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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척 맨지오니의 저 LP가 어디 있는가 찾다가 그만 두었다, 술에 취해. 몇 해 전 일이다. 혹시 결혼 전 일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술에 취한 채 이 LP를 찾았는데,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사이 나이가 든 탓에 찾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도 있다'서술어이 가지는 느낌은, 젊었을 때는 '가능성'이었으나, 나이가 들면 무너진 터널 앞에 서 있는 기차같다. '수도 있다'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무모하게 시도했다는 의미다. 가령, '그녀와 키스할 수 있었는데', '그녀에게 고백할 수 있었는데', 혹은 '사랑하던 그를 붙잡을 수 있었는데' 따위의 표현들과 밀접한 연관를 갖는다.


결국 생명이란 생명의 지속과 연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그 시작은 작은 만남과 사랑으로 포장될 것이다.


 '수도 있다'는 서술어의 사용은, 아쉽다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건 가능한 일이었음을 주장하기 위한 첫 계단이다. 애초 불가능한 것에 대한 도전(무모한 시도)을 가능성의 회상으로 바뀌고 기적의 출현(열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결국 나는 LP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고 대신 다른 LP를 찾아 틀었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오역이지만, 그렇게 굳어진)의 '러브이데아'를 들으며 제니퍼 제이슨 리가 분한 트랄라를 떠올린다. 


결국 삶이란, 우리가 어떻게 어긋나는가를 하나하나둘 되새기며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되새기지도 않고 죽는 이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저녁, 몇 주 동안 계속된 치통과 함께 불안한 미래는 장막처럼 내 앞에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Feels So Good', 'So Go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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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짬뽕을 폰 카메라로 찍기란 쉽지 않았다. 임시로 있는 사무실 근처 중화요리점에서 짬뽕에 이과두주를 마셨다. 붉은 색으로 장식된 벽면 아래 짙은 갈색 나무 무늬 테이블과 검정색 천이 씌워진 의자에 앉아, 바람과 오가는 사람들에 흔들리는 출입문을 잠시 보았다. 





이것저것, 그냥, 잠시, 보는 시절이다. 정해져 있지 않아 자유롭고 정해져 있지 않아 불안한 시절이다. 자유와 불안, 혹은 두려움은 등가적 관계를 이룬다. 최초의 인류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가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자유 속에 깃든,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도 함께 가지고 왔다.


하지만 중년이 되자, 자유는 보이지 않고 불안과 두려움으로만 채워졌다. 마음 속에서, 육체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 술로 태워지고 술로 열광하고 술로 위로받는 건 자유와 사랑, 순결과 불륜이지, 불안과 두려움은 아니었다. 





선사시대 우연히 발견되었을 술은, 인류에게 두 번째로 값진 선물이다. 그래서 나는 어김없이 짬뽕에 독주를 마신다. 싸구려 독주를. 


이과두주. 이 술은 중국 사람들에게 소주와 비슷한 술이다. 실은 소주보다 더 싼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평균 56도. 



출처: 성학주류 홈페이지(http://www.sunghak.com/)


예전에 마셨던 이과두주는 나쁘지 않았는데, 최근에 마신 이과두주는 알콜 냄새가 심하게 났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그런 걸까. 어느 주류 회사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온 이과두주 사진이다. 차례대로 알아보면 아래와 같다. 



1. 홍성이과두주(55도, 유한회사 금용 수입)

3.우란산이과두주(56도, Niu Lan Shan Er Guo Tou Jiu,100ml (주)풍원주류 수입 )

4.우란산이과두주(56도, Niu Lan Shan Er Guo Tou Jiu, 125ml (주)풍원주류 수입 )

2(?)/5. 천진식품 제조 이과두주((유한회사 금용 수입)) 



우란산이과두주를 마셨는데, 맞지 않았다. 조만간 다른 이과두주도 마셔볼 요량이다. 


십 수년 전 크리스마스 근처, 대학원 시험을 떨어지고 짬뽕 국물에 이과두주를 마시고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런데 그 때 대학원엘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때로는 떨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학문으로 유리된 세상 속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채, 고귀한 언어의 자존심만을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 때 나와 함께 술을 마시며 나를 위로해주시던 분은 계속 공부를 하셨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글을 쓰시지만, ... ...어느 방향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결국 어느 게 정답인지 모를 땐 자신이 정하는 게 정답인가. 





그리고 나는 짬뽕을 집에서 해 먹었다. 재료의 부실함으로 인해 마법의 가루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나름 선방했다. 다음 주부턴 여의도에서 프로젝트 PM을 맡기로 했다. 준비 중인 사업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해졌고, 이 지지부진과 무관하게 경제적 삶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책 읽고 음악 듣고 글을 쓰는 삶을 한 때 동경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한 것은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는 이들의 무능함 때문이었다. 춘추전국시대에 난립했던 무수한 사상들은 학문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었지만, 지나친 학문 논쟁과 쌀 한 톨 만들지 않으면서 사사건건 중앙정부의 정책에 토를 달던 학자들이 싫었던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통일되었으나, 사상적으로는 통일되지 않았고, 통일할 생각도 없었던 셈이다. 무술이라면 싸움이라도 해서 결판을 낼 수 있었지만, 사상과 학설은 이와 같지 않았다.  이후 시간이 지나, 한 무제에 와서야 유교로 사상적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무언가 만들고 생산하며 기여하는 삶. 이게 좋다. 그건 사적인 차원에서 쓰여지는 글 이상이어야 한다. 무언가 생산할 수 있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글이라면 괜찮을 게다. 그런데 그런 글이 어디 쉽나. 잡글이 길어졌다.

*     *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책 <<투명사회>>를 읽기 시작했다. 결국 한병철의 책 두 세 권을 더 구입했다. 그가 한국에 있었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한국에도 한병철 교수 정도 내공이 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독일적 환경 아래에서 다른 일상을 보내며 고민했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글이라 여겨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런 글을 쓰지 못한다. 아니 쓸 수 없다. 우리가 마주치는 한국 사회의 일상은 구한말 조선 시대지, 21세기 유럽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은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제 3 세계 한국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만의 고유한 시각, 고유한 해법, 고유한 이론이 나와야 하지만, 인문학은 이미 수입 보따리 상이 되어버렸거나, 아니면 조선 시대의 성리학이나 또는 동양의 고전들을 들이대거나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나는 반대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늘 확인받고 싶어하고, 나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이 세상 한 명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그리고 이게 현대인이다. 한병철 교수는 <<투명사회>>에서 노출된다는 것에 대한 폭력성을 지적하지만, 우리는 노출됨으로써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음을 그는 알지 못한다. 그 위안에 주목하지 않고, 왜 우리는 그 위안에 몸을 맡기게 되었는가를 묻지 않고 투명사회의 한 부분으로 지적하며 그것의 폐해만을 드러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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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번 홈*러스서 팔아서 마셔봤는데 예전 마신 이과두주같지 않게 공업용 독한 향이 심하더군요 잘 보고 갑니다

    • 마트보다는 중국 식품 전문점이 좋은 것같아요. 이과두주도 여러 종류를 가져다놓고 좋은 술로 달라고 하면 주네요. 가격도 큰 병도 1병에 만원을 넘지 않네요. ~ ㅎㅎ

  • 다른 사람들이 나에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너무 마음에 드는 말이네요.

    저것도 읽어봐야겠에요.

