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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페이스북은 정치 싸움 중이다. 각자 편을 나누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야기를 퍼다 나른다.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여는 즐거운 이벤트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한국의 정치 지형은 너무 형편없고 몇 명의 후보는 누가 봐도 함량미달인데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만만치 않다(일부 국민의 정치에 대한 이해나 식견이 한참 모자른다고 볼 수 밖에 업다고 말하는 너무 심한가. 하긴 트럼프도 만만치 않았으니, 여기나 거기나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도덕 수준은 형편없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치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정치에 대한 이해나 분석력이나 판단이 희미해지는 듯 싶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학자나 정치평론가, 전문가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해선 안 된다는 건 아니다. 도리어 지지하는 편이 낫다. 나 또한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대한 선호를 분명히 밝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편파적인 의견만을 고수할 땐, 해당 후보의 캠프로 들어가는 편이 낫다. 편파적인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평론가들은 자주 욕을 먹기 마련이지만,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독자들을 설득하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자신의 의견을 지킬 때, 비로소 평론가의 명성이 쌓이는 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객관성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주장만을 나열하곤 끝이었다. 결국 나도 나도 다소 화가 나서 친구 끊어야 했다. 아래는 친구를 끊으면서 짧게 단상을 적어보았다. 아마 정치평론 뿐만 아니라 다른 평론들이 이와 비슷해보이기에 블로그에 옮기고 저장해둔다.


*   *

2017년 5월 6일 저녁에 쓴 메모. 



(어떤 분야이든지 간에)평론가는 (무조건) 편파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편파적일 수 있다. 그 주장(누군가의 눈에 보기에 편견으로 가득 찬 자기주장)은 자신의 신념이며 현재이고 미래이다. 그런데 그것을 툭 던져놓고 그 주장 밑에 무수히 달린 댓글들을 통한 (경제적이지 못한)논쟁 중에 누군가가, "왜 댓글에 답글을 달지 않고"(사람들끼리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가)라는 문구를 읽고 난 다음 바로 페친을 끊었다.


(다소 이해는 가지만)그 신념 - 보수/진보 구도를 깨기 위해선 새로운 후보가 나와야 된다는 - 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과연 한국이 보수/진보 구도였던가 싶다. 한국은 이때까지 일당 독재 구도였다. 늘 정치적 주도권은 보수우파(내가 볼 때 수구 꼴통이며, 'conservative'라는 단어가 아까운)를 중심으로 한 헤쳐모여 구도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많은 진보적 인사들이 보수로 배를 갈아탔다. (왜 배를 갈아탔는지도 의문이지만)


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 당선되었고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좌우 막론하지 않고 공격을 받았다(심지어 탄핵을 받고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법적인 심판을 받은 후에도). 심지어 강준만 교수는 마키아벨리즘을 멈춰라고 소리 질렀다(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즉 보수우파는 늘 공격자의 입장에 서 있었으며 기득권과 함께 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든 매체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할 수 있는 (무척 합리적인 단어들로 포장된) 무수한 표현들을 만들었다. 조중동 뿐만 아니라 한겨레, 프레시안, 오마이에서도. 그런데 그 표현들이 MB가 들어서자 (참 흥미롭게도) 표현의 빈곤함을 드러냈다. 그 사실이 너무 슬펐지만, 그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몰랐던가)


정치는 지정학적 구도나 평형의 문제는 아니다. 그건 신념의 문제이며 가치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신념과 가치에 기반한 미래의 문제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를 담보로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반대로 미래를 가지기 위해 현재에 대해 모험을 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무수한 이들이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인생을, 삶을 던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인이 가져야 하는 첫번째 미덕이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문과 심 이외엔 없다(아! 얼마나 안타까운가).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길 "그의 성격이 그의 운명이다."


