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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전 2세기 제작 추정





책을 읽는다고 당신의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나아지지도 않는다. 쓸데없이 고민만 많아진다. 할 수 있는 건 빨간 신호등일 때 건널목을 건너지 않는 정도이지만, 고민하는 것은 이 세상 전체에 대한 것들이다. 무분별한 생산과 소비로 인해 병들어가는 지구나 갑작스럽게 성장하고 있는 AI(인공지능)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라든가 북핵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끼인 한반도의 운명 등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을 누구에게도 말할 필요도, 말할 사람도 없다. 주제 넘은 염려다. 정작 고민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어린 아이 교육이나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채 빚만 쌓이는 집안 경제, 또는 직장 문제나 나이가 들수록 위태로워지는 돈벌이. 그러나 이 또한 고민으로만 머물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실적인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하는, 종이 위의 글자로만 존재하는 책만 읽는다. 도리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돈마저 저 책들을 구입하기 위해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왜 나는 책을 읽는 것인가.  




Saint Jerome

Caravaggio (1571-1610) 

Oil on canvas, 112 cm × 157 cm, 1605-1606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 강유원, <<책과 세계>> 중에서




어쩌면 나는 병에 든 것이다. 기원전 안지오의 저 소녀도 병 들고 기원후 4-5세기의 성 히에로니무스도 병든 채 라틴어 성경을 옮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 소녀가, 성 히에로니무스는 병에 걸렸음을 사람들이 알면 안 되었다. 어쩌면 이 병은 전염병일 지도 모른다. 우리 영혼의 파국을 부를 수도 있고 현실적 자각을 방해할 수도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르게 하고 구별짓게 하는 이 병은, 걸린 사람들만 서로 알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병들었기에 어떻게든 그것을 다른 것으로 포장해야만 한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그들은, 우리들은 병든 것을 숨기기 위해, 도리어 병 든 것이 아니라 당신들과 다른, 훨씬 우월하며 고귀하다고 여기게 하려고 고대로부터 책 읽기를 포장해 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 플라톤은 책을 읽는 우리들와 다른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이 사람들은, 지혜와 선의의 경험이 전혀 없이, 잔치와 또한 그와 유사한 즐거움에만 항상 익숙하고, 낮은 수준의 교양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일생을 그런 식으로 방황하며 살았다. 그들은 진리를 찾아 하늘을 바라본 적이 없고, 더 높은 진리를 향하여 비상한 적도 없으며, 어떤 순수하고 지속적인 즐거움을 맛본 젓도 없다. 가축의 무리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은 항상 허리를 굽혀 눈을 땅 바닥과 먹을 곳에 고정하고, 먹고 살찌고 성 관계를 맺어 새끼를 낳으며, 이들 즐거움에 대하여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보였다. 그들으 무쇠와 같은 뿔과 발굽으로 서로 차고 받았고, 그들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서로 죽이기까지 하였다. 

- 플라톤, <<국가>>, 9장 중에서 




2. 위태로운 프란체스카의 독서 



Francesca da Rimini

William Dyce  (1806-1864) 

Oil on canvas, 218 cm  × 182.8cm, 1837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프란체스카는 자신들의 운명을 예고하는 시구를 읽다가 만다. 책을 읽는 프란체스카의 얼굴 위로 파올로의 얼굴이 겹쳐지고, 이 둘은 불륜의 사랑을 나눈다. 프란체스카는 파올로의 형과 결혼을 약속했으나, 사랑에 빠지는 건 파올로였다. 파올로도 마찬가지여서, 이 둘의 운명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죽어서도 끝없는 세속의 비난을 견뎌야만 한다. 


중간에 멈춘 프란체스카의 독서 위로 비극적인 사랑이 놓이고, 고통스러운 사랑의 밤은 지나고, 죽음의 아침만이 남았을 뿐이지만, 그녀의 책 읽기는 끝나지 않는다. 



나는 행복을 찾아 모든 곳을 헤맸지만, 결국 어느 한 구석에서 책을 읽다 행복을 발견했다.

-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80 ~ 1471) 



그러나 이제 그 행복한 구석은 없다. 사랑하는 연인도 없다. 우리는 행복을 발견하기 전에 이제 네트워크의 부름을 받을 것이다. 아니면 책을 읽다가 네트워크로 들어가 검색하게 될 지도 모른다. 


진정한 행복은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고독 속에 존재한다. 말씀으로 시작된 이 세계는 반복적으로 책으로 돌아가고 자주 책 밖으로 나온다. 이야기가 되거나 문장 되거나 단어가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끝없이 변주되어 나오는 최초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네트워크로 수렴되고 디지털화된 기호가 되고 시뮬라크르가 된다. 그리고 물질적 세계에서 사라진다. 



3. 책벌레는 되지 말자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읽지만, 나는 읽기 위해서 산다. 

- 로건 피어설 스미스(Logan Pearsall Smith, 1865 - 1946)



나도 읽기 위해서 사는 것일까. 이에 우리의 친구이자 눈 먼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은, 그래도 책벌레가 되지 말자고 말한다. (어쩌면 그도, 나도 이미 책벌레일지도 모르는데) 



책벌레라는 개념은 좀목(Thysanura)에 속하는 곤충에서 유래하는데, 이 곤충은 종이와 잉크로 구성된 책을 실제로 먹어치우는 벌레로 일찍이 알렉산드리아 시대부터 "도서관의 청소부"로 악명을 떨쳤다. 책벌레란 독서를 통해 지혜를 얻지 못하고, 마치 좀벌레가 책을 먹어 치우듯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독자들은 생쥐나 시궁쥐라고 조롱받기도 하는데, 그들에게 책과 인생은 영혼을 살찍우는 자양분이 아니라 헛된 욕심을 채우는 사료(飼料)에 불과하다. 

- 알베로트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 중에서 



책벌레에 관한 한 올해 읽은 최고의 표현은 아래와 같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이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중에서 




그리고 탐욕스럽게 책을 읽었으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채 결국 죽는다. 책 한 줄 읽지 않은 듯한 여인 만차의 운명과 대비되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비극적인 고독 속에서 시뮬라크르가 된 위안으로 끝난다. 그러니 책은 책일 뿐이고 세상은 언제나 거기 있을 뿐이다. 니체가 그토록 싫어했던 플라톤이 최초로 제안한 개념, 바로 저 세상(이데아계)이 있다는 것, 그것만이 책벌레의 유일한 희망일 지도 모른다. 



4. 2017년, 기억할 만한 독서의 흔적


4.1.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


2017년이 지나고 2018년이 시작되었다. 작년 한 해 약 50권 여 권의 책을 읽거나 읽는 중이다. 많은 책을 사기도 했으나, 그만큼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도 했다. 사기 애매하거나 미처 몰랐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들 중 일부는 결국 구입하기도 하는데,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유문화사)은 두고 두고 읽을 만한 책이다. 서평집으로 머물기엔 아쉬운, 책에 대한 사랑 고백과도 같다. 클리프턴 패디먼/존 S.메이저의 <<평생독서계획>>(연암서가)에서 소개되지 않은 고전들을 소개하면서, 많은 작가들이 한글로 소개되지 않은, 소개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점은 이 책의 가치를 더한다. 혼자 비밀스럽게 몇 명의 작가들을 알고 읽을 수 있을 테니까. 가령 조지 매러디스(George Meredith, 1828 - 1909)나 C.P.카바피(C. P. Cavafy, 1863 - 1933)은 절대 한글로 번역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 클리프턴 패디먼/존 S.메이저의 <<평생독서계획The Lifetime Reading Plan>>은 우리가 평생 동안 읽었으면 하는 고전들에 대한 소개서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시작하여 현대의 소설까지 이어지는 이 책은 우리가 뭔가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할 때 추천할 만한 가장 좋은 책들 중의 한 권이다. 마이클 더다도 이 책에 대한 찬사로부터 시작하여 책을 쓴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움은 세상 일과 무관하다. 도리어 뭔가 물질적 기여를 할 시간에 나는, 우리는 마이클 더다의 책을 읽는다. 그렇게 2017년 오십여 권의 책을 읽었다. 