    • 아.. 그러고 보니, <<투명사회>>는 읽다 말았어요. ㅜㅜ.. 너무 바빠지는 바람에. 이번 일이 끝나면 다 읽어야겠군요. ~




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선가, 누군가가 나에게 술 마신 걸 마치 전쟁에서 겪은 전투이냥 이야기한다며 지적했다. 하긴 그랬다. 그래, 지금도 그렇지. 

하지만 간이 좋지 않다는 건 가족을 제외한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보니, 1주일에 한 두 번으로 술자리를 줄여도 힘든 경우가 많아졌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것이라, 마음이, 인생이, 사랑이 답답할 때면 술이 생각난다. 





아무 말 없이 술잔만 봐라봐도 좋다. 이쁘다. 영롱하다.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의 입술같다. 앞으로 사랑하게 될 그녀의 볼같다. 


어쩌면 지금은 읽지 않는, 과거의 흔적, 상처, 씁쓸한 향기같은 추억,처럼 밀려든다. 어떤 술은. 






세월은 참 빨리 흐르고, 술맛은 예전만 못하다. 마음따라 술맛도 변하고 사랑따라 술잔도 바뀐다.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으며 벗들과 술 마신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거리기만 하다. 그렇게 술잔, 혹은 술 속으로 추억이 빠지고 마음이 빠진다. 





텅 빈 잔을 보면서 술에 대한 생각을 시작한다. 죽음과 가까워질 수록 내 눈도 침침해지고 내 마음도 어두워진다. 사랑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는다. 열정은 굳고 몸은 느릿느릿 앉아 쉴 수 있는 공원 벤치를 찾는다. 그리고 예고 없이 겨울은 올 것이다. 


... 내가 기억하고 나를 기억해주던 사람들이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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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앤세바스티안 신보를 사지 않은 지도 ... 몇 년이 지났다. 


'젊음'에 대해 게을러지는 순간, 우리는 늙어간다. 락을 들은 지도, 몸을 흔든지도, 맥주병을 들고 술집 안을 이리저리 배회한 지도 참 오래 되었다. 


시를 외워 사람들에게 읊어준 지도, 새로 나온 소설에 대해 지독한 악평을 한 지도, "그래, 세상은 원래 엉망이었어"라며 소리지르곤 세상과 싸울 각오를 다진 지는 더 오래 되었다. 


이 노래 들은 지도 참 오래 되었구나.







포티쉐드다! 중간에 베스 기븐스가 담배 피우며 노래 부르는 장면은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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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그런데 '젊음'에 대해 게을러지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할까요??
    아이돌 음악이라도 계속 들어야 할까요..;;;
    젊음이 참 그리워지는 순간이네요.

    • 그러게 말이예요. '젊음'에 대해 게을러지지 않기 위한 물리적 환경 조성이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고 있어요. ㅡ_ㅡ;;; 자주 20대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20대들이 거부하더군요. ㅜㅜ;;; 25살의 봄날이 그리워지네요. ...


There's no magic in street fighting. Street fighting may be lethal, especially when one guy is bigger and stronger than the other. But boxing is designed to be lethal, designed to test lethally the male will of both fighters, designed to see who's boss, who will stake out and control the magic territory of a square piece of enchanted canvas. 

- F.X. Toole, Million Dollar Baby - stories from the cornerECCO(HarperCollinsPulishers), 2000, 7쪽 


'사각의 링'이라는 비유를 자주 사용하곤 하는데, 최근 읽기 시작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삶이란 '사각의 링 위의 복싱'이 아니라 '길거리 싸움'이기 때문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may be lethal'이라는 문구와 'is designed to be lethal'이라는 문구의 차이를 보다 생생하게 느끼고 싶은데 쉽진 않다. 


종이 울리면 실컷 맞다가도 잠시 쉴 수 있지만, 길거리 싸움에선 피를 흘리며 쓰러져도 발길질은 깨진 얼굴과 뒤틀리는 복부에 끊이지 않은 테니, 우리 삶은 길거리 싸움에서 늘 맞는 쪽일 것이다. 


날은 춥고 햇살은 가지런하기만 하다. 아이는 잠이 들었고 몇 주만에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 턴테이블에 수십년이 지난 존 바에즈의 Best 곡 모음집 LP를 올리고 잠시 상념에 잠기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채 가시질 않는다. 우리 시대는 과거는 쉽게 잊어버리고 현재는 발목을 잡고 미래는 차마 오지 않았으면 하는 어떤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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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병 2013.12.30 04:28 신고

    마지막 문단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평안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연말입니다. 그렇행복한 연말 되시고요~.



한동안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날 밤 꿈 속 사건을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여기며, 며칠 지내다가, '아, 그건 꿈이었지'하는 식이었다. 다행히 그건 몇 달 가지 않았고 그것으로 인해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단지 더 쓸쓸해진 것 뿐. 


대한민국의 회사원들이, ... 아니 지난 수십년 간 IT 기술에 기반한 급격한 정보화,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쟁의 격화로 인해 OECD 대부분의 국가 지식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심해졌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해졌다. 나도 나이가 들고 직무가 늘수록 그런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있다. 그렇게 늙어가고 있었다. 


출근길 카페에 들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사왔는데, 마실수록 속이 쓰려오는 것이 내 현재를 말해주는 것 같기만 하다. 


잠시의 위안을 얻기 위해 사진을 뒤진다. 그리고 ... 레티티아 몰레아르 Laetitia Molenaar. 에드워드 호퍼의 세계가 이 세상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가다. 



충무로 사진 축제 때 극동빌딩에 전시되었던 모습. 


아래는 실제 작품 사진. 

Second Story Sunlight, 2012 © Laetitia Molenaar 

http://lejournaldelaphotographie.com/entries/9529/laetitia-molenaar-here-comes-the-sun 




Summer Evening, 2012 © Laetitia Molenaar



저 작품 사진 속에 내가 들어간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세계다. 19세기말 유미주의자들의 세계. 삶은 예술을 닮아가다가 예술 속에 묻힌다. 보드리야르는 그것을 시뮬라크르라고 말했지. ~... 마치 쓸쓸함 속에 우리가 묻혀 침묵 속에 살아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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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하는 이유 - 10점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사계절출판사



살아야 하는 이유, 강상중(지음), 송태욱(옮김), 사계절




결국 우리는 각자 자신이 꿈속에서 제조한 폭탄을 껴안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는 게 아닐까. 다만 어떤 것을 껴안고 있는지 다른 사람도 모르고 나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내 병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유럽의 전쟁도 아마 어떤 시대부터 계속된 것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나갈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계속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 나쓰메 소세키, <<유리문 안에서>> (산문집) 중에서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9)이 번역되어 나온지도 몇 년이 지났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깨달았다. 그 사이 일본의 지진이 있었고 절망적인 원전 사태가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우리와 적대적일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의 전작 <<고민하는 힘>>과 함께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다. 


그는 이번에도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 특히 나쓰메 소세키에 의존하며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이 설명은 독자를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강상중 교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를 인용하면서, '거듭나기twice born'에 기대어 고통스러운 번민과 나락으로의 절망이 새로운 앎을 열게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전작 <<고민하는 힘>>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윌리엄 제임스)는 '건전한 마음'으로 보통의 일생을 끝내는 '한 번 태어나는 형once born'보다는 '병든 영혼'으로 두 번째 삶을 다시 '거듭나기'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 121쪽 


책은 짧고 단단하다. '사랑은 상대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181쪽)처럼 자신을 포함한 세상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아가길 주문한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테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윌리엄 제임스는 19세기 말에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은 틀림없이 종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러한 장에서는 "'자연의 법칙'이 '숭배되어야 할' 것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즉 과학이 신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112쪽 


이는 계량적 세계의 질서처럼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종교적인 질문, 형이상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강상중은 신을, 종교를 부정하는 도킨스, 히친스 대신 <<신을 옹호하다: 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의 테리 이글턴의 편에 선다. 결국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의미를 구하는 현대인에게 과학은 의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한다." 