그녀의 성격을 따라, 그녀의 운명을 따라 대한민국이 침몰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이럴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은 단정한 언어로 명확한 평가를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냉철한 현실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먼 미래를 보는 혜안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이 점에서 헤겔의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녁에 날아오른다"라는 표현은, 지식인의 슬픈 운명을 이야기한 것이다. 결국 (정치적) 상황 정리가 다 끝난 다음 지식인은 거기에 한 마디 덧붙인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그러면 안된다고 헤겔에 기대어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선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주장은 늘 그렇듯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어떤 기반 위에 있어야 한다.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까닭에, .... 그러나 페친을 끊었다. 평론가는 편파적이어야 하지만, 그 주장이 너무 편파적이어서 끊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어떤 것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래야 평론가다.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평론가가 아닌 지지자일 뿐이다. 아마 그에겐 5천명 중의 한 명이겠지만, 나에겐 내 타임라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함으로 의미 깊은 페친이었음을. 내가 정치적인 이유로 페친을 끊는 건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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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5년 8월에 실린 윤희웅의 칼럼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대한민국 유권자의 정치지형이 어느 한 쪽에 구조적으로 치우쳐 있음을 얘기할 때 인용되는 표현이다. 높은 쪽은 보수세력이고, 낮은 쪽은 진보세력이다. 그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게 되면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공을 몰고 가서 골을 넣기는 어렵고, 반대로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의 공격은 수월해서 승부는 경기 전에 이미 결정돼 있다는 것이다. 

- 윤희웅, <[선거와 경제] ‘기울어진 운동장’은 구조적인 것일까>중에서, Economy Insight, 2015년 8월호



메모해 둔 노트를 정리하면서 블로그에 옮겨놓는데, 일반적으로 최근의 한국 정치에서기울어진 운동장의 원인으로 보통 아래 3가지를 든다.

 


- 지역구도: 국회의원 의석 수 호남 30석, 영남 67석 

- 세대구도: 진보성향의 젊은 층보다 보수적인 노년층의 인구가 늘고 있다는 것. 

- 미디어환경: 종편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이 운동장의 기울기가 완만해지고 있다는 견해도 있고 일부에서는 야당의 경쟁력 약화에 대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은 누구나 공감할 정도로 설득력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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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결과를 쉽게 알 수 있는 선거에, 무능력하다고 소문난 온갖 후보들이 출마한다고 상상해봐라. 모든 선거가 자칭 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실은 광대극에 불과한 것이다." 

- 바츨라프 하벨 Vaclav Havel, 'A Table for Tyrants', NYTimes, 2009, 5,11. 

(체코 전 대통령)



한국에서의 선거란, 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실은 광대극에 불과하며, 광대극으로 만든 이들은 예전엔 정치인들이었고 지금은 이상한 편견을 가진 대중들이 합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래와 같은 발언이 가능한 것이다. 



이번 두 당선자의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그 사안을 알고도 당선시켰다는 점이다. 유권자의 심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경우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사람(the elected)'을 '임명직에 있는 사람(appointee)'이 가타부타하는 격이다.

- 김대중 칼럼, '기사회생에 기고만장한 새누리당', 조선일보, 2012, 4, 16.



확실히 이 나라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것도 매우 황당한 방향으로(김대중 칼럼은 도대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을 논리적 궤변으로 풀어내고 있으니). 그러고 보면, 야당은 이미 결정난 선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요즘 부쩍 정치 이야기를 자주 올리게 된다. 거참.. ㅡ_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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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나는 르몽드디플로마크 한국판 2009년 9월호를 꺼내 읽었다. 르몽드디플로마크를 매월 사서 읽다 요즘 주춤하는데, 이 월간지는 의외로 '정밀한 읽기'를 요구하는 터라, 번번히 다 읽지 못한 채 다음 호를 사야만 하기 때문이다. 

(* 르몽드 디플로마크. 영국의 가디언(Guardian), 미국의 먼트리리뷰(Monthly Review) 등과 함께 대표적인 진보매체들 중의 하나지만, 내 주위에도 이 잡지를 읽는 이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자신이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잡지를 사서 읽기를 권한다.)


2009년 9월 르몽드디플로마크, 자크 부브레스의 '지식인들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꼼꼼하게 읽는다. 


"그들(지식인)은 대자본을 상대로는 말을 아끼지만, 사회 밑바닥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뭔가를 가르치려고 한다." 


아!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 한국도 자크 부브레스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한때 진보적이고 현실비판적이었던 지식인들 중 대부분이 이런 식의 지식인이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크 부브레스는 이들을 '미디어 지식인'라고 말하며,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은 지식인이 되었고, 여론 형성이나 정치적 파급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들의 펜과 입은 일반 대중을 향해 있다고 지적한다. 정작 충고와 조언이 필요한 것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재벌들이나 정치인들, 고위 공무원들인데도 말이다. 


