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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 di Campiano Primitivo Di Manduira 2015 

와인너리 홈페이지 : http://www.contedicampiano.it/en/ 



100% 프리미티보(primitivo) 와인이다(미국의 진판델과 동일한 품종이다). 가벼우면서도 풍성한 느낌을 주는 와인이다. 바디감에 있어서는 약간 부족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가격대에서 이 정도의 풍미를 준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국순당에서 수입하고 있는 와인이며, 롯데백화점 와인샵에 가서 구할 수 있다. 


소매 가격이 1-2만원대로 예상된다. 와인바에서 4만원대로 마실 수 있었으니. (저 정도의 소매가격이라면 추천한다!) 


Manduria는 이탈리아 남동부 지역의 작은 도시다. 아래 지도에서 표시된 지역, 타란토Taranto 지방에 위치해 있는 해변도시다.  



아래는 Manduria 지역 사진이다. 가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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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혼란스러운 사각형의 냉동, 냉장 공간 탐험 끝에 만난 또띠아, 치즈, 오래된 소시지. 늦은 퇴근. 혼자 식탁에 앉아 먹는 맥주. 어쩔 수 없이 아저씨가 되어가는 밤의 쓸쓸한 어둠.




4월 7일 

#혼술 생활의 연속. 아슬, 아슬, 하늘, 하늘, 흔들, 흔들, 빙글, 빙글, 그렇게 #혼술 #중년  



4월 24일 

혼자 술만 마시다 나이가 들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찾는 건 그 때 그녀,들,목소리,들,그,손길,들,그,술자리,로 이루어진 대명사들. 

책상에 앉아 이리저리 흩어진 내 현재를 추스리다가 '내 길이 뭘까', 하고 생각했을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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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의 비밀. 그건 와인 잔에 맥주를 담는 허세다. 

혼자 고독한 척 쓸쓸한 척 멋있는 척... 척의 비밀. 

그건 아는 자만 아는 유쾌한 허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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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쓴 포스팅이라니. 벌써 12년이 흘렀구나. 함민복과 채호기의 시다. 


*** 2004년 1월 27일 *** 


강화도 어느 폐가에 들어가 산 지 꽤 지난 듯 하다. 세상의 물욕과 시의 마음은 틀리다는 생각에 인적 뜸한 곳으로 들어가버린 시인 함민복. 그의 초기 시들은 무척 유쾌하면서도 시니컬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연시들이 많아졌다. 외로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광고를 위해 지은 그의 시 "설중매"는 세상의 술에 취한 영혼을 살며시 깨우고 저기 멀리 달아나는 그리움을 조용히 잡아 세운다.



설중매



당신 그리는 마음 그림자
아무 곳에나 내릴 수 없어
눈 위에 피었습니다.

꽃 피라고
마음 흔들어 주었으니
당신인가요

흔들리는 마음마저 보여주었으니
사랑인가요

보세요
내 향기도 당신 닮아
둥그렇게 휘었습니다.



이 시 때문에 설중매를 얼마나 사 마시려마는, 내 마음 외로운 탓에 차가운 겨울 오후부터 술 생각 동하게 만드는 건 함민복의 시가 가진 힘일 게다.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어 술을 마시면 좋을련만, 그 꿈 접은 지 오래. 하지만 꿈을 가지는 상상은 때로 좋을 때가 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오래된 시 한 편 읽어본다.



몸 밖의 그대 1


1

그대와 마주앉아 그대의 술잔에 술을 따릅니다. 그대의 몸
을 조금씩 채워가는 술. 그대와 마주앉아 내 몸에 따르어지
는 그대를 봅니다. 내 몸 속에 채워지는 그대. 술은 그대 핏
속으로 스며 구멍마다 붉은 꽃송이 내질러 숨막히는 향기로
내 몸을 묶어놓습니다. 그대는 내 몸으로 들어와 영혼을 점
령하고 옴쭉달싹 못하게 합니다.


2

내 몸 속에는 그대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죽
었다고 하지만 내 몸 속에는 그대가 온전히 살아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의 사막에 홀로 버려
질 때 그대는 내 몸을 찢고 밖으로 나옵니다. 내가 그대를
그토록 사랑했듯 그때야 비로소 나는 없고 오로지 그대만이
있습니다.


********


어느새 십이년이 넘어버린 채호기의 시다. 술에 취해 이 시를 읽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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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때 대기가 제일 좋다, 나는. 적당한 차가움이 귀 끝을 스칠 때 따뜻한 술 한 잔이 떠오르고 무심한 거리 뒷골목에서 만나는 인생들에게서 정을 느낀다. 그대들과 함께 술 취해가던 그 해 겨울이 그리워지는 이 맘때, 초겨울, 나는 요즘 대기의 결이 좋다. 




아.. 그리고 술. 마시지 않은 지도 꽤 지났구나. 아름다운 술자리가 언제 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아래 광고. 참, 술 생각, 옛날 생각, ... 휴식이 간절해진다. 요즘 너무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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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 가운데 호텔 입구의 새벽 3시는 고요하기만 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호텔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이 연상되는 것은, 호텔이라고 하면, 놀러오는 곳이라는 인상이 깔려있어서다. 


떠.나.고.싶.다.

모.든.것.을.버.리.고.

저.끝.없.는.우.주.여.행.을. 


호텔은 해마다 한 두 번씩 돌아오는 낯선 우주다. 호텔의 하룻밤은 아늑하고 감미로우며 여유롭지만, 그와 비례해 시간은 쉽게 사라진다. 



새벽 3시. 여의도 콘래드 호텔 바로 옆 빌딩에서 며칠 째 새벽까지 일을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원하지도 않았으며 끌려다녔다. 이런 식이라면 그만 두는 게 상책이나, 관계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를 일이다. 


관계는 우리는 견디게 하고 지치게 하며 상처 입히고 미소짓게 만든다. 관계의 해석이란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저 지금/여기에서만 유효한 어떤 정의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실재론자들에겐 시간은 무의미하고 운동이란 없는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고 그녀/그는 언제나 내 옆에 있다,고 말한다. 경험 상 그것이 거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처입지 않기 위해, 상처입었음에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마음 깊숙한 곳으로 사랑을 끌어당겨 마음의 문을 닫는다. 


