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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당신의 한 줄은 무엇입니까 

김철수(지음), 청림출판 




계속 공부를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긴 계속 공부를 하고 있긴 하다. 그냥 습관이기도 하지만, 뭐랄까, 공부가 팔자인 듯 싶기도... 그 공부가 돈벌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데 인생의 곤혹스러움이 있다고 할까. 그래서 가끔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만약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아직도 글을 썼을 테고 이름과 부를 얻는 대신 고집을 넘어선 아집스러운 순수함만 추구했을 테니 말이다. 


종종 이런 책을 읽는 건 나에게 신선한 자격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평범하다고 하면 저자가 화를 낼려나. 직장인이지만, 시카고 IIT 디자인대학원에서 HCI를 전공했으며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혁신시키며 책까지 내었으니, '평범'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재수를 해서 대학에 한 해 늦게 입학한 고등학교 동기에게 왜 1년 더 공부를 하는데, 성적은 오르지 않고 대학시험에 또 떨어지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는 고 3 때보다 더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 당연한 이야기인데,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다소 충격스러웠다. 


그랬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을 보며 그/그녀를 부러워하며 나도 언젠가 그/그녀처럼 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또는 그녀가 되지 못한다. 이유는 당연하다. 그가, 그녀가 했던 노력도 하지 않고 그런 노력을 지탱할 열정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오늘도 부러워 하기만 한다. 


이 책은 저자의 그런 노력이 담겨있다. 이 책이 읽을 가치가 있다면, 자신의 노력을 솔직하게 정리하며, 자신이 어떻게 했는지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그의 노력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서 배움을 구하고 그것을 정리한다. 그 정리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자기 인생의 한 줄 컨셉을 도출하는 실천적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맞는 실천법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실천법을 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특히 국내 저자의 책은!

(국내 출판사들은 이렇게 국내 저자들을 발굴해야 할 텐데, 번역 출판물만 팔리고 있으니...) 


나에겐 읽기 쉬운 책이었지만, 이 책과 저자에겐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조금 더 성실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내 모자람만 보이니, 큰 일 났다. 이를 어쩌면 좋으랴. 



사족) 저자 소개에 HCI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단어에 대한 설명이 없다. 내가 이 단어를 들은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단어가 되었지만... Human-Centered Innovation이라는 단어의 약자다. 그런데 Human-Computer Interface도 HCI다. 10년 전만 해도 후자로 알아들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 정리해놓은 몇몇 글들이 있다. 지금은 검색하면 훨씬 좋은 글들이 많지만... 

http://intempus.tistory.com/category/Business%20Thinking/Design%20Thinking 







당신의 한 줄은 무엇입니까 - 8점
김철수 지음/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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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터뷰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팀(지음), 21세기북스 



'조중동'이라는 단어가 거의 일반명사화가 된 지금, '조선일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들어간 책을 읽는 기분은 좋지 않다. 차라리 경향신문이나 한국일보가 들어간 책을 읽는다면 좋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조선일보의 위클리비즈(Weekly Biz)의 기사 경쟁력은 웬만한 비즈니스 저널 못지 않기로 유명하다. 특히 매주 비즈니스 세계의 리더들과의 인터뷰 기사는 그 내용 면에서는 탁월함마저 풍긴다. 일반적인 질문을 던져도 보통 수준 이상의 식견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인터뷰 질문에서부터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현재까지 3권이 출간되었고(<<위클리비즈 i>>, <<위클리비즈 인사이트>> 등), 이 책은 2014년 4월에 출간된 책이다. 30명의 리더와 인터뷰를 했고 각 챕터마다 각기 다른 내용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점은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이 변화의 와중에서 우리는 변해야 할 것은 과감하게 변해야 하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다른 업체가 성공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릅니다. 다른 업체가 우리를 쫓아오지 못하도록 어떻게 블로킹할 지도 생각하지 않고요. 우리는 에너지의 100퍼센트를 오로지 우리 제품을 더 좋게 만드는 데만 집중합니다. 이런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 필 리빈(에버노트 CEO) (183쪽)


'100-1=0'이 저희의 모토입니다. '100개가 괜찮아도 불량품이 1개 나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지요. 
- 리만탓(세계 최대 중화요리 소스 이금기 명예회장) (305쪽)
 

하워드 스티븐슨 교수(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가만히 있지 말고 과감하게 벌떡 일어나 뛰어들어야 합니다. 단지 정해진 트랙을 도는 경주마가 되어서는 안 돼요. (...) 경주마는 단순히 골인 지점만 보고 달립니다. 반면에 야생마는 가야 할 곳이 어딘지 피할 곳이 어딘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때로는 천천히 달리기도 하지요. 경주마는 달리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만 야생마는 생각하기 위해 달리기를 멈춥니다. (98쪽) 

그리고 전환점inflection point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전환점이란 지금까지 달려오던 것과 전혀 다른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트는 것입니다. 단지 살짝 변화만 주는 차원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그 전환점에 우리의 잠재력을 이끌어낼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겁니다. (97쪽) 