선거는 야당의 패배로 끝나고, 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은 여당을 지지하지 않았기에 선거 결과는 상당히 의외였다(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야당의 모습이 실망적이라는 사실에는 공감하지만, 여당 지지자들이 이렇게 많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크 부브레스의 지적처럼 지식인의 몰락, 반-지식인으로서의 미디어 지식인의 등장 탓일까.  


선거가 끝나고 대단히 실망적인 결과를 손에 쥐고 난 다음, 나는 서가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고, 한 권의 책을 서점에서 구입했다.  





루이 알튀세르의 '아미엥에서의 주장', 그리고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는 1965년 루이 알튀세르와 '자본론을 읽다'(Lire le Cpital) 집필에 참가한 후 바로 그와 결별하였고, 1974년 알튀세르의 방법론을 비판하는 '알튀세르의 교훈'(La Lecon d'Althusser)를 발표하기도 하였지만, 4월 11일 총선 이후 이 두 명의 각기 다른 2권의 책은 우리에게 풍부한 관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루이 알튀세르의 '아미엥에서의 주장'(솔, 1996년 보급판 3판)에는 그의 유명한 논문인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이 짧은 글을 통해 '억압적 국가 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를 구분하고 "우리가 알기로는 어떠한 계급도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 위로, 그리고 동시에 그 속에 그들의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으로 국가 권력을 보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는 아래와 같다. 


- 종교 AIE(다양한 교회들의 체계)

- 교육 AIE(공적, 사적인 다양한 '학교들'의 체계)

- 가족 AIE

- 법률 AIE

- 정치 AIE(다양한 정당들을 포함하는 정치적 체계)

- 조합 AIE

- 커뮤니케이션 AIE(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등)

- 문화 AIE(문학, 예술, 스포츠 등) 



'억압적 국가 장치' - 검찰, 군대, 경찰 등 - 과 함께 정치적 지배의 수단으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현재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듯하지 않은가. 


언젠가 '대중들을 가르쳐야 된다'는, 혹은 이와 비슷한 유형의 말을 했다가 면박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무슨 시대착오적인 계몽주의냐'며. 


그런데, 잘못된 생각 - 정권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국민은 범죄자이므로 사찰하여 구속시켜거나 일상을 파괴해야 된다 - 을 가진 정부가 억압적 국가 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를 다 가지고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일까?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제 대부분의 대중들은, 그들 스스로 무식하지 않다고 여기며, 스스로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는 요즘, 그들의 무식하지 않음과 비판적 의식은 실제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교묘한 호명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경우,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속에서 대중 스스로 사리분별을 할 수 있다고 여길 때, 그들에게 정확하고 비판적인 현실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방법이란 존재하기라도 하는 걸까? 


자크 랑시에르는 알튀세르와는 다른 방식으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므로, 이를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통치 불능의 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불만이나 비판 속에는 결국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민주주의는 통치되어야 할 사회도 아니고, 한 사회의 통치체제도 아니다. 그것은 통치 불가능 자체이며, 이러한 통치 불가능성에서 모든 통치 행위가 그 기초를 찾아야 하는 그런 것이다. 

- 111쪽 



어제까지만 해도 '민주주의는 고결한 것, 전체주의는 무시무시한 것'이 공식적인 담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이상주의자들은 앞으로 도래할 실질적 민주주의를 꿈꾸며 전체주의의 공포를 부정하고 있었다. 이제 이 시대는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서방의 한 정부는 무력을 통해 민주주의를 수출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의 지식인들은 '민주적 개인주의'의 불길한 징조와 '평등주의'가 야기하고 있는 사회적 파탄을 공-사 모든 영역에서 발견하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만들어내는 문제들이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으며, 새로운 전체주의를 잉태하면서 인류를 자멸의 길로 이끌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변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단지 국제화된 자본의 지배에 두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따라서 '민(民)에 의한 통치'가 보여주었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정치 상황을 다시 분석하고 동시에 민주주의, 정치, 공화국, 대의제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파악해 보아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어제의 미지근한 애정과 오늘의 범람하는 증오를 뒤로 하고, 항상 위협받으면서도 역동적인 민주주의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프랑스어 원서 표지 뒷면에 실린 글. 



