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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도중, 베로니카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닦아 준다. 그리고 그 수건 위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새겨진다. 아래 작품은 그 기적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형적인 이콘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비잔틴의 이콘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스 태생의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르네상스 후기(매너리즘)의 화풍을 배웠고 이후 스페인 톨레도로 가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는다. 




엘 그레코, <<수건을 든 베로니카>>, 캔버스에 유채, 84 cm * 91 cm, 1580년경, 톨레도, 산타쿠루즈 성당



슬픔에 젖은 베로니카가 수건을 펼쳐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줄 때, 어떤 비장미까지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은 수건과 뒤 배경 사이의 묘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보면 아래와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 사진 한 장을 더 올린다. 무표정해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슬픔을 억누르는 듯한 베로니카, 두 손 사이의 수건, 주름진 천 위로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16세기 후반 최고의 예술가로 추앙받는 엘 그레코. 이 작품은 보면 볼 수록 빨려든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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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to-day the struggle."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 구절이라는 생각에 한글로 옮겼다. 역시 영시는 한글로 옮길 수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뜻을 통하게 옮길 수 있지만, 영어 고유의 맛을 옮길 순 없었다. 옮긴다면 아예 새로 창작한다는 기분으로 옮겨야 하고, 이럴 땐 번역이 아니다. 


아는 지 모르겠지만, 스페인은 20세기 대부분은 프랑코 독재 정권의 시대였고, 20세기 초반 무수한 유럽 지식인들이 '국제 여단Brigadas Internacionales)'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게 된다. 소설가이자 프랑스 초대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 말로도 이 전쟁에 참여하였고, 오든(W.H.Auden)은 구구절절하게 스페인 내전 참전을 독려하는 시를 적었는데, 바로 아래 <스페인 1937>라는 시다. 


2014년, 한국, 서울 속에서 살면서, 개인적으로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들었고 견디기 어려웠지만, 사회적으로는, 차마 내 개인적 삶이 엉망이 되었어요,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그런데 조용하기만 하다. 

이 기묘한 침묵은 무엇일까?


오든은 이야기한다. '오늘은 투쟁이라네(to-day the struggle)' 

내일은 2015년,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struggle일 것이다. 

분명한 목적이 있고 가치가 있는, 그리고 그것을 향한 전력투구!  



** 




Spain 1937 



                   - W.H.Auden



Yesterday all the past. The language of size

Spreading to China along the trade-routes; the diffusion

Of the counting-frame and the cromlech;

Yesterday the shadow-reckoning in the sunny climates. 


모든 과거가 있었던 어제. 크기를 나타내는 언어는

무역로를 따라 중국으로 퍼져나가고; 확산되는

주판 계산기와 고인돌. 

어제 태양이 비치는 세월 속에 간접계산법이 있었네.



Yesterday the assessment of insurance by cards

The divination of water; yesterday the invention

Of cart-wheels and clocks, the taming of 

Horses. Yesterday the bustling world of the navigators.


어제 서류를 통한 보험이 있었고 

해로를 예측하고; 어제 발명되었네

수레바퀴들과 시계, 길들인

말들. 어제 항해자들로 북적거렸던 세계가 있었지.



Yesterday the abolition of fairies and giants,

The fortress like a motionless eagle eyeing the valley.

The chapel built in the forest; 

Yesterday the carving of angels and alarming gargoyles.


어제 요정들과 거인들이 사라졌고

그 요새는 마치 계곡을 향한 독수리의 움직이지 않는 눈짓 같았지. 

숲 속에 지어진 성당; 

어제 천사들의 조각들과 불안하게 만들던 괴물석상들이 있었네



The trial of heretics among the columns of stones;

Yesterday the theological feuds in the taverns 

And the miraculous cure at the fountain;

Yesterday the Sabbath of witches; but to-day the struggle. 


이단자들의 재판이 돌기둥 가운데서 열리고;

어제 선술집에서 신학에 대한 논쟁이 있었네.

그리고 수원지(水源地)에서의 기적적인 치료

어제 마녀들의 연회가 있었지;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Yesterday the installation of dynmos and turbines,

The construction of railways in the colonial desert;

Yesterday the classic lecture 

On the origin of Mankind. But to-day the struggle. 