-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 중에서


이번 겨울, 이 책은 흔들리는 현대인을 위한 작은 조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나쓰메 소세키, 막스 베버로 이어지는 작은 독서 여행의 시작이 되기를! 


강상중 교수 (출처: 강상중 교수 홈페이지) 



<<고민하는 힘>>에 대한 서평

2011/12/26 - [책들의 우주/문학] - 고민하는 힘, 강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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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장을 입었다. 타이를 매고 흰 색 셔츠를 입고도 어색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내 스스로가 낯설어졌다. 하긴 지하철에 빼곡히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절망감에 휩싸였던 20대를 보낸 나로선, 지금의 내가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내 마음 속 또 다른 나 자신에게. 

며칠 만에 제안서를 끝내고 프리젠테이션까지 했다. 작년 초에 한 번 하고 거의 1년 만이다. 누군가 앞에서 나서서 뭔가를 하는 것을 지독히 싫어했는데, 이제 내가 책임을 지고 뭔가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 왔다. 

며칠 전 TV를 보는데, 김기덕 감독의 거처가 나오고 김기덕 감독의 일상을 보여주었다. 그걸 보던 아내가 날 보더니, '당신도 저렇게 살고 싶지?'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나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저 정도로 지저분하게 해놓고 지내진 않아'라고 말하곤, 잠시 후 약간의 후회를 했다. 하루 종일 음악 듣고 책 읽고 그림 보고 글 쓰며 살고 싶은 건 사실이긴 해도, 가족이 있다는 건 그것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Villa-Lobos의 음악을 듣는다. 라틴의 슬픈 음악에는 ... 뭐랄까, 쓸쓸한 바다 내음이 난다. 그 전날 데낄라를 잔뜩 마시고 취해 해변에 쓰러져 자다가 일어난 새벽,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끝없는 수평선의 바다만 펼쳐져 있을 때 들리는 음악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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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인의 하루.. 웬지 씁씁하지만 책임감을 느낍니다^^

    • 나이가 든다는 건 세상을 넓게 보고 주위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책임감은 무척 중요한 것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책임감이야말로 우리를 지탱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ㅋ.



가끔, 아주 가끔 ... 그렇게 참고, 참고, 또 참고 ... 시간이 지나간다. 


모든 것들이 선연히 보일 때, 정작 움직이지 못한다. 왜냐면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현명한 해답은, 늘 그렇듯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 


지난 주 목요일에 걸린 목감기(인후염)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고. 잠을 8시간 이상 자는대도, 사무실에 오면 졸린다. 그간 쌓인 스트레스와 과로가 꽤나 심각한 모양이다. 


이래저래 주변이 시끄럽고 어수선하기만 하다. 하지만 내 꿈은 단연코 '멋지게 사는 것'이었다. 


청춘은 비에 젖지 않는다. 나는 청춘이고 싶다. 

하지만 술에는 젖지, 아름다운 청춘은. 


** 



어제 배달되어 온 LP 관리 용품들이다. 크리닝 매트, 판솔, LP 스프레이. 이제 상점에선 구하기 어렵고 인터넷으로 힘겹게 구한 녀석들이다. (실은 있는지 몰랐다. 오프라인으로 한참 구하다가 포기하였으니..) 


이번 주말 신나게 음악을 듣고 싶지만, 원고 2편을 써야 하고, 시험을 봐야 하며, 친척의 결혼식 때문에 제천까지 내려가야 한다.


2012년 5월달, 6월달, 정말 힘들다. 화끈하게 좋은 일 좀 생겼으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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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전략? 실은 전략이랄 것도 없다. 지금보다 나이가 적었을 땐 제 멋에, 잘난 맛에 살았고, 굶어죽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만큼 무책임한 표현도 없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살지 않는다. 그러나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말을 상투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우리들은 종종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를 잊는 것이다. 


어쩌면 잊고 싶을 지도 모를 일.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삶은 없다.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못할 삶도 없다. 이 두 가지 삶 사이의 작은 길이 우리 삶의 길이 된다.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서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하니, 우리 일상은 한 없이 피곤해지는 것이다.


한 회사에서 이제 4년이 다 되어 간다. 조직 구성원도 두 배가 되었고 일도 많아졌다. 그리고 문득 내 위치를 생각해보게 된다. 스스로 이력서를 제출해 직장을 옮긴 적이 한 번도 없고, 구직 활동이랍시고 한 게 딱 두 번 있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로 사람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면접을 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팀원을 뽑을 때도 그렇다. 아직 작은 회사라 많이 지원하지도 않고 '사람 인연은 하늘의 뜻'이며, 대체로 기업에서 원하는 업무 능력은 제대로 가르쳐 주면 못할 사람은 거의 없고, 만일 못한다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려는 탓이거나 시간이 부족한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성격이 더 중요하다. 거짓말 하지 않을 것, 즉 모르거나 못하는 일은 그대로 이야기할 것. 자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것. 무조건 노트하고 메모해서 정리해 둘 것.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팀원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꽤 조심스럽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겪어보기 전엔 알 수 없으니, 알 수 없는 것이고, 그건 그냥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상식적인 것에 해당되는 것이니 말이다. 더구나 면접같은 것에서 나를 포장해본 적 없고, 심지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 다른 세계에서 과연 강조되어야 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확신도 없다. 솔직히 말해 내가 면접을 당하는 입장에서 나를 알리는 일만큼 얼굴 화끈거리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B2C나 B2B 서비스의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실행안을 마련한다.


이렇게 보면 살아가는 건 참 재미있기도 하다. 오늘은 문득 팀원들에게 서양 지성사나 서양 미술사 강의를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 인문학이 유행이라는데, 그런 이벤트 한 번 해주면, 지금 당장은 도움이 안 되겠지만, 먼 미래를 위해선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고민하는 힘' - 얼마나 깊이, 얼마나 오래 생각하고 결론나지 않을 듯한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가가 우리의 노년을 얼마나 윤택하게 만드는가를 잘 알기에, 아주 엉뚱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진리란 있는가?', '아름다운 사물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이나, '왜 추한 것이 현대 미술 속으로 들어왔는가?'와 같은 미술에 대한 주제도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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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은 많은데, 정작 다른 생각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문서 작업 조금 하고 새벽에 일어나 정리하고 고객사 미팅을 준비해야 겠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고, 나에겐 두 분의 스승이 있는데, 두 분 다 나로선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공부를 하신 터라,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책 한 권 내면, 저자 서문에다 두 분의 은혜를 이야기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마음과 무관하게 책은 커녕, 공부도 못하고 원고 쓸 시간도 없어졌다. 한 분과는 연락이 끊어진 상태이고 한 분과는 아주 가끔 연락을 하고 있으니, 이렇게 예의없는 학생도 없을 것이다. 내 스스로 공부에 불성실하진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더라. 


아무리 많이 알아도, 생의 정답은 없고, 내가 배운 것은 없는 정답 대신 정답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것이다. 그걸 나는 대학 밖에서 배웠고 책 밖에서 배워, 책 속에서 그것의 실마리를 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의 정답이 왜 없는가'를 찾는다고나 할까. 너무 현대적인가. 