그런데 불완전한 민주주의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밖에 없는 '민주적 개인주의'의 불길한 징조와 '평등주의'에 대해 한국의 보수적 지식인들과 (스스로를 보수적이라 믿는) 일반 대중들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 스스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실은 박정희 시대의 개발 독재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잘 살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놀라운 형태의 전체주의적 사회 지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거가 끝나고 머리는 복잡해지고 마음은 어지럽기만 하다. 참 슬프다. 이 짧은 글은 내 불길함을 루이 알튀세르와 자크 랑시에르에 기대어 푸념처럼 적은 것이니, ... ...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푸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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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esoo 2012.04.14 19:52 신고

    일단. 컴으로 쓰는게 아니라 이야기를 길게 쓸 수는 없고. 그 담으로 나는 진보적 지식인은 아니라는 전제하에. 또 글을 다 읽지 못한 상황에서 댓글을 다는 게 심히 조심스럽지마는.
    선거 끝나고 한겨레에서 경남 구미 등지에서 일하는 20대 노동자들 몇명과 인터뷰한 기사(제목은 열의 아홉은 나꼼수 모를걸요 뭐 이런거였음)를 읽고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노동자계급에게 충고(?표현이 잘 기억이 안나는데)하고 오히려 지배층이나 대자본에 소리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았나싶어요. 몇십년전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브레의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서도. 느낌은 갈 수록 지식인이라는 사람들과 노동자는 멀어지고 있달까. 몇십년 동안 지식인은 자기들의 논리만 헤집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분명 예전과 다른 또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니 과거의 방식은 어닐진대 소통하는 창구가 너무 없는 건 아닌가 싶네요. 인터넷에서는 내가 원하는 정보만 얻을 수 있으니 나만의 생각에 갇히기도 쉬운듯 하고. 그녕 두서없이 첫머리 글 읽다가 답 달아봅니다.

    • 지하련 2012.04.16 12:59 신고

      한국 사회에서는 '지식인'이라는 단어에 대해 새롭게 정의내려야할 듯해요. 4년제 대학을 나왔다고 지식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석사나 박사 학위 가지고 있다고 지식이라고도 할 수 없으니(최근 국회의원 된 이는 학위 논문 베껴서 학위를 받았으니), 도대체 지식인이란 뭘까요? 그리고 바람직한 지식인이란 또 뭘까요? ... 문제는 지식인의 자격이 없는 이들이 지식인처럼 매스미디어에 나온다는 게 큰 일이죠. 그리고 정작 지식인의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은 너무 소극적이거나 조용하거나 대중 소통 채널을 가지지 못했으니..


다시 한 번 이 나라가 부끄럽다. 정부에 반대하는 이름 없는 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사찰한 정부와 그것을 묵인한 정당에 대해 이토록 많은 이들이 지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반대로 그런 정부와 정당 앞에서 그 어떤 메시지도, 호소력도 가지지 못한 야당은 더 형편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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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에 대해선 말할 것이 별로 없다. 그는 기성 정치인이 아니고(정치에 뜻도 없었던), 끌려간 군대에서 너무 군생활을 잘해 말뚝 박으라는 소리를 들었고, 청와대를 나와 변호사 개업하지 않고 지낸 사람이다. 자신이 몸 담은 정권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고 돈벌이를 하지 않은 사람이다. 늘 정치권과 거리를 두었던 인물이었으며, 계속 부산에 있었던 사람이다. 강직한 사람이다. 전 대통령의 비극이 없었다면, 지금쯤 부산에서 늘 해왔던 대로 인권 변호사로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손수조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 없다. 부산 태생에, 한국의 젊은이들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보고 비난하는 새누리(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았다는 건 매우 이질적이지만, 나름 한국 현실 정치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치인이 되려면, 정치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기성 정치인의 도움을 받는 순간, 현실 정치의 테마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것이므로, 기성 정치의 그 어느 것도 바꾸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업에선 확실히 결과가 과정보다 더 중요하지만, 정치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할 경우가 더 많다. 그녀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며 정치적 신념이나 철학이 어떤 것인지 더 배워야 할 나이라 여겨지지만, 랭보가 어린 나이에 천재적인 시를 남겼듯이 나이는 어떤 점에서 중요할 수도 있고, 어떤 점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런데 갑자기 부산 사상구가 한국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문재인과 손수조는 서로 비교 대상이 아닌데, 정치적으로 비교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아주 희극적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대해서 부산 사상구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연일 보수적인 중앙 일간지에서는 손수조의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여론 조사를 발표하고 있는데, 거참 ... 황당한 상황이지 않은가. 