어제 발전기와 터빈의 설치가 있었고,

식민지의 사막에 철도 공사가 있었네; 

어제 그 최고의 강의에선

인류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했지;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Yesterday the belief in the absolute value of Greek,

The fall of the curtain upon the death of a hero;

Yesterday the prayer to the sunset,

And the adoration of madmen. But to-day the struggle.


어제 그리스의 고귀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

영웅의 죽음 위로 내려오는 커튼. 

어제 일몰에 대한 기도가 있었네

그리고 미친 자들의 찬미.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As the poet whispers, startled among the pines,

Or, where the loose waterfall sings, compact, or upright 

On the crag by the leaning tower; 

“Oh my vision. O send me the luck of the sailor.” 


시인이 속삭일 때, 소나무들 사이에서 깜짝 놀라,  

또는, 한가한 폭포가 노래하는 곳에서, 긴장해서, 또는 서서 

기울어지는 탑 옆 바위 위에

오 나의 비전이여, 오 나에게 선원의 운명을 다오 



And the investigator peers through his instruments

At the inhuman provinces, the virile bacillus

Or enormous Jupiter finished 

“But the lives of my friends. I inquire. I inquire.”


그리고 탐구자는 그의 기구를 들여다 보며

인간 밖의 영역에서, 강력한 세균, 

또는 이미 탐구가 끝난 거대한 목성 

“그러나 내 벗들의 삶들. 나는 묻는다, 나는 묻는다.”



And the poor in their fireless lodgings, dropping the sheets

Of the evening paper: “Our day is our loss, O show us 

History the operator, the 

Organiser, Time the refreshing river.” 


그리고 가난한 이들은 한 점 불도 없는 셋방에서, 종이 한 장을 떨어뜨리네

석간 신문 속에서: “우리의 날은 우리의 상실, 오, 우리에게 보여주시오 

역사라는 운행자여, 

조직자여, 강물을 끊임없이 정화시키는 시간이여.” 



And the nations combine each cry, invoking the life

That shapes the individual belly and orders

The private nocturnal terror; 

“Did you not found the city state of the sponge,


그리고 민중들은 그들 각자의 비명을 하나로 묶고, 그들의 생명을 불러일으키며 

각자의 배를 만들며 행하네.

한밤 중의 은밀한 테러를

“생명이여, 그대는 해면동물의 도시 국가를 찾았는가?  



Raise the vast military empires of the shark 

And the tiger, establish the robin’s plucky canton?

Intervene. O descend as a dove or 

A furious papa or a mild engineer, but descend.” 


거대한 군사 제국을 성장시켰는가? 상어와 

호랑이의. 세웠는가? 울새의 용기 있는 작은 지역을 

개입하라. 오 비둘기 한 마리처럼 내려가라, 또는

화가 난 교황, 또는 온화한 기술자처럼, 그러나 내려가라.”



And the life, if it answers at all, replies from the heart

And the eyes and the lungs, from the shops and the squares of the city:

"O no, I am not the Mover;

Not to-day; not to you. To you, I'm the


그리고 생명이여, 만약 대답한다면, 대답하거라, 심장으로부터

그리고 눈동자와 허파로부터, 가게들과 그 도시의 광장으로부터: 

“오, 아니구나. 나는 원동력이 아니다;

오늘도 아니고, 네겐 아니다. 너에게, 나는 그저 



Yes-man, the bar-companion, the easily-duped;

I am whatever you do. I am your vow to be

Good, your humorous story.

I am your business voice. I am your marriage.


예스맨이고, 술집 친구이고 쉽게 속는 사람이라네. 

나는 그대가 무엇을 하던지, 나는 당신의 맹세입니다,

좋게 되기 위한. 당신의 유머러스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당신의 사업 목소리이며 당신의 배우자입니다.  



What's your proposal? To build the Just City? I will.

I agree. Or is it the suicide pact, the romantic

Death? Very well, I accept, for

I am your choice, your decision. Yes, I am Spain." 

 

당신의 제안은 무엇인가요? 정의로운 도시를 세우는 것인가요? 나는 할 것입니다.