4.2. 쉼보르스카와 다니카와 슌타로 


2017년 최고의 저자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와 다니카와 슌타로였다. 이 두 명의 시인은 왜 아직도 시인이 있어야 하고, 시가 읽히며, 시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가는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위대한 시인들은 옮겨진 언어의 종류에 상관없이 성공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4.3. 하우저와 조중걸


예술 관련 서적을 많이 읽은 해이기도 하다. 아놀드 하우저(아르놀트 하우저, Anold Hauser, 1892 - 1978)의 <<예술과 소외>>(김진욱 옮김, 종로서적)는 마니에리슴(매너리즘) 연구 서적으로, 1981년에 번역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책이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에도 책으로는 그 도판을 구하기 어려운 16세기 후반기 마니에리슴 예술가이며, 지금도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는 이들 상당수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의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번역자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조중걸의 <<근대 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1권, 2권(지혜정원)은 서양 예술사가 이렇게 씌여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한글로! 활자가 크다고 만만하게 볼 수 없고 도리어 그 사유와 해석의 흔적을 따라가기만으로도 벅차다. 특히 매너리즘 미술에 대한 소개나 19세기 후반 미술에 대한 설명은 압도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곰브리치나 잰슨의 서양미술사와 조중걸의 책을 비교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전자는 '양식사로서의 서양미술사'로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읽은 베스트셀러라면, 조중걸의 이 책들은 왜 예술이 존재하며, 지금/여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래서 왜 끝내 감동받게 되는가를 알게 한다. 그래서 조중걸의 책을 읽고 난 다음, 독자들은 다른 서양 예술 관련 책들이 한없이 시시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 조중걸의 서양예술사는 전 5권으로, 나는 아직 <<고대 예술>>과 <<중세 예술>>을 읽지 않은 상태이다. 모두 '지혜정원'이라는 출판사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작년 그는 놀라운 책 한 권을 출간했는데, <<비트겐슈타인 논고 해제>>(북핀)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논고Tractatus>>를 읽고 소개한 책인데, 일부 인터넷서점들의 독자 평만 봐도 이 책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아마 한국에서 비트겐슈타인 연구로 대학에서 겉멋 부리는 이들 대부분이 움찔했을 것이며, 아마 일부는 이 책을 읽어내지도 못할 것이다. 나 또한 사두었을 뿐,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4.4. 세상을 이해하는 세 가지 방법 


군터 뒤크의 <<호황 VS 불황>>(원더박스)은 읽는 내내 경제시스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팀 하포드의 <<메시>>(위즈덤하우스)는 우리의 통념을 산산히 깨고 어지럽고 지저분하며 혼란스러운 환경이 어떻게 창의성을 폭발시키며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대한 놀라운 사례들을 알려주었다. 마이클 셔머의 <<믿음의 탄생>>은 종교, 혹은 신앙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는가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은 약간 불편할 수도 있으나, 결국 종교나 신앙도 우리 인간 문명 속에 들어와 있으며, 우리 생명, 삶, 역사와 함께 흘러왔음을 인정할 때 이 책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과격하지만,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다. 



4.5. 시몬 베유와 강유원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이제이북스)는 놀라운 책이다. 카톨릭 신자로서 시몬 베유는 하느님과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그런데 이 책이 씌여진 시기가 세계 대전 중의 유럽이라는 점에서, 가끔 일요일 성당 안의 고요한 평화-그러나 무수한 심적 갈등과 고난, 회개와 반성으로 뒤범벅된 신자들이 몰려든-를 떠올리게 한다. 강유원의 <<숨은 신을 찾아서>>(라티오)도 신앙 고백서이다. 시몬 베유는 이미 있는 신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생각하는가에 방점이 찍힌다면, 강유원의 이 책은 그야말로 진짜 신앙 고백서이다. 그는 그리스-로마의 체계 안에서 사도 바울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왔으며, 이후 신앙 고백자들이 어떻게 신앙을 받아들이는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딱딱한 방식이지만, 정직하고 곧게 자신의 신앙을 드러낸다. 몇몇 카톨릭 신부들이 이 책을 추천하였으며, 너무나도 이성적인 철학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나 또한 성당을 다니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은 터라, 강유원의 이 책은 한 편으로는 너무 슬프게 읽힌 책이기도 하다. 



4.6.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그리고 단테


기시 마사히코의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은 사회학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아파하는가를 알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는 너무 낯익지만, 낯 뜨겁기도 하다. 일종의 관찰이면서 해석이며, 이러한 기록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기초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아우어바흐의 <<단테>>는 문학 이론서는 이렇게 씌여져야함을 보여준다. 이미 <<미메시스>>(민음사)를 통해 국내에는 오래 전부터 그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아우어바흐는, 정작 나에겐 낯선 이였다. <<미메시스>> 상권을 읽다 말았으니. 2018년에는 아우어바흐의, 읽다만 책들을 읽기로 한다. 



4.7. 예술이 되는 순간, 그리고 


필립 드 몬테벨로/마틴 게이퍼드의 <<예술이 되는 순간>>은 우리가 왜 예술을 사랑하는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책이다. 서점에서는 이 책을 열어볼 수 없도록 비닐포장되어 책 내용을 엿볼 수 없지만, 그냥 구입하면 된다. 그리고 책벌레가 아닌 예술에 미친 이들이 어떻게 그 속에서 살아가는가를 알게 해준다.  



Fragment of a Queen's Face

New Kingdom, Amarna Period, 1353-1336 B.C.

Yellow jasper

h. 13 cm (5 1/8 in); w. 12.5 cm (4 15/16 in); d. 12.5 cm (4 15/16 in)

Metropolitan Museum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544514) 



"당신이 두상의 윗부분을 발견한다고 해서" 필립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감격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여기 남아 있는 조각의 완벽성에 매료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미술사에서 말하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눈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한 경탄에서 즐거움을 얻습니다. 이것은 강렬한 즐거움입니다. 마치 당신이 좋아해서 영화로는 보고 싶지 않은 책과 같습니다. 당신은 이미 특정한 방식으로 남자나 여자 주인공의 얼굴을 마음속에 그려보았을 것입니다. 이 노란색 벽옥 입술의 경우, 나는 사실 사라진 부분을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습니다." 

- 필립 드 몬테벨로/마틴 게이퍼드, <<예술이 되는 순간>> 중에서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어떤 이론적 배경이나 지식으로 무장하여 예술 작품을 감상해야 된다고 믿는다.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굳이 현대 미술 이론이나 미술사에 대한 지식 없이도 작품은 감상이 가능하고 가능해야만 한다. 다만 이론/지식이 늘어날 수록 작품 감상의 이해와 폭이 넓어지며, 그 감동도 달라질 것인데, 이는 그 사람이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좋은 작품들을 감상하였는가와도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는다. 이 점에서 Dana Arnold의 <<Art History - A Very Short Introduction>>(Oxford, 2004)는 짧지만, 꽤 유용하고 적절한 지점을 잘 알려준다. 



This kind of visual material can have an autonomous existence - we can enjoy looking at it for its own sake, independent of any knowledge of its context, although of course viewers from different time periods or cultures may see the same object in contrasting ways. 

- Dana Arnold, <<Art History>> 중에서 



4.8. 읽은 책들의 목록 


아래 2017년 한 해 읽은 책들의 목록을 올린다. 일부는 2016년부터 읽어온 책들도 있고, 일부는 아직 끝내지 못한 책들도 있다. 어느 책들은 블로그에서 서평을 올렸으나, 어느 책들은 서평을 올리지 못했으며, 서평을 엄두조차 내지 못할 책들도 있다. 책 제목 앞에서 * 표시를 한 것은 동작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다. 2018년 올해에는 서재에서 먼지를 먹고 있는 책들 위주로 읽기로 해본다. 2017년에는 과학 책을 거의 읽지 않았으니, 올해 많이 읽는 것으로. 


일년에 읽는 책의 수보다 사는 수가 더 많다. 내 인생에 기적이 생겨, 진정한 책벌레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터무니 없게 꿈꾸어 본다. 




소설 

<<황산>>, 아멜리 노통브(지음), 문학세계사  

<<백설공주>>, 도널드 바셀미(지음), 책세상 

<<위대한 개츠비>>, 스코트 피츠제럴드(지음), 정현종(옮김), 문예출판사 

<<얼음의 책>>, 한유주(지음), 문학과지성사, 2009년

<<맥베스>>, 셰익스피어(지음),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지음), 다산책방 

<<햄릿>>, 셰익스피어(지음), 펭귄클래식코리아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지음), 이창실(옮김), 문학동네, 2016년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지음), 김민정(옮김), 밝은세상



시집

<<강의 백일몽>>, 가르시아 로르카(지음), 민음사 

* <<충분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지음), 문학동네 

* <<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지음), 요시카와 나기(옮김), 비채 



에세이 / 비평 / 역사

* <<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지음), 책읽는고양이, 2016년

<<유감이다>>, 조지수(지음), 지혜정원, 2016년

*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알렉상드르 졸리앙(지음), 책읽는수요일, 2013년 

*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지음), 난다, 2013년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 지성사

* <<은유가 된 독자 -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알베르토 망구엘(지음), 양병찬(옮김), 행성비, 2017년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이마, 2016년 

<<숨은 신을 찾아서>>, 강유원(지음), 라티오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 마이클 더다(지음), 이종인(옮김), 을유문화사, 2009년

*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 <<파울 첼란/유대화된 독일인 사이에서>>, 장 볼락(지음), 윤정민(옮김), 에디투스 

<<셰익스피어의 시대>>, 프랭크 커모드(지음), 을유문화사, 2005년 

<<유혹에 대하여>>, 장 보드리야르(지음), 배영달(옮김), 백의

<<중력과 은총>>, 시몬 베유(지음), 윤진(옮김), 이제이북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지음), 그린비, 1999년