거의 2주 가까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여유를 가지지 못한 채, 일에 쫓겨 살았다. 미술 평론 하나 써서 내기로 한 약속도 깨졌고 지금 하는 일에 대한 금전적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꿈꾸는 중년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표현이다. 하지만 미성년적 자아를 가졌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중년들은 죄다 미성년이다. 꿈을 꾼다. 도망가거나 회피하거나 쫓기거나.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뿐. 사회가, 시스템이 강제하는 어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리곤 어느 순간 깨달을 것이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이 여름이 가고 또 다른 가을이 오면, 이브 몽땅의 고엽을 들으며 술을 마셔야지. 에디뜨 피아프와 자끄 브렐까지. 술을 마시면서 떠나간 옛사랑과 우리 아이의 미래와 내 절망과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 술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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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01 20:16

    비밀댓글입니다



몇 달 간의 흔적이 숨겨져 있는 책상 바로 위로, 지치지도 않고 차가운 에어콘 바람은 평평한 사각형으로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면서, 어떤 구조 속에 스스로 자신을 내몰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을 내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삶 전체를 내몰지 않은 사람들에겐 철없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무책임하고 제멋대로 인간임을 인정하라며 세상은 강요한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우리를, 어떤 시스템 속으로 자신을 내몬 이들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책임질 생각도 없다. 강요하면서도 그 강요로 인한 결정로 생긴 좌절, 절망, 슬픔에 대해선, 네 잘못이라며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결국 세계는 피해자들로만 넘쳐난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다. 모든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떠밀려 지금 이 자리에 서서 걱정하고 슬퍼하고 아파한다. 쉴새없이 아파하면서 스스로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똑같이 강요한다. 


애초 세상은 잘못 만들어진 곳이다. 그러니 플라톤은 애초부터 '저 세상의 이데아'를 슬프게 노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태도만큼 잘못된 것도 없으니)


뫼르소도 조현병 환자였을까? 사람들은 '원인-결과'라는 인과율의 노예다. 자연과학에서 원인-결과의 인과율과 사회에서의 인과율은 전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자연과학을 대하듯 사회를, 사람을 대한다. 그렇다고 원인을 해결하지도, 해결할 의지도 없다. (더 불행한 건 지금 정권은 해결할 머리조차 없다.) 


영국의 EU탈퇴는 예견된 불확실성이다. 그러니 충분히 준비할 수 있고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호들갑은 무엇인가. 저 멀리 떨어진 유럽 대륙의 일이다. 직접적인 영향은 일부이고 대부분 간접적인 것들이다. 마치 스스로 무능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무능력함을 드러내 보인다고 할까.

 

아, 그러면 나도, 그런 건 아닐까. 기분 좋게 술 마실 일이 없다. 날 기분 좋게 할 사람 만날 일도 없다. 보링거는 적대적 세계에서는 추상이, 우호적 세계에선 감정이입의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추상의 거친 계절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원래 얼마 전 마신 와인 사진 한 장 올리려고 시작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주절주절 글이 씌어진다.




얄리다. 칠레 와인이다. 가성비가 좋은 와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 기대했던 것엔 미치지 못했다. 카르메네르여서 그런가. 그동안 카베르네 쇼비뇽만 마셨으니까. 마트에서 손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가성비가 좋은 칠레 와인으로는 에라주리스, 디아블로, 얄리가 유명하다. 




술 마실 일도 줄었고 술 마시기도 겁 난다. 나이가 든 탓인지,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마음까지 무너진다. 세상이 슬프다거나 절망적이라든가 하는 식의 우울함이 아니라, 그냥 엄청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마약을 한 다음에 나타나는 무기력이 이런 걸까.


그래서 아주 무기력하게 술을 마시고 싶다. 술을 마시는 중간중간, 말러를 듣다가 밥 말리를 들으면 무기력해졌다가 잠시 유쾌해질 수 있을 것이다. 풀바디한 스페인 와인을 마시다가, 살짝 크리스탈 와인잔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유리 조각은 얇고 무겁게 바닥에 깔리며 빛이 나고, 붉은 색 와인은 옆 테이블에 혼자 앉은 여인의 가느다란 손가락 끄트머리에 가 부딪히면 좋을 일이다. 아마 베네치아의 카사노바가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무기력해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취하면서 누군가를 알게 되고, 그렇게 다음 날 다시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 ... 인생의 목적은 역시 먹고 마시는 데 있는 것이다.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듯 우리 몸과 마음은 어떤 것들로 채워져야만 한다. 붉고 무거운 것들로 채워지면서 삶은 한껏 가볍고 우아해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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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순간순간 묻지만, 답은 없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움직이고, 움직여야만 한다. 설령 그게 잘못된 방향일지라도. 그게 삶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 노력하는 것, 정성을 쏟는 것과 무관한 게 삶이다. 하지만 원하고 노력하고 정성을 쏟는다. 이게 또한 삶이다. 그러면 나는,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걸까?


술이나 마셔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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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할 때면, 혼자 나가 햄버거를 먹고 프로젝트 사무실로 돌아온다. 재미없는 일상이다. 근사하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많고 긴장을 풀 수 없다. 잘못 끼워진 나사 하나가 전체 프로젝트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퇴근길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요즘은 ... 조용한 단골 술집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하지만 조용하면 장사가 되지 않는 것이니, 다소 시끄러워도 혼자 가서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가끔 바Bar같은 곳을 들리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샐러리맨이 가서 맥주 한 두 병 마시기엔 눈치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퇴근길. 나에게도 다시 해가 뜨길 꿈꾸어 본다. 뭔가 다시 시작해야 겠다. 다시 준비하고 다시 노력해야지. 결국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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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작은 글 하나 써서 올릴 틈도 없는, 하루하루가 지난다. 낮엔 잠시 비가 왔고 우산을 챙겨나온 걸 다행스러워 했으며, 저녁엔 비가 그쳤고 손에 든 우산이 거추장스러웠다. 내 과거는 다행스러웠고 내 현재는 거추장스럽다. 


집에 와서 페이스북에 한 줄 메모를 남겼다. 


*   *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꿈을 현실로 만든다는 건 ... ... 반대로 현실을 꿈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현실을 꿈으로 만들겠다. ... ... 거참, 힘든 일이다.


*   * 


십수 년전부터 선배들을 따라 간 호텔 바를 얼마 전에도 갔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와인을 마셨다. 한창 와인 마실 때가 그립다. 그 땐 미래가 있다고 여겼다. 

갑작스러울 정도로 세상이 엉망이 되었다.


