 사람들 사이로 새로운 계절이 오는 속도처럼 느리게 지나쳤다. 그 사이로 사람들과 자동차들이 잠시 서고, 시간이 멈추고, 도시는 그 정체성을 잠시 잃어버렸다. 






그러면 죽음에 대한 나의 공포는 삶에 대한 질투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나는 내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을 사람들, 꽃과 여자에 대한 욕망이 살과 피로 된 의미를 갖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을 사람들에 대하여 질투를 느끼는 것이다.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기에는 삶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질투를 느낀다. 

- 까뮈, '제밀라의 바람' 중에서



 얼마 전에 읽은 김경주의 '밀어' 덕분에 몇 명의 저자와 몇 권의 책을 알게 되었다. 까뮈의 저 산문도 알게 되었는데, ... 이번 봄, 까뮈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상으로 내 가족의 생계가 유지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러면 나는 정처없이 피폐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들었다. 그냥 지금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워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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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 - 6점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문학동네



밀어 密語 
김경주(지음), 문학동네 





육체는 선으로 이루어진 풍경이다. 詩가 가장 부적절한 순간에 언어에게서 태어나는 하나의 육체라면, 뛰어난 散文은 그 육체를 감싸며 겉도는 하나의 선이다. 몸의 선은 그 자체로 숨 쉬는 비율이며 튀어오르는 정밀한 뼈들을 감추고 있는 이미지다. 쇄골은 육체가 기적적으로 이루어낸 선線의 풍경이다. 



오래 이 책을 읽었다. 기대되었다. 김경주 시인의 산문. 그것도 몸의 은밀함에 대한 글이라니.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책들과 작가들이 인용되고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그의 산문은 깊이를 더하는 듯했다. 

하지만 내 독서는 금세 실망으로 바뀌고 두서없는 그의 상념들은 그의 우아한 언어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의 시적 감각은 질서없이 흩어지는 봄날 벚꽃처럼 내 눈 앞에서 반짝이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몇몇 문장들과 인용구, 상념의 편린들은 좋았지만, 책은 전체적으로 내 기대에 비해 실망스러웠다. 

여러 잡지에서 만났던 그의 산문이 무척 좋았던 탓에, 요즘 젊은 시인들 중에서 탁월한 시 세계를 보여주었던 시인이었던 탓에, 이 책에 대한 내 평점은 낮다. 이는 이 책에 대한 의도적 깎아내리기가 아니라, 이 책보다는 그의 시집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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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점
에블린 페레 크리스탱 지음, 김진화 옮김/눌와


벽 - 건축으로의 여행
에블린 페레 크리스탱(지음), 김진화(옮김), 눌와 



벽에 대한 짧은 에세이다. 건축가인 저자는 건축물로서, 우리가 마주 보며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벽에 대한 여행과 생각을 조용히 들려준다. 그 목소리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녀가 '벽'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좋은 수필의 밑바닥에는 늘 '사랑'이 깔려있다. 


신체적 접촉을 통해서 얻게 되는 벽에 대한 지각은 차라리 감각적으로 느끼는 기쁨이라고 할 수 있다. 햇볕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벽에 어깨를 기대고 있으면 우리를 받쳐주고 있는 벽의 든든함과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동시에 곧게 서 있는 벽,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벽을 지각할 수 있다.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꼭 침대나 땅 위에 길게 누웠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 11쪽 


벽의 온기... 아마 이런 기억.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다니는 학교 앞에서 한참 동안 기대고 있었던 담벼락. 또는 여자아이가 살던 집 옆 골목길 담벼락에 숨겨져 있던 따뜻했던 느낌같은 것. 

책의 초반은 벽의 재료나 건축적 의미를 묻지만, 책의 후반은 문학적 해석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초반은 딱딱하고 다소 지루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후반은 흥미롭고 재미있다. 