<<단테>>, 에리히 아우어바흐(지음), 연암서가, 2014년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 심재훈(지음), 푸른역사

*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지음), 이상희(옮김), 추수밭, 2017년 



경제 / 경영 / 정치 / 과학

<<미래의 소비자들>>, 마틴 레이먼드(지음), 에코비즈, 2006년 

* <<선대인의 빅픽처>>, 선대인(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15년

<<소비의 미래>>, 다비트 보스하르트(지음), 생각의 나무, 2001년 

* <<2017 한국이 열광할 세계트렌드>>, KOTRA(지음), 알키, 2016년 

*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박종훈(지음), 21세기북스, 2015년 

<<준비된 자가 성공한다>>, 데이비드 알렌(지음), 청림출판, 2005년 

* <<좋은 제품이란 무엇인가>>, 제임스 L. 애덤스(지음), 김고명(옮김), 파이카, 2012년 

<<호황 VS 불황>>, 군터 뒤크(지음), 안성철(옮김), 원더박스, 2017년 

* <<메시>>, 팀 하포드(지음), 위즈덤하우스, 2016년

* <<왕따의 정치학>>, 조기숙(지음), 위즈덤하우스, 2016년 

<<믿음의 탄생>>, 마이클 셔머(지음), 김소희(옮김), 지식갤러리, 2012년 



철학 / 예술 

<<서양철학사>>, 윌리엄 사하키안(지음), 권순홍(옮김), 문예출판사

<<미학입문>>, H.오스본(지음), 박우사, 1994년 

<<비정형 : 사용자안내서>>, 이브-알랭 부아, 로잘린드 E. 크라우스, 미진사, 2013년 

<<근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1권>>, 조중걸(지음), 지혜정원, 2014년 

<<근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2권>>, 조중걸(지음), 지혜정원, 2014년 

<<예술과 소외>>, 아놀드 하우저(지음), 종로서적, 1981년

<<Art History - A Very Short Introduction>>, Dana Arnold(지음), Oxford University Press, 2004년  

<<예술 사회>>, 조지 디키(지음), 김혜련(옮김), 문학과지성사, 1998년

*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지음), 마음산책, 2011년 

<<회화 - 한 눈에 보는 흥미로운 미술의 역사>>, 폴커 게하르트(지음), 이수영(옮김), 예경, 2005년 

<<예술이 되는 순간>>, 필립 드 몬테벨로, 마틴 케이퍼드(지음), 디자인하우스, 2015년 

*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유럽편>>, 차문성(지음), 책문, 2015년 

* <<래디컬 뮤지엄>>, 클레어 비숍(지음), 현실문화 




5.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일견 단순해보이지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책 읽기를 권하지만, 정작 책 읽는 사람은 드물어지는 시대다. 한없이 가벼워지며, 깊이가 사라지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책을 들고 읽는 건 낯설다. 나에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물으면, '그저 습관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 때 통찰력 있게 세상을 바라본다는 착각을 가지고 했으나, 막상 중년이 되고 보니, 부질 없더라. 다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조용히 책 읽는 습관 만큼 좋은 것도 없으니, 권할 만 하다. 책을 두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아주 가끔 실천적인 지침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과 세상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책을 많이 읽으면 뭔가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자. 그저 사소하지만 조용하고 깊은 독서만이 거칠고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음을, 그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자. 



(며칠 전에 올렸다가 다시 다듬어서 올린다. 가독성이 너무 떨어지기도 했고 ... 다들 2018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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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 

(The Community of Those who Have Nothing In Common) 

알폰소 링기스Alphonso Lingis(지음), 김성균(옮김), 바다출판사 






우리가 속한 환경의 외계外界를 향해 우리가 전진하는 과정은 우리의 죽음을 향해 전진하는 과정이다. 죽음은 세계의 모든 틈새에 존재하고, 심연은 세계를 연결하는 모든 회로의 이면에도 존재하며, 세계를 연결하는 길들의 저변에도 존재한다. (252쪽)




철학서답지 않은, 부드럽고 다소 낯선 문장들은 독자에게 느리게 읽을 것을 요구한다. 이 강제된 느림은 현대스럽지 않다. 책 표지는 알폰소 링기의 글과 어울리고, 타자와 공동체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담은 책이지만, 산문처럼 읽히는 건 그만큼 문학적인 탓이리라. 번역되자마자 바로 구입했지만, 몇 년이 지나서야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던 건 저 느리게 읽기가 내 일상과 참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꽤 힘들게 읽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이 서평도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이 읽기의 경험은 우리에게 독서에 집중할 한 두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 줄지도 모른다.


링기스의 철학은 사상의 측면에서나 행동의 측면에서 대학의 상아탑에 갇힌 보통의 포스트모던 학문들을 멀리 벗어나 있다. ... ... 그는 자신의 동료학자들과는 반대로 제 3세계와 고대 문명의 유적지들을 직접 여행하면서 체험한 사랑, 신뢰, 죽음, 육욕을 탐구하고 그 결과들을 독창적인 1인칭 문장으로 유려하게 서술한다. ... ... 링기스의 철학은, 한 마디로 말해서 전통적인 철학의 강박관념을 떨쳐버리는 철학이다. 

- 스티븐 재니스Stephen Janis(<시티 페이퍼City Paper> 편집위원 및 기자) 

(* Mortal Thoughts - Philosopher Alphonso Lingis Brings the Real World to the Ivory Tower, by Stephen Janis, Citypaper.com) 



링기스는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 즉 타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타자를 받아들이며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에 대해 서술한다. 그는 서구의 합리성이란 타자를 지우고 배제하며 추방하는 것임을 전제한 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말한다. 그리고 그 극복의 계기를 '죽음'에서 찾는다. 책 말미에 그 스스로 타자로서 죽을 고비에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죽음이 우리와 타자를 이어주는 강력한 끈임을 주장한다.



합리적 공동체가 한창 작업하는 와중에 형성되는 공동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공동체 - 죽음과 '죽어야 할 운명'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공동체 - 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서로 분리시키고 격리시키는 죽음은 공통 죽음common death일까? 그리고 그런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닌 무無로서 분류될 수 있을까? 

- 38쪽 



그리고 책의 대부분은 합리적 자아가 어떻게 타자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논의(혹은 사색)이다. 합리성과 타자, 타자성의 경계, 개별화된 개인과 타자, 소통, 나라는 존재와 죽음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될 공동체에 대해. 



타자에게 내밀어지는 손은 타자의 취약성, 피로, 고통과 접촉하고 그 손의 소유자를 타자가 죽어가는 자리로 데려간다. 그 손은 낯선 정언명령에 순종한다. 이런 타자의 죽음 과정은 나와 유관한 것이다. - 252쪽 



하지만 우리 바깥의 타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다. 심지어 우리 안의 타자도 무시하고 지우며 없애는 것이 바로 서구의 합리성이다. 그리고 타자와 마주하는 과정은 그 순간순간 모두가 투쟁의 과정이다. 



소통에 참여하는 과정은 전달하려는 메세지의 배경잡음과 그 메세지 자체에 내재된 잡음에서 메세지를 추출하는 과정이다. 소통은 간섭과 교란에 대항하는 투쟁이고, 배경으로 밀쳐져야 하는 부적절하고 애매한 신호들에 대항하는 투쟁이며, 소통자들 사이에서 상호적으로 제시되는 신호들에 내재된 잡음들 - 사투리억양들, 틀린 발음들, 모호한 발음들, 더듬거림들, 헛기침들, 돌발적 탄성들, 발설되다가 중단되는 단어들, 문법을 벗어난 축약어들 - 과 시각매체에 포함된 소음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 116쪽 



이 투쟁 속에서 타자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과 그 방법들에 대해 다양한 철학자들의 논의, 문화인류학적 사례, 현대 예술이나 과학 기술,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서 끄집어낸다. 



살아있는 우리는 타자들의 죽음에 노출된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것은 근본적인 의무, 즉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하며 그들과 동반해야 하는 근본적인 의무이다. 병원에서든 빈민촌들에서든 외롭게 홀로 죽어가는 사람을 방치하는 사회는 급속히 자멸하는 사회이다. '죽어가는 사람과 우리가 함께 하는 공동체'는 '공통적인 것을 공유하고 공립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함께 하는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을까? 

- 261쪽 



책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천천히 읽는다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    * 


덧붙이는 글)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위 서평과는 무관하게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란 바로 평범한 우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의 논의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니, 꽤 심각한 정치학 서적이 된다. 타자란 바로 우리들이고, 합리성으로 무장한 자들은 바로 국가 권력이다. 국가 권력은 타자인 우리를 배제하고 지우고 있었다. 링기스에 의하면, 합리성이란 개개의 특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균질성을 향해간다. 