나는 동의합니다. 또는 동반자살을 하실 건가요? 그 낭만적인

죽음? 정말 그럼, 저는 동의 합니다. 왜냐면

나는 당신의 선택이며, 당신의 결정입니다. 그래요. 저는 스페인입니다.” 



Many have heard it on remote peninsulas,

On sleepy plains, in the aberrant fisherman's islands,

Or the corrupt heart of the city,

Have heard and migrated like gulls or the seeds of a flower.


많은 이들이 머나먼 반도에서 그것을 들었네. 

나른한 평원 위에서, 비정상적인 선원들의 섬나라에서, 

또는 도시의 타락한 심장부에서

갈매기떼나 꽃씨들과 같이 듣고 이주해오는구나. 



They clung like burr to the long expresses that lurch

Through the unjust lands, through the night, through the alpine tunnel;

They floated over the oceans;

They walked the passes. They came to present their lives.


그들은 가시 달린 열매들처럼 달라붙어 있구나, 기나긴 급행열차에 달라붙어 휘청거리며,

정의롭지 못한 땅을 지나며, 밤을 통과하며, 알프스 산맥의 터널을 지나며; 

그들은 대양들을 떠다녔다

그들은 산길을 걸어갔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보여주며 갔다. 



On that arid square, that fragment nipped off from hot

Africa, soldered so crudely to inventive Europe,

On that tableland scored by rivers,

Our fever’s menacing shapes are precise and alive.


그 불모의 사각형 위에, 뜨거운 아프리카에서 떼어낸 조각, 

납땜질된, 창의적인 유럽에 대강 납땜질되어 붙은

강줄기에 의해 금이 그인 대지 위에 

우리들의 열병의 위협적인 형체들은 명확하고 생생하다.



To-morrow, perhaps, the future; the research on fatigue

And the movements of packers; the gradual exploring of all the

Octaves of radiation;

To-morrow the enlarging of consciousness by diet and breathing.


내일은, 아마도, 미래가 있겠지; 피곤에 대한 연구가 있고 

짐 꾸린 사람들의 움직임들이 있고; 

빛의 모든 옥타브에 대한 점증적인 탐험이 있고 

내일은 식이요법과 호흡작용에 의한 의식의 확장이 있을 것이네. 



To-morrow the rediscovery of romantic love,

The photographing of ravens; all the fun under

Liberty's masterful shadow;

To-morrow the hour of the pageant-master and the musician,


내일은 낭만적 사랑의 재발견이 있고 

까마귀 떼의 사진촬영이 있고; 모든 즐거운 것들이 

자유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있을 것이라네 

내일은 화려한 무대의 연출자와 음악가의 시간이 있을 것이네. 



To-morrow for the young the poets exploding like bombs,

The walks by the lake, the winter of perfect communion;

To-morrow the bicycle races

Through the suburbs on summer evenings: But to-day the struggle.


내일은 젊은 시인들이 폭탄처럼 터져 시를 쓸 것이라네.

호수를 따라 걸으며, 완전한 결합을 이룬 겨울, 

내일은 자전거 경주가 

여름 저녁 교외를 따라 있을 것이네;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To-day the inevitable increase in the chances of death;

The conscious acceptance of guilt in the necessary murder;

To-day the expending of powers

On the flat ephemeral pamphlet and the boring meeting.


오늘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확률이 증가하고 있다네.

살인의 필요함, 그 범죄를 알면서 받아들여야 하지.

오늘, 우리의 힘은 빠지고 있지.

맥없고 덧없는 팜플렛과 지루한 회합 위에서



To-day the makeshift consolations: the shared cigarette;

The cards in the candle-lit barn, and the scraping concert,

The masculine jokes; today the

Fumbled and unsatisfactory embrace before hurting.


오늘 일시적인 위안들이 있지; 나누어 피는 담배;

촛불로 밝힌 곳간에서의 카드놀이, 그리고 삐걱대는 음악회,

사내들의 걸쭉한 농담; 오늘은 

전투 앞의 서투르고 불만족스러운 포옹이 있네



The stars are dead; the animals will not look:

We are left alone with our day, and the time is short and

History to the defeated

May say Alas but cannot help nor pardon.