기억이나 꿈, 상상은 벽의 정신적 이미지를, 다시 말해 벽이라는 물성으로부터 거리를 둔 상징적 가치를 가지는 벽을 재현시킨다. 이런 상징적 기능을 통하여 벽은 또 다른 존재성을 가진다. 즉, 벽은 인간과 직접 맺은 물질, 도구적 관계를 떠나 자신을 생각하는 주체를 밖에서 자신을 실현하고 다시 새로운 형태로 상상과 실제 속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107쪽 


우리가 매일 만나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 벽. 눈에 보이는 건축물이면서도, 마음 속으로 뻗어나가는 상상적 공간이기도 한 벽. 두껍고 무거운 벽에서부터 현대 건축물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유리로 된 벽까지. 

이 책은 벽에 대한 짧고 매혹적인 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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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가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일 그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아직도 문학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펼치면서 마치 비밀스러운 과거 - 문학이 모든 것이었던 시절을 다시 만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참 애매하기도 하지. 어떤 시선(視線)들은 문장이 풍기는 향기에 숨겨져 모호해지기만 하니 말이다. 


시선 -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원근법이다. 데카르트적이거나 반-데카르트적이고, 무언가(어떤 대상)를 궁금해하거나 원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적이거나 반-플라톤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참 애매하기도 하지. 어떤 글들은 원근법을 아름다운 안개 - 결국은 모호할 뿐인! -로 숨기고 우리를 이끈다. 


종종 아름다운 글들은 우리들은 아프게 한다. 그건 아름답기만 할 뿐이기에. 


문학 비평은 문학 작품에 기생하고 결국 작품 속에 묻힌다. 내가 안타까운 것은 비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비평이 기생하는 작품에 따라 생사고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내가 문학에서 시작했지만 문학에 가 닿지 못한 이유도 이 탓일까. 


오늘 신형철의 책을 펼치면서 그가 소개하는 여러 작가와 작품들, 나에게 대부분 생소하기만 한 이들 - 몇 명은 술자리에서 만나기도 했고 몇 명은 같이 학교를 다니고 했지만 - 속에서 그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산문집,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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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에 책이 있다.
안치운(지음), 마음산책



시냇물에 책이 있다 - 8점
안치운 지음/마음산책



언제부터 프랑스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때 배웠던 불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나 르 끌레지오? 하지만 그 때 내가 열심히 읽었던 소설가는 헤르만 헤세였는데. … 아니면 먼 훗날의 필립 솔레르스, 로베르 데스노스, … 기억은 꼬리를 물고 빙빙 돌아, 몇 해 전 갔던 파리 하늘 아래로 모여든다.

지하철을 오가며 안치운의 산문집을 읽었다. 웬만한 문학 비평가들보다, 웬만한 소설가보다 뛰어난 산문을 가진 그는 연극평론가이다. 중앙대에서 연극을 공부하고(그는 예술대 선배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다(뜬금없이 고백하건대, 마음 깊이 모교 교수를 하였으면 했던 이가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이 안치운이었고, 나머지 한 명이 남진우였다).

생각은 계속 진전되어, 프랑스 쪽에서 공부를 한 이들이 대체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문장이 서정적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불문학 전공자들 중 뛰어난 문학 평론가들이 많고 작가도 많고 .... (다른 문학 전공자들보다. 아니면 내가 너무 친-프랑스적이여서 그런 걸까)


책은 쉽고 편안하게 읽혔다. 하지만 예전만한 감동이나 몰입을 일어나지 않았다. 안치운의 글은 부드러웠고 적당히 쓸쓸했으며, 어디에서 읽어도 그 공간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 독서는 예전만 못했다. 어느새 내 독서 행위의 표면 위로 굳은 살이 덮인 것일 게다. 그렇게 세상의 먼지가 내 영혼의 세포 사이 사이로 밀려들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은 이런 책을 읽을 때 알 수 있다.

침묵, 그것은 낯선 길이라는 타인과 친해지는 내밀한 상태이며, 귀 기울이는 일이며, 자신의 몸을 낮추는 일이며, 그 길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다. 그리하여 배우는 일이다. - 118쪽



하지만 이 산문집은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좋다. 적당히 쓸쓸한 현대적 삶, 혹은 얇게 쌓인 눈이 한밤의 추위로 얼어 붙은 인도 위의 행인에게 이 책은 적절한 여유를 줄 것이고, 가령 키에로프스키를 좋아한다든지, 아니면 슈베르트, 파스칼 키냐르, 혹은 파트릭 모디아노를 기억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근사한 선물이 될 것이다.

