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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겨울비가 내리는 마산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도로 옆 수백억 짜리 골리앗 크레인은 어느 신문기사에서처럼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 텅 빈 자리엔 무엇이 들어올까.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따뜻한 평화를 뜻하는 걸까, 

아니면 또다른 아픔을 알리는 신호일까.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마음 한 켠의 불편함과 불안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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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두터운 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났다. 비가 올 듯 구름들이 몰려들었지만, 더위는 여전했다. 병원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었다. 서울에서 가지고 온 자료들을 가지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낯설었다. 서울에선 나이와 상관없이 도서관 열람실을 오고갔는데, 여긴 학생들만 보일 뿐이다. 


오전 10시. 


서울이라면 자리가 없었을 시간인데, 여긴 여유롭다. 하긴 도서관이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마다 있으니까. 책들도 제법 있고 실내도 깔끔하다. 


대도시 생활이 익숙해지니, 견디기 어렵다. 떠나보니, 이 곳이 살기 좋은 곳임을 알겠다. 주말 내내 창원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올 한 해 자주 이 생활을 반복할 것같다. 한 때 이 도시에서 내가 알던 이들도 이젠 중년이 되었겠구나. 그도, 그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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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 행성




 박정대

     

 


 콜 미, 가수는 밤 새 노래를 하고 나는 로즈제라늄 곁에 누워 있네

 여기는 12월의 입구를 떠도는 고독 행성


 방울토마토처럼 입 안 가득 깨물고 싶은 밤


 그 밤의 옆구리로 밤새도록 눈발들은 허공의 밀사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데, 눈발들이 내려와 고독고독 쌓이는 이곳은 하얀 침묵의 지붕을 모자처럼 쓰고 서 있는 고독 행성


 콜 미, 밤 새 가수는 저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지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쌓이는 노래들


 고독 행성에 호롱불이 켜지는 점등의 시간이 오면 생의 비등점에선 주전자의 물이 끓어오르고 톱밥 난로의 내면을 가진 천사들은 따스하게 데워진 생의 안쪽에서 영혼의 국경선을 생각하네


 콜 미, 가수의 목소리도 가랑잎처럼 바람에 뒤척이는데 창문 밖 국경수비대들도 하얀 눈발을 뒤집어쓰고 곤하게 잠든 세계의 지붕 밑


 천사들의 숨결에 로즈제라늄만 사붓이 흔들리는 시간


 여기는 바람이 불 때마다 저 홀로 펄럭이며 아득하게 깊어가는 한 잎의 고독 행성





'고독고독'하다는 게 무얼까. 나도 참 '고독고독'한데, '고독고독'하다는 게 뭘까. 뒤늦게 박정대의 시집, '사랑과 열벙의 화학적 근원'을 찾으니, 절판되었다. 도서관에서 복사라도 할까. 


고독고독한 바람이 불고 고독고독한 가수가 '텔미'를 부르는 행성, 고독고독하게 밤 새 눈이 내리고, 아득하게 깊은 사랑에 빠지고 싶지만, 고독고독하기만 한 바람을 가진 고독고독한 이의 행성, 고독 행성. 


따스한 봄바람 부는 대도시 서울은 나이가 들수록 고독고독해지만 한다. 실은 그런 시대이고, 그런 행성인 게다. 


고독고독고독....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박정대, 웅진, 2007 




고독고독한 일상을 견디기 위한 짧은 노래 하나. 


Sarabande - Ludovico Einaudi by Angèle Dubeau & La Piet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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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놓고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평균 퇴근 시간 밤 10시. 그래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이토록 많은 일들이 필요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서, 한정된 시간과 자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떻게든 일은 끝내야 하니, 밤 늦게, 주말까지 나가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정말, 주말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매일 평일이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하지만, 그래도 조금 늦게 나갈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다니. 





고향에 가면 늘 바다 앞 횟집엘 들린다. 서울에도 회를 곧잘 먹는 편인데도, 고향집에 가면 회만 찾는다.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 ... 