별들은 죽었네; 동물들은 쳐다보지 않겠지.

우리들은 우리들의 시대에 홀로 남겨졌지, 시간은 짧고

역사는 패배한 자들에게 

유감이라곤 하진 않겠지만, 도움도 용서도 없을 테지. 




** 




W. H. Auden(1907~1973)의 시 <Spain 1937>의 번역으로 원문은 아래와 같다. 원시는 1937년 <Spain>으로 발표하였으나, 1940년 Auden이 출판한 <<Another Time>>에서 <Spain 1937>로 제목을 바꾸고 일부 내용을 삭제하고 수정하여 실었다. 위키피디아의 <Spain(Auden)> 항목에 따르면, 후에 그는 작품 선집(his collected editions)에서는 이 작품을, 결코 믿지 않았던(never believed) 정치적 견해가, 그의 생각에는 수사적으로 효과적으로 표현된 “정직하지 못한”(dishonest) 시로 여겨 거부했다고 한다. 


이 시의 원문은 한국방송통신대학(Korea National Open University) 영어영문학과 4학년 전공수업교재인 <<영미시 British and American poetry>>(김문수, 이두진, 이철 공저)에서 옮겼으며, 번역은 교재의 주석, 김문수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참고하여 번역하였다. 



W.H. Auden

by Cecil Beaton

vintage bromide print on white card mount, 1930

9 1/2 in. x 7 5/8 in. (240 mm x 195 mm)

Given by Cecil Beaton, 1968

http://www.npg.org.uk/collections/search/portrait/mw18383/WH-Au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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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상냥한 오월의 바람이 녹색 이파리 끝에 닿자, 이미 무성해진 아카시아 잎들이 놀라며, 스치는 바람에게 지금 칠월이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반팔 차림의 행인은 영 어색하고 고민스러운 땀을 연신 손등으로 닦아내며, 건조한 거리를 배회하고, 길가의 주점은 테이블을 밖으로 꺼내며, 다가올 어지러운 마음의 밤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이야기했지만,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2012년 5월 어느 날, 그 누구도 듣지 않고 말만 했다. 말하는 위안이 지구를 뒤덮었다. 


아스팔트 아래 아카시아 나무 뿌리가 바람에 이야기를 건네었지만, 땅 위와 아래는 서로 교통이 금지되었고, 학자들은 그것을 모더니티로 담론화시켰다. 


 


(이제서야 로르카의 시가 읽히다니... 1996년도에 산 시집인데..)




연 가 





내 입맞춤은

깊이 틈새 벌린 석류,

네 입술은 

종이 장미였다네.


눈 덮인 들녘 땅.


내 양손은 

모루를 향한 무쇠;

네 육신은 

종소리 울리는 낙조였다네.


눈 덮인 들녘 땅.


구멍난 푸른 빛 해골 속에

종유석은 

사랑하는 당신 모습을 만들었다네.


눈 덮인 들녘 땅.


철없던 내 꿈들은

곰팡이가 가득 피고,

솔로몬 같은 내 고통은

달에까지 사무쳤다네.


눈 덮인 들녘 땅.


지금 나는 나의

사랑과 나의 꿈을

정상을 향하며

신중히 길들이네

(눈 없는 어린 말들)


눈 덮인 들녘 땅. 


- 가르시아 로르카, 1921년 (김현창 옮김, 청하,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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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과 풍경 - 10점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지음, 엄지영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인상과 풍경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지음), 엄지영(옮김), 펭귄 클래식


독자 제위(諸位). 여러분이 이 책을 덮는 순간 안개와도 같은 우수(憂愁)가 마음속을 뒤덮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책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어떻게 쓸쓸한 색채를 띠며 우울한 풍경으로 변해 가는지 보게 될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지나가는 모든 장면들은 추억과 풍경,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나의 인상(印象)이다. 아마 현실이 눈 덮인 하얀 세상처럼 우리 앞에 분명히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 마음속에서 열정이 분출되기 시작하면, 환상은 이 세상에 영혼의 불을 지펴 작은 것들을 크게, 추한 것들을 고결하게 만든다. 마치 보름달의 빛이 들판으로 번져 나갈 때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 영혼 속에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9쪽)