아, 이제 일을 좀 해야 겠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요즘 읽고 있는 플라톤  '향연'의 한 구절을 옮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앉으면서 말씀하셨다고 하네. "참 좋을 것이네, 아가톤. 지혜가 우리가 서로 접촉할 때 우리 가운데 더 가득한 자에게서 더 빈 자에게로 흐르게 되는 그런 거라면 말일세. 마치 잔 속의 물이 털실을 타고 더 가득한 잔에서부터 더 빈 잔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네. 지혜도 이런 거라면 난 자네 옆에 앉는 걸 아주 귀중히 여기겠네. 나 자신이 자네에게서 나오는 많은 아름다운 지혜로 채워질 것으로 믿으니 말이세. 내 지혜는 보잘것없고 꿈처럼 의심스런 것이지만 자네 지혜는 빛이 나며 많은 늘품을 갖고 있거든. 바로 그 지혜가 젊은 자네에게서 그토록 맹렬하게 빛을 발하며 밝게 빛나게 되었지. 엊그제 3만이 넘는 희랍 사람들이 증인이 된 가운데 말일세."

"도가 지나치십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하고 아가톤이 말했네. 

- 플라톤, <<향연>>, 175d (강철웅 옮김,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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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 권의 책을 아마존에서 구입했다. 한글로 된 책도 밀려 쌓여있는데, 영어로 된 책을 세 권이나 주문했으니. 당분간 책을 사지 않고 쌓인 책들만 읽고 밀린 리뷰를 올려야 겠다. 


오늘 온 세 권의 책은 아래와 같다. 


루이 뒤프레(Louis Dupre), Passage to Modernity 

아서 C. 단토(Arthur C. Danto), Andy Warhol

도널드 바셀미(Donald Barthelme), Sixty Stories 


집에 와, 루이 뒤프레의 책을 잠시 읽었는데, 어디선가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오래 된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기초'라는 책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된 적이 있었던 학자였다. '모더니티의 길'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법한 이 책은 모더니티를 지성사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책 뒤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Did modernity begin with the Renaissance and end with post-modernity? In this book a distinguished scholar challenges both these assumptions, discussing the roots, development, and impact of modern thought, tracing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modernity to the late fourteenth century, and affirming that modernity is still an influential force in contemporary culture. 



14세기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는, 모더니티의 흐름(passage)를 고찰하면서 현재 진행형으로서의 모더니티를 되새기고 있다. 무척 흥미롭다. 루이 뒤프레 스스로 서문에서 다소 거칠게 씌여졌다고 인정할 정도로 기존의 모더니티 연구서와는 다른 면모를 가진 책이다. 그런데 언제 다 읽어?


아서 C. 단토의 'Andy Warhol'은 열받아 구입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해선 몇 주 전에 한 번 포스팅한 적이 있고, 또 다시 포스팅할 예정이다. (관련 포스팅: 2012/04/01 - [책들의 우주/예술] - 아서 단토의 앤디 워홀?? ) 이 책은 이미 번역되어 있는데, 그 번역서의 실체가 너무 황당해서 실제 단토의 책을 확인하고자 책을 구입한 것이다. 순수 미술책이 아무리 안 팔린다고, 미술 전문가가 굳이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상식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나는 책을 낼 수 있는 그 대담한 용기를 다시 확인하고자 실제 책을 구입했다. 


도널드 바셀미를 알게 된 것은 이미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다. 그 사이 번역된 것은 몇 편의 단편 소설 뿐이었고, 원서는 대학 도서관에서도 구하기 어려웠던 터라, 번역된 몇 편의 단편에만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바셀미를 다시 읽기로 했다. 나도 좀 자유로운 처지라면, 하루키 처럼 소설을 번역하면서 내 소설 구상도 해볼 수 있을 텐데, 그럴 형편은 안 되고, 열심히 읽기라도 할 생각이다. 소설 앞에 David Gates의 소개가 있는데, 이는 한 번 번역해서 포스팅을 해봐야겠다. 


벌써 11시 40분이다. 요즘은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 주일이, 한 달이, 쏜살같이 지나쳐간다. 어찌된 영문인지, 여유 부릴 틈도 없다. 주위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술 한 잔 하면서 지내고 싶은데 말이다. 봄이 가기 전엔 한 번 만날 순 있겠지, ... 그렇게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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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글을 쓰다 ... 프린트한 종이 더미 사이에 넣어버렸다. 혼자 쓰는 글이라는 마감 같은 있으리 없고, 돈벌이도 아닌 탓에, 쓰다만 개의 , 쓰다만 개의 소설은 계속 짊어진 하루하루 살고 있는 셈이다.

오늘은 사무실에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가지고. 어제 들기 전에 서두와 역자 후기를 읽었고, 한동안 가방 속에 머물게 것이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존재론의 새로운 >> 읽다가 '철학자가 처한 현실' 그것에 대한 사유와 실천의 관계 등에 대해 생각했고,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까지 이어진 것이다.

작년 헤겔의 <<법철학>> 서문을 다시 읽었고, 뭐랄까, 뭔가 답답함을 느꼈다고 할까, ... 그런 기분을 느꼈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개념적 파악을 위해 정치적 현실을 논리화해 버렸다고 비판한다. 헤겔에서는 "사유를 정치적 규정들 속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전하는 정치적 규정들을 추상적 사유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이다. 사태의 논리가 아니라 논리의 사태가 철학의 계기이다. 논리가 국가를 증명하는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논리를 증명하는 봉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르크스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헤겔의 <<법철학>> 이러한 비판을 받을 만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 강유원, '옮긴이후기' 중에서



그런데 지적은 철학 전반에 걸쳐 이루어질 있는 아닐까. 하르트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철학은 존재자에 대한 앎이 없이는 실천적인 과제에도 접근할 없다. (중략) 사실 모든 기술은 자연의 법칙성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성립한다. 마찬가지로 의술은 생물학적인 지식 위에, 정치술은 역사적 지식 위에 구축된다. 철학에 있어서도 사정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대상이 보편적인 ,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계 전체를 포괄한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조바심을 누르고 숙고의 길을 찾으며 또한 뒤로 멀찍이 물러서는 또한 서슴지 않는 , 요구 사항이 시급하고 과제가 절박했을 때조차 바로 그렇게 했던 것이 언제나 독일 정신의 강점이었다'
- N. 하르트만, <<존재론의 새로운 >> 중에서



현실에서 뒤로 떨어져 사태를 관망하고 사유하고 반성하는 . 그것이 철학의 길인 셈이다.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의 사상으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형성과정을 종료하여 확고한 모습을 갖추고 다음에야 비로소 시간 속에 나타난다.(Als der Gedanke der Welt erscheint sie in der Zeit, nachdem die Wirklischkeit ihren Bilduingsprozess vollendet und sich fertig gemacht hat.)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ammerung ihren Flug.)
- 헤겔, <<법철학>> 서문 중에서(임석진 , 한길사)



이제서야 철학과 실천 사이의 묘한 긴장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셈이다. 앞의 사태를 두고도 철학자는 사유한다. 그 사태가 끝날 무렵에서야 뭐라고 말하지만, 이미 현실적인 사태는 끝이 나 있을 무렵이고, 정리정돈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때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어떤 이가 와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참견을 한다. 현실 속에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힌 사람들 사이로 들어와선. 그런데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이것이 '독일 정신의 강점'이라고 이야기하며, 그 이전의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에서 마르크스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현실 앞에선 아무 것도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는 독일 정신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실 한 가운데에서 정확한 판단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실은 현실 한 가운데에서도, 현실의 변두리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게 현대 이론의 정설이다. 그러니 현대란 반-이론의 시대이고 합리적인 것들이란 믿을 수 없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으며, 의사결정이란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뒤로 유예되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반-헤겔주의와 반-마르크스주의가 동시에 휩쓴 시대라고 할까. 그러니 이론과 실천이라는 테마도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버렸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관찰한다는 것이고 관찰하는 것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철학자들이 걸어온 길을 되새기는 것이며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하여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되지만, 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것 또한 철학이기도 하다.

