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큐비즘에 대한 세잔의 영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바가 없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세잔의 영향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큐비즘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현대 미술가들은 세잔의 후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아마 내가 현대 미술에 대한 긴 글을 쓴다면, 뒤샹과 세잔만으로 글의 초반을 장식할 것이다. 뒤샹은 현대 미술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라면, 세잔은 현대 미술을 견고하게 만든 이다. 과거와 단절하고 현대 미술이 끊임없는 혁신을 감행하게 된 계기는 뒤샹이고, 현대 미술이 과거의 역사와 단절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현대 미술 또한 서양 미술사의 한 챕터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키에 한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세잔이 될 것이다. 


그는 현대 문화의 내향성을 최초로 들어내 보이며, 우리 마음 속의 기하학에 주목했다. 고전적 현대, 혹은 모더니즘을 새로운 고전주의라고 불리게 만든 예술가이다. 그리스 고전주의,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외부에 존재하는 기하학을 찾았다면, 세잔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기하학적임을 드러냈다. 


큐비즘은 세잔의 직접적 영향 속에서 기하학주의를 전면에 드러낸다. 세잔 이후 모더니즘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기하학주의로 예술을 지배한다. 아마 연구자들은 프랑스의 누보 로망이라든가, 전후 실존주의 문학이라 이후의 문학들 속에서도 기하학주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래 피카소와 세잔의 작품을 한 번 비교해보라. 얼마나 닮아 있는지. 

(나에게 여유가 된다면, 이와 비슷한 음악과 문학 작품을 찾아 나열해볼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럴 여유가 없구나.) 



Pablo Picasso, Bread and dish with fruits on the table, 1909, oil on canvas, 164 x 132.5cm, Kunstmuseum, Basel 





Paul Cezanne, Still Life, oil on canvas, 60*73cm, 1890 





Comment +0


오르세 미술관 전 -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

국립중앙박물관, 2014.5.3 - 8. 31 





몇 해 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놀라웠던 건, 1층에 놓인 거대한 작품들 -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화가들이 그린 - 을 보면서 참 식상하다는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4층(?)의 낮은 천장 아래 놓인 작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앞에서 전율같은 감동을 느껴졌을 때였다. 어쩌면 예상되었을 법한 일일 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예상했던 범위 이상이었고 그 놀라움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르세미술관에서의 그 경험에 비한다면,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다소 어수선하고 산만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급하게 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 집중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오늘 도록을 꼼꼼히 읽으면서 몇 점의 작품은 본 기억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나의 경우, 이미 국내에 번역된 대부분의 인상주의 연구서들을 읽었고 인상주의와 관련해선 아예 한 학기 수업까지 들었던 터라 왠만한 전문가 이상으로 알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니, 이젠 가물가물해지는10년 전 버전의 지식으로 인상주의를 안다고 하기 조심스럽기만 하다.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내가 공부하는 직업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 직업을 가졌을 때의 내 모습(괴팍스러워 보이는)도 상상되어, 약간의 다행스러움도 있다.



1. 인상주의, 현대 미술 (시장)의 개화  


사실 제일 처음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렸던 1874년의 상황은 간단했다. 제도권 기관인 살롱전의 부당함에 대해 반발하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린 1886년의 상황은 달랐다. 미술 시장에 대한 화가들 스스로의 독립성을 정립해야 했기 때문이다. 

- 전시 도록, 13쪽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인상주의의 미술사적 의의는 너무 익숙한 내용일 것이다. 가령 아래와 같은 것들.  


- 반-원근법적 세계관의 시작

- 문학적 세계관에서 회화 그 자체에의 집중(물질성의 강조)  

- 기하학적 세계에서 벗어남. 혹은 새로운 기하학의 시작. 

- 탈중심화, 탈가치화 


그런데 막상 적고 보니,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건 서양 미술사 교수님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고. 실은 위 짧은 인용문과 관련해서 (내가 아는 바를) 언급하자면, 인상주의 이전의 미술 시장과 이후의 미술 시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시장 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공공연하게 인상주의 미술이 현대 미술 시장의 개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할 정도이고, 그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미국에서의 인상주의 열풍이었다. 지독한 무시와 냉대, 가난 속에서 인상주의가 시작된 것과 반대로, 인상주의 화가들 대부분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말년을 보내게 된다. 고독한 몇 명의 천재들을 제외한다면. 