전생에 바다 물고기였던가, 다음 생에 진짜 향유고래가 되려고 그러는 것인지. 




가끔 핸드폰 사진이 잘 나올 때가 있는데, 이런 어슴프레한 저녁 때이다. 이런 바닷가 앞에서 몇 달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언제쯤 될련지... 


오늘 퇴근이 밤 11시였고, 그래도 일을 끝내지 못하고 온 탓에, 내일 7시 정도 출근하려고 한다. 과연 지금 잠을 자곤 일어날 수 있을까. 올해 가을 이렇게 일을 하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실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자부한 탓에,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시간은 흐르고 프로젝트는 끝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때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 벌써 새벽 1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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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출근을 했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을 홍수 난 강물처럼 흘러갔고 바람은 여름을 버리고 가을을 택했다.  끝내 프로젝트 사무실에서 내 허무를 견디지 못하고, 빌딩 근처 커피숍에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토니 주트의 책. 내가 앉은 네모나고 긴 테이블 주위, 둥글거나 네모나거나 가볍거나 무겁거나 따뜻하거나 차겁거나, 모든 테이블에는 다들 연인이 흔들리는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답게 보이진 않았다. 나는 끝내 사랑을 믿지 못할 나이가 된 것이다. 마르케스라면 노년의 사랑도 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사랑을 잃어버린 후이거나 사랑을 믿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러니 사랑을 믿다가 끝내 사랑하지 못한 이에게는 차라리 사랑은 없다고 믿는 편이 살아가는 데 더 용이할 것이다. 마치 사랑은 자동차 같은 거라든가, 아니면 강아지 같은 거라든가... 즉물적이거나 동물적인 것.  





어느새 월요일 정오가 되었다. 아름답던 기억은 술에 취한 박제가 되었고 술자리에서 일찍 떠난 이는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향기롭던 청춘의 의미가 사라지자 시간은 정지되었고 색들은 그 다채로움을 잃어버렸다. 도톰한 입술에서 저주스런 비린내가 가득했다. 2015년 한국 서울. 나는 그가 아니고 그녀는 없었다. 


가끔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감에 휩싸이지만, 나는 어느 새 그 곳을 지나쳐가고 있었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어느 월요일, 나는 그 무시무시한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화요일에 이 글을 공개모드로 바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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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내 마음에, 그대 가슴에, 온 우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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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삼각지로 걸어가다 문득 마주친 대도시의 오후






상아색의 구름 한 떼가 지는 해를 감싸면서 하늘 꼭대기에서 땅 밑까지 노을이 가득 차고, 거대한 고독이 이미 식어버린 채 퍼져나가는 시간이다(조르주 베르나노스). 느리게 숨죽여 있던 무채색 건물이 숨을 쉬고 우리들의 숨겨진 영혼이 노래하는 순간이다. 태양이 사라지더라도 태양을 기다리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꿈 속 노을가 근처에서 막걸리 중이다. 그의 삼각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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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도어즈의 '모리슨호텔'을 다운받아 들었다. 들으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도어즈의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맥주를 마시면서 취하고 싶다고. 


오후 미팅이 끝나고 저녁 5시가 되었고, 내일 오전 미팅 준비를 위해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쓸쓸해 보이는 강변을 찍었다. 낭만이 사라져 가고 있다. 슬픈 일이다. 감수성이 메말라가는 건 좋지 않지만, 건조해지는 만큼 상처도 덜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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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가 머리 끝까지 올라갔다. 집에 오니, 밤 12시가 가까이 되었고 나는 아직 일을 끝내지 못한 상태다. 하긴 내가 무리하게 욕심을 부려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딱딱한 걸 먹으면 안 되는데, 맥주 몇 잔에 딱딱하다 못해 씹혀지지도 않는 오징어 뒷다리를 안주 삼았다. 나이가 들수록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상 속에 내 온 몸이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은 한 발 뒤로 물러나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데, ... 올해 그런 여유가 생길 지 모르겠다. 


