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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을 보기 시작한 뒤 한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지닌 일반적 인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일반적 인상이란 색조와 부분,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좌우된다. 일반적 인상이 주는 충격은 즉각적이다. (...) 그러므로 최초의 충격 다음에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세부를 살펴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8쪽 




하지만 즐기기 위해 배운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낯선 건, 그만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탓일 게다. 의외로 미술에 대한 책은 잘 읽히지 않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갤러리가 많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방문은 뜸하고, 전시를 열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으니, 작품 가격은 비싸진다. 거기다 위작 논란까지. 그만큼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그리고 현대 미술이든 고전 미술이든 다 어렵다고 여긴다. 심지어 현대 미술은 '난해한'이라는 수식어가 그냥 자연스럽게 붙어다닌다.


실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서구에선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선 대학생들도 어렵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의 책 읽기 수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밖에.


이런 면에서 이 책도 어려울 지 모르겠다. 하지만 케네스 클라크는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것의 의미를 새삼 물으며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알아두어야만 할 예술가들과 대표작품을 다룬다. 초심자에겐 그림 보는 재미를, 이미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이해를 갖진 사람들에겐 케네스 클라크만이 알려줄 수 있는 통찰이 흥미로울 것이다. 


책에선 더 많은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는 3명의 작가들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의 생각을 옮겨본다. 



엘 그레코El Greco 



16세기 후반 최고의 작가는 단연코 엘 그레코다. 하지만 그는 수 백년 동안 잊혀져 있던 작가였다. 근대 시대의 매너리즘(마니에리스모) 양식에 대한 경멸은 16세기 후반 작가들의 무시와 천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 초 엘 그레코는 극적으로 부활한다. 


그럼에도 엘 그레코를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간주했던 1920년대의 비평가들은 옳았다. 첫번째는 엘 그레코가 비사실적인 두 양식, 곧 비잔틴과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거치며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사고 방식을 타고난 덕분에 고전주의적 전통의 주된 전제를 거부한 최초의 유럽화가였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는 화면의 깊이보다 표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151쪽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The Disrobing of Christ)

Oil on canvas, Height: 285 cm (112.2 in). Width: 173 cm (68.1 in). 

1577 ~ 1579, 톨레도 대성당 



표면을 중시했다는 표현과 함께 엘 그레코가 "미켈란젤로는 훌륭하지만 그림 그리는 법을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건 참 흥미롭다. 깊이 대신 표면을 중시할 때, 고전적 원근법적 세계는 흔들린다. 중심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균등해진다. 확고한 질서 대신 흔들리는 마음이 전면에 부상한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성상화들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엘 그레코는 알고 있었다.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제르생의 간판(The Shop Sign of Gersaint)

Oil on canvas, 163 cm × 308 cm (64 in × 121 in)

1720-1, Charlottenburg Palace, Berlin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27Enseigne_de_Gersaint 



신고전주의가 자크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만든 양식이라고 한다면, 회화에서의 로코코 양식은 장 앙트완 와토의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와토의 이미저리는 그가 처음으로 전시했던 그림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향후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심지어 와토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에 태어난 후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 - 1806)는 여전히 와토의 정원, 말하자면 그의 이미저리를 활용했다. - 127쪽 



와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절반은 포기하고, 절반은 포기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노는 것같다고 할까. 그 애상은 로코코 시대 전반을 물들였다. 한 시대(토지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부르조아지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계몽주의와 로코코는 같은 시대의 양식이다. '제르생의 간판'은 와토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위키피디아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작품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Eugène Delacroix, The Entry of the Crusaders into Constantinople 

oil on canvas, 81 × 99 cm (31.9 × 39 in)

루브르 박물관 

이미지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Entr%C3%A9e_des_Crois%C3%A9s_%C3%A0_Constantinople 




오히려 그는 예술은 상상력을 비추어 사건을 재창조하므로 시의 특질을 띤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들라크루아는 아마도 매우 많은 이류화가들을 미혹했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BC 65 ~ BC 8)의 조언, '시 같은 그림 ut pictura poesis'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마지막 유럽 화가였을 것이다. - 93쪽 