참, 질투심 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1898년에 태어난 로르카는 정확하게 20년 후인 1918년에 최초의 산문집, ‘인상과 풍경’을 낸다. 그리고 위의 문장들은 그 산문집의 서문의 시작이다. 나는 자주 젊음의 낮고 우울하지만 흔들리면서 뜨거운 감성과 만날 때 전율을 느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개들이 애절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애처로운 탄식처럼 들리던 그 소리는 한밤의 정적 속에서 예언자의 목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개들은 주어진 모습과 운명을 슬퍼하며 누군가에게 소리쳐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에서 솟아 나온 울분의 덩어리 같은 소리가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두려움을 흔들어 깨우자, 온몸에 전율이 지나갔다. 그 울부짖음은 마치, 여성스럽고 낭만적인 달빛이 별들 사이로 은은히 흐르는 무대의 비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독백처럼 들렸다. 한없는 슬픔에 취해 버린 영혼의 통곡, 대답 없는 냉정한 영혼을 향해 던지는 물음, 시름에 잠긴 구슬픈 화음의 노래, 동굴 속에 끝없이 메아리치는 섬뜩한 비명, 성경에나 나올 법한 음산한 저주,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단테풍의 화음(和音), 사유하는 존재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징의 카오스... ... 저 음산한 소리를 듣자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75쪽)



이 글은 이 책이 있음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그 어떤 표현이 더 필요할까). 혹자들이 보기엔 얇은 감상들로만 치장된 이 산문집에 내가 감동받는 것을 의아해 할지도 모르리라. 그러나 문장 깊은 곳에 숨겨지는 뜨거운 우울은 젊은 로르카가 살아가게 될 20세기 초반의 격변을, 그의 생각과 행동을, 그의 운명을 짐작케 했다. 그의 언어는 슬펐지만, 투명하고 아름다웠고 조용했지만, 격렬했다.


침묵은 자신만의 음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본질적으로 침묵의 음악이다...... 두렵기 그지없는 그 문제를 우리는 풀어야만 한다. 우리의 영혼은 찬란히 빛나는 들판 속으로 흐르는 고독을 느낀다. 상상 속에 펼쳐진 붉은 길을 따라 산발한 여인들이 지나간다. 그네들은 우리를 향해 미소 짓는다. 검은 입 속에서 그녀들은 우리의 영혼이 되고, 우리는 그 영혼을 따라 부으며, 언제 깨질지 모르는 꿈속의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미소 짓는다.(217쪽)



내가 이 책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찬사는, 끊임없이 이 책을 읽고 싶다는 것이다. 어느 덧 마흔을 향해 가는 내가, 어느 새 잃어버리고 있는 젊음 날의 뜨거운 우울을 이 책이 다시 가져다 줄 지도 모르는 희망을 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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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스꾸알 두아르떼의 가정

카밀로 호세 셀라(Camilo Jose Cela) 지음, 
김충식 옮김, 예지각, 1989년 초판.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만 유독 되지 않는다는 기분이, 그런 경험이 계속 쌓여져갈 때,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세상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쌓여져갈 때, 그것을 ‘운명’ 탓으로, ‘팔자’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축복받을 일인가. 이제 ‘운명’대로, ‘팔자’대로 살면 그 뿐이다. 헛된 희망을 꾸지 말고 그저 원래 나는 불행하게 태어났으며 되는 일이란 없으니, 그저 그렇게 살면 그 뿐이다. 그리고 저 멀리서 ‘운명’와 ‘팔자’를 다스리고 있다는 초월적 실체에 대한 경배를 시작하면 된다. 점쟁이 집에 자주 가고 부적 붙이고 굿도 하고 안 다니던 절에도 나가고 교회도 나가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 그런 주어진 대로 살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행이 일어난다면, 유독 나에게만 안 좋은 일이 연거푸 생긴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카밀로 호세 셀라의 ‘빠스꾸알’은 자신의 어머니를 난도질해버린다.