결국 남는 건 나이고, 내 삶이고, 내 사유뿐이다. 그것이 시뮬라크르로 남든 간에. 그래서 이제서야 철학책이 제대로 읽히는 것일까. 

 


* 위에서 언급된 책들 
헤겔 법철학 비판
칼 마르크스 저/강유원

법철학
G.W.F 헤겔 저/임석진

니콜라이 하르트만 저, 존재론의 새로운 길, 손동현 역, 서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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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이 시작되었고 하루하루 지났다. 세상은 각자의 관점 속에서 완성될 것이고 라이프니츠가 말했듯 그것은 모나드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모나드는 동일하지 않아서 어떤 이들의 모나드는 덩치가 있거나 어떤 이의 모나드는 금이 가 있거나 하는 식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이를 '모나드'monad로 명명하면 안 되겠지.

흄의 문제(귀납법적 문제) 앞에서 경험되는 정보를 무한대로 쌓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론(진리, 혹은 이데아)의 근사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000일 동안의 우호적인 세상 속에서 우리는 결코 1001일 째 되는 날의 비우호적인 세상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IMF 이전과 IMF 이후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이 비극적인 블랙 스완 앞에서 무수한 비정상적인 일들이 정상적인 일들로 포장되었고 그 이후는 아무렇게 일어나는 일이 되었다.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들 수시로 직원을 구조조정하게 되었고 헤드헌팅 시장이 본격화되었다. 셀러던트가 시작되었고 정체 불명의 학위였던 MBA가 각광받는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2년이 되었다. 내가 대학을 들어간 지 꼭 20년이 되었다. 전공은 문예창작이었지만, 미학과 비평을 좋아했고 직업은 IT 서비스 기획과 비즈니스 컨설팅으로 시작했다. 몇 번의, 아름답지만 무모했던 문화예술로의 일탈을 했으나, 결과는 현실 적대적이었던 관계로, 나는 다시 IT 기획과 Online에 기반한 Marketing 전반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로 인해 만나는 전문가들 대부분은 전혀 전문가스럽지 않았고(단지 그들은 내가 다 아는 이야기를 상대방은 미처 모르고 있었던 양 이야기하는 데 매우 능숙했다), 도대체 나는 이 자리에서 뭐하고 있나 하는 뜬금없는 질문을 하곤 했다. 결국 나는 내 자신을 포장하고 알리는 데 놀랍도록 게으른 사람이었고, 그렇게 지내왔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한동안 회사의 모든 문제는 사람들로 인해 생긴다고 여겼고 사람들 문제만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면 잘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기본이었고 그 다음에는 전략이었다. 결국 Human에서 Strategy로 내 관심사가 옮겨갔다. 그리고 Strategy 다음에는 Execution, 실행이 될 것이다. 인사 문제의 여러 가지 해결책 중의 하나에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Time)'도 포함된다면, Strategy는 확실히 반시간적이다. 시간이 지체될 수록 기회는 반비례하여 사라지고 결국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Strategy는 Executive-dependent여서 중간 관리자인 내 입장에서 종종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리고 몇 번 이야기해보고 난 다음 바뀌지 않으면 그냥 그 수준에서 수습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는데,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 아니다. 결국 Execution은 내가 하고 Execution의 방향 대부분은 Executive-dependent인 관계로(내가 Strategy Setting을 하게 되면, 가끔 협업을 해야 될 타부서 관리자들과 충돌이 발생하게 되기도 하고) 다소 느리게 진행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런데 이건 모든 회사의 중간 관리자들이 느끼는, 고질적인 문제이지 않을까.

2012년 초 문득 이런 것들까지도 허심탄회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비현실적인 바람일까. 

Latte E Miele를 듣는다. 멜론에서 다운로드 받았더니, 내가 가지고 있는 LP들과는 다른 순서에 잘못된 곡들까지도 포함되기도 했더라. 24살-5살 때 거의 매일 같이 들었던 음악이었다. 이번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온 신입의 나이가 24살이니...  나는 얼마나 늙은 것인가!

조만간 서재에 세팅된 스피커, 앰프, 턴테이블을 보여주겠다. 1차, 가지고 있던 오디오 시스템 매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2차, 첫 번째 구입 시도는, 구입할 수 없는 모델들 상당수 포함되었던 관계로 실패, 1-2주 동안 다시 견적 작성하여 의뢰할 계획이다. 니체의 말대로 이 세상에 음악이 없었다면! 






요즘 다시 듣기 시작한 벨라 바르톡!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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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지음), 이경덕(옮김), 사계절



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비가 온 뒤 땅은 굳어지는 왜일까.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진 다음에서야 우리는 왜 사랑에 대해 (철저하리만큼) 숙고하고 보잘 것없이 여겼던 연애의 기술을 반성하는 것일까. 거친 홍수처럼 세차게 밀려들었던 후회와 끔찍한 반성의 세월을 술과 함께 보내며, 나는 얼마나 많이 ‘철 들지 않는 나’를 괴롭혔던가. (그리고 결국 ‘철이 든다는 것’을 지나가는 세월과 함께 포기했지만)

이 책을 읽게 될 청춘들에게 자이니치(재일한국인) 강상중은 힘들었던 자신의 이야기 너머로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등장시킨다. 이미 베버와 소세키가 죽었던 그 나이보다 더 살고 있으면서(그래서 그는 이 책의 말미에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강상중 교수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인용하면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는 건 의외의 일이긴 하다. 허나 막스 베버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문학에서 나쓰메 소세키 같은 작가가 있다는 건 정말 기적적인 일이 아닌가!(한국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하지만 ‘인간의 마음 자체는 사고하고 성찰하는 데 부적합한 것’(1)일 지도 모르니,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 나쓰메 소세키는 세계문학전집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작가이고, 막스 베버는 전공자들에게나 읽히는 사회학자 쯤으로 여겨지는 요즘에, 강상중 교수의 이 책이 이렇게나 많이 팔리고 읽혔다는 건 참 낯선 일이다(그리하여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더 많이 읽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삐딱하기만 한 내 눈엔, 저자는 진실한 마음으로 ‘고민하는 힘’을 이야기했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에겐 ‘고민하는 힘을 읽은 위안’만 전해준 것은 아닐까. 몸으로 부딪히며 고민하라는 저자의 조언 대신.

현대, 즉 모던(Modern)과 그 이후에 있어서 자신의 문제는 자기에게로 돌아온다(자기반영성의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 이후의 우리에게 ‘자아의식(self-consciousness)은 결국 신경쇠약을 낳는다. 신경쇠약은 20세기의 모두가 공유하는 병’(나쓰메 소세키)이 되어, 우리는 그 정신병과 싸우거나, 반대로 그까짓 것 하는 심정으로 ‘본 투 비 와일드(Born to be Wild)’가 되어야 할 것이다(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채 거대한 세상에 끌려 다니다 죽을 수도 있겠지).

강상중의 이 짧은 책은 독자에게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끔 요청하지만, 책은 너무 간략하고 강상중 교수의 문장은 종종 넋두리 같이 들렸으니, 이는 결국 살아가야 하는 건 나이거나 독자이고, 저자인 강상중 교수도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까. 