H.W. 잰슨(서양미술사가)이었던가, 낭만적 고전주의와 고전적 낭만주의라고. 다비드가 낭만적이고 들라크루아가 고전적이라고. 어쩌면 케네스 클라크의 견해에 힘입어,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마지막 고전주의자일 지도 모르겠다. 낭만주의였으나, 그의 마음은 확고하게 고전적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였으며, 의미를 담아냈다. 그런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위대한 예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그 이후 나온 아카데미 화가들,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이들은 무식하게(성실하게) 그림만 그린 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몰랐으며, 그 변화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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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더구나 꼼꼼한 연구서의 면모까지 지닌 이 책은 아비 부르부르크 생애 뿐만 아니라 주요 연구 성과, 그것에 대한 평가, 그리고 '미술사 연구'의 시작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두서없는 리뷰를 양해해주길 바란다. 다나카 준의 꼼꼼한 서술을 따라 읽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겨우 다 읽은 후 쓰는 이 리뷰는 바르부르크의 주된 테마를 언급하는 데 그칠 것이고, 이 소개가 비전공자에겐 다소 재미없고 전문적이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 책은 전문 서적이다. 


인문학의 꽃은 철학이 아니라 역사학이며, 역사학 중에서도 미술사학이 가지는 흥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지만, 책읽기 좋아하는 직장인이 하기엔 주제 넘는 짓이다. 다만 신화나 종교에 대한 편협한 도상학적 이해만을 바탕으로 미술 작품을 평하는 국내 필자들에게 하나의 도상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흐름, 그 속에서 벌어지는 정신들의 결투 같은 것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유공간을 만들어내는 분리 운동과 마술적인 결합 강박은 언어와 도상의 한가운데 양극적인 긴장 상태를 유발한다.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에 펼쳐진 세계를 '유럽'이라고 부른다면, 양극성을 유발하는 언어와 이미지 속에 응결되는 것은 유럽 정신의 무시간적 심층이다. 다시 말하면 유럽이란 이 무시간적인 구조가 강요하는 마신들의 회귀라는 반복운동에 의해 지배받는 시공간이다. (67쪽) 



바르부르크는 '무시간적 심층'이라고 표현한다. 즉 도상들은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이동하고 번역되면서 끊임없이 되돌아오고 잔존한다. 그리고 그는 이를 두고 '무시간적'이라고 평한다. 그래서 그에게 르네상스란 고대, 특히 마신적 고대의 부활이었다. 


기들란다요의 초상화를 봉납 밀랍인형과 똑같은 수준에 놓는다는 것은 그것을 이른바 역사인류학적인 시선 아래에서 물신숭배의 측면을 지닌 종교의례의 일부로 파악하려는 것이다. (209쪽) 



Domenico Ghirlandaio (1449-1494) 

Adoration of the Shepherds

1485

Cappella Sassetti(Santa Trinita, Florence)  


그 당시 교회에는 실제 인물과 동일한 밀랍인형이 가득했으며, 일종의 풍습이었으며, '도상마술(圖像魔術)'이 된다. 


"이교적인 미신을 믿는 에트루리아인의 자손인 피렌체인들은 극단적인 형식의 이러한 도상 마술을 발전시켜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세련되게 다듬었다. (...)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도상 마술'은 자신과 비슷한 밀랍제 인형, 은제 인형을 성스러운 화상의 봉납품으로 바치는 풍습이다. 피렌체의 산티시마 아눈치아타 성당은 권력자나 신분이 높은 이국인에게 실물크기로 자신의 형상을 밀랍인형(봉납물, voti 피렌체 방언으로는 boti)을 생전부터 성당 안에 전시하는 특권을 부여했다."(206쪽 - 207쪽)



기를란다요의 작품이 지니는 과도한 사실성은 이런 밀랍 인형과 같은 역할을 회화가 수행했음을 뜻하기도 한다. '봉납물의 신비한 힘을 믿고 있었던 피렌체인들은 여전히 '원시적'이었으며, 봉납물은 반드시 본인과 확실히 비슷해야 했다'(213쪽) 



Cappella Sassetti(Santa Trinita, Florence)   



바르부르크가 보는 르네상스의 모습이었다. 그는 기독교의 세계로부터 고대가 어떻게 부활하는가를 도상에 대한 연구로 시작한 셈이다. 


바르부르크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고대의 부흥과 함께 '훌륭한 유럽인'이 열어놓은 점성술을 비롯한 마술적 행위 속에서 고대 그리스적인 '인간성Humanitat'을 재발견하려는 계몽을 위한 싸움에 있었다' (46쪽) 




Achilles at the court of King Lycomedes. 