이젠 술을 마시기도 힘든 시절이 되었다. 내 몸도, 내 마음도, 이 시절도, 이 도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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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글 소재, 혹은 주제를 떠올렸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대학 졸업하면서부터 시작했지만, 가끔 글도 참 못 쓰고, 지적 성실성도 지적 통찰도 없는 이들이 교수가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그럴 여유가 존재했더라도,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한다.


결국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동한다. 공동체는 무너졌고 쓸쓸한 개인만 남아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다. 지금 한국엔 너무 슬프고 화가 나는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지만, 내 일상에는 변화가 없다. 자본주의가 무섭다는 생각을 서른 초반에 했고 자본주의의 사슬에 매여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나를 마흔 초반에 발견했다. 쓸쓸하다. 





벚꽃은 어김없이 봄이면 핀다. 벚꽃이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그 때, 학교 교정에 벚꽃이 흐드러질 때, 나는 사랑을 하지 못했다. 봄 벚꽃과 내 사랑과는 그 어떤 연관도 맺지 못한다. 내 사랑은 계절을 벗어나 저 멀리, 외따로 있었다. 하지만 꽃은 쓸쓸하게 아름답고, 언제가 헤어지게 될 젊은 연인들은 부조리한 한 때의 사랑을 추억하기 위해 벚꽃 아래로, 아래로 몰려들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자, 하늘이 어두워졌다. 갑작스레 밤이 오고 예상보다 빨리 아침이 왔다. 오는 밤과 오는 아침 사이에 나는 끼여,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도로는 축축했지만, 젖지 않았고 도시는 조용했지만 쉬지 않고 떠들었다. 대화는 없었고 일방적인 수다만 있었다. 나는 없고 너만 있는 봄이구나. 





퇴근을 하면 몸은 녹초가 된다. 녹초가 되는 만큼 마음은 투명해져, 어쩌지 못하는 밤이 된다. 시를 읽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 결국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싶지만, 예전만큼 건강하지 못하고, ... 실은 한 번도 건강했던 적이 없었다. 병든 현대인의 유머를 이해할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되었지만, 술은 내 곁을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술 친구들 마저. 




늦은 밤,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결국 읽지 못하고 반납하게 될 몇 권의 책을 빌렸다. 오늘, 저 벚꽃도 마지막이다. 내년 저 벚꽃을 볼 때면,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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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짬뽕을 폰 카메라로 찍기란 쉽지 않았다. 임시로 있는 사무실 근처 중화요리점에서 짬뽕에 이과두주를 마셨다. 붉은 색으로 장식된 벽면 아래 짙은 갈색 나무 무늬 테이블과 검정색 천이 씌워진 의자에 앉아, 바람과 오가는 사람들에 흔들리는 출입문을 잠시 보았다. 





이것저것, 그냥, 잠시, 보는 시절이다. 정해져 있지 않아 자유롭고 정해져 있지 않아 불안한 시절이다. 자유와 불안, 혹은 두려움은 등가적 관계를 이룬다. 최초의 인류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가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자유 속에 깃든,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도 함께 가지고 왔다.


하지만 중년이 되자, 자유는 보이지 않고 불안과 두려움으로만 채워졌다. 마음 속에서, 육체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 술로 태워지고 술로 열광하고 술로 위로받는 건 자유와 사랑, 순결과 불륜이지, 불안과 두려움은 아니었다. 





선사시대 우연히 발견되었을 술은, 인류에게 두 번째로 값진 선물이다. 그래서 나는 어김없이 짬뽕에 독주를 마신다. 싸구려 독주를. 


이과두주. 이 술은 중국 사람들에게 소주와 비슷한 술이다. 실은 소주보다 더 싼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평균 56도. 



출처: 성학주류 홈페이지(http://www.sunghak.com/)


예전에 마셨던 이과두주는 나쁘지 않았는데, 최근에 마신 이과두주는 알콜 냄새가 심하게 났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그런 걸까. 어느 주류 회사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온 이과두주 사진이다. 차례대로 알아보면 아래와 같다. 



1. 홍성이과두주(55도, 유한회사 금용 수입)

3.우란산이과두주(56도, Niu Lan Shan Er Guo Tou Jiu,100ml (주)풍원주류 수입 )

4.우란산이과두주(56도, Niu Lan Shan Er Guo Tou Jiu, 125ml (주)풍원주류 수입 )

2(?)/5. 천진식품 제조 이과두주((유한회사 금용 수입)) 



우란산이과두주를 마셨는데, 맞지 않았다. 조만간 다른 이과두주도 마셔볼 요량이다. 


십 수년 전 크리스마스 근처, 대학원 시험을 떨어지고 짬뽕 국물에 이과두주를 마시고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런데 그 때 대학원엘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때로는 떨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학문으로 유리된 세상 속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한 채, 고귀한 언어의 자존심만을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 때 나와 함께 술을 마시며 나를 위로해주시던 분은 계속 공부를 하셨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글을 쓰시지만, ... ...어느 방향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결국 어느 게 정답인지 모를 땐 자신이 정하는 게 정답인가. 





그리고 나는 짬뽕을 집에서 해 먹었다. 재료의 부실함으로 인해 마법의 가루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나름 선방했다. 다음 주부턴 여의도에서 프로젝트 PM을 맡기로 했다. 준비 중인 사업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해졌고, 이 지지부진과 무관하게 경제적 삶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책 읽고 음악 듣고 글을 쓰는 삶을 한 때 동경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한 것은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는 이들의 무능함 때문이었다. 춘추전국시대에 난립했던 무수한 사상들은 학문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었지만, 지나친 학문 논쟁과 쌀 한 톨 만들지 않으면서 사사건건 중앙정부의 정책에 토를 달던 학자들이 싫었던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통일되었으나, 사상적으로는 통일되지 않았고, 통일할 생각도 없었던 셈이다. 무술이라면 싸움이라도 해서 결판을 낼 수 있었지만, 사상과 학설은 이와 같지 않았다.  이후 시간이 지나, 한 무제에 와서야 유교로 사상적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무언가 만들고 생산하며 기여하는 삶. 이게 좋다. 그건 사적인 차원에서 쓰여지는 글 이상이어야 한다. 무언가 생산할 수 있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글이라면 괜찮을 게다. 그런데 그런 글이 어디 쉽나. 잡글이 길어졌다.