19세기는 그 전까지 일종의 미술가 생계 수단 프로그램이었던 패트런이 사라진 시대였다(귀족 계급이 힘을 쓰지 못했던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18세기에 시작된). 부르조아지의 등장과 전통적인 성직자와 귀족 계급의 후퇴가 직접적인 영향이었으며, 이 때부터 미술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고, 인상주의자들의 시작은 이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미술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기존 미술 권력과 싸우면서 동시에 미술 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었던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1886년 전시는 미술계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올라간 인상주의 화가들의 (미술 시장에서의) 자리 잡기가 중요해졌다. 뭐, 이 때에도 위대한 세잔은 무시당하고 있었지만. 


"지난 15년 간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가장 많이 공격을 받고 가장 대우를 못 받은 화가는 바로 세잔이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 모욕적인 수식어란 수식어는 모두 갖다 붙였다. 그리고 아직도 그의 작품에 대고 폭소를 터뜨린다."

- 조르주 리비에르, 1977년.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세잔의 탁월함을 알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궤적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동선을 보여준다. 그래서 전시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인상주의, 그 이후

2. 새로운 시각, 신인상주의

3. 원시적 삶을 찾아서, 고갱과 퐁타방파

4. 반 고흐와 세잔, 고독한 천재들

5. 파리, 아름다운 시절

6. 세기말의 꿈, 상징주의와 나비파. 


많은 수의 작품이 전시되진 않았지만, 천천히 깊이 살펴본다면 이번 전시 관람을 통해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다.(하지만 이것이 꽤 어려운 일임을 안다) 



2. 내 마음에 들었던 주요 작품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

야외에서 그린 인물 :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양산을 쓴 여인 

Essai de figure en plein air: Femme 'a l'ombrelle tourne'e vers la droite 

oil on canvas, 131*88cm, 1886 



이 작품은 왼쪽 버전과 오른쪽 버전이 있고, 이번 전시에선 오른쪽 버전이 전시되었다. 


이 두 작품의 모델은 모네의 두 번째 부인인 알리스의 딸 수잔 오셰데이다. 그는 친 자녀와 의붓 자녀 모두에게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였다.(......) 수잔이 서른 살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는 깊은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 전시도록, 41쪽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와르 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

앉아 있는 젊은 여인 Jeune fille assise 

oil on canvas, 65.4 * 55.5 cm, 1909 




풍만한 몸매에 널찍한 얼굴, 관능적인 도톰한 입술, 상큼하고 혈색 좋은 얼굴빛, 그리고 까만 머리칼의 엘렌 벨롱은 그 미모가 르누와르 자신의 이상적 여인상에 부합했기 때문에, 르누와르로서는 이런 엘렌의 모습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쥘의 약혹녀를 모델로 세우기까지는 수개월 간의 설득 기간이 필요했다. 더욱이 르누와르는 그에게 옷을 입힌 상태에서 모델을 그리겠다는 약속도 해야 했다." 

- 62쪽 



작품 이미지를 찾기 위해 구글링을 해보니, 똑같은 제목의 아래 작품도 있다. 제작년도를 보니, 19년 차이가 난다. 나머지는 보는 이들이 알아서 해석하길. 



Renoir 

Jeune Femme Assise 앉아있는 젊은 여인

oil on canvas, 91 * 72cm, 1890.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시인 외젠 보흐 Eug'ene Boch(Le po'ete) 

oil on canvas, 60.3*45.4cm, 1888



반짝이는 별이 빛나는 호화로운 청색 배경은 그의 이상향을 떠올려준다. 예술가들 사이에 영원하고 보편적인 애착 관계가 자리잡길 바란 것이다. 별의 무한성을 통해 예술과 예술가들을 한데 엮으면서 예술적 창작력의 무한한 삶을 구현하려던 그의 생각은 친한 동료 화가의 이 초상화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 외젠 보흐의 이 초상화는 외젠 보흐 보인이 루브르 박물관에 유증했다. 