이건 내 생각이지만, 경남을 포함한 부산 사람들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닐까. 그 곳은 늘 새누리(한나라)당이니까, 아무나 나와도 된다고 여기는 건 아닐까.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그래서 중요하고 비중있는 인물이 나와야 하는 건 아닐까. 문재인, 손수조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지역과 지역 주민의 문제다. 언제 중앙 일간지에서 부산 사상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는가? ... 모든 게 문재인 변호사가 부산 사상구 후보로 나서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 거참 내가 부산 사람이라면 정말 화가 나는 상황일텐데 말이다. 


(* 정치 이야기를 블로그에선 거의 하지 않는데, ... 이번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꽤 황당해지는 느낌이 들어 적어보았다. 선거철엔 정치 이야기는 조심해야 된다고 하던데 말이다. 근데 좀 과격하게 적을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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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왕눈이 2012.03.15 00:48 신고

    이 문제는 정치적 의도로 민주당(통합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정확히는 모르나 약 30%가 넘는다고 함) 부산 사상구에서 출마를 선언하고 수개월 전부터 사전 작업을 착실히 했던 문재인 후보의 캠프에 대한 전략적 모습에서 찾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문후보가 다른 부산의 지역구에 나왔다면 별 관심이 없겠지요. 그러나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역구에 나와 자신의 교두보를 삼는 것은 할말이 없습니다.

    • 지하련 2012.03.15 13:03 신고

      야당의 입장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공천하는 것이 정치적 판단이었을 겁니다. 저는 문재인 변호사가 부산에 출마했다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됩니다. 실은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지역적으로 나누어진다는 것 자체부터 없어져야할 일이라 생각됩니다.(하긴 이는 호남 지역도 마찬가지이겠죠. 과거는 어떻게든 반성하고 수습해나가야 겠지만, 현실의 우리는 미래를 향해 살아야 하니깐요..)

  2. LEE 2012.03.15 08:00 신고

    저는 부산사람입니다.
    사상구는 아니지만 바로 그 옆동네에 살고있죠
    그리고 저는 전혀 화가나지 않습니다.
    문재인씨가 많은사람의 지지를 받는 유력한 정치인이라는것은 맞는말이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손수조씨가 폄하되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50대를 바라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배우는것도 많지만, 그 배움이 항상 긍정적이 아닐때도 있죠,. 부산 사람들도 손수조씨를 응원하고 성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걸 서울사람들도 알아야 합니다.

    • 지하련 2012.03.15 13:14 신고

      누구를 지지하고 응원하는가는 유권자 개인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지지와 응원에 대해 폄하하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면 안 될 것입니다. 다만 현재의 총선 구도가 다른 지역에 사는 저로서는 안타까운 한국 현실 정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중앙 일간지들의 (다분히 정치적인) 호들갑스러운 기사들은 지역 문제에는 무관심했던 그들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 보여 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긴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지요. 평범한 우리들의 문제들은 그냥 총선이나 대선 때만 반짝했다가는 다시 사라지곤 하니깐요. 갈수록 살아가는 건 팍팍해지는데 말이죠.

  3. jiniagong 2012.03.15 11:04 신고

    하아... 댓글보니 과관이네요.. 역시 부산의 나이많은 분들은 구제가 안됩니다..이러니 보수꼴통 똥누리당이 사라지질 않지.