세계의 잡음을 제거하는 과정은 합리주의자가 되는 과정이다. 소통의 위한 최초 노력은 사고력이 추구할 탈물질화를 미리 시작한다. 하나의 형식을 그것의 경험적 실현과정들에서 독립시키기 위한 노력은 보편적인 것, 과학적인 것, 수학적인 것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된다. - 128쪽 



애초에 타자의 죽음이란 죽음이 아니다. 그냥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무시되는 것이며 그 어떤 호소력도 가지지 못한다. 평범한 우리들은 지금도 죽어나가지만, 국가 권력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여러 매체들을 통해 소통하려고 노력하지만, 소통이란 단어는 우리들에게만 해당될 뿐, 그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즉 소통의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소통을 폭력의 연속으로 간주하되 특히 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폭력의 연속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주장과 논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소통의 변증법 과정에서 소통자들 각자를 타자가 아닌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틈새 시간을 목격한다. 그 사람은 그 틈새 시간에 '저마다 자신이 하는 말의 정당성을 확증하기 위해 말하는 소통자들'을 목격한다. 소통자는 자신의 정당성을 확증하기 위해 말하는 과정은 타자를 침묵시키기 위해 말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처음부터 소통자의 정당성을 확증할 가능성을 배제해버렸다. 왜냐면 소통은 타자 - 소통자의 상대방 - 가 아닌 국외자 - 야만인, 의인화된 잡음 - 를 침묵시키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 118쪽 



한국의 보수 정권 앞에서 국민들은 타자이며, 국외자이고, 잡음일 뿐이다. 그들 앞에서 우리는 침묵해야 될 자들이며, 그들 앞에서 나서서는 안 될 존재다. 잊혀진 존재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다. 


그러니 우리에겐 자유만 있을 뿐이다.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도 있다. 단 저 성벽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와 어떤 행동을 하는 순간, 그 때서야 비로서 우리가 타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자괴감, 이 무능력함, 그리고 스스로 속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과 후회가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즉 그들을 향한 분노나 투쟁의식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부터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스스로 침묵을 강요한 채 걸음을 멈추고 부서지는 자신의 마음 속으로 숨는다. 


한국 사회의 비극은 드러나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곳에 있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타자화시키면서 끊임없이 무능력하게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타자로 만든 그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공격하거나 우리들 내부에서 갈등하고 상처입고 상처입히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미 타자화된 우리는 한국 사회에 속한 이가 아니다. 국가는 없고 국가 없는 국민이다. 그러니 이 사회의 미래는 더 이상 호소력이 없거나, 지금 당면한 문제만으로 타자인 우리는 충분히 고통스럽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사실조차 모른 채,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으며 따라하면서 타자를 부정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긴 이것도 전체 역사로 보자면, 아주 짧은 기간일지도 모르리라. 아주 사소한... (이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해야 하나) 




* 스티븐 재니스: 탐사 보도 전문 저널리스트로 여러 저널리스트 상을 수상했다. 아마존에 저자 페이지가 있다. http://www.amazon.com/Stephen-Janis/e/B009OBYC6O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인용하는 것이 다소 무책임해보여 누구인지 찾아보았다. Citypaper라고 해서 이런 잡지가 있는가 했더니, 미국 대도시마다 다 있었다. 다행히 스티븐 재니스가 쓴 리뷰가 있었지만, 이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다. 시티페이퍼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원문이 사라진 것이다. 해당 시티페이퍼는 볼티모어 시티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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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보수, 

이상돈(지음), 책세상 





서평집이다. 두껍다. 색인까지 포함하면 700페이지가 넘는다. 하지만 쉽게 읽힌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문제는 '보수'라는 단어인데, 이제는 그 단어가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생각할 때, 이명박 정권은 보수를 표방하고 들어선 첫 정권이었지만 독단적인 궁정 운영과 부패,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 실패한 정권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그런 오점을 청산하고 태어난 합리적인 보수정부이기를 기대했건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봐서는 더 이상 기대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한 보수정권은 부패했고, 또 다른 보수정권은 무능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허무하다. 

- 11쪽 ~ 12쪽  

 

그래서 이 책은 현 정권과 이전 보수 정권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어야 할 텐데,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박근혜 정권 하의 정책에 대한 언급은 가끔 보이긴 하나, 직접적이지 않다. 아마 이런저런 이해 관계 속에서 공격적인 발언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공격적인 비난 뒤에 올 여러 불이익을 감수할 자신이 없었던 듯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그냥 서평집이다. 그것도 보수주의자들이 쓴 원서를 읽고 쓴 서평집(대부분 번역되지 않았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나는 우파다'라고 했더니 내 주위의 진보좌파들이 크게 웃었다. 그러니 다들 나를 진보로 볼 수 있을 텐데(나는 늘 좌파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지만), 보수주의 저자들 일색인 이 책에 대한 문제적이고 비판적 읽기는 쉽지 않다. 실은 한국에는 보수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 있다면 도리어 '종북좌파'로 불리는 이들이 서구에서 바라보는 바, 보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보수'라고 하면 새정치민주연합 정도가 될 것이고(중도 좌파가 아니라), 새누리당은 보수정당이라기보다는 뭐랄까, 보수로 포장한 1950년대 정당같다는 느낌. 


저자들은 보수주의란 '중용과 전통, 그리고 합리성을 존중하며, 기존의 문화시스템 안에서 사회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이라고 정의한다. 보수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진화적 변화를 추구하며,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정부 정책을 의심한다. 

- 230쪽 (Edwin Feulnet, Doug Wilson, <<Getting America Right: The True Conservative Values Our Nation Needs Today>>(Crown Forum, 2006)에 대한 서평, '올바른 보수정책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책들과 저자들도 미국 공화당과 보수 정권들에 대해 공격하고 심지어 진정한 의미로 보수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니까, 한국에서 보수정당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운 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읽을 만한가? 솔직히 나는 지난 1주일 동안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아마 내 주위의 진보주의자들이 읽으면 화들짝 놀랄 만한 내용도 많다. 가령 피터 스와이저Peter Schweizer의 <<내가 말한 대로 해: 진보의 위선적 모습 Do As I Say (Not As I Do): Profiles in Liberal Hypocrisy>>에 대한 리뷰 일부를 옮겨보자.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가난한 사람과 소수인종과 여성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정의로운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보수주의자들이 탐욕스럽고 환경을 파괴하며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한다. 

- 333쪽 


 한국에서도 그런가? 잘 모르겠다(여기엔 내 개인적 경험까지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인 경우 위의 인용문처럼이겠지만, 한국 사회에선 일종의 희망 사항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자본가와 군대가 움직이는 '불량배 국가'이고 이스라엘은 '중동의 악'이라고 비난해서 명성을 얻은 MIT 명예교수 놈 촘스키는 전 세계 진보좌파에게 영웅과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촘스키는 40년 동안 국방부가 MIT에 지원한 암호 개발 프로젝트로 연구비를 받아왔다. 촘스키는 자기가 자본주의의 희생자인 가난한 민중을 대변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사실 그 자신은 매우 영악한 자본주의자다. 강연료와 인세 수입으로 인해 그는 소득이 전체 미국민의 상위 2퍼센트 안에 들 정도로 부자이다. 그는 보스턴 근교 레싱턴이라는 부자 동네의 85만 달러가 넘는 호화 주택에 살고 있으며, 케이프코드에 별장도 갖고 있다. 촘스키는 흑인과 여성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평생토록 주장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연구 스태프로는 백인 남성만 고용했다. 그는 9.11 태러 후 강연 요청이 많아지자 9,000달러 받던 1회 강연료를 1만 2,000달러로 올렸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자기가 낼 세금을 줄이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 334쪽 


내용이 선정적이어서 아마존에 뒤져보니, 표지도 선정적이다. 촘스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실생활을 까고 있다. 리뷰 평점은 나쁘지 않고 2006년 상반기에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인들도 진보주의자들(미국에선 liberals)에 이상하게 높은 절약정신과 도덕율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존 리뷰를 보니, '부자 리버럴이 보수주의자들보다 훨씬 낫다'며 이 책에 대해 별 하나를 주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책은 번역되지 않는 걸까? 하긴 내 생각엔 자칭 한국에서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이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거나 다들 영어로만 책을 읽어서 그런 듯 싶다)



- 피터 스와이저의 책 표지. 유명한 사람들이 표지로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미국의 급진 세력을 대표하는 이들이 평등, 정의, 소비자 보호, 환경보호, 여성 해방 등을 내걸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사생활에서는 철저하게 개인적 이익을 챙긴 위선자들이라면서, 이제 이들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와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를 어느 보수신문이 종종 게재했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정치인들도 비슷한 주장을 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 적어도 보수 쪽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보수 쪽 사람들의 윤리 수준이 더 낮기 때문이다. 