- 115쪽 


 


폴 시냐크 Paul Signac (1863 - 1935)

안개 낀 에르블레, 작품번호 208 Herblay, Brouilladr, Opus 208 

oil on canvas, 33.2 * 55 cm, 1889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폴 시냐크의 그림이 다른 후기 인상주의 어느 화가들보다 더 끌린다. 이건 천천히 고민해보기로 하자. 


대기는 평온하며, 색조는 서서히 옅어진다. 정밀하고 규칙적인 붓 터치는 흰색 위주의 창백한 빛을 분산시키고, 노란 빛과 푸른 빛은 가까스로 느껴지는 정도다. 집요할 정도로 대칭적인 구도는 정적인 느낌을 더욱 강화하고, 지평선을 중심으로 화면이 정확히 둘로 나뉘는데, 수면에 반사된 풍경만이 물의 흐름으로 아주 약간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 전시도록, 72쪽 




에드가 드가 Edgar Degas(1834-1917)

메닐 위베르의 당구대가 있는 방 Salle de billard au Menil-Hubert 

Oil on canvas, 50.7*65.5cm, 1892



"당구대가 있는 실내 풍경을 그려보려고 하네. 내가 원근법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공간 안에서 각도를 재고 수직과 수평을 열심히 연구하면 원근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네." 

- 드가, 1982년 



이번 전시에선 드가의 조각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실은 이것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번 전시는 놓치지 말아야 할 듯 싶다. 


3. 전시장 풍경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한다고 해서 전시의 상업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 하지만 상업성이라는 단어 대신 대중을 보고 쉽고 편안하게 끌어들이기 위한 전시 환경의 구성이 아쉬었다. 인상주의 미술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참여 프로그램의 운영(돈은 안 되고 노력만 들어가겠지만, 이것이 바로 공공미술관의 역할이 아닐까)이라든가, 보다 넓은 전시 공간의 확보, 다양한 미디어의 활용 등은 전시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비파의 몇몇 눈 여겨볼 만한 작품들도 있었는데, 그 작품들은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자. 실은 이 글을 적는 것도 나에겐 꽤 벅찬 일이다. 시간적으로... ㅡ_ㅡ;; 전시가 며칠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 보기로 하자.  아래는 나비파의 한 명이었던 피에르 보나르의 작품이다. 




피에르 보나르, 흰 고양이, 1894. 


위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작품은 아니지만, 도록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어 인용해본다. 



19세기 후반의 약 30여 년간, 고양이는 예술 작품 속에서 눈에 띄게 나타났으며, 보헤미아인, 극장식 까페 등과 연계하여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던 한 세대의 상징적 동물이 된다. 

- 270쪽 



과연 그랬나? 흥미로운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애완동물을 좋아하진 않지만, 고양이에 대한 예술가들의 애호는 꽤 유래가 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Comment +0

세잔의 산을 찾아서 - 불멸의 산 생트빅투아르 기행
페터 한트케(지음), 이중수(옮김), 아트북스



세잔을 좋아하는 나. 전후 독일문학의 가장 실험적인 소설가 중의 한 명은 페터 한트케가 세잔에 대해서 적었다? 바로 사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하지만 사 둔 지 몇 달만 읽었다. 책은 그리 두껍지 않다. 책의 내용도 평이하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바의 내용이 아니었다. 나는 세잔에 대한 현대 작가의 독특한 시각이 농후하게 묻어나오길 기대했다. 그런데 이 책은 세잔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산문집에 가깝다. 한 쪽에서는 세잔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가고 한 쪽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가는 산문집이다.