여름, 뜨거운 절망을 뒤로 하고, 가을, 내년을 위한 희망을 꿈꾸어도 좋을 시기다. 몇 번의 주말 오후, 핸드폰으로 늦은 오후 석양 아래의 서울을 찍었다. 내가 가진 니콘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있지만, 지금 PC에 옮기기가 귀찮다. 














이 작은 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어쩌면 이루어지지 못할 지라도, 신의 시간과 비교한다면 보잘 것 없는 시간이라도 희망을 꿈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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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요즘 어떤 영화가 재미있는지 전해 듣기 마련이다. 그만큼 대중적이고 사람들의 관심사이다. 하지만 미술은? 아직까진 찾아서 움직일 수 밖에 없음을...

몇 달 째 전시장 근처도 가지 못했다. 회사일이 바쁘기도 했고 주말이면 집 밖으로 나오는 건 대단한 각오를 해야 될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말미술여행'이라는 어플을 만들어놓고도 개점 휴업 상태가 되었다. 역시 콘텐츠 관리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회사 일과는 무관할 때 더욱 그러하리라. 

그러나 이제 외출하기 좋은 봄날이 오고, 몇 개의 전시를 챙겨보았다.


데비 한 1985 - 2011, 성곡미술관



데비 한의 작품은 미국과 한국, 서양과 동양, 너와 나를 묻는다. 인용과 조작, 해체로 이루어지는 그녀의 작품은 현대 한국 미술의 최전선이 어떤 질문들로 형성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곡미술관에서 3월 18일까지 그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마크 퀸, MC갤러리



마크 퀸이 한국에 다시 왔다. 이번엔 눈동자다. 생경스러우면서도 가끔 만나게 되는 소재이다. 아직 전시를 보지 않은 상태라, 뭐라 말하기 어렵다. 마크 퀸Marc Quinn 자체가 워낙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인 탓에, 실제 작품을 봐야만 이번 눈동자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잘 나가는 영국 작가의 전시, 추천할 만하다.

2008/11/28 - [예술의 우주/예술가] - 마크 퀸 Marc Quinn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명동 이야기, 서울역사박물관



이런 전시가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 전시 준비 자체가 매우 긴 시간과 노력,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준비가 완료되고 전시가 열리고 전시가 끝났을 때, 우리는 2012년의 시선으로 정리된 하나의 역사를 가질 수 있다. 전시란 그런 하나의 역사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시는 반-자본적이고 반-상업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랜만에 전시 관련 포스팅을 하니, 부끄럽기 그지 없다. 분발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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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서울 풍경을 올린다. 삭막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저 풍경 안으로 들어가면 따뜻함이 묻어날 것이다. 때로는 슬프고 우울할테지만, 36.9도의 체온을 느낄 수 있을 테다. 나는 저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그렇게 세월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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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선 충정로역에서 내려 중앙일보사 빌딩까지 걸어갔다. 늦겨울 햇살은 따스했고 찬 바람은 없었다. 군데군데 녹다만 눈들이 도시의 그늘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혼자 정해진 모험을 하듯, 마땅히 해야할 일을 보듯, 가방에 작은 노트와 읽던 책 한 권을 넣고 전시를 보러 간다. 보통 최소 10개 이상의 전시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아는 작가를 만나면 인사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젠 누군가와 함께 보러 가는 것이 되레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조우 - 더블린, 리스본, 홍콩, 그리고 서울'은 전시된 작품들의 수준으로만 보자면, 올해 기억에 남은 몇몇 기획전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지만, 너무 평면적으로 펼쳐져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쉬운 전시였다. 설득력 있는 주제가 제시되고, 그 주제에 맞추어 작가와 작품이 선정되었다기 보다는 그 반대의 절차로 준비된 듯한 인상을 주었다. 또한 넓은 전시장에 비해 작품 수가 적어 디스플레이의 효과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작품들 대부분은 보는 이의 눈을 자극했고 마음을 움직였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홍수연 - 유기체적 액면 추상의 세계