Early 3rd century AD. marble

H. 1.08 m (42 ½ in.), W. 2.3 m (90 ½ in.), D. 0.8 m (31 ¼ in.)

출처: commons.wikimedia.org


책에서는 스킬로스 섬의 아킬레스 도판이 실려있으나, 이를 구하지 못한 관계로 다른 아킬레스 도판을 실는다. 위 로마 후기의 부조 작품의 유려한 표현을 감상해보자. 


문제는 어디까지나 시나 부조, 회화에서 조형적으로 처리된 운동의 표현이다. 그들은 그 표현을 위해 종종 고대의 시나 미술 작품을 모방했다. 그들은 고대적인 것으로서 발견하고 강한 관심을 가진 것은 고대 예술에 나타난 격렬하게 움직이는 부속물의 세부적인 형태이다. 고대 예술에 대한 관심 자체가 부속물의 운동에 대한 흥미로 인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부속물이야말로 고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고대의 부조를 모방한 소묘에는 원작에는 없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그려진 것이다. (161쪽-162쪽)


그리고 아래 보티첼리의 '봄'을 보자. 보티첼레 작품에서 옷의 주름이나 머리 장식이나 스타일 등 부속물에 주목해 보면, ... 


보티첼리가 위치하고 있던 곳은 '고대'를 둘러싼 판타즘과 각성 사이, 15세기 피렌체의 현실에 대한 '개입'과 고대 예술이라는 꿈에 사로잡힌 '방심'의 틈새였다. 그것은 합리적인 '사려 깊은 생각'과 '상상력'에 의한 감정이입이 서로 부대끼는 공존 상태다. 이 '너무나 유약한' 화가에게 현저하게 나타난 '고대'라는 판타즘에 관심이 없었다면, 바르부르크가 박사학위 논문을 보티첼리론으로 썼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175쪽)  



Sandro Botticelli (1445-1510) 

Primavera 

1482, tempera

203 × 314 cm (79.9 × 123.6 in)

출처: commons.wikimedia.org


베버가 바르부르크의 논문에서 읽어낸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상업자본주의에 있어서 '경제 형식과 윤리적 생활양식'의 어긋남이었다. 이 모순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윤리'에 의해 통합된다. 베버는 모순을 극복한 후, 자본주의적 에토스가 성립하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진다. 이에 비해서 바르부르크는 상업자본주의라는 경제형식과 기독교적 생활양식의 긴장 관계를 고전 고대와 기독교의 대립 관계로 상징한 다음에, 이것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합불가능한 이 양자의 분열 상태의 한복판에서 찾으려고 한다. (238쪽) 


도상 연구자로서의 바르부르크의 연구 방향은 분명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몇 선배들 - 뵐플린, 부르크하르트 등 - 이 존재했지만, 바르부르크의 연구 방식은 거의 최초였다.  그는 서양미술 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일상 생활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무시간적 심층에 속해 있는 '고대 도상들의 이동과 흐름'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 연구의 최종판은 '도상 아틀라스 - 므네모시네' 기획으로 이어졌다. 


마신적 고대의 부활은 그동안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감정이입적인 이미지 기억이 지닌 어떤 양극적인 기능에 의해 생긴다. 우리는 파우스트 시대에 살고 있다. 거기서 근대의 과학자들은 - 마술적 실천과 우주론적 수학 사이에서 - 자기와 대상과의 사이에 '진지한 생각'의 '사유 공간'을 획득하려고 노력했다. 아테네는 확실히 다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재탈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아비 바르부르크, 1920년 (65쪽) 




- 일본 원서.  



- 아비 바르부르크 




Aby Warburg, Mnemosyne Atlas, Panel 79 (“The Eucharist”), 1929



"시간의 거울에 비친 '고대'를 재현한 이미지의 다양함은 각 시대의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인 선택경향을 보여주며, 그것에 의해서 소망이 형성되고 이상을 설정하는 집합적인 영혼이 세상에 명백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한 영혼은 구체화로부터 추상화로, 또는 그 반대로 향하는 주기적 왕복운동으로 인간이 절제Sophrosyne를 추구하며 벌여야 하는 싸움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309쪽) 