이는 나쁜 시도가 아니다. 세잔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담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페트 한트케에 대해선 확실히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의 세밀한 관찰력은 글 여기저기에서 빛난다. 하지만 번역이 매우 나쁘며, 페트 한트케의 유려한 문장의 힘이 살아나지 못하는 듯 하여 다소 아쉽다(아래 댓글을 참조하세요). 세잔에 대해 궁금한 독자들보다는 글쓰기, 또는 산문의 힘, 현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어떤 시각에 관심이 있는 이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초기 철학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시인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썼다. 이는 시인들이야말로 모두가 현실과는 다른 허구에 가득 찬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예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실은 그만큼 불행한 삶의 조건과 불길한 징조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술은 현실 그대로 재현해놓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예술은 다소 우스워지기도 하는 불행한 삶의 조건과 비관을 예시함으로써 진정한 현실 해석의 길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세잔의 산을 찾아서
페터 한트케 지음, 이중수 옮김/아트북스


 

Comment +4

  • 지나가는 이 2008.11.07 15:26 신고

    이 책 사실 번역이 엉망입니다. 2/3는 틀린 번역이라고 봐도 잘못이 아닐 겁니다. 꼭 번역기로 돌려서 한국말만 맞춘 것 같아요. 원문과 반대의 뜻으로 번역한 구절들도 많이 눈에 보입니다. 번역자를 만나서 따지고 싶은 기분입니다. 뭘 보고 어떻게 번역한 거냐고...저 위에 인용하신 부분도 완전히 틀렸어요. 원문은 이렇습니다.
    "최초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은 시인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이미 그 때부터 현실이란 나쁜 상태와 좋지 못한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 생각에 따르면] 예술의 주된 대상과 모티브가 악한 것일 때, 또는 현실에 대한 다소간 우스꽝스러운 절망일 때 비로소 예술이 현실에 충실하다는 것이다."('Die Lehre der Sainte-Victoire'(Suhrkamp, 1984) 17-18페이지)

    • 헉.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원문 번역과 책에 나온 글을 읽으니, 매우 다르군요. ㅡ_ㅡ; 쩝. 영어 번역본라도 구해서 새로 읽어야겠어요. 댓글의 문장은 간결하고 힘이 있는데, 책의 번역은 쭉쭉 늘어지고(마치 책 페이지 수를 고려한 듯한..) 구구절절 부연적이며 결국에는 엉망이 되는 것같아요. 편집자의 의도가 심하게 들어간 느낌도 드는..
      번역에 대한 지적 감사합니다. : ) 제 글에 오류가 있었음을 심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T_T;

  • 행인 2010.02.17 15:46 신고

    전 이책을 독어로 읽다가 포기하고 한국어로 읽었습니다.
    음.. 님의 말씀만큼 번역이 나쁘진 않았는데... 제가 인상적이었던것은
    그 한국의 번역가님께서도 직접 이 산을 방문하고 번역했다는것입니다.
    저는 거기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드케의 문장가 많이 다르다는것은 눈치 챘습니다. 하지만 의미상으로 매우 다르다고 하기도 힘들거 같습니다. 번역할때 완전히 다른 언어를 그 의미의 변화없이 유려하게 옮기는 가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불가능한 표현이 너무 많습니다. 그에비해
    저는 그냥 이 번역에 만족했습니다. 독일인 조차도 사실 읽기 힘든 책이 한드케의 이 책입니다. 자신들도 읽고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매우 섬세하고 깊은 명상을 요하는 책이죠. 그냥 슥 읽고 무언가를 얻기 바라는 책이 아닌것은 확실합니다. 저는 오히려 이책을 읽고 세잔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한트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가 있었으나, 번역본이 완벽하게 충족시켜주지 못한 느낌이 들었는데, 님의 댓글을 읽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네요. 참, 번역이란 어려운 일인 것같습니다. ㅡ_ㅡ;;; 그런 점에서 한국은 그 힘든 번역에 대한 대우가 바뀌어야 할 텐데 말이죠.
      님의 댓글을 읽으니,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감사합니다.

* 2004년 을 내기 전 정리한 노트입니다. 몇 년이 지났는데, 이 때 이후 열심히 공부하질 못했네요.