자살을 생각하는 한 여인을 앞에 두고, “죽지 말고 살아야해”라는 소세키의 조언 다음에 나오는 ‘죽음은 삶보다 귀하다’라는 독백은 우리 인생이 어떤 대지 위에 서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 이 책 속에서나 밖에서나 삶(인생)의 문제란, 근대(Modern)의 문제이고, 청춘의 문제이며, 젊음의 문제였다. 

그래서 스물 살 때의 고민이나 스물 다섯이나 서른 다섯, 혹은 쉰 다섯이라고 해서 그 고민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자기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나 질문이 달라지지도 않을 게다. 고민하는 시간이 오래 되었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 고민이나 의문에 대한 답이 나온 것도 아닐 것이고. 단지 고민과 의문에 답을 구하는 자신의 태도가 달라져 있을 뿐.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고민이나 의문이 아니라 그 고민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될 것이니,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대하게 될 비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고, 잔인한 슬픔을 동반한 헤어짐 뒤에, 새로 만나게 되는 연인에 대해선 과거 자신이 했던 행동과는 다른 태도로 연인을 대하게 될 것이니, 인생은 관객은 없고 오직 주인공만 혼자 이리저리 부딪히고 힘들어하는, 한 편의 잔인한 드라마는 아닐까.(2)

그저 인생은 원래 쓸쓸했고, (주위의 조력자) 없이 고민하는 나로 인해 세상은 조금이나마 살만한 곳이 될 터이니,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 대한 공허한 위로만이 저 차가운 대기를 채운다.

이 책을 감히 추천하기에는, 이 책을 번역한 역자도 나쓰메 소세키를 번역하면서 읽었다고 하니, 과연 이 책이 얼마나 깊은 호소력을 가지게 될 지는 미지수다. 그나저나 막스 베버의 책은 서가 어디에 있는 걸까. 오래 전에 읽었으니,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다 읽고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읽기를!)



1)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Black Swan’(동녁사이언스) 중에서
2) 하긴 이런 경우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의 99%는 돈으로 해결 가능한 것이다’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는 부자가 되었다.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1%의 문제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파멸을 향해 달려갈 테지만, 이 얼마나 현실적인 답변인가! (출처: 잭 트라우트, 알 리스, '마이 포지셔닝My Postioning'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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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싶어. 아버지는 죽지 않으려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잖아." 
- '서쪽부두'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희곡)의 샤를르의 대사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 이제 내년이면 나도 마흔이 된다. 서른부터 마흔까지 너무 길었다. 스물부터 서른까지는 무척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서 스물까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슬픈 플라톤보다 현실적인 헤라클레이토스가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왜일까.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현대 프랑스 최고의 희곡 작가.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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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블로그를 뒤지다 다시 읽었다.
벌써 4년이 지난 인용이다. 그 사이 나는 해 지기 전 한 걸음만 더 걷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이제서야라도 한 걸음 더 걷는 사람이 되기로 하자. 이현세의 아래 글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다시 현재형으로 올린다.

(2011. 10. 21)



- 아래는 2007년 6월 5일 작성

좋은 글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교보문고 북로거이신 기번님의 블로그에서 가지고 왔다.  


출처 : 서울신문 2005-02-23    20 면


[이현세의 만화경]


해 지기 전에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 년이든 20 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 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

1년이면 3500 장을 그리게 되고 10 년이면 3만 5000 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 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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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 10점
강상구 지음/흐름출판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강상구 (지음), 흐름출판



출판사 담당자에게 이 책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다음, 바로 서평을 쓰지 못했다. 쓰지 못한 이유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이제 내 나이도 마흔이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이라는 책 제목도, 마흔에 꺼낸 ‘손자병법’에 대한 저자의 머리말도,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다.

<<손자병법 孫子兵法>>을 처음 읽은 건 20대를 마치고 30대를 준비할 때였다. 패기만만하고,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보이던 그때, 내게 <<손자병법>>은 ‘싸움의 기술’이었고 '승리의 비법‘이었다.
‘싸움은 속임수다’(兵者詭道병자궤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정 이기는 것이다’(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부전이굴이지병 선지선자야) 같은 단편적인 문장들이 마치 마법사의 주문처럼 나를 매료시켰다.
(중략)
<<손자병법>>을 다시 꺼낸 건 나이 마흔을 맞이하면서였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은 예전보다 훨씬 커졌고 나는 부쩍 작아져 있었다. 사회에서의 지위는 높아졌지만 말은 조심스러워졌다. 어릴 적 그토록 쉽게 거부했던 또는 당당하게 논쟁을 벌였던 상사의 지시에 더 이상 토달지 않게 됐고, 후배들에게 지시보다는 부탁을 하게 됐다. 마침 입사 이래 처음으로 내근을 경험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읽어나간 <<손자병법>>의 느낌은 10여년 전과는 사뭇 달랐다. 톡톡 튀는 경구가 아니라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 비로소 보였다.
- 머리말 ‘손자병법, 비겁의 철학’ 중에서



손자병법, 마지막으로 손에 들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동양고전을 읽지 않았던 내 독서 태도 탓이다. 그렇다면 다른 것이라도? 그런데 저자는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 손자병법을 읽었고 자신의 시각으로 손자병법에 대한 책 한 권을 써 세상에 내보였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솔직하다. 손자병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예시를 제공하여 손자병법 원문의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는 손자병법을 읽어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행간 사이사이에 드러낸다. 스스로를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을 써가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손자병법’을 ‘비겁의 철학’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시무시한 살육이 자행되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연전연패한다. 그렇게 살아,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새 나이 마흔이 되고 손자병법을 손에 들었지만, 어디서 전투가 일어나고 어디에서 상처 입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적들로 둘러싸여 그 어떤 움직임도, 그 어떤 소리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 분투할 뿐이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은 우리 짧은 인생의 은유이면서 삶의 지침이며 변명처럼 읽히다. 읽어가며 무수한 밑줄을 그었지만, 이 짧은 서평에 인용하지 못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손자병법을 다시 읽을 생각이다. 그 위로 내 삶을 올려볼까 한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다른 일상에서 내 삶의 태도, 언행을 다시 되새기면서 전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 서평을 읽을 이에게, 이 가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바라보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를 조금이나마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지도. (어쩌면 내 나이가 마흔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목차는 아래와 같다. 목차에서 느끼는 것과 달리, 책은 딱딱하지 않고 많은 예시로 쉽게 읽을 수 있다.

목차

1. 始計 시계 - 전쟁이란 무엇인가
2. 作戰 작전 - 전쟁, 오래 끌면 헛장사다
3. 謨攻 모공 -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정한 승리다
4. 軍形 군형 - 이기는 싸움만 한다
5. 兵勢 병세 - 계란으로 바위치기? 바위로 계란치기!
6. 虛實 허실 - 선택과 집중
7. 軍爭 군쟁 - 지름길은 없다
8. 九變 구변 - 장수의 조건
9. 行軍 행군 - 본질은 숨어있다
10. 地形 지형 - 패전의 이유
11. 九地 구지 - 본심을 들키면 진다
12. 火攻 화공 - 얻는 게 없으면 나서지 않는다
13. 用間 용간 - 아는 게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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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우는 이렇게 씌어 있었어도 괜찮았을 지 모르겠다. "나는 여러분 속의 한 사람, 한 알의 씨앗이다. 여러분 중 한 사람인 것이다. ... ... 빛나고 ... ... 진동하고 ... ... 작열하는 씨악이다......" 어느 날 나는 국립도서관에 있었는데, 쉰 안팎의 토끼털 모자를 쓴 부인이 내가 있던 책상 앞으로 다가와선 다음과 같이 말하며 쭈뼛쭈뼛 손을 내밀었다.
- 르 끌레지오, '사랑하는 대지' 중에서


낡고 오래된 책을 꺼내 기억하는 몇 문장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이 일상도 거대한 지구의 운동 앞에서 그 어떤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토요일의 일상을 오늘에서야 정리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의 일이 갑자기 많아졌고 이를 헤쳐나가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몸에 이상이 왔다. 휴식이 간절하지만, 막상 휴식 시간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안절부절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고 포기함으로써 어떤 이들의 지지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지를 얻음으로써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포기하는 것들이 더 늘어나더라. 마치 작은 구멍이 뚫린 모래댐이 붕괴하듯, 내 영역이 사라지고 있었다.