*     *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책 <<투명사회>>를 읽기 시작했다. 결국 한병철의 책 두 세 권을 더 구입했다. 그가 한국에 있었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한국에도 한병철 교수 정도 내공이 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독일적 환경 아래에서 다른 일상을 보내며 고민했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글이라 여겨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런 글을 쓰지 못한다. 아니 쓸 수 없다. 우리가 마주치는 한국 사회의 일상은 구한말 조선 시대지, 21세기 유럽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은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제 3 세계 한국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만의 고유한 시각, 고유한 해법, 고유한 이론이 나와야 하지만, 인문학은 이미 수입 보따리 상이 되어버렸거나, 아니면 조선 시대의 성리학이나 또는 동양의 고전들을 들이대거나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나는 반대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걸 늘 확인받고 싶어하고, 나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이 세상 한 명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그리고 이게 현대인이다. 한병철 교수는 <<투명사회>>에서 노출된다는 것에 대한 폭력성을 지적하지만, 우리는 노출됨으로써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음을 그는 알지 못한다. 그 위안에 주목하지 않고, 왜 우리는 그 위안에 몸을 맡기게 되었는가를 묻지 않고 투명사회의 한 부분으로 지적하며 그것의 폐해만을 드러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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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df 2015.11.20 21:57 신고

    5번 홈*러스서 팔아서 마셔봤는데 예전 마신 이과두주같지 않게 공업용 독한 향이 심하더군요 잘 보고 갑니다

    • 지하련 2015.11.26 20:02 신고

      마트보다는 중국 식품 전문점이 좋은 것같아요. 이과두주도 여러 종류를 가져다놓고 좋은 술로 달라고 하면 주네요. 가격도 큰 병도 1병에 만원을 넘지 않네요. ~ ㅎㅎ

  2. 너무맛 2016.01.29 01:37 신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대해 알지 못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살아간다.

    너무 마음에 드는 말이네요.

    저것도 읽어봐야겠에요.

    • 지하련 2016.02.14 22:57 신고

      아.. 그러고 보니, <<투명사회>>는 읽다 말았어요. ㅜㅜ.. 너무 바빠지는 바람에. 이번 일이 끝나면 다 읽어야겠군요. ~



"옛날엔 그렇게 생각했죠.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면, 언젠간 떠나 버리겠죠? 그래서 모든게 허망해요.
전엔 사랑이란 말을 중시해서 말로 해야만 영원한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하든 안하든 차이가 없어요. 사랑 역시 변하니까요.
난 이겼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 


오늘 동사서독의 한 부분을 다시 보면서 내가 왜 화양연화를 두고 싸웠는지 이해했다. 동사서독 이후 왕가위의 영화 속에서 펑펑 울거나 삶과 집요하게 싸우는 이가 사라졌다. 그냥 스쳐지나간다. 이겨도 이기지 못한다. 결국 외롭게 죽어간다. 일대종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쓸쓸하다. 심지어 "난 쓸쓸하니(널 사랑해), 네가 잡아줘" 라고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십 수년 전 화양연화를 두고 영화지 기자와 말다툼을 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왜 그런 과민 반응을 보였을까 늘 궁금했는데, 오늘 벗 앞에서 우는 여인의 모습을 보니, 알겠다.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우린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 걸까. ...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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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선가, 누군가가 나에게 술 마신 걸 마치 전쟁에서 겪은 전투이냥 이야기한다며 지적했다. 하긴 그랬다. 그래, 지금도 그렇지. 

하지만 간이 좋지 않다는 건 가족을 제외한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보니, 1주일에 한 두 번으로 술자리를 줄여도 힘든 경우가 많아졌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것이라, 마음이, 인생이, 사랑이 답답할 때면 술이 생각난다. 





아무 말 없이 술잔만 봐라봐도 좋다. 이쁘다. 영롱하다.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의 입술같다. 앞으로 사랑하게 될 그녀의 볼같다. 


어쩌면 지금은 읽지 않는, 과거의 흔적, 상처, 씁쓸한 향기같은 추억,처럼 밀려든다. 어떤 술은. 






세월은 참 빨리 흐르고, 술맛은 예전만 못하다. 마음따라 술맛도 변하고 사랑따라 술잔도 바뀐다.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으며 벗들과 술 마신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거리기만 하다. 그렇게 술잔, 혹은 술 속으로 추억이 빠지고 마음이 빠진다. 





텅 빈 잔을 보면서 술에 대한 생각을 시작한다. 죽음과 가까워질 수록 내 눈도 침침해지고 내 마음도 어두워진다. 사랑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는다. 열정은 굳고 몸은 느릿느릿 앉아 쉴 수 있는 공원 벤치를 찾는다. 그리고 예고 없이 겨울은 올 것이다. 


... 내가 기억하고 나를 기억해주던 사람들이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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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빨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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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술에 취해 들어가던 날의 풍경. 꿈결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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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술은 참 오래된 벗.

에라주리즈 에스테이트 까베르네쇼비뇽. 

이 가격대(1만원 ~ 2만원 사이)에서 가장 탁월한 밸런스를 보여준다고 할까. 

가벼운 듯 하면서도 까쇼 특유의 향이 물씬 풍기는 와인. 

이 와인을 즐겨 마신 지도 벌써 10년. 

그 사이는 나는 이 와인을 참 많은 사람들과 마셨구나. 

아직 만나는 사람도 있고 연락이 끊어진 이도 있고. ... 

흐린 하늘의 춘천을, 사용하지도 않을 우산을 챙겨들고 갔다 돌아온 토요일 저녁, ... 

한없이 슬픈 <<화양연화>> OST를 들으며 ... 

참 오랜만에 혼자 술을 마신다. 

오마르 카이얌도 이랬을까. 

인생은 뭔지 모르지만, 술 맛은 알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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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지구의 종말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술자리가 모든 존재들과의 추억을 나누는 자리였으면, 이 한 잔의 술은 보다 아름다울 거예요."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 술자리. 아니, 모든 술자리에는 내일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술자리마다 화해하고, 포옹하며, 미안해하며, 실은 사랑했노라고 고백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내 상상 속에서. 


그렇게 취해간다. 


안경을 바꾸었다. 바꿀만한 사정이 있었고, 그 사정 속에서 안경은 바뀌었다. 아주 어렸을 때, 80년대 초반, 안경 쓴 아이들이 멋있어 보이는 바람에, 몇 명은 의도적으로 눈을 나쁘게 하는 행위를 했고 나도 그 부류에 속했다. 형편없는 유년기의 모험은 독서에 파묻힌 사춘기 시절 동안 자연스레 안경 렌즈를 두껍게 하였다. 