Les objets parlent plus que les mot
사물은 낱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 키에로프스키,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



이 책 속에서 연극을 이야기할 때의 안치운은 행복하나, 어딘가 쓸쓸해 보이고, 종종 힘겨워 보이는 것은 실제 세상-계량적 가치와 돈으로만 움직이는-과 너무 멀리 떨어진 탓이리라. 그리고 그런 쓸쓸함은 파리 풍경 속으로 사라지고 …

몇 해 전 파리, 생 제르맹 거리가 눈 앞에 선하니, 나는 다시 언제 파리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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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과 풍경 - 10점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지음, 엄지영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인상과 풍경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지음), 엄지영(옮김), 펭귄 클래식


독자 제위(諸位). 여러분이 이 책을 덮는 순간 안개와도 같은 우수(憂愁)가 마음속을 뒤덮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책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어떻게 쓸쓸한 색채를 띠며 우울한 풍경으로 변해 가는지 보게 될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지나가는 모든 장면들은 추억과 풍경,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나의 인상(印象)이다. 아마 현실이 눈 덮인 하얀 세상처럼 우리 앞에 분명히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 마음속에서 열정이 분출되기 시작하면, 환상은 이 세상에 영혼의 불을 지펴 작은 것들을 크게, 추한 것들을 고결하게 만든다. 마치 보름달의 빛이 들판으로 번져 나갈 때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 영혼 속에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9쪽)



참, 질투심 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1898년에 태어난 로르카는 정확하게 20년 후인 1918년에 최초의 산문집, ‘인상과 풍경’을 낸다. 그리고 위의 문장들은 그 산문집의 서문의 시작이다. 나는 자주 젊음의 낮고 우울하지만 흔들리면서 뜨거운 감성과 만날 때 전율을 느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개들이 애절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애처로운 탄식처럼 들리던 그 소리는 한밤의 정적 속에서 예언자의 목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개들은 주어진 모습과 운명을 슬퍼하며 누군가에게 소리쳐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에서 솟아 나온 울분의 덩어리 같은 소리가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두려움을 흔들어 깨우자, 온몸에 전율이 지나갔다. 그 울부짖음은 마치, 여성스럽고 낭만적인 달빛이 별들 사이로 은은히 흐르는 무대의 비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독백처럼 들렸다. 한없는 슬픔에 취해 버린 영혼의 통곡, 대답 없는 냉정한 영혼을 향해 던지는 물음, 시름에 잠긴 구슬픈 화음의 노래, 동굴 속에 끝없이 메아리치는 섬뜩한 비명, 성경에나 나올 법한 음산한 저주,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단테풍의 화음(和音), 사유하는 존재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징의 카오스... ... 저 음산한 소리를 듣자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75쪽)



이 글은 이 책이 있음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그 어떤 표현이 더 필요할까). 혹자들이 보기엔 얇은 감상들로만 치장된 이 산문집에 내가 감동받는 것을 의아해 할지도 모르리라. 그러나 문장 깊은 곳에 숨겨지는 뜨거운 우울은 젊은 로르카가 살아가게 될 20세기 초반의 격변을, 그의 생각과 행동을, 그의 운명을 짐작케 했다. 그의 언어는 슬펐지만, 투명하고 아름다웠고 조용했지만, 격렬했다.


침묵은 자신만의 음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본질적으로 침묵의 음악이다...... 두렵기 그지없는 그 문제를 우리는 풀어야만 한다. 우리의 영혼은 찬란히 빛나는 들판 속으로 흐르는 고독을 느낀다. 상상 속에 펼쳐진 붉은 길을 따라 산발한 여인들이 지나간다. 그네들은 우리를 향해 미소 짓는다. 검은 입 속에서 그녀들은 우리의 영혼이 되고, 우리는 그 영혼을 따라 부으며, 언제 깨질지 모르는 꿈속의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미소 짓는다.(217쪽)