그렇다면 전환이란 어떤 걸까?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인 카림 라시드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만의 틈새 언어niche language를 만들 수 있도록 사고 방식 자체를 완전히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전과 철학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따라하기' 일변도의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과연 창조적인 조직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138쪽)  



GE 부회장인 존 라이스는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실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리더십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간단해요. 하겠다고 말한 것을 실천으로 옮기고, 되겠다고 한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당신의 투자자와 고객, 직원들에게 하는 약속이지요. 도대체 누가 오로지 더 높은 다른 자리에만 신경을 쓰고 거짓말을 일삼는 상사를 믿고 따르겠어요." (281쪽)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변화는 움직이지 않는 이들에겐 위기이고 변화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기회다. 마이클 모리츠 세쿼이아 캐피털 CEO의 지적은 벤처캐피털에 대한 것이었지만, 실은 변화를 꿈꾸는 우리 모두에게 향한 말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 벤처캐피털 업체를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을까요"란 질문에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성공하는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되고 싶다면 실리콘밸리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거만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실리콘밸리가 아니면 최소한 중국에 가야 해요." (243쪽) 



마지막으로 오니시 마사루 JAL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도 인상적이었는데, 인터뷰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목소리는, 왜 그가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작년 그의 책 <<회사는 어떻게 강해지는가>>를 읽기도 했지만, 다시 한 번 그의 책들을 챙겨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 - 이나모리 가즈오 (233쪽에 재인용)



인터뷰 기사들을 모은 책이라, 속도감 있게 읽히지만, 내용은 만만치 않다. 아마 몇몇 내용들은 노트를 해가며 읽게 될 것이다. 





더 인터뷰 - 8점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팀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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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도에 번역 출판된 윌리엄 S. 버로우즈의 소설론을 구했다. 소설을 쓰지 못하니, 소설론만 읽는다. 세상은 바라지 않는 소설 같이 흘러가기만 하고, 평범한 우리들의 하늘이라고 스스로 믿는 그들과 그들의 나팔수들은 한 줌 희망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들에게, 그래서 니네들은 미개하고 어리석다며, 그래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꺼야라는 패배주의를 은연 중에 심어놓으며, 진실은 조작되었고 할 수 있는 바 최선을 다했다며 강변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거리 데모를 나간 적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이번에는 나갈 생각이다. 세상은 바꾸는 건 깨어있는 시민이지, 그들이 아니다. 우리들에게 상처 입히고 우리들을 왜소하게 만들며 우리들에게 패배감을 안겨주며, 변하지 않는 세상의 질서를 강요하는 그들 앞에서 세상은 변하고 변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정치적이나,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거의 하지 않은 나로 하여금 어떤 실천적 행위를 하게 만들 정도 이 나라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던 그들 - 입으로는 시민을 위한다는 - 에게 기대조차 하지 않겠다. 어차피 그들이 아닌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이고 우리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세상이니, 우리들이 나서야 하는 거다. 


   

토요일 오전, 사무실 노트북을 가지고 와, 일을 하며 오랜 만에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요요마의 첼로는 언제나 마음의 작은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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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다행스러워 할 줄 그 땐 몰랐다. 막상 직장 생활을 해보니, 이 자본주의라는 것이 정말 공포스러운 괴물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잠재태/능동태를 이야기한다거나 미켈란젤로의 시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이상한지, 심지어 갤러리에 가서 작품을 보고 옆에 서 있는 작가와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일상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저 세상 일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혹은 우리가 바라는 바 변화란 '이론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서 이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도, 나랏일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심지어 농부는 곡식이라도 생산해 보탬이 되는데,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학자들은 말만 앞 세우며, 도리어 나랏일에 참견하며 방해될 뿐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고,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오늘 읽은 진태원 교수의 논문 관련 기사.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 이론과 실천의 괴리 불러"

그는 현재 유행하는 인문학 담론들이 미국을 통해 유통되고 있으며, 미국화된 담론을 세계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은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것이 아닐 것이다. 


진 교수는 이러한 '괴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이런 담론들, 특히 지제크, 바디우, 아감벤의 이론적 성격을 분석한다. 진 교수는 "해방의 정치를 제도정치 바깥에서 찾고 있는 점"과 함께 '좌파 메시아주의'를 이들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이는 "이들이 자본주의 및 자유민주주의 체제와의 급진적이고 전면적인 단절을 주장할 뿐 아니라, 이를 기독교 전통에 대한 재독해에 기반해 혁명적 사건성의 관점에서 해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이러한 메시아주의 정치는 매우 사변적인 정치철학"이라며 "이들 중에서 누구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나 국가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제시하지 않으며, 그것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인 운동이나 조직에 관한 구체적 성찰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변성'이 바디우의 '대상 없는 주체', 지제크의 '신적 폭력', 아감벤의 '계급 없는 사회' 등의 개념에서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기사 중에서 인용)



진태원 교수의 의도는 현실적인 고려나 실천적 방안의 제시 없는, 사변적 이론가들의 유행를 질타하기 위함이겠지만,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는 좀 뜬금없어 보인다. 진태원 교수가 보기에도 참 문제 많은 유행이겠지만... 