그렇게 사라져간다. 마음 속에서, 그리고 이 지구 위에서 저 먼 우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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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ky@maker.so 2013.08.17 05:15 신고

    저도 안경을 쓰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ㅎㅎㅎ

    • 지하련 2013.08.17 22:28 신고

      그래서 눈을 나쁘게 할 필요는 없죠. ㅋㅋ 그냥 쓰면 되는 걸요. 옛날엔 그걸 몰랐어요. ㅎㅎ



작년 연말 전직장 부서 회식 때 마셨던 와인이다.


그런데 올해 중순에 회사를 옮겼고 옮기자 마자 준비하던 일련의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한 탓에 연말 분위기는 무겁기만 하다. 그리고 대선 여론조사 결과는 너무 황당해서 과연 이 나라의 국민들은 도대체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가지고 있는가 의아스러울 정도이니, 나도 드디어 (이런저런 이유로) 심각하게 '외국 나가 살기'를 진지하게 고민한 첫 번째 해가 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일 수록 더욱더 생각나는 디오니소스의 유혹. 하지만 최근 들어 자주 기억이 끊어지고 나이든 내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은 27살 그 때 그 시절로 향하니, ... 여러모로 얼굴 들기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근사한 와인 만큼 인생의 위안도 드물 것이니, ... 이 블로그에 오는 이들과 함께 와인을 마셔도 좋으리라. 


작년 연말에 마셨던 와인에 대해 평하면서 올해 연말을 기대해보기로 하자.  



Chateau de Goelane  샤또 드 고엘란  


보르도 AOC 등급의 와인이다. 이 와인,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근사한 밸런스와 적절한 탄닌감, 그리고 풍성한 향은 연말 적절한 가격대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와인에 속할 것이다.


강남 신세계 백화점 와인샵에서 약 5만원 초반 가격으로 구입했으니, 이 가격대의 신대륙 와인보다 훨씬 낫다. 내가 워낙 구대륙 와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소 편파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카베르네 쇼비뇽, 멜롯, 카베르네 프랑을 블랜딩한 와인으로 수입사는 길진인터내셔널이다.

 


Lou's No 1 루스 넘버 원  


호주 와인이다. 카베르네 쇼비뇽 100%의 이 와인은 신대륙스러운 풍성함을 자랑하지만, 피니쉬는 약하고 여러 품종을 블랜딩한 와인이 주는 향미가 없다. 또한 구대륙 와인이 주는 깊고 향기로움이 덜하다.


그런데 가격은 사또 드 고엘란보다 다소 비싸니(7만원 대), 나는 또다시 보르드 와인을 주저없이 선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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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은 신선한 사과에 묻은 누런 빛깔 먼지 같았다. 그래서 그 사과가 누런 흙 알갱이로 가득했던 맑은 하늘 아래의, 어느 과수원에서 익숙한 손길의, 적당히 성의 없이 포장되어 배달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스테인리스 특유의 무심한 빛깔을 뽐내는 주방 앞의 아내 손길에 그 먼지는 씻겨져 흘러 내려갔다. 그렇게 어떤 기억들은 사라졌다.


문득 내가 나이 들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15세기 중세 서유럽이었으면, 이미 죽었을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한 편으론 감사하고 한 편으론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만한 깊이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한다. 


하지만 어떤 아픈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그저 시간의 틈에 끼어 오래되어 지쳐 잠들 뿐이다.그 잠든 모습을 스스로는 돌이켜보지 못하는 탓에, 예상치 못하는 사건들, 가령 거대한 도심의 새벽 거리에서 1980년대 후반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맡았던, 낡은 먼지 냄새같은 걸 느끼게 될 때, 불현듯 떠올라, 그 사이 힘들게 먹어온 나이를 무색케 만든다. 


너무 많은 생각은 정해져있는 일상의 행동마저 더디게 하고, 앞만 보고 향하던, 몇 분 전만 해도 냉정하게 빛나던 두 눈을 둔하게 하며, 축축하게 하며, 멍하게 만든다. 이 세상은, 저 우주는 내 앞에서 침묵으로 강요하고, 할 말 많던 나는 그 말들의 미로 속에 갇혀 혀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어느 목요일이 지나고, 라틴 풍으로 몸 단장을 한 '춘천 가는 기차'를 듣는다. 


아주 사소한 위안이 될테지. 혼자 술 마신 지도 참 오래 되었어. 음악 들으며... 



 나희경 - 춘천 가는 기차



나희경 - 흩어진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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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느티 2015.06.11 21:20 신고

    존 버거를 아시겠지요? 벤투의 스케치북이랑 책을 읽다가 안토넬로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검색하다가 여기에 닿았 습니다. 비슷한 시대를 비슷한 책을 읽으며 비슷한 음악을 들으며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읽던 책 놓아 두고 여러 글들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희경의 음악들에서 그만 왔다 간 것을 들키기로 합니다. 그대 내 맘에 들어 오면은, 나희경이 부른 그 노래. 강물처럼 그대 곁에 흐르리, 그 부분의 가사와 음색.
    세상에 진 게 아니라 세상 같은 거 더러워서 버린다고 했던 백석처럼 저는 십오년 전에 서울을 버리고 산골로 들어 왔습니다. 세상을 버리고 나니 살기 위해 또 다른 무엇을 선택해야 하긴 했지만 자본주의에 나를 상품으로 팔면서 사는 것보단 낫다고 아직은 제 선택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재미나게 읽을 글들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몇 몇 책들은 주문해 두었습니다. 이것 역시 감사!

    • 지하련 2015.06.13 00:52 신고

      '나를 상품으로' 만들어 팔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네요. 한 때 '사람은 상품이 아니다'라며 경멸하던 터라, ... 나이 들수록 세상의 무서움과 세상 사람들의 무책임함과 무관심함에 경악하고 있는데, 그러면 그럴 수록 세상에 무슨 미련을 가진 것인지, 더 악착같아지는 제 자신이 놀랍고 때로는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나희경, ... 보싸다방 노래를 듣고 찾아 링크를 걸어두었는데, 잊고 있던 이름이었네요. 요즘엔 1년이 수만년같고 어제 만난 사람도 기억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도시에서의 나이 들어감은, 나빠지는 건강만큼 핑계가 늘고 정겨운 술자리는 반대로 줄어드는 듯하여 슬프기만 합니다. 하긴 이런 거대한 도시에서 인간이 얼마나 오래 살았다고 익숙해지길 바라는 제 자신이 이상한 것이겠지요. 한국사람들은 이제 수십년밖에 되지 않았는걸요. 댓글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긴 댓글이 달리고 산골로 들어간 느티님을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버릴 수 있을 때 확실히 버려야 하는데, 저는 그러질 못했네요. ㅎㅎ ~



Tout irait mal, mais il y a le theatre! 세상은 엉망, 그러나 연극이 있으니!
- 장 지로두

하지만 나라면,

Tout irait mal, mais il y a le vin! 세상은 엉망, 그러나 술이 있으니!