내가 이 책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찬사는, 끊임없이 이 책을 읽고 싶다는 것이다. 어느 덧 마흔을 향해 가는 내가, 어느 새 잃어버리고 있는 젊음 날의 뜨거운 우울을 이 책이 다시 가져다 줄 지도 모르는 희망을 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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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이야기
, 소피 칼(지음), 심은진(옮김), 마음산책



자기 전에 소피 칼을 만나다. 그녀가 만든 이미지들 사이로 흐르는 활자들. 하지만 서사적이기 보다는 회화적이길 원하는 그녀의 텍스트들 앞에 서서 이미지들이 움직였다. 섬세하면서도 단조로운 그녀의 산문은 이미지들과 겹쳐져 사뿐하고 경쾌한 운율을 만들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보면서, 박상순과 롤랑 바르트를 떠올렸다. 한 명은 시어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고 한 명은 이미지들로 통해 놀라운 현대적 사유를 보여주었던 사람이었다. 한 명의 시집을 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한 명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소피 칼의 이미지들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진실된 이야기 - 8점
소피 칼 지음, 심은진 옮김/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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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 꿈의 전람회
김영태(지음), 돋을새김




여름날의 거친 숨소리가 세월의 변덕을 닮아가던 날들이 지나고, 새벽의 찬 바람과 매미 울음소리, 화단의 나무소리, 도시의 시멘트 소리가 내 청춘의 아침을 가득 채운다. 어제 반 년 만에 간 강서도서관에서 책 몇 권을 빌려왔다. 그 중 한 권인 < 音, 꿈의 전람회>.

김영태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시집을 갖고 있는 이라면, 시인들의 초상을 그린 화가로 알고 있을 테고, 시를 좋아한다면 그를 시인으로 여길 터이고(문학과 지성사에서도 그의 시집이 여러 권 나왔다), 무용가이거나 무용애호가라면 그를 무용평론가로 기억할 것이다. 어제 도서관에서 잠시 들춘 <객석> 8월호에서 나는 김영태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다. 지난 7월에. 이제 이 책은 사자(死者)의 책(書)이 된 건가.

音, 꿈의 전람회
이 책은 김영태 선생이 음악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 펴낸 책이다. 짤막한 단상, 제법 긴 글, 저널에 실린 듯이 보이는 단평(短評),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무용과 음악(특히 현대음악)에 박학다식한 그의 면모를, 그리고 풍부한 시정으로 사려 깊은 문장들은 그가 뛰어난 산문가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네 시간의 독서
아침에 일어나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해, 오후 1시에 다 읽었다. 그 사이, 에릭 사티를 만났고 아르보 페르트를 들었으며, 많은 음악가, 무용가, 작가들이 열린 내 방 창문으로 들어와 오래된 JBL 스피커로 사라졌다. 이 산문집에는 사심(私心)이 없고 그저 보이는 대로, 그저 들리는 대로, 그저 느끼는 대로, 때론 초고인 듯 보이는 풋풋함이 숨어있다. 그래서 글쓴이의 사사롭고 엉뚱한 시선을 피하고 깊이 있고 뚜렷한 성찰의 결과를 원하는 독자에게 무시당하는 여지도 생기는 법이다. 그러나 이는 취향의 차이일 뿐. 그러한 차이 속에서도 이 책은 참 재미있고 즐거운 산문집이다.


音. 꿈의 전람회
김영태 지음/돋을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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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산문선
폴 발레리 지음, 박은수 옮김, 인폴리오.



솔직히 이 책에 대해 소개하라며 한 시간의 시간을 준다면, 혹은 원고지 30매를 채우라고 요구한다면, 아마 나는 한 시간 내내 책의 일부분을 읽어가거나, 책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을 것이다.

아마 몇몇 이들에게 이 책은 수다스럽고 장황하며 뜻모를 말만 나열하는 책이겠지만, 몇몇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고 아름다우며 읽어가는 도중, 아! 아!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책들 중의 한 권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르시스 칸타타>의 한 구절을 옮긴다. 나르시스를 사모하는 한 님프의 대사다.