홍수연, Casting Call-Red#3, 캔버스에 혼합재료, 2005

홍수연, white lush, 165×165cm, 2006


기하학적인 느낌을 주었던 액면 추상의 세계는 홍수연에게 와서는 유기체적인 추상으로 변화한다. 마치 생물의 이름 모를 세포의 형태를 닮은 것같기도 하고, 하늘하늘 거리는 꽃잎을 닮은 것같기도 하다. 색의 대비와 변화는 의도하지 않은 듯 낯선 느낌을 주고 서로 배척하는 듯 하다. 하지만 이러한 대비와 변화는 갈등의 양상이라기 보다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식의, 마치 의도하지 않은 공교로운 우리 생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홍수연의 작품은 볼수록 흥미롭다.  


석철주 - 전통 산수화의 현대적 재해석

석철주, 생활일기 : 신몽유도원도_캔버스에 수묵, 아크릴채색, 2008


석철주의 작품은 기존 작품들을 새로운 작업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재해석의 방식이 계산적이면서 자연스럽고, 현대적 느낌의 마띠에르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기억해둘 만하다. 모든 작품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석철주의 작품은 사진 이미지로 보는 것은 실제 작품이 가지고 있는 결이나 느낌, 작품의 풍성함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Anthony Haughey - 경계에서 무너지는 현대적 삶


Anthony Haughey, 엽총탄, 분쟁의 영토 시리즈에서, 컬러 람다크롬 프린트, 123×121cm, 2006

더블린 출신의 사진 작가 Anthony Haughey의 사진 작업은 늘 분쟁의 현장을 담아낸다. 그런데 그 분쟁의 현장 속에서 극적인 스토리, 미학적 효과, 그리고 정치적 메시지까지 담아낸다는 점에서 그의 사진은 주목할 만하다. 황폐한 풍경 속에서의 대비는 현대 세계의 비극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김택상 - 색의 본질을 향한 탐구

김택상 바람의 빛깔, 2007, 캔버스에 물, 아크릴, 바니시



김택상, penetrate(스며들기), water,acrylic,mattvarnish on canvas, 70 x 70 x 4cm


김택상, Shadow of blue, 캔버스에 물, 아크릴, 바니쉬 채색, 70×78cm_2008
(2008년 12월 갤러리 분도(www.bundoart.com)에서 전시한 작품임)


아직까지 이런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아마 많은 이들은, 이미 한참 지나간 듯한 추상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평가절하할 지 모르겠지만, 김택상이 가진 평면성과 색채의 깊이는 요즘 보기 드문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평면성을 지향하는 모더니즘 미술이 다소 시대에 뒤처진 듯한 인상을 주는 요즘, 김택상의 작품은 그 속에서도 확실한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수경 - 혼성된 문화와 그 흔적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2007, 도자기 파편, 에폭시, 24K 금


이수경의 작품도 나의 눈길을 끌었다. 여러 번 잡지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그녀의 번역된 도자기는 처음 보았다. 실제로 보았더니, 마음에 들었다. 잡지에서 보았을 때는, 꽤 흥미로운 작업이구나 였다면, 실제 보았던 그녀의 작품은 흥미로움 이상의 미적 즐거움과, 분명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수 있겠다. 또한 나란히 전시되었던 그녀의 드로잉 또한 제법 마음에 들었다. 