올해 최초이자 마지막 송년 모임을 홍대에서 할 예정이다. 이런저런 모임은 놀랍고도 행복한 개인 사정으로 인해 취소하고 ~.



이런 음식과 함께...

저녁 7시부터 회사 부서 직원들과 함께 할 예정이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옆자리에서 인사라도 ~.~
이 글을 보게 될 제 친구분들께도 안부를~!!

장소는 홍대 티케(구 시루) http://map.naver.com/local/siteview.nhn?code=19867445 참조.

우리들의 친구 키에롭스키Kieslowski는 이런 말을 했다.

Les objets parlent plus que les mots. 사물은 낱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 Krzysztof Kieslowski, 'La double vie de Veronique'

하지만 나라면,

Le Vin parles plus que les mots. 포도주는 낱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 위 사진들은 아련한 옛 추억의 사진들이오니, 오늘 마시는 것으로 오해하시진 마시길~. 그리고 거의 1년만의 홍대 음주 외출이라, 이런 호들갑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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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자주, 곧잘, 심심치 않게, 흔하게, 우울해지곤 한다. 집 청소를 하지 못한지, 2주일 째. 냄비에 담긴 음식물은 미동도 없이 2주일 째 그대로 방치되었고, 금붕어들이 노는 어항의 물도 2주일 째, 그대로다. 일요일마다 배달되던 신문은 요금 미납으로 끊겼고 그 누구의 편지도 오지 않는 우편함에는 딱딱한 표정을 가진 고지서들만 쌓여가고 있다. 몇 주 전 사놓은 미국산 피노누아 와인은 어두운 찬장에서, 어떤 기분으로 무너져가고 있을 지.

다시 젊은 마음을 가지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오래된 친구들 얼굴 깊은 곳에서 나이를 느낄 때의, 그 참담함이란. 참 이뻤던 친구가 무표정한 시선으로, 이 세상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할 때면,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까마득한 후배들과 아직도 종종 말이 통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나이든 사람들 사이에 끼인 우리들이 힘없고 불쌍해보인다. 

이럴 때, 술은 참 좋은 벗이다. 한 번 마시기 시작하자, 멈춤이 없다. 



즐거운 음악과 청량감을 주는 술은 있지만, 나에게 기운을 줄 친구는 없다. 여자 후배들은 무섭고, 술 기운에 나를 제어하지 못한 채, 손이라도 잡으려고 하지 않을까 두렵고, 오랜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슬프고 종종 기운 빠지는 막다른 골목을 향해 있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갈까 궁리해보지만, 딱히 갈 만한 곳도, 가서 할 만한 생각이나 행위도 없다. 그저 지쳐가고 있을 뿐. 




이만큼 나이 들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쓸쓸하다고 투정만 부리는 내 마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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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 섭 2009.04.29 00:45 신고

    복에 겨워 저런 투정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이구 !!! ..세상이란 참 !

    나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이룰 수 잇어서
    원숭이 노릇이나 목소리 혹사, 참담지경의 조롱어린 수근거림 이러저런 꼴로 부터 놓여날 수 잇다면 저런 투정은 안 부린다, 절대로 안 부린다

    문화문명을 찾아서

    사람의 자취를 찾아서 -
    그게 실제 철학자나 예술가 일반이 아니라 누군가 고전명작 속의 창작자 였을지라도..
    특정 새의 이동경로나 이끼무리나 고사리숲을 찾아서 ...
    내 여행의 테마는 마르지 않을것 같다
    다만, 체력과 경비가 문제겠지...

    쳇 -
    여행은 그만 두고라도
    나는
    최소한의 내 공간을 갖고 싶고
    더 욕심을 내자면 한밤에도 질 좋은 오디오로 음악이나 듣고 싶다
    베토벤의 비창이 듣고 싶은 밤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은 지 벌써 2주가 지난 듯 하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여전히 쓸쓸하기만 한 술과 가까이 지내고 육체를 돌보지 않으며 넓은 방안의 먼지들과 둔탁해지는 영혼을 보며 안타까워만 할 뿐이다.

 가끔 만나게 되는 묘령의 아가씨에게 던지는 내 '가을의 잔잔한 물결'(波)은 번번히 우아하지 못한 몸짓을 보여주며 시간의 연기 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두운 미래 만큼이나 어두운 내 가슴의 그림자를 내가 어쩌지 못하는 까닭에, 어느 화요일 비 소리는 종종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준다.

  거의 10년만에 다시 본 로만 오팔카의 그림을 보고 너무 좋았다. 그러나 로만 오팔카보다, 이우환보다 귄터 워커의 작품이 나에게 압도적이었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둔탁한 운동의 두께 속으로 날카로운 소리를 집어넣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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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쉐아르 2008.05.14 02:25 신고

    저도 요즘 근근히 버티고 있습니다. 다른 분 블로그에 들어가 댓글 남길 엄두도 못내면서요 ㅡ.ㅡ;; 뭐 그럴때도 있는 거지요.

    잔잔한 물결이 안통하면... 강력한 태풍은 어떨까요? ^^;;

    예술을 보고 찡하는 그런 순간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정이 너무 무디어져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좋은 글, 감성 깊은 글은 저를 압도합니다. 지하련님의 글에서 그런 느낌 받을 때가 많습니다 ^^

    • 지하련 2008.05.14 15:52 신고

      '타이밍'이라는 단어만큼 '사랑'이라는 단어에 절실히 필요한 단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연애할 기회도 참 많았는데, 어찌 된 것이 내가 좋아하면 상대방이 싫고, 상대방이 좋아하면 내가 시큰둥하고 ...

      앗. 그리고 감사합니다. ^^;;

  2. wooyeons 2008.05.14 12:32 신고

    저두요. 저두요.
    지하련님의 글에서 그런 느낌 받을 때가 많아요.