자본주의의 시대

예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데, 뜬금없이 '자본주의의 시대'라는 소제목이 의아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시대'라는 문구만큼 적절한 것을 찾지 못했다. 19세기 초 낭만주의자들이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멀리 도망치길 원했다면, 그래서 어떤 환상이나 몽상적 세계를 꿈꾸었다면, 19세기 중반의 낭만주의자들은 현실과 싸워 세계의 진보를 이루려고 했다. 이것이 발자크의 세계관이다. 다시 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그것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믿는 부르주아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산업혁명의 물결이 전 유럽을 휩쓸고 지나가던 시기의 부르주아의 세계관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해 19세기 중반 이후 농촌에서의 삶이란 불가능했고 모두 도시로 나오기 시작했다. 빈부 격차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변해갔으며 이 때 마르크스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 세계의 격변이 준비되고 있는 동안 예술은 도리어 퇴폐적이며 시대착오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주의 양식인 라파엘 전파나 프랑스의 아카데미 화가들은 이러한 시대착오적 예술 양식을 그대로 드러내어 주고 있다. 도시가 삶의 중심이 되고 계급 갈등이 심화되는 시기에 혁명의 어두운 기억 속을 헤매고 있는 낭만주의 양식과 아카데미 미술은 적절하게 19세기 중반 이후의 유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쿠르베의 작품은 당시 미술에 큰 충격을 주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A Burial at Ornans
Gustave Courbet
1849-50; Oil on canvas, 314 x 663 cm (10" 3 1/2" x 21' 9"); Musee d'Orsay, Paris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천사를 그릴 수 없다"라는 쿠르베의 말은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그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카라바지오가 보여주었던 바의 그 바로크적 자연주의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그는 이러한 신념을 '사실주의(realism)'-다소 그 정의가 애매한-이라고 적었다. '오를레앙의 장례'는 쿠르베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림은 다소 어둡고 분위기는 침울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태도'는 당시 유럽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이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제 세계는 낭만주의적 색채를 잃어버리고 우리가 살고 있던 현대적 감수성으로 넘어오게 된다. 그것의 귀결이 허무주의이더라도 그것이 등장했을 19세기 중반에는 하나의 혁명이었고 진보였다.


허위와의 전쟁

우리는 진실에 얼마나 많은 관심이 있을까? 글쎄, 나는 여기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모든 진실은 자기자신의 변명이나 합리화를 위해서 존재할 뿐, 실제 있는 그대로의 진실에는 아무런 관심에도 없었다. 이러한 태도는 19세기 중후반 대도시에 살아가던 부르주아의 일반적인 태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을 위해서 좋은 것이 '진실'로 여겨지고 있었다. 윌리엄 부게로 같은 아카데미 미술가들이나 라파엘 전파 같은 미술가들은 이러한 진실을 위해 자신들의 노력을 바쳤다. 그들에게는 칼 마르크스나 찰스 다윈이 이야기한 세계 인식의 극적인 변화를 인식할 여유도 인식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종종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가 더 큰 변혁기에 놓여있지 않나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20세기, 21세기는 19세기의 연속일 뿐이다. 19세기적 삶의 방식이 그대로 21세기 초까지 이어진다. 아직까지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계급갈등이 유효하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아직까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교과서에 싣는 문제를 가지고 종교계가 반발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니 19세기 이 두 명의 학자가 말한 바 진실이 당시 사회의 근간부터 흔들어놓았음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마르크스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물질적 기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우리의 의식은 계급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계급 구분이 뚜렷해지고 계급적 자각이 시작된다. 하지만 동시에 '물질적 기반에서 그 어느 것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그의 유물론적 태도는 당시 진보적인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러한 유물론적 태도는 자신들의 계급적 한계를 뚜렷하게 성찰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자신들의 허위 의식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이런 점에서 찰스 다윈은 마르크스의 영향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의 생각,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적응한 강한 종만이 진화하여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은 모든 이론에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진화의 개념은 근대 기계론과 합쳐져 '진화론적 진보주의'로 변화한다. 그리고 낭만주의 시대부터 그 힘을 뚜렷하게 잃어가던 기독교의 세계를 일거에 날려버린다. 즉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생각을 없애고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나 찰스 다윈의 세계는 진보적인 지식인의 세계이지, 일반 대중의 세계는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진실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지라도 삶에 안정적이고 물질적 기여를 할 때에만 채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19세기의 세계는 거친 정쟁(政爭)의 세계이며 끊임없는 허위와의 전쟁을 수행하던 세계였다. 이 때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로 부르주아 세계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부르주아 계급의 허위 의식과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자연주의