"고대풍의 역동적인 형태는 최대의 긴장상태에서 전승되는 것인데, 그것을 모방하고 흉내(상기)내는 자의 수동적 또는 능동적 에너지와의 관계에서 무극화된다. 시대와 접촉하고 나서야 비로소 양극화가 형성된다. 이것은 본래의, 고대에 있어 의미의 근본적인 역전(전도)에 이르는 것일 수도 있다." (309쪽) 


1929년 1월 19일 로마에서 므네모시네의 일부를 이루는 도상들로 바르부르크는 '기를란다요 공방에 있어서 고대 로마'를 테마로 강연을 했다. 아마 그의 논문이나 글보다 그의 강연은 수 배는 더 흥미진진하고 놀라웠을 것이다. 실제 도상을 앞에 두고 이루어지는 강의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서로 얽히고 교차되면서 몇 가지의 주제나 이야기로 순식간에 수렴되기 때문이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바르부르크에게 개인 지도를 받듯이 강연을 들었던 케네스 클라크는 그 체험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회상한다.'(314쪽) 



점성술 그림과 정념정형은 고대의 재생을 경유한 변화의 기록이며, 바르부르크는 평생동안 탐구한 이 두 가지 테마를 도상 아틀라스의 계획으로 집대성하고자 한 것이다. (310쪽) 


*  *


한 때 미술사학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진 바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보자면, 아비 바르부르크는 평생 아마추어(*) 연구자였다. 다만 그의 집안이, 그의 형제들이 세계적인 은행을 가진 유대인 가문이었고, 그는 형제들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했다는 점에서 그의 연구는 어려움이 없이 이루어졌고, 한동안 정신병으로 고생했지만. 한국에서의 아마추어 연구자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긴 요즘 같은 시기에, 국내든 해외든 석사나 박사로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것은 스스로 백수가 되겠어요 라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렸으니. 


바르부르크가 연구하고 수집했던 책들이 있었던 도서관은 현재 바르부르크 연구소가 되었다.  


이 책은 전문 연구서이며 평전이다. 다만 르네상스 미술이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울 수 있다.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꽤 난이도 있을 지 모르는 책이니, 선뜻 추천하기 어렵다. 다만 이 정도의 평전이 일본 연구자에 의해, 일본어로 씌여졌다는 점에서 일본 인문학의 수준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새삼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 혹시 '아마추어'라는 단어에 대해 오해가 있을까 덧붙인다. 여기에서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그가 학교에 적을 두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했다는 데에 강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아마추어가 자칫 바르부르크의 학문 세계를 낮게 평가하는 듯 하기도 하다. 하지만 바르부르크는 서양미술사에 있어 도상학적 연구의 시초를 닦았으며 이후 그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미술사학자들을 바르부르크 학파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작슬(Fritz Saxl), 빈트(E.Wind) 등이 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네 번째 소장을 지냈던 이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였다. 다소 비약하자면, 20세기 거의 대부분의 미술사학자들이 아비 바르부르크의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학교에 적을 두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아비 바르부르크와 달리 한국에서의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실은 이를 드러내고 싶어서 나는 의도적으로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 지도 모르겠다. 특히 인문학의 경우는 그 상황이 더 열악해지는 듯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라는 의식으로 인한 지적 불성실함보다는 아마추어적인 지적 열망이 더 필요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뭐, 해답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 ㅡ_ㅡ;; 





- 곰브리치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 


* 바르부르크 연구소 : http://warburg.sas.ac.uk/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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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요새.... 지하련님 추천 서적 읽다가 그지가 될판이긴한데 ㅋㅋㅋ 이 책도 땡기네여

  • 라보엠 2015.07.29 20:39 신고

    일본인 학자의 시각으로 본 바르부르크의 생애도 궁금하군요. 제가 지내는 곳에선 이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먼저 곰브리치가 쓴 책을 찾아봐야겠습니다.

    • 저자는 곰브리치가 쓴 평전이 지니는 약점을 이야기하며 그 부분부터 서술해 내갑니다. 그래서 두 권 다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므네모시네 관련 책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일본에선 므네모시네 전시를 했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저력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곰브리치의 평전을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았으나, 언제 읽게 될지.. ㅎㅎ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조중걸저 | 한권의책 | 2013.03.04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몬드리안의 <구성>은 이러한 이념의 회화적 대응물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류의 재현적 요소도 없다. 그것은 서로 단지 네모들의 집합일 뿐이다. 세계는 결국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추상적 창조물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어 모방으로써의 예술은 완전히 종말을 고한다. 이제 창조로써의 예술만이 남게 되었다.(307쪽) 