    가을의 물결이 안되면 초여름의 물결이라도 보내보셔요. ^^;;;
    여자인 저도 여자의 마음을 모르겠는데 남자들이 여자를 알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3. wooyeons 2008.05.14 12:33 신고

    그리고.. 들어올 때마다 울리던 저 아래 음산한 음악이
    뒷페이지로 넘어간 것이 너무 기뻐요. -_-;;;

    • 지하련 2008.05.14 15:49 신고

      그 음악, 처음부터 끝까지(약 사오십분 정도) 들으면 엄청나게 좋습니다. LP로 가지고 있는데, ㅎㅎ, 아주 젊었던 때 엄청 들었던 음악이죠.

      하지만 저도 들어올 때마다 울려서 ㅡ_ㅡ;;; 스톱 버튼부터 눌렀습니다. ^^;

      아무래도 '연애의 기술'같은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ㅎㅎㅎ (하긴 읽어도 별 변화가 생기지 않을 듯합니다만.. 크~)

절망의 서울을 넘어, 술의 나라로 가서 "불끈" 희망의 불씨를 찾아 나오자. !!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생이란 가끔 말도 되지 않는 불가능에 도전할 때도 있다.

 

날이 추울 땐, 추운 것에만 신경을 썼는데, 요 며칠 따뜻해지니 여간 허한 것이 견디기 힘들 정도다.

허할 땐 술이 최고이지만, 몸의 상태가 예전만큼 되지 못해

요샌 포도주 일색이다.

 

하지만 포도주 경험이 늘어날수록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ㅡ_ㅡ;;;

돈을 거의 벌지 못하는 주제에 이래저래 고급 취향만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나의 미래를 참담하게 만든다.


 

작년말부터 마신 술들이다. 이제 술을 마실 때마다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해둘 생각이다.

술도 까다롭게 골라, 좋게 마시면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터인데

그간 아무렇게나 마신 듯하다. 이런 정리가 다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일반적인 맛이었다. 다소 가늘고 딱딱한 느낌이 있었다. 대신 시원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감동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정말 맛있는 포도주였다. 입에 넣자 입 안 구석구석 와인이 착 달라붙어 부드럽게 넘어갔다. 끝도 좋았다. 기억해두었다가 마실 만하다. 그런데 꽤 비싸지 않을까. 와인 전문 매장 같은 곳에서 구할 수 있을 듯 하다.

 


 




이걸 마시고 있을 때는 술에 취해있었다. 그래서 맛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소 드라이했던 것같은데,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던 것같다.

 

 





이마트에서 5천원 주고 산 와인이다. 아직 개봉하지 않았다.

 

 



 


이것도 하지 개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꽤 맛있을 것같은 느낌이. ; ) 

 




포르투칼산 와인이다. 알콜 도수는 20도. 와인 치고 꽤 독한 술이다. 시원하게 마시면 일품이다.

 


 

 



 


랭스에서 나온 샴페인이다. 차게 마셔야 하는데, 그냥 뜯어서 바로 마시는 바람에 뭐라 평하기가 어렵다. 또 샴페인 종류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건 정말 맛있는 술이었다. 아일랜드산 위스키인데. 아마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그 명성을 들어보았으리라 생각된다. 마시면 그냥 한 병을 다 비우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향이 뛰어났다.

 

 




 

얼굴이 어둡게 나온 내 사진이다. 얼굴 공개를 꺼리는 까닭에게, 선뜻 이 사진을 올린다. 이런 모자가 쓰고 다니면 어울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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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근원수필 (보급판) - 10점
김용준 지음/열화당


새 근원수필(近園隨筆)
(근원 김용준 전집 1권), 열화당



며칠이고 조용히 앉아 길게 읽을 책을 띄엄띄엄 산만하게 읽은 탓일까, 기억나는 것이라곤 오늘 읽은 술 이야기 밖에 없다.


“예술가의 특성이란 대개 애주와 방만함과 세사(世事)에 등한한 것쯤인데, 이러한 애주와 방만함과 세사에 등한한 기질이 없고서는 흔히 그 작품이 또한 자유롭고 대담하게 방일(放逸)한 기개를 갖추기 어려운 것이다.”

“술에 의하여 예술가의 감정이 정화되고, 창작심이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은 예술가에 있어 한낱 지대(至大)의 기쁨이 아니 될 수 없을 것이다.”
(199쪽)


내가 기억나는 문장이 이렇다 보니, 인상적이었던 단어 또한 매화음(梅花飮)이었다. 뜻은 매화가 핌을 기뻐하여 베푸는 酒宴이라고 하니, 요즘 우리가 얼마나 세파에 찌들었는지를 알 수 있는 듯하다. 술이란 이렇게 자연의 기쁨에 취해 마셔야하는 것인데.

옛날에는 예술가의 가난은 응당 그러한 것이라 괴념치 않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한 듯하여 슬프다. 나 또한 가난이 두려워하여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


“나에겐 H란 친구가 있소. H는 긴자 통에서 전차를 잡아타는 어떤 양장 미인의 각선의 아름다움에 홀려서 단번에 쫓아가서 그 여성의 다리에다 키스를 하였다 하오. H는 새로 닦은 구두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면 그 매력에 취해서 때때로 핥아 보기 좋아하는 버릇이 있는 친구이지만, 이것 역시 그 신비스런 감각의 미를 느끼고자 함이 아니겠소?(전날 나는 H의 이 사건을 잡지에 발표하였다가 H에게 단단히 욕을 먹은 일이 있으면서도 지금 또 쓰는 것이요마는)
K란 친구는 미술학교 재학시대에 술에 취하여 학교 교실 벽을 뜯어 놓았고, N이란 친구는 카페에서 나체로 춤을 추었으며, R이란 친구는 술에 취하여 긴자 네거리에서 네 활개를 벌리고 춤을 추다가 신문사 카메라에 수용되었고, 나 역시 한때는 술을 먹고 ‘아바레루’(*난폭한 행동을 하다라는 일본어)한 죄로 나으리님 댁 뒷방 신세를 족히 끼친 일도 있고, 흥에 겨우면 길거리에 누워서 오고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면서 콧노래를 불러 본 적도 있으며, P란 친구는 친구들이 술을 먹으러 가잔다고 너무 좋아서 급히 내려오려는 마음에 이층 꼭대기에서 그대로 내려 뛰다가 전치 2주간을 요하는 중상을 입은 일도 있소”
(142쪽)


그러고 보면 요즘 예술 한다는 친구들은 술을 적게 하는 듯하다. 아니면 내가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러한 것일까. 또한 돈을 벌기 위해 예술을 하는 이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뒤샹의 ‘샘’을 배웠으면서도 돈과 권력에 종속되어가는 이들을 보면 속된 말로 ‘뚜껑이 열린다’

이런 경우에 최북(催北)의 일화는 시사하는 점이 있다.