(몇 권 읽지 않았지만, 리뷰하자면, 지젝은 센스있게 얄팍하고 바디우는 정말(혹은 과격하게) 사변적이고 아감벤은 그래서 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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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들을 기획하고 진행하지만, 그 많은 일들 상당수가 뜻대로 안 된다. 얼마 전 읽은 컨설팅 회사의 리포트에서는 미국 기업들이 시도하는 IT 프로젝트의 70%가 실패하거나 취소된다고 적고 있다. 현재 내가 몸담은 곳은 이런 IT 프로젝트를 수주해 납품하는 형태의 비즈니스를 수행한다. 그런데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한 두 곳이 아니다.내가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수에는 한계가 있고 고객은 나에게 불만을 이야기하니, 결국 내 불만만 쌓여가고 있다. 이제는 관리자들까지도 믿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는 커뮤니케이션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과도 같다. 그리고 표지판을 뚫어지게 쳐다본 지도 한 두 달이 지나고...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포지션은 고객은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공감을 얻어내어야 하며, 내부 담당자들은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야 한다. 결국 히딩크의 말대로 '축구는 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하'듯,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진실된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리고 커뮤케이션 손실을 막기 위해 객관적인 단어로 작성된 문서로 이를 지지해야 한다.


막상 이 쪽으로 들어와보니, 이렇게 진행하는 게 내 뜻대로 쉽지 않다. (실은 모든 프로젝트가 다 그렇겠지만) 그리고 프로젝트 한 두 개가 실패하게 된다. 외주의 입장에서는 실패는 사업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패 대신 완벽하지 않은 형태의 납품이 이루어지고 고객의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은 마무리가 된다.


프로젝트야 이렇게 마무리되지만, 경영은 다르다. 잘못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고 사람을 잃기도 하고 신뢰를 뜻하지 않게 상실하기도 한다. 그렇게 실패의 경험들을 쌓았고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았다고 자신을 하는 나지만, 다른 이들의 무딘 면을 보면 꽤 실망스럽다. 



Rainy Mid-Night Snack
Rainy Mid-Night Snack by MSVG 저작자 표시



반성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부정적 반성이 있다. 밥 먹듯이 하는 실패 앞에서 분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왜 실패하게 되었는가를 분석하고, 그것은 애초부터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어떤 역량의 부족이거나 상황의 변화 등으로 기인되는 실패는 동일한 것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회피로 변질된다. 굳이 시도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케이스가 하나 생긴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상황을 처리하는 태도에 기인한다. 직원 20명도 안 되는 조직의 대표에게 모든 직원 한 명과 점심 식사를 해보라고 조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이와 단 둘이 점심 먹는 게 힘들어서, 그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이의 푸념, 대단치 않은 요구, 깊이 없는 지적을 듣기 싫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모든 사람들을 만났고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갈등을 봉합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이야기하여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꼈다. 그리고 거짓된 태도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부정적 반성이 있다면 긍정적 반성이 있다. 앞과 똑같이 밥 먹듯이 하는 실패 앞에서 분석을 시도한다. 하지만 분석의 태도부터 다르다. 다음에는 성공하기 위해서 분석하는 것이고 동일한 상황이 다시 놓일 수 있음을 가정한다. 애초에 실패란 없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무모하고 터무니없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실패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실패했기 때문에 다음엔 더 큰 보폭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실패 이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주도면밀한 계획이 나오고 이대로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뒤이어진다. 


나를 지탱하던 것은 긍정적 반성이었다. 하지만 부정적 반성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 긍정적 반성을 하기란 쉽지 않음을 새삼 느끼고 있다. 결국 적극적인 태도 변화와 실천이 키포인트다.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 아는 이야기인 양 듣는다. 하지만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어떤 이는 실패 끝에 성공을 부르고, 어떤 이는 거듭된 실패만 반복하는 건 무슨 까닭일까. 움직여야 한다. 이 글도 어쩌면 나에게 움직임을 촉구하기 위해서 씌여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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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미술 잡지에서 우리의 현재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고 되새겨볼 만한 문장들을 읽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옮겼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발적이며 능동적이고 탈식민화된 예술적 실천이다. 그런데 나도, 우리도 그걸 자주 잊는다. 다시 이 블로그가 거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겠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현명하다. 이 때 현실이란 혼종성, 디아스포라, 그리고 상호교환적인 네트워크가 점차 강해지는 상황이 영속화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전체 구조를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가 자기 자신과 사회, 현실을 위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쟁력 있는 기관을 설립해야 하고, 가치 중심적 시스템 하에 더 많은 지식인들을 양성해야 한다. 나아가 억측하기를 그만 두고 우리 현실과 관련된 증거들을 생산해야 한다. 이 증거들은 강력하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가져올 것이다. 