사용자 삽입 이미지
Le Dejeuner sur L'Herbe
Edouard Manet, 1863
Oil on canvas
214 x 269 cm (84 1/4 x 106 1/4")
Musee d'Orsay, Paris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마네의 의도는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데에 있었다. 그에게는 가치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세계를 어떻게 그대로 보여줄 것인가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쿠르베의 그것이면서 인상주의자들의 그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불경스럽고 지저분한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왜냐면 비도덕적인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가치로는 수용하기 힘든 주제이기 때문에. 그것은 예술은 도덕적 이념이나 가치를 재현해야 된다는, 그래서 실제 일어나는 일이 아닌 일어나야만 할 일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어떤 이념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Le fifre (The Fifer)
Edouard Manet, 1866
Oil on canvas, 160 x 98 cm (63 x 38 5/8 in); Mus? d'Orsay, Paris


이러한 마네의 태도는 위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인상주의적인 평면화의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원근법으로 대표되던 르네상스 이후의 환영주의이나 눈속임(Trompe de l'oeil) 경향이 뚜렷하게 후퇴하고 색채로만 이루어진 평면적인 양식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일본 판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인물과 인물을 둘러싼 배경 사이에는 검은 선으로 구획되어 있다. 특히 신발의 처리는 매우 독특하다. 이는 실제 모습을 재현했다기 보다는 회화적 특징을 위해 새롭게 그려진 것으로, 이제 현실의 재현을 희생하고 회화적 효과에만 치중하는 방향 전환이 천천히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제 회화는 원근법주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평면화이며 탈가치화이고 반원근법주의이다. 드디어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를 그대로 실현하기 시작한다.

예술 의욕과 기술

인상주의는 기존의 모든 예술 양식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예술을 이끈다. 그리고 현대 미술의 추상과 기하학주의가 바로 이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현대 미술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언제나 인상주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사진과 인상주의의 관계는, 흔히들 사진과 경쟁하기 위해, 또는 사진을 극복하기 위해 인상주의 양식이 등장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술 의욕(kunstwollen)와 기술(technique)과의 관계이다. 예술에 있어 어떤 기술이나 기법은 예술 의욕에 의해 채용되는 것이지, 새로운 기술이나 기법의 등장이 예술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이렇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사회 전반적인 어떤 변화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양식을 요청하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예술 의욕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기법이나 기술이 채택되는 것이라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사진과 인상주의는 동일한 예술 의욕을 가진다. 둘 다 모든 사물을 풍경화시키는 양식이며 도시적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는 환영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면, 그래서 현대로 올수록 이러한 환영주의를 극복하려는 사진가들의 노력이 집중되는데, 후자는 그 시작부터 환영주의를 극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Impression, soleil levant (Impression, Sunrise)
Claud Monet, 1873
Oil on canvas, 48 x 63 cm (19 x 24 3/8"); Musee Marmottan, Paris

모네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의 기본 가정은 '자연은 변화한다'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것은 '변화의 한 순간'일 뿐이다. 그 순간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며 전적으로 자신의 감각 지각을 통해 들어오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캔버스로 옮길 뿐이다. 이렇게 인상주의는 시작한다.


인상주의: 반원근법주의

존재의 세계에서 생성의 세계로, 원근법주의에서 반원근법주의로, 일원론에서 다원론으로, 중심화에서 탈중심화로, 탈가치화로, 그리하여 감각지각에만 의존한 어떤 평면주의로. 인상주의가 예술의 세계에 끼친 영향은 그 이전 세계와는 전적으로 다른 방향의 제시였고 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이었고 혁명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La cathedrale de Rouen, le portail, temps gris (Rouen Cathedral, the West Portal, Dull Weather) dated 1894, painted 1892 ; Oil on canvas, 100 x 65 cm (39 3/8 x 25 5/8 in); Musee d'Orsay, Paris


인상주의 예술가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가 바로 모네이다. 모네는 일련의 연작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을 포착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루앵 대성당 시리즈도 그러한 연작물들 중의 하나이다. 색들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을 뚜렷하게 보려면 약간 거리를 두면 해결된다. 그러니깐 멀어질수록 대상은 뚜렷해지고 명확해진다. 시지각에 충실한 작품들이 보이는 경향이다. 하지만 작품은 평면화되어 있고 캔버스의 중앙이나 가장자리나 똑 같은 색들의 연속처럼 보인다.

