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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CANDID 레이블. 지금은 구하지도 못하는 레이블이 될 것이다. 집에 몇 장 있는데, 어디 꽂혀있는지, 나는 알 턱 없고. 결국 손이 가는 건, 역시 잡지 부록으로 나온 BEST COLLECTION이다. 레코드포럼, 매달 나오는 대로 사두었던 잡지, 그 잡지의 부록은 클래식 음반 1장, 재즈 음반 1장. 제법 좋았는데. 


유튜브가 좋아질 수록 음반은 팔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하기 힘들던 시절의 아련함은, 우연히 구하고 싶은 음반을 구했을 때의 기쁨,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아는 이들을 불러모아 맥주 한 잔을 하며 낡은 영국제 앰프와 JBL 스피커로 밤새 음악을 듣던 시절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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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 가운데 호텔 입구의 새벽 3시는 고요하기만 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호텔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이 연상되는 것은, 호텔이라고 하면, 놀러오는 곳이라는 인상이 깔려있어서다. 


떠.나.고.싶.다.

모.든.것.을.버.리.고.

저.끝.없.는.우.주.여.행.을. 


호텔은 해마다 한 두 번씩 돌아오는 낯선 우주다. 호텔의 하룻밤은 아늑하고 감미로우며 여유롭지만, 그와 비례해 시간은 쉽게 사라진다. 



새벽 3시. 여의도 콘래드 호텔 바로 옆 빌딩에서 며칠 째 새벽까지 일을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원하지도 않았으며 끌려다녔다. 이런 식이라면 그만 두는 게 상책이나, 관계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를 일이다. 


관계는 우리는 견디게 하고 지치게 하며 상처 입히고 미소짓게 만든다. 관계의 해석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저 지금/여기에서만 유효한 어떤 정의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실재론자들에겐 시간은 무의미하고 운동이란 없는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고 그녀/그는 언제나 내 옆에 있다,고 말한다. 경험 상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입지 않기 위해, 상처입었음에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마음 깊숙한 곳으로 사랑을 끌어당겨 마음의 문을 닫는다. 


거의 2주 가까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일에 쫓겨 살았다. 미술 평론 하나 써서 내기로 한 약속도 깨졌고 지금 하는 일에 대한 금전적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꿈꾸는 중년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표현이다. 하지만 미성년적 자아를 가졌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중년들은 죄다 미성년이다. 꿈을 꾼다. 도망가거나 회피하거나 쫓기거나.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뿐. 사회가, 시스템이 강제하는 어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리곤 어느 순간 깨달을 것이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이 여름이 가고 또 다른 가을이 오면, 이브 몽땅의 고엽을 들으며 술을 마셔야지. 에디뜨 피아프와 자끄 브렐까지. 술을 마시면서 떠나간 옛사랑과 우리 아이의 미래와 내 절망과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 술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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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토요일, 거칠고 가느다랗게 물이 내려가 커피에 닿는 순간, 참 오랜만이다,라고 속삭였다, 스스로. 내가 나에게 낯설어져 가는 40대구나.



실은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지각은 없고 누군가가 나이가 들어가는구나를 보며, 내 나이를 되새기게 된다. 아침에 내린 커피를 다음날 새벽까지 마시고 있다.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은 마음까지 어수선하게 만든다. 미하일 길렌의 음반을 꺼내 듣는다. 베토벤이다. 베토벤도 참 오래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살고 있었던 걸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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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술에 취해 들어가던 날의 풍경. 꿈결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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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사에서도 월요일이면 정신이 없었는데, 이번 회사도 월요일이면 정신이 없다. 오늘은 종일 회의를 했고 여기 저기 제안서와 견적서를, 현재 품질에 문제가 생긴 프로젝트의 이슈 보고서를, 내일 예정된 주간 미팅의 변경과 신규 미팅 요청 등을 하고 나니, ... 벌써 새벽 2시다. 


끝나지 않는 일 마냥 내 생활도 윤택해지고 사랑스러워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머물 뿐. 


장마 비 오는 화요일 새벽, 포티쉐드의 음악을 듣는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맥주 마신 것도 수 년이 지났다. 그 때라면, 새벽 퇴근길에 맥주 한 잔 할 공간이, 같이 마실 사람이 있었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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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전략? 실은 전략이랄 것도 없다. 지금보다 나이가 적었을 땐 제 멋에, 잘난 맛에 살았고, 굶어죽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만큼 무책임한 표현도 없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살지 않는다. 그러나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말을 상투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우리들은 종종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를 잊는 것이다. 