가엾게도 ... 내 자매들아, 죽다니? ... 우리는 죽지 않는 여신들,
부질없게도, 부질없게도 죽지도 않고 아름답기만 하니;
우리에게는 사랑도 없고 죽음도 없구나
욕망도 괴로움도 우리를 위해 이루어지지도 않으니;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운명으로만 되돌아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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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위의 세계 (Glass, Paper, Beans)
리아 코헨 지음, 하유진 옮김, 지호





잔뜩 달아오른 아스팔트 거리 위에 한바탕 빗줄기가 밀고 지나간다. 난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 책을 다 읽었다.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의 그 상쾌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잡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에 마지막 부분은 건성으로 책장만 넘기고 말았다. 이 책을 쓴 이에게나 옮긴이에게는 매우 좋지 않은 일이지만.

이 책은 유리, 종이, 커피에 대한 책이며 유리를 만드는 사람, 종이를 만드는 사람, 커피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많은 이야기가 여러 층을 나누어 전개되어 있다. 가령 종이가 생산되는 방식에서부터 종이가 역사적으로 어떤 변천이 겪어왔으며 현재에는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를 잘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난 왜 이 책을 이토록 재미없게 읽은 것일까. 짧은 생각이긴 하지만, 번역한 이의 문장 서술에 있는 듯하다. 특별한 오역이나 부적절한 문장이 있었다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산만한 문장 진행 때문인 듯하다. 어떤 문장은 너무 짧고 내용을 다 담고 있지 못하다.

결국 원서를 사서 읽어볼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번역서임에는 분명하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탁자 위의 세계 - 10점
리아 헤이거 코헨 지음, 하유진 옮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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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내 마음 - 10점
샤를 보들레르/문학과지성사




<벌거벗은 내 마음>, 샤를 보들레르
이건수 옮김, 문학과 지성사



종종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구한다. 이럴 때는 우리 인생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모순으로 가득차있다고 느껴질 때가 대부분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키스를 받고 나선 사내의 트럭이 얼마 가지 못한 채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나 사람과 부딪히거나 몇 년 동안 준비해온 사업이 사소한 법률 조항 하나 때문이거나 어떤 이의 꾐에 의해 모든 걸 날려버리게 될 때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구하기 마련이다.

과연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이런 물음에 이 책은 현명한 답을 주지 못한다. 예술은 무엇인가, 문학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인가 따위의 물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작 이 책의 저자는, “세상은 오해에 의해서만 굴러간다./-모든 이가 의견 일치를 하는 것은 바로 보편적 오해에 의한 것이다./-왜냐하면 만약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한다면 불행하게도 결코 의견 일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보들레르를 읽는 것일까. 참혹하고 끔찍하며 슬픔에도 불구하고 왜 보들레르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다. 보들레르를 이해하고 감동받는 이라면 분명 그는 제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나는 살아간다는 것, 보들레르를 읽는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정확히 말해 살아가면서 보들레르를 읽는 것 말이다. 보들레르의 유려한 독설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하긴 이런 질문보다 먼저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편이 좋겠다. 보들레르의 이 산문집은 재미있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시를 좋아하는 여대생에게도 권하지 않고 보들레르를 연구하는 이에게도 권하지 않는다. 시를 좋아하는 여대생은 이 책을 읽고 거부감을 표시하거나 아니면 쓰레기같은 동경을 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보들레르를 연구하는 이들은 보들레르가 한 문장 한 문장을 적어내려갈 때의 고통이나 번민, 세상에 대한 증오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책은 누가 읽어야하는 것일까. 번번이 실패하는 사랑으로 인해 자살을 마음먹은 사내나 버림받은 여자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즉 세상에서 버림받은 듯한 기분에 휩싸여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무척 유용할 것이다.

자고로 책은 먼저 쓸모가 있어야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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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 10점
이경림 지음/이룸


파란 하늘이 위로, 약 이십킬로미터 정도 끝없는 우주 쪽으로 올라갔다. 그랬더니 조금 넓어진, 또는 매우 넓어진 하늘을 메우기 위해 공기들이 이리저리 재빨리 움직이며 바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해마다 삼월 초면 이런 일이 생기곤 했다. 하늘이 먼저 움직이고 뒤따라 공기들이 움직였다. 옷깃 사이로 공기들이 밀려들어왔다 밀려나갔다. 꼭 파도 같았다.