- 337쪽 



아, 박근혜 정권은 아예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 저 센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졌으니 말이다(그러면서 보수 정권 어떠니, 종북 좌파 이야기를 해대는 이들을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이 책에 소개되는 책들 대부분은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서서 미국과 세계 정세, 미국 정치, 이슬람, 유럽, 금융 위기를 바라보고 있다. 정말 흥미롭게도 그런 책들 일색이다. 이상돈 교수가 선호하는 저자들도 눈에 보이고 책들 중에서는 서로 비슷한 논지에서 중복되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읽는 중간 가끔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소개되는 책들 대부분이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지식인 사회에 국제 정세나 보수주의자들의 세계와는 참 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설 당시 51개였던 유엔 회원국은 1993년 무려 184개국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184개국 중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는 회원국은 75개국 뿐이니, 유엔에 속한 다수의 국가가 독재국가인 셈이다. 

- 447쪽 


아무런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유엔을 비난하는 책이라든가(부패했던 코피 아난에서 반기문 총장으로 바뀐 지금도 상황이 별반 나아진 듯 싶진 않지만), 세계 정치 구도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책을 소개할 때면 무능하기만 한 한국을 보며 한숨만 나온다. 


파키스탄 대도시에서는 중국 사업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터키와 중국도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중국을 방문했고, 시진핑 중국 주석은 터키를 방문했다. 중국이 터키에 원전과 항국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두 나라의 경제 협력은 공고해지고 있다. 중국과 이란과의 관계도 깊어가고 있다. 중국은 이란이 수출하는 에너지의 최대 수입국이며, 이란은 중국에 에너지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나라이다. 

- 513쪽 



중국은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을 능가할 것이고 러시아는 냉전 시대 만큼은 아니라더라도 서유럽과 미국을 긴장시킬 수 있는 파워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에 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며, 미국으로선 이런 일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군은 국가 방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유럽, 일본, 한국 등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460쪽 



미군 철수는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미국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다. 즉 공화당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민주당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다. 밖에서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국내 재정 적자나 줄이고 나라 살림이나 잘해라는 것이 미국 내 지식인들의 바람이라고 할까. 자연스럽게 군비 축소가 이야기될 것이고 주한 미군 감축이나 철수는 미국이 먼저 통보할 것이다. 전시작전권 문제는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라면 당연히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인데, 이를 반대하는 게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이다. 그 중의 예비역 장성 한 명은 군사 기밀을 미국 회사에 돈을 받고 팔아넘겼으니..., 황당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이 강력하게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 아마 주한미군 주둔비용 전체를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믿는 바 보수정권이라고 했던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미 미국 내에선 세계 여기저기서 치른 전쟁에 대한 저항이 심각하고 세계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철수는 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조지 W. 부시는 성급하고도 오만한 전쟁을 벌여서 미국의 국력을 손상시켰고, 오바마는 뒷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다음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대외 관계에서 소극적으로 돌아선다면 이 세상 많은 곳이 보다 불안해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세계를 책임지는 '자비로운 제국Benevolent Empire' 행세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너무나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 519쪽 



그리고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이슬람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가 바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책들은 이슬람극단주의 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정책 실패와 함께 미디어 전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유대인은 졌고 이슬람이 이겼다고 진단한다. 더 나아가 서유럽 내 이슬람 인구의 증가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유럽 전체가 이슬람 지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다양성, 다원주의,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미덕으로 지키는 진보주의자들의 탓이다. 왜냐면 미국과 유럽의 진보주의자들이 믿는 이러한 미덕이 무슬림에겐 미덕이 아니며, 도리어 미국과 유럽 내에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또한 흥미롭게도 반유대주의가 서구 진보주의자들에게 넓게 퍼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또한 이슬람 세계에 대한 관용을 핑계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지만, 유럽 정치인들과 진보주의자들 때문에 무슬림 인구는 서유럽을 장악하고 있으며, 서유럽인들이 믿는 바 그 가치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책이 두껍다 보니, 서평도 길어지는데(실은 짧게 쓸 수 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ㅡ_ㅡ;), 그냥 한 번 읽어볼 만하다는 수준에서 마무리할까 한다(아마 손에 들면 놓지 못할 것이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실은 보수주의자들의 책이 거의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 다소 놀랍고(반대로 서구 진보적 지식인들의 책은 곧잘 번역되는 것과는 반대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보수주의가 자리잡지 못한 것이 어쩌면 현대 한국 사회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이상돈 교수를 야당에서 영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실은 야당이 서구적 의미에서의 보수주의 정당에 가깝지만,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중도 좌파 정당이라고 오해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문단만 옮긴다. 


우즈는 하이에크가 '호황과 버블 폭발'을 반복하는 경제 사이클의 근본 원인은 중앙 은행에 있다고 설파한 것이 정확한 분석이라고 말한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하이에크는 이자율을 낮춰서 경기 침체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하이에크는 침체Recession, 또는 공황Depression은 잘못된 투자 때문에 생긴 부작용을 교정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경제가 제 모습을 바로 찾는 것인데, 이자율을 낮추면 종국적으로 닥쳐올 붕괴Collapse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이라고 오래 전에 지적했다. 

- 611쪽 



최악의 경제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한국은 몇몇 글로벌 기업에 의지한지 꽤 되었다. 지난 정권부터 유독 심해졌는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너도나도 욕을 해댔던 노무현 정부가 그나마 살만했고 이명박 정권 이후는 엉망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더 큰 일은 지금 정부에서 경기 활성화 정책으로 내놓는 것들이 원조 보수주의자라고 평가되는 하이에크가 반대한 정책들이라는 점이다. 정녕 보수 정권인가 싶다. 진보 정권은 더더욱 아닌데 말이다. 


아마 다음 정권은 정말 잃어버린 10년을 되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되살려놓으면, 그제서야 제대로 된 입과 펜을 가지게 된 언론들이 나서서 공격을 해대며 기자라는 자존심으로 펜을 들었다며 으쓱거릴 게다. 그리고 너도나도 비난을 하는 통에 국민들도 함께 욕을 해댈 것이고,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았는가는 몇 년 후엔 다 잊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국민들의 잠재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다음 정권도 계속 소위 말하는 보수 정권(미국의 관점에선 전혀 보수가 아닌)이 잡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무조건 다음 대선 때에는 야당이 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웃긴 짓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 국민들의 잠재력을 오판하고 있다. 화려하게 가짜 보수 정권이 부활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의 잠재력은 대단하다. 다들 지금 일동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 (아, 나는 정치 블로거가 아니야)


실은 한국은 정말 위험한 기로에 서 있는데,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과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정말 상황을 오판하고 있으며 한국의 미래를 진정 걱정하지 않는 듯 보이니, ... 거참, 내가 나라 걱정을 할 판인가. 이제 다시 40대 중반에 실업자 대열에 합류한 판국에. ㅡ_ㅡ;; 






공부하는 보수 - 8점
이상돈 지음/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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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의 배신 The Vegetarian Myth 
리어 키스(지음), 김희정(옮김), 부키 



근래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과격하고 직설적이다. 저자 자신의 체험 이야기를 하다가 영영학자나 고생물학자의 논문을 인용하기도 한다. 전문성이 확보된 듯하면서도 전문적이지 않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내 평가는, 과격하지만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아니, 반드시 읽어야 한다. 

아직도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사카린이 위험한 감미료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발암 물질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카린은 보기 드물게 안전한 인공 감미료다. (참고 기사: 사카린은 억울하다… 착한물질에 씐 주홍글씨 )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아직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았지만, 가령 ‘콩은 무조건 좋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적극적인 형태의 채식주의인 ‘비건 생식’이 도덕적으로 고결하며, 우리 몸을 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긴다면? 그리고 저자인 리어 키스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 (비건vegan - 유제품, 달걀류 등을 포함한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식습관을 유지하는 사람. 단순채식주의자보다 더 철저함.)

비건주의자였던 저자는 그녀의 말에 의하면, 20년 동안 그것을 실천하였고 각종 질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잘못된 식사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망쳤음을, 그리고 그 고백과 함께 자신과 같은 잘못된 결정을 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쓰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문명 자체가 잘못되었고 탄수화물(특히 밀)이 중심이 된 농업 방식이 우리의 몸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육류의 섭취가 장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의 주장은 ‘5장 - 지방에 새겨진 주홍글씨’에서 정점을 이룬다.

지난 15년 사이 미국 내 지방 소비량은 거의 25퍼센트가 줄었다. 모두 의학계의 계속적인 공갈 협박과, 유사 식품, 유사 지방을 기꺼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식품업계 덕택이다. 값싼 식물성 기름의 다가 불포화지방을 본능적으로 포화 지방을 원하는 인간의 입맛에 맞게 만들려면 화학적 변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25퍼센트면 엄청난 감소량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더 건강해졌을까? 그 반대다. 보통 동물성 식품이 원인이라고 지목되는 질병이 거의 전염병 수준으로 치솟았다. (234쪽) 


케냐 마사이 족은 거의 완전히 고기, 우유, 피로만 된 식사를 한다. 마사이 족의 젊은 전사가 날마다 취하는 동물성 지방은 300그램에 달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는 평균 160 이하로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낮은 수준이며, 심장 질환은 병 자체가 거의 알려져 있지도 않을 정도다. 그들의 사체를 부검해 보면 동맥 혈전(혈관 벽에 생기는 플라크)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마사이 족을 연구한 만은 지방 가설을 “금세기 최고의 공공 보건 스캔들”이라 부르며, “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기극”이라고 선언했다. (278쪽) 



채식의 배신 - 10점
리어 키스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저자는 도리어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가 성인병의 주범이라고 말한다. 