풍경이 낯설어질 때가 있다. 이럴 땐 자신이 자신도 모르는 방향으로 천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풍경화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풍경화가 신화에서 시작하여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어떤 풍경을 담다가 결국 평면화와 도형으로 귀착되는 것은, 마치 길을 가다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느껴질 때, 그 풍경의 달라진 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치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도 변해가고 있는 것일까.




공근혜 갤러리의 마이클 케냐 전시는 현대 사진의 어떤 자화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칸트가 이야기하고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떠나고 싶었던 어떤 것이기도 하다. 마이클 케냐는 이국적인 것 너머 있는 숭고미를 탐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진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 속에서 카메라 렌즈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어떤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무엇인지 간에.. 


 

유엔씨갤러리의 '스타워즈'전은 해마다 열리지만, 늘 기대되는 전시이기도 하다. 신인작가들은 그렇게 자리를 얻어 전시를 하고 미술애호가에게 소개되지만, 또 그렇게 몇 년 잊혀지내다가 소리 소문 없이 어느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고 ... 다시 그렇게 몇 년 잊혀 지내다가 .. 어느 갤러리에서 ...

"나는 여러분 속의 한 사람, 한 알의 씨앗이다. 여러분 중 한 사람인 것이다. ... ... 빛나고 ... ... 진동하고 ... ... 작열하는 씨악이다......" 

르 끌레지오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건 참 의외의 일이었다. 미셸 투르니에도 있고 밀란 쿤데라도 있지 않은가! 르 끌레지오의 초기작이 가졌던 아름다운 무모함은 후기작으로 올수록 이국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마치 왕가위의 영화가 사랑에 빠진 거친 숨소리에서 시작해 떠나가는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슬픈 시선으로 변해갔듯이 나에겐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몇 개의 전시를 더 챙겨보고, 리뷰를 또 몰아서 올릴 듯 싶다. 어느 출판사와 원고 약속을 했는데, ... 그것도 차일피일 뒤로 늦어져버렸다. 어쩌나, 내 일상... ... 오늘은 집에 손님들이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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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는 언제나 선행하는 무질서를 가진다. 그리고 그 질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다시 무질서가 도래한다. 우리가 이성(reason)이라고 부른 것의 역사는 고작 몇 백 년도 되지 않으며, 그 이성대로 살았던 적은, 그 이성의 빛이 전 세계에 고루 비쳤던 적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데카르트 시대에 이미 반-데카르트주의자가 있었다. 현대의 반-데카르트주의는 일군의 영국 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길에 편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수선한 마음이 지나자,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어수선해졌다. 어수선한 마음이 지나자, 어수선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든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갈 뿐이지만, 누군가는 교통 정리를 해줘야만 한다. 마치 이성처럼. 칸트가 열광했듯이, 뉴튼이 그런 일을 했다. 그는 놀랍게도 우주의 별들까지 교통 정리했다. 근대적이고 도구적이며 계량적인 이성의 역할이었다. 신을 대체한 이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느 곳에서는 진실이지만, 어느 곳에선 거짓임을 안다.

 

그런데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세상을 경험할수록, 알아갈수록, 세상은 미로가 되고, 미궁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연애를 시도할수록 내가 연애에는 아무런 재능도 지니지 못했음을 자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는 이성의 그림자가 드리운 시대다. 이성이 비추지 못하는 자신의 그림자. 현대는 현상학적 방법으로 그림자로 둘러쳐진 이성의 주위만 빙빙 돌 뿐이다. 그리고 결국엔 절망만을 구할 뿐이다. 세상에 대해서 안다고 했으나, 1%도 되지 않는 세상의 일부라는 절망. 마치 사랑을 갈구했으나, 정작 사랑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끔찍스러움처럼 말이다.

 

문득 남겨진 내 인생의 궤도가 궁금해졌다. 잠을 자면 좀 행복해지려나.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사탄의 태양 아래에서를 다 읽고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클래식 연주회 티켓을 끊어, 연주회를 보러 갈 생각이다. 그 동안 나는 쫓기는 삶을 살았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아무런 열쇠도 나는 쥐고 있지 않으면서, 마치 열쇠가 있는 것처럼 행동해왔던 것이다.

 

 



역시 오래된 노래가 좋다. 산타나가 다시 한국에 올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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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로빈슨 칼리지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공부한 마크 퀸Marc Quinn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가이나,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대단한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다(도리어 현대 예술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질문 제기를 한 번 귀담아 들어보는 것도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크 퀸의 'Self'라는 작품이다.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색깔을 보고 무언가를 상상했다면, 그 상상했던 그 무엇이 맞다. 4.5 리터의, 약 5달 동안 모은 자신의 피를 얼려 만들었다(첫 작품 제작 기간임). 먼저 자신의 얼굴을 석고로 뜬 다음(casting), 자신의 피를 넣어 얼려서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크기는 어느 정도 될까?


Marc Quinn, Self
82" by 25" by 25"
blood/stainless steel, Perspex, refrigeration equipment, 1991
이미지 출처: http://www.maryboonegallery.com/artist_info/pages/quinn/detail1.html 


82인치에 25인치라, 대략 계산해보면 높이만 무려 2미터다. 더 놀라운 것은 세계적인 콜렉터이자, 현대 영국 미술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찰스 사치는 이 작품을 1991년도 만삼천 파운드에 구입했다는 것이다.
(요즘 수준으로 따지면 얼마 정도나 할까? 뭐, 별로 궁금하지도 않지만. 아참,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도 한 점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총 4점이 제작된 상태다. 얼마 전 한국에 방문했던 마크 퀸은 약 6주에 한 번씩 헌혈을 해 약 5년 정도를 모아야, 한 점 정도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도대체 이런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Marc Quinn, Kate Moss(Endless Column)
178x54x51cm, Painted bronze
2007

얼마 전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전시된 케이트 모스(Kate Moss) 시리즈들 중 하나다(국내에서 처음 있었던 마크 퀸의 전시였는데, 조용히 지나갔다).  저 이상야릇한 포즈는 요가(Yoga) 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케이트 모스와 요가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가의 본래적 의미, 명상이나 영적 단련을 떠올리기 보다는 (내가 이상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성적인 자극만 주는 작품이다.