연속되어 흘러가는 색채는 르누와르에게서도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그래서 인물마저도, 뚜렷하고 확고한 이념을 주장하던 양식에서 풍경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풍경화가 호소력이 있게 다가온 것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누군가의 내면 세계를 알 수는 없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을 꿈꾸는지,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군가를 재현할 수는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이 때 모든 인물들은 풍경 속에 파묻혀 하나의 풍경이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On the Terrace
Renoir, 1881
Oil on canvas
39 1/2 x 31 7/8" (100.5 x 81 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인물이 하나의 풍경이 된 상황은 결과적으로 20세기의 예술 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인간주의나 반지성주의로 이어진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제 풍경화가 예술 장르에서 뚜렷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he Dance Examination,
Edgar Degas,
pastel, Denver Art Museum.

드가는 이러한 풍경 속에서도 운동에 매혹된 화가이다. 그래서 그가 발레를 대상을 그렸을 때에는 움직이는 대상을 움직이지 않는 선과 색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고전주의적 요구에 충실하였다. 이런 이유로 드가를 인상주의 예술가들 중에서도 '데생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Rue de Paris, temps de pluie; Intersection de la Rue de Turin et de la Rue de Moscou
Gustav Gailleboote, 1877; Paris: A Rainy Day depicts an area of the Batignolles quarter.
Oil on canvas, 212.2 x 276.2 cm (83 1/2 x 108 3/4");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part of the Charles H and Mary F.s. Worcester Fund

인상주의는 현대 도시의 양식이다. 도시 문명이 가져다 준 여러 문화를 그대로 옮기는 양식인 셈이다. 이에 많은 예술가들이 동조하였고 이러한 이념을 전파시켰다. 카보유트의 작품은 도시의 한 모습을 그대로 옮긴다. 하지만 모든 인물은 풍경이 되었고 보들레르가 말한 바 있는 '산책자(Flaneur)'나 '현대성은 지나가는 것, 일시적인 것, 우연적인 것으로서 이것이 예술의 절반이며, 또 다른 예술의 절반은 바로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예술가에게는 현대성이 있었으며, 이전 시대에도 유지되었던 아름다운 그림의 대부분을 보면 거기에 서술된 것은 바로 그 시대적 의상을 입고 있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바로 인상주의 예술을 지칭하는 것이 된다.


세잔의 모더니즘

사용자 삽입 이미지

Mont Sainte-Victoire Seen from Les Lauves
1904-06 ; Oil on canvas, 66 x 81.5 cm (26 x 32 1/8 in); Private collection, Switzerland; Venturi no. 802


인상주의 초기부터 세잔은 참여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상주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자신의 양식을 발전시킨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들의 규칙이었고 기하학이었다. 그는 인상주의에 충실하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어떤 것을 찾아낸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생 빅투와르 산 연작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는 감각 지각에 의해 인식되는 것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어떤 확신을 구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의 양식은 입체감이 두드러지는 기하학주의로 흐른다. 이러한 그의 방향은 20세기 초의 현대 미술을 결정짓는다. 추상미술은 세잔 이후에 본격화된다.

하지만 이러한 세잔의 작업은 현실 속에서, 삶 속에서 어떤 확신을 구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있다. 인상주의자들이 인물을 풍경 속에 가두었을 땐 인간에 대한 혐오가 밑에 깔려있는 것이라면, 세잔이 자연 풍경 속에서 기하학을 발견해내는 것은 적대적 세계라는 신석기 시대에 나타난 바 있는 기하학주의의 반복인 셈이다. 그리하여 신석기 시대 이후로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기하학과 추상의 세계가 20세기 예술을 물들이는 것이다.



Comment +3

  • 세잔에 대해 잘 보았습니다.
    입체파의 그림처럼 풍경이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입체일테니까...
    더 사실적인 것일텐데 낯설군요..