“현재 미국에서 발생하는 장애와 사망의 원인은 대부분 곡물과 당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높아진 인슐린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질병들이다.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은 모두 인슐린으로 인해 발병한다. 이 질병들이야말로 서구 사회의 죽음의 사자다. 
(…) “탄수화물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겨우 참을 만한 정도의 탄수화물과 끔찍한 탄수화물이 있을 뿐”이라고 이즈 박사 부부는 말한다.” (257쪽)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산업화된 농업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소나 돼지에게 옥수수 등으로 만든 사료를 먹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미국 정부의 세제 지원이나 지원금 혜택으로 인해 과잉 생산된 옥수수 등과 같은 작물이 정상적인 소비 경로를 거치지 못하자, 믿을 수 없는 싼 가격으로 공급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키워진 소나 돼지, 닭 등은 영양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태(방목되어 풀 등을 먹고 자란 것들과 비교해)에서 도축되어, 우리들의 식탁에 오르며 그러는 동안 우리의 몸도 병 들어간다고. 

맹목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의 식탁도 지배하고 있다. 가령 한국에서는 모유가 분유보다 낫다고 여기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분유 회사(네슬레 등)의 광고와 로비로 분유가 모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아직도 농업이 농부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여기는 바보가 있진 않겠지만, … 

그 낮은 가격(곡물의)과 생산 비용의 차액(최 일선 농부의 생산 비용의 적자)은 미 연방 정부의 돈, 다시 말해 미국 납세자의 돈으로 메웠고, 전 세계의 소규모 농장들과 지역 경제를 망쳤다(값싼 미국의 농산물들은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 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는 그 지역 농부들이 끝없는 가난의 터널로 들어섰다. 수입된 미 농산물의 가격이 그 지역에서 생산된 가격보다 더 저렴했던 탓에). 이제 그들은 종자 자체에 낸 특허를 소유하고 있다. 전 인류의 지식과 노동, 유산을 담은 그 종자들의 유전자가 이제는 몬샌토와 콘애그라, ADM의 소유가 된 것이다. 그들은 식량 과두 체제의 우두머리, 생명 그 자체의 가장(家長) 지위에 등극했다. 파일은 “농업에 대한 소유권, 유전자 정보, 경작 행위, 이윤은 점점 더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있다. 한 번도 흙을 묻혀 본 적도 없는 손들 말이다.”라고 개탄한다. 이들은 사회적인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마케팅을 할 때는 마르고 닳도록 이용되지만 전혀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굶주린 어린이들, 이 어린이들을 먹겨 살릴 만한 의도와 능력이 있었지만 이제는 저들 때문에 농장을 잃은 전 세계 방방곡곡의 농부들 누구에게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직 주주에게만 책임감을 느낄 뿐이다. (196쪽 - 197쪽, 인용 본문의 ( ) 안 문장은 필자가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것임.)  


책은 유기체적이며 순환론적 우주론을 이야기하면서 산업화된 농업과 축산업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리고 농업은 근본적으로 반-자연적 활동이며, 농업의 확장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은 고스란히 인류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에서 ‘투석기에서 핵폭탄으로 이르는 한 길’이라는 표현을 쓴 아도르노가 떠올랐다. 하긴 문명의 문제란, 현대 지성사의 주된 관심사이며, 심지어 ‘반-지성주의’라고 지칭하니까.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 책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비건주의자들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반-지성주의의 입장을 견지하고 고대적 관점의 회복, 또는 문명 이전 단계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저자가, 개인적 실천법으로 ‘아이를 낳지 말고, 차를 가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음식은 자기가 기르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읽기에도 과격한 어조로 쓰여진 책이라,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아마존과 인터넷 서점 및 포탈 사이트에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찾아보았다. 아마존 리뷰(총 리뷰 201개)에서는 거의 절반(99개)이 별 다섯 개를, 50개의 리뷰는 별 한 개를 주었다. 그러나 국내의 평가는 너무 인색했다. 아마 채식주의자들, 혹은 채식옹호론자들의 걱정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이 책은 극단적 채식의 위험함, 산업화된 농업과 축산업이 끼치는 악영향, 그리고 그것이 세계의 빈곤 지역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고찰, 동물성 지방에 대한 심각한 오해, 콩의 효과에 대한 맹신 등은 유익하기만 했다(한국 식단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된장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된장은 콩의 발효시켜 콩의 유해한 성분을 희석시키고 그리고 조리 과정도 서양의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 책의 과격한 어조만큼이나 이 책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리뷰의 어조도 과격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네이버로 가서 ‘비건’이라고 검색해보라. 그러면서 많은 쇼핑몰이 나온다. 즉 ‘비건’도 비즈니스의 일부다. 이 책의 과격한 어조는 잊고(저자의 고통스러운 과거에 대한 회한과 통탄이라고 이해해주자), 책의 내용을 읽고 전혀 설득력이 없는가 돌이켜보자. 이 점에서 이 책에서는 참고 문헌 리스트 정도를 제시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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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3.06 20:25 신고

    풀먹이고 자란 고기는 좋죠 ^^ gmo 먹여 자란 고기는 서서히 병신되는 독약입니다.

    • 그러게 말입니다. ... 책은 '채식의 배신'이지만, 실은 채식보다 더 큰 정치적이고 산업적인 비난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읽을 만하고요. ~. 과격하긴 하지만요. ㅎ

  • 스티브 잡스도 극단의 채식주의를 고집하다고 죽었다고 하죠. 그렇다고 고기를 맘놓고 먹을 수 없는 현실이 암울합니다.

    • 실은 채식주의의 문제가 부각되기 보다는 산업화된 농업으로 인해 마음 놓고 고기를 먹을 수 없고, 심지어 농산물까지도 먹기 위험한 시대에 접어들었음이 강조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 책에 대해 채식주의자들의 반발이 꽤 심하더라고요. ~..

  • 2013.03.15 17:11

    비밀댓글입니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10점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민음사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 칼 R. 포퍼(지음), 이한구(옮김), 민음사 




이 리뷰는 허술할 것이다. 읽은 지 1년이 지났고, 뭔가 독후감 같은 걸 남겨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허술한 이 글을 핑계삼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을 서가에 꽂을 생각이다. 


칼 포퍼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현대의 위대한 과학철학자이면서 보수적 자유주의자로서, 플라톤부터 마르크스까지 '중심(이데아)를 지향하는 어떤 체계'(또는 전체주의)를 극도로 싫어해서 끊임없이 반증을 제시해야 된다고 역설한 학자.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이데아를 이야기하는 고상한 플라톤 대신 현실적으로 이율배반적이며 학문적으로 전체주의적 세계관을 표현하는 플라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칼 포퍼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할 지도 모른다. 


아마 시대적 환경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적 환경을 변명삼기에 포퍼의 이론적 호소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학문의 세계에서 포퍼는 이상한 비주류에 속하지만, 우리가 하루하루 전투와 같은 삶을 영위하는 현실 세계에서는 포퍼만한 학자를 만나기 쉽지 않다. 조지 소로스가 포퍼리안이고, 블랙 스완을 쓴 나심 탈레브도 포퍼리안인 것을 생각한다면, 포퍼를 무시하는 인문학자들 옆에 포퍼를 추앙하는 현실주의자들의 모습은 흥미롭기만 한다. 