  4. jiniagong 2012.03.15 11:09 신고

    문재인 변호사님이 큰차로 이기고 똥누리당이 이번 선거에서 한석도 못가져가길 진심가득 기원합니다! 얼마 안남았네요 모두 힘내서 도둑당 똥누리당을 이땅에서 몰아냅시다ㅜㅜ

    • 지하련 2012.03.15 13:21 신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 후보를 응원하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와 철학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학연, 지연, 혈연과 같은 것으로 묶여서, 굴곡 많았던 한국 현대사를 겪어오면서 가지게 된 성찰이 희석되어선 안 되겠지요. 경남에서 부산과 마산은 원래 야당 지역이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3당 합당을 하기 전까지. 그리고 현재까지 여당 지역으로 남아있긴 하지만요. 가끔 여당을 지지하면서 여당에 비판적인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특정 지역으로 나누어지니까 문제가 되겠죠. 한동안 호남 지역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젠 부산이 이슈가 되었네요. 이렇게 몇 번 거치다 보면 지역이 이슈가 되지 않을 때 올 것입니다.

  5. 왕눈이 2012.03.15 14:59 신고

    그러면 김부겸, 김영춘 의원은 왜 부산이나 대구에 출마했다고 보십니까? 눈여겨 볼 것은 이부영의원이 후보로 공천 받았다는 것입니다. 민통당은 아직도 더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 정치를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곧 계파 정치이고 그 희생양이 구 민주계 의원들이지 않습니까? 친노계열에 있지 못한 의원들은 자신의 길을 찾는 방법을 지역주의 청산이라고 말하는 것이 우습지 않습니까?

    • 지하련 2012.03.18 17:06 신고

      제 댓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왕눈이님의 글을 읽고, 지지 정당이 어디든, 한국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똑같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야를 떠나서, 마치 자신들이 희생하여 국민들을 위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겠죠. 정치도 마케팅입니다. 멀리 보고 두는 장기나 바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엔 국민은 없습니다. 왕눈이님께서 보시는 것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현재 야당은 정치적인 술의 측면에서 보자면, 현재 여당을 따라가려면 한참 모자란 듯합니다. 황당한 수준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나오는 것과 우리 일반 서민의 삶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다만 저는 현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최근 다시 불거진 민간인 사찰 문제는 온라인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파괴하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조직적으로 보여준 일이지만, ... 크게 보도되지도 않고 그렇게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입만 있는 식물국회의원들입니다. 저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의 판단과 실행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현 정부와 여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또한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반발에서 이어진 야당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도 싫어합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도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맹목적인 추종입니다. 가령, ‘나꼼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은 정말 위험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기 싫어하고 깊이 생각하기 위한 책 읽기를 게을리 하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기 전에 먼저 이야기하고는 귀를 닫는 데에 익숙해진 듯 합니다. 이는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정치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정치가 우리 삶에 있어서 대단한 중요한 것이지만, 직장인이 현실 정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판단 내리기란 어렵다 못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눈을 뜨고 있어야겠지요. 남은 일요일 알차게 보내세요~.

  6. mjk 2012.03.18 22:02 신고

    너무한는거 ~~
    새누리당은 정략과 술수만 있지 진정한 성찰과 국민에 대한 예의가 없습니다.
    부산분들 ~~ 특히 정신 차려야 !!!!


서울 시장 선거에 투표 꼭 합시다. ^^

(어디서 제작한 지 모르지만~.. 저도 무단으로 퍼왔습니다. 조만간 책도 구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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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원순 변호사와 나경원 의원의 지지율 여론조사가 며칠에 한 번씩 나오는 것같다. 그런데 이런 여론조사를 사람들은 얼마나 믿을까?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여론 조사 결과엔 그리 큰 관심이 없다. 이미 누구를 찍을 것인가를 결정해 놓았고 여론 조사 결과나 여러 언론에 실리는 기사들 대부분, 나는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민주당 지지자도 아니고 적극적인 한나라당 반대자도 아닌 나로선 이번 서울 시장 보궐 선거는 한국 정당 정치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어떤 이유로 정당 정치의 위기가 시작되었고 사람들이 왜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되는가를 천천히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기회를 마련한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정치인의 반성이나 변화의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동안 해왔던 짓을 지속하는 듯 보인다. 결국 기존 정당이나 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왔던 사람들과 정치인들, 그들만의 리그가 지속될 뿐이고, 정치에 무관심한 일반 대중들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들이 일상을 얼마나 곤혹스럽고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알지 못한 채, 경제와 정치는 무관하다고 여기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만 생각하는 듯하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2.
실은 박원순 변호사의 지지율이 올라간 것은 안철수 교수의 극적인 의견 - 안 교수는 '출마하겠다'라고 선언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포기'나 '양보'가 아니라,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지지 의견을 내었을 뿐이다 -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안철수 교수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다. 기성 정치권에서 거리가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보수이거나 중도 보수로 여겨지는 안철수 교수에 대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 언론들은 다소 조심스러운 어투의 객관적인 기사를 내보다가, '한나라당은 아니다'라고 하자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기사들을 내보기 시작했다. 하루 밤새 기자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런 세상에, 주류 언론들의 기자들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기계 부속품인가? 그래서 운전자가 핸들을 돌리면 따라 돌아가는 바퀴인가? 솔직히 작은 기업에서조차 서비스나 상품을 기획하고 마케팅할 때도 끊임없이 토론하고 다양한 의견을 주고 받는데, 사실(Factor)에만 의존해서 객관적인 기사를 작성해야 될 의무를 가진 기자들이 어떻게... ... 