- 슈시 술라이만 (말레이시아 12Art Space 디렉터) (경향 아티클, 2013년 4월호에서 인용) 




Playing for Dying Mother, 2009

After Puvis de Chavannes’ “Jean Cavalier jouant le choral de Luther devant sa mere mourante,” 1851

Wong Hoy Cheong



The Charity Lady, 2009

After Jean-Baptiste Greuze’s “La Dame de Charite,” 1775

Wong Hoy Cheong






앨버트 허쉬만의 '반동의 수사학'에서 빌어 와 말하자면, 그것은 개선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반동의 미사여구를 기만적인 것으로 만든다. 가치 밑바닥에 숨어 개선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만약 당신이 그런 수사적인 논쟁을 하게 된다면, 당신의 결론은 '무반응'일 것이다. 당신은 어떤 개선 가능한 행동들을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행동도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역효과를 낳거나 혹은 성취된 것들을 파괴하는 행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동의 수사학은 여러 분야에서 우리의 삶을 점유하고 있다. 경제적인 인플레이션과 핵무기, 노동자 착취, 도시 개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적 거짓말 등. 만약 아시아 예술가들이 아직도 그들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서구의 시선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혁신적인 게 아닌 자기 식민화일 뿐이다. 당신이 스스로 원하는 바대로 할 지, 아니면 남들이 무얼 하라고 얘기해주길 기다리고 있는지, 당신이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난 믿는다. 

- 우 따건 (대만 콴두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경향 아티클, 2013년 4월호에서 인용) 








Tu Wei-Cheng

Happy Valentine’s Day

installation

http://collabcubed.com/2012/08/27/tu-wei-cheng-happy-valentine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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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epthestyle 2013.06.18 14:36 신고

    '만약 아시아 예술가들이 아직도 그들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서구의 시선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혁신적인 게 아닌 자기 식민화일 뿐이다'
    멋집니다.

    제가 작년에 국내 모 예술제에 다녀왔는데 엄청나게 실망하고 왔다죠.
    솔직히 한국작가들이 창조해 낸 거라면
    그래도 작품속에 타국의 작가들과 구별되는 한국적인 느낌이 담겨있을 줄 알았는데..

    팔기위한 작품을 내놓는 자리의 성격이 강해서인지...
    그 예술제를 한국전체의 작가들의 작품에 확대해석하는 것은 좀 무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거의 70%는 서구사회에 대한 동경만 담고 있더군요.
    (다행이 30%정도는 한국의 미가 물씬 느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굳이 한국적인 모티프를 사용하지 않았어도 말입니다.)
    게다가... 앤디워홀 모작은 왜 그리도 많던지,,

    여튼 그 이후로 음악이나, 옷이나 주변에 모든 것들을 접할 때마다,
    서구사회와는 구분되는, 그리도 중국과 일본과는 구분된 한국적인 특성이 드러난 것을 발견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 이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제 편협한 시야로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발행하신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

    • 정체성identity가 중요한데, 우리 사회가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는 소극적인 듯 합니다. 그리고 타인들과 뚜렷하게 두른 '개성적인 자기'를 드러내면 도리어 소외를 당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요. 미술 사회(일종의 장 champ)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그 곳도 한국 사회의 일부인지라... 막상 부딪혀보니,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개성적인 작품을 그린 것도, 그 작품으로 인정 받는 것도 ...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헤쳐나가야 되는데, ... 여튼 대중의 관심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 순수 미술 분야인 듯합니다. ~.. ^^
      댓글 감사합니다.!!



(출처: http://www.pop-group.net/blog/nishiumi/2012/08/zurich-30-hours.html)



되도록이면 여유를 가지고 방해 받지 않으며, 생각에 잠겨 있고자 하지만, 내 일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원고 청탁이라도 받으면 청탁 받은 주제에 대해 몰두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해 가족의 허락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선 집, 회사, 집, 회사, 또는 술자리나 저녁 약속이 무한 반복으로 내 앞에 버티고 서 있으니, 개인적 시간은 사치스러울 지경이다. 연극평론가 안치운 선생도 집 안에서의 자기 존재에 대해 적기도 했다. 가족의 일상과 무관하게 책 읽고 글 쓰는. 


가족이 모두 잠 든 한밤 중 시간이 유일하게 나에게 주어지는 개인 시간인데, 요즘은 왜 그리 졸린 지, 잠이 많은 내가 미워지기도 한다.


오늘 나는 사카구치 교헤Sakaguchi Kyohei라는 일본 예술가를 알게 되었다. 우연히 읽게 된 어느 잡지(LIG 아트센터 매거진)에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를 돌이켜보았다. 


요즘은 뭐랄까, 좀 트렌드에 뒤쳐진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혹은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이랄까, … 그러면서 동시에 비-창의적이고 구닥다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사카구치 교헤의 태도를 보면서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고 할까. 그의 생각과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거꾸로 보는 것,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  


잡지에 실린 인터뷰 일부를 옮긴다.