신기운 - 시간, 삶, 그리고 바니타스

신기운, 아스트로 보이, 2006, HD영상설치, 2분 12초


작년 미디어비엔날레에서도 만난 신기운의 비디오 작업은 매우 단순한 아이디어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삶, 시간, 존재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보는 이들의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마치 모래시계가 아래로 떨어지듯, 신기운의 비디오 영상은 흘러가는 시간, 마모되는 우리 삶,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허무(Vanitas)를 짧은 영상에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    *

위에서 언급된 작가 이외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이전에 이 공간을 통해 소개되었거나 앞으로 소개될 작가들이 대부분이라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한다. 전시는 꾸준히 보고 아, 이 작가의 작품은 너무 좋다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리뷰로까지 이어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빠뜨리지 않고 리뷰를 하겠다는 생각에 이 전시도 끝난 지 몇 달이 지나서야 블로그에 올릴 수 있었다. 게으름이라기 보다는 바쁜 내 일상을 탓해야 하리라. 



* 본 블로그는 비상업적 목적의 블로그이며, 전시와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은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 위에서 사용된 작품 이미지들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으며,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토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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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시속 백 킬로미터에서 백이십 킬로미터 사이를 오가는 속도 속에서, 나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시월 말의 아침 하늘은 신비롭고 고요했다. 서해 갯벌 사이로 나있는 도로는 꽤 절망적인 근대성(modernity)을 가지고 있었다. 서유럽 나라를 가면 늘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아직 한참 먼 한국의 정신적, 문화적 성숙도와 시스템을 선명하게 보게 된다.

종일 잠을 잤다. 잠을 자지 않을 때는 청소한다는 핑계로 시간을 아무렇게나 쓰며 방 안을 배회했다. 무려 이천 발자국 이상을 걸었다.

다행히 금붕어는 살아있었고 시든 화분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으나, 아직 남아있는 초록빛 생기는 나로 하여금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듯 보여 다소 간의 위안이 되었다. 몇 주 만에 짬뽕을 시켜 먹고 설사를 했다. 흥미로운 이율배반이었다.


첼리비다케의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가 담긴 낡은 LP를 들었다. 서울의 낮은 추웠고 밤은 아늑했다. 하지만 서울 변두리 동네의 일상적인 소음은 이 곳이 프랑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서가에서 지난 이천년에 있었던 ‘인상파와 근대미술-오르세 미술관 전’ 도록을 꺼내 뒤적거렸다. 그러고 보니 폴 고갱은 늘 뒷전이었다. 내 관심은 모네, 드가, 세잔, 고흐로만 이어졌지, 고갱은 고흐 옆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그런데 이 남자,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평생 가난한 전업 화가로, 두 명의 아내에게서 모두 버림 받는 남자로, 홀로 목판화 작업을 하다가 죽는다.


파리에서 만난 한 예술가에게 지나간 여자이름을 이야기하자, 아는 척 해주었다. 반은 기뻤고 반은 씁쓸리했다. 그는 파리 마자랭 가의 갤러리 Guislain-Etats d’Art에서 막 전시를 끝낸 참이었다. 그의 작품은 의미심장하고 슬펐지만, 그의 사각형 구도는 너무 차가워서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파리에 있는 동안 와인 한 잔 하리라 생각했지만, 생각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오랜만에 심야라디오를 듣고 있다.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향을 피웠다. 담배를 피웠다. 마음은 어떤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의 절반은 두려움이고 나머지는 포기다.


다닐 직장을 알아볼 생각이다. 갤러리 쪽으로 가고 싶으나,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다시 산업 쪽으로 가게 되면, 의외로 긴 직장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픔이 내 마음 전체를 지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난 이미 슬픔마저도 포기했으니까.





Gauguin, Paul
Portrait of the Artist with the Idol
c. 1893 ; Oil on canvas, 43.8 x 32.7 cm (17 1/4 x 12 7/8 in); McNay Art Institute, San Antonio, 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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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10.29 19:14

    비밀댓글입니다

    • 작품을 실제 보아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인터넷 갤러리는 그 한계가 분명하죠. : )

      오프라인에 갤러리를 하고 싶지만,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거든요. 최근에는 갤러리 쪽에 자리가 있을까 싶어 기웃거립니다만, 요즘 같은 불경기엔 그것마저도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네요. ㅎㅎ



어제 오전 일찍 나와, 세느강 옆을 걸었다.