3.
그리고 서울 시장 선거에 대한 기사들은 나경원 의원이나 박원순 변호사가 오세훈 전 시장 재임 시기의 시정 활동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 터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온통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네, 학력 위조를 했네, 땅 투기니 병역이니, ... ... 이건 마치, 뭐랄까, 시장으로서 얼마나 잘 서울시의 행정을 잘 처리할 수 있는가, 과연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뒷조사 기사들로만 채워지고 있다. 
어느 신문을 보니, 한나라당에서 본격적으로 박원순 변호사를 캐기 시작했다는 식의 기사도 실렸더라. 나경원 의원이야, 이래저래 유명한 사람이니, 굳이 캘 필요가 없겠지만, 박원순 변호사는 아는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을 뿐이니, 그래야겠지.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전략이 먹힌다. 대화란 서로 이야기하는 것인데, 한 쪽에서는 일방적인 흠집 내기로 일관할 때 ... 다른 한 쪽은 어떻게 해야할까? 한국 사회에서는 일방적인 흠집 내기를 할 때, 그것을 무시하고 정책 이야기로 풀어나갈 때, 무시가 아니라 당하는 것으로 여기고 리더로서는 허약해보이고 자기 주장이 강하지 못한 사람 쯤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4.
그런데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이 얼마나 일을 잘 하는가의 기준을, 저 사람은 어느 학교 출신이지, 어떤 집안에서 자라났는가, 군대는 갔다 왔는가, 도덕적으로 문제는 없는가로 검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검증은 어느 정당이나 정치인의 주장, 그리고 그 주장을 가감없이 보도하는 언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정말 그런 검증 절차를 믿을 수 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기사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더 안타까운 것은 이젠 이 세상에 없는, 지방의 상고 출신 대통령을 무시하면서, 땅 투기하고 위장전입한 사람들이 공직에 나가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다.

그렇게 공직에 나간 사람들 대부분은 전세 살거나 겨우 아파트 하나 장만한 평범한 사람들과는 평소 왕래가 없는, 몇 채의 집을 가지고 명문 대학을 나왔거나 고시를 패스한 고귀한 사람들로, 길을 가다가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나 오뎅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일 게다. 한때 자신들도 그런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지금은 전혀 그렇게 하지도, 그렇게 할 의사도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에 대해선 그 어떤 공감도 하지 못한 채, 할 생각도 없는 채 정책을 세우고 정치적 활동을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날 그렇게 살았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결국 어떤 사람의 진짜 행정 능력을 검증하지 않고 뒷조사로만 평가하다가 결국에는 그 뒷조사로 나온 진짜 결과도 무시하고 결정나는 대로 이끌려 간다는 것이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뒷조사를 심하게 당하고 루머들이 난무하는 후보는 정작 자신의 정책이나 일하는 능력에 대한 그 어떤 검증도 받지 못한 채 떨어진다. 뒷조사 심하게 당하고 루모들이 난무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규모다.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루모의 규모다.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날 수 있음을 아무도 모른다. 비관적으로 말해, 선거의 승리란 선거 비용과 선거 활동을 할 수 있는 조직에 속한 사람수로 결정된다. 정책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긴, 돈과 조직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긴 하다.