(그는 지난 여름, 제 14회 서울변방연극제에 참여하였고, 인터뷰는 그 때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 저는 거리에서 사는 그 분들을 ‘도시형 수렵채집자’라고 부릅니다. 


- 그 분들은 거리에서 재료를 채집합니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생산물이 아니라면서 무시하곤 하죠.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우리는 무언가를 새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도시에 이미 많은 재료가 있으니까요. 쓰레기가 새로운 재료로 바뀌는 곳, 이것은 무언가를 사냥하는 것과 같아요. 내가 무언가를 찾아냈다, 유레카! 그럴 때는 기분이 정말 좋아요. 이것은 아주 건강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 나는 ‘생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생각의 가능성’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눈에 보이는 공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간에 흥미가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만들고자 합니다. 사람의 생각에 의해 공간은 시작되니까요. 


-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제가 처음 천막에 사는 분에게 ‘집이 너무 좁지 않아요?’라 물으니, ‘이거 집이 아니야’라고 답했습니다. ‘이건 침대인데’하면서 도서관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군요. 그 곳은 책장이라고 불렀습니다. 공원에서는 벤치에 앉아서 여긴 거실이라고, 주유소에서는 휘발유 통을 가리켜 이건 콘센트라고, 푸른 하늘은 지붕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처럼 생각의 틀만 약간만 바꾸어도 뭔가를 건축하지 않고도 세상을 자신의 공간 요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이것은 곧 살아 남기 위한 기술을 만든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것으로 세계를 바꾸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혁명입니다. 눈 앞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에 대해 다들 눈치 채고 직접 느끼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층위로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가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이 허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 합니다. 



그의 예술 활동은, 그의 생각을 그대로 옮기는 행동이자 실천이다. 일본 정부로부터 1엔도 받지 않았다는 그는, 생각대로 실천한다. 아래 그의 여러 작품들을 옮겨보았다. 시각 예술 작품이라고 하기엔 미적 완성도가 없고 도리어 일종의 연극이며 행위 예술으로 보고 싶지만, 그러기엔 그는 반-시간적이다. 연극이나 행위 예술은 정해진 시간 안에 일회성으로 끝난다면, 그의 작품은 그것들과는 반대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예술적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은 '반-시간 예술'인 셈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엄밀하게 조형 미술적 형태를 가진다.  


   



The House Bike 2001 

http://www.0yenhouse.com/en/The_House_Biker/  

(오토바이 뒤에 싣고 다니다가, 아무 곳에서나 내려서 살 수 있는 이동식 집이다)





움직이는 집 ( A Mobile House)

http://blog.naver.com/mtfestival/100160421189 

(14회 서울변방연극제에 참가한 작품이다)






짓지 않는 건축가, 사카구치 교헤 

http://magazyn.co.kr/11037 

(이 인터뷰는 LIG 아트센터 매거진보다 더 상세하다. 읽어보길 바란다. 아마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집’ 제작 워크숍, 7월 6일(금) 오전 10시 - 야간 / 동숭동 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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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글을 쓰다 ... 프린트한 종이 더미 사이에 넣어버렸다. 혼자 쓰는 글이라는 마감 같은 있으리 없고, 돈벌이도 아닌 탓에, 쓰다만 개의 , 쓰다만 개의 소설은 계속 짊어진 하루하루 살고 있는 셈이다.

오늘은 사무실에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가지고. 어제 들기 전에 서두와 역자 후기를 읽었고, 한동안 가방 속에 머물게 것이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존재론의 새로운 >> 읽다가 '철학자가 처한 현실' 그것에 대한 사유와 실천의 관계 등에 대해 생각했고,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까지 이어진 것이다.

작년 헤겔의 <<법철학>> 서문을 다시 읽었고, 뭐랄까, 뭔가 답답함을 느꼈다고 할까, ... 그런 기분을 느꼈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개념적 파악을 위해 정치적 현실을 논리화해 버렸다고 비판한다. 헤겔에서는 "사유를 정치적 규정들 속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전하는 정치적 규정들을 추상적 사유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이다. 사태의 논리가 아니라 논리의 사태가 철학의 계기이다. 논리가 국가를 증명하는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논리를 증명하는 봉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르크스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헤겔의 <<법철학>> 이러한 비판을 받을 만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 강유원, '옮긴이후기' 중에서



그런데 지적은 철학 전반에 걸쳐 이루어질 있는 아닐까. 하르트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철학은 존재자에 대한 앎이 없이는 실천적인 과제에도 접근할 없다. (중략) 사실 모든 기술은 자연의 법칙성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성립한다. 마찬가지로 의술은 생물학적인 지식 위에, 정치술은 역사적 지식 위에 구축된다. 철학에 있어서도 사정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대상이 보편적인 ,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계 전체를 포괄한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조바심을 누르고 숙고의 길을 찾으며 또한 뒤로 멀찍이 물러서는 또한 서슴지 않는 , 요구 사항이 시급하고 과제가 절박했을 때조차 바로 그렇게 했던 것이 언제나 독일 정신의 강점이었다'
- N. 하르트만, <<존재론의 새로운 >> 중에서