방 구석 오래된 책장 속에서 '정원'을 페이지 속에 숨긴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숨긴 정원의 크기를 가늠할 방법은 없었지만 내가 책을 들고 흔들자, 우수수 작은 나무며, 푸른 잔디며, 둥글고 맨들맨들한 돌맹이들이 떨어져내렸다. 꼭 한겨울 함박눈처럼 내려 금새 방을 가득채웠고 열린 창을 넘어 골목길을 채우기 시작했다.

정원에 익숙하지 못한 도시의 주민들이 문을 열고 나와 정원을 숨긴 책 한 권을 들고 있는 나에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종일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쓰레받기로 떨어져있는 나무며, 잔디며, 돌맹이들을 책 속으로 집어넣어야만 했다. 몇 시간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돌맹이 하나가 바람에 밀려 하늘로 올라갔다.

바람이 조금 더 세게 부니까, 나무며, 잔디들도 따라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로 올라가 싱그러운 향기를 뿌려댔다. 무척 좋은 향기다. 삿대질을 하던 주민들도 나와 그 향기를 맡으려고 했다. 그건 좋은 글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기였다.

오랫만에 무척 좋은 향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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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한길사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다고 느낄 때, 진정으로 그러하다고 느낄 때, 그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란 몇 가지 밖에 없다. 그 첫 번째가 죽음이며, 그 두 번째는 죽음이 무서워 벌벌 떨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정도. 그 외에도 있겠으나 내가 아는 바는 이 두 가지뿐이다.

그러니 그-루소-가 정말 '고독'했는지는 두고볼 일이다. 이 책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루소의 두 가지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다. 하나는 그 나쁜 놈들, 자신을 미워하고 모함했던 자들에 대한 증오이며 나머지 하나는 그 증오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산책'이란 삶의 거친 풍랑 속에서 살아남은 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행위들 중의 하나이다. 루소의 산책은 그러한 매력이 그저 산책이라는 행위로 기인된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 논리와 감정, 합리와 모순 사이에서 갈등하며 스스로의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정신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제 나는 이 지상에 혼자다. 오직 나 자신뿐, 형제도 이웃도 친구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애정이 넘치는 한 사람이 이렇게 그들에게서 만장일치로 추방되었다."


"행복이란 이승의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지 않은 어떤 항구불변의 상태다. 지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아무 것도 불변의 형태를 갖지 못한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우리 자신도 변한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가 오늘 사랑하는 것을 내일도 사랑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처럼 인생을 위한 우리의 모든 지복의 계획들은 망상일 뿐이다."


아무렇게나 인용한 두 단락 속에서 루소가 바라보는 세계관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관과 대치되는 곳에 '산책의 세계관'이 위치한다. '자연관'이라고 해야 더 옳을 듯한 루소의 그 세계는, 솔직히 나에겐 별 호소력 없는 세계다. 그건 늙은이의 세계다.

이렇게 말해도 옳다면 실존의 세계에서 방황하다 존재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나온 세계관이라 칭하고 싶다. 난 끔찍하기 그지없는 실존의 세계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루소의 '산책의 세계관'은 감동적이지 않다. 차라리 그의 증오가, 그의 미움이 더 매력적이다.





고독한산책자의몽상-개정

장자크루소 저 | 김중현 역 | 한길사 | 2011.01.07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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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책'이란 삶의 거친 풍랑 속에서 살아남은 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행위들 중의 하나이다." 멋진 문장입니다. 지하련 님의 글을 보고 있자니, 어쩔 수 없이 이 책이 보고 싶어지네요.^^

    - 현선 드림

    • 읽어볼 만합니다. 루소가 워낙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해요. ^^~. 이 책을 읽은 지도 꽤 되었네요. 올핸 루소의 다른 저서 한 권 정도 읽어야겠군요. 그리고 너무 과찬이세요. ^^ 이 책을 쓸 당시 루소의 처지가 그랬고, 그걸 문장으로 적어본 것에 불과합니다. ㅎㅎ

  • 2014.01.24 18:41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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