5.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언론은 제 기능을 발휘해야만 하는데, 우리 사회의 언론을 믿을 수 있을까?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  참으로 이 나라는 갈 길이 멀다. 하긴 이 정도까지 온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깝다.


#
이 글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언론의 문제가 심각해 보였고 인터넷이나 SNS에 적극적이지 않은 일반 국민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국회의원이 잘못된 소리를 하면, 그것을 지적하고 고치기 위한 언론의 활동이 중요하지만, 언론은 그런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과거 우리 언론은 진실을 수호하기 위해 과거 정권과 싸웠고 그로부터 많은 상처를 입었다. 이젠 그 과거도 전설이 되어버린 듯하다. 언론도 이젠 정당과 기업에 줄서기를 하고 있으니,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는 건 국민들 뿐이다.

믿을 수 없는 언론이지만, 결국엔 언론을 통해서 우리는 정보를 얻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안까타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들의 비판적 정보 수용과 해석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국어 독해 능력이다. 언론을 비판적으로 읽고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서 결정 내리는 능력이 더욱더 절실해지는 것이다. (서울 시장 선거에 대한 글이 결국엔 언론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하자는 국어 독해 능력 배양으로 와버렸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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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경제가 어렵고 나라의 미래가 보이질 않을 땐, 정부를 욕하고 정치권을 욕합니다. 정작 자신들이 선택하였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말입니다. 정작 스스로 선택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욕하기만 바쁩니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나라가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요?

현재 나라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일련의 신자유주의 정책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 때에는 임기 내에 IMF 졸업을 위해 무분별한 경기 부양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카드 정책입니다. 이 때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나라 경제 시스템은 신자유주의 속에 깊숙하게 빠져든 상태입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 관료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경제 교과서라고 생각하는 데 있겠죠. 자,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가 아닌 다른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이 사태가 달라졌을까요?

저는 그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꼭 깊이를 알 수 없는 늪과 같아서 한 번 발을 담그면 빼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잘 나간다는 기업들 대부분 외국인 주주의 비율이 50% 이상입니다. 이 정도 되면 순수한 한국 자본으로 돌아가는 기업은 없다고 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입니다. IMF 때 심해졌으며, 이제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경영 컨설팅 프로젝트 때 자주 들었던 소리가 'Market is one'라는 문장이었습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이 하던 소리였죠.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별 생각없이 들었는데, 요즘 새삼스럽게 낯설게 여겨집니다. Market은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한국 Vs 중국은 중국의 완승으로 끝날 것이며 한국 Vs 일본도 일본의 완승으로 끝날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일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세계 사람들, 일본은 알아도 한국은 모릅니다. 한국은 지금 위기 상황 속에 놓여있습니다. 한국의 향후 5년이 21세기 한국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입니다. 오늘 출근길에 라디오를 통해 '묻지마투표'라는 단어를 들으면서 참담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수와 진보 같은 낡은 구도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 생각없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던 사람. 그리고 언제나 정부와 정치권을 욕하면서 투표를 하지 않았던 전 투표권자의 50% 사람들. 이 사람들은 앞으로 정부와 정치권을 욕하면 안 됩니다. 나라가 잘못되더라도 이 사람들은 잘못된 나라를 탓하면 안 됩니다. 이 사람들은 잘못된 나라를 탓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선거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 이유는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이번 선거에 참여했던 후보자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어느 후보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직장인들 대부분이 이랬으리라 생각됩니다. 선거마저 샐러리맨들에게는 일상과는 동떨어진, 별나라 일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과연 우리에게 선거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꼬박꼬박 이것저것 챙겨읽으려고 노력하고 현실 사회에 대해서 분명하고 명확한 인식을 가질려고 노력하는 이에게조차 선거가 별나라 일이 되어버린 지금, 과연 우리에게 선거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은 선거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요?

이번 선거의 하일라이트는 대전 시장 선거가 아닐까 합니다. 홧풀이 선거의 결정판이었죠. 한동안 선거 결과는 잊고 살아야할 듯합니다. 대신 선거 민주주의에 대한 책이나 몇 권 읽어봐야 겠습니다. 과연 현대인에게 선거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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