현실에서 뒤로 떨어져 사태를 관망하고 사유하고 반성하는 . 그것이 철학의 길인 셈이다.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의 사상으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형성과정을 종료하여 확고한 모습을 갖추고 다음에야 비로소 시간 속에 나타난다.(Als der Gedanke der Welt erscheint sie in der Zeit, nachdem die Wirklischkeit ihren Bilduingsprozess vollendet und sich fertig gemacht hat.)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ammerung ihren Flug.)
- 헤겔, <<법철학>> 서문 중에서(임석진 , 한길사)



이제서야 철학과 실천 사이의 묘한 긴장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셈이다. 앞의 사태를 두고도 철학자는 사유한다. 그 사태가 끝날 무렵에서야 뭐라고 말하지만, 이미 현실적인 사태는 끝이 나 있을 무렵이고, 정리정돈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때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어떤 이가 와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참견을 한다. 현실 속에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힌 사람들 사이로 들어와선. 그런데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이것이 '독일 정신의 강점'이라고 이야기하며, 그 이전의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에서 마르크스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현실 앞에선 아무 것도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는 독일 정신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실 한 가운데에서 정확한 판단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실은 현실 한 가운데에서도, 현실의 변두리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게 현대 이론의 정설이다. 그러니 현대란 반-이론의 시대이고 합리적인 것들이란 믿을 수 없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으며, 의사결정이란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뒤로 유예되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반-헤겔주의와 반-마르크스주의가 동시에 휩쓴 시대라고 할까. 그러니 이론과 실천이라는 테마도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버렸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관찰한다는 것이고 관찰하는 것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철학자들이 걸어온 길을 되새기는 것이며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하여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되지만, 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것 또한 철학이기도 하다.

결국 남는 건 나이고, 내 삶이고, 내 사유뿐이다. 그것이 시뮬라크르로 남든 간에. 그래서 이제서야 철학책이 제대로 읽히는 것일까. 

 


* 위에서 언급된 책들 
헤겔 법철학 비판
칼 마르크스 저/강유원

법철학
G.W.F 헤겔 저/임석진

니콜라이 하르트만 저, 존재론의 새로운 길, 손동현 역, 서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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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도 리포트인데, 지금도 유효할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불량율 10% 달성'보다 '불량율 0.01% 달성'이 경영의 관점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개인으로 보자면, 토익 800점 달성보다 토익 950점 달성이 더 유리하다는 것.

종종 과도하게 높은 목표는 의외의 성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은 현실적 목표 이상의 성과로 이어진다.

종종 불가능한 목표들이 있다. 100미터 달리기에서 10초대 벽은 불가능한 목표였다. 과학자들까지 나서서 인간의 육체로는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였다. 60년이 걸리긴 했지만, 10초대 벽은 무너졌다. 이론적인 관점에서의 불가능함을 인간은 해낸 것이다.

올해 내 목표는 불가능한 것일까?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래 글은 수 년 전에 적은 글이다.
****

도전적 목표, 이렇게 관리하라, LG경제연구원, 2002

Stretch Goal이란 스스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도전적 목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목표를 능히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준 그 이상으로 잡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그런데 이것의 성과는 예상보다 좋다. 듀퐁 사는 2000년 '사고율 제로'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사고율 제로 100%를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산업 평균보다 훨씬 낮은 사고율을 기록했다.

목표는 최고로 잡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충분한 지원과 보상이 뒤따른다면 한 번 도전해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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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방가르드 - 개입의 예술, 저항의 미디어
이광석 지음
안그라픽스


‘사이방가르드: 개입의 예술, 저항의 미디어’라는 책 제목과 부제에서도 드러나듯, 이 땅의 고민들을 반영하고 담아내려는 사이버 시대의 아방가르드적 행동주의의 흐름과 예술, 미디어 저항과 실천의 다양한 작업들에 주목한다. 책에서 소개되는 아방가르드 예술군의 사회 참여 방식을 보면서, 독자 여러분들은 현실의 야만에 반응하는 나름의 ‘싸움의 기술’을 터득하기 바란다. - 14쪽


작년 모 잡지의 원고 청탁으로 관련 자료를 찾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미술 분야의 일을 간간히 하지만, 최신 정보와는 다소 동떨어진 일상을 살아가는 탓에 이런 류의 책을 소개받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책은 신선했다. 문장과 구성 방식, 그리고 소개되는 예술가들마저도. 이 책에서 설명하는 다수의 예술가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책 속에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더욱 흥미로웠다.