“최북은 언제든지 유리 안경을 끼고 다닌 애꾸였다. 일찍이 권세 있는 사람이 북에게 그림을 청하였을 때 응하지 아니하니, 그가 세도(勢道)로써 협박하므로 북이 대노하여 “내 몸은 오직 나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하고 눈을 찔러 한 편이 멀게 된 까닭이었다.”
(230쪽)


오원 장승업에 대한 글도 있는데 오원은,

“더구나 그림을 그릴 동안은 반드시 술이 옆에 놓여야 하고, 술이 놓였으면 반드시 미인이 그 옆에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243쪽)


라고 하니, 부럽기까지 하다.

내 정신이 천하고 내 자유가 박하여 읽는 내내 즐거웠지만, 읽고 난 다음 슬퍼지는 게 어쩔 수 없는 내 신세를 한탄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어제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일요일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싶어지니, 난 예술적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하고 술을 좋아하는 것만 타고 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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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제목에 혹해서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의 경우도 그러하다. 만천원이나 하는 이 책을 사다니. 지금 후회하고 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작가들과 많은 인용으로 가득 채우고도 형편없는 책이 될 수도 있다. 힘들게 내린 결론이 '술을 마시지 말자'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75년생인 글쓴이는 술을 취해서도 소설이나 시를 적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적당량의 음주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적당량이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경우에는 몇 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사불성이 되어선 곤란하다. 그러나 과장하기 좋아하는 작가들은 엄청 술을 마시면서 창작을 했네라고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긴장한 정신 아래에서 글을 썼을 것이다. 뭐, 초현실주의자들이라면 상황이 틀리겠지만.

이런 책들, 제목은 그럴싸하지만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이런 책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역자도 그런 사실을 알았던 것일까, 엄청 많은 역주들과 사진으로 도배를 해놓았다.(그나마 이거라도 있어서 지루하지는 않다) 하지만 때때로 보이는 자의적인 문구는 너무 눈에 거슬린다. 가령 뒤라스. 왜 뒤라스가 영화 <연인>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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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바이야트 - 10점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지음/민음사





The Rubaiyat of Omar Khayyam
E. Pitzgerald.
이상옥 옮김, 민음사 세계시인선 12







오, 지옥의 위협이여, 천국의 기약이여!
한 가지는 확실하오, 인생은 덧없는 것
이 한 가지 분명하고, 나머지는 거짓일세
제 아무리 고운 꽃도 지고 나면 그만이니
- 63편




19세기에 번역된 11세기, 또는 12세기 아랍의 시집. 그러고 보면 거의 천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 옛날, 같은 하늘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법한 곳의 시인의 시집이 후에 유럽에서 번역되어 나왔을 때, 사람들이 보였을 감동이나 열광을 생각을 해보면, 이 세계가 아무리 많이 변했다고들 하나, 이 인생들의 본질적인 영역의 변화는 없었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것들이 옛 것과 비교해 가치 있다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현대인들의 대부분이 지옥도 천국도 없다고 믿는 이유는, 적어도 학교에서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고작 몇 백년 밖에 되지 않은 서양 근대의 산물이며 그렇게 생각해야만 명석 판명한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 지옥이나 천국이 없다고 합리적으로 논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논증불가능하기 때문에 잠시 고개를 돌리고 있을 뿐. 어찌 알겠는가. 지옥이 있고 천국이 있을지.

하지만 지옥이 있든 천국이 있든, 11세기 아랍 사람이나 21세기 동아시아사람이나 한결같이 인생은 덧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슬프다, 장미꽃 시들면 이 봄도 사라지고
젊음의 향내 짙은 책장도 덮어야지!
나뭇가지 속에서 고이 울던 나이팅게일
어디서 날아와서 어디로 갔나
- 96편 



인생은 참 덧없다. 청춘은 한순간이고 시간이 지나고 얼굴의 주름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공포스러운 것으로 변하고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는 생각하는 나 속으로 무너져 내린다. 슬프다. 대학 시절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던 이들은 이 도시 어느 구석진 곳에서 세상의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나타나 도시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젊음의 향내는 책 속에서 잠들어있고 해마다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허무주의란 그렇게 특별난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가 문제일 뿐. 세상이야 원래 허무했던 것이고 인생사가 다 그렇고 그런 것이었고 생의 가치라든가 인생의 의미라든가 하는 것도 다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현대인들은 나면서부터 알고 있는 듯하다.

영원한 건 없고 사랑은 언제나 덧없이 왔다가 덧없이 사라진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 시집을 두고 연구논문이나 책들을 펴내었을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배운 것일까. 이 시집을 읽고서.


생사의 갈림이야 수학으로 풀어보고
인간의 영고성쇠(영고성쇠) 논리로써 따지거니
헤아려 보고자 한 모든 것 중에서도
깊은 이치 터득한 건 술의 묘미뿐이로다
- 56편 



이제 남은 건 술뿐이구나. 내일은 오지 않을 것이고 가슴 아팠던 어제는 이미 지나갔으니, 오늘은 맘을 놓고 즐겨야겠구나. 아, 텅 빈 주머니가 초라하게 하지만, 그런들 어떠리오.


죽음의 술잔 든 저승의 천사
강가에 앉아 있는 그대 찾아와
그대의 영혼에게 잔을 권하면
사양 말고 들이키오, 그 한잔 술을
- 43편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들 중의 하나. 몇몇 위대한 예술가들이 가르쳐주는 방법. 생의 허무를 긍정하고 그것을 위해 한 잔 술을 들이키는 것. 희망이니 가치니 의미니 하는, 이런 쓰레기 같은 것들은 잠시 손 끝에서 놓고 그 빈 손으로 술잔을 쥐고 춤을 추며... ...


천국이 별것인가, 욕망 충족의 환영이요
지옥이 별것인가, 어둠 속에 던져진
불붙은 영혼의 그림자일 뿐, 우리 모두
그 어둠에서 나와 다시 거기로 돌아갈 몸
- 67편 



덧없이 흘러가는 사랑을 잡으며 흘러갈 사랑을 노래하자.


남몰래 속삭이며 대답하는 술잔이여
그대 또한 한때는 살아서 마셨으리
고분고분 입맞춤을 받아주는 입술이여
얼마나 많은 입맞춤 주고 또한 받았는가.
- 3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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