어쩌면 잊고 싶을 지도 모를 일.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삶은 없다.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못할 삶도 없다. 이 두 가지 삶 사이의 작은 길이 우리 삶의 길이 된다.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서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하니, 우리 일상은 한 없이 피곤해지는 것이다.


한 회사에서 이제 4년이 다 되어 간다. 조직 구성원도 두 배가 되었고 일도 많아졌다. 그리고 문득 내 위치를 생각해보게 된다. 스스로 이력서를 제출해 직장을 옮긴 적이 한 번도 없고, 구직 활동이랍시고 한 게 딱 두 번 있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로 사람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면접을 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팀원을 뽑을 때도 그렇다. 아직 작은 회사라 많이 지원하지도 않고 '사람 인연은 하늘의 뜻'이며, 대체로 기업에서 원하는 업무 능력은 제대로 가르쳐 주면 못할 사람은 거의 없고, 만일 못한다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려는 탓이거나 시간이 부족한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성격이 더 중요하다. 거짓말 하지 않을 것, 즉 모르거나 못하는 일은 그대로 이야기할 것. 자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것. 무조건 노트하고 메모해서 정리해 둘 것.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 팀원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꽤 조심스럽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겪어보기 전엔 알 수 없으니, 알 수 없는 것이고, 그건 그냥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상식적인 것에 해당되는 것이니 말이다. 더구나 면접같은 것에서 나를 포장해본 적 없고, 심지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 다른 세계에서 과연 강조되어야 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확신도 없다. 솔직히 말해 내가 면접을 당하는 입장에서 나를 알리는 일만큼 얼굴 화끈거리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B2C나 B2B 서비스의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실행안을 마련한다.


이렇게 보면 살아가는 건 참 재미있기도 하다. 오늘은 문득 팀원들에게 서양 지성사나 서양 미술사 강의를 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 인문학이 유행이라는데, 그런 이벤트 한 번 해주면, 지금 당장은 도움이 안 되겠지만, 먼 미래를 위해선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고민하는 힘' - 얼마나 깊이, 얼마나 오래 생각하고 결론나지 않을 듯한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가가 우리의 노년을 얼마나 윤택하게 만드는가를 잘 알기에, 아주 엉뚱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진리란 있는가?', '아름다운 사물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이나, '왜 추한 것이 현대 미술 속으로 들어왔는가?'와 같은 미술에 대한 주제도 흥미로울 것이다. 


---


할 일은 많은데, 정작 다른 생각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문서 작업 조금 하고 새벽에 일어나 정리하고 고객사 미팅을 준비해야 겠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고, 나에겐 두 분의 스승이 있는데, 두 분 다 나로선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공부를 하신 터라, 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책 한 권 내면, 저자 서문에다 두 분의 은혜를 이야기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마음과 무관하게 책은 커녕, 공부도 못하고 원고 쓸 시간도 없어졌다. 한 분과는 연락이 끊어진 상태이고 한 분과는 아주 가끔 연락을 하고 있으니, 이렇게 예의없는 학생도 없을 것이다. 내 스스로 공부에 불성실하진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더라. 


아무리 많이 알아도, 생의 정답은 없고, 내가 배운 것은 없는 정답 대신 정답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것이다. 그걸 나는 대학 밖에서 배웠고 책 밖에서 배워, 책 속에서 그것의 실마리를 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의 정답이 왜 없는가'를 찾는다고나 할까. 너무 현대적인가. 


아, 이제 일을 좀 해야 겠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며, 요즘 읽고 있는 플라톤  '향연'의 한 구절을 옮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앉으면서 말씀하셨다고 하네. "참 좋을 것이네, 아가톤. 지혜가 우리가 서로 접촉할 때 우리 가운데 더 가득한 자에게서 더 빈 자에게로 흐르게 되는 그런 거라면 말일세. 마치 잔 속의 물이 털실을 타고 더 가득한 잔에서부터 더 빈 잔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네. 지혜도 이런 거라면 난 자네 옆에 앉는 걸 아주 귀중히 여기겠네. 나 자신이 자네에게서 나오는 많은 아름다운 지혜로 채워질 것으로 믿으니 말이세. 내 지혜는 보잘것없고 꿈처럼 의심스런 것이지만 자네 지혜는 빛이 나며 많은 늘품을 갖고 있거든. 바로 그 지혜가 젊은 자네에게서 그토록 맹렬하게 빛을 발하며 밝게 빛나게 되었지. 엊그제 3만이 넘는 희랍 사람들이 증인이 된 가운데 말일세."