이 책은 저의 말대로 사이버 공간 속에서 현실적인 메시지와 실천을 하고 있는 예술과 그런 예술가, 예술그룹에 대한 소개서이다. 저자의 문장이 다소 직설적이지만, 이마저도 글쓰기 전략의 의도로 여겨질 정도이며, 이 책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렇게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소개된 예술가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리뷰를 작성하려고 몇 달 전부터 책 위에 이 책이 놓여있었지만, 그럴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리뷰를 올린다. 미디어 아트와 예술적 실천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무척 흥미진진할 것이다. 또한 사이버 공간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에게도 이 책은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대중서라기보다는 전문서적이며, 책의 목적이나 읽기를 원하는 독자도 분명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반대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이 책이 씌여지고 편집되고 구성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고 해서 책의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관심있는 독자들은 한 번 정도 읽어봄직 하다. 단, 책을 고르기 전 목차는 확인해보도록~.


사이방가르드 - 8점
이광석 지음/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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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 10점
리 호이나키 지음, 김종철 옮김/녹색평론사


정의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리 호이나키(지음), 김종철(옮김), 녹색평론사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은 필요 없다. 단지 ‘읽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꼭 리 호이나키가 자신이 알고 있던 바를 성실하게, 혹자가 보기엔 무모하고 철없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실천해 나갔던 것처럼, 이 책을 읽은 나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서평이라기보다는 ‘타인에게 이 책의 독서를 강요하는 것’이다.

카페테리아의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메뉴들 ... 이런 것이 저 학생반란과 운동들의 주된 결과인가? 나는 궁금했다. ... 대학개혁을 위한 요구들은 어떠한 좀더 심각한 변화를 초래했는가?
- 11쪽


리 호이나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논리적으로 따라가면서, 그것과 부딪히는 일상에서의 경험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개선시켜나갈 뿐이다. 실은 성실한 휴머니스트라면 매우 당연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대학은 오직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뿐이며, 교수들은 오늘날의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가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보여질 수 있는 것 사이의 차이를 아는 것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다고 나는 느꼈다. 캠퍼스의 사회적 분위기와 정치적 의도는 한 가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행해지는 교육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숲 속에 자리 잡은 캠퍼스의 저 세련된 휴머니스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오직 보여짐을 통해서 드러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일은 필연적으로 자기패배적일 수 밖에 없었다.
- 13쪽


리 호이나키의 저 지적은 미국 대학 사회가 아니라 전 세계 대학 사회에 공통되는 사항일 것이다. 실은 코미디다. 말해질 수 있는 것(What can be said)과 보여질 수 있는 것(What can be shown)에 대해서 무수한 이들이 떠들지만, 이를 실천하는 이는 거의 없다. 리 호이나키의 눈에는 대학 사회를 떠도는 담론은 유령이며, 죽은 자이고, 껍데기일 뿐이었다. 그는 대학 사회를 떠나 시골로 들어가, 마치 중세적인 어떤 삶을 실천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탐욕스런 도시 자본주의와 만나게 된다.

책은 리 호이나키의 경험, 그 경험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성찰로 이루어져 있다. 혹자는 저자의 박식함을 높이 평가하겠지만, 이 책이 미덕을 가진다면, 그 박식함이 아니라 저자의 일상 경험에서 지식의 의미를 구한다는 데에 있다. 대다수의 지식인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이 현실 세계 속에서는 그 어떤 의미나 가치도 구하지 못하는 것과는 반대로, 리 호이나키는 그것(지식)을 실제 경험을 통해 검증하고 가치를 구해나간다.

하지만 리 호이나키의 실천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대중적인 실천의 방식이 아니다. 그도 지식인이며, 지식인 사회에서 성장했으며, 그가 의지하고 있는 어떤 앎의 체계, 또한 전문가적인 것이다. 한국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쯤 될까? 책을 다 읽고 사소한 실천이라도 감행하는 사람은?

이 책의 한계는 여기에 있다. 결국 지식인 사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다. 리 호이나키가 대화의 상대로 가정하고 있는 이 또한 지식인이며, 그가 변하게 만들고 싶은 것도 지식인 사회다. 그러나 이 세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예부터 있어왔던 어떤 방식대로 그렇게 존재할 것이다. 리 호이나키같은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였고 앞으로도 소수일 것이다.

한국의 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이상하게도 젊은 고학력의, 고수익의 사람들에게선 낮게 나오고, 나이들고 저학력의 저수익의 사람들에게 높게 나오는 이치와 비슷하다. 후자의 사람들이 리 호이나키같은 저자가 쓴 책을 읽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그런 저자를 만나 시몬느 베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할 가능성도 없다. 사회를 이미, 오래 전부터 단절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어떤 이론이나 학설은 현실의 경험 속에서 검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서 누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 지식의 트렌드만 따라가는 학자와 지식인들만 있을 뿐, 그것을 경험 속에서 검증하고 실천하는 이는 없다. 리 호이나키의 책이 지식인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바로 그것이다. 