1권, 2권으로 나누어진 이 책은 1권은 플라톤 중심의 시대를, 2권은 마르크스 중심의 시대를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등 다수의 철학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세계관이 얼마나 전체주의적인가를 포퍼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독자는 여기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고 도리어 자기 스스로 포퍼리안이 되어간다는 사실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강력하게 추천하지만, 글쎄, 이 책을 읽으라고 선뜻 이야기하기엔 책은 두껍고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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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은 지 1년이 지났다면 다시 한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ㅎ 더 자세한 리뷰 기대해보겠습니다~

    • 기대를 해주신다고 하니... 흠... 2권 읽고, 포퍼 해설서 한 권 더 읽고 난 다음 한 번 도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 noi 2013.01.31 19:43 신고

    포퍼도 알고봤더니 빈의 유대인 집안 출신이더군요.. 그 시대의 철학적 거목들, 아니 문화계 지성계 전반의 주요 인물들 가운데 빈 출신 유대인들이 얼마나 엄청난 비중을 차지했는지 정말 놀라워요.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제와서 막 자랑스러워 하지만, 자기들이 나치에 협조했던 과거 때문에 이 학자들이 전 세계로 떠돌아야 했던 건 잊고 싶어하죠.. 얄밉다는..^^;;

    • 지금 그 곳에서도 유대인을 만나는 일은 없으신지요?
      빈 뿐만 아니라 구미 각국에 똑똑한 유대인들이 고루 퍼져 있는 듯해요. 특히 19세기 말, 20세기 초 빈의 유대인 지식인들이 20세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긴 했죠.
      민족성이 있기 보다는 지역성이나 문화적 배경을 더 믿는 편인데, 유대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으면 민족성(혈연적인)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유대인에 대한 호의가 사라지고 있고요. 가령 유대인들은 계산에 너무 밝다 든가, 유대인들은 폐쇄적이다 든가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더라고요. ㅎ

    • 아. 그리고 중앙선데이라는 주간신문에서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라는 칼럼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sunday.joins.com에 가서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로 검색해보시면, 20세기를 풍미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허걱, 유대인' 하시게 될 지도.. ^^;;

    • noi 2013.02.01 20:28 신고

      알려주신대로 검색해서 목록을 죽 훑어봤는데 알던 사람도 있고 유대인인줄 미처 몰랐던 사람도 있고, 정말 대단한 리스트네요. 슬슬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일상생활이나 모임에서 접하는 현지인들이야 스스로 유대인임을 밝히지 않으면 잘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의 생활구역이었던 빈 2구를 가면 지금도 검정 전통적인 의상을 입은 정통파(orthodox) 유대인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2구를 비롯해 빈애 살던 유대인들은 2차대전 중에 거의 몰살당하고, 살아남은 소수는 미국과 이스라엘로 거의 다 떠나버리긴 했는데 전후 새로 동유럽에서 지금까지 꾸준히 유입된 유대인 인구가 꽤 됩니다. 근데 이들이 옛날 서구화됐던 빈 유대인들과는 달리 많이 보수적이고 말씀대로 '폐쇄적'이어서 문화적 충돌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오스트리아인들이 자기들이 지은 죄가 있으니까 잘 해주려고 노력하지요.



책을 읽을 자유
이현우(지음), 현암사



한동안 서평가가 유행이었다. 지금도 유행인지도 모르겠다. 대학 시절(벌써 20년 전이라니!) 새 책 소개는 신문 기사이거나 인문학 잡지의 서평 코너, 또는 딱딱한 에세이의 인용(각주나 참고서적)이 전부였다. 하지만 신문 기사가 제대로 된 서평을 기능을 상실하고 있고(신문 기사에 실린 내용만 믿고 실제 책을 보지도 않고 구입했다가 낭패 본 경험이 몇 번 있다), 인문학 잡지는 예전의 활력을 잃어버렸거나 그들만의 리그로 기능하고, 딱딱한 에세이 읽기의 즐거움은 이미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 사이를 비집고 서평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형편 없었다. 책 읽기의 목적이 다른 탓도 있지만, 책 읽기란 마치 손수 벽돌로 계단을 만들어가며 올라가는 것과도 같아서, 어느 계단에서 서서 더 이상 올라가지도 하고 똑같은 패턴의 말들을 반복해서 쏟아내는 서평가들에 식상해져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점에선 인터넷 서평가 로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알라딘 블로그에 가보면, 인용들과 읽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책들에 대한 소개가 많고, 정작 꼼꼼하게 독서한 흔적이 보이는 글을 예전에 비해 많이 적어졌다. 아마 외부 기고가 늘어난 탓이리라.

하지만 다행인 점은 글을 쓰면서 욕심 부리지 않고 솔직 담백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적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느 경우에는 책에 대한 내용보다 책 주변 이야기를 더 많이 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을 쉽게 읽히고 종종 읽는 재미까지 가져다 준다. 

인문학 서적을 소개하는 서평집이지만, 생각만큼 어렵지 않고 쉽게 읽히는 책이라, 부담없이 추천할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체계적이지 않고 글을 치열하게 조탁했다는 느낌도 없다. 그래서 도리어 편하다. 편하게 접근했기에, 독자는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시선에서 책을 바라보고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실은 부러운 점이기도 하다. (만일 내가 책을 낸다면, 나는 다 뜯어고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럴 기회도, 그럴 시간도 없겠지만)

서평집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읽은 바 제대로 된 서평집은 강유원의 서평집 <주제>와 이유선의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정도이다.  


책을 읽을 자유 - 8점
이현우(로쟈) 지음/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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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 10점
이유선 지음/라티오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이유선 지음, 라티오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는 참 좋은 책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철학에 대한 아무런 깊이도 통찰도 가지지 못한 얼치기 문학평론가들이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를 사용하며 적어대는 문학 평론보다 백 배는 더 나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과 문학을 서로 엇대어 구조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글들은 설득력을 가지면서 소개되는 문학작품의 맛을 살리고 있다.


서로가 모두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현실화될 때, 여기에서 관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용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오고, 관용은 같이 살기(공존)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관용이 이성에서 나왔다고? 관용이 조화를 위한 것이라고? 이건 이성의 환상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그렇지 않은데 머릿속에서 나온 이념만 가지고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런 태도는 왈쩌의 표현대로 ‘나쁜(악성) 유토피아’일 뿐이다. (송재우, 역자 후기에서 (마이클 왈쩌, ‘관용에 대하여’ 미토, 2004))
- 168쪽


가장 기억에 남는 인용구이다. 책을 소개하는 서평집의 좋은 미덕은 책의 핵심적인 부분을 잘 소개하고 인용하는 것이 되고, 이 책은 이 점에 매우 충실하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이 책이 놓여진 위치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알기에는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들 중에는 문학 작품을 열심히 탐독하다가 철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사람이 꽤 많다. (…) 예를 들어 어떤 청년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진실된 삶의 방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하자. (…)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철학적인 문제를 던져준다. 사회적 정의가 무엇인지, 인간이 지켜야 하는 도덕률은 어떤 것인지, 양심이란 무엇인지 등등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철학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된 청년이 철학적인 해답을 얻기 위해 윤리학 입문서를 읽게 되었다고 해보자. 이 청년이 철학 책에서 얻게 되는 해답은 대체로 두 가지다. 벤담이나 밀 같은 공리주의자들이 말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선이다”라는 명제와 칸트 같은 의무론적 철학자가 말하는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위하라”는 정언명법이 그것이다. 이런 명제들은 비판적인 사고를 전개해 나가기 위한 기준을 제시해 주기는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라스콜리니코프가 겪고 있는 인생의 고민, 창녀인 소냐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문제와 고통 등등은 모두 사라진 채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한 차가운 정의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 그래서 철학 책에서 삶의 냄새를 맡기 전에 대부분 질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 문학과 철학의 경계(8쪽 ~ 9쪽)


문학을 하기 위해 철학을 전공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둘 다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새삼스럽게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그는 이 책에 실린 서평들이 리처드 로티의 영향 아래에서 씌여졌다고 고백한다.

이 글들은 2007년 6월 8일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교수의 철학을 문학 작품과 일상을 통해 내 나름대로 해설한 것에 불과하다. 프래그머티스트인 로티는 참과 거짓, 현상과 본질, 이성과 감성, 주관과 객관, 절대와 상대, 보편과 특수 등과 같은 개념 틀을 깨뜨리려고 했다. 로티의 철학함의 태도는, 본질적이며 영원불변한 진리를 추구하는 데서 비롯되는 철학자들의 지적인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 문학과 철학의 경계(12쪽)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일상에서 시작하여 철학, 문학작품을 가로지른다. 책 속에서 철학자들의 지적인 강박으로부터 벗어났는지 알긴 어려우나, 적어도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을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인상 비평일 지라도, 최근의 문학평론가들이 터무니없는 단어들과 자신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현대 철학들로 문학 작품을 읽어내는 것과 달리, 적어도 이 책의 저자는 매우 소박하지만, 솔직하게 철학과 문학, 그리고 일상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또한 그의 솔직함은 아래와 같은 글에서도 드러난다.


그 난해한 철학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여러 권의 책이 이미 번역되어 있는 슬라보예 지젝의 주요 저서 ‘삐딱하게 보기’의 앞부분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역시 너무 어려워서 내용을 이해하기는 곤란했다. 이런 책이 그래도 꽤 팔렸다는 것은 아마도 스티븐 호킹의 난해한 책 ‘시간의 역사’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과 비슷한 현상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아니면 내가 한국의 평균독자들의 글 읽는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 18쪽 - 19쪽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받지 못했던 대학 시절, 나에게도 인문학은 유행따라 흘러가는 어떤 것이었다. 그  점에서 들뢰즈나 지젝에 대한 이상하고도 기묘한 유행은 나를 참 당황스럽게 한다.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우리의 현실적 삶에 그 어떤 영향력도, 정치적 파급효과도 가지고 오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의 책을 읽고 소비하는 풍토는 낯설기만 할 뿐이다.