    (세잔의 그림을 보면서 이런 말이 성립하는지도 의심스럽네요)

    • 세잔의 고전적 화풍은 이전의 고전적 화풍과는 본질적으로 틀립니다. '내면의 고전주의'라고 할까요. 우리 마음 속의 고전주의적 기반(기하학적인 원천)을 찾아갑니다. 이는 20세기 초반의 고전적 모더니스트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실험된 것이기도 합니다. 의식의 흐름이라든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나 피카소의 입체파나 칸딘스키같은 추상표현주의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나타납니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겠죠.

      '입체'라는 단어보다 '기하학적'라는 단어가 세잔에게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네요. 세잔의 문제의식은 세계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는 기하학적 요소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았으니깐요. 삼각형, 사각형 같은.

  • (잘 읽었습니다. 구체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가슴에는 와 닫네요.
    세잔느의 경지라고 할까요.기학학적 표현말이에요. 그것을 이해 못해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는 말이었습니다.)

    입체가 기하학적 요소에 포함되기 때문에 입체라는 표현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기하학적 요소에서 사각형은 넣고 원기둥과 같은 입체를 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네요. 세잔느를 큐비즘, 입체파로 분류하는 것도 보았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잔 Cezanne
창해ABC북


모더니즘을 새로운 형태의 고전주의라고 지칭하는 까닭에는 폴 세잔과 같은 예술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인상주의 사이에서 시작해 위대한 고전적 양식으로 귀결되는 그의 예술 세계는 20세기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는 “미술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조화이다”라고 생각했고 ‘회화에서 추구하는 진실은 현실에 대한 일루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확신에 이르는 작업’이라고 믿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able, Napkin, and Fruit (Un coin de table)
1895-1900 (150 Kb); Oil on canvas, 47 x 56 cm (18 1/4 x 22 in);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모더니즘 회화의 시작이라고 여겨지는 인상주의가 무수하게 조각난 빛들로, 한 순간 자신의 시각을 자극했던 풍경들로, 자신들의 캔버스를 채웠다면, 세잔은 그 빛들, 그 풍경들을 영원하고 지속적인 어떤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리는 이 경향을 ‘내면의 고전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Le Mont Sainte-Victoire

세잔의 작품들이 감동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질서를 질서로 담아내기 위해 그는 전혀 다른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는 색채와 붓질만으로도 입체감과 형태를 충분히 표현하였으며, 선으로 그린 데생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다. 생트빅투아르 산의 기하학적인 윤곽에서조차 선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산은 색채와 빛의 대립관계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색채와 빛은 산을 하늘과 대비시킨다.’

이 책은 매우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인상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제대로 읽기에는 다소 딱딱한 책이다. 그러나 조금의 노력을 기울여 사전 지식을 습득하고 난 다음 이 책을 읽는다면 세잔의 세계를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Comment +0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

보들레르의 수첩,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년 1846년 산문과 1863년 산문이 함께 실려있고 죽은 후 나온 수첩까지 실린 이 책은 기억해.....

경쟁 우위의 종말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 리타 맥그레이스

경쟁 우위의 종말 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 리타 군터 맥그레이스(지음), 정선양, 김경희(옮김), 경문사 "소니는 스스로 경쟁우위의 함정에.....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2015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안경을 바꿔야 할 시기가 지났다. 나를,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신경쓰이게 한다. 글자가 흐릿해지는 만큼 새 책이 쌓이고 잠이 줄어드는 .....

반듯이 누워

반듯이 누워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얇게 흔들리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조함에 묻혀 아주 짧게 내 삶을 되새기며 슬퍼한다. 이름 모를 바람이 들어와 잠시 내 몸 위에 살짝 앉았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지음), 장영준(옮김), 그린비 노엄 촘스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지만, 그의 언어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에게 .....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지음), 권진아(옮김), 마음산책 헤밍웨이가 너무 유명했던 탓에, 내가 그를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이것이 세계문학전집의 폐해다. 헤밍웨이의 소설들.....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유현경, <은주>
비 오는 날
데이비드 밴 David Vann 인터뷰 중에서 (Axt 2017.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