선생님, 저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나쁜 사람이 되었을 뿐입니다.
- 8쪽


소설의 시작은 밋밋하고 도대체 왜 이 사내는 이런 말을 소설의 처음부터 하고 있는 걸까 하고 의아해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이 짧은 시작은 그 무수한 현대 소설들 중 가장 멋진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짧은 문장 속에서 빠스꾸알이라는 이 사내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분노, 사랑, 증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요즘의 꼬마 아이들마저도 세상은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이며 되먹지 못한 곳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제 ‘세상탓’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제 세상에 ‘변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세상의 순리대로 살아갈 뿐이다. 나의 태생, 배경, 학력 등으로 내 인생은 정해져 버렸으며 그냥 여기에 만족하고 살아가면 그 뿐이다.

하지만 빠스꾸알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용감하게도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는 전적으로 다른 인간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던 행복은 아주 짧은 순간 뿐이었고 연거푸 불행이 이어진다. 더구나 그 불행에 대한 해결책이 그에겐 없었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할 뿐. 태어날 아이가 죽어 나오고 겨우 태어난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리고 사랑하는 아내는 다른 남자의, 자신의 여동생과 살고 있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게 되고. 빠스꾸알에게는 평범한 삶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천연덕스럽게 잉태하곤 그 아이를 죽게 내버려둔 그의 어머니나 술만 마시면 몽둥이질을 해대는 그의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빠스꾸알. 하지만 그는 끝내 그의 어머니를 살해한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죽은 지 오래.

세상에 진리가 있느니, 신의 밝은 빛이 지상에 당도한다느니, 선한 신이 있다느니 하는, 너무 듣기 좋아,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다 날 지경인 그런 말들은, 불행하게도 빠스꾸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정말 다행스런 일은 그런 말을 지껄이는 이들에게 빠스꾸알에게서 일어났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누구나 똑같은 가죽을 뒤집어쓰고 어머니 뱃속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운명은 인간들이 마치 밀랍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죽음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여러 갈래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즐거워합니다. 고운 꽃과 풀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꽃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엉겅퀴와 선인장이 무성한 험난한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꽃길을 걷는 이는 평화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기쁨을 맛보면서 천진난만한 얼굴로 행복에 겨워 미소 짓습니다.
그러나 엉겅퀴와 가시밭길을 걷는 자들은 광야의 폭염으로 괴로워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험상궂은 우거지상을 합니다. 몸에 화장품을 바르고 향수를 뿌리는 것과 지울 수 없는 문신을 넣는 것은 차이가 큽니다.
- 8쪽에서 9쪽.


26살의 카밀로 호세 셀라가 1942년에 발표한 이 데뷔소설은 20세기 이후 모든 사람들이 부딪히게 되는 어떤 실존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빠스꾸알이라는 인물을 통해 역설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운명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이냐며.


'작가에 대하여'

 카밀로 호세 셀라(1916~2002) 

2권의 소설이 번역되었으나, 이젠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비극성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며, 실존적 삶에 물음표를 던지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소설가들 중의 한 명이다.  

'빠스쿠알 두아르떼의 가족', 그리고 '벌집'이 번역되어있으니, 헌책방 어딘가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1989년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스페인 마드리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을 정도다.


민음사에서 새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 10점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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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씨의 정원

일러스트: 메테오 페리코니 보르헤스 씨의 정원 부에노스 아이레스, 레꼴레타 인근의 어느 집에는 이중의 특권을 가진 창문이 있다. 그 창문에서는 한 눈에 하늘이 들어오고, 이웃한.....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

보이지 않는 용 The Invisible Dragon: Essays on Beauty 데이브 하키(지음), 박대정(옮김), 마음산책, 2011년 몇 번 읽다가 만 책이다. 구.....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

보들레르의 수첩,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년 1846년 산문과 1863년 산문이 함께 실려있고 죽은 후 나온 수첩까지 실린 이 책은 기억해.....

메시Messy, 팀 하포드

메시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팀 하포드(지음), 윤영삼(옮김),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확실히 기존 통념을 깨뜨린다. Messy라는 제목 그대로, 무질서와 혼.....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

맑스주의와 형식, 프레드릭 제임슨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개정판: 맑스주의와 형식, 원제: Marxism and Form)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 (지음), 여홍상, 김영희(옮김), .....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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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