이렇게, 묵시록적으로 끝나는 이 책은 단순히 서양미술사에 대한 소개나 이해로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양식, 하나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도상학적 해석으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예술(혹은 예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온전히 그 시대로 돌아갈 필요가 있고, 그 시대의 생각, 사고, 감정, 웃음과 눈물을 편견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 책이 때로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그 시대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시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이 스스로의 마음을 어루만지지도 못하는데, 어찌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 사람의 마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예술은 그렇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와는 다소 떨어진 어느 자리 쯤에 위치해 있고 지금의 예술가들이 변방에 있듯이(혹은 소수의 지지 속에서) 옛날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나와는, 우리와는 참 멀리 있는 듯 느끼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서양 미술의 역사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를 줄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책들 중의 한 권이 될 것이다. 그것도 한국을 떠나, 세계적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은 굳이 필요없다. 그냥 사서 읽으면 된다. 비단 예술에 관심있는 이뿐만 아니라 인문학에 관심있는 이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함수의 도입과 바로크baroque 예술의 발생은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다. 함수는 이제 근대 세계에 있어서 중시되기 시작한 운동법칙, 곧 인과율의 수학적 표현이었다. 바로크 예술가들은 이러한 함수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따라서 바로크 예술의 역동성과 X축의 독립변수의 연속적 변화에 따른 종속변수의 운동법칙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카라바조Caravaggio의 그림 몇 점만 보아도 금방 확인되는 사실이다. 

형이상학적 해명이 없는 예술사는 도상학이나 도상학적 연대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필자는 인간의 정신이 그 이상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형이상학적 해명은 필자의 신념이다. 고딕은 단지 건축적 기법의 문제가 아니며, 다위니즘Dawinism은 하나의 생물학적 가설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떤 심미적이거나 학구적인 업적도 동시대의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그것들은 동시대 이념의 선구이거나 반영이다.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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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 비밀

모니카 봄 두첸(지음), 김현우(옮김), 생각의 나무 





이 책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네의 <올랭피아>, 고흐의 <해바라기>, 뭉크의 <절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이라는 작품에 대해 쓰고 있다. 원제는 'The private life of a masterpiece'. 


일반 독자가 읽기에도 좋고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이가 읽기에도 나쁘지 않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개별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서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하지만 고흐와 뭉크는 그들 삶의 아픔만큼 그들 작품이 가지는 울림은 어쩌지 못했다. 


도판도 나쁘지 않고 설명도 무리없이 읽힌다. 미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 


"나는 매일 죽음과 함께 살았다. 나는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두 가지 적을 안고 태어났는데, 그것은 폐병과 정신병이었다. ... ... 질병, 광기, 그리고 죽음은 내가 태어난 요람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천사들이었다" - 뭉크 


뭉크는 <병든 아이>라는 작품은 6개의 페인팅과 다수의 판화 작품으로 제작하며, 아래 작품은 그 첫 번째 작품이다. 열네살이 되던 해 결핵으로 죽은, 자신의 동생 소피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두첸의 설명은 이렇다. '그림의 소재 자체는 대단히 일상적인 것이었지만, 비평가들은 미완성처럼 보이는 작품의 낯선 감정적 스타일에 대해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외 내 눈을 끌어당긴 여러 작품을 소개하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미룬다. 다만 뭉크는 나쁜 건강에도 불구하고 80세까지 살았으며, 말년에는 목가적인 작품들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의 초기작들이 너무 유명한 나머지, 뭉크에 대한 소개는 초반에만 국한되고 후기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나 또한 관심 없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뭉크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싶었다. 



The Sick Child

Edvard Munch, 1885-86

oil on canvas, 119.5 * 118.5cm 

오슬로국립미술관 






세계 명화 비밀

모니카 봄두첸저 | 김현우역 | 생각의나무 | 2006.10.01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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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를 정리하다가 메모 해놓은 것을 옮긴다. 수지 개블릭의 당연한, 하지만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에 대한 지적이다. 보스와 초현실주의를 연결짓는 것은 설명의 용이성 탓이지, 실제로 보스가 초현실주의와 관련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오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보스의 작품은 지극히 후기-중세적이고 고딕적이다. 