'자본주의의 탐욕'이라든가, '정치적 올바름', '환경 문제, '지속가능한 성장' 따위는 그 다음 문제다. (실은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듯 보이지만, 이 책의 근본 주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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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적 가치(Glabal Values 101)
브라이언 파머 외 엮음, 신기섭 옮김, 문예출판사



이 책의 서평을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그런데 서평보다는 간단하게, 그리고 강력한 어조로, 16명의 반-정부적이며 반-기업적이고 반-시장적인 학자, 활동가, 기업인, 언론인들이 나와 하버드대 학생들과 나눈 대화 하나하나 모두 주옥같아서, “무조건 사서 읽어보세요! 이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에요!"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16명의 실천적 지식인들, 가령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워드 진이나 노엄 촘스키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여러 실천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과 하버드 대학생들과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이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해 우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풍부하고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 한 때 우리 나라의 지식인들이 '사회주의'라는 물결에 기대고 있다가, 이 물결이 사라진 이후,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급격하게 무너진 것과 대비되어, 이 책은 사회주의가 아닌 바람직하고 올바른 삶이, 올바른 실천이 무엇인지를 다양한 사상과 관점을 바탕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는 값진 책이다. 



특히 시장(market)을 새로운 신으로 정의내리며, 어떻게 우리 모두가 시장화 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신학자 하비 콕스의 견해는 매우 흥미로웠다. 그는 교회도 마케팅하고 대학도 마케팅하는 현실 속에서 정신적인 상처에도 상품을 구매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노엄 촘스키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 여러분이 잘 교육받았다면 ‘어린이들’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이 작은 존재들을 부르는 기술적인 용어가 있습니다. ‘진화하는 소비자들’이라고 부르죠. 농담이 아닙니다. 이 나라를 상당 부분 움직이는 기구들, 곧 아마도 국내총생산의 6분의 1 정도인 2조 달러를 마케팅에 쓰는 기업 세계에 봉사하는 홍보산업(이 산업은 선거를 움직이고 미디어와 정보 시스템의 핵심입니다)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을 계속 수동적이고 순종적이고 주변화한 상태로 있게 하는 것입니다.


'보스턴매거진'에서는 이 책에 실린 인터뷰가 진행된 하버드 대학 종교학과의 강좌를 이렇게 평가하였다. 



하버드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좌인 ‘경제학 개론’이 직원을 해고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경영인이 될 경제학 전공자들을 준비시킨다면, 두 번째로 인기 있는(그리고 수강생이 가장 많은 선택과목인) 강좌는 ... ... 다른 길을 간다. 학생들을 성 프란치스코식 성도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나이와 학력, 전공과 무관하게 모든 이들에게 읽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정말 놓치면 안 되는 책이다.



오늘의 세계적 가치
브라이언 파머 지음, 신기섭 옮김/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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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종말 - 8점
레지 드브레 지음, 강주헌 옮김/예문




지식인의 종말
레지스 드브레 지음, 강주헌 옮김, 예문


이 책은 오늘 지식인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가를 통렬하게 비판한 책이다. 그래서 나는 지식인이다라고 생각하는 이는 이 책을 읽고 가슴에 손을 얹고 과연 나는 지식인인가를 다시 한 번 물어볼 때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러니깐 대학을 나왔다고 대학원을 나와 석사학위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가 지식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웃긴 일이다. 그럴 땐 드브레의 말처럼 "누구건 지식인이라 자처한다면, 나는 그를 기꺼이 지식인이라 불러주겠다."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단어가 '노블레스 오블리제'였다. 아래 글을 보자.


노블레스! 그 기원인 로마가 보여 주었듯이 노블레스는 본질이 되기 전에 직업이 되어버렸다. 프랑크 왕국이 성립된 후 봉건체제로 들어서기 전에 이 땅에는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는 행정가 집단, 즉 레스 퍼블리카Res Publica를 꾸려가던 노빌리타스nobilitas가 있었다. 노블레스는 게르만어에서 전사를 뜻하지만, 이탈리아어에서는 국가에 대한 봉사를 뜻한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난 성城의 주인은 안으로 감추어진 경영의 주인이기도 했다. 따라서 지식인과 작가가 공직에 뛰어드는 것, 즉 정부의 고위 관료가 되는 것은 특권의 상실이 아니라 자연스런 일이었다. (중략). 다스린다는 것은 지배하는 것인 동시에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봉사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노블레스는 아리스토크라시(희생보다는 특권을 전제로 한 귀족)로 변해갔다. 지식인도 실질적인 노력이나 기여 없이 상징적인 보수를 바란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크라시와 다를 바가 없다. 말하자면 지식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기보다는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한 사람들이다.
- 175쪽에서 176쪽


부언하자면, 귀족이란 사회의 특권 계층이 아니라 전쟁이 났을 때 집안의 남자들이란 남자들은 다 나가 맨 앞에 나서서 싸우는 이들이 그 시작이었다. 그리고 한 마을, 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던 이들을 다른 이들이 기꺼이 귀족으로 모시기 시작한 것이다. 목숨을 담보한 특권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노블레스이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 담보로 내놓은 목숨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목숨을 지키기 위한 특권 계급으로 변질되어간 것이다.

그러니깐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말을 할 때는 현재의 '있는 집'을 기준으로 삼아야할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집'을 기준으로 삼아서 새로운 노블레스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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