마크 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떠올렸고 그래서 이 작품들을 하게 되었다고 했지만, 이상적인 아름다움(ideal beauty)라고 하기에는 다소 ... ㅡ_ㅡ;;
(실제 마크 퀸은 케이트 모스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며 그녀를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지출처: http://theworldsbestever.com/2008/01/24/kate-moss-thursday-2 

Alison Lapper Pregnant
이미지 출처: http://mocoloco.com/art/archives/001480.php 

위 작품 '임신한 앨리슨 래퍼'는 마크 퀸의 대표작이며,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정상과 비정상, 아름다움과 추함, 그 어느 사이 쯤 위치해 있는 듯한 이 작품은 우리에게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과 정의에 대해 묻고 임신한 앨리슨 래퍼, 즉 엄마, 생명잉태에 대한 경외감까지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즉 육체란 무엇인가라고 묻으며, 인간 존재에 대해 탐구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Marc Quinn, Innoscience
10" by 27" by 13"
medical milk formula/synthetic, polymer wax
2004

실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보다는, 생명의 신비보다는, 반대로 '이따위 생명으로 왜 살아가는 걸까', '혹은 살아가야만 할까'를 떠올리게 되는, 내 삐딱한 시선 때문일까? 이미 죽어 박제가 된 듯한 저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살아가면서도 이미 죽은 상태, 어쩌지 못하는 삶의 노예가 된 현대인의 자화상을 떠올리는 건 왜일까?


Meditation on Illusion, 81.5x43.5x64.5cm, Painted bronze, 2007
이미지출처: http://www.ganaart.com/exhibitions/2008-07-11_marc-quinn/#


위에서 볼 수 있었던 마크 퀸의 작품들은 실은 '삶과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이는 데미안 허스트도 마찬가지다.) 해골은 서양미술사에서 '바니타스vanitas'를 상징하는 소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인생의 허무함을 넘어서기 위해 제목은 '명상'? 그런데 '환각 속의 명상'?

Golden Meditation, Bronze, 2008 
(* 파리 Fiac 2008에서 찍은 사진임) 

이번엔 '황금빛 명상'? 자, 그렇다고 케이트 모스가 빠질 수야 없지.

이미지 출처: http://www.canadianart.ca/art/books/index1.html


피악에서 마크 퀸의 '황금빛 명상'을 보았을 때, 무척 흥미로웠다. 설마 'Self'의 그 마크 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YBAs의 예술가들 대부분이 현대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추상적이고 의미있는 질문을 매우 잘 던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우리 왜 사는 걸까?', 혹은 '왜 살고 왜 죽는거지?'라고 했을 때,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YBAs의 예술가들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할 때부터 던져온 어떤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답하지 못한, 오직 창조주 신만이 아는  질문을,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던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크 퀸이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을 환기시킬 뿐이다. 자극적인 것들만 찾아해매는 전 세계의 기자들과 천박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세속 사람들에게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 던지기를 하는 셈이다. 내가 보기엔 전혀 먹히지도 않는 질문 제기이긴 하지만.




* 위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은 다른 이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퍼온 것이며, 문제가 될 경우에는 삭제하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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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보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 2008.11.28 18:53

    비밀댓글입니다

  • 예술에 대해 조금 보수적이시군요..예술 역사의 한 시대마다 뛰어난 작품들은 그시대를 반영했기에 언제나 질타가 있었죠 지금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로댕이나 브랑쿠시 자코메티 등등도 그랬었죠...조각의 역사에서 옛시대의 미켈란젤로도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었구요 언제나 문제는 과거 조각의 인습적 형상과 철학을발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형식과 시대를 반영하는 리얼리즘과 사이의 논쟁이었으니...

    • 좀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실은 마크 퀸의 모든 작품들에 '정서적 공감'을 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같네요. 'golden meditation'은 무척 마음에 들었으나, 다른 작품들은 좀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소재나 주제를 잡는 감각은 좋은데, 딱 거기서만 멈춰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뭐, 현대 미술이 개념적인 방향으로 경도되어 있긴 하지만서도.... 다양한 현대 작품들을 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마크 퀸도 한 번 정리해보았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먼지 묻은 시집 두 권을 꺼낸다. 이준오의 <<랭보 시선>>(책세상)과 김현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민음사). 두 권 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책이다. 이준오의 <<랭보 시선>>은 고등학교 때 샀던 걸로 기억한다. 한글로 말하자면 김현의 번역이 낫다. 그래서 오역의 비난을 받는 걸까.

랭보의 세계는 너무 심하게 오염된 세계다. 세속의 고귀한 것들에, 그의 영혼에, 버림받은 사랑에, 타인의 경멸과 증오에, 그리고 어둠의 미래를 가진 청춘에. 하지만 랭보는 그 속에서도 꼿꼿하게 서서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그의 시 세계를 '견자의 시세계'라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보면, 어른같은 어린 랭보와 어린이같은 늙은 베를렌느는 꽤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오랫만에 랭보의 시를 읽는다. 나이 스물 한 살 땐 나이 서른 쯤 되면 불어로 그냥 바로 읽겠지 하며 불어공부를 했는데, 서른셋이 되어도 불어로 읽지 못하니, 서른 다섯 쯤 되면 불어로 읽으려나 하고 기대해봐야 하나.

랭보. 지금 읽으니, 참 좋다. 슬프고 쓸쓸한 것이 내 영혼이 떠돌고 있을 겨울 대기같다.



삶 VIES


1.
오오, 신성한 나라의 거대한 가로수 길들이여, 사원의 테라스들이여! 나에게 잠언서를 설명해 준 바라문 승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당시 그쪽의 늙은이들까지도 아직 내눈에 보이고 있구나! 내 어깨에 놓인 전원과 후추투성이의 평야에 서있는 우리들의 애무의 손을, 그리고 큰 강을 향한 은(銀)과 태양의 시간들을 나는 되새긴다. - 주홍빛 비둘기 무리의 비상이 내 사고(思考)의 주변에서 울린다. - 여기 유배의 몸이 되어 나는 모든 문학 속의 극적인 걸작을 연출해야 할 한 장면을 소유해 버렸다. 나는 당신들에게 미증유의 풍요로움을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들이 찾아낸 보물의 역사를 지켜본다. 나는 예지는 혼돈만큼이나 경멸당한다. 당신들을 기다리는 망연자실 상태에 비해 나의 무(無)란 대체 무엇인가?


2.
나는 나보다 앞서온 모든 이들과는 전혀 딴판으로 찬양할 만한 발명자이다. 또한 사랑의 열쇠 같은 어떤 것을 발견한 음악가 자체이다. 지금, 담백한 하늘 거칠은 들판의 신사로서, 나는 빌어먹을 유년시절, 수업시절 또는 나막신 여행의 도착지, 논쟁들, 대여섯 차례의 독신생활 그리고 내 뛰어난 머리 때문에 친구들과 장단을 맞추지 못한 몇몇 결혼식을 회상하고 감동되려고 애쓴다. 나는 내 신적인 쾌활의 옛날 부분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이 거칠은 들판의 담백한 대기가 나의 혹독한 회의를 아주 활기차게 길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의적이 태도가 이제부터는 활용될 수 없으므로, 게다가 내가 새로운 혼란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나는 매우 고약한 미치광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3.
12살 때 들어박힌 다락방에서 나는 세계를 알았고, 인간 희극을 예증했다. 지하 저장실에서 나는 역사를 배웠다. 북부의 한 도시에서 어느 축제의 밤에는, 옛 화가들의 모든 여자들을 만났다. 파리의 오래된 샛길에서는 고전학을 가르침받았다. 동방 전체에 의해 둘러싸인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나는 나의 거대한 작품을 완성했고 나의 유명한 은거생활을 보냈다. 나는 내 피를 양조(釀造)했다. 나에게 의무가 다시 부과되었다. 더 이상 그것을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실제로 무덤 저편에 있다. 하여 권한은 없다.



<1>의 번역: 이준오
<2>,<3>의 번역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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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봄날의 일상

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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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TV로 영상콘텐츠를 보지 않는다
어느 오후
어느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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