신의 세계가 가졌던 호소력이 이른 아침의 안개처럼 정오를 향해가면서 사라져갈 때, 그 안개를 못내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보스의 작품은 먼저 중세말, 근대초의 심리적 방어를 위한 공포적 상상력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의지를 강제할 외부의 제어 수단을 바라기 마련이다. 중세 사람들에게 신의 세계란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이었고, 보스는 그 세계가 존재함을 시각적으로 그려냈다. 이 점에서 수지 개블릭의 '종교적 사실주의자'라는 표현은 매우 타당하다.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와 초현실주의를 같이 연결시키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간주되어 와서 그러한 비교를 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그릇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보스는 동시대 사람들이 괴물에 대하여 갖고 있던 관념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그림이 없었다면 이 관념은 중세의 '불가사의'로 전해졌을 수도 있다. 오늘날 정의, 원자력, 산업 등과 같은 가장 '최신'이거나 혹은 전통적인 개념과 느낌을 '표현하는' 사회적 사실주의자(social realist)'가 존재하듯이 보스도 '종교적 사실주의자(religious realist)'였다. 
-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 14쪽 (천수원 옮김, 시공사)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Bosch's most widely known triptych, El Prado Museum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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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시커50-회화

롤프H.요한젠저 | 황현숙역 | 해냄 | 2002.03.11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롤프 H. 요한젠, <클라시커 50 회화>, 황현숙 옮김, 해냄



1.
서평이란 책을 평가하고 읽는 이, 또는 읽을 이를 위해 씌어진 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글 쓰는 이의 사정에 따라 그 글의 모양새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책에 있다기 보다는 책의 외부에 있다. 즉 책을 온전하게 평가하기 못하고 책이 놓여있는 Context에 너무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미술사(학)라는 한국에 아직 낯선 학문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예술을 포함한) 전반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서평을 쓰는 이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요컨대 한국의 학문 연구 풍토가 어떠하며 대학 교육이 어떻고 독자의 수준이나 태도가 어떠하다는 말은 되도록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원래 시대가 혼탁할수록 책에 대한 글에 정확한 시선과 정갈함이 요구되며 가치 있는 책들이 일반 독자에게 읽혀져야만 한다.

2.
미술 작품을 소개하거나 해설하는 책들은 예상 밖으로 많다. 하지만 그 책의 내용이나 질이 의심스러운 책들 또한 많다. 모든 책들이 정확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정적인 제목과 허술한 내용과 논증으로 독자를 기만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는 선정적인 제목의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독자의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잰슨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이 좋다. 혹자는 이러한 '미술의 역사'에 대한 책보다 개별 화가나 개별 작품들에 대한 책으로도 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 미술사를 이해하고 있어야만 개별 미술 작품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가능하다.

한 예를 들어보자. 장 프랑수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1857년)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고 곧잘 광고 소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는 이는 몇 명쯤 있을까? 아마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이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수들 중에서도 많지 않을 듯 싶다. 그리고 감동 받지 않았으면서도 너무 유명한 작품이라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가르친다면 자기 기만적인 행동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이와 가장 유사한 예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될 수 있겠다).

Millet, Jean-Francois,
Les Glaneuses, 1857


2002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미술작품을 보는 모든 이들이 1857년에 완성된 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19세기 중반 유럽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19세기 중반의 사람에게 백남준이나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듯이 우리가 19세기 중반에 완성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19세기 중반의 사람이 되어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래된 미술 작품을 보고 이해하고 감동 받기 어려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 가지는 의미 내지는 당시 미술계에 던진 충격은 이 작품이 완성되고 난 다음 6년 후의 작품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터키 목욕탕'을 옆에 두고 보면 쉽게 알 수 있다(눈을 감고 한 화랑에 밀레의 작품과 앵그르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있다고 상상해보라). 자끄 루이 다비드의 제자인 앵그르는 그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고 그 당시 미술계에서는 앵그르류의 작품들을 최고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 때 공개된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한 마디로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롤프 H. 요한젠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얼굴에 주먹 한 방을 날리는 것 같은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 없다'.(p. 184)



Ingres, Jean-Auguste-Dominique,
The Turkish Bath, 1862
;Oil on canvas on wood, Diameter 108 cm (42 1/2"); Musee du Louvre, Paris


3.