요즘 학생들의 상식으로 통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책을 읽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포스트니체주의자인 이들은 아예 ‘본다는 것’을 제쳐두고 철학에 대해 생각하는 듯이 여겨졌다. 이들의 저서는 그 의미가 대단히 불확실한 용어들로 가득 차 있어서 명확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했는데,  어쨌든 이들은 철학이 무엇인지를 논하는 책에서 ‘본다는 것’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논외로 하고 있다. 이들은 철학이 개념을 창조하는 기술이라고 주장하면서 관조, 반성, 소통은 철학의 본령이 아니라고 말한다.
- 210쪽


그리고 씁쓰리한 현실 인식...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바뀌었다. 불의에 항거했던 민주주의의 투사들이 정권의 주역이 되었다. 80년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민주투사 치고 국회의원이 되지 않은 자가 있다면 팔불출 소리를 듣는 세상이 되었다. 더 이상 독재정권은 없으며, 매판 재벌도 없다. 그리고 옛 투사들의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대학생들의 얼굴을 보면 80년대 대학생들의 얼굴에 드리워있던 그늘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
- 151쪽



과감하게 추천하는 서평집이다. 다소 딱딱할 수도 있고 그간 읽어왔던 책들과는 다르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학문과 문학은 우리 일상의 삶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 유행하는 학문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아직도 유행하는 책을 읽고 작품이나 일상을 분석하는 글을 쓰는 이들을 보면서 내가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 있음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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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 Putain 

넬리 아르캉(지음), 성귀수(옮김), 문학동네, 2005.


1. 신시아에게.

신시아, 책에서만 보다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예뻤어. 나도 너처럼 마른 여자가 좋아. 그러니 네 외모에 대해선 그렇게 많이 이야기할 필요 없어. 그러면 그럴 수록 너는 예쁘지 않으니깐 말이야. 하지만 네 맑은 눈동자는 나에겐 부담스러웠어. 너의 눈동자는 궁지에 처한 17살 소녀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드러낼 때의 그 빛깔을 가지고 있더군. 그러나 소녀는 한없이 사랑하는 어떤 이가 마음을 열고 다가서기만 하면 금새 풀려버리는 그런 종류야. 신시아. 그러니, 그냥 울어버려. 그게 더 낫지 않을까.

다행이야. 너와 키스만 했다는 게. 아마 너와 관계를 맺었다면 너는 날 공격했을 꺼야. 형편없다면서, 깔깔대며 웃었을 거야. 그건 네가 이해해줘야 해. 요즘 절대적으로 알코올 부족이거든. 그리고 이제 몸이 많이 상해 들어오는 알코올마저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하더라고. 네 생각을 하니, 벌써 네 입술이 그리워지는구나. 하긴 그만큼 외로운 탓이겠지.

넌 아마 나보다 훨씬 더 외롭고 힘들 꺼야. 너의 글쓰기엔 그런 게 묻어 나와. 사람들은 네 글에서 문학성을 찾겠지만, 내가 보기엔 네 글쓰기는 너무 서툴러. 문학적 완성도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하지만 도리어 그게 널, 네 글을, 네 영혼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어. 하지만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겠니. 그런다고 네 삶이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네 엄마가 네 아빠가 네 기대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네 사랑이 뜻대로 되지도 않을 꺼야.

세상 대부분의 일은 네 뜻대로, 우리 기대대로 되지 않아. 루저(loser)같다고. 그래, 난 루저야. 잘 될 꺼라 생각했는데, 잘 되지 못했어. 어쩌면 네가 나보다 낫구나. 넌 몸이라도 팔아가며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난 그렇게 할 자신마저 없으니 말이야. 어쩌면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날 너무 사랑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구나.

그러고 보니, 너와 술 한 잔 마시지 못한 게 좀 그렇긴 해. 영업 중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말에, 조금은 무안했어. 나라도 혼자 술을 마실까 하다가 그만 두었어. 술을 마셨으면 네 슬픔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거야. 도리어 적당량의 네 슬픔과 다수의 내 슬픔이 뭉쳐져 내 몸을 짓눌렀겠지.

너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난 정말 외로워. 누군가가 날 데려가줘’라고 악을 쓰는 것 같아. 하지만 너는 너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는,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그 남자의 엉덩이를 세차게 네 작고 이쁜 발로 걷어낼 꺼야. 그리고 그 정신분석가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세상이 뒤집힐 일이긴 하겠지만 말이야, 그 정신분석가가 너에게 갑자기 나타나,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알았어, 나와 함께 가줘’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너는 곧장 따라 나서지 않을 거야. 너도 알겠지만, 세상은 그리 허술한 곳이 아니거든. 더구나 너도 나와 비슷한 루저(loser)야. 루저에게 가장 두려운 게 뭔지 알아. 하늘에서 떨어지는 성공이야. 빌어먹을 종류의 것이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것 말야. 정말 형편없는 짓이지.

더 이상 조각날 것이 없을 정도로 너를 파괴하고 싶었겠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도리어 세상에 대한 오기만 남지. 그리고 그게 한계야. 그래서 난 더욱더 세상이 싫어. 이 세상이. 이 세상은 변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 늘 냉정하고 무관심하지. 그런데 그 세상을 보고 읽어대는 사람들이 변했어. 그리곤 자신들이 변한 건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맞다고 우기지.

벌써부터 네가 그립구나. 하지만 너와 난 친구가 되긴 너무 성향이 틀려. 혹시 몰라. 네가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널 둘러싼 세상에 대한 배려를 배운다면 나와 친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너는 너의 그 독특한 매력을 잃어버릴 꺼야. 후후. 다음에 갈 땐 화장품 세트라도 하나 사가지고 갈게. 네 비즈니스를 조금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 조심해. 안녕.


2. 신시아, 그녀는 창녀.

소설 <창녀>는 20대초반의 깡마른 듯 읽히는 어느 창녀가 혼자 거침없이 떠들어대는 독백체의 수다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시적인 표현이라든가 우아한 문장이라든가 하는 건 기대하지 않고 읽는 편이 좋다. 도리어 황당할 정도의 자기 중심적인 태도, 세상에 대한 오해와 분노, 가족에 대한 애증의 감정, 그리고 너무 골이 깊은 외로움만 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그녀, 신시아는 무릎 꿇지 않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더 상처 입히고 모욕하며 더욱더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자기 파괴적인 경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도 세상에 대한 공격일까. 온통 자기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 이 소설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이해해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순간 이 소설은 삼류의 저급한 고백록이 되어버린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일정 수준 이상의 문학성은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놀랄 만큼의 뛰어난 문학성이라거나 충격적인 작품도 아니다. 이 작품을 읽고 뛰어난 문학성을 읽어내거나 소설 내용에서 충격을 받는다면, 읽는 이 자신이 그만큼 현대적인 어떤 경향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창녀’라는 직업은 그녀 고유의 공격 도구이다. 그리고 궁지에 내몰린 어린 영혼이 선택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창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녀는 시작부터 일반적인 의미의 ‘창녀’가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 ‘창녀’를 택했고 ‘창녀로서의 존재’에 대해서 그녀 나름대로의 이해와 해석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읽고 창녀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을 시도하거나 창녀에 대한 문학적 환상을 품는 건 대단히 잘못된 방식이다. 그녀는 오히려 남자들의 세계에 속해 있는 창녀를 모욕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로 대변되는 어떤 여성상에 대한 반발과 모욕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남자들의 세계까지 모욕하고 싶어하고 남자들의 치부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아마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그녀가 사랑하는 어떤 세계에 대한 공격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그 공격을 쉬고 있는 동안에는 세상 그 누구도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슬퍼할 것이다.

소설 <창녀>는 그 누구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는 어떤 세계, 오직 자신의 이야기만 있는 어떤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자기자신 중심인, 자폐증의 세계를 향해간다. 그리고 결국 왜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울부짖으며 스스로를 가두어버린다. 스스로 가두어놓고선 세상 탓이라고 우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미성숙의 세계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실은 우리들은 우리들 마음 속에 그 자신만의 ‘신시아’를 남몰래 가두고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그간 잘 가두고 숨겨놓은 자기자신의 신시아가 그 모습을 드러내어 소설 <창녀>에서처럼 울부짖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창녀 신시아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해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자신들의 신시아를 없앨 수도, 치료할 수도 없다. 그저 잊고 지낼 수 밖에 없다. 우리들 마음 속의 창녀를 숨기고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다만 우리들 마음 속의 창녀 신시아가 나타나지만 않기를 기원하면서. 그럴 때, 신시아가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만 조심하면 된다. 그뿐이다.

세상은 원래부터 그랬던 곳이고 우리는 늘 언제나 세상에서 버림받은 존재였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가면 그뿐이다.



Nelly Arcan (March 5, 1973 - September 24, 2009) : https://en.wikipedia.org/wiki/Nelly_Arcan 



창녀 - 8점
넬리 아르캉 지음, 성귀수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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