"도가 지나치십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하고 아가톤이 말했네. 

- 플라톤, <<향연>>, 175d (강철웅 옮김,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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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몇 달만에 처음, 평일 음주를 했다. 홍대에서 1차, 신촌에서 2차를 했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방화동 집까지 와서 3차를 했다.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너무 바빠서 그런 걸까. 실은 여행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일로 갔던 이스탄불, 다시 가고 싶다. 어젠 이스탄불에 사는 젊은 화가의 전시 소식을 메일을 통해 받았다. 이스탄불에 전시보러 가고 싶다.

올핸 조금 정갈하고 규칙적으로 살고 싶은데, 의외로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3월말이 되니, 내 일상의 긴장이 다소 떨어져 간다. 다시 추스려야 겠다.


이스탄불 곳곳에 이슬람 사원(모스크)가 있다. 그런데 이 모스크도 바탕에서는 로마의 바실리카가 숨겨져 있다면? 문화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 기원은 몇 가지로 압축되기도 한다. 마치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같은 바탕에서 시작된 종교인 것처럼.


이 바다 이름이 흑해였던가. 바다의 폭이 너무 짧아서 마치 한강 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바다 내음이 없었다. 정말 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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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없이 공포가 밀려드는 시간이다'라고 적고 싶었다. 하지만 까닭없진 않다. 아직 절망으로 내 영혼이 물들진 않았지만, 아슬아슬한 두려움과의 싸움은 승패를 오가며 계속되고 있다.

새벽까지 책을 읽었고 로마 예술에 대한 강의 노트를 워드로 옮겨놓았다. 옮겨놓으면서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집트 조각의 무뚝뚝한 표정이 로마 조각에서 다시 나타나고 약 천 년 후쯤 중세 조각에서, 다시 이 표정이 20세기 초중반, 소련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이집트보다도 로마에서 우리는 정치적 예술이 가지는 특징을 확실하게 간파할 수 있다. 하지만 로마 미술은 그 현대적 의의에 비해 대부분의 미술책에서는 너무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로마 초기의 가부장적 체계가 로마 후기에서 어떻게 해체되는가의 과정 속에서 가족 시스템의 변화와 경제적 시스템의 변화와의 연관 관계를 흥미롭게 추론해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예술은 어떻게 이를 반영하고 있는가를 분석해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 사회와 후기 로마의 유사점들을 나열해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어쩌면 후기 로마 회화의 환영주의와 현대의 장르 영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을텐데.

하지만 각자의 역할과 몫이 있다.

새벽에 독일에서 메일이 왔다. 10월 10일로 예정되었던 ㅈ선생님의 슈트트가르트에서의 전시가 일방적으로 내년 2월로 연기되었다고 한다. 매우 상심해 하실텐데,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창원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제롬 카르코피노의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을 조금 읽었다. 정말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었다.

새벽에 아래 층에서 소란이 있었다. 잠시 고민했고 잠시 긴장했다. 30년 전이라면 동네 사람들이 나올 만한 일인데, 30년 전 사람들이 30년 후를 예상이나 했을까. 이와 똑같이 현재의 우리는 30년 후를 예상할 수 있을까. 세상이 이렇게 변한다면, 나는 '몰락'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뿐이다.

10월 중순에는 파리에 갔다가, 파리에서 며칠 머무른 후에 터키 이스탄불로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다. 하긴 그 때 가봐야 알겠지만.

블로그에 사적인 글을 올리는 일이 드물어졌다.

현재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잘 처리되기를 신에게 기원해야겠다. 신을 믿지만, 교회나 절을 믿지는 않는다. 진정한 경건함은 자기로 시작되는 것이지, 종교에 기반은 둔 물적 시스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가.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하지만 버틸 수 없는 공포 앞에서는 우리는 신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그것이 우리 인류 문명의 최대 행복이자,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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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월드컵 결승전을 하고 있는 어느 새벽.
나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문서를 만들고 있다

이런 새벽이 나에게 낯설지 않으니, 어인 까닭인가.
내게 그토록 죽음은 가까이 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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