한 예를 더 들어보자. 주위에 클림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데, 여기에 대해 무척 흥미로운 추측을 해보자. 나에게 클림트의 작품은 뛰어나거나 감동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는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욕심많은 한 화가의 집요함이 너무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성을 비방하고 그녀에게 무한한 애로틱한 힘을 부여하여 그녀 앞에 다가온 남자를 살해하는 요부로 그린다'.(p.214) 이처럼 클림트는 여성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적어도 그의 작품들은 이러한 혐의를 벗기 어렵다. 그런데 이토록 여성을 비하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 도리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이러한 요부를 선호하고 이러한 요부가 되길 꿈꾸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추측이기 때문에 자신이 클림트를 좋아한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추측도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가령 '유디트 I'을 보면 유디트로 표현된 여성의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데, 이는 여성을 성적 대상(또는 노리개)로 파악할 때의 여러 미술 작품들에게 주로 보여진다. 이러한 여성이 빼곡히 그려진 기하학적인 문양들 속에 갇혀있으니, … …


Klimt, Gustav
Judith I ,1901
; Oil on canvas 60 1/4 x 52 3/8 in. (153 x 133 cm) Osterreichische Galerie, Vienna



4.
그러나 이러한 흥미진진한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은 드물다. 서점에 많은 책들이 나와있기는 하지만, 그 책들을 다 읽을 사람도 없겠거니와 다 좋은 책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내가 대학 일이학년 때 읽은 진중권의 '미학오딧세이'를 지금 읽어보면 무척 식상하고 재미없게 읽혀지지만, 그래도 일반 독자에게는 진중권의 그 책처럼 친절하게 하나하나씩 설명해주는 책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대학의 교양 교육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니). 하지만 국내 연구자에 의해 씌어진 우수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 있는 책들은 번역서적들인데 대부분 전문연구서들 일색이다. 지금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일반독자를 위해 씌어진 책이라 할 수 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전문서적 못지 않은 지식과 성찰을 보여주고 있어 일반 독자가 부담을 가지지 않고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 책 '클라시커 50 회화'는 해냄에서 나오는 시리즈물로서 원래 독일에서 출판된 시리즈이다. 여러 분야들에게 대한 책들이 나와있는데, 미술에 대해서 디자인에 대한 책이 한 권 더 있다. 책은 총 50개의 미술 작품(전적으로 회화에만 국한된)과 이에 대한 상세한 해설, 화가에 대한 간략한 요약으로 구성되어있다. 르네상스 초기, 흔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이라고 평가되는 지오토의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부터 시작해 앤디 워홀의 '마를린'까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웬만한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해볼 만한 하다. 또한 작품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 화가의 다른 작품들이나 다른 화가의 작품들까지 곁들이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일부분을 예로 들어 독자에게 이 책이 읽어볼 만한 책이면서도 만만치 않은 책임을 보여주기로 하자.


DURER, Albrecht
Selbstbildnis im Pelzrock (Self-Portrait in Furcoat, Self-Portrait at 28), 1500
Oil on panel, 67 x 49 cm Alte Pinakothek, Munich


작품의 창작을 수학적인 질서로 파악하고자 했던 뒤러는 휴머니즘(인본주의)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양식화된 자화상 속에서 인간은 기하학과 미(美)를 통해 그 가치가 상승된다. 그것은 인간과 신이 동일화된 근원을 갖기 때문이다.(p.49)

'자화상'은 뒤러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새로운 자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자의식은 바로 신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가는 신의 뒤를 잇는 제 2의 창조자이다.(p.53)


Millais, John
Ophelia 1851-52
Oil on canvas 76.2 x 111.8 cm (30 x 44 in) Tate Gallery, London


라파엘 전파의 기본 원칙은 자연에 대해 최대한 충실하자는 것이다. 그들은 이상화된 라파엘로의 방식을 거부했다. 초기 르네상스회화, 특히 보티첼리와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에서 그들의 전형을 찾았다. 밀레이는 모든 식물과 꽃들을 식물학적 특성으로 파악했다. 그것은 파엘 전파가 추진했던 하나의 '세부적인 사실주의'였지, 결코 포괄적인 사실주의는 아니었다. 밀레나 쿠르베의 동시대적 사실주의와 그들은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라파엘 전파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는 하지만 그 사물과의 직접적인 논쟁을 피한다. 그들의 그림은 비현실적이며 풍경은 상상에서 비롯된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남긴 그들만의 특징이라면 젊은 신부나 죽은 애인으로 또는 남자의 자기 파괴적인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 성모이거나 '팜므 파탈'로 - 나뉘어지는 여성상의 분열이었다(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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