서울은 마치 표준화, 규격화, 효율화의 전범처럼 꾸며져 있다면, 파리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다르다. 얼마 전 서울시 청사의 재건축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은 한국 문화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느강 옆을 걸으면서 보게 된 강 옆에 놓인 배들의 모양 하나하나는 각각의 개성을 살려 설계되고 장식되어 있었다.

동일한 디자인의 아파트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서울은 꼭 20세기 초 근대주의자들의 잃어버린 로망을 되살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보인다. 하나가 잘 되면, 그 하나를 따라하기 바쁘다. 한국 사업가들이 '벤치마킹'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문화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 있어 세계가 놀랄 정도의 시간 단축을 보여주었지만, 개성화나 창조성의 부분으로 들어가버리자 여기저기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떠들고 있는 '잃어버린 10년'이 바로 '삐걱거리기 시작한 10년'이다. 이는 좌파(이 표현만큼 부적절한 것도 없을 텐데. 실은 전혀 좌파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편의상 사용한다.)적 정책과는 무관하다. 현 정부의 잘못된 정치적 주장이 잘못된 정책 수립과 집행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시 유예된 미래를 파리에서 보내고 있는 나는 마자랭 72번지 갤러리 프레드릭 모아장(Galerie Frederic Moisan)에서 하루의 반을 보낸다. 그리고 갤러리 닫는 시간 쯤, 오데옹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샤틀레 역에서 일드프랑스로 나가는 A4 전철로 갈아타고 뷔시 생 조지 역에서 내려 숙소가 있는 골프장 마을까지 걸어간다.

어제서야 비로소 미술관을 갔다. 미술관 앞에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은 이 곳이 19세기 중후반 미술에 있어서 거의 독보적인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는 뮤제 오르세임을 알게 해 주었다. 약 3시간 동안 관람을 했다. 하지만 나는 빈 노트 하나 들고 나와 하루 종일 앉아 작품 보면서 작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많은 전시와 아트페어를 다니면서 무수한 현대 작품들을 보아왔으나, 19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근대 미술 작품 앞에서 얼마나 많은 현대의 예술가들이 절망했을까 하는 생각을 들었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미술(부게로, 제롬 같은 이들) 앞에서 A3 사이즈의 정도의 작품들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매혹시켰으며 끊임없이 물결치는 위대한 예술의 바다를 창조해낸 19세기 후반의 인상주의자들과 그 후예들을 만나면서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르세를 나오는 길에 책 몇 권을 사들고 나왔다. 잠시 한국 미술에 대해 생각했다. 온통 꽃 그림들과 과일 그림들로 도배된 한국 현대 미술을 보면 얼마나 참혹스러운 기분이 드는지, 도대체 몇 명쯤이나 알까. 아니면 숲 풍경? 그러고 보면 한국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한국 미술인 셈이다.


세느강변 산책로

드가(Degas)의 조각 작품들.

조르주 쇠라의 작품들. 어쩌면 후기 인상주의자들이야 말로 현대 추상 미술의 시작을 알린 예술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모네, 피사로, 시슬리 같은 인상주의자들을 넘어서기 위해 쇠라, 시냑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어떤 이는 일찍 죽은 조르주 쇠라를 아쉬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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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 skynsea 2008.10.23 16:00 신고

    혼자서 오르세 갔다가 위통이 생겨서 거의 기절해서 일층 로비에 누워 있다시피하다가 온 기억이 나는 군요.. 기절 끝에 황홀경이라니,.. 복통 중 인상파의 거장들 앞 의자에 앉아 한참을 고통과 감동의 두가지 감정이 복받쳐서..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시 카메라가 서툴다. 내가 원하는 구도는 우연히 맞추는 경우가 있지만, 내가 원하는 색상은 거의 맞추는 경우가 없다. 카메라, 꼭 물감과 붓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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